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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기업을 춤추게 하라

잘사는 나라들은 일자리 호황을 즐기고 있다. 영국의 경제 전문 '더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전한 선진국 근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나라들의 일자리 붐은 '유례가 없을'(unprecedented)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4월 미국의 실업률은 3.6%로 반세기 만에 가장 낮다. 일본은 15~64세 사이인 생산가능인구의 77%가 일한다. 6년 사이 고용률이 6%나 올라갔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일하는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독일은 노동시장이 커지면서 세수까지 덩달아 늘어 즐겁다. 올해 영국인들의 총 근로시간은 550억 시간이란 금자탑을 쌓을 전망이다.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도 2005년 수준 이상의 고용률을 회복했다.소위 '3050클럽' 국가들의 일자리 성적표는 이렇듯 화려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도 가입했으니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그 나라들의 성적표다. 하지만 한국만 쏙 빠졌다. 일자리를 두고 재앙 수준이라는 한탄이 쏟아지는 한국이 낄 자리는 없었다. 이래서야 자부심을 갖기 어렵다.잘사는 나라들(the rich world)에선 일자리가 양적으로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질도 좋아졌다. 구직난이 구인난으로 바뀌며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가 근로자들의 운을 빠르게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일자리 호황으로 일터를 골라잡을 수 있게 된 근로자들의 소득이 늘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소득을 나눠 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야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유례없는' 일자리 감소에 '글로벌 경제'니 '외부 요인' 탓을 하던 우리 정부도 이쯤 되면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나서서 책임지겠다는 이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국민 억장 무너뜨리는 소리를 연발한다.2년여 전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처하며 출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쯤은 결과물이 나와야 할 때다. 그런데 오늘날 선진국이 누리고 있다는 일자리 호황이란 말을 듣도 보도 못했다. 거꾸로 기업들은 가히 엑소더스(대탈출) 수준이다. 너나없이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설비투자는 급감하고 해외투자는 사상 최고다. 가동률이 떨어지며 불야성을 이루던 공단 지대는 불빛이 사라졌다. 소상공인들은 고용을 줄여가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다. 정부는 기업을 옥죄고, 기업인들은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잘사는 나라들의 일자리 호황은 기업을 춤추게 한 결과다. 잘사는 나라일수록 고용은 민간 몫이라는 자본주의 원칙에 충실하다.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 조성에 힘을 모은다. 감세를 하고 규제를 완화한다. 해외에 나간 기업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유인한다.기업이 춤을 추면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나게 돼 있다. 잘사는 그 어떤 나라도 정부가 직접 고용에 목매지 않는다. 세금으로 만드는 일자리보다 세금을 내는 일자리에 관심을 둔다. 소득을 늘려 성장할 수 있다면 가난한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통렬하다.3년차 정부가 여전히 2년 전 막춤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배우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는 막춤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춤은 기업이 추게 해야 한다.

2019-06-10 06:30:00

[매일칼럼] 아첨과 독재

"천재적인 예지와 탁월한 영군술, 무비의 담력과 필승의 신념을 지니시고… 조국 통일의 밝은 앞길을 열어 나가시는 위대한 은인, 불세출의 영장.""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 극복을 해결해 줄 구세주.""100년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 그러는데 건국 100년, 3·1절 100년(에) 나타난 분."언뜻 들어보면 이런 발언들의 화자(話者)나 대상을 따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첫 발언은 북한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7주년을 맞이한 지난해 12월 30일 김 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운 선전 문구다.뒤 발언은 지난달 유림 단체 두 인사가 경북 안동을 방문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해 각각 던진 용비어천가다.기독교 단체를 대표하는 한 인사도 지난 3월 황 대표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일찍이 준비하셨던 황교안 대표님을 자유한국당의 대표님으로 세워 주셨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을 이어가는 세 번째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좋겠다"란 표현을 쏟아냈다.정치판에 아첨과 아부의 말이 판을 친다.60여 년을 세습 독재 체제로 이어온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21세기 한국 정치·종교계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은 볼썽사납기 그지없다.국내에서 일본 제국주의 치하와 독재 정권 시절, 아첨하고 알랑거렸던 교언영색의 모양새는 언론과 종교계에서 특히 두드러졌다.우리나라 대표적 한 중앙 일간지는 1936년부터 5년 동안 매해 신년마다 일본 왕의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심지어 1936년 신년호에는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다"는 요지의 사설도 냈다.일제와 독재 정권 아래에서 권력이나 부의 찌꺼기라도 받아 챙기려고 횡행하던 행태를 50년, 100년이 지난 지금 이어가는 당사자들은 낯부끄럽지 않은지 모를 일이다.언론이나 종교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릴 때 독재 정권을 낳을 소지가 크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이 그렇고 나치 독일이 그랬다. 역사적으로 편향된 언론과 종교가 나팔수로 동원돼 독재 정권을 낳기도 하고, 거꾸로 독재 정권이 언론과 종교를 장악해 핵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언론과 종교가 특정 정파에 편향돼 아첨을 일삼을 때 독재의 싹이 트고, 균형을 잡고 바른 말을 할 때 민주주의가 꽃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성싶다. 두 집단은 민주주의에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역으로 국가 지도자나 회사 CEO가 아첨꾼의 달콤한 언사에만 빠져 지내다가는 나라나 회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황제 유선이 환관 황호의 아첨에 현혹돼 지내다 결국 위나라에 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들만 끌어안고 쓴 말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내치면서 작금의 불행한 사태를 자초했다.아내에게 아부하고 남편에게 아첨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 윤활유가 되겠지만, 정치판이나 국가권력 주변에서 난무하는 아부와 아첨은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요즈음이다.

2019-06-02 18:31:34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세금을 덜 풀어 경제가 안 풀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 실적이 좋아 증세나 국채 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이렇게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정부의 직무유기고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많이 들어본 듯한가.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다. 올해가 아니다. 2년 전. 정확히 2017년 6월 12일 국회에서다. 소위 일자리 추경을 요구하며 했던 말이다.일자리 추경에 반대하는 야당을 향해 대통령은 일갈했다. "해법은 딱 하나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는 적정한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 재난 수준의 경제 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지도 모른다."갓 취임한 대통령의 지지도가 80%를 넘어설 때다. 일자리 창출이란 명분은 컸다. 국회는 11조2천억원의 일자리 추경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일자리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자리는 사라졌고 분배는 악화했다.문 대통령은 실용적이지 않다. 올해도 또 추경안을 국회에 넘겼다. 취임 후 내리 3년째다. 이번에는 6조7천억원짜리다. 여기엔 3조6천억원의 적자 국채 발행까지 예고돼 있다. 올해 본예산은 역대 최대인 470조원 규모로 슈퍼예산이라 불렸다. 이 역시 아직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도 "추경은 타이밍과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추경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효과가 반감되고 선제적 경기 대응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며 국회를 닦달하고 있다. 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 이달 들어서만 여섯 번이다. 이쯤 되니 경제 실정을 추경을 제때 통과시키지 않은 야당 탓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인다. 추경을 하지 않아 경제가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면 앞에 벌어진 일이 뒤따른 일의 원인이라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인과 설정의 오류다.호미를 들먹이며 천문학적 세금을 썼지만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3월 기준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5.1%로 최악이다. 세금으로 만든 60대 이상 취업자는 30만 명이 늘었고 30, 40대 일자리는 2개월 연속 20만 명대로 감소했다. 세금을 퍼부어 노인 일자리는 만들었어도 좋은 일자리는 만들지 못했다. 수출은 부진하고 경상흑자는 6년 9개월 만에 최저다. 올 1분기엔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OECD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도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까지 낮췄다. 경제정책에 F학점을 주며 대한민국 부도 위기를 거론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돈을 더 풀자 국가 채무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키웠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GDP 대비 국가 채무 40% 선을 넘기면 신용등급 하락 위험이 커진다. 문 대통령 스스로 야당의원 시절 이를 질타한 바 있다. 이미 이 비율은 40% 문턱에 와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이면 41.8%까지 치솟을 전망이다.세금을 덜 써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 아니라 정책 실패로 나빠진 것이다. 세금으로 일부 경제지표를 눈속임할 수는 있어도 경제 실정을 다 가릴 수 없다. 돈 더 쓰게 해 달라고 야당을 들볶기보다 대통령이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가래로 막을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것이 작금의 우리나라 경제 현실이다.

