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0'으로 끝난 올해는?

"경(庚)의 해는 끝자리가 '0'인 해로서 우리나라를 둘러싼 커다란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100년 전의 경술국치(1910), 6·25전쟁(1950), 4·19혁명(1960), 새마을운동(1970), 5·18민주화운동(1980), 소련과 수교(1990), 남북정상회담(2000년)…."2010년 1월 4일, 당시 경북 구미 사무실에 근무하던 김경룡 전 대구은행장 내정자가 매주 월요일 800여 명의 고객에게 보낸 전자편지의 한 부분이다. 2000년대 새로운 천년의 해를 맞아 첫 10년을 보내고 다시 맞은 10년의 첫해, 첫 주 편지에서 '0'으로 끝나는 경인(庚寅)의 해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담았다.아니나 다를까 그해 경인년 365일 동안 나라 밖도 그렇지만 특히 남북 강산에서는 큼직큼직하고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들이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해 2월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세계기록을 깨고 금빛 정상에 올랐고, 11월엔 세계 20개국 정상이 서울에 모여 정상회담을 갖는 등의 경사스러운 일도 펼쳐졌다.반면 3월에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나라를 지키던 젊은이 46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는 참사로 분노와 함께 세상을 경악시켰다. 또 9월엔 북한 김정일이 아들 김정은을 공식 등장시켜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오늘날 정치사에 그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이라는 통치 방식을 알리는 암흑사를 거듭했다.그리고 10년 세월이 흘러 다시 맞은 '0'으로 끝난 2020년의 새해 한 달이 지나면서 겪은 경험은 앞으로 빚어질지도 모를 일의 조짐처럼 예사롭지가 않아 걱정이다. 먼저 나라 밖 중국 우한 폐렴 전파로 시작된 괴질(怪疾)의 공포이다. 다음은 국내 정치적 혼란의 나쁜 전조이다. 나라를 뒤흔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의 뭇 사례가 그렇다.우리는 재난과 큰일이 느닷없이 오지 않음을 오랜 경험으로 배웠고 미리 경계했다. 이를 위해 나라가 앞서고 국민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언제쯤부터 이런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되레 바뀌고 있다. 정부는 어수선하고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세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새해부터 뜨거운 법(法) 권력을 둘러싼 정부 내 갈등 회오리, 경제난 등 악재가 넘쳐도 정부는 보이지 않으니 스스로 살길을 찾을 일이다. '0'의 해, 부디 잘 보내세요!

2020-02-1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정치인의 설화

2004년 3월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대구에서 가진 청년층과의 인터뷰에서 "60,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서 쉬셔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할 분들이 아니니까요"라고 발언했다. 노인 폄하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정 의장은 2007년 대선 때까지 이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후일 정 의장은 "열심히 투표를 하는 어르신들을 본받아 어르신들은 집에서 쉬시더라도 대학생들은 나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말로 먹고사는 것이 정치인의 속성인 만큼 세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가 설화(舌禍)를 당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표를 왕창 깎아 먹는 것을 넘어 정치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까지 있다.부정적 의미에서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툭툭 내던지는 말로 인해 곤욕에 처한 일이 종종 있었다. 2017년 7월 '머리 자르기' 발언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추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지원·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문준용 씨 특혜 채용 의혹 제보 조작을) 몰랐다는 것은 머리 자르기다. 꼬리 자르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 참수 운운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청와대가 '대리사과'를 했고 '추미애 패싱'이란 조어를 낳기도 했다.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경제 현장을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 총리는 손님이 뚝 끊겨 거리가 한적하고 상점도 텅텅 빈 서울 한 상가를 방문했다. 한 상인이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손님이 줄었다)"며 고충을 토로하자 정 총리는 "원래 무슨 일이 있으면 확 줄었다 좀 지나면 다시 회복되고 하니까 그간에 돈 많이 벌어 놓은 것 갖고 조금 버티셔야지"라고 했다. 이어 정 총리는 한 식당 종업원에게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네"라고 발언을 했다.가뜩이나 어려운 이들에게 민생을 책임진 공직자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생업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진심을 다해 위로하기는커녕 웃지 못할 농담을 했다. 성경에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라"고 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다.

2020-02-17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나도 고발하라'

1933년 4월 12일부터 5월 10일까지 베를린 등 독일 전역의 22개 대학 도시에서 '독일 정신에 위배되는 책'이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이른바 나치의 분서(焚書)로 에밀 졸라,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마스 만,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비독일적' 작가 학자들의 책 2만여 종이 재로 변했다.이런 야만에 지식인들은 분노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간 독일 작가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도 그랬다. 그는 분서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을 알고 1933년 5월 12일 '빈 노동자신문'을 통해 이렇게 조롱했다. "나도 불태워라. 나의 삶 전부와 저술 활동 전부에 의거해서 나는 권리가 있다. 내 책들을 장작더미의 순정한 불길에 넘기라고 요구할 권리, 갈색 살인도당(나치당을 지칭)의 피에 젖은 손과 썩은 두뇌에 바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역시 나치를 피해 덴마크에 머물던 브레히트는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같은 해 가을 풍자시 '분서'를 썼다."위험한 지식이 담긴 책들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리라고/ 이 정권이 명령하여, 곳곳에서/ 황소들이 끙끙대며 책이 실린 수레를/ 화형장으로 끌고 왔을 때…추방된 어떤 시인이 분서 목록을 들여다보다가/ 자기의 책들이 누락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화가…집권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인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너희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똑같은 사태가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자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등 진보 인사들이 잇따라 '나도 고발하라!'는 격문(檄文)을 쏟아냈다. 그러자 민주당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고발을 취하했다. 그런다고 '고발'로 드러난 문재인 정권의 추한 민얼굴은 가려지지 않는다. '고발'은 문 정권의 실체를 재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 민주당, 땡큐!

