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세풍] 윤미향에게 ‘운동’은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였나

[세풍] 윤미향에게 ‘운동’은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였나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에 불타는 열정이 보태졌고,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의협심과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끌어안는 감정이입이 상승(相乘)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운동'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성금과 기부금이 들어오고 액수도 갈수록 커졌다. 어느 순간 '딴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찜찜했으나 딴마음이 하는 일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도 없고, 들여다보려 해도 '운동'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주눅이 들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고착되면서 찜찜함은 점차 엷어져 갔을 것이다.그러자 '운동'에서 생각지도 못한, 꽤 쏠쏠한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비즈니스는 철저한 비밀 유지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또 '운동'의 성스러움 때문에 운동을 마쳐야 할 전기(轉機)가 도래해도 이를 거부하고 계속하겠다고 해도 외부인이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리스크 0'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 보였을 것이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유용 의혹과 그 중심에 있는 윤미향 씨의 행적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스토리'를 구상하게 할 것 같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속속 드러나는 팩트는 이런 '스토리텔링'을 억누르지 못하게 한다.회계 부정 의혹에 대한 저들의 '해명'을 보면 그렇다. "기부금 내역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말뿐이다. 이 말을 믿게 하는 것은 참 쉽다. 그 '투명한 관리'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그러나 거부했다. 세상 어느 NGO(비정부기구)도 그렇게 하지 않으며, 기부자가 공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냥 믿으라는 소리다. 오래전 개그맨 김상호의 배꼽 잡는 멘트가 생각난다. "나는 나를 믿는데 너는 나를 왜 못 믿어?"그리고 이런 억지 해명에 대한 비판은 '친일 세력의 공격'으로 몬다. 광복된 게 언제인데 지금 무슨 친일 세력이 있다는 것인지 아연(啞然)하지만 그렇다 치자. '그X의 친일 세력'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라도 공개해야 하지 않나?정대협이 불완전하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할 수 있었다. 바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다. 정대협은 피해자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따르면 '피해자의 의견'은 '빨리 일본과 합의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생존 피해자 47명 중 35명이 일본 자금을 받은 사실로 보아 천 전 수석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하다. 최근에는 윤 씨가 일본 자금을 받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결국 정대협과 윤 씨의 '피해자 중심주의'와 피해자들의 '피해자 중심주의'가 달랐던 것이다.윤 씨는 왜 그랬을까? 천 전 수석의 '증언'이 그 해답의 실마리가 될 듯하다. 그는 일본 국가 예산으로 보상금을 지불한다는 일본 측 안을 설명하자 윤 씨가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한 천 전 수석의 '해석'은 이렇다. "제가 구상하던 해법이 할머니들에겐 나쁠 게 없지만, 정대협으로서는 이제 문을 닫을 준비를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정대협엔 사형선고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사실이라면 윤 씨가 곤혹스러워했을 만도 하다. 피해자의 '피해자 중심주의'대로 되면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좌'라는 명망(名望)을 안기고, 어떻게 썼는지 아무도 들여다볼 생각을 못 하는 기부금이 몰려드는 수익성 높은 '운동 사업'을 접어야 할 테니 말이다.

2020-05-25 18:40:26

[세풍] 코로나19와 문명 대전환

[세풍] 코로나19와 문명 대전환

지난해 10월 18일 미국 뉴욕에서 '이벤트 201'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큰 주목을 못 끌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깜짝 놀랄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안전센터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세계경제포럼과 감염병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행사에서는 가상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돼지→사람으로 전파되는 것을 가정한 도상 훈련이었다.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브라질 돼지농장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로 확산된다. 이 바이러스는 2002년 중국에서 발원해 29개국으로 퍼진 사스(SARS)를 모델로 삼았지만 전염력이 훨씬 높다. 감염자는 매주 두 배씩 증가하는데 어떤 정부도 바이러스를 통제하지 못한다. 첫해에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6천500만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인류의 80~90%가 노출되는 18개월이 돼서야 사태는 종식된다.지금 세계를 충격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발생 몇 개월 전에 족집게처럼 예시한 행사가 있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발원지가 중국이고, 박쥐와 인간 간 매개동물이 천산갑이라는 점을 빼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벤트 201 도상 훈련이 가정한 처음 몇 달 상황과 판박이처럼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이날 행사에 돈을 댄 사람은 뜻밖에도 빌 게이츠다. 빌 게이츠는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이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라며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2000년에 설립했다. 그는 지난해 촬영돼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코로나바이러스를 해설한다'에도 출연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게이츠는 팬데믹에 대해 거듭 경고한다. "세상은 아직 준비를 못 했다." 그의 경고는 몇 달 뒤 현실이 됐다.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에도 인류에겐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중국 정부가 은폐·축소에 급급하지 않고 3주만 빨리 공개 대응에 나섰다면 중국 내 확산 지역을 95% 이상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에서 터진 상황을 본 세계의 감염병 전문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각국 정부는 귀를 닫았다.코로나19는 충격과 공포 속에 이기심, 편견, 혐오, 각국도생(各國圖生) 등 인류의 민낯도 끌어냈다. 세계 양강 국가라는 G2의 현주소를 보자. 어영부영하다가 미국은 확진자·사망자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중국은 축소·은폐 의혹에다 바이러스 유출 의혹까지 받는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두 나라는 아웅다웅하며 네 탓 타령을 하고 있다. 우리가 동경해 마지않던 선진국들도 부실한 공공의료와 팬데믹에 전혀 힘을 못 쓰는 영리 의료 시스템, 정부 부문의 무능을 속속 드러냈다.코로나19의 공식 명칭은 'SARS-COV-2'다. 풀어보자면 '사스2'라는 뜻이다. 2002년 발생한 사스는 팬데믹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이름이 운명을 정한다면 코로나19는 '사스의 길'을 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코로나19는 100년 전 5천만 명(추정치)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과 닮은 길을 가려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스페인독감 시즌2'가 돼서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역설적으로 대유행병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적이 여러 번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봉건제도를 무너뜨렸고 천연두는 17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코로나19도 21세기 문명 대전환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 길은 미지의 길이며 개척 동력원은 인류의 연대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잘 이겨내고 지구촌 삶의 대전환을 이끄는 과제가 인류에게 주어져 있다.

