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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당선만 되면 없던 소양이 생기나

[세풍] 당선만 되면 없던 소양이 생기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 방침을 밝힌 뒤 의견이 분분하다. 지방선거를 1년 앞둔 국민의힘 소속 지방의원들은 "국민 투표로 검증받는데, 선출직에 무슨 시험이냐"며 불만을 토로한다고 한다. 이들은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공천조차 못 받게 된다면 말이 되느냐, 공부를 떠나 주민 애환에 공감하고, 지역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면 좋은 정치가(政治家) 아니냐"고 말한다.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부 머리와 정치 머리는 다르다. 무슨 과목으로 시험을 치겠다는 건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정치학, 컴퓨터, 체력장, 논술, 일반 상식?"이냐고 묻고 "시험만능주의는 황금만능주의를 닮았다. 인성이 어떻든 시험 점수만 높으면 되고 과정이 어떻든 돈만 잘 벌면 장땡인가? 아무리 훌륭해도 피선거권을 박탈하겠다는 말인가?"라고 비판했다.국민들은 대체로 '공직 후보자 자격시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기'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조차 "적어도 정치인만큼은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출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그만큼 정치인의 자질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크다는 말이다.이 대표가 말한 '자격시험'은 누군가를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한 덫이 아니라,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소양을 검증하는 장치라고 본다. 그러니 '자격시험' 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같은 대입수능식일 리 없고, '공부 머리'를 검증하는 차원일 리도 없다. 공직자로서 도덕성, 정강 정책에 대한 이해, 예산 심의나 행정사무감사 기법, 자료 요구 방법과 시정 혹은 구정 질문 기법, 민원에 접근하는 방법과 자세, 그리고 컴퓨터 사용 기초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일 것이다.사실 국민이 직접 투표로 의원이나 단체장을 선출하지만, 해당 후보에 대해 깊이 있게 알거나 제대로 평가해서 투표하는 경우는 드물다. 선거는 구도와 바람, 지역색에서 대부분 승패가 갈린다. 그런 면에서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자신들이 내놓는 후보의 자질을 일정 수준 담보할 의무가 있다. 자격시험이라는 절차를 둠으로써 '밀실 공천' 같은 '구태'도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자격시험에 한 번 떨어졌다고 공천에서 영구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운전면허 시험이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운전 자격을 부여하기위한 절차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시험만능주의'니 '아무리 훌륭해도 피선거권을 박탈하겠다는 거냐' '국어, 영어, 수학 시험이라도 치겠다는 말이냐?'는 식의 반응은 공중 부양에 가까운 논리 비약이다.국민은 언변과 스킨십만 있을 뿐 기본 인격과 소양, 소명감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을 원하지 않는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집사 노릇을 잘해 정당 공천을 받는 후보도 원하지 않는다. 표만 된다면 어떤 공약이라도 내지르는 거짓말쟁이, 표만 얻을 수 있다면 국민 분열과 분노를 서슴지 않고 자극하는 모리배를 원하지 않는다. 기초의회, 광역의회 의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몇몇 정치인들의 언행을 보노라면, 기본 자격시험이 아니라 심층 시험, 압박 면접을 해도 시원치 않다. '저런 자가 어떻게 선출직 공직자가 됐나' 싶은 자가 하나둘이 아니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들도 공천 자격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고 공개하기 바란다.

2021-06-22 06:07:23

[세풍] 젊은 피, ‘국혐’을 ‘국힘’으로 바꿀까?

[세풍] 젊은 피, ‘국혐’을 ‘국힘’으로 바꿀까?

국민의힘이 30대 중반의 젊은이를 당 대표로 뽑았다. 의원 경험도 없는 신출내기를 당의 얼굴로 내세운 것은 한국 정당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그 본뜻이야 어떻든 놀라운 사건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같은 '젊은 피' 효과가 과연 제1야당의 체질을 크게 변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서일필(鼠一匹)에 그칠지 벌써부터 관심이 쏠린다.이준석 대표의 등장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만큼 국민의힘이 조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통수에 몰려 당 존립마저 위협받던 지난 4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더 이상 앞뒤 따져볼 여유가 없다는 소리다. 대선 시곗바늘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고 정권 교체는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 표심을 자극할 카드마저 별로 없는 야당의 입장에서는 어떤 수든 좌고우면하지 않고 몸부림쳐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제1야당, 보수 정치의 종가라는 위신과 체면은 이미 깎일 대로 깎인 데다 4년 내내 탈출구마저 찾지 못한 채 당 기반이 계속 쪼그라들자 '새로운 피'라는 쇄신의 공감대가 마침내 표출된 것이다.국민의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로 볼 때도 '30대 당 대표' 체제는 분명 낯설고 어색하다. '장유유서'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무의식 중에 '찬물에도 순서가 있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게 현실이어서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아직 기초를 세우는 '이립'(而立)에 불과한 야당 당수에게 절묘한 리더십은 기대하기 힘들고 극적인 당 체질 변화도 언감생심이다.당장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관련 전수조사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보여준 행태는 매우 실망스럽다. 국민권익위 조사에서 의심 사례로 드러난 의원 12명에 대해 탈·출당의 고육책마저 마다 않는 여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감사원 감사'를 기웃거리며 꼼수 찾기에 바빴다.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를 대하는 이런 국민의힘 태도만 봐도 제1야당에 쏠린 여러 가지 의심은 결코 부당하지 않다. '보수 수권 정당'을 자처하면서도 묵은 김치에서나 풍길 법한 쉰내가 진동하고 여전히 후진적 정치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당에 무엇을 기대하겠나.보수 지향의 유권자들은 30대 당 대표의 선출이 자칫 '모 아니면 도'식의 일회성 실험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벌써부터 걱정한다. 모처럼 당 혁신의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피'의 출현에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길게 드리운 수렴(垂簾) 뒷자락에서 '꼰대' 정당의 정체성과 색깔을 희석해 보려는 암묵적인 동조가 언제 발현될지 의심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의심이 현실화된다면 바닷물에 또 소금 한 줌 더 보태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무능한 문재인 정부"라고 질타하면서 뒤에서는 기껏 '백신 사기'에 휘말려 대구 체면을 깎아내리고 '억지춘양'으로 감사원 감사를 우기는 정당이 과연 수권 능력이 있는 정당인가. 국민에게 힘이 되고 국민의힘을 모은다며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짓고는 '부동산 민심 역풍'에 기겁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것을 보면 우세도 이런 우세가 없다. 과거 '차떼기당' '웰빙 정당' 소리나 듣던 천성에다 계속해 탈선을 되풀이하는 보수 정당이라면 '국혐'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이제라도 뼈대를 새로 끼우고 태를 바꾸어 쓸 만큼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사건건 꼼수를 보태고 딴청 부리다 또다시 바닥을 보일 경우 '국혐'의 낙인은 더 진해질 것이다. 모처럼 신선한 피가 당 전면에 나선 이때가 국민의힘이 변신할 최적기 아닌가.

2021-06-15 05:00:00

[세풍] ‘기본’ 시리즈뿐인 이재명의 밑천

[세풍] ‘기본’ 시리즈뿐인 이재명의 밑천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여권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노벨상의 권위를 빌려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려다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지사는 개발 경제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MIT대 교수 부부의 보편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에게 '책은 읽었나'라는 비판을 받았다.이 지사는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 빈곤 탈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집중 지원하는 자신의 '공정소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에 "배너지·뒤플로 교수 부부가 모든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 정도의 소액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그러자 윤 의원은 "배너지·뒤플로 교수는 선진국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재명 지사와 정반대 입장"이라며 "알아서 치는 사기인가, 아전인수도 정도껏 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국내에 번역 소개된 그들의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요지는 가난한 나라의 경우 기본소득은 절대 빈곤 해결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일자리 감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선진국에서는 보편 기본소득이 일자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진단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은 틀린 처방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어떤 기준으로도 가난한 나라가 아니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고용 악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뒤플로 교수는 한국을 '콕 집어' 보편적 현금 지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뒤플로 교수는 작년 11월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2020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KSP) 성과 공유 콘퍼런스'에서 화상 기조연설 후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은 어떤 사람을 언제 지원해 줄지 판단할 수 있고,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할 수도 있다"며 "보편적 기본소득의 단점은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 지사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 맞지만 복지만큼은 규모나 질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한다"며 기본소득이 해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해 준다는 소리는 참으로 달콤하다.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경구를 잊으면 안 된다.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 일부 지역을 넘어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해 본 예가 없다. 최악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을 강제한 결과 일자리가 사라져 소득 격차를 더 심화시킨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너무 모험적이다. 바꿔 말해 무모하다. 무모함은 이뿐만 아니다. 이 지사는 '기본대출' '기본주택'까지 내놓았다. 문제는 이렇듯 국민에게 주겠다고만 하면서 어떻게 벌어들일 것인가는 말을 아낀다. 가진 게 있어야 줄 것 아닌가? 가진 게 없는데 주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다가 어떻게 될지는 그리스를 보면 안다.국가의 부는 대부분 기업이 만들어낸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기본' 시리즈는 필요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 식상하기까지 한 상식이다. 이재명에겐 이게 없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포퓰리스트'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아니겠나.