2020-02-14 19:36:51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교도소를 부탁해

다양한 군상의 범죄인들이 드나드는 곳에 걸맞게 교도소는 그 별칭도 다양하다. '큰집' '학교' '깜빵' '국립호텔' 등이 그 사례들이다. 조선시대에는 감옥으로 불렀고 일제강점기에는 형무소로 통했다. 범죄인 수용시설이 교도소로 바뀐 것은 인권 의식의 성장과 교정·교화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였다. 그러나 범죄인에 대한 인식이 그렇듯 교도소에 대한 이미지 또한 여전히 우호적이지는 않았다.징역 20년 이상의 악질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태국의 방쾅 교도소는 3개월 동안 쇠사슬을 차고 있는 게 기본이다. 살인범은 죽을 때까지 쇠사슬을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식사도 동물 사료 수준으로 최소한만 제공한다. 영양실조로 다시 죄를 짓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진다. 미국의 ADX 플로렌스 교도소는 수용자들을 온종일 독방에 가둬 놓아 가장 높은 자살률을 자랑(?)한다.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경 근처에 있는 한 교도소는 최고의 흉악범들만 가둬 놓는 수용시설답게 악명이 높다. 단 1%의 희망도 없이 오로지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공간이다. 완벽한 감시체계 때문에 자살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이동할 때는 수갑을 채우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눈마저 가려버린다. 끝내 하늘 한 번 쳐다볼 수 없다. 생명만 유지시킬 뿐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다.경북 청송에 있는 경북북부교도소는 최고 흉악범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조직폭력배 김태촌과 조양은, 대도 조세형과 성폭행범 김길태·조두순, 토막 살인범 오원춘 등이 거쳐간 곳이다. 그래서 한때 교도소 이름 앞에 '청송'이라는 지역명을 빼달라고 호소하던 청송군이 교도소 신규 유치에 나서 또 한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기피 시설을 끌어들여 지역 경제의 회생을 도모하려는 역발상 때문이었다.포항교도소와 상주교도소 그리고 머잖아 주민개방형으로 준공 예정인 대구교도소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교도소를 혐오시설이 아닌 효자기관으로 반기는 분위기이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대규모 식자재 공급과 수많은 접견 방문객들이 뿌리는 경제적인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시설의 대명사였던 교도소가 지역 발전의 효자 시설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격세지감이다.

2020-02-14 06:30:00

지난 10일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면서 주인공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집의 세트장이 지어졌던 '고양아쿠아특수촬영스튜디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에서 폭우가 쏟아져 기택네 집이 물에 잠긴 장면. 연합뉴스

[야고부] '기생충'과 신 포도

기생충은 다른 생명체에 달라붙어 양분을 가로챈다. 그래서 저급 생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상당히 성공한 생명체다. 살아남기 위해 기생충은 고도의 전략을 구사한다. 양의 몸속에 기생하는 간충의 신비로운 생존 전술을 보자.간충은 양의 체내에서 부화할 수 없다. 그래서 일단 양의 몸 밖으로 나가 자란 뒤 되돌아와야 한다. 양의 대변에 섞여 배출된 간충의 알은 애벌레가 되어 중간숙주인 달팽이를 거쳐 개미 몸속으로 침투한다. 간충은 개미의 뇌를 조종한다. 감염된 개미는 밤만 되면 몽유병 환자처럼 개미굴을 떠나, 양이 가장 좋아하는 풀의 꼭대기에 올라앉는다. 풀과 함께 양에게 잡아먹힐 때까지.톡소포자충도 비슷한 전략을 쓴다. 쥐를 중간숙주로 하고 고양이를 최종숙주로 삼는 기생충인데, 쥐에 기생할 때는 쥐의 겁을 없애고 고양이 냄새를 좋아하게끔 조종한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를 겁내지 않아 잘 잡아먹힌다. 이처럼 빌붙어 사는 신세라고 해서 기생충을 얕잡아볼 일이 아니다. 숙주와 공생관계인 기생충도 있고 기생충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숙주도 있다고 하니 자연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기생충' 제목을 단 우리 영화가 세계 영화계를 호령하고 있다. 상류층과 반지하 하류층, 상류층 저택 지하에 숨어 사는 최하층, 세 가족의 만남을 이보다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스릴 넘치게, 여운 많이 남게 만들 수는 없다. 영화 속 하류층이 교묘한 수법으로 상류층을 속이며 기생하는 모습이 간충, 톡소포자충 빰칠 만큼 기상천외하다. "빈부 격차는 인류 전체의 문제"라고 공감하면서 세계는 이 걸작 영화에 온갖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그런데 영화 '기생충'의 찬란한 질주가 불편한 사람도 있는 듯하다. 일본 매스컴들은 "'기생충'이 한국의 징병제, 부동산 문제, 빈부 격차, 한국의 어두운 부분을 세계에 알렸다"며 슬며시 비꼬았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조선의 오늘'은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남한은 빈부 격차가 심한데 비해 우리 공화국은 누구나 공평하고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어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논평을 냈다.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를 연상시키는 시샘이다. 참으로 소인배스럽다.