2020-05-19 06:30:00

[세풍] 코로나에 묻을 수 없는 이름이여

[세풍] 코로나에 묻을 수 없는 이름이여

'권재갑 김문진 김윤섭 박용규 우기돈 윤학조 이보식 그리고 정휘창….'대구에 중국발 우한 폐렴으로 시작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2월 18일 이후, 괴질(怪疾)의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대구는 모든 일상이 사라졌다. 코로나를 뺀 다른 일이나 사람들 이야기는 묻혔고 잊혔다. 확진자 역시 마치 수인(囚人)처럼 어느덧 이름 대신 숫자가 주어졌다. 그렇게 대구는 2020년의 봄날을 보내야만 했다.온통 코로나19가 세상을 뒤덮었으니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럴 만했겠지만 결코 코로나19에 묻혀 잊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상이었으면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려 했던 이름들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비록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시간을 거슬러 그들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게 도리라 여겨 불러본다.앞의 일곱 이름은 대구 출신으로 101주년 3·1절을 맞은 날, 독립운동 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들이다. 이들은 1919년 대구 만세운동 참여로, 혹은 다른 독립운동으로 뒤늦은 서훈을 받게 됐다. 코로나19의 회오리 속에 이들 이야기는 제때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세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으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랴.이어 이틀 뒤 3월 3일, 조용히 다른 세계로 떠난 분이 있었으니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주인공 정휘창 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부회장이다. 그를 오늘 떠올린 까닭은 대구와 한국 아동문학에 끼친 공로도 크지만, 직접 발품 팔아 대구경북 독립운동사를 다룬 지역의 첫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사'를 지난 1991년 펴낸 업적 때문이다.전문 역사가도 아닌 그가 대구경북의 피맺힌 항일 독립운동 현장 곳곳을 직접 누비고 다니면서 내놓은 책은 뒷날 대구경북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데 길라잡이가 됐다. 이후 그의 책을 바탕으로 대구경북의 빛나는 항일 투쟁사를 다룬 책이 경북 안동과 대구에서 잇따라 나왔고 독립운동도 조명되었으니 어수선한 날을 보낸 이제라도 그를 기억함은 마땅하리라.또 다른 14명 이름도 있다. 생존 독립지사 2명(권중혁 장병화)과 독립운동가 후손 12명(허경성 나중화 이종찬 문희갑 박유철 우대현 정대영 이재윤 김진 김능진 박중훈 윤주경)이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 100일 동안 대구를 초토화한 코로나19 회오리바람 속을 뚫고 대구에 독립운동기념관(역사관)을 세울 뜻을 세우고 발기인을 모으며 동분서주한 바로 그분들이다.전국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항일과 독립운동의 역사, 흔적, 자산이 풍부한 대구에 독립운동을 위한 변변한 시설 하나 마련하자며 처음 모인 게 지난 2월 13일. 대구 첫 모임 뒤 곧바로 덮친 코로나로 일상이 휩쓸리는 바람에 모든 게 중단됐다. 그러다 보니 뜻 맞는 발기인 모으는 작업도, 당초 3월 26일 예정의 발기인 행사 준비도 밀렸다.하지만 코로나 괴질도 14명의 열정만은 막지 못했다. 300명 발기인 명단도 그래서 그럭저럭 채워졌다. 300명 동참자 대부분은 참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도 알았다. 먼저, 앞장선 14명 주인공 나이가 70~90대여서 그랬다. 또 대구 밖 인물도 여럿이고, 모두 독립운동가 집안이고, 한 후손은 3만3천㎡(1만 평) 넘는 땅까지 내놓은 기증에 또 놀랐다.2월 이후 대구 일상은 코로나에 눌려 묻히고 잊혔다. 그러나 대구 독립운동과 관련한 일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그냥 묻고 넘길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실종된 봄을 보내며 뒤늦었지만 그들 이름을 이리라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에 쓸려 간 대구의 봄 속에서 잊힌 그들 이름을 건져 지상에 올리니 미안함을 조금 덜 수 있어 다행이다.

2020-05-11 19:44:39

[세풍] ‘거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

[세풍] ‘거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

오늘은 어린이날!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못한 '거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기성(旣成)세대는 미래(未來)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서산대사는 '답설'(踏雪)이란 한시로 이를 명료하게 설파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지금 이 나라의 기성세대는 미래 세대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란 화두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거지 같은 나라일 확률이 매우 높다. 첫째, 나라 곳간은 텅텅 비고, 빚만 잔뜩 진 나라일 것이다. 중앙·지방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국가채무가 이달 초 819조원에 달해 국민 1인당 1천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국가채무가 192조원이나 늘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결손에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 발행이 대폭 늘어난 탓이다.경제 규모가 커지고 나라 살림이 늘어날수록 국가채무는 증가하지만 문제는 '과속' 우려가 나올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문 정권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2%를 넘자 이제는 60%까지 가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 지출에 통일 비용까지 고려하면 국가채무 비율이 이미 100%를 넘는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경고다.더욱이 정권이 나랏돈 퍼주기에 계속 올인할 것으로 보여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 80%, 100%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 가정에 비유하면 가장(家長)인 아버지가 돈은 벌어오지 않고 "항구에 배만 들어오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빚을 끌어와 마구 쓰고만 있다. 가장을 말려야 할 어머니마저 같이 빚을 내 쓰는 데 정신이 없다. 얼마 안 가 가정 살림은 거덜나고 자식들은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거지가 되기 십상이다.둘째, 어느 상인이 말한 '거지 같은 경제'가 지속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성장률이 추락한 한국 경제는 급기야 제로(0) 성장도 아닌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했다. 경제 추락에 따른 국민 고통은 계속 커질 것이다.셋째, 국가 안위조차 남에게 구걸하는 나라도 거지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핵무기 버튼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깜이 행보에 가슴을 졸이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는 국방 예산을 뭉텅 자르고, 이에 군(軍)은 "문제 없다"고 하는 나라를 정상 국가라 할 수 있나.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민 사이에 거지 근성(根性)이 똬리를 트는 것이다. 나라에서 공짜로 주는 돈에 맛을 들인 국민, 포퓰리즘에 눈을 감고 노예가 된 국민, 밥그릇 싸움과 편 가르기에 빠진 국민, 스스로 일어서지 않고 남에게 기대는 국민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국민이 천민(賤民)으로 전락한 나라에 찬란한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동서고금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미래 세대들이 2020년을 산 기성세대에게 무슨 말을 할까. 거지 같은 나라를 만들어 물려줬다고 온갖 욕(辱)을 쏟아내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우리가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간 구한말의 기성세대를 욕했던 것처럼.

2020-05-04 18:46:00

[세풍] 봄날은 간다

[세풍]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가수 백설희의 데뷔곡 '봄날은 간다'는 대구에서 탄생했다.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어느 봄날의 애상이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너무나 화사하던, 그래서 더욱 슬펐던 봄날의 역설이다.여가수의 낭랑하면서도 체념적인 목소리는 그렇게 전쟁의 상처를 껴안은 사람들의 한스러운 내면을 위로했다. 코로나 전염병 대란 속에 환란과 모멸을 감수하며, 설마했던 상반된 투표 결과에 고개 숙인 대구경북 사람들의 2020년 봄날 또한 그러할까. '봄날은 간다'에는 한국인이 공감하는 한(恨)의 정조가 스며 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마흔 중반은 넘겨야 제맛과 멋을 낼 수 있다고 한다.농익은 가사와 구성진 가락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려면 그만한 세월의 숙성이 필요할 것이다. 한때는 독립운동의 성지였고, 6·25전쟁의 최후 보루였으며, 민주화와 산업화의 현장으로 역대 권력의 본산이었던 대구경북이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그러했듯이 올봄 코로나 사태와 총선 후유증으로 피폐한 대구경북민의 가슴에 이만큼 짙은 서정과 깊은 공감으로 와닿는 노래도 없으리라.화려한 봄날에 배어든 회한의 정서, 그것은 정녕 가버린 세월을 한탄하는 정한만은 아닐 것이다. 끝자락에 선 봄날의 처연함이란 종말의 변주를 거쳐 또 새로운 희망을 머금는다. 봄날에 대한 애사(哀詞)와 절창(絶唱)은 시공을 초월한다. 당나라 시인 왕유는 송춘사(送春詞)에서 '기쁘게 서로 술잔 마주하고 있으니, 꽃잎 흩날린다고 아쉬울 게 무엇인가'(相歡有尊酒 不用惜花飛)라고 했다.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도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섬돌 앞의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 소리인고'(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라며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속절없이 가는 봄에 대한 애틋한 심사가 현대의 시인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김소월은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 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기형도 시인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라고 했다. 어느 시인은 '손님 없는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봄날이 간다'고 서러워했고, 어느 시인은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고 했다. 시인의 송춘(送春)은 계절과의 작별 그 이상일 것이다.'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지만, 흐르는 물은 무심히 꽃을 흘려보낼 뿐'(落花有意隨流水 流水無意送落花)이란 시구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경지를 읽는다. 어차피 가려고 오는 봄이다. 화려한 봄날일수록 더욱 허망하게 스러지기 마련이다. 부질없는 미련이 무슨 소용인가. 판소리 단가 사철가에는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보내는 아픔을 감내하고서야 더 성숙한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형기 시인은 '낙화'(落花)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했다.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는 슬픔의 봄날이 영욕의 민족사와 함께해온 대구경북민의 서정과 더불어 또 한 번 저물어 간다. 꽃다운 낙화일수록 더 농염한 술단지가 필요할 것이다. 격정과 굴욕을 감내한 나의 한 시절도 이렇게 결별을 고하려 한다.

