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선거 독재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공산 독재국가에서도 선거는 한다. 정부가 지정한 1인에 대한 찬반투표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재체제에 민주적 정당성이란 외피를 씌우기 위한 사기(詐欺)일 뿐이다. 이를 '선거 독재'라고 부를 수 있겠다.이렇게 노골적이지 않고 좀 더 세련된 선거 독재도 있다. 다당제를 허용하면서도 공산당 지배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구 동독이 좋은 예다. 1963년 동독은 인민의회 의석을 재배분했다. 지배 세력인 독일사회주의통합당은 100석에서 110석, 사통당 2중대인 대중조직 대표체는 110석에서 144석으로 각각 늘리고 자유민주당 등 3개 비공산주의 정당은 이전과 똑같이 각각 45석을 배정했다. 범(汎)공산당이 비공산당을 압도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공산국가 출현 이전에도 선거 독재는 있었다. 재산 규모에 따라 투표권을 불균등 배분하는 것이다. 재산이 많은 극소수의 첫 번째 계급과 이들보다 재산은 적고 수는 더 많은 두 번째 계급, 재산이 거의 없는 대다수의 세 번째 계급이 각각 동일한 수의 대표를 갖는 프로이센의 '3계급 투표제'가 대표적이다.이는 과두(寡頭) 지배 체제의 유지가 목적으로, 당연하지만 극단적인 정치적 차별을 낳았다. 1913년 선거에서 지지율 17%인 보수당은 50% 의석을 차지했지만 28%의 지지를 받은 사민당의 의석은 2%에 불과했다.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선거법 개정안도 '선거 독재'를 겨냥하고 있다. 명분은 사표(死票) 방지이지만 속셈은 범여권 군소정당을 장기 집권을 위한 들러리로 세우는 것이다. 그 미끼가 비례대표 의석수 증가이다. 어떻게 조정하든 지금보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군소정당 특히 정의당은 어쨌든 득을 본다.정의당이 28일 선거법 개정안 원안보다 지역구를 약간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수정안을 제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의석수 욕심에 선거 독재 구축에 합세하려는 그 모습이 참으로 역겹다. 이러니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2019-11-29 19:54:27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소환되는 새마을운동

"임자, 잠깐 기차를 세워! 내가 뭐 좀 봐야겠어. 뒤쪽으로 후진시켜. 여기가 어디야?" "청도군 신도리라는 곳입니다."1969년 8월 4일. 기습 폭우로 전국 농촌이 신음하던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전용열차로 경부선을 타고 청도를 지나 홍수 피해가 컸던 경남지역을 둘러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창밖에 비친 농촌 모습이 어딘가 달랐다. 수행원들이 둘러본 마을은 청도읍 신도리였다.마을 주민들이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고 동네 안길을 고치고 있었다. 마을 뒷산은 산림이 우거졌고, 집은 개량된 지붕으로 말끔히 단장됐다. 마을 안길도 비좁지 않아 우마차가 시원스레 지날 정도였다. 흔히 보는 그런 농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전한 그 비결은 '주민 스스로' 총회를 거쳐 마을을 가꾼 데 있었다.이어 1970년 4월 22일. 한해(旱害)대책 전국 지방장관회의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안했다. '5천년 묵은 가난을 몰아내도록'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이렇게 '새마을가꾸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청도군이 지난 5월 펴낸 책 '청도사람들의 새마을운동'에는 이런 일화와 새마을운동에 앞장선 40명의 지도자·주민·출향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자부하는 청도로선 책을 펴낼 만큼 자랑스러울 터이다.우리 역사 속 새마을운동은 나라 밖에 수출도 됐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찬밥 신세였다.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 부녀의 흔적이 어린 탓이었으리라. 홀대의 새마을운동은 그러나 지난 2017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정상회의 방문으로 대접받았다. 그나마 이들 나라의 남다른 새마을운동 평가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그리고 부산에서 25~27일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이 다시 소환됐다. 문 대통령이 27일 아세안 10개국 중 베트남·태국 등 메콩강 인접 5개국 정상회의에서 "새마을운동을 전파한 농촌개발사업 등도 전개할 것"이라며 새마을운동을 끄집어내서다.비록 나라 밖에서 인정받아 다시 나라 안으로 소환되기에 이르렀으나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새마을운동의 끊임없는 소환으로, 나라 밖으로 훨훨 널리 퍼지길 기대하면 헛된 꿈일까.

