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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정치인의 애물단지
자식을 '애물단지'라고들 한다. 애물단지는 '애물'의 낮춤말이고 몹시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구는 사람이란 뜻이다. 오래전 유명한 대기업 회장이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평생 모든 걸 원하는 대로 다 이뤘다. 근데 두 가지만은 맘대로 되지 않더라. 하나는 자식이고, 하나는 골프다." 세상에 자식 걱정 없는 부모가 어디 있을 것이며, 멋대로 날아가는 공을 원망해보지 않은 주말 골퍼가 몇이나 되겠는가.정치인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골칫거리에 가깝다. 사고를 치지 않으면 '효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인 속칭 '홍삼 트리오'는 모두 감옥살이를 했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두 차례나 대선 고지를 앞두고 아들 병역 문제의 늪에 빠져 실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위대한 아버지 덕분에 대통령까지 됐지만, 자기 관리에 실패해 아버지의 명예만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문재인 대통령의 자식 문제도 좀 껄끄럽다. 아들 문준용 씨가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 일반직 공채에 단독 응시해 합격한 것을 두고 아직도 야권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딸 문다혜 씨 가족이 태국으로 이주한 것을 놓고도 온갖 소문이 나오지만,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다. 청와대의 압력 때문인지, 관료들의 충성심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당국이 문 대통령 딸에 대한 정보를 흘린 사람을 대대적으로 조사하고, 일부는 처벌했다. 아무리 민감한 대통령 가족 문제라고 해도, 당국의 처사는 도가 지나치다.며칠 전에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엉뚱하게 자식 자랑을 하는 바람에 '팔불출' 얘기를 듣고 있다. 황 대표는 "아들이 고스펙이 없는데도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그 아들은 연세대 법대 출신에 학점 3.29, 토익 925점이었다. 강연 중에 '엄친아'의 표본인 아들을 내세웠으니 네티즌의 질타를 받을 만했다. 정치판에서 자식 문제는 금기다. 자식을 입에 담는 순간 이익보다 손해가 많다. 황 대표가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비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2019-06-26 06:30:00
[야고부] 완전범죄의 종언
"사람이 발명한 것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다."명탐정 셜록 홈스의 말이다. 작가 코난 도일은 첫 소설 '주홍색 연구'(1887년)에서 홈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문학·철학: 전혀 모름, 정치학: 허약함, 식물·지리학: 특정 분야·관심 분야만 박식함, 화학·응용공학: 권위자, 범죄 관련 문헌: 걸어 다니는 범죄학 사전'.홈스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통찰력과 관찰력을 동원해 증거를 찾아냈다. 추리소설이 지적 유희의 산물이 된 것은 홈스에서 비롯됐다. 인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보듯, 신기막측한 과학 기술은 홈스 이래 여전히 추리소설의 매력적인 도구로 쓰인다.영미문화권, 일본에서는 유명 추리 작가와 작품이 쏟아지는 데 반해, 한국의 추리소설계가 빈약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경제 발전 차이, 사법 체계 확립 정도, 비순수문학 천대 등으로 설명한다. 그보다는 아래의 속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과거에 경찰은 범인을 특정해 강압 수사, 고문 등으로 자백을 받아내면 충분했으므로 증거나 과학수사는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않았다. 증거를 과학적 이성적으로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토양이 한국에는 없는 셈이다." 물론 1970~90년대 얘기다.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는 증거물이나 목격자, 과학수사보다 훨씬 더 유용한 도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CCTV의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2017년 통계로 공공기관의 CCTV 숫자는 95만 대가 넘고 사업장에만 800만 대, 모두 합하면 1천300만 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민 한 사람이 CCTV에 하루 평균 수십 번 찍힌다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제주도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은 펜션에 혈흔을 남기기도 했지만, CCTV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완전범죄를 꿈꾸긴 했으나 ▷범행 3일 전 제주시 마트에서 범행 도구를 구입하고 ▷범행 후 펜션에서 무언가를 들고나오고 ▷완도행 여객선에서 봉투를 바다에 버리고 ▷김포 아파트에서 시신의 일부가 든 쓰레기봉투를 버리는 장면이 그대로 찍혔다. 어디에선가 범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CCTV 앞에서는 수수께끼가 존재할 수 없다.
2019-06-12 06:30:00
[야고부] 정부, '시다바리' 될라?
"'내가 니 시다바리가?'는 부산말의 전 국민화에 큰 공을 세웠다."부산일보는 2006년 3월 기사에서 2001년 개봉, 최고 흥행을 올린 영화 '친구'의 대사인 '내가 니 시다바리가?'를 "전국에 퍼뜨린 부산 사투리"라고 보도했다. 이어 상대를 '넘어서고 말겠다는 의지를 담아 내뱉은' 이 대사의 뜻을 "대수롭지 않은 심부름을 시키는 동료나 후배에게 이 말을 즐겨 썼다"고 덧붙였다.상업도시 부산은 해륙(海陸) 문화를 갖춰 개방적인 반면 조사 자료처럼 급함도 있다. 안전한 뭍의 삶터와 변덕스러운 바다와 싸워 앞길을 뚫는 뱃사람들이 어울린 도시의 영향이리라. 모험과 도전적인 긍정의 시각에서 보면 '내가 시다바리가'에 담긴 도전과 도발의 반항적 뜻도 나름 이해할 만하다.이를 4·19혁명과 10·26사태, 부마 항쟁, 부산 미(美) 문화원 방화사건 등과 연결, 부산이 지닌 '전복성'(顚覆性)의 한 단면으로 보는 연구 맥락과도 통한다. 즉 상업도시 부산 특유의 현상으로 볼 만큼 좋은 측면일 수 있다. 아울러 부산으로선 비록 영화 대사이나 보도처럼 자긍심을 가질 만도 하다.부산은 다른 모습도 드러냈다. 지난 1992년 12월 대선 바로 밑에 터진 '초원복국 사건'이 그렇다. 장관 1명과 부산의 내로라할 관민(官民) 기관단체장이 김영삼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한 비밀 모임을 가졌다가 물의를 빚은 일로, 당시 나돈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과 함께 지역감정을 자극한 나쁜 선거 활동의 사례로 꼽히게 됐다.지금 부산의 지도자, 정치인이 목을 매는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보면 '시다바리' 대사가 떠오른다. 과거 정부가 폐기하고 영남권 5개 시도지사 합의로 백지화된 가덕도 신공항을 위해 대통령, 총리, 장관, 여당 대표까지 동원해 정부 정책을 뒤집는 부산의 작업은 영화보다 더욱 극적이다.자칫 정부가 '시다바리' 될까 걱정이다. 영화 '친구'의 다른 대사 '친구 아이가'나 '우리가 남이가'처럼 한편 부드럽지만 잘못 쓰면 남을 베는 칼이 되듯, '내가 시다바리가'의 전복성도 그렇다. 급해 지나치면, 역사를 거스를 뿐이다. 모르고 그렇다면 안타깝고, 알고도 그러면 새 적폐를 쌓는 꼴이다.
2019-06-10 06: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