2020-04-27 18:29:59

[세풍] ‘현민’(賢民)인가 ‘우중’(愚衆)인가

[세풍] ‘현민’(賢民)인가 ‘우중’(愚衆)인가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보수 언론과 지식 분자들이 미래통합당을 두들겨 패는데 정신이 없다. 수구(守舊)이고, 냉전사고의 포로이며,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불감증에 갇혔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 총선 직전까지 문재인 정권을 두들겨 패 놓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영혼을 팔아넘긴다.이렇게 싸구려로 전락한 영혼은 여당에 갖은 찬사를 늘어놓는다. 국내 유수의 한 일간지는 그 대표격이 될 만하다. 민주당이 '이타적 공감 능력을 갖췄다'라느니 '남북 화해와 사회적 약자 보호 정책은 유권자 다수가 동기를 이해했다'라느니 보는 이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이 정권의 '묻지마 퍼주기'를 '이타적 공감 능력'으로, '북한에 저당잡힌 안보'를 '남북 화해'로, '후대에 빚을 떠넘기는 당대의 도덕적 파탄'을 '사회적 약자 보호'로 둔갑시키는 언어의 타락 아닌가.총선에서 국민이 집권 세력의 국정운영 결과를 평가하는 '회고적 투표' 대신 미래를 바라보는 '전망적 투표'를 했다는 해석도 마찬가지다. 일견 그렇게 보인다. 경제 파탄을 초래한 '소주성', 에너지 수급 교란을 몰고 올 탈원전, 대북 유화정책과 그 결과물인 북한의 사실상 핵보유국화, '평등·공정·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그 반대로 갔던 위선 등이 '결과적'으로 심판받지 못했으니 말이다.과연 그런가. 개탄스럽게도 문재인 정권과 그 추종자는 그렇다 쳐도 반문(反文)과 보수를 견지해온 지식 분자들까지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다. 대중이 어떤 결정을 하든 '위대한 국민의 현명한 뜻'으로 떠받드는 속물 민중주의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로 멍이 든다.잘 보자.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163석, 통합당은 84석을 얻었다. 더블 스코어 차이다. 그러나 득표율을 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민주당은 49.9%, 통합당은 41.5%로 격차는 8.4%포인트이다. 작지 않지만 그렇다고 큰 격차도 아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 정권의 실정에 대한 심판과 속물 민중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야당 심판'이 길항(拮抗)하고 있었다는 얘기다.그런 점에서 '전망적 투표' 어쩌고저쩌고 하는 해석은 통합당의 41.4%를 허수(虛數)로 뭉개버린 편의적·소망적 해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루쉰(盧迅)의 '아(阿)Q'식 '정신 승리'라고 비웃고 싶은가? 분명히 해 두건대 기자는 '회고적 투표'가 이겼다고 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전망적 투표'로 몰아가는 게 아전인수이며 '야당 심판' 못지않게 '정권 심판'을 갈망한 국민도 많았다는 것이다.그러나 진 것은 진 것이다. 그게 보통선거 민주주의이다. 이는 언제든 중우(衆愚)정치로 전락할 수 있다. 보통선거의 주체인 '민'(民)은 '현명한 국민'이 되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군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망친 정치 세력들이 선거로 집권하거나 선거 이외의 방법으로 집권한 뒤 선거로 그 정당성을 추인받은 현대 민주주의 역사가 말해주는 바다. 이 나라의 민은 어느 쪽일까. 앞으로 문 정권이 어떤 길을 가느냐가 결정해줄 것이다. 지난 3년과는 반대로 가면 '결과적'으로 현명한 국민,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군중이 될 것이다. 참 처량하게 됐다. 어느 쪽이 될지 가늠케 하는 '신호'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여당의 비례대표 정당 대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당신의 거취를 묻는다"고 하고,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된 범여 비례대표 정당 당선자는 검찰과 언론을 향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한다.

2020-04-21 06:30:00

[세풍] TK늑대론

[세풍] TK늑대론

90여 년 전 미국인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안의 늑대를 몰살했다. 가축을 해치는 골칫덩이라는 생각에서였지만 큰 실수였다. 천적인 늑대가 사라지자 초식동물 개체수가 너무 많이 불어나면서 초목들이 남아나질 않았다. 생태계 축이 무너지자 들쥐, 곤충, 독수리, 올빼미, 곰들도 자취를 감췄다. 늑대가 사라진 지 불과 6년 만에 옐로스톤은 황량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1995년 미국인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회생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캐나다에서 늑대 30마리를 구해 옐로스톤에 방사한 것이다. 늑대가 돌아오자 놀랍게도 옐로스톤은 빠른 속도로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숲이 다시 울창해지고 새, 비버, 오리, 독수리, 올빼미, 곰도 돌아왔다. 옐로스톤은 푸른 숲, 맑은 호수, 다양한 동식물이 어우러진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자고로 세상에 나쁜 벌레, 나쁜 동물은 없다.동종(同種) 교배로 비슷한 유전자만 남은 단일식생 생태계는 건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요즘 대구경북 정치판을 보면 늑대가 사라진 옐로스톤이 떠오른다. 견제하고 경쟁하는 다양한 정치세력 구도의 부재 탓이다. 대구경북은 소위 '보수의 본산'이다. 대구경북민은 역대 선거에서 보수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표를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와 지분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지지 결과로 돌아온 것은 지역 홀대다.당만 보는 묻지마식 투표가 횡행하니 후보들은 지역 유권자들보다 중앙당 권세가들만 쳐다본다. 지역을 아무리 챙기고 열심히 뛰어봤자 중앙당 핵심 실세의 눈밖에 나면 다음을 기약할 길 없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국회의원이 불과 한두 달 전에 공천 성은(聖恩)을 입고 날아든 서울TK에게 더블 또는 트리플 스코어로 밀리는데 누가 유권자들을 무서워할까. 막장 공천, 공천 농단이라며 목청 높여봤자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이대로라면 4년 뒤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정치인들에게 도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집토끼와 잡힌 물고기에겐 모이를 주지 않는 법, 너무 넘치는 사랑을 주면 도리어 우습게 보고 가벼이 여기는 게 이 바닥이다. 그래서 정치적 선택에도 적당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주주총회(선거)에서 매번 압도적인 표를 줘놓고도 지분 예우를 받기는커녕 푸대접을 받는 데에는 공천권을 보수 정당 지도부에 사실상 헌납한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총선에서 지역 일꾼론은 정권 심판론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론에 워낙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여론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에서의 보수 정당 후보 싹쓸이 현상이 더 심화될 것 같다. 컷오프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도 당선 후 '친정' 복귀를 진작부터 선언한 만큼 대구경북 전 선거구를 보수 정당이 석권하는 '25대 0' 스코어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특정 정당의 싹쓸이 현상이 대구경북의 미래에 어떤 '손익계산서'를 제시할지 지역민들은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표 쏠림 또한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유권자 선택이니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다른 정치세력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실리적 선택도 지역으로선 나쁘지 않다. 대구경북 정치판에도 옐로스톤 늑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정치판이 더 풍성해지고 지역 지분을 챙길 여력도 생길 것 아닌가.

2020-04-14 06:30:00

[세풍]  대구, 어디로 가는가?

[세풍] 대구, 어디로 가는가?