2021-06-08 05:00:00

[세풍] 이준석 현상과 TK

[세풍] 이준석 현상과 TK

"젖비린내 나는 정치 소년들." 1969 ~70년 김영삼 김대중 등 신민당 소속 젊은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당시 당 원로들이 혀를 차며 했던 말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당시 나이는 각각 42세, 45세. 원로들 생각과 달리 민심은 '40대 기수론'에 환호했다. 결국, DJ가 YS를 꺾고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40대 기수론 뺨치는 정치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준석 돌풍이다. 1985년생이니 약관 36세인 그가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진보 진영도 못 해낸 일이다.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이번 당 대표 경선으로 컨벤션 효과는 기본이고 꼰대·수구 정당 이미지를 벗어날 천금의 기회마저 잡았다. 결과에 관계없이 남는 장사다.이준석 효과를 지켜보는 더불어민주당의 속내는 착잡함 반, 두려움 반일 터이다. 요즘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더 꼰대스러운 정치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민주당이 자체 조사한 자당 이미지도 '독단·무능·입만 살아 있는 40, 50대 남성'이다. 어떤 면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더 경직돼 있다. 쓴소리를 하면 강성 친문에 의해 콩가루처럼 까인다. 30대 기수론이 싹틀 수 없는 토양이다.이준석은 말솜씨는 보여줬지만 실력을 검증받지는 못했다. 국민의힘 사령탑이 돼 차기 대선 정국을 잘 치러낼지, 당을 말아먹을지 예단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준석에 베팅했다. 이준석 현상은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정권교체 및 세대교체에 대한 국민적 열망의 길목에 마침 이준석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시선을 대구경북으로 돌려보자. 이준석 현상은 대구경북에도 '변화'라는 키워드를 던진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안정 지향적이고 보수 성향이 강하다. 코앞의 이익보다 대의와 명분을 중히 여긴다. 그 결과 대구경북은 보수 성향 정치 세력의 본산(本山)이 됐다. 하지만 지역 발전과 정치공학 면에서 여·야 모두에게 푸대접받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묻지 마 투표 결과 보수 정당에는 집토끼, 진보 정당에는 남의 토끼 신세가 된 탓이다.게다가 자기 정치 못 하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초선 의원들이 최고위원에 대거 도전하는 정치적 기류 변화 속에서도 TK 금배지들의 도전 정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중앙당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지역 민의를 대변할 금배지가 없으니 지역 현안이 풀릴 리 없다. 부산이 여·야로부터 가덕도공항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받는 동안 대구경북은 통합신공항특별법 하나조차 챙기지 못했다.깃대만 꽂으면 당선시켜 준 결과이니 남 탓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경쟁력 있는 인물이라면 소속 정당, 나이와 상관없이 뽑아줘서 진정한 권력이 유권자들에게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요즘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하나같이 대구경북 표를 애걸하고 있다. 간 쓸개 다 빼줄 듯 립 서비스를 하지만 늘 그렇듯 아쉬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외면할 것이다.세상도, 정치도 변한다. 유권자 열망에 유기체처럼 반응하고 해답을 제시하는 정치인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 정치판을 뒤집는 것도, 정치인을 조련하는 것도 유권자들 몫이다. 늦게 발동이 걸리지만 임계점이 지나 시동이 걸리면 그 어느 곳보다 급격한 힘을 발휘하는 곳이 대구경북 아니던가. 전략적으로 현명해지기. 그것이 이준석 현상이 대구경북에 던지는 화두다.

2021-06-01 05:00:00

[세풍] 윤석열, 다른 길도 있다

[세풍] 윤석열, 다른 길도 있다

1983년 2월 이승의 삶을 마친 이종찬(李鍾贊)이란 군(軍) 출신이 있었다. 한국군 역사에 한 이름을 남긴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유복한 집안의 맏아들로 일제 무단통치가 기승이던 시절인 1916년 3월에 태어났다. 일본 육사를 나와 2차 세계대전에 일본군으로 참전, 일본 패망과 광복 뒤 한국 군인으로 새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그는 1917년생인 군대 후배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시대를 부대끼며 여러 궤적이 겹쳤다. 또한 1936년생으로 한자 이름까지 같고 안기부장을 지낸 이종찬 정치인과도 인연 있는 문중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고(故) 이종찬 군인은 일본 육사 졸업과 장교로 참전한 전력 등으로 뒷날 친일 인명사전에도 올랐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는 뒷날까지 소환되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한국전쟁 중 별 셋의 중장으로 육군참모총장이던 1952년 5월, 부산 피난 정부를 이끌던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 탄압 목적의 군대 병력 동원을 반대하고 맞서다 그해 7월 참모총장에서 해임됐다. 또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에 박정희 당시 소장과 함께 반대했다. 스스로 군대의 정치 참여나 정치 군인이 되길 거부하는 길을 가려 했다.뒷날 대통령과 국회의원 출마를 바라는 주변 권유도 뿌리쳤다. 물론 후회했던 두 번에 걸친 유정회 국회의원과 이탈리아 대사를 지내는 외도(外道)도 있었다. 오롯한 군인의 길은 걷지 못한 일생이긴 했지만 정치 유혹에서 벗어나게 됐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는 그 나름 정치 격변 속에서도 하늘이 내린 평생을 누린 셈이다.그는 자신처럼 군문(軍門)에 몸을 담았다가 숱한 정치 격변 속에 다른 길을 갔던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군 출신 인사들이 비명(非命)에 횡사(橫死)하는 일을 지켜봤다. 일본 장교 경력 등으로 친일 인명부에 오른 점을 뺀 광복 이후 그가 걸었던 군인의 길은 그 나름 수긍할 만도 하다. 이는 그가 죽은 그해 6월 제출된 한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조명될 정도였으니 광복 이후 '정치 군인'이 아닌 '직업 군인'의 길 선택은 아마도 잘한 일인 듯싶다.대통령에 맞서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군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그를 추적하면 최고 권력과 갈등을 빚다 스스로 옷을 벗고 검찰을 떠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겹친다. 활동 무대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없지 않다. 최고 권력자와의 갈등 끝에 조직을 떠났고, 대통령 출마 같은 정치권 유혹의 목소리도 높고, 주변 세속의 분위기도 호의롭다.윤 전 총장의 선택지가 무엇일지 알 수는 없다. 지난 한국 선거사에는 국민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간판 출신이나 이름 있는 법조계 인사 등이 '정치 훈련'도 없이 지름길 대선에 나섰다 낙마한 사례가 여럿이다. 저마다 상처투성이가 됐다. 여론조사 지지도에 기대어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헛물켜지 않았던가. 지금은 과연 달라졌을까.상대가 제기한 의혹, 흑색 선전, 비방 등이 난무하고 지난날의 가려진 부끄러운 일부나마 드러나는 바람에 가슴속 희망처럼 품었던 괜찮은 인상조차 싹 사라졌다. 내년 3월 9일 치러질 21대 대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진흙탕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럼 꽃길을 걸었던 윤 전 총장은 무사할까. 차라리 출마 대신 권력에 맞서 정치 중립의 가치를 지키려 한 '그가 있었지!'라는 기억 속 존재로 가슴에 남는 길은 어떨까.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굳이 정치를 할 속내이면 여의도 입성과 처절한 정치 내공 다지기 수련 뒤에도 늦지 않을 테고.

