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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고용 통계 왜곡

[야고부] 고용 통계 왜곡

올해 2월 취업자는 지난해 동월 대비 47만3천 명 줄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후 역대 세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1월에 비해 (2월) 취업자 수가 53만 명 늘어났다"며 "고용 상황이 개선 흐름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낙관했다. 세금 투입형 일자리를 가동하지 못했던 올해 1월보다 2월 사정이 덜 나쁠 뿐인데,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문재인 정부 들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195만 개 사라졌다.(2017년 2천84만 명→작년 1천889만 명) 반면, 주 4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는 213만 명 늘어났다. 이 둘을 합해 문 정부 3년간 전체 취업자는 18만 명 증가했다. '온전한 일자리'는 대거 사라지고 정부가 세금으로 만든 단기 일자리만 크게 늘어났음에도 '수치상 18만 명 증가'를 근거로 '정신 승리'하는 것이다.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20만~30만원을 지급하는 노인 일자리는 2017년 44만 개였다. 지난해에는 74만 개로 늘어났다. 올해는 80만 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노인 일자리를 포함해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단기 알바성 일자리는 2017년 61만7천 개에서 올해 104만 개로 확대된다.OECD가 집계한 15세 이상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을 보면, 우리나라는 2017년 65.1%, 2018년 63.0%, 2019년 62.0%, 작년 58.6% 등으로 빠르게 떨어졌다. OECD 35개국 중 하락 폭이 가장 큰 국가군에 속한다.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노인이나 청년을 위한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세금 투입형 일자리'를 마구 늘려 고용 통계를 왜곡하는 것은 문제다. 기업이 만든 주 40시간 이상 일자리 1개와 세금으로 만든 주당 15시간 안팎의 노인 일자리 1개가 동일한 1개로 분류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세금 투입형 단기 일자리를 자꾸 늘림으로써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좋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국가 경영을 '운'(運)에 맡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2021-03-27 05:00:00

[야고부] ‘조선구마사’ 논란

[야고부] ‘조선구마사’ 논란

링컨이 흡혈귀 사냥꾼이었다고? 2019년 미국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이하 '링컨')의 스토리다. 할리우드 거장 팀 버튼이 제작했으니 '듣보잡급' 영화도 아닌데 설정이 참 황당하다. 어머니가 괴한에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은 링컨이 복수에 나섰는데 원수가 뱀파이어라는 것이다. 링컨은 혹독한 수련 끝에 뱀파이어 헌터로 거듭나고 뱀파이어 조직과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이다.'링컨'을 연상시키는 한국 드라마가 있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다. 이 드라마에서 태종과 세종은 조선을 위협하여 멸망시키려는 사악한 악령으로부터 백성을 지키려고 맞선다. 그런데 방송 첫회가 나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방송 중지 국민 청원마저 올라가는 등 파장이 커지자 드라마 광고주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가고 문경시도 제작 지원을 철회했다.'링컨'이 이와 유사한 시비에 휘말렸다는 기억은 없다. 그런데 '조선구마사'가 논란을 빚는 연유는 무엇일까. 일각의 주장처럼 우리 국민들이 드라마를 드라마로 못 받아들이는 별난 기질을 지녀서인가. '링컨'과 '조선구마사'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뱀파이어 헌터로서도 링컨은 여전히 멋있다. 영화는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히어로로 그려내고 있다.반면 '조선구마사'에서 세종은 이미지가 제대로 깎였다. 언행이 가볍고 효심 빈약한 인물로 묘사된다. 시청자들은 조선왕조의 시작을 모욕하려는 연출 의도가 드라마에 엿보인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충무공과 국민 존경 1·2위를 다투는 세종의 '까방권'(까임 방지권)을 드라마가 훼손하니 국민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드라마 작가의 전작에서도 한국 역사에 대한 혐오와 비하, 중국의 동북공정 옹호가 있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후폭풍이 더 커지고 있다.SBS는 '조선구마사' 내용을 대폭 수정해 방송을 이어 나갈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사태가 너무 커졌다. 퓨전 시대극이라고 해도 왜곡할 내용이 있고, 넘어서 안 될 선이 있다. 영화 '나랏말싸미'처럼 신미 스님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주장하면서 세종의 업적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거북선이 최첨단 잠수함으로 변신해 왜군을 신나게 격파하더라도 충무공이 멋지게 나온다면 국민들로서 화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2021-03-26 05:00:00

[야고부] ‘문재인 시대를 살아보니’

[야고부] ‘문재인 시대를 살아보니’