2020-02-13 06:30:00

(왼쪽부터) 봉준호, 유승민, 추미애

[야고부] 대구의 세 남녀

추미애, 유승민 그리고 봉준호.2020년 새해는 대구 사람이 '일'을 내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먼저 시작했다. 1월 3일 취임과 함께 검찰 흔들기부터다. 자신을 발탁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보답이든, 소신이든 국민 관심은 진행형이다. 아마 윤석열 검찰총장이 백기를 들 때까지 이어질지도 몰라 법(法)을 다루는 두 수장의 대결은 슬프지만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다음은 추 장관처럼 1958년생인 유승민 국회의원이다. 지난 9일, 4월 총선 불출마와 함께 보수진영 결속 추진 발표로 이목을 끌고 있다. 2004년 비례대표 당선에 이어 2005년 재보궐 선거에서 뽑혀 '대구의 아들'로 잘나가던 그가 낯선 미답(未踏)의 야인(野人) 길을 걷겠다고 나섰으니 역시 관심거리가 됐다.다음 날, 미국에선 봉준호 영화감독이 더 큰 일을 냈다. 한국 영화 101년사뿐만 아니라, 92년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의 4개 부문을 휩쓴 '새 역사 쓰기'의 위업(偉業) 달성이다. 1969년생인 그가 저지른 일은 11살 많은 두 선배보다 더욱 빛났다.새해 벽두부터 시선을 끈 3인의 대구 남녀의 지난 발자취를 보면 앞으로 디딜 발걸음 역시 특별할 것 같다. 추 장관의 별명(추다르크)에 비춰 지금 펼치는 검찰과의 한판 승부는 처절한 결과를 점쳐도 그럴듯해서 그가 지금 추는 검찰 개혁의 칼춤을 지켜보는 고향 사람 마음은 앞선 걱정에 조마조마할 지경이다.세탁소 딸로 스스로 앞길을 낸 추 장관과 달리 법률가 아들로 온실 속 같은 비단길 삶에다 고향 사람 덕에 한 세월 누린 유 의원 역시 나름 '머리'가 있는 만큼 역할을 기대할 만도 하다. '민주공화국'을 밝힌 헌법 1조 정신을 강조한 그가 머리에 버금갈 '가슴'까지 갖춰 야인의 길을 잘 디디면 추 장관과는 다른 결과도 가능할 터여서 그나마 낫다.특히 봉 감독의 앞길은 더욱 희망적이고 사람 마음을 당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영화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를 꿰뚫어본 나라 밖 사람이 이번에 보인 행동만 봐도 그렇다. 그의 업적은 높이 살 만하다. 대구 사람에게 자긍심을 줄 만도 하다.중국 우한 폐렴만 빼면 지금 한국은 이들 대구의 세 남녀 이야기로 하루를 여닫는다면 좀 지나칠까.

2020-02-12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친문 바이러스'

"대한민국 정치는 지금 세금 도둑질 바이러스, 진영 정치 바이러스, 국가주의 바이러스 이 세 바이러스에 동시에 감염돼 있다." 안철수 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빗대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안 위원장은 "내 팔자가 바이러스 잡는 팔자인 것 같다"고도 밝혔다. 의사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잡고, CEO로 컴퓨터 바이러스를 잡고, 정치인으로 낡은 정치 바이러스를 잡고 있다는 것이 그의 토로다.재미있는 것은 안 위원장 자신도 바이러스라고 공격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4월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국민의당을 창당했을 때였다. 그의 창당이 민주개혁 세력 분열을 초래해 여당인 새누리당에 개헌선을 헌납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일부 진보 지식인들은 '악성 바이러스'라는 조롱을 퍼부었다.친박(친박근혜)은 물론 지금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친문(친문재인) 역시 바이러스로 지목돼 공격받았다. 2017년 1월 조배숙 당시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정치권에도 바이러스가 준동하고 있다. 지독한 악성 바이러스 박근혜-최순실 라인과 친박은 힘 잃고 소멸 중"이라고 했다. 이어 "박멸해야 할 악성 바이러스가 또 있다. 의견이 다르면 문자 폭탄을 퍼붓는 세력, 선(先) 총리 후(後) 탄핵도 거부해 황교안 체제를 들어서게 한 세력, 개헌은 미적거리고 대통령 다 된 듯 행동하는 친문 패권 세력이 바로 그것"이라고 쏘아붙였다.지구상에는 약 8천여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다. 인류에게 바이러스가 위협적인 이유는 변종(變種)을 만들어 진화하고 급격히 수를 불리기 때문이다.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코로나 역시 변종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나와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태가 일단락된다 하더라도 제2, 제3의 신종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국민에게 희망·비전을 줘야 할 정치가 공포·혐오의 대상인 바이러스에 비유될 지경에 처했는지 참담하다. 친노(친노무현)의 변종인 친문이 집권 후 조국 비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 저지른 일들을 보면 바이러스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 싶다. '양아치들'이라는 비판보다는 낫지 않겠나. 친박 바이러스는 촛불로 퇴치했지만 친문 바이러스는 무엇으로 박멸할지 걱정이다.