2019-05-27 06:30:00

김교영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구미 경제는 한국의 미래다

성형외과 의사인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밥벌이가 어떻냐고 안부를 물었다. 후배는 "대구의 개업 의사인 제가 구미와 한국의 경제를 걱정할 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이어진 얘기로 궁금증은 풀렸다. "환자 중에 구미의 LG, 삼성에 다니는 여성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공장 이전, 희망퇴직이다 해서 난리라고 하더군요. 동료 의사들도 구미 불황으로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걱정합니다."대구에서도 구미 불황을 체감하고 있다. 대구와 구미는 '경제 공동체'다. 산업기지 구미의 베드타운이 대구다. 대구~구미 통근자는 어림잡아 5만 명. 이들이 구미에서 돈을 벌어 대구에서 쓴다는 얘기다. 대구에는 구미 소재 대기업의 협력업체도 많다.구미는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1999년 단일 산단 최초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 LG 등 대기업 사업장이 핫바지 방귀 새듯 해외로,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구미산단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옛 명성에 비해 현재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수출액은 2013년 367억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지난해는 259억달러까지 떨어졌다.구미산단 내 공장 가동률은 2014년 말 80%에서 지난 2월 55.5%로 추락했다. 근로자 50인 미만 업체(산단업체의 88%)의 가동률은 불과 33.7%. 구미산단 근로자 수는 9만 명 선이 무너졌다. 최근 4년 새 1만2천 명이 줄었다.구미산단의 불황은 지역 상권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임대매매' 문구가 곳곳에 붙어 있다. 원룸이 많은 구평동 일대는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 인동에서 식당을 하는 지인은 "인동의 밤거리는 젊은 직장인들로 술렁였던 곳이다. 지금은 적막강산이다"며 "장사를 접고 싶어도 가게를 인수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구미시는 몇 년 전부터 정부에 '산업 위기 대응 특별지역' 지정 요청을 했다. 정부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시민들의 속은 타들어갔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생각이 지역에 퍼졌다. 그런 민심이 6·13 지방선거에서 장세용 구미시장을 만든 것이다. 구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보수의 핵심'. 이런 곳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시장 당선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장 시장은 구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청와대정부 인사, 여당 인사들을 만나 도움을 구했다. 여당과 정부도 구미에 관심을 보였다. 작년 8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첫 최고위원 회의를 구미서 열었다. 이 대표는 전략적으로 구미를 지원하겠다고 했다.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구미시민들이 염원했던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는 경기도 용인으로 결정됐다. 정부, 여당 관계자가 '구미형 일자리' 사업을 언급했다. 19일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6월 내에 제2 광주형 일자리의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구미산단이 녹슬어서는 안 된다. 구미는 훌륭한 산업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50년 축적된 우수한 기술과 연구 인력이 있다. 신산업을 발굴하고 노후 산단을 재건해야 한다. 구미 경제의 회생은 한국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말부조'는 지겹다. 구미시민들은 너무 지쳐 있다. 장 시장의 어깨는 그만큼 무겁다.

2019-05-19 14:41:09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대통령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큰 사고는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일정 기간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나타난다. 방치하고 무시하면 큰 재해가 닥친다. 이를 통계적으로 실증한 것이 미국인 허버트 W. 하인리히였다. 그가 쓴 '산업 재해: 과학적 접근 방식'에서다. 이는 오늘날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남았다. 요즘은 경제 현상을 두고 더 널리 인용된다.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성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 1분기 우리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부터 그렇다. 1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문제지만 더 불길한 것은 OECD 국가 중 거의 유일하다는 점이다. 수출은 5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4월 한국 원화 가치는 G20 국가 중 외환 위기설이 도는 터키 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국제 사회가 한국 경제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경기 부진' 진단을 내렸고 글로벌 신용 평가사들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기업들이 우리나라를 등지는 것도 안 좋은 징후다. 지난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액이 55조원에 달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고였다.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만 11조6천억원에 이른다.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틈만 나면 해외 진출 의지를 감추지 않는다. 고용에 기여하고 많은 법인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악인 소리 듣느니 해외로 나가 대접받으며 하겠다는 기업인이 부지기수다.그런 나라에서 일자리 전광판을 만들어 대통령이 아무리 쳐다본다 한들 일자리가 생길까. 청년 체감실업률은 통계 작성 후 최악으로 치솟았다. 한창 일해야 할 청년들이 네 명 중 한 명꼴로 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 일자리가 무더기로 사라지고, 세금으로 만드는 노인 일자리가 고용지표를 왜곡하고 있다.서민 경제가 무너지는 조짐 역시 뚜렷하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한때 불야성을 이루던 공단 주변은 어둠이 깔리면 인적을 찾기 어렵다.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은 보험을 깬다. 보험 해지 환급금이 1년 새 2조원 늘었다. 소득주도성장이란 허울은 의도와 달리 최빈층 지갑만 가벼이 했다. 소득 최하위 20% 계층의 절반 이상이 무직자로 전락했다. 정부가 지난해 지급한 실업급여액은 사상 최대였다. 빈부 격차는 최악으로 확대됐다. 경제지표마다 수년 혹은 수십 년 만에 최악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이 지경이니 국민들이 나라 경제를 걱정한다. 문재인 정부 2년을 맞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여론조사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살림살이가 나빠졌다는 국민이 59%나 됐다. 그만큼 여론이 싸늘하다.그런데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하라"고 말한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저임금 긍정 효과가 90%',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고 했던 바로 그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에게 '하인리히의 법칙'이 던지는 경고는 그저 '경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일 뿐이다.이쯤되니 의문이 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대통령이 사는 세상이 다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대통령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2019-05-13 06:30:00