2019-11-2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가야(伽倻)문명과 아리랑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아직 임금이 없던 가락국의 추장 9명이 구지봉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 노래(龜旨歌)를 부르니 하늘에서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와 귀공자로 변했는데 그들이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알에서 나온 사람이 수로왕이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는 난생설화이다.어떤 학자는 이 난생설화에서 우리 겨레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아리랑의 어원 중 '아리'가 알(卵)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고대의 난생설화에서 '알'은 태양을 상징하며 우두머리를 나타낸다. 알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다. '아리랑'을 '왕이랑'으로 해석하고, '아라리요'를 '아프다'는 우리 옛말 '알흐리요'와 연계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다.따라서 '아리랑 아라리요'는 '왕과 함께 앓으리요'란 뜻으로 왕과 민중의 하나됨을 의미한다. 제정일치였던 고대에는 나라의 흥망이 구성원인 민중의 생사를 가름했다. 유랑 민족의 심리적 격동과 승화된 한(恨)의 집단 반응이 아리랑을 낳았을 것이라는 학설이다. 가야 제국의 멸망 또한 그랬을 것이다. 기원 전후에서 6C에 이를 무렵, 한반도 남쪽 낙동강 일대에 번성했던 가야 연맹 왕국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분군 발굴과 함께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의 재조명이 본격화된 것은 불과 30여 년 전이다. 2010년에는 드라마 '김수로왕'이 등장하고, 학계의 연구와 출판도 잇따랐다. 동아시아 고대사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철의 제국'이 '잃어버린 왕국'에서 '제4의 제국'으로 부상할 태세이다. '철의 강국' '해상교역 대국' '다문화 문명국'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가야 문화권 시장·군수협의회가 가야의 역사·문화 복원을 위한 국회의 특별법 통과를 재촉하는 가운데, 12월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야본성-칼(劒)과 현(絃)' 특별전을 개최한다. 상당수 가야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다. 벼농사와 토기 제작 그리고 철기문명과 가야금으로 한반도 역사와 일본 문화에 깊게 스며든 가야인의 아리랑을 새삼 주목한다.

2019-11-28 06:30:00

[관풍루]대구 상용근로자, 전국 특별·광역시 7곳 중 가장 오래 일하고 월급은 가장 적게 받아.

○…대구 상용근로자, 전국 특별·광역시 7곳 중 가장 오래 일하고 월급은 가장 적게 받아. 많은 젊은이들이 버리고 떠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민주당 홍의락 의원, 한국당내 TK다선 의원 물갈이론에 '장기판의 졸' 키운다 비판. 다선 중 열심인 의원 찾기 어렵고 초선 중 열심인 의원 많은 것은 어찌 설명하오.○…올들어 조세·준조세 부담 증가로 가계소득 증가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 못미쳐. 파이 키울 생각은 않고 있는 파이 잘게 쪼게 나누는 소득주도성장의 그늘.

2019-11-2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이순신, 회초리 들다

이순신 장군을 뵐 면목이 없어지고 말았다. '열두 척의 배'를 들먹이고 '거북선횟집'에서 오찬을 하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큰소리가 빈말이 됐다. 나라를 뒤흔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소동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본엔 타격도 못 줬고 한·미 동맹만 균열이 갔다. 국론 분열에다 국민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바둑·장기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봐야 승산이 있다. 하물며 국가 간 분쟁에서는 몇십 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전략이 있더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에 대한 보복 카드로 지소미아 파기를 들고나왔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는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애초부터 '다시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지소미아를 한·일 간 단순한 협정 정도로 오판(誤判)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정부 잘못이 크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동맹을 지탱하는 축이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도 지소미아 파기가 3국 동맹을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수출 규제를 한 일본에 대한 맞불 조치로 지소미아 종료를 꺼내 들었던 문재인 정권은 지소미아 의미를 잘 몰랐거나 알고도 무시했을 것이다.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청와대는 참으로 무지했다. '죽창가'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파기 이후 몰려올 후폭풍이 보일 리 만무했다.'손자병법'에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미리 이겨 놓고 싸운다는 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2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과를 올린 핵심 전략이 선승구전이다. 이미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만들어 놓고 전투에 나선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지소미아 종료가 유예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한 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나라를 이리저리 끌고 가는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 탓에 국민은 불안하다. 지소미아 파기 소동과 같은 오판과 전략 부재, 그로 말미암은 실패, 구차한 변명이 나라 곳곳에서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열두 척의 배와 같은 이순신 장군의 겉만 봤을 뿐 선승구전의 지혜와 전략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이순신 장군이 회초리를 들 지경이다.

2019-11-2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두 음악이 물처럼

"14살에 소리 공부를 시작했으니, 벌써 육십여 년을 우리 음악과 함께 산 셈이다. 철부지 코흘리개 소녀가, 대구극장에서 명창 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한 나의 국악 인생도 이제는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하고 싶은 일도 많고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1921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국악 공연을 보며 우리 음악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로 살다 1993년 73세로 삶을 마치기 전인 1992년, 60년 국악 인생을 돌아본 박귀희 명창이 자서전 '순풍에 돛달아라 갈길 바빠 돌아간다'에 남긴 회고담이다.박귀희는 뒷날 대구에서 대학 3년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을 만큼 대구에 국악 인생의 흔적을 남겼다. 물론 국악인의 대구 인연은 숱하다. 조선 8도에서 가장 넓은 경상도 중심으로, 감영이 자리하고 관찰사(감사)가 머문 데다 국악에 밝은 '귀명창'도 많은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특히 대구 국악은 이름난 예기(藝妓)를 통해 맥을 이어갔다. 기생조합과 달성권번(뒷날 대동권번)은 이들 양성소였다. 이들은 국악 공연은 물론, 국권을 되찾는 항일 항쟁과 교육 투자 등에 나선 의기(義妓) 활동도 이어갔다. 염농산 자매를 비롯해 김울산, 정칠성, 현계옥, 김연수 등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무엇보다 대구의 국악은 오랜 역사와도 맥이 닿아 있다. 대구를 둘러싼 경북은 신라 만파식적의 대금과 옛 가야의 가야금을 낸 땅이었다. 숱한 국악기 가운데 탄생 출처가 분명한 대금과 가야금의 발상지가 경북이다. 그런 경북의 중심이 대구였으니 대구경북은 국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을이다.이런 대구가 지난 2017년 11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이후 음악을 화두로 '일'을 벌이고 있다. 음악회를 열고, 정책을 개발하고, 지난 22일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대구포럼'도 개최했다. 정치·경제 등에서 활력을 잃은 대구 모습을 음악으로 바꾸는 일, 생각만 해도 반갑고 설렐 만하다.이왕이면 대구의 풍부한 국악 자산과 오랜 역사를 활용하자. 국립국악원 같은 전문기관의 유치도 좋다. 대구만의 국악 시설이라도 갖춰 동서의 음악이 물처럼 고루, 새의 두 날개처럼 짝이 되어 흐르는 음악창의도시로 거듭나면 좋지 않겠는가.