2020-02-1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공포의 유람선

1912년 4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국의 초대형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는 대부호와 귀족들을 비롯한 2천여 명의 승객과 선원을 태우고 미국으로 첫 항해에 나섰다. 타이타닉호는 항로에 얼음과 빙산이 있다는 다른 선박들의 경고도 무시한 채 나아갔다. 결코 '가라앉지 않는 배'를 만들었다는 영국인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타이타닉호는 빙산에 찢기며 속수무책으로 침몰했다.기울어 가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 사투를 벌였지만 1천500여 명이 영하의 바닷속에 잠겼다. 특히 3등실 승객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나치 독일이 체제 선전용으로 건조한 대형 여객선 구스틀로프호 침몰 사고는 사상 최악의 해양 사고였다. 1945년 겨울 동부전선의 피란민을 태우고 발트해를 항해하던 이 배는 소련군 잠수함의 어뢰를 맞고 1시간여 만에 가라앉았다.선장과 몇몇 선원들이 '각자 알아서 탈출하라'는 말을 남긴 채 배를 빠져나간 가운데 9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대부분이 아이와 여성들이었다. 2014년 그 잊을 수 없는 봄날, 진도 인근 해상에서 300여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를 미리 보는 듯한 장면이다. 지난 5일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순식간에 공포의 유람선으로 변했다.배 안에 '우한 폐렴' 환자가 한꺼번에 10명이나 발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감염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탑승객 하선을 전면 불허하고 2주간 선내에 머물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보름 동안이나 저마다 선실에 갇혀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여행객들은 졸지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본 정부로서는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상조치였다.지난달 30일에는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의 한 항구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6천여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배에 갇힌 적도 있었다. 우한 폐렴 의심 증상을 보인 두 명의 중국인 탑승객 때문이었다. '공포의 유람선'이 어찌 배에만 국한된 일일까. 무능한 선장을 만나거나 불순한 세력이 개입되면 국가라는 유람선 또한 좌초와 고립의 위기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 공포와 절망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2020-02-10 06:30:00

김해용 논설실장

[야고부] 정당 이름 코미디

'꼬리 둘 달린 강아지당'(Hungarian Two-tailed Dog Party).장난 같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정당이다. 2014년 9월 공식 등록한 헝가리의 군소 정당인데 영생, 주1일제 근무, 작은 중력​, 낮은 세금, 공짜 맥주 등 황당무계한 공약들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이 정당은 2018년 헝가리 선거에서 득표율 1.73%를 기록했다. 이렇듯 세상에는 별의별 정당들이 다 있다.독일사과전선(Front Deutscher Äpfel), 헝가리마늘전선(Magyar Fokhagymafront), 무생물체당(Inanimate Objects Party), 임대료가 젠장 맞게 높다당(Rent Is Too Damn High Party), 밤샘당(All-night Party), 테디베어연합(Teddy Bear Alliance), 당!당!당!(Party!Party!Party!), 도널드 덕당(Kalle Anka-partiet), 코뿔소당(Rhinoceros Party), 맥주애호가당(Polska Partia Przyjaciół Piwa), 미스 그레이트브리튼당(Miss Great Britain Party), 지지정당없음당(支持政黨なし)….희한한 정당들이 많지만 그래도 원칙은 있다. 적어도 사람 이름은 안 내건다는 것. 겨우 하나 예외를 찾았다. 영국의 '새천년 빈당'(New Millennium Bean Party)이다. 창당자의 별명인 캡틴 비니(Captain Beany)를 본뜬 이름이라고 한다.한국 정치 무대에 사람 이름을 내건 정당이 등장할 뻔했다. 3월 1일 창당을 예고한 가칭 '안철수 신당'인데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이름 사용이 불허됐다.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당명에 포함시키면 정당 운용의 비민주성이 유발될 수 있고 특정 정치인이 선거운동 기회를 더 많이 얻는 불공평을 초래한다." 선관위의 부연 설명이다.안철수 신당 측은 선관위가 과도한 해석으로 정당 설립 자유를 침해했다며 반발했지만 출범 전부터 모양새를 한껏 구겼다. 정당 이름에는 정당 정신이 담겨야 한다.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의 정치적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정치적·사회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정당명을 이렇게 지으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독재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20-02-08 07: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정부의 깨춤

최대 5천만 명 정도가 희생된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는 스페인이 아니다. 미국 미시간주 일부 지역이 최초 발생지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그런데도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차 대전 참전국들이 전시 보도 통제를 한 반면 비참전국인 스페인 언론은 집중 보도했기 때문이다.스페인은 억울하겠지만, 현재까지 이 명칭은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2009년 조류 인플루엔자가 스페인 독감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나오자 스페인은 UN에 '스페인 독감'이란 말을 쓰지 말 것을 요청한 적은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그대로 쓰는 것은 그 명칭에 스페인 모욕의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물론 그런 의도로 국명을 붙인 경우는 있다. 16세기 초 유럽을 휩쓴 매독이 그렇다.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은 '프랑스 병'이라고 했고, 프랑스는 '이탈리아 병'이라고 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 병', 포르투갈은 스페인을 지칭해 '카스티야 병', 러시아는 '폴란드 병', 터키는 '기독교 병'이라고 했으며, 타히티에서는 '영국 병'이라고 했다.지금은 이런 이름 짓기는 사라졌다. 최초 발생 또는 발견된 장소에서 많이 따오지만, 편의상 그럴 뿐이다. 6·25전쟁 때 발생했던 유행성출혈열의 바이러스는 한탄강 유역에서 잡은 등줄쥐에서 발견됐다고 해 '한탄'이란 이름이 붙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따왔다. 이런 사례는 숱하다.문재인 정부가 '우한 폐렴'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꿔 사용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한 것을 두고 지나친 중국 눈치 보기 아니냐는 소리가 나온다. 중국이 싫어하는 데도 굳이 '우한 폐렴'이란 명칭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덥석 명칭을 바꾸는 것도 볼썽사납다.정부가 지난해 '일본 뇌염'과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일본 뇌염'은 옛 일본군 731부대 바이러스 연구담당인 가사하라 시로(笠原四郞)가 뇌염 바이러스를 1935년 최초로 인체에서 분리한 데서 유래한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것에서 따왔다. 어디에도 '모욕'의 의도는 없다. '우한 폐렴'도 다를 바 없다. 발생한 지역 이름을 땄을 뿐이다. 중국만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뿐인데 왜 우리가 덩달아 깨춤을 추나.