2021-05-25 05:00:00

[세풍] ‘실패한 대통령’의 헛된 정권 연장 욕심

[세풍] ‘실패한 대통령’의 헛된 정권 연장 욕심

나라를 흥하게 하는 흥국(興國)의 주역(主役)이 있으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亡國)의 주범(主犯)도 있다. 패망한 조선에도 세 명의 망국 주범이 있다. 고종과 민비, 흥선대원군이다.대원군이 되기 전 흥선군은 풍수가로부터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 묘를 충청도 예산 가야산 아래로 옮겼다. 그의 아들 고종, 손자 순종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왔지만 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는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지만 2대를 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나라가 망해도 좋으니 자식을 무조건 임금 자리에 올려 놓고 보자는 흥선군의 욕심에 조선 패망은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묘(墓) 얘기가 나온 김에 노무현 전 대통령 묘로 화제를 옮겨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인 2017년 5월 노 전 대통령 묘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반드시 성공(成功)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에게 약속한 '성공한 대통령'이 됐나.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묘를 떳떳하게 찾을 수 있을까. 불현듯 이문열의 소설 제목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떠오른다.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을 제외하고는 자화자찬을 늘어놨지만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처했으나 국민 눈에는 실패(失敗)한 대통령일 뿐이다. 참패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30% 아래로 추락한 지지율, 정권 재창출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훨씬 높은 것이 이를 입증(立證)하고도 남는다.부동산 대책을 25차례나 쏟아냈지만 집값은 폭등했고, 세금은 늘었다. 족보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일자리 정책은 참사 수준의 결과를 낳았다. 탈원전 정책으로 나라의 미래 먹을거리를 망가뜨렸다. 상대방에겐 엄격한 공정 잣대를 들이대더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자기편의 부정엔 눈을 감았다. 대북 정책은 북한의 핵 개발 시간만 벌어 주며 좌초했고, 친중(親中)과 반미·반일 외교안보 행보로 나라 안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코로나19 방역마저 백신을 제때 확보 못 해 나라를 아프리카 국가 수준으로 추락시켰다.성과라고는 뭣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것에 마지막 승부를 걸 것이다.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정권 연장에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퇴임 이후를 생각하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그나마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지사를 통해서든, 다른 친문 주자를 통해서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문 대통령이 온갖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크다. 나랏돈을 동원한 선심성 현금 살포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국책 사업들을 통해 여당 주자를 밀어 주려 할 것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능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참담한 국정 실패 탓에 국민은 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큰 저지레나 하지 않고 임기를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권 연장을 도모하려고 무리한 일을 벌여 국가 재정이나 나라에 누를 끼치는 것을 국민은 저어하고 있다. 조선을 망국으로 몰고 간 흥선대원군의 이대천자지지를 문 대통령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 바란다.

2021-05-18 05:00:00

[세풍] 이건희 미술관, 어디에, 왜 건립하는가

[세풍] 이건희 미술관, 어디에, 왜 건립하는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을 사회에 환원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별도 공간 검토를 지시하면서 지자체마다 '(가칭) 국립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서고 있다. 현재 대구시를 비롯해 부산시, 인천시, 세종시, 수원시, 진주시, 의령군 등이 그 나름의 근거를 내세우며 유치를 희망한다.너도나도 나서지만 결정된 것은 없고, 유가족도 장소와 관련해 입장을 낸 바 없다. 정부도 아직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정부 혹은 미술계가 이건희 미술관 건립과 관련해 의견을 낼 때 반드시 짚어야 할 점이 있다. '이건희 미술관'을 왜 건립해야 하는지 먼저 묻고, 장소는 그다음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이건희 컬렉션'은 '감정가 3조 원, 시가 10조 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감정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철학이 있다. 하나하나의 작품도 명작이지만 이건희 컬렉션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고 명품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어디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더라도 의미는 클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 미술관이 '왜 그 도시에 있어야 하는지' 답하지 못한다면 의미는 퇴색한다.이건희 회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 1월 9일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지금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삼성의 출발지도 대구다. 대구에서 태어나 세계의 별이 된 이건희 회장의 철학과 대구에서 시작해 세계의 삼성이 된 삼성의 도전 정신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세계에 전파하자면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이 가장 좋다. 고향 타령을 하자는 게 아니다.사업가 기질만으로는 삼성이라는 명품 기업을 키워낼 수 없다. 돈이 있다고 누구나 '이건희 컬렉션'을 완성할 수도 없다. 삼성과 이건희 컬렉션에는 철학, 혜안, 지칠 줄 모르는 열정, 시대를 이끌어가는 철인의 소명 의식이 담겨 있다.유가족이 이건희 컬렉션을 사회에 기증한 것은 대한민국을 향한 공헌인 동시에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을 당부한 것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잘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건희 컬렉션의 철학과 오늘의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의 도전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널리 전파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복합적 요청을 실현하자면 '이건희 미술관'은 삼성의 출발지이자 이건희 회장의 고향인 대구에 건립해야 한다.대구 '국립 이건희 미술관'은 기존 (삼성)제일모직 터에 설립한 삼성창조캠퍼스, 삼성이 지어 기증한 대구오페라하우스, 삼성의 모태인 삼성상회, 이건희 회장 생가 등과 연결해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또 각각의 거점들은 전 세계 미래 세대를 위한 생생한 교육 현장으로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모든 스토리와 역할 수행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자 자산이 된다.대구는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태동지다.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면 대구미술관(근·현대미술), 대구간송미술관(한국전통미술)과 함께 집적효과를 내기에도 적합하다. 나아가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 정신에 이어 삼성과 이건희라는 또 하나의 철학이 숨 쉬는 역사·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대한민국 어느 도시라도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한다면 '세계적 명작'(이건희 컬렉션)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면 '이건희 컬렉션'은 물론이고, '이건희 철학'과 '삼성 스토리'까지 세계인들에게 자랑하고 전파할 수 있다.

2021-05-11 06:00:00

[세풍] 그 많은 쥐틀은 다 어디 갔나

[세풍] 그 많은 쥐틀은 다 어디 갔나

또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모양이다. 내부 정보 이용을 의심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철저한 조사 합의와 대국민 약속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반발이 절로 나올 정도다. 4·7 재보궐선거가 막을 내리자마자 여야 누구랄 것도 없이 발뺌을 하면서 '오초의 흥망은 내 알 바 아니다'는 속담대로 된 것이다.LH 투기 의혹은 지난 4·7 재보궐선거 국면을 뜨겁게 달군 사안이다. 여론의 성화에 못 이겨 검·경은 마지못해 수사에 나섰다. 속도가 생명인 압수 수색은 굼벵이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런 형편에 정치권마저 일단 급한 불이 꺼지니 나몰라라며 꽁무니를 빼는 판이 되고 있는 것이다.시곗바늘을 몇 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정부는 천정부지의 집값 오름세를 잡기 위해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본격화했다. 지난 2월 24일 광명·시흥 지역을 3기 신도시로 추가 선정했다. 이로써 3기 신도시는 모두 6개 지구로 늘었는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한 공급 확대 정책이었다. 알곡이 많으면 쥐가 들끓는 법. 아니나 다를까, 제보를 받은 시민단체가 내부자들의 투기 의혹을 세상에 알리면서 LH 사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이렇듯 문재인 정부의 신도시 정책 관리의 허점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철저한 조사를 천명했다. 여야도 공기업 직원과 지방의원 등 공직자들의 비리 정황이 꼬리를 물자 지난 3월 중순 국정조사와 특검, 국회의원 전수조사까지 합의했다. LH 사태로 국정조사가 성사되면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5년 만의 국정조사다. 그런데 시곗바늘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닳은 탓일까. 선거를 앞두고 공직자 부패에 대한 국민 불신이 일파만파 커지자 급한 불부터 끈다며 질세라 손을 잡고 입을 맞췄지만 선거가 끝나니 문득 제정신이 든 모양이다.물론 재보궐선거가 끝난 직후 당 대표, 원내 대표 등 지도부 선출 문제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시간표가 빡빡하긴 했다. 하지만 임시국회가 열려도 후속 조치 논의는커녕 일언반구도 없다가 근 한 달이 지나면서 LH 특검과 국정조사는 여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당내 문제로 경황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지만 정당 내부의 일이 국가의 대사보다 중한가.여야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목청만 높이고는 발본색원과 제도 개선 등 후속 조치에 슬며시 꼬리를 내리면서 분노한 국민만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런 식이면 제2, 제3의 LH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고 '세상의 모든 가치가 시작되는 LH, 희망의 터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슬로건도 단단한 화강암에 계속 새겨질 것이다.한동안 인터넷에 'LH=내'라는 등식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신도시 등 공공개발지 땅 투기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작금의 현상을 정확히 짚어낸 언어유희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사회 지도층과 공직자들이 공공연히 '선금 지르는' 부정한 땅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슬로건대로 집 없는 사람의 터전이 아니라 부당이득의 꿈나무가 자라는 땅, '내 재산 불리기'라는 오만한 가치의 시작점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여야는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후속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 이 땅이 집 없는 이들의 '절망의 터전'이 되지 않도록 말뚝 박기를 서둘러야 한다. 누가 쥐틀을 사놓고 놀리나.