2019-11-2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김천과 철도

조선 중종 때 대제학까지 지낸 묵계 강혼은 경상감사로 지방을 순행하다 성주 관기 은대선과 각별한 정이 들었다. 작별이 아쉬웠던 두 사람은 김천 부상역까지 올라가 애틋한 밤을 함께 보냈다. 강혼이 그날의 정취와 정념을 '부상역춘야(春夜)'라는 시로 남겼는데 그 내용이 농염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도 김천도역 찰방으로 부임했다가 당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관직을 포기하고 팔도 유람에 나섰다.그렇게 실의와 좌절의 방랑길 끝에 탄생한 것이 '택리지'라는 인문지리서이다. 김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사모바위' 얘기도 김천역과 관련이 있다. 용두산(모암산) 위에 사모(관복 입을 때 쓰는 모자) 형상의 바위가 있어 과거 급제자가 많았다. 자연히 고관대작들의 고향 나들이가 잦아 역리들의 고초가 심하자 그 바위를 떨어트려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김천의 내력에서 역(驛)을 빼면 임자 없는 명월이 된다.고려시대부터 김천역, 부상역, 작내역, 장곡역 등이 등장했으며, 조선 초기 역참제 정비에 따라 김천역은 20여 개의 속역을 관장하는 도역(道驛)으로 부상했다. 중심 역인 도역에는 종6품 관리인 찰방이 부임해 역무를 관장했던 까닭에 김천에는 '찰방골'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 퇴역한 역마들을 모아 연자방아를 돌리게 했다는 '뒷방마'도 역에서 비롯된 마을 이름이다.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한반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김천은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하게 된다. 역촌(驛村)의 생성과 함께 시장이 형성되면서 김천시장은 전국의 5대 시장으로 번성했다. 삼도봉(三道峯) 자락의 김천은 경상·전라·충청 3도 특산물과 남해안의 해산물이 집결하는 백화점이었다. 김천의 철도와 역 특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위축되었다.KTX 시대를 맞이한 김천은 혁신도시 유치와 더불어 재도약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 또한 철도와 역의 역사적인 배경 덕분이다. 김천과 철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최근 김천시가 철도 관련 기업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철도산업의 메카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해와 서해 쪽으로 철도 연결도 추진하고 있다. 역참(驛站)의 내력이 1천 년에 이르는 김천의 굴기(崛起)가 예사롭지 않다.

2019-11-25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한민국 서민

"주로 서민들이 내놓았습니다. 잘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1997년 외환위기 이후 1천200억달러 나랏빚 갚자는 금모으기운동 당시 서울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며 국민은행의 금 감정 위촉인으로 활동했던 이광재 전 대표의 말이다. 지난 15일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가 연 'IMF 외환위기 극복 금모으기운동 학술행사'에 앞서 1998년 1월 13일 자 국민은행의 '금 감정인 위촉장'을 사업회에 기증한 자리에서다.이날 행사는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2주년 조명 및 국채보상운동기념일(2월 21일)의 대구시민의 날 지정 기념, 그리고 내년 2월 말까지 기념사업회가 벌이는 금모으기운동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 보관 활동 홍보를 위해 마련됐다.이날 행사에서는 금모으기운동 때 225t을 모아 22억달러 상당을 수출했고, 이는 2019년 한국은행 금 보유량 104.4t보다 많다는 발표(심재승)도 있었다. 또 금모으기운동은 국채보상운동처럼 사실상 대구에서 출발했고, 대구의 금모으기운동은 전국적인 명성의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 덕분에 성공적이었고, 이는 김대중 정부의 '제2 건국운동'의 표본이 됐다는 일화(한수구)도 소개됐다.1907년 빚 1천300만원을 갚으려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1천200억달러 외채로 빚어진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운동의 시작과 끝은 나라 잘못으로 진 빚을 백성이 호주머니를 털어 갚으려 나선 점과 모인 돈 규모에서 닮았다.1907년 인구 1천700만 명에 참여자 31만7천 명과 성금 20만원(추정)을 바탕으로, 1998년 4천700만 명 인구 중 351만 명이 동참해 모은 22억달러를 비교하면 그렇다. 국채보상운동 참여 인구 비율은 1.8%, 금모으기운동은 7.5%로 참여 인구는 늘었지만 모금된 돈은 1907년 전체 빚의 1.5%, 1998년은 1.8%였으니 말이다.참여자는 늘었지만 빚 규모에 비해 모인 정성의 비율은 비슷하다. 이광재 기증자의 증언처럼 '큰손'보다 서민이 많았다는 증언이 맞는 듯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서민이여, 그대들은 위대하도다.