2020-02-0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인포데믹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대규모 감염병이 한 지역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하기란 쉽지 않다. 과거 감염병 통계나 예측 모델을 통해 성장률 감소 등 부정적 효과를 전망해볼 수는 있다. 최근 확산 중인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중국 등 아시아 각국 기업의 휴업 장기화나 인구 이동 감소에 따른 급격한 소비 위축은 눈에 바로 보이는 경제 위기 현상의 하나다.감염병의 범위가 한 국가나 지역에 국한된 '유행병'(Epidemic)일 경우와 전 세계적 대유행을 일컫는 '팬데믹'(Pandemic)일 때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은 크게 달라진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변수 중 하나가 '대중 심리'다. 과도한 불안 심리가 경기 위축이나 금융시장 혼란을 더 증폭시킨 사례는 2003년 사스(SARS)나 2012년 메르스(MERS) 사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이런 감염병 역사에서 보듯 인간의 불안 심리는 허위 정보나 과장된 루머가 촉발시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세계적인 질병이나 경제 공황 등 위기의 직접적인 피해보다 '인포데믹'(Infodemic)에 따른 파장이 더 심각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보감염병'으로 풀이되는 인포데믹은 정보와 유행병의 합성어로 처음에는 금융 용어로 쓰였지만 유튜브·SNS 등 각종 대중 매체를 통해 잘못된 질병 정보가 급속히 퍼져나가는 현상도 포함한다.이 용어는 세계 1%의 권력층 집단을 분석한 책 '슈퍼클래스'의 저자이자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상무부 차관을 지낸 데이비드 로스코프가 2003년 처음 언급했다. 그는 정보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특히 가짜 뉴스는 큰 피해를 낳게 된다며 인포데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그제 세계보건기구(WHO)는 '인포데믹'에 대해 우려하는 경고 메시지를 발표했고, 아시아 각국 정부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둘러싼 가짜 뉴스를 엄히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포데믹의 폐해가 매우 큰 편이다. 영어의 '데믹'(~demic)의 어원이 그리스어로 '사람들'을 뜻하는 데모스(demos)로부터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질병과 위기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확산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포데믹의 피해자 또한 사람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020-02-0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미국 원정 한미훈련

독일과 소련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피 터지게 싸웠지만, 1922년과 1923년 두 차례의 군사협력 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까지 10년 동안 군사적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 그 이유는 독일은 1차 대전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소련은 공산주의 혁명 때문에 모두 국제적 '왕따'였기 때문이다.특히 독일의 처지가 처량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적국에 대한 공격은 물론 자위(自衛)까지 어렵게 꽁꽁 묶였기 때문이다. 군의 규모는 장교 4천 명을 포함해 10만 명으로 제한됐고, 육군은 종류를 불문하고 전차의 개발·보유가 금지됐으며, 공군은 항공기를 보유할 수 없어 서류상의 존재로 전락했다. 해군 역시 보유 함정의 총배수량은 10만t으로 묶였고, 잠수함은 보유할 수 없었다. 이런 제약 조건하에서 독일은 신무기 개발이나 새로운 전략·전술의 개발·훈련은 꿈도 못 꿨다.이런 절망적 상황을 독일은 소련과 군사협력으로 헤쳐나갔다. 독일은 소련 장성들을 독일로 초청해 독일의 전략·전술 교리, 군사 경제와 병참 지원에 관한 '신사고'를 제공했다. 이에 앞서 소련은 독일에 무기 시험과 전술 훈련 장소를 제공했다. 모스크바 동남쪽에 있는 리페츠크에 공군 훈련장, 볼가강의 카잔에 탱크 학교, 톰카(현재 볼스크)에 화학전 훈련 단지를 세워 독일이 독일 땅에서는 어림도 없는 무기와 전술의 개발·시험·훈련을 할 수 있도록 했다.우리 군 당국이 육군 전차와 자주포 등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야외 훈련장으로 수송해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미 본토 훈련장 시설을 활용해 주한 미군 순환 배치 부대와 훈련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그러나 숨은 이유는 9·19 남북 군사합의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 이후 최전방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하지 못하게 된 데 따른 궁여지책이란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부인하지만 한미연합훈련의 규모가 크게 줄거나 중단돼온 사실을 감안하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1차 대전 후 독일군처럼 우리 땅에서 훈련도 하지 못하는 우리 군의 처지가 딱하다. 독일은 어쩔 수 없어 그랬다지만 우리는 '합의'라는 자승자박(自繩自縛) 때문이어서 더 그렇다.

2020-02-0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북악산의 비서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감독과 주연배우는 영화에 정치색은 전혀 없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정치색이 매우 짙은 영화다. '죽은 권력'은 물론 '살아 있는 권력'에도 비수(匕首)를 날리기 때문이다.이 영화는 1979년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기 전 40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름이 바뀌었을 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이 등장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난 군인이자 혁명가"란 대사를 쏟아내는 김재규는 나라 앞날을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박정희는 종신 집권에 집착한 졸렬한 인물로 묘사된다.김재규는 5·16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영화에선 '혁명 동지' 박정희가 권력에 취해 망가지는 것에 실망해 거사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대통령 암살의 당위성을 부각하려는 장치로 읽힌다. 영화를 본 대다수 사람은 '죽은 권력'인 박정희와 그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대사는 여성 로비스트가 내뱉은 "세상이 바뀌겠어? 이름만 바뀌지…"라는 것이다. 영화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통렬한 일침(一針)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청와대 감찰 무마 등 숱한 의혹에 휩싸인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는 박정희 시대의 청와대·중앙정보부와 다르지 않다. 같은 편끼리의 끈끈한 유대, 치밀한 공작(工作)의 수준, 후안무치에서는 훨씬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고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을 하는 문 정권과 "탱크로 밀어버리자"는 박 정권이 어떤 차이가 있나.이름만 바뀌었을 뿐 제2, 제3의 김재규, 차지철이 활개를 치고 있다. 후보 매수, 하명 수사 등 총체적 선거 부정과 우리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리 인사를 비호한 청와대에서 두 사람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산의 부장들'은 서울 남산에 있었던 중앙정보부의 부장을 지칭한 은어였다. 후일 문 정권의 청와대 비서실을 다룬 영화를 만든다면 청와대 뒷산이 북악산인 만큼 '북악산의 비서들'이 딱 좋을 것 같다.