2021-05-04 06:00:00

[세풍] 대통령의 국정 철학? 그런 게 있기나 한가

[세풍] 대통령의 국정 철학? 그런 게 있기나 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인사를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상관성이 클 것"이라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이런 예상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이 발언은 '하산길'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 고분고분하고 비리는 뭉개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해 줄 충견이 필요하다'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 유력한 후보가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 문 정권의 '애완견'을 자임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런 속내를 '국정 철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묻는다. 국정 철학이라고? 그런 게 있기나 한가? 있는 '척'은 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가 될 것이다. 이른바 '시대정신'(Zeitgeist)을 완벽히 포착한 단어의 선택이었다. 이 단어들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대로 실천에 옮겼다면 '10년 집권'의 꿈은 한층 더 현실성을 띠게 됐을 것이다.문 정권은 지난 4년간 그 반대로 갔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대한 배신의 세월이었다. 조국과 그 가족의 위선은 이를 압축해 보여줬다. 말마다 옳은 소리를 늘어놓던 조국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많은 국민이 분노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마음에 빚이 있다"며 그를 감쌌다. 평등, 공정, 정의와 이를 갈망하는 국민은 이렇게 배신당했다.그런 배신과 같은 동전의 다른 면이 '말 따로 뜻 따로'의 교활한 이중 어법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당부해 놓고 윤 전 총장이 이를 실천에 옮기자 '살아 있는 권력' 수사팀을 해체하고 윤 총장 징계를 몰아붙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도 엄두를 못 낸 일이다.그래도 씨알이 안 먹히자 검찰에게서 수사권을 떼내 경찰과 공수처에 넘겨버렸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윤 총장이 반대로 알아들어야 하는 문재인식(式) 어법의 비밀을 진작에 깨쳤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이런 위선에 위와 아래가 따로 없다. '재벌 저격수'를 자처해온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월세 인상 상한선을 5%로 정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직전 전세금을 상한선의 3배 가까이 올렸다. "부동산 대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실수요자 보호"가 그의 지론이었다. '거지갑'이란 별명을 즐겨온 여당 의원도 같은 위선을 떨었다. 그는 전월세 5% 이상 금지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다. 그래 놓고 쏟아지는 비판에 '부동산 사장님' 탓을 하며 한다는 소리가 "시세보다 낮은 금액"이었다.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이렇게 4년 내내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깨끗한 척, 공정한 척, 정의로운 척했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란 말은 가당치 않다. 국정 철학이란 말이 지향하는 당위(當爲)의 가치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에는 공정과 정의의 본래 의미의 보전과 실천도 당연히 포함된다.그러면 문 대통령의 '진짜' 국정 철학은 어떤 것일까. 원전 폐쇄의 불법성을 감사하는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여당의 공격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작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맞지 않으면 감사원장은 사퇴하라"고 했다.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 그런 게 있다면 나와 내 편에 도움이 된다면 공정과 정의는 물론 법률까지도 간단히 뭉갤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2021-04-27 06:13:25

[세풍] 진보의 위선, ‘이대남’의 분노

[세풍] 진보의 위선, ‘이대남’의 분노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난 4·7 보궐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 있었다. 현 정권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압도적인 비토(veto)다. 20대 남성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72.5% 몰표를 던졌다. 무엇이 이토록 '이대남'(20대 남성을 지칭하는 속어)을 분노케 만들었을까.많은 분석들 중에는 젠더(Gender) 갈등이 주원인이라는 관점도 있다. 하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데에서 정답을 찾아야 한다. 현 집권 세력의 페미니즘 경도 논란에 대한 반발이었다면 이번 보선에서 집권 세력은 20대 여성들의 지지라는 반사이익을 얻어야 했건만 그런 현상도 없었다.이들을 분노케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정성'의 훼손이다.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공정과 거리가 멀다. 정권을 잡은 진보좌파는 말로만 공정을 외칠 뿐 행동은 내로남불과 위선이다. 젊은이들은 진보좌파가 신분 상승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있어 보수 정권보다 몇 술 더 뜨는 모습을 봤다. 이대남에게 현 집권 세력은 무능한 꼰대 집단이다. 그런데 영구 집권까지 하겠다는 야욕마저 숨기지 않았으니 미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젊은이 시각으로 세상을 한 번 보자. 취업, 결혼, 집 장만 등 제대로 이룰 수 있는 게 없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최저임금 상승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결과적으로 청년 일자리를 빼앗았다. 청와대 고용 상황판을 차지한 것은 세금 들이부어 억지로 만든 노년층 공공 일자리 실적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얼치기 노동정책이 만들어 낸 최악의 취업시장 미스매칭이다.게다가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대재앙 코로나19마저 터졌다. 팬데믹의 최대 피해자도 20대들이다. 그들은 유례없는 취업난과 사회적 거리두기 고립감 및 절망 속에서 꽃다운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한 언론사가 20대 607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생활비 부족으로 끼니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37.1%로 나왔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도시락 급식 사업에 신청자가 쇄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밥 굶는 청년들이라니!다른 한편에서 청년들은 투기 시장에 빠져들고 있다. 대통령의 집값 안정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바보가 된 경험을 한 20대들이다. 내 집 마련은 물 건너갔으니 그보다 진입 장벽 낮은 주식과 암호화폐 시장에서 일확천금을 노린다. 암호화폐 시장 하루 거래액이 우리 국민들의 국내외 주식 하루 총거래액을 넘어섰다는데 이런 위험천만한 투전판에 청년들이 영끌·빚투까지 해 가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나라가 과연 온전한 나라일까.우리 사회의 20대가 부동산 및 증시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10년간 이어진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의 길을 답습할 것이라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취업을 통해 얻는 기술과 지식, 경험을 축적할 기회가 없었던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는 평생을 질 낮은 일자리와 잦은 실업에 시달렸다.20대가 '잃어버린 세대'가 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 잘못이 크지만 그중에서도 집권 세력의 귀책이 가장 크다. 이번 보궐선거의 충격적 결과를 보면서 집권 여당이 제대로 성찰하고 반성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궐선거 이후 행보를 보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재난지원금 고작 몇십만 원과 미래를 맞바꿨다고 생각하는 이대남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있는지.