'백년을 살아보니'. 1920년생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016년 출간한 책이다. 직접 백 년을 살아보니 삶이 이렇더라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이 담겨 있다. 책에서 김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했다. 60세부터 세상사를 두루 이해하며, 75세까지는 얼마든지 정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올해 101세가 된 김 교수와 61세로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만난 게 장안의 화제가 됐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2주간 자택에서 칩거하다 첫 나들이 대상으로 원로 철학자인 김 교수를 만났다. 윤 전 총장 부친과 김 교수가 친분이 깊은 데다, 윤 전 총장이 김 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게 만남의 계기가 됐다.40년 터울인 두 사람의 대화에서 반가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윤 전 총장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에 김 교수는 "지금 청와대나 여당에서 꺼내는 이야기는 국민 상식과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화답했다. 공정과 정의, 애국심도 대화의 소재가 됐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의미가 변질됐고, 실종됐고,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진 단어들이다. 문 정권 인사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단어들이 두 사람 대화에 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김 교수의 "편 가르기를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시선을 끌었다. "정의는 정의고 불의는 불의인데 편 가르기를 하면 잣대가 하나가 안 된다"고 했다. 문 정권의 편 가르기에 고초를 겪었던 윤 전 총장으로서는 가슴에 와 닿는 조언이었을 것이다.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늙은 말이 길을 잘 찾아간다는 뜻이다. 오랜 인생 역정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혜가 소중하다는 비유들이다. 1세기가 넘는 삶을 산 김 교수로부터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이 정치는 물론 인생의 지혜도 터득했기 바란다.사족(蛇足)을 달면 김 교수 책에서 불현듯 문 정권 4년을 결산하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문재인 시대를 살아보니'다. 우리 국민이 이런 제목으로 각자 책을 쓴다면 어떤 단어들과 내용이 들어갈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2021-03-25 05:00:00

[야고부] 여론의 진실

[야고부] 여론의 진실

역사 속 왕조의 끝은 대체로 좋지 않다. 그래서 뒷날 사람은 옛사람의 일을 거울로 삼아 경계로 삼기도 한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언행을 삼가고 작은 징조나 조짐에도 새삼 마음을 다지곤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일쑤이고 역사는 그렇게 굴렀다.옛사람이 앞날을 알지 못하니 흔히 점(占)을 친 까닭도 그렇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구려 보장왕 시절 추남이란 점치는 사람 이야기와 백제 의자왕 당시 무당의 점 설화는 의미가 있다. 나라의 흥망과도 연결된 탓이다. 물론 전하는 이야기를 뒷날 고려 때 기록한 것이라 논란도 있겠지만 그래도 곱씹을 만하다.왕이 함 속에 쥐를 넣어 추남에게 맞히게 했더니 '쥐 여덟 마리'라고 했다. 그런데 쥐는 한 마리였다. 추남을 죽이고 쥐의 배를 가르니 새끼 일곱 마리가 나왔다. 죽은 추남이 신라 땅 김유신으로 태어나자, 고구려는 첩자 백석을 보내 그를 죽이려 했지만 되레 백석이 죽고 고구려는 나라까지 망하게 된 사연의 설화이다.또 백제에서 귀신이 '백제가 망한다'고 외치고 땅속으로 들어가자, 파 보니 거북 한 마리가 나오고 등에는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이 있었다. 왕은 무당이 '보름달은 가득 찬 것이니, 차면 이지러지고 초승달은 차게 된다'는 점을 치자 그를 죽였다. 다른 사람이 '보름달은 성하고 초승달은 미미하다'고 하자 기뻐했으나 나라는 망했다.요즘은 이런 점의 역할을 여론이 대신하기도 한다. 여론은 국민의 마음이 담긴 민심의 흐름인 만큼 선거나 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숱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마음을 읽고 정치에 나서고 정책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 그러나 두 왕조의 점 설화처럼 나쁜 여론은 흔히 무시된다.지금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조짐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나쁜 여론이 여럿이지만 당·정의 지도자는 이에 무딘 듯하다. 몇몇 지도자는 되레 더 당당하다. 그러나 비록 죽음을 맞았지만 점을 친 두 사람은 점의 진실을 말하고 역사에 남았듯이 지금의 여론 역시 정부·여당 사람의 외면에도 뒷날 진실을 말할 것이다. 여론의 진실은 4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선거로 드러날 것이다. 봄 같지 않은 요즘이라 갑갑하지만 그래서 참고 기다릴 만하다.

2021-03-24 05:00:00

[야고부] 국내행 ‘추추 트레인’

[야고부] 국내행 ‘추추 트레인’

프로야구가 지난 20일부터 시범 경기로 2021 시즌 대장정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올 시즌 프로야구는 제대로 된 볼거리 하나를 추가했다.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 야구 선수로 꼽히는 진정한 메이저리거 추신수(39·SSG 랜더스)의 등장이다. 등번호 17번과 고가의 시계 선물, 방망이 무게 등 그와 관련된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화제다.지난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 훌리오 프랑코라는 외국인 선수가 있었다. KBO리그 사상 역대 최고 용병 반열에 오른 그는 실력 못지않게 엄격한 개인 관리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술, 담배는 물론 청량음료를 피했고, 단백질 위주 하루 7차례 식사 등 규칙적인 생활, 운동 태도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때 나이가 42세(메이저리그에 1958년생으로 등록)였다.삼성에서 한 시즌 뛴 프랑코는 심판진의 견제 속에서도 132경기 타율 0.327, 22홈런, 110타점, 79득점, 12도루를 기록하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메이저리그 통산(23시즌), 일본 프로야구 통산(2시즌) 타율도 각각 0.298로 빼어나다.추신수는 KBO리그 출신으로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온 그간의 타자들과는 경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는 부산고 졸업 후 곧바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16시즌 통산 타율 0.274, 홈런 218개, OPS 0.823(출루율 0.376+장타율 0.447)을 기록했다.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로는 유일한 통산 200홈런 달성자이며 2018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올스타에 이름을 올렸다.미국행 '추추 트레인'이 은퇴를 저울질할 때인 한국 나이 마흔에 국내에서 운행에 들어갔다. 잘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질 것이고 못하면 비난받을 게 뻔하다. 그는 21일 NC 다이노스와의 시범 경기 첫 경기를 3타수 무안타, 삼진 2개로 시작했다.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선 첫 안타로 경기 감각을 조율했다. 볼넷과 삼진 후 세 번째 타석에서 중전안타로 진루했고 홈까지 밟아 득점을 올렸다.2년째 계속되는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야구팬들에게 추신수가 보일 야구 품격은 어느 정도일까. 그는 KBO리그에서도 화려한 발자취를 남길 것이다.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kgs@imaeil.com