2020-02-04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호국 지워 평화 외치면…

"…그건 정말 눈물겨운 광경이었다. 장님의 아들이 군에 입대하는데 이웃 사람들이 전송을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앞을 못 보니 늘 길을 인도하던 아들이었다…눈먼 아버지는 대문을 나서는 아들을 도로 부르더니 마루 끝에 앉아서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볼 수 없으니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다…'이 애비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잘 싸우래이…우째도 우리가 이겨야 하는 기라.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로 서는 기라'…최인욱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6·25전쟁으로 대구에 피란을 온 최인욱 작가는, 1951년 3월 9일 대구에서 처음 결성된 공군종군문인단의 덕산동 사무실로 가던 길에 본 장님 부자(父子)의 이별 장면을 잊을 수 없었고, 이는 뒷날 1983년 발간된 '한국문단이면사'에 실렸다. 부자의 재회나 후일담은 알 수 없지만 전쟁 속 대구 사람과 젊은이, 국민의 순수한 충정 사례가 될 만하다.이 같은 가슴 저린 사연이 장님 부자만의 일일까. 3년 전쟁에 휩쓸린 모두 이런 아픔과 고통이었을 터이다. 나라 기틀이 잡히기 전 기습적인 남침인 데다 미군 철수, 북한 도발 때는 '해주에서 아침, 평양에서 점심, 신의주에서 저녁을'이라 큰소리친 이승만 정부(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무책임과 무방비의 결과였다.특히 각료나 관료, 일부 정치인 연루의 전쟁 중 범죄, 즉 어린이 359명 등 주민 517명(뒷날 719명)을 총살한 거창 양민학살이나 5만 명(추정) 젊은이가 죽은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면 국민적 희생은 거의 기적이다. 게다가 이런 치부를 감춘 정부가 외신 보도로, 마치 지난해 의성 쓰레기 산의 외신 전파로 대책에 나선 것처럼, 겨우 책임자를 추궁했으니 국민적 희생은 더욱 기릴 만하다.이런 국민적 희생 위에 일어선 나라가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31일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기억' '함께' '평화'의 3개 분과로 할 일을 나눴다. 정세균 총리가 공동 위원장인 이날 행사를 알린 보도자료 제목이 '평화를 위한 도약'일 만큼 평화가 부각됐다. 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나라 지킨 호국(護國) 정신 없는 평화는 신기루와 같다. 북한을 의식한 평화 강조겠지만 호국 희생자를 기리는 일은 무엇보다 앞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20-02-0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비노'

비누의 역사는 수천 년이 넘는다. 고대인들은 몸을 씻거나 옷 세탁에 오줌과 재(灰)를 이용했다. 로마인은 묵은 오줌과 표백토를 섞어 비누 대신 썼고, 고대 한반도에서도 '오줌으로 손을 씻고 옷을 빨았다'는 문헌 기록이 전한다. 청결을 위해 고안한 수단이 더러운 오줌과 재라니 묘한 반전이다.값비싼 사치품이었던 비누는 19세기 중반 대량 제조법이 나오기까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비누는 깨끗한 물과 함께 인간 수명을 크게 연장시킨 일등 공신이다. 꼼꼼이 비누칠을 한 다음 30초 이상 흐르는 물에 씻으면 세균을 거의 제거할 수 있다.비누는 우리말 '비노'가 변한 말이다. 조선시대 때 콩과 팥, 녹두 등을 갈아 빨래에 비벼서 때를 뺐는데 이를 '비노'라 했다. 숙종 때 간행된 중국어 한글학습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머리를 감는데 비노를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두(澡豆)나 석감(石鹼)도 옛사람들이 쓴 세정제다.고체 형태의 비누가 대중화된 것은 1790년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 르블랑이 소금에서 소다를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면서다. 조선말 파리 외방전교회 펠릭스 리델 신부가 '사봉' 비누를 가져온 것이 우리나라 비누의 시초인데 당시 비누 1개 값이 쌀 한 말(80전)보다 더 비싼 1원이었다.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이화여대 목동병원 남궁인 교수는 가장 효율적인 바이러스 예방법은 사람 많이 모인 곳에 가지 않고,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인데 손이 대부분 전염병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기침이나 재채기로 인한 비말(飛沫)이 어딘가 묻어 있다가 손으로 만진 후 몸으로 들어올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급속한 전파와 별개로 불미스러운 사회적 현상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고민이다. 우한 거주 한국인 국내 이송·격리를 극렬 반대한 일부 지역의 반응이나 천정부지로 치솟은 마스크 대란 등은 과학적 사실보다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심에서 비롯된 비이성적 감정 표출이라는 점에서 뒷맛이 쓰다.