2021-04-20 05:00:00

[세풍] 文 정권 향한 국민 반격 시작됐다

[세풍] 文 정권 향한 국민 반격 시작됐다

"내일 한국에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한국 제1·제2의 도시에서 동시에 보궐선거를 하게 된 것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들의 성폭력(sexual violence)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물론 내년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요지의 서울 특파원이 보내온 뉴스를 본 다른 나라 국민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를 상상하면 끔찍하다. 오랜 시간 우리 국민이 피땀 흘려 쌓은 대한민국의 긍정적 이미지가 무너질까 걱정이다.쓰지 않아도 될 국민 혈세(血稅) 824억 원이 들어가는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두고서 문재인 정권의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학습할 기회"라고 했다. 다시 들어봐도 가당치 않은 망언(妄言)이다. 그러나 '기회'라는 점에서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역시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논리는 명쾌했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성범죄 때문에 치르게 됐다"며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反擊)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그의 지적처럼 4·7 선거는 문 정권 4년 동안 미쳐 돌아갔던 이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더 의미를 부여하면 이번 선거는 '내로남불' 정권에 대한 국민 심판(審判)이다. 여론조사에서 정권 심판론이 국정 안정론의 두 배나 되는 게 이를 증명한다. 문 정권에 국민은 단단히 화가 났다. 정권 심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 추락은 분노한 민심(民心)을 대변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두 배에 육박한다. 서울·부산 선거에선 '블랙아웃'(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을 앞둔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국민의힘 후보에 크게 뒤졌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는 윤 전 총장이 여당 후보들을 앞서고 있다. 부동산, 일자리, 국민 통합, 경제성장, 남북 관계 등에서 모두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질렀다.1년 전 4·15 총선에서 문 정권에 압승을 안겨줬던 민심이 급변한 것은 정권의 무능 탓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권의 본색(本色)을 국민이 낱낱이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정의롭고 공정한 척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공격하고, 국민을 핍박한 문 정권이 정의롭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입만 열면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없게 하겠다"고 했지만 뒤로는 땅 투기 천국을 만든 정권에 국민은 질렸다.문 정권 전유물로 여겨졌던 정의와 공정이 정권을 공격하는 비수(匕首)가 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국민 입장에서는 '일등공신'이다. 상(賞)을 좋아하는 추 전 장관,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김 전 실장, 배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박 의원에게 상과 가방, 배지를 선물하고 싶을 정도다.비싼 대가를 치른 것은 안타깝지만 국민이 정권의 실체를 깨달은 것은 이 나라를 위해서는 천만다행이다.토머스 엘리엇은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문 정권에 4월은 잔인한 달이 될 것 같다. 그 반대로 국민에게는 희망을 건져 올린 달로 기록될 것이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할 '두 개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 국민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렸다.

2021-04-06 05:00:00

[세풍] ‘작은 농사’는 힘이 세다

[세풍] ‘작은 농사’는 힘이 세다

채소가 싱그럽게 자라는 들녘,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연을 떠올린다면 오해다. 농사는 그 자체로 자연에 반(反)하는 행위다. 농업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욱 반자연적이다. 면적당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계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농약과 장비, 시설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벌레 먹은 흔적이 없는 배추, 왕방울만 한 포도, 한겨울에 먹는 참외와 수박 등에는 환경오염이 그림자처럼 수반된다.IPCC(정부 간 기후 변화 협의체)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배출량의 23%가 농업·임업 등 토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다. 화학비료, 농기계, 축사 연료, 농약, 비닐하우스, 멀칭용 비닐(풀 방지·습도 조절 등을 위해 밭에 덮는 비닐) 등을 제조, 사용, 폐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온다. 논 물의 혐기성 미생물, 가축 분뇨에서도 온실가스는 발생한다.인류 문명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자연과 사람 사이에 인공물을 집어넣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하고 차가운 들판에서 잠자는 대신 집을 짓고, 약한 피부로 자연과 직접 접촉하는 대신 옷을 입고, 치타처럼 빨리 달리기 위해 조상 대대로 달리기를 연마하는 대신 도로와 바퀴를 발명한 것 등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거의 모든 행위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인공물'을 집어넣는 과정이다. 밭을 일구고 농약과 비료, 농기계를 투입하는 것 역시 '자연과 사람 사이에 인공물을 집어넣는' 작업이다. 대체로 인공물이 많고 복잡할수록 사람살이는 나아지지만 환경 훼손은 커진다.그렇다고 전업 농부들에게 농기계를 쓰지 말고, 농약도 비료도 투입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농산물 공급이 줄어들면 생산자인 농부뿐만 아니라 소비자인 도시인들도 생활에 큰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 하지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한 예로 도시인들의 '작은 텃밭 농사'는 '대량생산'에 따르는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전업 농부 한 사람이 1천 평(약 3천306㎡) 농사를 짓자면 농기계와 농약 투입이 불가피하지만, 그 나름의 직업을 가진 100명의 도시인이 각자 10평(약 33㎡)의 농사를 짓는다면, 농기계나 농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면적이 작아 호미로 밭을 갈고 손으로 해충을 퇴치할 수 있고, 판매 목적이 아닌 만큼 좀 못생겨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작은 농사'가 늘어날수록 농작물 재배에 따르는 환경오염이 감소하는 것이다.물론 도시 농부들이 재배할 수 있는 작물에는 한계가 있다. 전업 농부들은 도시 농부가 짓기 어려운 작물 재배에 무게를 더 둠으로써 소득을 올릴 수 있고, 농산물 공급 균형도 맞출 수 있다.2019년 추산, 우리나라 도시 농부는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멀리하는 '작은 농사'를 추구한다는 점은 환경보호에 큰 힘이 된다. 다만 상당수 도시 농부들이 밭에 비닐을 덮는다(비닐 멀칭)는 점은 아쉽다. 검은 비닐을 덮으면 풀을 뽑거나 물을 주는 번거로움을 덜지만, 환경에 해롭고 보기에도 흉하다. 전업 농가의 대규모 농사에는 비닐 멀칭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작은 텃밭에 굳이 대규모 농사에나 쓰는 농법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작은 농사'는 환경 보호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러자면 도시 농부들이 약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2021-03-30 05:00:00

[세풍] 용버들을 심은 까닭

[세풍] 용버들을 심은 까닭

수도권 3기 신도시 인접 지역에 땅과 주택을 소유한 공직자에 대한 정부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국토교통부 공무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44명에 이어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공기업 직원 237명의 명단이 특별수사본부에 넘겨졌다. 이들이 실제 투기를 했는지는 조사가 모두 끝나야 밝혀질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 관심사는 공직을 더럽히고 국민을 기만한 독직(瀆職) 행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 후속 조치다.신도시나 산업단지 등 공공개발 예정지에 왜 용버들이 풍문보다 먼저 똬리를 틀고, 비닐하우스나 '벌집'이 지천인지 그 이유는 뻔하다. '보상비가 몇 배나 뛰고, 투기를 해도 별 탈이 없더라'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그 학습자가 개발 정보에 밝은 공직자라면 이는 공직 기강과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다. 이는 단지 개인의 일탈을 뛰어넘어 법과 제도의 불신과 가치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다.법과 제도는 그 사회의 가치와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다. 만약 법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제도가 허술하면 그 사회는 계속 유지될 수 없다. 뿌리가 썩으면 잎이 말라 들어가고 이내 둥치마저 허약해져 결국 나무가 죽어 넘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법과 제도의 빈틈을 파고드는 인간들의 욕심이 결국 사회를 도탄에 빠뜨리고 파국을 부르는 것이다.그동안 이런 투기 행위가 은밀하고도 대담하게 벌어졌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 국토부, 감사원 그 어느 곳도 이를 감시하고 감독하지 않았다. 이는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그만큼 만연하면서 사회 전체가 부정과 비리에 무감각해진 것일 수도 있다. 배경이 무엇이든 국민을 속이고 실망시켰다는 점에서 투기자에 대한 엄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국리민복은 고사하고 공공정보를 빼돌려 제 잇속을 챙기는 데 '열일하느라 바쁜' 공직자들을 모두 솎아 내야 하는 이유다.뒤늦게 여당과 정부가 투기 사태 재발을 막는다며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재산등록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등 22만 명에서 150만 명으로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에 공무원 사회에서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투기자 처벌과 범죄 수익금 환수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법을 개정해도 소급 적용은 어렵다'거나 'LH 해체적 개편은 결국 1990년대로의 회귀'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혁신에 대한 국민 의지를 우롱하는 것이다.물론 법의 소급 적용을 통한 처벌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을 속이고 공직을 더럽힌 투기자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길 수는 없다. 과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과 같은 장치를 만들어서라도 제대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가 정책이 특정인의 배를 불리는 밑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지금 국민은 '고까워서' 투기자들을 비난하고 욕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해온 짓이 천만부당하고 국가 기강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공직 윤리를 저버린 일부 사람들이 일으킨 참사이지만 법과 제도의 허점 등 잘못된 구조가 그 토양이다. 개발 붐이 일었던 1970, 80년대부터 생긴 고름을 완전히 짜내지 않고 대충 들기름이나 바르고 넘긴 탓에 똑같은 사태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내기하듯 용버들을 심고는 팔짱을 낀 채 흐뭇해하는 장면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전 국토가 투기판이 되기 전에 그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2021-03-23 05:00:00