2021-03-23 05:00:00

[야고부] 적반하장의 생활화

[야고부] 적반하장의 생활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뜻을 모르는 사람도 드물지만, '적반하장' 상황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적반하장'은 매우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해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내부자 거래) 의혹에 국민의 비판이 쏟아지자, LH 직원이 "우리는 부동산 투자하지 말란 법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럴듯도 한 말이었다.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잡겠다'며 온갖 정책을 쏟아낼 때 서울 흑석동 건물을 사고팔아 1년 5개월 만에 8억8천만 원의 시세차익을 냈다. 대통령 딸은 집을 사고팔아 1년 9개월 만에 1억4천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여러 명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신도시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말하자면 LH 직원은 "저 사람들은 다들 무탈을 넘어 잘만 살고 있는데, 왜 우리만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느냐"고 항변한 것이다.변창흠 현 국토교통부 장관을 2019년 4월 LH 사장에 임명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감사 분야 전문성이 없는 사람을 2018년 3월 LH 상임감사위원에 임명해 결과적으로 '직원 비리'를 방치하게 한 사람도 문 대통령이다. 논란이 된 3기 신도시 사업을 계획, 추진한 것도 문 정부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이번 LH 사태와 관련, "우리 정부는 여러 분야에서 적폐 청산을 이루어왔으나 '부동산 적폐' 청산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정도 당당함은 있어야 하는데, LH 직원들은 징징거리기나 하니 아직 멀었다.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문제 원인 분석이 빠르고, 처방은 과감하며, 태도는 당당하다. 일자리 감소는 기업 탓, 북한 문제 실패는 탈북민 전단 탓, 조국 사태는 검찰 탓, 윤미향 사태는 언론 탓, 부동산 값 폭등은 국민 욕심 탓,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은 감사원의 월권 탓임을 단번에 파악했다. 이 적폐들을 잡는 처방은 과감하게 몽둥이를 드는 것이었다. 기업 두들겨 잡는 법, 대북전단금지법, 검찰 수사팀 해체, 온갖 대출 규제, 관례 무시한 법관 인사,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추진 등등. 적폐 청산 과정에 저항과 출혈도 있었다. 하지만 문 정부는 흔들리지 않았고 마침내 '적반하장'이 '일상'이 되는 신세계를 열었다.

2021-03-22 05:00:00

[야고부] 대주교의 유언장

[야고부] 대주교의 유언장

지난 14일 선종(善終)한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681자에 이르는 유언장 전문 가운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하늘나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교관 구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묻혀서 많은 사람이 자주 나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울림이 가슴 깊은 곳까지 닿는다.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자존심 구겼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비는 게 세상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이름값 때문에 화를 당한다. 유언장을 통해 본 이 대주교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도 초월한 듯 느껴졌다.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이지만 과하면 좋지 않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타인의 관심, 인정, 칭찬 등을 통해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평판은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심한 갈증을 부른다.이 대주교의 바람과 달리 남은 자들로서는 그를 아름답게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천주교대구대교구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 드리운 그늘은 너무나 크다. 천주교대구대교구의 현 모습을 사실상 정립한 그는 최고위급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했다. 10여 년 전 우연찮게 가까이서 뵀던 필자 기억 속 그의 모습도 그랬다. 은퇴 후 행적도 빛났다. 당신이 암 환자였음에도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암 말기 환자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이 대주교의 유언장을 보면서 떠오른 문구가 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법구경) 그의 유언을 되새기면서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절로 두 손을 숙연히 모았다. 대주교님 뜻, 잊지 않겠습니다. 하느님 품에서 안식하시기를.

2021-03-20 05:00:00

[야고부] “우리 이성윤 총장님”

[야고부] “우리 이성윤 총장님”