김병구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기로에 선 한국당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정국에서 여야 4당이 일단 실리와 명분을 챙긴 모양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이번에 눈여겨볼 대목은 자유한국당이 전략 부재와 투쟁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향후 어떻게 싸워야 할지 방향타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한국당은 공격 타깃을 정확히 겨누지 못했을뿐더러 다른 야당이나 여론을 우군으로 만들지도 못한 채 소총 대신 대포를 쏘는 형국을 만들며 패배를 자초했다.패스트트랙 자체를 악법이나 불법인 것처럼 과도하게 포장해 여기에 투쟁력을 집중한 것은 가장 큰 패착으로 보인다.패스트트랙이 지정되면 마치 3개 법안(공직선거법 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이 곧바로 통과되는 양 비분강개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이나 공분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현 정부를 1980년대식 독재정권으로 몰아붙인 것도 '너무 나갔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패스트트랙이 담긴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법이다. 게다가 패스트트랙은 법안 통과와는 상관 없는, 본회의 상정을 위한 절차일 뿐이다. 이를 두고 입법 쿠데타니 날치기니 하면서 결사 항전했으니, 큰 호응을 얻을 리 만무했다.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설사 날치기였다 하더라도 과거 날치기 경험만 많았지 막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한국당이 제대로 대응했을지 의문스러워하기도 한다.정치적 싸움에선 명분과 머릿수가 강력한 무기다.그런데도 이처럼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야 3당 또는 일부라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인 것도 한계였다. 특히 바른미래당 보수 세력과는 연대는커녕 조선 정조 때 당파 싸움과 다름없는 이전투구만 벌여 향후 보수대연합의 가능성마저 쪼그라들게 했다. 권역별 준연동형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란 당근을 내밀며 야 3당을 끌어안은 민주당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그렇다고 개별 법안에 대해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데 공을 들인 것도 아니다.패스트트랙 막는 데만 급급했지 정작 법안 내용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거나 맹점을 끄집어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3개 법안을 뭉뚱그려 반대하는 것도 전략 부재로 볼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공수처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공수처 신설은 주로 정부 여당이 반대하고 역대 야당이 권력형 비리 견제를 위해 강하게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에 휘둘려온 검찰 고위직, 권력에 취하기 쉬운 대통령 친인척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그동안 견제 장치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비리를 수사할 기구가 필요한 이유다.선거 연령 문제도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지 못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한국당은 선거 연령 하향 불가를 고수하며 젊은 층에 인기가 없다는 점을 자인할 때가 아니다. 이를 과감하게 수용하고 젊은 층을 견인하는 정책과 정치력을 발휘해 지지층을 넓혀나가야 할 시점이다.특정 지역과 계층, 연령만 겨냥해서는 지역 정당의 울타리에 갇혀 제1 야당 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2019-05-05 14:38:5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어느 원전 세일즈맨의 오지랖

프랑스는 자원 빈국이다. 소비하는 석유의 1%, 천연가스도 2% 정도를 자체에서 생산할 뿐이다. 2004년 이후 석탄은 더 이상 캐지도 않는다. 그런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도가 50%를 넘나든다. 전력은 남아돈다. 남는 전력을 처음 수출한 나라가 프랑스였다.그 비결은 원자력이다. 프랑스는 미국에 이은 세계 최고의 원전 대국이다. 58기의 원전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원전 의존도가 70%를 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프랑스가 이처럼 원전 강국이 되는 토대를 깐 것이 반핵을 외치던 좌파 정부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반핵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이후 원전을 가속화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설치에도 속도를 냈다. 좌파 집권 후 원전에 대한 정치적 반대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한때 탈원전이 거론됐지만 이 역시 진보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 당선 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국민들은 프랑스 원전이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임을 이해하고 변함없이 신뢰한다.프랑스는 한국의 거울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원 빈국이지만 원전이 있었기에 에너지 강국 반열에 합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를 우리나라처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나라가 없다.오늘날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7개국뿐이다. 우리나라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을 수주하며 대열에 합류한 것은 국가적 큰 성취였다.지금 세계는 원전 각축장이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이 16개국 59기에 이르고 발주를 앞둔 원전도 12개국 86기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주 경쟁 또한 치열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에다 경제성까지 갖춘 우리나라가 뛰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원전 수출은 기술력만 믿었다간 낭패다. 정치력, 외교력이 훨씬 중요하다. 이는 그 나라 리더의 의지에 달렸다. 트럼프가, 푸틴이, 또 시진핑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유다. 이 중 그 누구도 내 나라엔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없다. 39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중국은 18기를 건설 중이고 31기의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99기의 원자로를 가진 미국도 2기를 짓고 있고 8기를 추가한다. 35기를 가진 러시아도 건설 중 7기, 계획 중 22기다.문재인 대통령도 세일즈 외교에 가세했다. "한국은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면서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원전 수주에 진정한 의지가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수주 실적은 한 건도 없다. 정부는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별개라지만 탈원전을 거둬들이지 않는 한 글로벌 원전 시장은 그림의 떡이다.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지그지글러는 이렇게 썼다.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확신이 없다면 자신이 팔고 있는 것의 가치에 의문을 달아 보라." 고객이 사지 말아야 할 물건을 사게 만드는 사람은 유능한 세일즈맨이 아니라 비윤리적인 세일즈맨이다. 스스로 탈원전을 해야 할 정도로 원전에 대한 확신 없이 세일즈를 한다면 비윤리적이고, 확신을 가지고 원전을 팔려 든다면 탈원전의 근거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자칫 원전은 못 팔고 오지랖 넓다는 소리나 듣게 생겼다.

2019-04-29 06:30:00

김교영 편집국편집부국장

[매일칼럼] 공유경제는 '착한 경제'가 아니다

150여 년 전 영국 런던. 마차(馬車)에 탄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증기자동차를 선도했다. 엉뚱한 풍경이지만, 이유가 있다. 첫째, 차의 속도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둘째, 마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마차 사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려다.'붉은 깃발 조례'(Red Flag Act)를 얘기한 것이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증기차 1대를 운행하려면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을 고용해야 했다. 시가지에선 시속 3.2㎞ 이하로 속도를 제한했다. 기수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차를 이끌도록 했다.30년간 유지된 이 제도는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국 자동차산업 발전을 지체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산업(자동차)과 기존 산업(마차)의 이해 충돌을 완화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붉은 깃발 조례는 공유경제가 논의될 때 자주 언급된다.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는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사용자를 모집, 유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숙박, 사무실, 주방 등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에서 '2050년엔 공유경제가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공유경제는 복음일까? 한국개발연구원('공유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016)이 국내 경제학자 200명에게 물어봤다. 93.5%가 '공유경제가 사회 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착한 경제'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공유경제는 사회적 경제,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저성장 시대에 새롭게 적응한 비즈니스다.공유경제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가 확산된 국가에서는 주택 임대료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집주인들이 기존 장기 임대보다 수익률 높은 단기 임대(공유숙박)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차량 공유의 경우 '우버'가 허용된 국가들의 택시 기사 소득이 평균 10% 하락했다. 우버 소속 기사들 역시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국내에서도 공유경제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풀 서비스'. 택시업계는 카풀 도입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택시 기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풀택시업계 대표는 지난 3월 7일 사회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공유숙박'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도시 지역 내국인의 공유숙박 허용(연간 180일 이내)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숙박업소 업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숙박업소 공실률은 지금도 50%에 이른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이 본격화되면 '줄초상이 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공유경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공유경제는 누군가에겐 편익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카풀과 공유숙박을 둘러싼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유경제가 기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토론과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유경제가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자본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사회적 재앙이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의 갈 길이 아니다.