2019-11-22 21:10:52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지소미아 파기 이후?

2002년 9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영남대에서 강연했다. 한 청중이 "왜 미국에 가지 않느냐. 반미주의자 아니냐"고 물었다. 노 후보는 "바빠서 못 갔다. 미국 한 번 못 갔다고 반미주의자냐"고 되물었다. 이어 한마디를 덧붙였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자주 외교를 표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안 된 2003년 3월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예상을 뒤엎고 노 전 대통령은 비전투병을 이라크에 파병했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한 일종의 거래였다"고 했다. 미국에 '반미주의자'로 낙인 찍힌 노 전 대통령이 이를 탈피하려고 미국 요청을 들어줬다는 분석도 있다.문 대통령 집권 2년 반 동안 망가지고 깨진 것이 숱한데 그중 하나가 한·미 관계다. 한국은 미국 요청을 뿌리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강행할 방침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 6조원을 내놓으라고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이 방위비 인상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미국이 협상 결렬을 핑계로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할 것이란 추측이 있던 터여서 예사롭지 않다.한·미 동맹(同盟)이 흔들리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잘못이 크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돈을 더 내라고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장사꾼' 트럼프 탓에 한국이 골병들게 생겼다. "미군, 갈 테면 가라" 등 한국에서 반미 분위기가 크게 확산한 것도 트럼프 탓이다.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 역시 한·미 동맹 균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믿음을 스스로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청와대는 "미국이 종료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지만 미국이 우려와 실망을 표시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한·미·일 3국이 연계된 안보 현안인 지소미아를 일본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쓰는 잘못을 저질렀다. 김정은에 경도된 대북 자세도 미국의 신뢰를 잃게 했다. 미국이 대한민국 기둥뿌리를 뒤흔들 카드를 50개 넘게 가졌다고 하는데 지소미아 파기 이후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2019-11-22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대통령의 '쇼통'

현대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對)국민 소통'으로 평가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fireside chat, 爐邊情談)은 1933년 3월 12일 라디오 전파를 탄 '은행 위기에 대하여'가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루스벨트는 민주당 소속 뉴욕주지사로 있던 1929년부터 그렇게 했다. 그 목적은 매우 정략적이었다. 주정부가 제출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도록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성격이 확 바뀌었다. 정적에 대한 정략적 공격의 수단에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소통의 장이 된 것이다. 노변정담은 엄밀히 말해 대담이 아니라 연설이었다. 이것이 '벽난로 앞에서 가족이나 친구끼리 편안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의 노변정담으로 불리게 된 것은 루스벨트의 참모 스티븐 얼리의 아이디어로 언론인 해리 버처가 두 번째 담화인 '유럽 전쟁에 대하여'의 보도자료에 그렇게 표현하면서부터다.루스벨트의 연설은 이런 명칭에 꼭 맞았다. 친구를 대하듯 정감 어린 말투로 주요 정책과 미국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현실 상황을 유리하게 포장하거나 정책 실패나 불리한 문제에 대해 변명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1942년 2월 23일 방송된 '전쟁의 경과에 대하여'는 좋은 예다. 연설에 앞서 루스벨트는 전 국민에게 세계지도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미국이 세계 어디에서 싸우고 있으며 현재 전황은 어떻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변정담의 청취율이 평시 18%, 전시 58%로 당시 인기 절정의 라디오 쇼보다 높았던 것은 이런 진정성 때문이었다.19일 방송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인내심을 시험할 좋은 기회였다.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끄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나 억누르게 한, 시쳇말로 '자뻑'의 '쇼통'이었기 때문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첫 단어만 들어도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됐는데 똑같은 말로 국민을 다시 '고문'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권한다. 진정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하고 싶으면 노변정담의 원고라도 구해 읽어보라고 말이다. 어떤 것이 '소통'인지 알게 될 것이다.