2020-01-31 19:10:14

자유한국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고부] 기득권 586

최근 김형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이른바 '586세대'에 대해 날 선 발언을 퍼부었다. "단물만 빨아먹은 기득권 586은 다음 총선을 통해 국회에서 퇴출해야 한다." 발언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와 정부, 국·공영 기업체 요직에 포진해 있다가 총선 시즌을 맞아 국회 입성을 꿈꾸는 586 정치인들에 대한 견제 발언으로 읽힌다.5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를 가리킨다. 1960년대 출생자들이 1천만 명이나 되니 가히 우리나라의 주류 세대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들은 시대별로 386세대, 486세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1990년대에 출시된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80386·80486·펜티엄(80586)칩에서 따온 이름이다.이들은 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 세대로 불린다. 정보통신기술의 상징어와 같은 인텔칩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386세대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컸다. 수혜도 많이 받았다.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에 수월하게 들어갔고 경제 고도 성장기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상대적으로 취업난도 적게 겪었다. 2009년을 기점으로 486세대가 된 이들은 각 조직의 중견 간부로서 IMF 외환위기를 잘 극복해냈고 2000년대 초반 IT혁명을 주도했다.세월이 흘러 2019년을 기점으로 486세대는 586세대가 됐다. 그런데 586세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문제들의 근원이 됐다는 시선이다. 386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되고나서는 자신들이 비판하고 저항했던 윗세대의 행동과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특히 '내로남불' 행보의 전형을 보여주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부정적 인식 확산에 한몫했다.2029년 이후 586세대는 모두 60대가 된다. 이후에도 686세대 용어가 생명력을 갖고 사용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공교롭게도 인텔 CPU 시리즈에도 80686은 없다. 인텔은 당초에 펜티엄2칩에 80686 이름을 붙이려 했으나 '숫자는 독점적 상표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미국 법원 판결을 받고 사용을 포기했다. X86세대가 인텔칩 80686과 같은 길을 걸을지 예단키 어렵지만 이미지 개선은 난망해 보인다.

2020-01-3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한 딸이 지니, 한 딸이 뜨네!'…대구의 두 딸

'한 딸이 지니, 한 딸이 뜨네!'대구에서 몸을 받아 한 공간에 나온 인연에서는 두 딸이 닮았지만 자란 환경과 삶의 길이 달랐다. 1952년생 딸은 군인을, 1958년 태어난 딸은 세탁소 주인을 아버지로 두었다. 뒷날 서로 다른 정치 진영에 기대 40대와 30대에 여의도 국회에 입성했다. 그리고 50대에 각각의 진영과 이념을 대표하는 당 조직의 꼭지까지 이른 점은 또한 같다.옛날이면 인생을 갈무리할 60대에 이른 뒤 두 딸 앞의 삶은 또 다른 높은 곳을 향한 꽃길이었다. 그리고 모두 멋진 60대를 출발했다. 한 딸은 2013년 한 나라의 통치자로 더 오를 곳이 없는 데까지 이르렀고, 다른 딸은 올해 법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뜻있는 60대를 맞았으니 그 소회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그러나 알 수 없는 게 삶이고, 새로운 것도 없다지만 변하지 않는 일 또한 없다는 세상인 탓에 두 딸 앞에 열린 길은 얄궂었다. 아버지처럼 대통령이 된 딸은 2016년 국회 탄핵안 가결로 이듬해 3월 물러남도 모자라 곧 구속돼 지금까지 3년 가까이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다. 게다가 고향 대구에서도 찬밥 신세이니 이를 알면 기가 막힐 만하다.지난 2013년, 태어난 대구 중구 삼덕동1가 5의 2 생가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됐다. 손을 들고 웃는 표정인 얼굴 모습도 곁들인 간판이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곤 했던 곳이 됐다. 아버지 생가터인 구미 상모동 초가집처럼. 하지만 2016년 탄핵 뒤 훼손되자 철거됐다 2019년 또 세웠으나 올해 누군가에 의해 손상돼 최근 사라졌고 오늘도 없다.반면, 다른 한 딸은 장관 취임 이후 검찰과 힘 겨루기로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초점의 인물이 됐다. 정부 여당과 함께 검찰, 정확히는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며 성가를 올리지만 지지 진영의 성원 건너편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크다. 특히 출신 여고 총동창회 명의로 떠돈 비난 성명서의 진위 논쟁까지 겹쳐 그의 성가는 높아만 간다.대구 두 딸의 뜨고 지는 일을 지켜보는 고향 사람의 심경도 부침(浮沈)인 노릇이라 마음이 착잡한 요즘이다. 특히 삶은 꽃길과 가시밭길이 서로 어울리는 법이라 더욱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두 딸 앞에 남은 길 또한 어떨지 궁금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

2020-01-3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중국 공산당에 대한 환상

국내 진보·좌파들은 공산 중국에 끈끈한 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大長征)을 언급하며 여기에 김산이란 조선인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산은 미국 기자 님 웨일즈가 붙여준 가명으로 본명은 장지락이다. 이 연설을 통해 문 대통령은 마오와 조선을 연결시킨 것이다.이를 두고 반민중적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을 패퇴시키고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마오와 대장정에 대한 경외심이 그 바탕에 깔렸다는 소리가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런 경외심을 실제로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기자의 경험에 비춰 국내 진보·좌파는 대부분 그런 경외심을 공유한다는 것이다.청와대가 27일 '우한 폐렴'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사용하던 병명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일괄 정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주요 외신들은 여전히 'Wuhan virus'(우한 바이러스)로 쓰고 있는 사실에 비춰 중국의 국격 추락을 염려한 것이 아니냐는 거다.국내 좌파가 중국 공산당에 환상을 갖게 된 데는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영향이 크다. 장제스의 토벌을 피해 근거지인 장시성(江西省)을 출발해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까지 370일 동안 9천600㎞를 주파한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이 책을 통해 서구의 좌파는 중국 공산당이 매우 도덕적이며 민중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혁명세력이라고 믿게 됐는데 국내 좌파도 예외가 아니었다.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비극적인 예가 국공내전 중 마오가 명령한 '창춘(長春) 봉쇄'이다. 1948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계속된 이 작전으로 12만~15만 명(국민당 추산 65만 명)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었다. '창춘을 죽음의 도시로 만들라'는 마오의 명령대로 된 것이다.스노의 저작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이 안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때도 됐다.