2019-04-22 06:30:00

김교영 편집국 부국장

[매일칼럼] 공유경제는 '착한경제'가 아니다

150여년 전 영국 런던. 마차(馬車)에 탄 사람이 붉은 깃발을 들고 증기자동차를 선도했다. 엉뚱한 풍경이지만, 이유가 있다. 첫째, 차의 속도와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다. 둘째, 마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마차사업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려다.'붉은 깃발 조례'(Red Flag Act)를 얘기한 것이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절(1865년) 제정됐다. 조례에 따르면 증기차 1대를 운행하려면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을 고용해야 했다. 시가지에선 시속 3.2km 이하로 속도를 제한했다. 기수는 붉은 깃발(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55m 앞에서 차를 이끌도록 했다.30년간 유지된 이 제도는 시대착오적 규제의 대명사로 꼽힌다. 영국 자동차산업 발전을 지체시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신산업(자동차)과 기존산업(마차)의 이해충돌을 완화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붉은 깃발 조례는 공유경제가 논의될 때 자주 언급된다.공유경제가 확산되고 있다. 공유경제는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사용자를 모집, 유휴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 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숙박, 사무실, 주방 등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라는 책에서 '2050년엔 공유경제가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공유경제는 복음일까? 한국개발연구원('공유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016)이 국내 경제학자 200명에게 물어봤다. 93.5%가 '공유경제가 사회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착한경제'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공유경제는 사회적경제, 혹은 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저성장 시대에 새롭게 적응한 비즈니스다.공유경제로 말미암은 사회적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가 확산된 국가에서는 주택임대료 상승 현상이 나타났다. 집 주인들이 기존 장기임대보다 수익률 높은 단기임대(공유숙박)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차량공유의 경우 '우버'가 허용된 국가들의 택시기사 소득이 평균 10% 하락했다. 우버 소속 기사들 역시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국내에서도 공유경제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풀서비스'. 택시업계는 카풀 도입에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택시기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풀·택시업계 대표는 지난 3월 7일 사회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공유숙박'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도시지역 내국인의 공유숙박 허용(연간 180일 이내)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숙박업소 업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숙박업소 공실률은 지금도 50%에 이른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이 본격화 되면 '줄초상이 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공유경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공유경제는 누군가에겐 편익을 주지만, 다른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카풀과 공유숙박을 둘러싼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유경제가 기존 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사회적 토론과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유경제가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자본의 배만 불리게 된다면, 사회적 재앙이다. 그것은 건강한 공동체의 갈 길이 아니다.

2019-04-21 14:53:56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헐어 쓰고 빌려 쓰며 당당한 나라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은 1인당 3천260만원의 빚을 안고 세상에 나왔다. 2016년생 아이들은 2천796만원씩이었다. 불과 2년 만에 빚이 17% 늘어난 셈이다. 빚은 빛의 속도로 늘고 있다. 아이의 부모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똑같은 빚을 지고 있다. 4인 가족이라면 그 빚이 1억3천40만원이다. 물론 이는 나랏빚이다. 빚은 나라가 안겼지만 갚는 것은 오롯이 미래 세대 몫이다. 그 빚이 빠르게 늘고 있다면 걱정해야 한다.문재인 정부는 천하태평이다.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이 순간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금고를 연다.정부가 봄 추경 편성 방침을 정한 것은 그래서 비관적이다. 경기 대응과 일자리 지원, 미세먼지, 포항지진 대책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자그마치 6조원이다. 이를 맞추려면 빚을 더 내야 할 것이다. 문 정부는 이미 470조원에 이르는 슈퍼예산을 편성해 나랏돈 씀씀이를 보여줬다. 그중 일자리 예산만 23조원이다. 미세먼지 예산도 1조9천억원이 들어가 있다. 아직 지난해 편성한 예산 집행도 지지부진하다. 여기다가 또 예산 덧칠을 하겠다고 나섰다. IMF와 같은 경제 위기 때가 아니고선 봄 추경은 유례가 없다. 당정청은 이런 추경안을 이달 중 처리하겠다고 한다.그러잖아도 문 정부는 나라 곳간을 허는 데는 귀신이고, 쌓는 데는 등신이다. 국민의료 혜택을 늘리는데 5년간 41조원을 쓰기로 했다. 국민의료 혜택을 늘리는 것을 마다할 수는 없지만 쌓아 둔 돈을 헐어 쓰자니 문제다. 지난해 건보는 2010년 이후 처음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적자 규모가 3조원을 훌쩍 넘기게 생겼다. 20조원이 넘게 쌓였던 적립금은 2026년이면 바닥이 난다. 보험료를 해마다 3.49%씩 올리고도 빚어질 일이다.국민연금은 늦어도 2057년이면 끝장난다. 고갈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던 시도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신 현 정부는 연금 지급 보장을 책임지겠다고 한다. 이를 믿었다간 장래 똥바가지를 덮어쓸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공무원 증원도 문제다. 당장의 급여도 문제거니와 이들이 평생 받아갈 연금 충당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충당 부채만 94조원 늘어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나랏돈을 물 쓰듯 하려면 그만큼 벌어오면 된다. 그런데 돈 버는 일엔 젬병이다. 흑자를 내던 공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2016년 10조9천억원의 흑자를 냈던 자산 2조원 이상 시장형 공기업 16곳은 지난해 1조1천362억원의 적자를 냈다. 2년 만에 12조원 이상을 까먹었다. 원전 산업이 대표적이다. 원전은 그동안 R&D에서 투자 대비 경제 성과가 16배에 달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런 거위의 배부터 갈랐다.지금처럼 하면 미래세대가 아무 문제없이 이를 떠안을 가능성은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이었다. 이대로라면 50년도 안 돼 인구는 반 토막이 난다. 우리나라의 총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2065년이면 OECD 국가 중 꼴찌로 전락한다.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떠안아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이런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 빌리고 헐어 쓰면서도 당당하면 미래는 그야말로 '헬조선'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정부와 함께하고 있다.

2019-04-15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김부겸, 유승민, 그리고 한국당의 과제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꼭 1년 앞으로 다가왔다.21대 총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지역으로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유승민 바른미래당 국회의원의 행보에 더 눈길이 쏠린다. 지역 자유한국당으로 봐서는 상임위원장 이상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진 국회의원을 어느 정도 배출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김부겸·유승민 두 의원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이들이 중도개혁 진영과 보수 진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역의 대표 정치인이란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에겐 이번 선거가 총선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장관 역할을 마치고 돌아온 김 의원과 당내 사정 등으로 진로가 불분명한 유 의원의 행보에 따라 차기 대권 구도까지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움직임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우선 김 의원은 내년 총선을 계기로 민주당의 지역 저변 확대, 여당 내 자기 세력 확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할 판이다.비록 여당이긴 하지만 대구경북 현역 25명 중 홍의락 의원과 함께 2명만으로는 정부나 국회에서 지역 숙원사업을 제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대구에서 교두보를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의 꾸준한 양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역에서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 바로 김 의원 자신의 정치적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기도 하다. 지역구 의원 배출이 여의치 않다면 전문성을 가진 참신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역에서 다수 배출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인다.여당 내 친문(친문재인) 주류 세력 틈바구니에서 자리를 확고히 굳히고 세력을 확장해야 하는 것도 대권 가도에 선 김 의원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이 과제 역시 민주당의 지역 내 세력 확장과 무관치 않다.수도권에서 3선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 의원과 달리 고향에서 내리 4선을 하고 있는 유 의원에겐 또 다른 난제가 놓여 있는 것 같다. 당장 바른미래당의 진로와 유 의원의 당내 입지, 자유한국당과의 관계 설정 등이 미묘하게 얽혀있어서다.보수 정당의 통합 또는 보수 후보 단일화 없이는 절대 대선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한 차례 도전에 나섰던 유 의원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에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이 전국 정당으로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보수 정당이 묶이지 않고는 유 의원의 대권 도전은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한계가 뚜렷하다.한국당 입장에서도 바른미래당 또는 유 의원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보수의 집권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내년 총선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양측 간 물밑 접촉이 예견된다.출마 지역도 유 의원의 또 다른 고민으로 보인다.비록 본인은 누차 "고향 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곤 했지만, 국회의원 선수(選數)가 아니라 대권을 향한 정치적 중량감 키우기를 고려할 수도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역 일부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배신자 프레임'에 언제까지 갇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도권 출마 고민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지역 한국당은 내년 총선에서 중진 의원 배출이 주요 과제 중 하나다. 대구는 전체 소속 의원 8명 중 초선이 5명이고 상임위원장이 가능한 3선 이상은 1명뿐인 상황에서 국회나 중앙부처에 '말발'이 먹힐 리 만무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다.