'주인 바뀐 대구, 주인 없는 대구' 그리고 '대구는 어디로 가나?'1930년 10월, 당시 '별건곤'이라는 잡지는 대구를 다룬 글을 실었다. '운정'이란 필자는 나라를 빼앗겨 일본인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면서 '주인 바뀐 대구'와 '주인 없는 대구'의 달라진, 나름 번듯한 거리와 버스 운행 등 서울·평양과 함께 '3대 도시'의 겉모습을 조명했다. 그러면서 쇠락한 상공업과 청년, 학생, 대중이 못 죽어 연명하는 대구의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앙소생'이란 또 다른 필자는 사통팔달의 도시로 떠오른, '지리상으로 본 대구'와 영남 72개 고을의 중심이자 남인(南人) 지역인, '역사상으로 본 대구' 그리고 일본인에 압도당한 산업 등을 다룬 '숫자상으로 본 대구'를 살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대구 이외에는 나가지 않는' 풍조, 옛 관습의 풍속, 젊은이보다 노인 세력의 강한 영향을 언급하며 '대대구(大大邱)는 장차 어디로 가나? 나는 말할 수 없다'며 비관했다.90년 전, 일제 핍박으로 절망이던 시절의 대구 옛 모습이다. 두 필자는 대구 겉모습에 분명코 절망했으리라. 감춰진 대구를 보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대구는 이미 무기력한 도시가 아니었다. 특히 젊은이가 그랬다. 당시 대구의 두드러진 현상은 젊은이의 드러나지 않는 활동이었다. 필자 말처럼 '노인급 세력이 다른 데보다 훨씬 강한 것'이 아니라 되레 반대였다.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대한광복회 등의 비밀결사 결성,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1916년 대구권총단 사건 등의 주요 인물이 바로 대구의 젊은이였다.이들 젊은이는 조용히, 그리고 치밀하게 대구의 지도를 바꿀 준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은 대구 젊은이의 응집된 힘을 보여준 의거였고, 이후 대구 젊은이들의 항일 운동의 방향타가 됐다. 3천 명 넘는 시위자 가운데 기소된 102명을 보면 10대 28명, 20대 51명, 30대 14명으로 젊은이가 총 93명이니 전체의 90%다. 이들 뒤를 이어 광복 때까지 대구의 학생과 젊은이의 비밀결사 항일은 이어졌으니, 광복 이후 1960년 민주화를 위한 대구 2·28학생 의거도 같은 맥락이나 다름없다.이처럼 대구 젊은이들은 암울한 시기, 지역사회의 버팀목 같은 역할을 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대구의 활력은 떨어지고 침체되면서 마침내 나날이 고향을 등지는 행렬을 이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에는 특히나 정치적인 역동성의 쇠멸과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대신, 특정한 각종 연(緣)이 지배하고 유연하지 못한 사고의 일당적 지배 흐름의 고착화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바뀌지 않는 정치색도 문제이지만 주인 행세는 물론, 특정당에 일방적으로 투표하는 바람에 주인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유권자의 행태는 더욱 되돌아볼 폐단이 아닐 수 없다. 나라와 함께 대구만을 바라보고, 유권자에게 충실한 경쟁력 넘치는 후보자들을 대구로 몰리게 하는 일은 제대로 투표를 행사하는 길밖에 없다. 전국 최하위 경제지표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대구를 살릴 후보자를 잘 골라 뽑아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이번 15일은 그런 면에서 적기이다. 여당과 제1야당이 대구 12곳, 경북 13곳 선거구 모두에 후보를 냈다. 2004년 선거 이후 16년 만에 여야 주요 정당 후보 모두 나섰으니 고르는 선택의 폭은 마련된 셈이다. 당과 사람 모두 보고 뽑자. 특히 대구 젊은 유권자는 그렇다. 유권자가 주인인 대구, 주인 있는 대구는 어디로 갈지 분명할 터이니.

2020-04-06 18:43:40

[세풍] 총선 후 이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

[세풍] 총선 후 이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

더불어민주당이 4·15 총선 목표 의석수를 147석으로 잡았다. 지역구 130석에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17석을 포함해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해 원내 1당이 되겠다는 것이다. 한 주간지가 민주당 예상 의석수를 154석으로 예측한 것을 고려하면 민주당의 꿈은 불가능하지 않다. 범여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을 포함하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도 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원내 1당 목표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잘한 것이라고는 무엇 하나 찾기 어려운 데다 정권의 오만과 실정(失政) 탓에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총선을 통째 뒤흔들었고 어느새 여당으로 판세가 기울었다.코로나 사태는 처음엔 문 정권에 재앙(災殃)이 될 것으로 보였다. 메르스 수준에 그쳤다면 그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멈춰버린 미증유의 국가비상사태로 비화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코로나가 블랙홀(black hole)이 돼 경제 폭망·안보 불안·선거 개입 의혹 등 정권의 잘못들을 몽땅 빨아들였다.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제때 하지 않아 사태를 키우고, 마스크 대란으로 국민을 줄 세우게 만든 정권의 잘못들도 희석시켰다. 그 사이 정권은 국민과 의료진·기업의 노력과 공(功)을 낚아채 정권의 치적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추락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훌쩍 넘었다. 역대 총선마다 위력을 떨쳤던 정권 심판론은 힘을 잃고 말았다.선거일까지 극적 반전이 없다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될 가능성이 많다. 주목하고 우려해야 할 것은 그 이후 이 나라에서 벌어질 일들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고 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는 이미 불을 보듯 훤히 알 수 있다.첫째는 '조국(曺國) 재등장'이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인사들은 "조국은 무죄" "조국 사태는 검찰 쿠데타" "조국은 조광조, 윤석열은 윤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국회의원이 되면 조 전 장관 본인과 그 가족이 죄가 없다고 강변할 것이다. 조 전 장관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특유의 제스처를 하면서 다시 국민 앞에 나타날 것이고,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할지도 모를 일이다.둘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폭주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인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은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가 수사 대상 1호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윤 총장뿐만 아니라 정권에 눈엣가시인 인사들이 줄줄이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등 정권을 수사하는 검찰을 표적으로 한, 공수처를 동원한 정권의 검찰 무력화·해체 시도도 노골화될 것이다.셋째는 소득주도성장·탈원전·친노조 성향의 경제 정책, 굴종에 다름 아닌 대북 정책, 한·미 동맹 균열과 같은 안보·외교 정책이 더욱 공고해질 개연성이 크다. 다음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세금 퍼주기와 특정지역 몰아주기도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인 동시에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 행위다. 민주당이 총선에 이기면 문 정권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란 구호를 앞세워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더 밀어붙일 게 분명하다. 그 와중에 국민은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불의'를 더 체감할 것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숱하게 보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이 보름 앞으로 닥쳐왔다.

2020-03-30 20:38:58

[세풍] 코로나19 이겨내는 법

[세풍] 코로나19 이겨내는 법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고 사망자 수습마저 힘들 만큼 상황이 참혹하다. 23일 기준 전 세계 확진자는 33만8천717명, 사망자는 1만4천687명을 기록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21세기 최악의 감염병'으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지난달 20일 이후 맹렬한 기세로 치솟던 국내 확진자 수는 요 며칠 100명 안팎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불행 가운데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든다. 큰 피해를 입은 대구경북도 '신천지'라는 돌발 변수를 뺀다면 다소나마 낭패감을 덜 수는 있다. 그렇다고 전체 확진자의 85.5%, 사망자의 95.5%라는 절대 수치의 중압감을 피해가기는 여전히 어렵다.그나마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은 사태 초기부터 정부가 빠르게 진지를 구축하고 적극 대응에 나선 덕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의 학습효과에다 잘 준비된 진단 키트, 효율적인 의료보험 체계를 무기로 이번 사태에 강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각국 정부는 한국의 대응을 눈여겨보고 있다. 외신들도 '냉정을 찾고 한국만큼만 하라'(Keep Calm and Korea on)는 제목의 기사를 앞다퉈 싣는다. 이렇듯 우리가 코로나 사태 대응의 롤모델이 된 것은 높은 시민의식과 앞선 공중보건 정책과 의료 역량 때문이다. 반대로 방심한 유럽과 미국은 거의 그로기 상태다. 적을 코앞에 두고도 경계와 전술, 무기 등 모든 대비에서 실패하고 궁지에 몰린 것이다.요즘 유튜브에서 맹활약 중인 영국의 은퇴 의사 존 캠벨은 "현재 코로나 사태에서 믿을 수 있는 데이터는 한국의 것이 유일하다. 광범위한 추적과 격리, 치료, 투명한 정보 공개까지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칭찬했다. 그는 1월 27일부터 두 달 가까이 시시각각 변하는 각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하고 핵심을 요약해 전 세계 수백만 시청자의 눈과 귀가 되고 있다. "BBC는 못 믿어도 캠벨 박사의 말은 신뢰한다"는 영국인들의 반응만 봐도 그의 존재감을 짐작할 수 있다.물론 보통의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시간을 쪼개고 감염병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보를 자세히 전달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전문가로서의 사명감과 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부산 북구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에 여념이 없는 70대 베테랑 의사 문성환 씨의 이야기도 좋은 사례다. 분명 힘에 부치지만 그는 '생애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방역 현장을 지키고 있다.보통의 시민도 힘이 될 수 있다.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을 잘 지키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만 잘 실천해도 제 몫을 하는 것이다. 대구시가 이달 28일까지 전개 중인 '3·28 대구운동'도 그렇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시민들의 경계심이 느슨해지자 대구시는 실천 기간을 4월 5일까지로 1주 더 연장한 것은 의미가 크다.지금 우리는 언제든 집 밖을 나갈 수 있다. 이탈리아처럼 대중교통과 물류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기업 활동을 중단시킨 행정명령도, 3월 말까지 공식 서류 없이는 외출을 못하는 프랑스의 금족령 조치도 없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 전국 신규 확진자가 23일 기준 64명으로 지난달 29일 하루 813명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Worst is yet to come)는 말처럼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2020-03-23 19:06:47

