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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한반도 운전대는 누가 쥐었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를 시사'한 후 남북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2년 전 끊겼던 남북 연락 채널이 복원됐다. 북이 '첫 수소탄 시험 성공'을 주장했던 4차 핵실험 후 끊겼던 채널이다. 9일 판문점에선 남북 고위급 대화가 열리게 됐다. 한반도 운전대론을 주창해 온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우리 제의에 호응한 것'이라며 반색이다. 내심이야 어떻든 트럼프 미 대통령도 '대화를 믿는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처럼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남북대화에 정부가 흥분하고 있음을 읽기가 어렵지 않다. 북한에 한미 군사훈련 연기라는 선물을 안기고 시작한 것부터 그렇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지역 도지사는 북 선수단에 '크루즈를 보내주겠다'고 나섰다. '남북대표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한다'는 섣부른 환상도 나온다. '책상 위에 핵 버튼을 올려두고 있다'는 위협은 간 곳 없고, 기다렸다는 듯 선물 목록만 펼쳐지는 모양새다. 역사는 어떨까. 남북 관계는 한 번도 그리 녹록한 적이 없었다. 도발과 제재, 대화 제의와 대화, 그리고 더 한 도발로 이어진 역사였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안다면 이번 북의 시사를 두고 운전대를 잡게 됐다며 흥분할 일은 없다. 오히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것이 교훈이다. 북은 지금 5차례에 걸친 핵실험 결과 유례없이 강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해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다. '북한에 최대의 압박을 계속하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도 대화를 100% 지지했다'는 우리 정부보다 한 수 위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처음 선언한 것은 1991년 12월 31일이다. 당시 남한엔 다수의 미국 핵무기가 배치돼 있었고 북한엔 없었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 선언' 주요 내용은 이랬다. ▷핵무기의 시험'생산'접수'보유'저장'사용 금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핵 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 금지 ▷비핵화 검증을 위한 상호 동시 사찰. 그로부터 26년, 한국엔 핵 배낭 하나 없다. 한국은 약속을 지켰고 북한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이제 북은 수소폭탄까지 지녔다며 큰소리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 26년은 이런 기막힌 반전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엔 남북대화와 스포츠 교류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북 핵개발의 역사는 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국제대회에서 남북이 처음 단일팀을 구성하고 한반도기가 등장한 것 역시 1991년이다. 그해 남북은 '코리아'라는 명칭 아래 국기 대신 '한반도기'를 들고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온 국민이 금방 통일이 닥친 것처럼 흥분했지만 2년도 안 돼 북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핵개발 의지를 노골화했다. 2006년 2월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도 마찬가지다. 'COREA'라는 이름 아래 한반도기를 흔들며 함께 입장했다. 하지만 5개월이 안 돼 북은 장거리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석 달 후에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스포츠 교류와 대화는 제재를 무력화하고 긴장의 고삐를 늦추는 데 이용됐을 뿐 핵개발 의지는 단 한 차례도 멈춘 적이 없다. 이제 김정은은 핵과 ICBM의 결합이라는 목표에 바짝 다가서 있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제재도 숨통을 죄고 있다. 정권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택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북이 내민 전략적 대화 카드를 두고 문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게 됐다는 호들갑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뒷자리에 김정은이 타지나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우리로 보면 북의 평창올림픽 참가나 남북대화는 오직 북핵 제거를 전제로 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북핵과 ICBM 결합을 마무리할 시간만 벌어줄 뿐이다. 문 대통령이 "저는 과거처럼 유약하게 (남북)대화만 추구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 그나마 마지막 희망이다.

2018-01-08 00:05:00

송힘

[매일칼럼] 알아줄까?