2019-04-07 16:12:01

논설주간

[매일칼럼] 이런 장관후보들,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미국의 인사청문회 역사는 230년이 넘는다.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들 때부터 대통령에게 연방정부 공직자 임명 권한을 주는 대신 상원엔 인준권(미 헌법 2조2항)을 줬다. 철저한 삼권분립에 바탕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의회에 행정부 고위직에 대한 인준권을 안긴 것이다. 자칫 있을지도 모를 대통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해야 할 필요가 그만큼 절실했던 셈이다.대통령으로선 억울해도 함께 일할 장관 임명을 위해 상원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이 인준 가능한 인물을 발탁하고, 상원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1789년 이래 상원에서 장관 인준을 거부한 경우가 단 12차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미국에 청문회 대상 고위직 공무원이 약 600명 정도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대통령과 의회의 협조는 놀랍다.우리나라는 청문회 제도의 무늬만 따왔다. 미국식 청문회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2000년이었다. 20년이 안 된다. 장관 인사청문회는 이보다도 훨씬 늦다. 2006년에야 시작됐다. 부총리 내정자와 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부동산 투기, 자녀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 국회에 인사청문회를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청문회는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였다.그러나 이름만 가져왔을 뿐 본질은 가져오지 못했다.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자 탱자가 됐다. 미국의 인사청문회 제도는 철저한 검증 시스템이 근간이다. 검증 기간의 제약도 없다. 대통령이 장관 후보자를 지명해 청문회에 올리기에 앞서 검증하고 또 검증한다. 백악관 인사국과 FBI, IRS(국세청), 공직자 윤리위가 각각 매뉴얼화한 시스템에 따라 후보자들을 후벼 판다. 검증은 철저하고 세밀하며 집요하다. 후보자 개인과 가족에 대한 배경과 과거 20년 전의 행적, 교통범칙금 납부까지 캐고 또 캔다. 한국에선 여권의 온갖 비협조 속에 야당이 하는 일을 미국에선 검증기관이 먼저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몰랐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회피할 수 없다. '죄송하다'며 백번이고 머리를 조아릴 일은 더더욱 없다. 죄송한 일이 있으면 지명받을 수 없다. 이 과정에 최소한 6개월이 걸린다. 사전에 법적 도덕적 검증을 마쳤기 때문에 실제로 청문회에 올랐을 때는 정책 검증만 하면 된다. 상원 인준 거부율이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우리나라에선 이에 소홀했다. 대통령은 청문회의 핵심 전제라고 할 수 있는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에 소홀했고, 이를 대신 떠맡은 국회는 정책 청문 대신 약점을 직접 파고들어야 했다. 그렇다보니 정권마다 10명 안팎의 낙마자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 때는 10명, 박근혜 정부에선 9명이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2년 남짓 사이 벌써 8명이 낙마했다. 낙마한 후보자들이나 장관 임명은 고유 권한이라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들이나 결점 없는 후보자는 없었다. 부동산 투기에다 막말, 탈세, 거짓 증언, 자녀 문제 등 제기된 온갖 의혹을 해소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슬쩍 눈감으면 그만이다. 대부분 후보자들이 미국이었다면 FBI나 IRS 조사 단계도 넘어서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미국 같았으면 청문회에도 오르지도 못했을 장관 후보자들을 두고 임명 강행을 고민해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처지가 딱하다.

2019-04-01 06:30:00

김교영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대통령 한말씀에 웃고 울고

대통령 말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 말은 언론과 SNS를 통해 전파되고 파급력이 크다. 실의에 빠진 시민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준다.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면, 그 파장은 종잡을 수 없다.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에 대해 한 말씀 하셨다. 취임 후 처음이다. 지난 22일 대구를 두 번째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부산에서 공항 관련 발언을 한 지 40일 만이다.(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통합신공항을 대구 3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공약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지역 경제인 오찬간담회에서 "대구공항 이전, 취수원 문제 등에 대해 알고 있다.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살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금쪽같은 말씀에 현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기업인은 "10년 묵은 체증이 풀린 것 같다"고 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고무됐다. 통합신공항 건설이 탄력받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전날까지만 해도 대구경북은 답답했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발언' 후폭풍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부산에서 영남권 신공항 문제와 관련, "5개 광역단체 뜻이 하나로 모인다면 결정이 수월해질 것이고, 만약에 생각들이 다르다면 부득이 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이 말은 신공항 논란의 불씨가 됐다.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과 대구·경북은 대통령 발언을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했다. 부울경 단체장들은 '가덕도 신공항'으로 정책 변경이 가능할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다. 영남권 5개 단체장 합의로 2016년 결정된 '김해신공항 확장'을 뒤엎을 기세였다. 대구경북 단체장은 '원론적 수준의 발언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하지만 대구경북은 불안했다. 현 정부 출범 후 대구경북은 예산·인사에서 'TK 패싱'을 겪고 있다. 게다가 부울경 단체장은 모두 여당 소속이다. 부산은 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여기에 여당 지도부까지 부울경 요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구경북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이러다 통합신공항 사업이 꼬이는 것은 아닐까.대구경북은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궁금했다. 청와대에 물었다. 명쾌한 답이 없었다. 총리실에 물었다. '조정할 수 있다'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국토교통부에 물었다. 다행히 '가덕도 신공항 불가'를 고수했다. 하지만 미덥지 못했다.문 대통령의 '부산 발언'은 영남권 내 갈등을 불러왔다. 이를 놓고 내년 총선을 앞둔 '영남권 갈라치기'('대구경북은 포기하고, 부울경이라도 확실히 건지자'는 전략)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의 아이콘이다. 특정 지역, 특정 진영의 지도자가 아니다. 모든 지역, 모든 국민의 지도자다.말은 모순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수단이다. 사마천은 '말이 적절하게 들어맞으면 다툼조차 해결할 수 있다'(談言微中亦可以解紛·담언미중역가이해분)라는 명언을 남겼다. 대통령의 말씀이야, 두말할 나위 없다.갈등만 키우는 논란은 끝나야 한다. 문 대통령께서는 '대구 발언'을 계기로 신공항 문제에 마침표를 찍어 주시길 바란다. 그냥 "원안대로(김해공항 확장+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조성)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하시면 된다.