[세풍] 문재인이 만든 ‘컴퓨터 게임’만 하는 군대

[세풍] 문재인이 만든 ‘컴퓨터 게임’만 하는 군대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은 병력과 장비의 야외 기동이 없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도상훈련(圖上訓鍊)은 실전에 아무리 가깝게 설계해도 '전쟁의 안개'(fog of war)라는 근본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의 안개란 프로이센의 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제기한 문제로, "전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고 많은 부분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이다.1차 대전 때 독일이 프랑스를 치기 위해 벨기에를 침공했다가 당한 낭패는 좋은 예다. 독일 통일 전 프로이센은 민간인이 개발한 '크릭스슈필'(Kriegsspiel) 즉 '워 게임'(war game)을 장교 훈련의 필수 과목으로 채택해 상상 가능한 모든 실전(實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 효과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1871)에서 잘 나타났다.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을 단 6주 만에 패배시켰다.프랑스와의 두 번째 대결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독일은 자신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침공하는 시뮬레이션 결과 탄약이 신속하게 보급되는 한 프랑스에 이기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이에 따라 독일은 세계 최초로 차량화 보급 부대를 창설했으나 상황은 독일 참모본부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벨기에 공작원들이 자국 철도망을 파괴해 독일의 보급선을 끊은 것이다.최악은 아군이 무조건 이기는 시뮬레이션이다. 미드웨이 해전(1942년) 준비를 위한 일본 해군 도상훈련에서 대항군 장교들은 실전에서 미 해군이 그랬던 것과 똑같이 하와이 섬 동북쪽 해상에 매복했다가 일본 연합함대를 기습해 항공모함 2척을 격침하고 2척을 대파했다.(실전에서는 4척 모두 격침)그러나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宇垣纏)는 "미국은 일본의 미드웨이 공격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그런 매복 전술을 쓸 수 없다"고 우기며 격침된 항공모함 중 가가(加賀)만 '침몰', 아카기(赤城)는 '경미한 손상'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일본 암호를 해독해 일본의 공격 계획을 알고 있었다.이에 앞서 일본 해군대학이 실시한 미국과의 함대결전 도상훈련도 마찬가지였다. 몇십 회를 했지만, 항상 패배해 일본 함대가 시고쿠(四國)의 도사(土佐) 앞바다까지 몰리는 것으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 해군의 대응은 한심했다. 미군 역할을 한 대항군의 작전은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그러고는 도상훈련을 중지해 버렸다.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한미 연합훈련이 이런 식일지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의 '특성'이 '우리가 지는 결과'는 없으며, 더구나 재래식 전력은 '통계상' 한국과 미국이 북한보다 월등한 우위에 있으니 결과는 뻔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가 있다. 이를 계산에 넣으면 시뮬레이션은 전혀 다르게 설계돼야 한다. 그렇게 하는지 의문이다.재래식 전력 간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병력과 장비를 실제로 움직여 보지 않고는 시뮬레이션대로 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돌발 변수들이 널린 게 전장(戰場)이다. 이는 전쟁 계획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근대적 참모본부 제도를 정립한 프로이센 군인 헬무트 폰 몰트케는 "적과 마주치는 순간 전쟁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컴퓨터상에서 아무리 이긴다고 한들 실전에서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주요 한미 연합훈련을 대부분 '컴퓨터 게임'으로 대체했다. 그 이유는 '북한 김정은이 싫어한다'일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기괴한 현실이다.

2021-03-16 05:00:00

[세풍] 4류들의 행진, 정치 참 쉽다

[세풍] 4류들의 행진, 정치 참 쉽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5년에 "행정력은 3류, 정치력은 4류, 기업경쟁력은 2류"라고 말했다. 당사자는 설화(舌禍)를 치렀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이런 명언도 잘 없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여전히 정치는 4류이고 행정도 3류 신세다.정치 4류, 행정 3류인 나라가 성할 리 없다. 게다가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의 목엔 힘이 더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170석 다수결을 앞세워 '잉여법'(剩餘法)을 양산해내고 있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국회를 통과한 법률의 90%가 여당발(發)이다. 헌정 사상 경험하지 못한 입법 독재다.국회의원이 법을 많이 발의하면 의정 활동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법은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법은 곧 규제인 탓이다. 잘못 만들어진 법은 애꿎은 피해를 낳고 사회 동력을 갉아먹는다. 없는 것만 못한 법률로 인한 시장의 실패를 우리는 '임대차 3법'에서 톡톡히 경험하고 있다. 소위 '검수완박' 등 집권 여당 입법 폭주를 보고 있노라면 역설적으로 '의정 활동 멈춤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재정 퍼주기도 4류들의 폭주라고 할 만하다. 코로나19 비상 상황 아래서 여·야 할 것 없이 돈 풀기에 여념이 없다. 미증유 감염병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판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정도껏이다. 특히나 그 의도가 불순하다. 여당이 추진하는 재난지원금 세례가 보궐선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국민의 돈을 갖고 자기 돈 쓰듯 온갖 생색을 낼 수 있으니 정치하기가 이보다 더 쉬울 수 없다. 자기 돈이라면 저렇게 마구 써 댈 수 있을까.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지만 결국 나중에 자기가 감당해야 할 것임을 잘 알기에 장삼이사조차도 빚을 끌어 쓰는 데에는 주저함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분별력 자체가 결여된 듯하다.요즘 시끌벅적한 가덕도 신공항도 마찬가지다. 정부 여러 부처에서는 천문학적 공사비, 유지비, 환경 파괴 논란, 효용성 등 이유로 가덕도 신공항 반대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가덕도 신공항을 짓는 데 7조5천억원이 든다는 것이 부산시 주장이지만 국제·국내선을 합친 관문 공항으로 제대로 지으려면 28조원이 든다는 게 국토교통부 입장이다. 대규모 토건 공사에 줄곧 우호적이던 국토부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면 애초에 논란 거리도 안 된다.코로나19 재난지원금 때문에 국가 재정이 위기인데 28조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국가 미래와 재정 건전성을 생각한다면 가덕도 신공항은 지어선 안 될 사회간접자본(SOC)이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역시 선거용이다. 현 집권 세력이 끈질기게 공격을 일삼았던 4대강 사업 예산이 22조원이다. 고작 1년짜리 부산시장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4대강 사업 예산을 웃돌지도 모를 막대한 세금을 가덕도 바다에 퍼붓겠다는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에 말문이 막힌다.4류 정치가 국민 돈으로 잔치판을 벌이는 사이 국가 채무는 1천조원을 넘보고 있다. 당장 증세를 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결국 거위털 뽑히듯이 국민 주머니에서 세금이 착착 뜯겨 나갈 것이다. 국채 발행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미래 세대 국민들이 갚아야 할 빚이 아닌가.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재앙적 상황인데, 이렇게 많은 빚을 미래 세대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는 정치가 참 비열하다.