부산 광안리 근처에 복요릿집 골목이 있다. 예전 사무실 근처라 점심때면 자주 복지리를 먹었다. 복어 골목이라고 해서 복요릿집이 5곳 정도 있었는데 유독 한 군데만 줄을 서서 먹는 유명 맛집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남들 따라서 줄을 서서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실에 손님이 왔는데 그 가게가 예약되는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다른 복요릿집에 손님을 모시고 갔다. 근데 늘 줄 서서 먹던 유명 가게와 맛이 별다를 게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줄 서서 먹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한적한 가게에서 여유롭게 복지리를 즐겼다. 근데 식사를 하는 중에 콩나물 껍질이 나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머리카락도 아니고 벌레도 아니고 복지리에 복어보다 많이 들어가는 게 콩나물인데 콩나물 껍질 한두 개쯤이야. 그런데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콩나물 껍질이 한두 개씩 발견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 줄 서서 먹던 집에서 복지리를 수없이 먹을 때 콩나물 껍질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나? 답은 없었다이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의 비결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나는 그날 분명히 알게 되었다. '콩나물 껍질을 100% 손질한다.' 예술가의 최대 관심사는 '알아줄까?'이다. 연주자는 나의 연주를, 화가는 나의 그림을, 무용가는 나의 춤을 알아줄까를. 처음 기획하고 제작하고 완성하고 무대에, 갤러리에 작품을 올리고 전시하는 내내 이 질문들을 하게 된다. 그런 예술가를 힘 빠지게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사람들은 몰라"라는 말이다. 예전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기로 해서 미리 공연 장소에 무대와 음향을 확인하러 갔었다. 무대는 괜찮았지만, 음향은 공연장에 설치된 것이 연주용이 아니고 연설용이라 음향 기기를 임차해야 할 것 같아 기획하신 분께 음향 렌털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분이 "이제껏 다른 연주팀도 다 이 음향을 사용했었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그러느냐. 공연 보러 오시는 분들 시골분이고 노인분들이다. 들어도 잘 모른다. 그냥 해 달라"고 했다. 그 말에 수긍할 순 없었지만 뭐라고 더 이야기하면 정말 까탈스러워 보일까 봐 그냥 그 음향으로 공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은 엉망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리가 들리지조차 않았다. 공연 후 주최 측에서 연주자에게 나가시는 관객에게 인사를 해주길 원했다. 실패한 공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일일이 관객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 많은 관객이 우리에게 연주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음향이 안 좋았다고 예전에도 음향이 말썽이더니 아직도 그렇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랬다. 알고 계셨다. 그리고 알아주셨다. '알아줄 거야'라는 믿음은 예술가를 부담스럽게도, 힘 나게도, 세세하게 완성도를 높이게도 한다. 예술가만 그럴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2018년 힘내자.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알아준다. 송힘

2018-01-04 00:05: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왜 지방분권개헌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다. 하지만 사실은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그만큼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이라면 우리나라를 따를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이가 주한 미국 외교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이었다. 그는 1968년 한국사 연구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 '소용돌이의 한국정치'(한국어 초판 2000년)를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나라 정치 체제를 두고 "중앙집권체제가 수도권 집중을 초래하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정치 체제"라고 갈파한 바 있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출 기준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86개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서울 70개)에 있다. 예금의 70%를 가진 곳도 수도권이다. 2015년 기준 연구개발 투자(R&D)의 67%, 문화시설 역시 6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국 20대 대학의 80%가 몰린 곳도 수도권이다. 49.5%의 인구가 49.4%의 지역내총생산(GRDP)을 차지한다. '서울공화국'이란 말에 어찌 토를 달 것인가. 폐해가 적지 않다.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 완화 요구가 쏟아진다. 그래도 완화될 조짐은 없다. 2000년대 이후 수도권의 GRDP 성장률은 비수도권의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웃돌고 있다. 2014년 이후엔 성장률 격차가 1% 이상으로 더 벌어졌다. 고학력의 젊은 인력과 고급산업기술 인력이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2010~2016년 고급산업기술 인력 순증가의 59.1%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수도권 편중은 국가 균형 발전과는 상극이다. 2009년 EU 지역위원회는 지방분권지수와 국민소득 간에 정비례 관계가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방분권이 잘된 국가일수록 국민소득이 높고 덜 된 국가일수록 낮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가 2006년 국민소득 2만달러에 들어선 지 10년이 넘도록 소득 3만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누구보다 지방분권에 적극적이다. 내년 지방선거에 맞춰 지방분권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늘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는 노무현 정부 때의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노 정부는 2005년 지방분권을 한답시고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순수 복지사업 67개를 지방에 이양했다. 재원을 마련한답시고 '분권 교부세'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후 5년간 분권교부세 수입은 연평균 8.7%가 증가한 반면 복지비 지출은 연평균 18%씩 증가했다. 지방분권이란 허울 아래 지방재정난은 가중된 것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이를 두고 '지방분권 사기극'이라고까지 힐난한 바 있다. 이런 사기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방재정권을 비롯한 지방분권이 개헌에 명기돼야 한다. 지방자치의 원조 유럽지방자치제도 헌장은 형식이 아닌 실질적 지방자치제도 보장을 위해 4가지 필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이 4가지 중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지방자치정부의 기본적 권한과 책임 범위를 반드시 헌법 또는 법률로 정해야 한다는 것(제4조 1항)과 지방자치정부가 자율적으로 책임과 권한을 수행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제9조), 자율적 인적 자원의 확보(제6조) 등 자치권 행사에 필수적인 수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에 대한 규정이다. 우리나라 현행 헌법은 제117조와 제118조에서 지방자치를 규정하고 있긴 하나 지방정부를 자치의 주역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중앙정부의 하급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지방자치는 지방마다 다른 특성을 반영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정책을 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른 지방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역할을 찾고 그 역할을 확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방 고유의 독창성이 다양성으로 이어지고 다양성이 국가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뤄야 국가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지방분권개헌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지금 그런 골든타임을 보내고 있다.