2019-03-24 14:58:58

정창룡 논설주간

[매일칼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우리나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미국에 이어 가장 높았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이 공동 1위를 기록할 것이고, 내년은 미국을 앞설 것이다." "1월 이후 주요 산업 활동 및 경제 심리 관련 지표들은 개선된 모습이다.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최근 경제지표를 두고 내놓은 해석이다. 단서를 달기는 했다. 성장률은 OECD 국가 중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 명 이상) 소속 7개국을 비교해 봤더니 그렇더란다. 긍정적 모멘텀은 1월 생산, 투자, 소매 판매와 2월 고용, 소비자심리지수 등 월별 지표가 반등한 것을 강조한 결과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 미래도 장밋빛이다. 그야말로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실상도 그럴까. 한국은행의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는 발표 때마다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월 3.0%던 것이 4월 2.9%, 7월 2.8%, 10월 2.7%로 줄었다. 올해 전망치도 2.6%로 내놓았지만 신뢰도는 바닥을 긴다. 지난해 그랬듯 올해도 장담할 수 없다.무디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2.1%로 잡았다. 전 기관을 통틀어 가장 비관적이다. 한국 경제를 어둡게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 부진에다 수출 악화, 고용 위축이 겹쳐 있다고 했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무디스의 판단은 맞아떨어진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이 3개월 계속 감소했다.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하던 반도체 수출액은 24.8%나 줄었다. 고용 지표는 발표 때마다 최악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다닌다. 올 1월 실업자 수는 122만4천 명으로 1월 기준 2000년 이후 19년 만에 가장 많았다. 50대 가구주의 가처분소득은 10년 만에 최대로 감소했다. 30·40 세대 취업자 수는 지난달 전년 대비 30대는 11만5천 명, 40대는 12만8천 명 줄었다. 2월 백화점 매출액과 할인점 매출액은 각각 7.7%, 10.8% 고꾸라졌다.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못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고,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살게 됐다.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 격차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국민들의 유일한 노후 보장 수단인 국민연금은 지난해 원금 5조9천억원을 까먹었다. 2016년 3조원이 넘는 흑자를 냈던 건강보험은 지난해 1천77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요율을 더 올리지 않으면 탄탄하던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탈원전 직격탄을 맞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사 역시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들 호주머니는 가벼워졌고 더 가벼워질 일만 남았다. 이런데 경제가 긍정적이라 한들 믿을 국민은 없다. 경제 현장은 매일이 전쟁터다.국민은 전쟁터에 던져두고 정부가 들춰 보고 싶은 통계 수치만 들먹이며 남 탓을 한다면 그것은 확증 편향이다. 내 생각이나 신념만 옳다고 여기려는 잘못된 확신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권도 벼랑 끝으로 내 몬다.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가 역전됐다. 국민들은 경제를 가장 큰 이유로 지목했다. 이는 정부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대통령은 국가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코드에 맞는 악기만 듣고 지휘하려 들면 불협화음이 생기고, 연주는 엉망이 된다. 지금 정부가 그런 모양새다. 연주가 엉망이 되면 이는 연주자 잘못이 아니고 지휘자의 탓이다. 문 대통령이 꼭 알았으면 한다.

2019-03-18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 칼럼] TK 텃밭의 진정한 주인

대구경북(TK)의 정치 환경이 황량하기 그지없다.TK는 보수정당에는 텃밭, 중도개혁정당엔 황무지, 진보정당엔 불모지와 다름없다.TK는 그동안 보수당만 줄곧 짝사랑해왔다. 중도개혁당은 잘 돌아보지 않았고, 진보정당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최근 TK 신세는 이들 모두로부터 '팽'당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자조하는 이들도 꽤 많다.자유한국당 부산경남권수도권 신주류들은 최근 당권 경쟁 과정에서 TK를 왕따시켰다.TK 정치권이 당권을 잡으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년 총선에서 필패한다는 논리를 당원들에게 주입시켰다. 이 논리가 먹혀들면서 결국 주호영 의원은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여유 있다던 경북의 김광림 의원은 겨우 턱걸이했고, 대구의 윤재옥 의원은 희생양이 됐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없이 간, 쓸개 모두 빼내 주며 수십 년 짝사랑을 되풀이해오다 차인 꼴이다.안타깝지만 전두환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대구경북을 위해 온몸을 던진 덕분에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마중물로 대권가도까지 달린 TK 정치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대구는 박정희 정권 이래 약 60년 세월 동안 또 다른 보수당인 자민련과 한때 바람을 피운 것을 제외하곤 공화당에서 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정통(?) 보수당에 모든 걸 내줬다. 결과는 일부 서울 TK 정치인과 고위 관료만 떡고물을 챙긴 게 고작이었다. 남은 것은 청년실업과 지독한 불경기, 팍팍한 서민생계, 지역내총생산(GRDP) 만년 꼴찌였다. 그러면서도 선거 때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친 보수정당에 표를 쏟아붓고 있다.반면 TK의 질긴 외면에 비춰볼 때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당에 대한 지역의 기대와 요구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황무지에 뿌리내리기 위해 모인 민주당 TK발전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다. 실망으로 바뀔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다수 위원이 수도권 등 타 지역 현역 의원이다 보니 정치적 득이 없고 오히려 일부 현안에는 이해가 부딪힐 수도 있는 TK 발전을 위한 활동에 시늉만 내기 십상이다.TK발전특위 한 위원은 최근 "대다수 위원이 자기 지역구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현안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낮다"고 고백했다.현역 국회의원 25명 중 2명을 뽑아준 뒤 이 정부에 각료를 비롯한 TK의 상당 지분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염치 있는 요구인지 모르겠다.정치적 텃밭에 대한 경작 기한은 무기가 아니라 4년에 불과하다. 텃밭을 잘 가꾸지도 않고 수확도 시원찮으면 경작권을 빼앗고 정당도, 일꾼도 수시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김부겸 의원과 유승민 의원, 권영진 시장이나 주호영 의원 등 기회는 누구한테나 열려 있다.황무지든 불모지든 땅을 잘 가꿔 기름지게 만들어 풍성한 수확을 낼 수 있다면 경작자는 언제든지 교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텃밭의 진정한 주인은 경작자가 아니라 시도민이자, 유권자이기 때문이다.TK 텃밭 주인은 이제 정치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정치 환경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기다.