2019-11-21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금호강 수달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 아마존에는 수많은 생물이 산다. 어떤 종류의 동식물이 얼마만큼 아마존에 서식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학계에서는 대략 200만 종의 생물이 아마존에 기대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생물종은 어림잡아 1천500만 종에 이를 것으로 학계는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록된 종은 약 170만 종에 불과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한 생물보다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생물이 지구에 훨씬 더 많다는 소리다. 이로 볼 때 아마존은 생물다양성이 아주 높은 열대우림지역 이른바 '핫 스팟'(Hot Spot) 가운데 하나다. 중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아마존 서부, 동남아 열대우림 지역이 대표적인 핫 스팟이다.그러나 아무리 많은 생물종이 지구에 존재하더라도 그 다양성이 빠르게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이 부지기수다. 20세기 들어 생물종의 멸종 속도가 이전과 비교해 50~100배 빨라졌다는 보고는 지구의 생물종이 처한 상황을 말해준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구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를 꼽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수달'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의 하나다. 수질오염 등 환경의 변화와 남획이 수달 개체수 감소의 주원인이다. 현재 대구 주변 하천에서 사는 수달은 모두 24마리다. 지난해 대구시가 조사했더니 신천 8마리, 금호강 7마리, 동화천 7마리, 팔거천 2마리로 확인됐다.특히 서식지 면적 대비 수달의 개체수가 크게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개체수가 적다는 말은 유전자 다양성 문제와 바로 연결된다. 이런 차에 작년 8월 전남 무안과 여수에서 구조된 암수 수달 두 마리가 그제 금호강 안심습지에 방사됐다는 소식이다.국립생태원과 대구시는 풍부한 먹이 자원과 양호한 서식 조건을 들어 안심습지를 수달 방사 최적지로 판단했다. 현재 11만㎡ 규모의 안심습지에는 수달과 삵, 백로, 황조롱이 등 동물 176종, 식물 198종이 산다. 대길이와 구순이, 새 수달 가족의 대구 이주는 금호강 생물다양성 확대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하고 식구 수도 빨리 늘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11-2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또 망가진 유시민

나치 치하의 독일 국민은 항상 불안에 떨었다. 감시의 눈을 번득이는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언제 체포·구금될지 몰랐다. 하지만 그 감시망의 구축은 게슈타포 정규 인력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치즘을 전공한 미시시피 주립대학의 로버트 젤라틀리 교수에 따르면 1939년 게슈타포의 전체 인원은 독일 전체로 7천 명밖에 안 됐다.이 정도의 인원으로는 독일 국민 모두를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게슈타포는 엄청나게 잘 돌아갔다. 바로 일반 국민의 끊임없는 제보와 밀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감시 체제를 떠받친 기둥은 일반 국민이었던 것이다.구 동독도 다르지 않았다. 동독의 보안기관 슈타지(Stasi·국가안전보위성)의 규모는 매머드급이었다. 동독이 붕괴하기 직전인 1990년 10월 31일 현재 정규 요원은 9만1천 명이었다. 이는 국민 180명당 1명으로 세계 최대였다. 절대 규모에서 세계 최대 정보기관인 소련의 '카게베'(KGB·국가보안위원회)는 600명당 1명이었다.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일반 국민인 '비공식 요원'이었다. 동독 주민 10명당 1명이 이들이었으며, 가장 많을 때는 17만4천200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11살짜리도 있었다. 슈타지는 이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 놓은 목적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훌륭한 비공식 요원이 있으면 우리는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다 알아야 한다."('슈타지: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통일연구원)'조국 사태' 와중에 제대로 망가졌다는 비아냥을 듣는 유시민 씨가 또 망가지는 소리를 했다. 16일 대구에서 한 강연에서 "조국 사태를 통해 우리는 언제든 구속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언제든 구속될 수 있으려면 우리 검찰이 게슈타포나 슈타지 정도 밀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금 검찰이 그런가?더 못 참겠는 것은 유 씨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을 범죄자로 몬다는 점이다. 언제든 구속될 수 있으려면 그런 죄가 있어야 한다. 조국 일가는 죄를 지은 것은 물론 증거를 인멸하려 했기 때문에 구속됐다. 유 씨의 '우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구속을 걱정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2019-11-1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曺國) 탓에 위험해진 조국(祖國)

1950년 1월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애치슨라인'을 발표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적화(赤化) 야욕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애치슨라인 밖으로 밀려났고, 2주 후 스탈린은 북한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범해도 좋다는 신호를 줬다. 애치슨라인이 6·25전쟁 도화선이 됐다.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이 23일 0시 정식 종료될 가능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국방장관에게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지소미아 연장 조건으로 내건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해 미국에 통보했다. 역사·경제 문제로 촉발한 한·일 갈등이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비화했다.날로 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지소미아는 한·미·일 삼각 군사 동맹의 상징이다. 지소미아 종료를 한·일 문제만이 아닌 한·미 간 문제로 봐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전방위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지소미아 종료 원인 제공자는 수출 규제를 한 일본이다. 그러나 종료 카드를 꺼낸 것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다. 지난 8월 조국 사태가 터지자 반일(反日) 카드로 여론을 돌리려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했다는 의심을 샀다. 그때엔 나라의 운명을 한 장관 후보자와 맞바꿀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조국을 건지려고 무슨 일도 감행하는 정권의 행태에 조국 구하기 카드라는 합리적 의심을 굳히게 됐다. 조국(曺國) 탓에 조국(祖國)이 위험해지는 기가 막힌 상황이 현실로 닥쳐온 셈이다.미국 요구를 무시하고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미국에서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걱정이다. 한국이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신(新)애치슨 선언'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69년 전엔 미국이 한국을 애치슨라인 밖으로 내몰아 6·25가 일어났는데 이번엔 우리 스스로 미국 방위선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조국 사태가 이 나라의 안보까지 뒤흔들고 있다.