2021-03-09 05:00:00

[세풍] 선거로 비리 세탁하는 창의 나라

[세풍] 선거로 비리 세탁하는 창의 나라

그는 정부 고위급 관리 자녀로, 학생회장에 뽑혔다. 회장의 위력을 앞세워 어린 하급생을 성(性)으로 괴롭혔다. 부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는 물론 학교 당국도 모른 체 외면했다. 계속된 괴롭힘에 하급생은 절망했다. 어느 날, 또래 자녀를 둔 학교 앞 가게 주인이 어쩌다 풍문을 듣고 교육 당국과 사법기관에 신고했다.그러나 어떤 조치도 없었다. 결국 주인은 가게 앞에 사연을 적은 대자보를 붙였다. 그러자 학교 등 여러 기관에서 가게에 협박했다. 생계 걱정에 주인은 글을 내리고 입을 닫았다. 결국 어린 학생은 자퇴했고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학생회장은 이를 자랑했고, 사회관계망을 통해 퍼지자 당국은 그제서야 조치하는 시늉에 나섰다.어쩔 수 없이 회장은 물러났고 다시 선거가 공고되자 억울했던 그는 대리 학생을 내세웠다. 대리 후보를 위한 '특별한 공약'도 준비했다. 학생과 학부모도 솔깃할 '전 학생 개인 교통편 제공'이었다. 여기에 '성(性) 비위 문제 학생의 불이익과 차별 철폐'도 넣었다. 앞은 세금으로 가능하다는 아버지 말을 믿고 공약했고, 뒤는 학내 여학생이 소수이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막고자 한 속셈이었다.마침내 대리 학생은 당선됐고 공약 이행을 위한 작업이 추진됐다. 그러나 곧 난관에 부딪혔다. 학교를 지원할 재단이나 교육 당국의 어느 규정에도 당선 학생의 공약 이행을 도울 근거가 마땅하지 않았다. 이에 학교와 교육 당국은 정부의 특별 지원을 받아 공약 이행을 위한 '특별 조례'를 급조해 문제 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이후 학교는 달라졌다. 학생 등하교 조건은 나라 안에서 최고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여학생 입학이 줄었고, 아예 사라졌다. 남학생 입학도 내리막길이었고 학교는 학부모 기피 대상이 됐다. 학생 사이에 '정의, 공정, 평등, 신뢰' 같은 피 끓는 단어는 실종됐다. 학교는 '불공정, 불의, 불평등과 차별'이 일상인 그런 현장으로 변했다.이런 일은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공동체 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가상의 세상에서나 일어날 만하다. 물론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둔 현실을 보면 이런 가상의 모습이 겹쳐진다. 성 비위로 빈 자리가 된 단체장 선거에 국민 호주머니를 털 특별 공약이 넘실댄다.여당은 물러난 공직자 비위를 선거 공약으로 세탁하고, 선거 승리를 위해 국회와 정치인은 엉터리 특별법을 급조하고, 지도자는 장관에게 강요하고, 장관은 실천의 충성 서약에 바쁜 요즘이다. 절반 넘는 반대 여론 속 겨우 실무 공직자만 법 잘못을 따져 대들지만 여당, 지도자, 자리 욕심의 장관, 특별법 혜택을 누릴 정치인은 귀를 닫았다.일찍부터 부정과 비리를 세탁하는 창의(創意)와 혁신(革新)의 선거문화 정치를 몸에 익힌 지도자, 장관, 정치인이 자칫 나라 밖에까지 이런 독창의 선거문화를 '한류 방역'처럼 퍼트릴까 걱정이다. 게다가 작금의 비리 세탁에 앞선 세대의 창의 선거 전통을 지켜본 뒷세대마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실력을 발휘할지도 모르지 않는가.가뜩이나 세계에서도 사기 사건이 많은 나라라는 사법 통계도 언짢은데 비리 세탁의 '한류 선거문화'까지 돋보이면 어찌 끔찍하지 않겠는가. 4월 선거의 정치인이야 나라 앞날과 백성 호주머니 걱정보다 당과 개인 잇속이 최고인지라 기댈 건 없지만 유권자조차 이들 정치인의 표를 사는 헛정치에 헛표를 던질까 그것이 두려울 뿐이다. 102년 전 목숨 바쳐 이런 나라 찾으려 독립을 외친 3·1절의 함성이 그저 아득하다.

2021-03-02 05:00:00

[세풍] 정권 마수(魔手)에 ‘위대한 국민’ 실종되다

[세풍] 정권 마수(魔手)에 ‘위대한 국민’ 실종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영속하려면 주권자인 국민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국민이 이성적이고 현명(賢明)한 판단을 통해 권력을 잘 부여해야만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위치로 올라선 것은 '위대한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에게서 위대함이 사라지고 있다. 탁월했던 우리 국민이 비이성적이고, 우둔한 존재로 추락 중이다. 국가 발전 기반이 허물어진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위대한 국민' 실종(失踪)의 첫째 증세는 기억상실증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강세를 보이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에선 박영선 후보가 야당 후보 누구와 대결하더라도 이긴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부산에서는 가덕도 신공항을 앞세운 민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꿈틀대고 있다. 민주당이 두 곳 모두 가져갈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당 시장들의 성추행으로 안 해도 될 선거를 하게 됐고, 선거에 국민 혈세가 824억원이나 들어간다는 사실을 서울·부산 시민들이 기억조차 못 하는 것 같다.둘째 증세는 공짜 심리 만연이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한 국민 인식이 나쁜 쪽으로 변질했다. 1차 지원금 때엔 '전 국민 지급' 찬성이 30.2%로, '하위 70% 선별 지급' 29.8%와 엇비슷했다. 그러나 4차 지원금 여론조사에서는 전 국민 지급이 68.1%로 선별 지급 30.0%의 두 배나 됐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려는 사람들이 급증한 탓이다. 공짜에 국민 이성이 마비됐다. 기본소득과 같은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차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조(自助)를 모토(motto)로 여겼던 위대한 국민은 어디로 갔나.위대한 국민을 추락시킨 주범(主犯)은 문재인 정권이다. 이 정권에 국민은 장기 집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국민을 격동시켜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삼지는 않고 국민을 선동(煽動)해 저열(低劣)한 존재로 만들어 권력을 이어가는 지렛대로 써먹으려고 한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국민 환심을 사 표(票)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 전 국민 위로 지원금' 발언은 정권이 국민을 어떻게 여기는가를 결정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날 기약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코앞에 두고 위로금 카드를 꺼낸 대통령의 저의(底意)가 의심스럽다. 서울·부산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으면 돈을 주겠다는 말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대놓고 국민 매수(買收)에 나서고 있다.세금으로 감당할 위로금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국민 혈세로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 원숭이 다루듯 우롱하고 있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거짓말과 내로남불로 국민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권의 마수(魔手)가 두려울 지경이다.히틀러는 총칼로 권력을 탈취하지 않았다. 독일 국민이 선거에서 표를 줘 히틀러에게 합법적인 집권 길을 열어줬다. 또 히틀러의 무도한 정책들을 국민투표로 승인해 줬다. 칸트·헤겔을 낳은 이성적이고 현명한 독일 국민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사악(邪惡)한 권력 집단에 국민이 현혹돼 비이성적이고 우둔한 존재로 추락해 그들의 폭주를 방조하면 국가와 국민은 재앙(災殃)에 빠진다. 1930년대 독일을 2021년 대한민국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길 바랄 뿐이다.