[세풍] 마스크 공화국 ‘만세’

[세풍] 마스크 공화국 ‘만세’

군복무를 마친 이후에는 이렇게 자주 그리고 오래 줄을 서 본 적 없다. 외신 보도를 통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빵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들을 보고 남의 일처럼 여겼는데, 이 진풍경이 우리 일상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마스크 대란'이다. 온 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바깥에 나가야 하며, 온 국민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목매는 나라가 되었다.전염병이 문제인지 마스크가 관건인지 헷갈리는 판국이다. 줄 선 사람들은 멀리서 온 만큼이나 그리고 기다린 시간에 비례하여 속이 상하다. 우체국을 그렇게 자주 찾은 적이 없었다. 약국을 이렇게 전전한 적도 없다. 여차하면 주말에도 약국 앞 줄서기에 합류해야 한다. 이게 무슨 촌극인가. 이 무슨 해괴한 풍경들인가. 과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우리는 마스크 공적 판매와 구매 5부제의 나라에 살고 있다. 마스크 2장을 사기 위해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고 노약자의 대리구매에는 주민등록등본까지 들고 가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만나면 첫 인사말이 "마스크 구입했어요?"이다. 표정들은 지쳐 있고 목소리에는 짜증과 분노가 묻어 있다. "마스크 하나 공급도 못하면서 무슨 국민 복지를 들먹이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애당초 성장과는 거꾸로 간 집단이었지만 분배 하나는 전문일 것 같았는데, 이마저 엉터리였다. 마스크 대란과 관련한 정부·여당의 오락가락 갈팡질팡 대응은 더 가관이다. 신종 코로나 발병 초기에는 마스크 사용을 적극 권고하며 재사용은 하지 말라고 했다. 천이나 면으로 된 것은 좋지 않다며 보건용을 쓰라고도 했다. 그러나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마스크 구입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자 '재사용해도 된다'로 바뀌었다.'마스크 사흘 사용론'과 '면 마스크 애용론'이 나오고 이제는 '마스크 사용 자제론'까지 등장했다.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민이 믿고 따를 곳은 정부뿐인데,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그 와중에 마스크는 코로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국민 신앙처럼 굳어졌다. 마스크는 이제 감기 환자들의 위생용품이나 범인들의 안면 은폐 도구가 아니다.인기 연예인들의 멋내기 패션용품도 아니고 시위 군중의 신분 숨기기 복면용품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마스크는 사람들 간의 대화와 교유를 온전히 차단해버렸다. 온 나라가 무성(無聲) 가장무도회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 속에서 국민들은 오늘도 불안하고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8천 명이 넘는 확진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 그들과 접촉한 수십만 국민의 불안과 불편, 생사를 건 의료진들의 투혼과 땀방울, 그리고 코로나 한파에 얼어붙은 서민들의 눈물과 신음 속에서도 정부·여당은 자화자찬이 늘어졌다. '방역 역량이 지구상 최고' '코로나 대응이 세계의 표준'이라는 공치사가 나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국은 코로나 방역의 모범 사례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더니….국격의 추락과 외교적 망신에 따른 국민의 한탄과 분노의 목소리조차 코로나 극복 개선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사방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전염병 바이러스를 다 불러들이고는 엉터리 사후약방문도 모자라 역설과 궤변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이만큼 대응을 잘한 나라도 없다'고 한다. 그들은 '마스크 공화국'을 만들었지만 '마스크 공화국' 사람이 아니다. 정녕 마스크가 필요 없는 달나라 사람들이 틀림없다.

2020-03-16 19:46:23

[세풍] 코로나 재앙은 문 정권이 초래한 '정치적 현상'

[세풍] 코로나 재앙은 문 정권이 초래한 '정치적 현상'

'통화주의' 이론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든 화폐적 현상"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은 금융 당국이 돈을 마구 찍어낸 결과라는 얘기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란 국민 경제를 파탄 내는 초(超)인플레이션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화폐적 현상'은 정치 행위이다. 정치의 개입 없는 순수한 경제적 판단에서는 '화폐적 현상'은 나올 수 없다.그래서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을 예로 들며 "초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든 정치적 현상"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근본적으로 오작동하지 않는 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금융의 지배')전염병 확산도 그렇다. 정치의 오작동에 의한 '정치적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한 코로나 국내 감염 확산만큼 이를 잘 입증하는 것도 없다. 사태가 위급해지기 전부터 감염원인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귀를 닫았다. 도리어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미국에 대고 "정치적으로 끌고 간다"며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실효적으로 한다"고 큰소리쳤다.'실효적'으로 한 결과는 참담하다. 우한 코로나 감염 사태는 이제 통제 불능에 이르렀다. '이제 감염되면 치료도 못 받고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는 소리가 나오는 지경이다. 확진자 급증으로 병실이 부족해지면서 자가 격리 중 사망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중국 시진핑의 방한이 무산될까 봐 '중국의 어려움'을 '우리의 어려움'으로 껴안은 '정치' 그것도 '참 나쁜 정치'의 귀결이다. 껴안을 게 따로 있지 전염병을 왜 끌어안나.이런 비판을 모면하려고 문 정권은 갖은 요설(妖說)을 쏟아낸다. 세계보건기구(WHO) 핑계를 대며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더니 마스크 대란이 닥치자 "면 마스크도, 일회용 마스크도 재활용이 된다"며 WHO와 반대로 갔고, 이제는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아예 WHO를 뭉개버린다. 또 "국내 감염 확산은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 때문"이라고 했으며, "확진자 급증은 역설적으로 우리 국가 체계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고, 세계 각국의 한국인 입국 제한·금지를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의 투박한 조치"라고 한다.모두 과학적 판단이 아닌 '정치행위'이다. WHO 권고의 선택적 수용부터 그렇다. 모두 상황 논리일 뿐이다. 국내 감염 확산의 주범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한국인을 지목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역학적·통계적 근거도 없다. 확진자 급증과 국가 체계 작동의 상관관계도 그렇다. 감염 확산은 국가 방역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될 수 없다.한국인 입국 금지·제한도 마찬가지다. '투박한 조치'가 아니라 '현명한 조치'다. 애초에 문제의 근원을 틀어막으면 문제가 생길 일도, 커질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문 정권은 '투박한 조치'를 욕할 게 아니라 본받아야 한다. "방역 능력이 없다"는 외교적으로 투박하기 짝이 없는 발언 역시 어떤 근거도 없다.일본의 한국인 입국 금지에 기다렸다는 듯 문 정권이 맞대응한 것도 동일한 궤도 비행이다. 일본의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을 이유로 들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방역 능력이 없어 투박한 조치'를 취한 세계 120여 개국 전부에 즉각 맞대응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 정권의 신속한 맞대응은 일본의 조치가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반일 감정에 기대 자신의 무능에 쏟아지는 비판을 일본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계산'이란 의심은 '합리적'이다.