2019-11-1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페스트

14세기 중반, 유럽 전역에 이상한 역병이 돌자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134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돼 1351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이 역병이 온 유럽을 휩쓰는 동안 2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유럽인은 이를 '신이 내린 형벌'로 인식해 기도와 금식으로 이겨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인류 역사상 최악의 돌림병인 이 '흑사병'은 '옐시니아 페스티스'라는 균에 의해 발병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이다. 쥐와 쥐벼룩을 숙주로 한 페스트균에 감염돼 3~6일의 잠복기가 지나면 가슴 등의 통증과 기침, 각혈, 호흡곤란, 고열에 시달리다가 사망한다. 내출혈 때문에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겨 '흑사병'(黑死病)이라 불렸다.중세 유럽의 페스트는 몽골의 서방 원정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당시 많은 사람과 중앙아시아·중국 등에 서식하던 쥐들이 유럽으로 이동하면서 페스트를 확산시켰다는 가설이다. 페스트 때문에 당시 유럽 인구의 20%, 많게는 3분의 1이 줄었다. 유럽이 페스트 이전 인구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300년이 걸렸다는 통계도 있다.당시 페스트가 유행하는 지역에서는 사람과 물자가 들어오면 따로 격리했다. 처음에는 30일간 격리하다가 40일(quarantenaria)로 늘렸는데 영어의 '검역'(quarantine)의 기원이다. 목욕을 하면 모공으로 균이 침투한다는 인식이 퍼져 목욕을 멀리하는가 하면 '신의 분노'를 가라앉힌다며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처형하기도 했다.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서 페스트 환자 2명이 확인돼 격리 치료 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환자들은 네이멍구 자치구 거주자다. 현재 북미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콩고 등도 페스트 발생 지역으로 보고돼 있다.질병관리본부는 그제 "페스트의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작고 항생제 비축 등 대응 역량이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감염되어도 2일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국내에서 발병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스트는 작은 포유동물과 접촉해도 전파되기 쉬워 감염지역 여행 시 특히 조심해야 한다.

2019-11-15 19:37:36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정권의 거짓말

카를하인츠 쿠라스. 1967년 6월 2일 서베를린의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팔레비 이란 국왕의 서독 방문을 항의하는 대학생 시위대의 일원인 베노 오네조르크(당시 26세)를 권총으로 사살한 서독 경찰관이다. 이 사건으로 학생 시위는 극좌화되면서 서독 전역이 혼란에 빠져들었다. 쿠라스는 동독의 독일사회주의통합당의 비밀 당원이자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의 첩자였다.'콘크레트'(konkret)는 소프트 포르노와 좌파 정치를 결합해 1960년대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서독의 잡지이다. 발행인인 클라우스 라이너 뢸의 부인이 극좌 폭력단체인 적군파(赤軍派) 단원 울리케 마인호프이다. 콘크레트는 1965년에서 1968년 사이 동독에서 200만 도이치마르크라는 거금을 지원받았다. 편집 방향에 대한 동독의 조종·통제와 함께.이는 냉전 시대 동독에 침투당한 서독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90년 독일 통일 때까지 서독에서 암약한 동독 스파이는 무려 3만여 명으로 서독 사회의 전 영역에 침투해 있었다. 이런 사실은 통일 후 슈타지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당시에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쿠라스가 슈타지의 첩자였다는 것도 2009년에야 드러났다.그러나 바로 공개된 것도 있었다. 1974년의 '귄터 기욤 사건'이다. 기욤은 1956년 난민으로 위장해 동독에서 서독으로 잠입한 골수 공산주의자로, 빌리 브란트 총리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이용해 브란트의 비서가 된 후 서독의 비밀 정보를 빼내 동독으로 보냈다. 이런 '활약'은 서독 방첩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의 1년에 걸친 수사로 발각됐고, 브란트 총리는 사임해야 했다.문재인 정권이 북한 선원 2명을 강제 북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남쪽으로 넘어온 후 정부 합동조사에서 귀순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도 통일부 장관은 이들이 죽더라도 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는 만약 문재인 정권 내에서 '귄터 기욤 사건'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문 정권은 어떻게 했을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한 선원 북송에서 드러난 문 정권의 비밀주의와 거짓말은 이렇게 추론케 한다. '덮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2019-11-1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文정권이 잘한 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에 맞춰 정부가 '문재인 정부 2년 반, 이렇게 달라졌습니다'라는 정책 홍보 자료를 발표했다. 새로운 남북 관계의 토대 마련, 인구 5천만·국민소득 3만달러를 뜻하는 '3050클럽' 가입, 주변 4국과 당당한 협력 외교 추진, 고용 상황 개선 등을 자랑거리라며 늘어놨다. 성찰·반성은 없이 허무맹랑한 포장·자랑에 낯이 화끈거릴 정도다. 정부는 물론 문 대통령과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의 자화자찬을 보며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란 말이 떠올랐다.2년 반 전 취임사 약속 중 문 대통령이 확실하게 지킨 것이 하나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국민에게 안겨준 것이다. 정치, 경제, 외교·안보, 대북 문제, 교육, 국민 통합 등 국정 모든 분야에서 실패와 부작용이 산처럼 쌓였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살게 됐고,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을 향해 "이건 나라냐"고 따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모든 일에는 빛과 그늘이 있듯이 찾아봤더니 역설적이게도 2년 반 동안 문 정권이 잘한 것도 없지 않다. 우선 '조국 사태'를 계기로 좌파의 민낯을 국민에게 각인시켜 줬다. 어떤 잘못이 있더라도 자기편이면 쌍지팡이를 들고 옹호하는 후안무치, 입에 달고 다니던 평등·공정·정의를 시궁창에 던져 버리는 좌파의 실체를 국민이 잘 알게 됐다.대통령 탄핵으로 지리멸렬해진 우파를 다시 깨어나게 하고 결집하게 한 것도 문 정권의 공적(功績) 중 하나다. 나라를 잘 이끌었다면 누구 말처럼 우파는 궤멸했을 것이다. 그러나 멀쩡한 나라를 망가뜨리고 부순 탓에 우파가 다시 설 기회를 잡았다. 좌파의 전유물이던 '광화문 집회'를 우파가 이뤄내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문 정권 덕분이다.나라를 맡기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국민 대다수가 뼈저리게 간직하게 된 것도 문 정권이 이바지한 바다. 탈원전이 전기요금 인상 청구서로 돌아오게 된 것처럼 사탕발림 약속에 현혹돼 표를 줬다가는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무엇보다 세대와 계층, 지역을 망라해 이 나라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걱정하는 '우국(憂國) 국민'을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한 것을 문 정권의 최대 공적으로 꼽고 싶다.