2019-03-10 14:10:0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洑(보)를 다 허물고 나면 속이 후련할까

물 빠진 강은 을씨년스럽다. 수문을 열어젖히자 달성보의 양수장 취수구는 막혔고 유람선은 멈춰 섰다. 봇물의 낙차를 이용하던 수력발전은 접었다. 대신 모래톱을 드러낸 강엔 말라죽은 민물조개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수량이 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동식물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보 담수로 인해 새로 생긴 습지는 마르고 생태계 초토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역 농민들은 가뭄과 홍수를 걱정하던 시절로 되돌아갈까 걱정이 태산이다. 성난 농심을 달래려고 여기저기 관정을 뚫어 보지만 부질없다. 사시사철 가득 찬 물을 이용해 친수공간 개발에 나섰던 지방자치단체들도 저마다 아우성이다. 물을 빼 보니 가려졌던 보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보와 댐에 가둬둔 물을 풍족히 쓰다 보니 잊기 쉽지만 우리나라는 엄연히 물 스트레스 국가다. 국민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2003년 기준)이 1천453㎥에 불과하다. 세계 153개 국가 중 129위다.'한강의 기적'은 이를 극복하며 이뤘다. 기적은 1960년대 한강의 물길을 막으면서 시작됐다. 북한강 수계에만 춘천댐 의암댐 소양강댐 팔당댐이 차례로 들어섰다. 물이 풍부해지자 수도권은 풍성해졌다. 홍수 피해는 덜고 용수 걱정은 사라졌다. 상류에서 하류를 연결한 댐들은 이제 수도권 주민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생태계는 변화된 환경에 스스로 적응했다. 그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 어느 누구도 댐을 허물어 재자연화하자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북한은 엇길로 갔다. 북은 남에 비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1인당 수자원량이 3천366㎥로 두 배를 훨씬 웃돈다. 그런데도 북은 여전히 척박한 땅으로 남았다. 식량난은 만성이 됐다. 대부분 북한 하천은 지금도 '자연' 상태다. 치수 실패는 국민을 배고프게 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물이 풍족한 국가 대부분이 이 대륙에 집중돼 있다. 콩고는 1인당 수자원량이 31만㎥로 세계 4위, 가봉은 12만㎥로 6위다. 이들 나라의 강도 대부분 자연 그대로다. 치수의 개념도, 능력도 없다. 국민 삶은 척박하다. 선진국은 다르다. 유럽은 수자원 이용도가 75%에 달한다. 미국은 1인당 수자원량이 1만㎥를 넘지만 보와 댐, 운하 등 수리시설이 200만 개를 넘는다.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일찍이 치수에 눈을 뜨고 성공한 것은 큰 축복이다. 22조원이란 예산을 들여 만든 4대강 16개 보 역시 밉건 곱건 역시 그 한 축이 됐다. 손가락질하는 사람보다 물을 이용하고 친수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그런 보를 정부가 허물려 든다. 재자연화라는 명분에서다. 말은 그럴듯한데 북한처럼, 아프리카처럼 가겠다는 뜻이다. 근거로 '녹조라떼'란 조어를 만들었다. 보 설치 후 유속이 느려지며 보에 녹조가 창궐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주장하는 자칭 전문가들도 보 설치와 녹조의 연관성을 밝힌 논문 한 편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싣지 못했다. 반면 금강수계에 보 설치 후 하류 수질이 좋아졌다는 논문은 1월 SCI급 국제 학술지인 '환경공학과학'지에 실렸다.보를 허무는 일은 보와 녹조의 연관관계를 확인하는 충분한 연구결과물이 나온 후 검토할 일이다. 아무런 연구 실적도 없이 다짜고짜 보부터 없애겠다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그리되면 환경정치인들의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국민 속은 뒤집어진다.

2019-03-04 06:30:00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대통령이 대구공항 이전 한 말씀 하시라

영남권 신공항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김해공항이 포화될 경우에 맞춘 대안 마련 차원에서였다. 김해공항 이용객 수가 215만 명(2005년)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국토균형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남권 허브공항이 필요하다."명분은 분명했으나 입지를 두고 영남권이 갈라진 것은 유감이다. 대구경북은 경남 밀양을 밀었다. 대구도 경북도 아닌 경남 밀양을 굳이 선택한 것은 부산경남권에 대한 배려였다. 기존 김해공항보다도 훨씬 먼, 바다 건너 가덕도는 애초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부산은 무조건 가덕도를 고집했다. 여기엔 부산 신공항과 신항만,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트라이포트 구상을 완성하겠다는 '부산만을 위한' 욕심이 묻어 있었다.아쉽게도 가덕도는 대구경북민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신공항을 지었는데 현재의 대구공항과 김해공항 체제보다 더 불편해진다면 대구경북민들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대구경북은 가덕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부산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지역 갈등은 폭발했다. 공약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갈등이 심해지자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유로 경제성 부족을 들었다. 적자투성이 지방 공항을 또 짓느냐는 수도권론자들의 영남권 공항 무용론도 크게 작용했다.그러나 오늘날 대구공항이나 김해공항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흑자 공항이다. 적자투성이 공항이란 폄훼는 당치 않다. 앞으로 길이 3천500m 이상의 반듯한 활주로가 깔린 공항으로 거듭나면 중장거리 노선이 확충되고, 대형 수송기까지 드나들며 더 큰 날개를 달 것이다.백지화에도 영남인들이 관문공항에 대한 요구를 접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입지 다툼은 여전했다. 또다시 모두가 피해자가 될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2015년 5개 시도지사가 극적으로 합의했다. 입지는 정부가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해 결정토록하고 서로 유치 경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결정하면 토를 달지 않겠다는 대승적 합의였다.프랑스 파리공항공단용역팀은 2016년 김해공항 확장에 818점, 밀양 665~683점, 가덕도 581~635점을 매겼다. 김해공항 확장안이 채택됐다. 곧이어 대구공항 통합이전안도 나왔다. 대구공항 통합이전과 김해신공항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구경북인들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으로 받아들였다. 대구공항 수요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마냥 허송세월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구공항은 2018년까지 부지를 확정하고 2023년까지 민간공항과 K-2를 함께 이전하기로 계획했다.정권이 바뀌었다. 대구공항 이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직 부지 확정도 못 했다. 그러던 차에 김해공항 확장에 부정적인 대통령의 한마디가 터졌다. 가덕도 공항에 다시 힘을 싣는 것으로 해석됐다. 대구경북민들에겐 지난 10년간의 악몽을 되살리는 일이다. 가덕도 공항과의 딜을 위해 대구공항 이전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인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대통령의 한마디가 나와야 한다. "대구공항부터 계획대로 반듯하게 지어라."

2019-02-18 06:30:00

김병구 편집국부국장

[매일칼럼] 유스티치아와 사법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 유스티치아(Justitia). 정의의 여신이다. 정의를 뜻하는 Justice도 여기서 나왔다.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안대로 눈을 가리거나 눈을 감고 양손에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관의 배제와 함께 엄정함과 형평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안대와 칼, 저울이 각각 이를 표상한다. 바로 법원의 대표적 상징이기도 하다.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은 채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지켜본 국민들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한쪽에서는 '보복'이니 '정권에 대한 도전'이니 하면서 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정면 겨냥하고, 다른 쪽에서는 삼권분립이 확립된 우리나라에서 사법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안 전 지사는 1심 무죄 선고 이후 약 6개월 만인 지난 1일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고 구속됐다. 형량의 차이가 아니라 무죄가 유죄로 바뀐 것이다. 그사이 새로운 증거나 증인이 추가됐거나, 기존 증거가 효력을 잃었다는 등의 변화를 판결 내용에서 찾아볼 수 없다.유무죄의 판결에는 '피해자 진술'을 대하는 두 재판부의 상반된 시각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판사의 판결이 주관을 배제한 채 법전과 저울로 이뤄지지 않고 '시각'에 의존해 들쭉날쭉하다면 그 결과를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안 전 지사 구속 이틀 전 이뤄진 김 지사에 대한 판결도 형평성 차원에서 합리적 의심을 사고 있다.같은 경남도지사를 지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우 1심에서 실형을 선고했지만 구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 지사는 실형 선고와 함께 곧바로 법정 구속했다. 홍 전 대표의 불구속 사유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 근거가 됐다.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홍 전 대표와 달리 김 지사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현저하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사법부가 기존에 정한 김 지사의 1심 선고 날짜를 취소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적부심 이후로 다시 정한 점도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등 법조계나 일반 국민이 아니라 청와대와 여권이 이번 판결을 두고 사법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할 소지가 크다.어떤 판사도 전지전능하거나 지고지순할 수 없기에 1심에 이어 2심, 3심을 거치는 것은 당연한 장치다.그럼에도 이번 두 전현 도지사에 대한 판결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은 그동안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면서 국민적 불신이 누적된 결과물로, 이번 기회에 뼈를 깎는 성찰이 뒤따라야겠다.정치권도 사법부 판결을 삼권분립의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국민적 비판에서 비껴갈 수 없다.사법부가 향후 안 전 지사의 3심과 김 지사의 2심 판결을 앞두고 정치적 판단과 권력의 향배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법전과 저울에만 기초해 판결을 하는지 국민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것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하다.