2021-02-23 05:00:00

[세풍] 아파트도 고향이 될 수 있다

[세풍] 아파트도 고향이 될 수 있다

텃밭 가꾸기는 흥미로운 취미이자 건강한 먹을거리 장만, 환경보전, 이웃 간 소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시인들의 텃밭 가꾸기가 취미를 넘어 환경보전과 이웃 간 소통에 기여하자면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도시 농부가 집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의 근교 밭에서 상추를 재배한다고 하자. 그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기에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른 상추는 유기농 상추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텃밭을 가꾸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텃밭에 오가느라 길에 쏟아낸 자동차 배기가스는 환경보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먼 나라에서 수입해 온 채소보다 오히려 푸드 마일리지 {식재료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발생하는 환경 부담. '식품 수송량(t)Ⅹ수송 거리(㎞)'로 나타낸다}가 더 클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채소는 대량으로 들여오기 마련이고, 단위 채소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근교 텃밭에서 소규모로 재배한 상추보다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농부 자신은 유기농법으로 채소를 가꾸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수입 농산물보다 환경에 더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근교의 홀로 떨어진 곳에서 텃밭을 가꿀 경우 이웃과 나눔·소통에는 한계가 있다.환경과 이웃 간 소통까지 생각하는 텃밭 농사를 짓자면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텃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심의 집 근처에서 텃밭을 구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도심 내 텃밭 확보와 관련해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화단이나 조경 면적을 텃밭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구시 조경 관리 조례는 면적 200~1천㎡ 미만의 건물을 지을 경우 전체 면적의 5%를 조경 시설로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 이상의 건축과 택지개발에도 일정한 비율로 조경 면적을 갖추도록 정하고 있다. 조경 시설이란 생활 주변 경관 향상과 시민 정서 순화를 위해 설치하는 시설 혹은 식물을 말한다. 건축조례상 조경 시설에는 나무, 잔디, 꽃, 지피식물 등 식물과 분수, 조각, 동상, 의자, 그늘 시렁, 정원석 등이 있다. 텃밭에서 흔히 가꾸는 채소는 대부분 조경 식물에 포함되지 않는다.대구시 조례를 개정해서 건축법상의 조경 면적에 '도시농업시설'을 포함하면 주거 공간 인근에 상당한 면적의 '텃밭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건물을 신축할 때 법정 조경 면적 별도, 또 텃밭 면적을 별도로 확보하자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만큼 '텃밭'을 '조경 시설'에 포함해 '텃밭 부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전체 조경 면적에서 일부만 텃밭으로 활용해도 상당한 면적의 텃밭을 확보할 수 있다.도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수천 가구가 입주해 살지만, 철문과 벽으로 격리돼 사실상 우리 가족만 사는 외딴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에 바로 옆집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시 텃밭은 이웃 간의 소통과 공동체 문화 형성, 이웃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무엇보다 아파트 텃밭을 통해 '이웃'을 알게 되고, 주민들이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면, 아파트 단지는 '숙소'가 아니라 '마을'로 거듭나게 된다. 아는 사람이 많은 동네, 상추와 시금치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에서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얻고, 노인은 외로움과 서글픔을 덜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다고들 한다. 아는 사람이 많고, 추억이 쌓이면 아파트도 '고향'이 될 수 있다.

2021-02-16 05:00:00

[세풍] 81,185 그리고 1,474

[세풍] 81,185 그리고 1,474

다음 주면 코로나19 사태의 신호탄이 된 '31번 확진' 사례가 발생한 지 꼭 1년이다. 이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출발 지점은 대구였지만 파문이 전국으로 번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년 만에 우리는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는 현재 1억660만 명 이상의 감염자와 232만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8일 기준 국내 확진자도 8만1천185명, 희생자는 1천474명에 이른다. 사태가 급박하게 치닫다 너누룩해지기를 거듭하는 동안 일상은 헝클어졌고 삶은 팍팍해졌다. 이틀 뒤가 설인데도 명절 분위기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중국 정부는 우한이 코로나19 사태의 시발점이 아님을 거듭 강변하고 있지만 최근 우한을 찾은 세계보건기구(WHO) 연구팀은 "우한 화난 시장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결정적인 몇 가지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새로운 사실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제야 세상을 놀라게 한 코로나19 사태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3차 유행기의 수구막이가 될 백신 접종도 희소식이다. 수세에 몰린 인류가 이제 겨우 작은 방패를 손에 쥔 것이다. 백신 부족에다 안전성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미생물의 도전에 맞서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의 경우 약 330만 명이 1차 접종을 마쳤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35%가 넘는 비율이다. 한국도 이달부터 백신 접종이 예정돼 국면 전환의 기대가 크다.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변화에서 보통의 사람도 그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읽고 있다. 경기를 앞둔 권투 선수들이 옷을 벗고 저울 위에 올라서듯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을 감지했다. 말하자면 코로나 사태는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다리'이다. 링 바깥과 링 위의 상황이 다르듯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점을 직감한다.문제는 그 속도와 양상이다.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시대 전환과 디지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회나 집단과 달리 낡은 시스템을 지탱해 온 사회일수록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임은 분명하다. 세계 석학들의 미래 예측을 담은 '초예측'이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수렵 채집인의 특성으로 '유연성'과 '적응력'을 꼽았는데 이를 무기로 인간이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고 했다. 이는 현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특성이다.코로나는 변곡점에 선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낡고 거추장스러운 것은 아닌지 말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도전 의지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가까운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를 분단으로 몰아넣은 것은 외세의 힘이었다. 하지만 그 씨앗을 뿌린 것은 우리 내부의 분열이다. 당대 사회적 모순과 독단, 차별, 무지, 착오가 침탈의 빌미가 됐고 피를 불렀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과거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지난 1년은 그래서 소중하다.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또박또박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지만 서두르다 제풀에 지쳐 중도에 멈추면 실패는 기정사실이다. 코로나 시대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도전과 변화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에게 좋은 시험대인 동시에 기회다. 지금 우리 체제와 변화 의지를 점검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2021-02-09 05:00:00

[세풍] 김명수 대법원, 언제까지 선거소송 뭉갤 건가

[세풍] 김명수 대법원, 언제까지 선거소송 뭉갤 건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 초 시무식사에서 "사회 각 영역의 심화된 갈등과 대립이 법원으로 밀려드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며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 공격에 대해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어준식으로 말하자면 판사들에게 '쫄지 마'라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예상 밖의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에 대한 탄핵 운동을 겨냥한 '김명수의 반격'이라는 해석이 나왔다.그러나 탄핵 청원이 시작된 지 11일 만에 나온 늑장 대응이어서 박수보다 욕을 더 먹었다. 명색이 사법부의 수장이 사법부에 대한 겁박에 가만히 있자니 판사와 국민의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즉각 대응하는 것도 자신을 대법원장으로 앉혀 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 뜸을 들이다 마지못해 친 '뒷북'이라는 것이다.뒷북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작년 보수 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박형순 판사를 여당이 '박형순 금지법'까지 발의하며 비난했을 때도 그랬다. 김 대법원장은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마지못한 듯 "근거 없는 비난과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으로 재판에 집중해 달라"고 했다.하지만 이런 뒷북도 많이 '발전'한 것이다. 지난해 2월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대해 여당이 "양승태 적폐 사단의 조직적 저항" "탄핵을 고민하겠다"며 공격했을 때는 찍소리도 않았다. 그에 앞서 1월 검찰이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위법한 수사"라며 청와대가 거부했을 때도 그랬다. 후자는 특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법원이 '위법한 영장'을 발부했음을 대법원장이 침묵으로 인정한,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를 법을 어기는 집단으로 매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이런 꼴은 안보는 게 좋다. 그래서 뒷북도, 이렇게 말하는 게 구차하지만, 치는 게 안 치는 것보다 그나마 낫다. 물론 뒷북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도 치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 따로 뜻 따로'식 어법이라는 의심이 들긴 한다. 이런 의심이 부당하다면 김 대법원장은 판사들에게만 '쫄지 마' 하지 말고 늦었지만,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21대 총선에 대해 제기된 선거무효 및 당선무효 소송을 이젠 처리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총선 관련 소송은 130건이 넘는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단 한 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법정 처리 시한(180일)을 예전에 넘겼다. 뭉개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법관 전원이 13개 시민단체와 기독자유통일당으로부터 선거소송 고의 지연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당했다. 대법원의 굴욕이다.총선 직후 부정선거 의심이 쏟아졌다. 개표 결과 수도권 1천 개 이상의 동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사전 투표 득표율이 당일 투표 득표율보다 일률적으로 10% 이상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통계학자들은 동전 1천 개를 동시에 던져 모두 한 면이 나올 확률이라고 한다. 이를 뭉개면 부정선거 의심은 '합리적 의심'이 된다.부정선거 의혹을 받는 선거구 몇 곳만 재검표를 하면 그런 의심의 진위는 금방 드러난다. 여태껏 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법원이 재검표로 문 정권이 맞을지도 모르는 파국을 막는 전위부대가 되려고 작정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전체 대법관의 절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그런 의심을 북돋운다. 부당한 모욕인가? 할 일을 제때 하면 그런 모욕을 당할 일도 없다.

2021-02-0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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