2019-11-14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선상 반란

작가 박종윤의 중편 '양들의 반란은 깃발이 없다'는 선상 폭동을 다룬 해양소설이다. 물질주의에 매몰된 현대사회의 단면과 인간의 이기심이 부추기는 적나라한 현실을 선상을 배경으로 생동감 있게 그렸다. 1789년 남태평양에서 일어난 '바운티호 선상 반란'은 세계 해양사상 유명한 사건이다. 반란을 일으킨 동기의 특이성과 드라마틱한 과정 그리고 최후의 비극성 때문에 문학 작품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선장의 독선적인 항해 방침과 지상낙원 같은 타히티 섬에 안주하고 싶은 선원들의 불만, 망망대해에 구명 보트로 내쫓긴 선장 일행의 40여일만의 구사일생, 반란자 추적 색출과 난파, 남은자들의 도피와 수난 행각이 마치 소설 속의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항해 중 선상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부딪히는 극도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의 선택 또한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우리에게 최악의 선상 반란은 '페스카마호' 사건일 것이다. 1996년 여름 남태평양 사모아섬 부근 해상에 있던 원양어선 페스카마호에서 벌어진 일이다. 조선족 선원 6명이 열악한 작업 조건과 강제 하선에 반발해 한국인 7명을 포함한 선원 11명을 무참히 살해한 것이었다. 흉기로 찔러 바다에 버렸는가 하면 냉동창고에 가둬버리기도 했다.반란자들은 배를 탈취해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에게 제압되면서 국내로 끌려와 중형을 선고 받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페스카마-고기잡이배'라는 이름의 연극으로도 제작돼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최근 동해상의 북한 오징어잡이 배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선장과 동료 선원 16명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남쪽으로 쫓기던 북한 선원 2명이 우리 해군에 붙잡혔다는 것이다.그런데 그 오징어잡이배에서 정녕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 정부 당국의 조사를 받자마자 북한 선원들은 왜 또 그렇게 전격적으로 북으로 추방되었는지, 국민들은 궁금할 따름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와관련 국정조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를 맡았던 페스카마호 사건 범인들에 대한 입장과 너무도 상반된다는 것이다. 그저 쉬쉬하기만 하니 모든게 의문투성이다.

2019-11-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수능 샤프

프로야구 선발 투수에게 등판을 앞둔 하루 이틀은 매우 예민해지는 시기다. 평소의 루틴대로 경기를 준비하는데 동료가 말을 거는 것도 조심스러울 만큼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경 쓰는 선수가 많다.류현진 선수도 등판이 다가올수록 말수가 점점 더 적어지고 주변에서 일으키는 작은 소음에도 신경 쓸 정도로 예민해진다고 한다. 얼마 전 시즌 도중에 동료 클레이튼 커쇼가 류현진의 등판 날 로커룸에서 의자 끄는 소리를 냈다가 바짝 긴장했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다행히 류현진이 승리해 커쇼도 한시름을 덜었다고 한다.14일 수능 시험장에서 배부될 샤프 펜슬 교체에 대한 소문으로 일부 수험생들이 술렁댄 것도 같은 경우다. '수능 당일 어떤 샤프를 쓰느냐'는 수험생에게는 민감한 문제여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에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오를 정도였다. 하지만 당국은 부정행위 가능성을 염려해 샤프 제조사나 종류에 대해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수능 수험생에게 소위 '수능 샤프'가 처음 배부된 것은 2006년 수능이다. 2005학년도 수능 때 발생한 '수능폰' 사건의 여파다. 휴대폰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간 광주의 일부 수험생들이 외부에서 정답을 중계하다 적발된 사건으로 314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되고, 일부는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이후 수능 시험장 반입 금지 품목에 모든 전자기기와 개인 필기구가 포함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CI 디자인이 박힌 샤프만 쓰도록 했다.수능 샤프는 2011학년도 수능만 빼고 13년간 한 업체가 납품해왔다. 자연히 수험생들은 모의고사 등에서 동일한 샤프를 미리 사용해보고 손에 잡히는 감각이나 소리 등에 익숙해지게 된다. 수능만 되면 갑작스레 추워지는 '수능 추위'와 마찬가지로 필기구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평가원의 입장대로 수능 샤프 공개에 따른 부정행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소한 부분도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수긍하는 자세다. 아무리 큰 시험이라 하더라도 환경 변화를 이겨내는 것 또한 시험의 한 부분이다. 모두 최선을 다한 수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11-12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 사과 120년