2020-03-10 06:30:00

[세풍] 코로나19 포비아

[세풍] 코로나19 포비아

인류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위협은 세균과 바이러스다. 중세 유럽 등지를 휩쓴 흑사병으로 최소 7천5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16세기 신대륙에 도착한 백인 보균자들에 의해 퍼진 천연두, 장티푸스 등으로 인해 중·남미 원주민은 인구의 90%를 잃었다. 1919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도 5천만~1억 명의 희생자를 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전사자 4천만 명을 넘어서는 수치다.근대화 이후 의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각각 200만, 100만 명 사망자를 낸 아시아 독감(1957년)과 홍콩 독감(1968년)이 있었지만 흑사병이나 천연두, 스페인 독감처럼 단기간에 파괴적 재앙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없었다. 천연두의 경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수백만 명씩의 희생자를 낸 무서운 전염병이었으나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1980년 공식 박멸이 선언됐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처음 거둔 완벽한 승리였다.하지만 신종 바이러스의 등장은 매번 인류를 긴장시킨다. 새로운 염기서열로 무장하고 수시로 변이를 일으키는 신종 바이러스들은 면역력 준비가 안 된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사실 치사율 면에서 코로나19는 '온건파'(?) 바이러스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의 치사율은 0.5% 수준이다. 치사율이 사스(SARS·10%), 메르스(MERS·20%), 조류독감(H5N1·60%), 자이르 에볼라 바이러스(80~90%)보다 매우 낮다.치사율은 낮지만 코로나19 공포감은 여느 바이러스보다 크게 다가온다. 코로나19를 가볍게 여겨서 안 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바이러스가 가진 '낮은 치사율' 특성 때문이다. 대개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높다. 코로나19가 딱 그 격이다. 감염자가 많이 발생함으로써 사망자 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다. 사스와 메르스가 세계적으로 각각 1천 명 미만의 희생자를 낸 반면, 치사율이 낮은 코로나19는 대유행 초입 단계인 데도 벌써 3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신종 감염병의 위험에 세계 각국이 총력을 다해 대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코로나19는 인류가 지금껏 상대하지 못했던 까다로운 바이러스 종이다. 게다가 인류는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코로나19 포비아(공포증)가 지속될 것 같다. 미국의 호러작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라고 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그렇다. 인류는 결국 코로나19를 이겨내겠지만 문제는 경제다.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감으로 사람들이 너나없이 '사회적 거리' 유지에 나서면서 사회 시스템이 거의 멈춰 섰다. 코로나19 피해는 소상공인, 사회취약계층, 기저질환자, 노약자들에게 더 많이 가고 있다.과잉스럽다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응하되 지나친 포비아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코로나19의 세계 대유행은 막을 수 없으며 이 바이러스가 늘 우리 곁에 남아서 폐렴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고유종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는 새겨들을 만하다. 일단은 이번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하는 게 급선무이다. 아울러 우리는 다음에 올지 모를 더 높은 치사율과 전파력의 바이러스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응력을 길러 놓아야 한다.

2020-03-03 06:30:00

[세풍] 이만희 총회장님, 이럴 순 없습니다

[세풍] 이만희 총회장님, 이럴 순 없습니다

물론 억울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생기지도, 그리고 한국에 전파되지도 않았으면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혹 전파됐더라도 정부가 잘 대처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 이후 4번째 확진환자가 나온 28일 밝힌 것처럼 '과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강력하고 발 빠르게 선제적 조치를 시행'했으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이런 억울함은 코로나19 사태로 불거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교회) 교인 환자 발생 등과 관련한 지난 20일 이만희 총회장 글과 23일 교회 입장문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총회장은 '특별편지'에서 "금번 병마 사건은 신천지가 급성장됨을 마귀가 보고 이를 저지하고자 일으킨 마귀의 짓으로 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폈다. 또 교회 대변인은 "신천지예수교회와 성도들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라고도 주장했다.이들에겐 그럴 만하고, 중국발 괴질(怪疾)로 빚어진 일인지라 자신들 입장을 항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23일 뒤늦게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높이고 대구경북 지원은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조치를 강화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쏟아진 국민적 거센 비판은 마땅했다. 그래도 정부는 피해자인 신천지교회 교인을 포함하여 국민 생명을 지키는 책무를 할 것이다.이제 신천지교회 사정을 짚자. 이미 23일 오후 4시 현재 대구경북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체 602명 가운데 494명(82%)이고, 신천지 대구교회 확진자만도 329명이니 전체 확진환자의 54.6%이다. 대구 경우 23일 오전 9시 현재 확진자 292명 중 신천지교회 관련자는 248명이다. 게다가 대구 신천지 교인 9천336명의 670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24일 오전 10시 현재 아직도 30여 명을 추적 중이다.지금도 신천지 교인 확진자는 속출되는 엄중한 날들이다. 이제 총회장이 사태 수습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 지난 1984년부터 '신천지'를 본격 개척, 37년에 걸쳐 20만 명 넘는 '성도'를 일군 지도자이니 그들 신심(信心) 보호도 분명 중할 터다. 하지만 신천지교회와 교인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신천지예수교회 강제 해체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22일 시작, 3일 만에 46만 명 동의로 표출된 성난 민심(民心) 역시 결코 외면할 일이 아니다.특히 총회장이 태어난 경북과 그의 교인이 있는 대구는 오랜 세월, 믿음의 종교 터였다. 신라의 경주 젊은이 이차돈의 '흰 피' 순교(殉敎)로 불교를 꽃피웠고, 또 다른 경주인 최제우·최시형의 순도(殉道)로 동학(천도교)이 뿌리 내렸다. 또 신천지 교인 확진자가 몰린 대구는 동학(천도교)과 천주교, 개신교 신자들의 나라 및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 깃든 흔적도 숱하다.총회장은 이런 대구경북의 지난 종교 역사를 살펴야 한다. 그가 신앙생활을 했고, 전국 신천지 교인의 발길이 이어지는 성지 같은 고향 청도를 배려한다면 총회장이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발 괴질과 사투를 벌이는 정부와 국민, 자랑스러운 종교 믿음의 땅 대구경북의 역사, 성지 같은 그의 고향 앞날을 위해서라도 직접 할 일을 찾아야 한다.지금이 지나온 종교적 길에서 얻은 경험과 믿음의 힘을 갖춘 지도자답게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 책무를 다할 때다. '마귀'를 앞세운 해괴한 말은 접고 괴질과의 시간 싸움에서 이길 지도력을 보일 때다. 아흔에 이른 삶의 경륜에 걸맞게 신천지교회와 교인만이 아닌, 고향과 대구경북지역 공동체, 나라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2020-02-24 19:20:32

[세풍] 선거 이기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사람들

[세풍] 선거 이기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사람들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바에 의하면 문재인 정권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은 민심(民心) 탈취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한 범죄다. 대통령 비서실 조직 8곳이 일사불란하게 경찰까지 동원해 대통령의 30년 지기 당선을 위해 선거에 개입하고, 매관매직까지 시도했다. "끔찍한 민주주의 살해 현장"이라는 김웅 전 검사의 표현은 적확(的確)하다.처지를 바꿔 박근혜 정부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가만히 있었겠나. 대통령 탄핵을 열 번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울산시장 선거 공작에 대한 검찰 공소장은 조국 사태에 이어 문 대통령을 필두(筆頭)로 한 집권 세력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정권을 지키려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대통령 지기 당선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는데 '정권의 운명'이 달린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훨씬 더 한 일도 저지르리란 합리적 추론(推論)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집권 세력은 정권을 잃으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몸으로 체험했다. 주군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자신들은 폐족(廢族) 신세까지 갔다.이런 까닭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4월 총선 관련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 총장은 여론 조작과 공무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국민의 선택을 왜곡하는 반칙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선거 범죄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정치 영역에서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 체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라며 "선거 범죄에 엄정하게 대처해 달라"고 검사들에게 지시했다.울산시장 선거 공작과 지난 대선 때의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이 없었다면 윤 총장 발언은 선거를 앞두고 나온 원칙을 밝힌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건이 윤 총장 발언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이번 총선은 집권 세력 입장에서는 져서는 안 되는 선거다. 질 경우 오매불망 바라는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할 상황까지 맞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하지만 '정권 심판론'이 '야당 심판론'을 추월하는 등 선거 구도가 집권 세력에게 만만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정권 출범 후 잘한 것이라고는 내놓을 게 거의 없는 처지인 데다 표심(票心)에 가장 영향을 주는 경제는 폭망 수준이다. 중국 우한 폐렴 사태 같은 악재(惡材)는 많은 반면 지난 지방선거 당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같은 호재(好材)는 기대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논란에 휩싸인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정봉주 전 의원,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석균 씨를 공천에서 날린 것도 집권 세력의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쓴 대학교수와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집권 여당에 만만찮게 돌아가는 선거 구도, 무엇보다 지난 대선·지방선거에서 자행한 일들을 고려하면 집권 세력은 총선에서 지지 않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게 뻔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를 다시 들고나올 수도 있고, 세금 퍼주기와 정권 지지 지역에 대한 예산·국책사업 몰아주기에도 열을 올릴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법을 어기는 일까지 거리낌 없이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한 지인은 야당 승리를 점친 정보지 내용을 언급하며 걱정을 했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민의가 담긴 투표함을 잘 지켜야 한다." 지금껏 집권 세력이 저지른 일들과 총선 결과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면 기우(杞憂)로만 들리지 않았다.