2020-01-2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경자년 서생원

쥐와 인간의 역사는 애증의 쌍곡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쥐처럼 상반된 이미지와 캐릭터를 지닌 동물도 드물다. 인류가 좀 더 원시적인 동물이었을 때는 쥐와의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별 위험 부담 없이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그런데 인류가 한데 머물며 농사를 짓고 생산물을 저장하기 시작하면서 쥐는 도적으로 변했다.인간과 유사한 잡식성으로 인간의 생활권을 맴돌며 주로 양곡과 음식물을 훔쳐 먹고 살아온 것이다. 땅밑 음습한 곳을 본거지로 살아가는 야행성 동물이어서 각종 질병의 매개체가 되었다.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간 페스트 역시 쥐가 주범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유해조수인 쥐를 박멸하기 위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그러나 쥐가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생명공학의 시대를 선도하는 실험용 흰쥐는 질병 연구와 신약개발에 긴요한 동물이다. 더구나 아프리카산 쥐는 지뢰 제거에 각별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인명 구조 훈련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키마우스'나 '톰과 제리'는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20세기 최고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이다. 조선시대에는 서생원(鼠生員)이란 명칭으로 품격있는 대우를 받기도 했다.극단의 이미지와 오지랖 넓은 속성 때문에 한국인의 생활 속에는 쥐와 관련된 속담이 숱하다. '독 안에 든 쥐' '쥐뿔도 모른다' '쥐 잡듯하다' '쥐 죽은 듯'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서생원의 지상천국은 인도에 있다. 까르니마따라는 힌두교 사원은 쥐를 신(神)의 사자로 추앙하며 신성시한다. 평생 먹을 것을 주며 상전으로 받든다고 하니, 그곳에 태어난 쥐들은 또 무슨 인연의 결과일까.인간 사회에서 쥐는 여전히 애증이 교차하는 동물이다. '쥐새끼'라는 천대에서 '서생원'과 '십이지신'(十二支神)의 첫 번째 대우에 이르기까지 쥐는 '도적, 탐욕, 간신'의 이미지에서 '지혜, 예지, 신성'의 상징이라는 극단을 오간다. 명실공히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쥐의 단점보다는 서생원의 장점과 이미지가 부각되며 국정 혼란과 국운 쇠진을 다스리고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증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2020-01-28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생환의 설 낭보를 빌며

'좀 더 높이 올라가야지….' '꼭 살아서 돌아가야지….'2000년 8월 25일. 새로운 천년의 설렘을 안고 대구의 20~60대 산악인 17명은 '새천년 초모랑마 원정대'를 꾸려 히말라야의 으뜸인 초모랑마(珠穆朗玛) 오르기에 나섰다. 흔히 에베레스트라고 부른 초모랑마는 티베트에선 '대지의 어머니'로 통했다.10월 15일 대구 귀환 때까지 52일 일정에서 5차례 8,848m 등정 도전은 헛되었지만 대원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감사는 원정 중 일어난 60대 최고령 참가 대원의 예기치 못한 사고 때문에 더욱 그랬다.짐을 푼 5,400m 첫 출발 기지(BC)에서 29㎞ 떨어진 6,300m 전진기지(ABC)에서 정상 등반을 준비하던 중 고소(高所) 적응을 위해 4,000m 현지 마을로 하산하는 젊은 대원들과 달리 홀로 늦게 떠난 그가 앞선 대원들과 연락이 끊겼다 자정쯤 합류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날씨의 변덕과 오를 때 익숙한 길이 없어지곤 하는 산악지형 변화에다 발을 잘못 딛는 실수로 순식간에 눈밑 얼음 구멍으로 빠진 것이다. 미국 최고봉 맥킨리 정상도 밟았던 그였지만 당황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무사히 탈출, 눈물로 해후한 일은 바로 기적이었다.생환(生還) 비결은 회자되곤 했다. 얼음 구멍 속에서 오직 보고픈 가족만을 떠올렸고, 아내와 자녀들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그의 간절한 외침에 '대지의 어머니'도 외면하지 않았다. 지팡이에 기대 조금씩 발을 내딛고 마침내 얼음 구멍 속을 빠져나와 젊은 대원들을 울렸다.이후 정상 도전의 꿈은 접었지만 출발지 대구공항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애타게 불렀던 가족들과 극적인 재회를 했고 생업을 이어갔다.지난 17일 교육봉사활동에 나선 한국 교사 4명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눈사태로 실종, 아직 찾지 못해 국민을 애타게 하고 있다. 특히 설밑 들뜬 사람들과 달리 가족들의 속타는 심정은 어찌 다 헤아릴까.히말라야의 변화무쌍한 날씨와 자연 앞에서 무기력한 사람의 한계를 생각하면 '대지의 어머니'가 대구 원로 산악인에게 베푼 자비의 기적이 이들에게도 일어나길 비는 마음이다. 하늘이여, 그들 모두가 사랑하는 가족 이름으로 버티어 꼭 생환의 낭보 기적을 누리게 하소서!

2020-01-24 06:30:00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9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