2017-12-04 00:05:00

이동관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복수 수능은 어떤가

지진으로 1주일 미뤄 치러진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큰 탈 없이 지나갔다. 천재지변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1주일 연기 조치에 수험생도 학부모도 지진으로 놀란 국민들도 모두 술렁거렸고, 일부에서는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참 잘한 결정이었다. 연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도 안 된다. 올해는 이렇게 넘어간다고 치자. 그럼 내년에는? 후년에는? 비단 지진만이 아니다. 천재지변은 이번 지진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 천재지변뿐인가. 각종 인재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수능시험을 연기시킬 만한 요인은 도사리고 있다. 선례가 생겼으니 두 번 다시 연기란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수능시험은 대한민국 대학 입시의 근간이다. 논술, 학생부종합전형 등 다양한 보완재와 대체재들이 그럴 듯한 포장으로 나오지만 그것들은 모두 수능시험의 '파생상품'일 뿐이다. 본질은 역시 수능이다. 수능이 잘못되면 다른 걸로 만회가 잘 안 된다. 이날 시험을 망치면 1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도 1년, 감기가 들어도 1년, 배탈이 나도 1년이다. 신변에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이다. 그러니 알아서 잘~하라고? 수험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세상사 다 그런 거라고? 10대 후반 청소년에게 그건 너무 심하다. 수능의 충격을 완화시키기거나 분산시키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어설픈 입시정책의 변화나 수술이라면 곤란하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교육업자들만 배불리는 일의 반복이라면 더더욱 안 된다. 창의적이고 융합적이고 21세기적인 인재를 기른다는 턱도 없는 주장을 내세우며 나온 '듣보잡' 입시제도가 번번이 금수저나 소수를 위한 전형으로 변질되었음을 보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일이 커지게 된 원인은 단 하나다. 시험을 단 하루, 한 번만 치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꼬박 8시간을 한자리에 앉아서 200개 안팎의 문제를 푼다. 그걸로 초중고 12년의 학습 성과 전체를 재단하니까 그렇다. 곳곳에서 무리수가 발생하는 거다. 수능의 이전 버전인 예비고사와 학력고사까지 포함하면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다. 사실 고3 2학기가 되면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는 시험 응시 능력 배양 기간이다. 학과목 진도는 여름방학 때쯤이면 대부분 끝이 난다. 또 진도 맞추기는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다. 수능 날짜를 앞당겨도 된다는 말이다. 입시 사정을 위한 수능 데드라인이 11월이라면 그때까지 여러 번 치를 수 있다는 말도 된다.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다. 많으면 더 좋다. 전국 단위 모의고사 치르듯이 치르면 된다. 지금도 6월 모의고사와 9월 모의고사는 수능처럼 실력을 전국 단위에서 점검한다. 그렇게 수능을 여러 번 치르자는 거다. 여러 번 중에 제일 좋은 성적을 자기 성적으로 하면 된다. 평균도 좋다. 매년 11월이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부담과 중압감을 분산시키거나 덜어주자는 거다. 시험 한 번 잘못 친다고 아이들 인생이 종 치는 거라고 가르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제도가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시켰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잘 치면 된다는 걸 가르치는 것도 인생에서 꼭 필요한 가르침이다. 인생이 '한 방'이 아니고 오래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도 수능은 한 번보다는 여러 번 치르는 게 맞다. 교육 당국은 시험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복수 수능에 난색을 표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불가 의견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 당국인가? 포항 지진과 수능 1주일 연기 사태가 수능 복수 실시라는 대입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2017-11-27 0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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