2019-02-10 20:10:27

김교영 편집부국장

[매일칼럼] 지방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 언론'

"수십조 예산 써야 하는데…'예타 면제'", "경제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국에 선심성 사업 남발 우려", "지자체들 '수요 뻥튀기'…예타 통과한 사업도 실패 수두룩", "예비타당성 원칙까지 흔드는 현 정권의 '예산 짬짜미'".서울의 언론은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주 서울 소재 언론사들이 대규모 공공사업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을 두고 쏟아낸 제목들이다. '논란'이란 중립적 표현을 했지만, 내심 딴지를 걸고 있다. 29일 예타 면제 사업 선정 발표(시·도별로 1건씩 면제 대상을 선정할 것으로 관측)를 코앞에 두고 말이다.이들 언론은 전국 광역지자체의 신청 사업이 33건으로, 60조~7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세금이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타 면제 사업은 혈세 낭비, 엄청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논조다. 여기에 예타 면제의 대표적 실패작(4대강 사업·영암 포뮬러1 경주장), 수요 뻥튀기로 예타를 통과한 사업(지방 13개 고속도로)까지 덧붙였다.물론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마땅히 이런 지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언론은 예타 면제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했다. 지방의 목소리를 담지 않았다. 지자체의 절박한 심정을 다룬 기사는 없었다. 오히려 서울 언론은 예타 면제를 '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에 편승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세금을 쌈짓돈처럼 끌어 쓰는' 행위로 폄훼했다.예타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정부 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신규 공공사업의 사업성을 미리 조사하는 제도다. 선심성 사업으로 인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하지만 지방의 SOC 사업은 인구 부족 등으로 예타를 통과하기 힘들다.현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예타 면제 사업을 검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대전지역 경제인 간담회에서 "수도권은 인구가 많고 수요도 많아 예비타당성 조사가 수월하게 통과된다"며 "우리 정부 들어 경제성보다는 균형발전에 배점을 많이 하도록 기준을 바꿨음에도 (지역은) 수요가 부족하다 보니 번번이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즉,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의 SOC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언이다.지방은 가뭄 끝에 단비처럼 예타 면제 사업을 환영했다. 또 지자체들은 사업이 선정되기 위해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도 모두 4건의 사업(▷대구산업선 철도 건설 ▷도시철도 3호선 혁신도시 연장 ▷동해안 고속도로 건설, 동해중부선 복선전철화)을 신청했다.지방의 대형 사업에 찬물을 끼얹은 서울 언론의 논조는 새삼스럽지 않다. 서울 언론은 2016년 영남권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도 '지방공항 무용론'과 '국론 분열'을 내세워 반대 여론을 조성했다.언론은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생각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를 '언론의 의제설정(議題設定) 기능'이라고 부른다. 서울 언론은 대한민국의 여론을 쥐락펴락한다. 심지어 지방민들에게 서울의 배수관 터지는 일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의 빅3 신문사의 절반 가까운 독자가 비(非)수도권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2019-01-27 16:12:38

정창룡 논설실장

[매일칼럼] 탈원전보다 탈화전(火電)이 먼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세먼지 농도부터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됐다. 20일 아침 필자가 사는 동네의 미세먼지(PM10) 농도는 66㎍/㎥(이하 단위 생략), 초미세 먼지(PM2.5)는 48이었다. 미세먼지는 '보통', 초미세먼지는 '나쁨'이다. 대지는 안개에 갇힌 듯했다. 이날 미세먼지가 '보통'이라지만 우리나라 기준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연간 미세먼지 권고치로 20을 제시하고 있다. 이날 아침도 WHO 권고치를 세 배 이상 넘긴 셈이다. 초미세먼지는 더하다. WHO의 권고치 10을 무려 5배 가까이 웃돌았다.미세먼지야말로 침묵의 살인자다. WHO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지난주 초처럼 '매우 나쁨' 농도의 미세먼지에 1시간 노출되는 것은 담배 연기를 84분 흡입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미세먼지에선 담배 연기 같은 나쁜 냄새만 나지 않을 뿐이다. 뇌졸중의 이유가 되고 폐암과 심근경색을 유발한다.우리나라에서 대기 중 초미세먼지로 인해 조기 사망하는 사람은 한 해 1만2천 명에 육박한다. 서울대 연구팀이 2015년 초미세먼지 연평균인 24.4㎍/㎥에 노출되는 것을 근거로 내놓은 결과다. 2017년 우리나라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5.1㎍/㎥로 더 높아졌다. OECD 회원국 중 최고다. 회원국 평균 12.5㎍/㎥의 두 배가 넘는다. OECD는 40년 뒤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은 회원국으로 한국을 지목했다.먼지라 이름 붙었지만 사실 '미세먼지'는 먼지가 아니다. 독성 화학물질에 더 가깝다. 공장, 발전소 등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매연,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주요 발생원이어서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발생량의 3분의 2를 이런 화학반응의 결과물로 본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대선 당시 "임기 내에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주 초에는 "미세먼지 '나쁨'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고도 했다.문제는 말뿐이지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화석연료 사용이 크게 늘었다. 2016년부터 매년 1~11월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원자력 발전량은 3년 전보다 18.9% 떨어졌다. 반면 석탄은 14%, LNG발전은 26.8%가 늘었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축소됐고, 석탄과 LNG는 확장됐다. 석탄 LNG 등 화력발전은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내뿜기 마련이다. LNG 역시 석탄발전보다 적은 양이기는 하나 초미세먼지를 배출한다. 미세먼지 배출이 없는 원전이 미세먼지를 쏟아내는 화력발전으로 대체되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조차 최악의 미세먼지 대란을 겪은 후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배출허용기준을 더 강화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해 보라"고 했을까.안전성이 뒷받침된다면 '원전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최적의 솔류션'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 원전은 지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우리 원전의 안전성을 인정한 바 있다. 세계적인 환경학자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원전 비중을 높이고 화전 의존도를 낮추라는 권고를 내고 있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원전이 아닌 화전이다.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을 그대로 두고 기약 없는 가상의 위협부터 제거하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2019-01-21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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