2020-02-17 19:12:25

[세풍]  상식은 힘이 세다

[세풍] 상식은 힘이 세다

상식은 물이나 공기와 같다. 평소에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비상시에는 본원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공기나 물처럼 상식도 하루아침에 완성된 작용 원리나 가치는 아니다. 상식이 오류의 함정을 전부 비껴갈 수는 없으나 상식은 인식과 판단의 밑거름이자 현상과 구조에 대응하는 인간 행동에 유의미한 기제다.국제 비상사태로 급부상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위기에도 상식의 기제는 유용하다.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이 사태로 인해 10일 기준 29개 나라·지역에서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고, 9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까지의 양상만 놓고 봐도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보다 전파력과 피해 규모가 훨씬 크다. 당시 전 세계에서 8천273명이 감염됐고 775명이 죽었다.무엇보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계속 확산 중이어서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제 보건에 큰 위협이자 중국·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아웃브레이크'(집단 발병) 사태임은 분명하다.대구경북 지역도 이 위기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24일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귀국한 17번 확진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구에 이틀간 머물렀다는 뉴스에 지역사회는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철저히 마스크를 쓴 덕에 가족 등 접촉자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한 사람의 상식과 소양이 피해 확산을 막은 것이다.반면 상식이 외면받는 사회 구조도 엄연히 존재한다. 허락없이 질병을 발설한 죄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뒤 결국 감염돼 목숨을 잃은 리원량(李文亮) 사건이 그렇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악마'로 규정해 비판의 화살 머리를 세균에 돌려버린 권력자의 시각에서는 반동 분자다. 의사로서의 진실과 상식 차원의 문제 제기가 되레 독배가 된 것이다.비상식의 정점은 '크루즈 감옥' '크루즈 국가'라는 조롱 섞인 별칭이 붙은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유람선 케이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리포트에서 이 유람선 탑승객 확진자들을 '기타(other) 지역'으로 분류했다. 영국 국적의 이 대형 유람선에는 3천700여 명이 탑승 중인데 일본 요코하마 항구에 격리된 채 대책없이 2주간의 잠복기와 검역 종료일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난 5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10일 현재 130여 명이 감염됐는데도 일본 정부는 거의 방관 중이다. 이 배에는 한국인 승객 등 14명이 격리돼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일본 상륙 전에 발생했다"는 이유를 대며 일본 확진자 명단에서도 제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우리에게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아픔이 있다. 2009년 76만여 명이 발병해 270명이 숨진 신종플루와 2015년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희생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다. 당시 정부와 의료기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의료시설을 통한 2차, 3차 감염이 확산됐고 보건 당국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혼란을 자초했다.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 위기는 늘 우리 곁에 있다. 계속된 학습의 결과로 인식 수준도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으나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과학과 상식의 힘이다. 가치 있는 경험과 이성적 판단으로 차분히 위기에 대처할 때 어떤 힘이 발휘되는지 이번 사태가 증명한다. 기억할 것은 '공포 마케팅' 등 고약한 상혼이 판을 치는 혼란 중에도 모든 가치는 본원 가치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이다.

2020-02-10 19:15:08

[세풍] 당쟁의 추억

[세풍] 당쟁의 추억

70년 남짓한 대한민국 정당 이름의 역사는 휘황찬란하다. '자유' '민주' '공화' '통일' '정의' '한국' '국민' '평화' '민중'이란 용어를 앞뒤로 뒤섞어 쓰다가 한계에 이르자 '나라' '누리' '우리' '미래'까지 등장시켰다. 그것도 모자라 '신' '새'라는 접두어를 붙이더니 '열린' '더불어' '대안'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까지 나왔다. 지리멸렬한 정당사의 변화무쌍한 자취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감이다.4월 총선을 앞두고 또 천태만상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다. 범여권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고차원 방정식 같은 선거법이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이제는 신세대를 고려한 '헐' '짱' '개'라는 접두어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당명은 100~2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방 새로 바꾼다고 공부 더 잘하나….한국 정당의 변천사는 대부분 분열과 야합, 탈당과 합당의 무분별하고 몰가치한 이합집산의 귀결이다. 당쟁이 격화되었던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당파를 오락가락하며 당명을 밥 먹듯이 바꾸지는 않았다. 동서남북 사색당파가 '노론·소론' '시파·벽파' '청남·탁남' '대북·소북' 등으로 분화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양당 체제의 틀을 유지했다.명칭뿐인가, 정치 행태는 또 어떤가. 조선시대의 당쟁도 저열한 권력투쟁이란 측면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의명분을 내세워 이론적으로 싸웠다. 예론(禮論)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쟁에도 도덕적인 의리와 유교적인 명분이 있었다. 철학적인 무장을 하지 않으면 논쟁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오늘의 정치판처럼 도나캐나 달려들어 천지 분간도 없이 물고 헐뜯는 천박한 패거리싸움은 아니었다.적어도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고 역사와 조상을 탓할 염치는 없어졌다. 더구나 조선은 당쟁이 격심했던 숙종~영조에 이르는 50년 동안 오히려 민생이 안정되어 백성들이 살기 좋았던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망국의 길을 재촉한 것은 노론벽파 일당 독재에 이은 세도정치 탓이었다. 조선의 당쟁을 두둔할 생각은 결코 없다. 부끄러운 역사요 청산의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당쟁은 국론을 분열시켰다. 왜란과 호란의 와중에도 지도층의 의견 대립이 있었고, 해방 정국의 좌우 대립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처럼 온 국민을 분열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당쟁의 쓰라린 추억을 오히려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름으로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져 대립하며 서로를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국론 분열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정당정치가 핵심인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의견 대립은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요즈음처럼 국론 분열이 심각한 위기의식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그래도 반성하고 거듭날 줄 모르는 보수의 이기(利己)와 탐욕이 한심하다. 더 기가 막힐 일은 진보를 자처해온 세력들의 몰염치한 민낯이다. 도덕과 상식마저 내팽개친 그들의 무례와 오만은 '유체이탈' '내로남불' '후안무치' 그 이상이다.그들은 스스로 신주처럼 떠받들던 민주적 가치를 제발로 걷어차고 이른바 '좌파 독재'로 질주하고 있다. 그 결말은 조선의 망국과 남미 좌파 정권의 실패에서 유추할 수 있다. 보수의 분열과 노욕 또한 그 역주행을 돕고 있다. 식민사관의 궤변처럼 우리는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민족인가'. 유사 이래 처음 이루어 놓은 경제 강국의 위업과 한류가 지구촌을 강타하는 문화민족의 자존도 이렇게 사위어가는가.