동종교배는 같은 종끼리 수정 또는 수분을 하는 것을 일컫는 유전학 용어다. 동종교배를 지나치게 반복하면 유전자에 결함이 생겨 종이 사멸(死滅)하기까지 한다. 동종교배의 폐해는 자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도 적용된다.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동종교배가 심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가장 좋은 성과를 낸 당·정·청"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국민 눈에는 동종교배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낸 정권으로 보일 뿐이다. 청와대 참모진들과 장·차관은 물론 법원·검찰, 국회, 공공기관까지 같은 편끼리 자리를 주고받는 동종교배가 난무한다.문 정권의 동종교배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리가 검찰총장이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며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했다. 우리라는 말에서 같은 편, 끼리끼리, 동종교배라는 냄새가 짙게 풍겼다.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박살 낸 윤 전 총장은 문 대통령에게 확실한 우리 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대통령과 정권에 칼을 들이밀자 문 대통령의 윤 총장에 대한 우리 편 환상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동종교배라는 포인트를 갖고 차기 검찰총장을 유추해 보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유력하다. 문 대통령에게 이 지검장을 능가하는 우리 편은 없어서다. 이 지검장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 정권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뭉개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눈엣가시였던 윤 전 총장을 쫓아내는 데도 적극 협력했다. 선후배 검사들로부터 "당신도 검사냐"는 비판까지 받는 이 지검장이지만 문 대통령 처지에서는 검찰총장을 맡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 지검장은 2019년 검사가 가짜 공문서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려 하자 압력을 가해 수사를 막은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다. 그러나 우리 편, 끼리끼리, 동종교배에 혈안인 문 정권은 '이성윤 검찰총장 카드'를 택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는 뭉개고 정권이 원하는 수사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이 지검장에게 검찰총장 임명장을 주면서 문 대통령이 "우리 이 총장님"이라고 하는 모습을 국민이 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2021-03-19 05:00:00

[야고부] 문재인의 유체이탈 사과

[야고부] 문재인의 유체이탈 사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과는 어렵다. 그래서 사과답지 않은 사과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런 면피성 사과는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의 격한 반발을 산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사과는 그 대표 격이 될 만하다.1932년 미국 공공보건청은 흑인들을 대상으로 치료하지 않는 매독의 진행 경과를 연구했다. 그들에게 매독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연구 도중 페니실린이 매독 치료에 매우 효과적임이 밝혀졌는데도 투여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40년간 지속됐는데 그 사이 연구에 참여한 흑인 28명이 매독으로, 100명이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배우자 40명이 감염됐다.1972년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1천만 달러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피해자들과 합의했으나 공식 사과는 계속 미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런 침묵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1997년 미국 정부가 사과한다고 했다. 그 표현은 직설적이었다. "미국 정부는 깊이, 심각하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그러나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모호한 표현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1998년 4분짜리 대국민 사과에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을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에둘러 말했다. 언론에서는 '부적절한' 이란 단어가 매우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저명한 부흥 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크 그레이엄은 더 매섭게 비판했다. "클린턴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먼저 죄를 인정하고 모호한 언행을 삼가야 한다. 성경대로 하자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 간통을 저질렀다."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도 마찬가지다. 과거 정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사과했다. 2018년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식에서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난 LH 사태에 대해서는 달랐다. "국민께 송구한 마음"이라면서도 "부동산 적폐"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과거 정부에서 누적된 '적폐'라는 것이다. '무슨 사과가 이래?'라는 소리가 진동한다.

2021-03-18 05:00:00

[야고부] 제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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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감옥에서 순국한 분이 계십니다."지난 2017년부터 대구에서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를 꾸려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의 꿈을 꾸며 지난해에는 사유지 1만5천 평을 내놓은 우대현 대표에게 15일 낯선 전화가 걸려 왔다. 광주예술고의 신봉수 역사 담당 교사였다. 그는 마침 이날 일행과 대구 방문길에 제보할 것이 있다며 전화로 사연을 전했다.내용은 이렇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전북 순창 출신 23세 청년 송광춘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형 선고로 옥살이를 하다 그해 12월 순국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9년 애족장을 서훈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구에서 펴낸 책에 소개된 옛 대구감옥(뒷날 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 명단엔 없다는 제보였다.지난해 6월, 이젠 사라진 옛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발굴에 나서 단행본을 펴낸 대한광복회 백산우재룡선생기념사업회 유족 대표인 우 대표는 신 교사에게 감사를 전하고 자료 파악에 나섰다. 광주에서 만세를 외치다 먼 타향 대구감옥에서 젊은 나이에 삶을 마친 분에 대한 제보이니 어찌 소홀하겠는가.우 대표는 논문과 언론 보도 등 자료를 통해 사실을 확인, 올 상반기 발간될 개정판 단행본에 송광춘 지사의 소개를 약속했다. 우 대표는 이미 대구형무소 순국 독립운동가 추가 발굴을 통해 지난해(180명)보다 많은 204명을 확인한 터에 이번 제보 덕에 순국자를 1명 더하게 됐으니 더욱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지난해 광주에 전달된 단행본에서 빠진 부분을 채울 제보에 나선 데다 청춘을 바친 송광춘 지사의 순국 터인 옛 대구형무소 자리(현 삼덕교회)까지 기꺼이 찾아 현장의 기록 실수도 제보한 신 교사의 마음이 돋보인다. 그의 수고로운 제보로 대구는 물론, 광주의 독립운동사가 좀 더 알찰 수 있게 됐으니 감사한 일이다.그러잖아도 직원 땅 투기 논란에 휩싸인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퇴직 직원의 내부 정보 이용 땅 투기 의혹 제보를 지난해 묵살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제보만 잘 다뤘더라면 두 직원의 극단 선택도 막고 호된 국민 질책과 분노, 수사의 동시 다발 재앙을 막고 환골탈태의 기회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값진 제보를 무시했으니 화를 자초한 셈이다. 제보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주는 요즘이다.