"네 녀석 고향이 어디지?" "경북 대구입니다." "대구란 게 어느 구석에 있냐 말야!" "부산에서 열차로 서너 시간가량 달리면 대구인데, 사과 생산지로 유명합니다."대구 동촌면 입석동의 독립운동가 이갑상이 일본군 징병 제1기생으로 만삭의 아내와 헤어져 북지(北支·중국 만주)로 끌려가며 50명이 짐짝처럼 탄 4등 군용열차에서 일본인 하사관의 물음에 대답했다. 대륜중학교에 다니던 20세 외아들로 1944년 9월 20일 대구역을 떠나 용산역에 내려 '황군'(皇軍)이 되어 다시 열차로 사지(死地)로 가던 중이었다.그는 세 차례 실패 뒤 1945년 2월 1일 탈출하나 3월 30일 잡혀 4월 28일 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을 받아 서대문형무소 옥살이 중 광복으로 풀려났고, 1975년 회고록 '백의(白衣)의 향가(鄕歌)'에 대구 사과 사연을 남겼다. 이처럼 옛 대구는 사과로 통했는데 대구의 서양 사과 역사는 1899년 외국인 선교사가 남산동 동산병원 사택에 심은 때부터다. 우리 능금(林檎) 역사는 더 오래지만.사과 재배에 적합한 대구는 좋은 돈벌이 터였음은 일본인 기록이 증명한다. 미와 조테츠는 1910년 '조선대구일반'이란 책에서 "대구에 와서(1903년 9월)…땅을 사자마자 곧바로 사과나무 5그루를 심었다. 나와 같은 해 혹은 그 이듬해부터 사과를 심는 일본인이 늘어나 지금은 대구의 대표적 산물이 됐다"고 했다. 가와이 아사오는 특히 1930년 '대구물어'에서 1904년부터 상업적 사과 재배에 나선 일본인 소개 뒤 일본인이 "대구 사과의 성가(聲價)를 올리는데 앞장섰음은 저명한 사실"이라 자찬했다. 1943년 대구부는 '대구부사'에서 "대구의 과수 재배는…능금의 산출액이 가장 많고, 대구 능금은 한국 내는 물론 일본 및 중국 쪽의 시장까지 진출했다"고 밝혔다.대구 사과가 이랬으니 이갑상 대답은 그럴 만하다. 이런 대구 사과의 명성과 역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2일 대구 평광초등학교에서 '대구 사과 120주년 기념 역사 문화행사'가 열렸다. 행사를 연 최주원 광복소나무사랑모임 회장은 "대구에 '사과 역사문화체험관'을 만들기 위해 건립 추진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고 밝혀 관심이다. 옛날과 다르지만 대구 사과 명성을 이어가려는 평광동 사람의 활동이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9-11-1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장관 패싱'

북한 주민 2명이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데 대해 정경두 국방장관이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이 사건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대대장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JSA 대대장이 장관 등 보고 체계를 건너뛰고 청와대에 직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국방장관 패싱'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임기 반환점을 맞은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는 부정적 단어들이 숱하지만 그중 하나가 '장관 패싱'이다. 문 정부 장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패싱(passing)을 당했다.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북한이나 미국, 심지어 자기 부처 안에서조차 열외(列外) 취급을 당하고 있다.경제·사회부총리부터 패싱 논란에 휩싸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를 두고 정치인 출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밀린 것 아니냐는 우려를 샀다. 또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 대비 40% 선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40%의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자 "40%는 불변의 기준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바꿨다.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던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방안은 며칠 만에 당·정·청 협의에서 없던 일이 됐다.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대학입시와 관련, 정시 확대를 강조하자 교육부 패싱 의혹이 쏟아졌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정시 확대는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교육정책의 핵심인 대입제도를 뒤엎는데도 장관이 까맣게 몰랐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장관은 청와대와 미국 정부로부터, 통일부 장관은 북한으로부터 툭하면 패싱을 당하고 있다.'장관 구인난'으로 개각을 못한다는 말까지 있다.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가 정쟁화돼 좋은 사람을 발탁하기 어렵다. 실제로 고사한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핵심을 정확히 짚지 못했다. '청와대 정부' 국정 운영으로 '장관 패싱'이 만연해 장관을 하려는 사람이 사라진 탓이 더 크다.

2019-11-09 06:30:0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