2020-02-03 21:06:45

[세풍] 역병(疫病)의 추억

[세풍] 역병(疫病)의 추억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 한다. 1918~19년 전 세계에 창궐한 스페인독감이 그랬다. 스페인독감은 6억 명에 이르는 감염자와 최소 2천500만 명, 최대 1억 명으로 추산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전대미문의 대역병(大疫病)이었다. 스페인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목불인견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폐가 피에 잠겨 고통 속에 죽었다. 대혼돈 속에 망자(亡者)들은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 장면을 봐야 하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오히려 부러워했다고 전해진다.하지만 불과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인 데도 스페인독감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14세기 유럽을 덮친 흑사병(페스트) 등과 견주어 봐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인류는 너무나 끔찍했던 스페인독감의 참상을 기억에서 애써 숨겨 놓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잊고 싶다고 해서 쉬 잊히는 것이 인간사인가. 끔찍한 대재앙의 기억은 인류 의식 깊은 곳에 강한 트라우마를 남겨 놓았다.이후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에이즈(AIDS)와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여러 종류의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했고 인류는 그때마다 스페인독감의 공포를 떠올렸다. 신종 바이러스들 대부분은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을 매개체로 삼아 잠복해 있다가 변이를 일으켜 사람 몸에 침투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신종 바이러스는 그에 대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여러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했지만 다행히도 스페인독감과 같은 대재앙급 사태는 재발되지 않았다. 국제화가 1세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성화됐기에 자칫 통제가 안 됐다면 스페인독감 때와 같은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했고 개인위생 환경이 개선됐으며 보건당국이 기민하게 대응한 덕분이다.그런 가운데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바이러스가 하나 더 출현했다. '우한 폐렴'이라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다. 정확한 발생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의 수산시장에서 식용으로 취급하는 야생 박쥐로부터 사람에게 옮겨졌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우한에 있는 생화학세균연구시설에서 누출됐다는 설 등 추정만 분분하다. 향후 추가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전파율과 치사율 면에서 사스와 메르스 중간 정도인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27일 현재 중국에서 80명의 사망자가 났고 우리나라에서도 네 번째 확진자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스와 메르스도 극복해냈듯 우한 폐렴 역시 수습 가능한 전염병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걱정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우한 폐렴의 경우 증세가 발현되지 않은 잠복기의 감염자가 타인에게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확인돼서 그렇다. 역대 여느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없던 특징이다.항간에서는 중국인의 우리나라 입국 자체를 막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고 의사협회조차 같은 주장을 펴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법으로도 문제가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효과가 없다며 권장하지 않기에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할 조치이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 개인은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되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지금 인류는 우한 폐렴이 조기에 진압되느냐, 세계로 확산하느냐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2020-01-27 18:34:13

[세풍] 뭘 잊어달라는 건가

[세풍] 뭘 잊어달라는 건가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많은 말을 했다. 그중 "대통령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가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세간의 반응은 한결같다. "잊어달라고?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다. 쓰레기통에서 피워낸 우리 민주주의를 다시 쓰레기통으로 처박고, 법치를 파괴했으며, 국민 경제를 거덜냈고,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가리 찢어놓았으며, 북한에 굴종하며 국가안보를 김정은에게 저당잡힌 그 반(反)민주적, 반(反)양심적, 반(反)공동체적, 반(反)역사적 행적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문 대통령의 모든 행적을 잊을 수 없지만 특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동일한 문제라도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말과 행동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바꾸는 기만성이다. '윤석열 검찰 대학살'은 이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2월 대선 때 "MB(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대통령 및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2017년 대선 때도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을 만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그러나 '우리 총장님 윤석열'이 "살아있는 권력에도 똑같이 하라"는 당부를 실천에 옮기자 '윤석열 사단'을 해체해버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도 존중돼야 한다"이다. 그러나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조롱당하고 있다. 인사권 행사로 발탁된 친문 검찰 간부는 "조국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했다가 후배 검사에게 "네가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는 반말을 들었다.또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의 압수수색을 청와대가 거부하자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방해하고 그것을 통해 탄핵을 모면하고 사법 처리를 모면하려는 행태" "정말 개탄스러운 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청와대'는 검찰이 법원의 허락을 받은 합법적 압수수색을 "적법 절차에 따르지 않은 위법한 수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이런 이중성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체질화돼 있는 듯하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기각하자 "헌재의 결론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똑같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기각 결정에 대해서는 180도 달랐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에 헌재가 어떻게 맞서느냐는 거다. 이런 논리는 마침내 헌재는 선출된 권력은 탄핵할 수 없다는 반(反)헌법적 결론에 이른다."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인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2명은 인용 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문재인의 운명')이 논리대로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국민의 힘으로 가능했다"며 쌍수로 환영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 않고 세습이라도 했나? 국민이 지금 문 대통령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기만성의 확대재생산이다. 지긋지긋하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20-01-20 19:10:34

[세풍] 뒷날이 두렵다

[세풍] 뒷날이 두렵다

1907년 3월 2일 만세보에는 '여론이 들끓다'는 제목으로 이런 글이 실렸다."요사이 국채를 보상하려고 서울과 시골에서 백성들 가운데 남녀노소 막론하고 의연금을 떠들썩하게 모집하여 지금 모집한 금액만 해도 적지 않은데, 정부 각 대신은 그 차관을 갚기를 강구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그 빌린 자금 가운데에서 교접비(交接費)라 명목을 정하여 매월 200환씩 태연하게 받아가니…여론이 시끄럽다더라."뭇 백성이 나서 일제에 진 빚 1천300만원을 갚자며 어린아이의 코 묻은 세뱃돈까지 모으던 시절이다. 그런 엄중한 때에 나라 관리, 그것도 대신들이 빚더미에서 떡고물이나 뒷주머니 사례금(리베이트)처럼 '마음에 불안하지도 않은지' 달마다 꼬박 챙기는 꼴을 폭로한 글이다. 대신이 이러니 나라 꼴은 뒷날 우리가 아는 역사 그대로다.이런 자료는 110년 지나 2017년 10월 31일, 세계기록유산(세계의 기억)으로 선택돼 세계인도 우리 옛 치부를 알게 됐다. 이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물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로 이뤄졌다. 지난 1997년, 훈민정음(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나라의 첫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고 20년 만이니 경사스러운 일이다.물론 이런 부끄러운 모습만 등재된 것은 아니다. 모두 2천475건인 기록물 속에 포함된 하나일 뿐이다. 그 속에는 최소한 120건이 넘는 감동적이고 가슴 아린 사연도 있다. 즉 6세 어린이부터 해외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남의 집 밥상(床)이나 나르던 종(奴)노릇의 소년과 바느질 품삯을 내놓은 소녀 등 아이와 청소년 기부 자료가 그렇다.이 밖에 우리의 세계기록유산에는 14가지가 더 있다.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팔만대장경판·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민주화운동기록물, 난중일기, 새마을운동기록물, 한국의 유교책판, KBS이산가족찾기기록물, 조선왕조어보·어책, 조선통신사기록물이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이 '기억'할 만한 가치를 가진 까닭에 세계기록유산이 됐다.이런 '세계의 기억'인 기록 유산의 나라지만 정치만은 탈(脫)기억이다. 지난날의 기록과 기억을 통한 반성과 새로운 길을 내는 창조적 활용은 뒷걸음질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의 최고 지도자 행적을 보면 더욱 그렇다. 과연 그런 가치를 실현하려는 국정 철학을 갖고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물러난 11명 대통령 가운데 여럿이 남긴 오욕(汚辱)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는 좋은 증거다.이들 오욕의 기억과 기록을 남긴 대통령들과 달리, '가보지 않은 길'을 장담하고 그럴듯한 행보였던 문재인 정부가 요즘 걱정스럽다. 분명 공정과 통합, 국민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노라 외쳤던 그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출범 당시 장밋빛 약속 이행은커녕이다. 앞선 여러 오욕의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해 엇길로 빠졌다가 추락한 과거를 기억조차 못하고 되레 그런 길로 접어드는 듯하니 말이다.특히 조국 사태 이후 청와대와 대통령 친위 세력의 모양새가 고약하다. 청와대 관련 의혹을 캐려는 검찰과의 싸움이 그렇다. '다르겠지' 했던 진보에 대한 기대를 접게 할 만하다. 청와대를 향한 검찰 칼날에, 총장을 차마 바꿀 수 없으니 장관을 앞세워 손발을 자르고 청와대는 법원 발부 영장 집행조차 거부하며 검찰을 뭉갰다. 사관(史官)이 없으니 대통령과 청와대가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면 불안하다. 자칫 잘못되면 뒷사람이 또 하나의 '세계의 기억'으로 한국 역대 대통령 기록물을 등재하려 달려들까 두렵다.

2020-01-13 21:13:56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