2021-03-17 05:00:00

[야고부] 세금 도적(盜賊) 이재명

[야고부] 세금 도적(盜賊) 이재명

홍길동, 임꺽정은 대표적 의적(義賊·의로운 도적)이다. 재물을 훔치는 것을 도(盜),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적(賊)이라고 한다. 도적(盜賊)은 떼를 지어 행동하는 무장 강도 집단이라는 측면에서 단순한 도둑과 다르다.'남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는 행동'에도 의적인 것은, 그 대상이 탐관오리(貪官汚吏)와 그 졸개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훔친 물건을 힘없는 백성에게 나눠 주니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는 의적이 되었다. 물론 자기 패거리들 몫은 따로 챙긴다.현대에도 인기 있는 도적이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최근 좀 밀리고 있지만, 여전히 강력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이다.패거리 몫을 챙기면서 마구마구 나눠 주는 것은 의적과 비슷한데, 탐관오리의 창고를 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 창고를 턴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래서 이재명 경기지사를 '인기 있는' 세금 도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이재명표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은 세금 한 푼 안 내는 사람들에게는 의적 활동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피땀 흘려 일하면서 세금을 바치는 국민들에게는 도적도 이런 상도적(上盜賊)이 없다. 국민의 피땀으로 자기 생색내고 권력 잡고 인기마저 누리니 정말 대단한 내공이다.언어 공작 솜씨도 탁월하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같은 액수의 현금을 무차별·무조건적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연 2천만~4천만원 정도는 지급해야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이재명 지사는 '만 25세 청년에게 분기별 25만원씩, 연간 100만원'을 주면서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이라고 생쇼를 하고 있다. 기본주택, 기본대출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기본대출을 위해 (가칭)경기도은행이 설립되면 '패거리 일자리 창출'에는 큰 기여를 할 전망이다. 그래도 인기가 있다.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이재명 지사가 세금 도둑(盜)은 맞는 것 같은데, 왜 생명을 죽이는 적(賊)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도 있을 수 있겠다. 세금을 훔쳐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세금 도적이다.

2021-03-16 05:00:00

[야고부] 어느 영화들

[야고부] 어느 영화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에 나오는 인물들은 시바타 할머니의 집에 얹혀 살면서 그의 이혼 위자료로 생계를 꾸려간다. 필요한 생필품은 적당히 훔쳐서 나눠 쓴다. 한 지붕 아래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이들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다.영화는 저마다의 비밀과 상처를 안고 살면서도 마치 한 가족처럼 조화로운 모습에서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관계성을 밀도 높게 그려내 2018년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에 이어 21년 만의 경사로 일본 영화사에 또 하나의 굵은 획을 그었다. 하지만 일본 내 반응은 싸늘했다. 특히 정치권과 우익 세력들은 크게 반발했다.영화의 원제인 '만비키(좀도둑) 가족'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사회의 어두운 밑바닥을 조명해 국가 이미지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다. 당시 아베 총리는 축전은커녕 이 영화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시아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하자 일본 매체들은 영화보다 한국의 '반지하'를 조명하는 데 열을 올렸다. 자기 허물은 감추고 남의 것은 보란 듯 까발리는 이상 심리다.최근 중국에서도 한 영화감독 때문에 시끄럽다. '노매드랜드'로 골든글로브상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을 둘러싼 중국 내 배척 분위기 때문이다. 베이징 태생의 자오 감독은 신세대 감독으로 중국 내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중국 사회과학아카데미 연구센터가 "아직 자오를 치켜세울 때가 아니다"라는 SNS 논평을 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자오 감독 관련 인터넷 검색이 모두 중단되는가 하면 4월 23일 '노매드랜드' 중국 개봉 일정마저 불투명해졌다. 과거 자오 감독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사태의 발단이다. 자오가 2013년 한 영화 잡지에서 "10대 때 유학길에 오를 당시 중국은 거짓말투성이의 나라였다"고 말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이런 사례들은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와 왜곡된 세태가 빚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기생충'이나 '도가니' '택시운전사' 등 영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평가하는 우리 관객들의 성숙함이 돋보인다. 이것 또한 '한류의 힘'이다.

2021-03-15 05:00:00

[야고부] 문재인의 ‘껄껄껄’

[야고부] 문재인의 ‘껄껄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후회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는 우스개가 있다. 사람이 '껄껄껄' 하며 죽는다는 얘기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죽는 게 아니라 세 가지를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는 '보다 베풀고 살걸(껄)' '보다 용서하고 살걸(껄)' '보다 재미있게 살걸(껄)'이다.범부(凡夫)에 비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후회할 일도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로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국가 발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겠지만 5년 임기를 마무리하면서는 '껄껄껄' 후회하기 십상이다. 대통령들의 퇴임사는 이런 심경을 조금이나마 엿보여준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토로했다. 후회와 회한이 절절히 묻어난다.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2개월가량 남았다. 문 대통령이 어떤 퇴임사를 할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껄껄껄' 잣대를 적용하면 후회가 없지 않을 것 같다. '보다 재미있게 살걸'은 논외로 하고 '보다 베풀고 살걸' '보다 용서하고 살걸'에서는 낙제점이다. 자기 편 사람들에게는 베풀고 용서한 반면, 반대 편에는 베풀기는커녕 가혹했고, 용서하기는커녕 무자비했다. 정치 보복의 진폭을 키웠고, 최악의 국가 분열을 낳았다. 문 대통령 입에서 '보다 베풀걸' '보다 용서할걸'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책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에서 저자들은 21세기가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정치 문화는 대통령이 양방향 소통으로 건설적인 타협을 이끌어내는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의 일차적 책임이 본인에게 있음을 알고,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함께 민주적 절차와 관행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따져 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이제부터라도 반대편과의 소통과 타협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에서 나오는 날 문 대통령 입에서 '껄껄껄' 탄식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2021-03-13 05:00:00

[야고부] 김종인의 추세 연장 예측

[야고부] 김종인의 추세 연장 예측

미래를 예측하려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외삽(外揷·extrapolation)의 오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또는 현재의 추세가 무기한으로 똑같이 계속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좋은 예다. 오웰은 나치 독일, 무솔리니의 파시즘, 프랑코의 스페인, 스탈린의 소련 등 1940년대에 전체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보고 이런 추세가 지속, 강화돼 1984년에는 전 세계가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공상과학소설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로버트 하인라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1952년 펴낸 'Where to?'(어디로 갈까?)에서 기괴한 예측을 했다. 그는 사회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요구하는 의복의 가짓수가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 추세가 계속돼 미래에는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허용될 것이라고 했다.소련의 계획경제가 자본주의경제를 추월할 것이란 예측도 빼놓을 수 없다. 그 근거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이 보여준 높은 경제성장률이었다. 혁명 초기의 혼란을 거친 뒤 소련 경제는 1960년대까지 매우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소련은 1989년 망했다.마크 트웨인은 이런 예측을 미시시피강 길이 변화에 빗대 신랄하게 비꼬았다. 계산해 보니 지난 170년 동안 미시시피강 하류가 240마일이나 줄어들었는데 이는 연평균으로 1과 3분의 1마일이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강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미시시피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해 대선에 출마하는 이른바 '제3지대론'에 대해 "제3지대에서 성공한 예는 없다"고 했다. 2021년 대선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2017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제3지대'를 노렸던 여러 인사가 결국 양당 체제를 깨지 못한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김 위원장의 말이 맞을지 틀릴지 아직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예측치고 맞은 것은 거의 없다. 더구나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2021-03-12 05:00:00

[야고부] 대지진 10년 뒤

[야고부] 대지진 10년 뒤

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은 1만5천899명의 사망자와 2천526명의 실종자를 기록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누출돼 많은 이재민을 낳았다. 참사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거나 질병 때문에 죽은 사람도 3천 명이 넘는다. 일본 내각부가 추정한 재산 피해 규모만도 약 16조9천억엔(약 180조원)에 달했다.오늘로 동일본대지진 이후 꼭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대지진 이후 일본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우리에게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일본의 자연 재난이나 전쟁의 참화는 우리에게 불행한 사태로 되돌아오는 역사적 선례가 많아서다. 일본인 특유의 집단심리와 습성이 대지진을 계기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바로 이상한 '피해 심리'다. 아니나 다를까, 대지진 이후 한·일 양국은 크게 대립하고 관계가 악화했다. 역사적 앙금과 별도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나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갈등, 초계기 사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으로 대립했다.그런데 이런 갈등의 배경에는 큰 흐름이 있다. 바로 극우 세력과 손잡은 자민당 정권의 '혐한' 분위기 조성이다. 2012년 12월 정권을 쥔 아베 정부는 사후 수습 실패에 대한 책임은 외면한 채 히스테리를 부렸다. 국가적 환란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 경제적 난국에 쏠린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희생양을 찾는 데 골몰했다. 이런 계략은 위기 때마다 일본이 보여 온 행태다. '포스트 대지진 시대=혐한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대지진 직후인 2011년 8월 후지TV 본사 앞에서 시작된 '노 모어(No More) 한류' 시위는 '혐한 시대'의 출발점이었다. 수천 명의 극우 세력이 모인 이날 데모는 '후지TV의 날'(8월 8일)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재난의 울분을 '혐한'으로 표출한 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와 똑같은 심리 구조다. 최근 여러 엉터리 논문으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마크 램지어의 이상한 행적도 '혐한' 일본과 무관치 않다.대지진 이후 10년의 시간을 지켜보는 한국인들은 지금 매우 불편하다. 뒤틀어진 양국 관계 등 해결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 과거 역사가 보여 주듯 '결자해지'가 먼저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전략적인 정치·사회적 흐름이 필요한 때다.

2021-03-11 05:00:00

[야고부] 이게 법치냐

[야고부] 이게 법치냐

정부 여당은 전 국민이 분노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내부자 거래)에 대해 엄정 수사니, 전수조사니, 속도전이니, 패가망신이니 설레발치면서 정작 전문적으로 수사 및 조사할 수 있는 검찰과 감사원을 정부합동조사단에서 제외했다. 사실상 국토부가 초동 조사를 주도함으로써 결국 잔챙이들만 잡아들이고, '선수'는 '증거인멸'로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러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보니, 이건 뭐 놀랄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어쩌면 권장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피고인 또는 피의자 신분의 국회의원들(황운하·최강욱·진성준 등)이 '검찰 수사권 박탈'을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을 발의하는 나라, 본인(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받는 사건을 본인이 지휘하게 될지도 모르는 나라(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할 경우 이성윤 지검장이 영장 청구 및 기소 여부를 지휘하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에서 해당 소송의 피고인 신분(중앙선관위원장)의 판사가 재판을 맡는 나라, 공전(空轉)을 거듭하며 기약 없이 밀리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재판, 구의회(區議會) 의원은 선거철이 아니라 평소에 유권자에게 밥 한 그릇을 사도 선거법 위반인데 대통령과 여당은 코로나19 핑계로 선거 코앞에 수조 원을 풀어도, 28조 원짜리 공항을 지어준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정권의 불법을 수사하는 검찰을 여당이 해체하겠다고 나서는 나라…. 한국 사회 권력자들에게 법치는 허울에 불과하다.'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을 추진하는 여당 의원들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수사권과 기소권에다 다른 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 이첩 요구권까지 가진 '공수처'를 만드는 것이 개혁이라고 했다. 그래 놓고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완전 분리'가 개혁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염치도 양심도 없는 자들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법을 손에 쥐니 자기네 필요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마음대로 한다. 국민과 정의를 지켜야 할 법이, 권력자들의 불법을 덮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2021-03-10 05:00:00

[야고부] ‘체육 왕회장’ 최억만

[야고부] ‘체육 왕회장’ 최억만

지난 3일 오랜 지병 끝에 세상을 떠난 최억만 경상북도체육회 상임고문은 지역 체육인들로부터 '왕회장'으로 불린 거인이다.지난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1년간 상임부회장을 맡은 고인은 경북체육회 회장인 경북도지사를 모시는 영원한 2인자였지만, 체육인들은 그를 '왕회장'으로 예우했다. 그가 모신 이의근, 김관용 도지사는 모두 3선을 역임했다.고인은 진정한 체육인이었다. 버스와 화물자동차 등 운수업으로 성공한 그는 경북도의회 의장과 한국자유총연맹 경북도지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럭비 선수 출신인 그에겐 체육계가 체질적으로 맞았다.고인은 상임부회장 시절 사업은 아들에게 맡기고 끊임없이 체육 현장을 찾아다니며 소통했다. 경제인 부회장으로 출연금만 내는 임원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지역 선수단을 격려했다. 그가 전국체전과 전국소년체전 때 경기장에서 역대 교육감들과 관람석에 앉아 응원하고 격려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경산중·고 럭비 선수단을 초청해 600만원 상당의 한우 고기를 대접하기도 했다.'성적 지상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엘리트 체육 환경의 변화로 빛을 잃었지만, 경북이 전국체전의 강호로 이름을 올린 것도 고인의 작품이다. 경북이 2001년 제82회 충남 전국체전에서 12위로 추락한 뒤 고인과 당시 조창현 사무처장이 이의근 도지사에게 사퇴서를 내고 '배수의 진'을 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체육회 예산은 대폭 늘었고 경북은 전국체전에서 2~5위를 유지하고 있다.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잉여금(이자 포함 현재 210억원) 확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2006년 김천 전국체전 유치, 컬링 전용 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 2006년 건립, 이재근 사무처장의 대한체육회 진천선수촌 촌장 영전 등도 고인의 노력으로 성사됐다.고인은 신부전증으로 매주 2차례 혈액 투석을 하면서도 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는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는 열정을 보였다.고인의 장례를 경북체육회장으로 치르지 못한 것은 이유를 떠나 아쉬운 일이다. 고인의 뜻을 기리는 경북체육회관이 하루빨리 건립되면 좋겠다.

2021-03-09 05:00:00

[야고부] 대구 빛낼 감사한 일

[야고부] 대구 빛낼 감사한 일

대구로서는 다행한 일이 지난 2019년부터 일어나고 있다. 특히 대구의 독립운동사를 알고 이를 뒷날까지 이어 목숨 바친 선열의 값진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반갑기만 하다. 바로 1915년 8월 25일(음력 7월 15일), 당시 일본인이 신성히 여기던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대한)광복회의 기억이다.광복회는 국사 교과서에도 나왔지만 대구 사람은 이를 잘 몰랐다. 대구 약전곡몰에 상덕태상회란 곡물상을 위장한 본부를 두고, 국내 8도에다 중국 만주에까지 지부(지부장 김좌진 장군)를 두고 무장투쟁의 길을 연 1910년대 최대 독립운동단체라는 역사 평가 속 광복회 결성 100주년인 2015년에도 흔한 행사조차 대구에선 없었으니 말이다.물론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 고향(울산)에서는 자료집 발간 등 기념행사로 옛일을 기렸지만 정작 대구 사람은 이를 잊었다. 다행히 이후 2017년 광복회 지휘장 우재룡의 아들(우대현)을 중심으로 민간의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가 꾸려지고 해마다 달성공원에서 갖는 조촐한 결성일 기리기로 그나마 대구 사람의 체면치레는 하는 셈이다.무엇보다 지난 2019년 10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에서 열린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광복회의 결성지'가 대구임을 자랑스레 국민에게 알렸다. 이어 2020년 8·15 광복절 권영진 대구시장도 '대한광복회가 창립된 곳'이 대구라면서 다른 대구의 독립운동 투쟁사를 말하며 '대구가 국권회복의 성지(聖地)'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지금까지 나라와 대구의 지도자가 역사 속 돋보인 활동을 남긴 (대한)광복회가 바로 대구에서 출범한 일을 국민과 시민 앞에 널리 당당히 전파한 일은 없었다. 특히 권 시장은 지난해 7월부터 불붙은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위한 시민 활동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으니 남다른 일로 기억할 만하다.지난해 광복절 권 시장은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사업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다짐했다. 올 3·1절엔 '시민사회단체에서 추진되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사업도 대구시 차원에서 적극 뒷받침'을 약속했다. 대구 폄훼로 힘들고 지친 대구 사람의 자긍심을 높일 만한 일이 하나씩 이뤄질 날을 떠올리면 오늘 하루도 감사할 뿐이다.

2021-03-08 05:00:00

[야고부] 촉빠른 사람들

[야고부] 촉빠른 사람들

'촉빠르다'는 형용사가 있다. 사람이 생기가 있고 재치가 빠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본디 뜻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령 느낌이 예민하고 판단이 빠른 사람을 일컫거나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할 때 촉빠르다고 표현한다.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임직원들이 수도권 3기 신도시 예정지 중 하나인 광명시흥지구에 거액의 대출을 받아 12개 필지의 땅을 샀다가 적발돼 비난 여론이 거세다. 개괄하면 공공택지 조성·보상 업무를 맡은 공공기관 직원들이 개발 가능성 등 앞을 내다보고 촉빠르게 땅에 투자를 했다가 도덕성을 의심받고 궁지에 몰린 것이다.이번 사건은 대통령이 철저한 전수조사를 엄명할 만큼 예민한 사안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변창흠 장관이 언론에서 이들을 두둔하다 구설에 올랐다. 한마디로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는 소리다. LH 직원들이 토지를 사들인 때는 대부분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몸담고 있던 시기다. 게다가 아직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장관이 실정이 이렇다며 미리 결론을 낸 것은 도대체 뭔가. 변 장관은 지난해 말 장관 취임 무렵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데서부터 시작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사태를 부르고도 어떻게 신뢰를 얻겠다는 건지 요령부득이다.공직 일각에서 "공무원은 땅에 투자하면 안 되냐"는 불만까지 터져나오자 '투자와 투기도 구별 못 하는 가당찮은 소리'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 푼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아 내겠다고 묘목까지 심었다니 더 할 말이 없다. 인근 농협에서 거액의 대출까지 받아 사이좋게 땅을 샀다는 사실도 우연치곤 매우 괴이하고 미심쩍다.어떤 조사 결과가 나오든 이번 사건에 연루된 LH 직원들은 스스로 '촉빠른 사람'이라고 자부할지 모른다. 언젠가는 이 지역이 개발될 것으로 보고 투자했다는 해명에서 확증편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제 잇속을 챙기려 했다고 의심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는 속담대로다. 변명도 이치에 닿아야 통하는 법이다.

2021-03-06 05:00:00

[야고부] 햇볕정책, 허망한 희망

[야고부] 햇볕정책, 허망한 희망

외교 참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야망에 대한 오판과 히틀러를 다룰 수 있고, 그를 다뤄 유럽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엉뚱한 자신감의 합작품이었다. 실패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히틀러의 머리에서 '전쟁'이 떠난 적은 없었다. 체임벌린은 독일 내 반(反)히틀러 진영으로부터 이런 정보를 수시로 받았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 주민이 많은 주데텐란트의 자치권을 두고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가 군사 충돌 직전까지 갔던 1938년에도 그랬다. 그해 8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전쟁을 반대하고 있던 독일 군부 온건파의 비공식 사절이 영국을 방문해 "독일에는 히틀러를 제외하고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그러나 체임벌린은 그가 반히틀러 인사라며 신뢰하지 않았다. 영국의 대독(對獨) 강경 자세를 유도하고 이를 통해 독일 내 반히틀러 진영을 자극해 나치 체제를 전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그가 한 말은 상당히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체코슬로바키아 문제 해결을 위해 체임벌린이 독일로 날아가 히틀러와 세 차례 회담을 한 것은 자신이 문제 해결의 주역이라는 허영심의 발로였다. 그가 여동생들에게 한 말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내 손으로 커다란 돌덩이를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내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유럽의 전체 운명이 바뀌는 그런 상황이 됐다."이런 자신감은 1939년 뮌헨협정에서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겨준 뒤에 절정에 올랐다. 영국으로 돌아와 공항에서 히틀러와 공동 서명한 합의서를 흔들며 체임벌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한국 '진보' 정부들의 대북정책도 마찬가지다. 북한 독재자 부자의 생각에 대한 오판과 문호 개방으로 북한을 변화시킨다는 엉뚱한 자신감의 합작품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2일 이를 재확인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증언에서 그는 "북한에 대한 역대 외교 시도가 실패한 것은 잘못된 전제 때문"이라며 그중 하나로 "북한에 대한 문호 개방이 그 정권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란 허망한 희망"을 들었다. 그는 이것이 "때로는 햇볕정책이라고 불렸다"고 했다.

2021-03-0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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