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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文대통령과 영화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분으로 부산에서 원전 재난영화 '판도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30㎞ 내에 부산, 울산, 양산 시민 340만 명이 살아요. 만에 하나 그런 사고가 발생하면 이거는 뭐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최대, 최고, 최악의 원전 사고가 되는 거거든요."취임 한 달여 뒤인 2017년 6월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를 발표하고 탈원전을 선포했다. KBS가 팩트체크라며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탈원전을 공약한 만큼 영화 '판도라'와 탈원전은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판도라'를 본 문 대통령이 탈원전 결심을 확실하게 굳혔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영화 관람으로 문 대통령이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잦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후 문 대통령은 "아직 광주의 진실이 다 규명되지 못했다"고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을 관람하고서는 "(역사는) 이렇게 뚜벅뚜벅 발전해오고 있는 거다. 우리가 노력하면 바뀐다"고 밝혔다. 이어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관련 문화예술인들과의 점심 자리에서는 더 강한 발언이 나왔다. "책임 있는 사람들, 벌 받을 사람들. 확실히 책임지고 벌 받게 하는 그게 해야 될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문 대통령이 지난 주말 영화 '천문'을 관람했다. 신분과 상관없이 실력만으로 인재를 발탁해 과학 발전을 이룬 세종대왕과 노비 출신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다룬 영화다. 온라인에선 문 대통령이 이날 오전 안나푸르나 눈사태 실종자들을 언급하며 "애가 탄다"고 했던 점을 지적하며 영화 관람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화 '판도라'를 거론하며 문 대통령의 탈원전을 꼬집는 댓글도 있었다. "세종대왕 시절은 우리 역사상 과학기술이 융성했던 시기"라는 문 대통령 발언과 세계 최고 수준인 원전을 폐기하는 탈원전이 모순된다는 것이다.견강부회일지 모르지만 문 대통령의 '천문' 관람 목적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세종=문재인, 장영실=조국, 과학 발전=검찰 개혁'이란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지 진영 논리를 담은 영화를 편식(偏食) 관람하는 대통령 탓에 온갖 추리를 하게 된다.

2020-01-2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나눠 산 대구 어머니

"어느 날…두 거지가 왔다…'아주머니, 도와주세요'라고 구걸하였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마음이 아팠다…내가 울면서 재차 빌자 어머니는…눈물을 닦아 주었다…'착한 아들, 난 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장난쳤던 거야…너의 눈물에서 동정심이 보여 엄마는 정말 흐뭇하구나. 너는 이런 동정심으로…모든 민족, 인류를 위한 마음을 키워야 한단다!'라고 말하면서 쌀을 두둑하게 거지에게 주었다…."대구 달성군 출신 독립운동가 이두산은 1939년 3월 1일 중국에서 펴낸 잡지 '동방전우'의 '어머니의 얼굴'이란 글에서 '어머님의 가르침 아래 나의 혁명 사상은 나날이 성숙해졌다'고 썼다. 또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난관을 뚫고 나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뒷날 귀국, 고향 어머니 산소를 찾은 그는 '묘비에 박힌 글을 어루만지며 어머니를 떠올렸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대성통곡했다.'우리 어머니에겐 이처럼 나눔의 피가 흐른 듯하다. 이미 국채보상운동 때 반찬 줄이기, 쌀 한 숟가락 모으기, 비녀와 패물 등을 기부해 나눔을 실천하지 않았던가. 나라가 망하자 천도교에서는 10년 안에 나라를 찾겠다며 쌀 한 줌의 성미(誠米)운동을 벌여 3·1운동 밑자금을 모았다. 새마을운동 때, 농촌 부인네는 쌀을 모아 '좀도리 저축'에 나섰고, 전북 여성은 1980년 전국체전 때 그렇게 모은 돈에서 1억원 성금을 내놓은 사례가 오늘까지 전한다.지난해 11월 20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이달 31일 마감 예정으로 시작한 '희망 2020 나눔'의 '사랑의 온도탑'이 58일 만인 지난 16일, 목표액 100억2천만원을 훌쩍 넘긴 100억9천200만원을 기록했다. 마감까지 12일 남은 만큼 기록 경신은 진행 중인 셈이다. 지난해보다 14%(12억3천만원)나 목표가 늘었지만 일찌감치 앞당겨 채웠다.대구의 이런 행적은 대구 어머니의 나눔 가르침에다 국채보상운동 같은 자랑스러운 기부 역사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심한 정치적 핍박에다 가뜩이나 전국 최악의 경제지표 같은 힘든 지역 경제 살림 속에 일군 이런 나눔의 대구 흐름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나눔이 다른 분야로까지 더욱 퍼지면 대구는 분명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걸으리라 믿는다.

2020-01-2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국민이 암행어사'

치솟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가. 지난 13일 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축하 파티를 열었다. 서울 한 남도 음식점에서 '2020 신년 만찬'이란 명분으로 열린 파티엔 여당 지도부와 의원 50여 명이 모여 "검찰 개혁" "총선 압승"을 소리 높여 외쳤다. 한 의원은 "총선에서 우리가 다 당선돼서 17개 시·도에서 맛있는 것을 다 가져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기염을 토했다.민주당이 파티를 연 2020년 1월 13일은 문재인 정권엔 '환희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여당과 위성 야당들은 이날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정권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 지휘부 대학살에 이어 이날 검찰 수사 조직을 대거 폐지하는 직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권 심장부를 향해 칼을 겨눈 검찰의 힘을 빼는 데 성공한 정권으로서는 축배의 잔을 들기에 충분했다.여당의 축하 파티 소식을 듣고 춘향전에 나오는 변사또 잔치를 떠올린 사람이 많았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저들이 변사또처럼 잔치를 벌이며 웃음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날이 도래하고 말 것"이라며 변사또 잔치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지은 한시를 인용해 민주당에 경고장을 날렸다.'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天人血·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촛대에 촛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 소리 드높도다)'. 국민은 눈물, 원성을 쏟아내는데 교만한 정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잔치판을 벌이는 현실. 참담 그 자체다.이몽룡은 암행어사 출두로 춘향을 구해내고, 변사또를 엄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나라엔 암행어사가 보이지 않는다. 사분오열된 야당들은 정권 폭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검찰은 손발이 잘렸다. 4월 총선에서 표를 가진 국민이 암행어사가 돼 정권을 치죄(治罪)해야 하는 지경이다.

2020-01-17 19:47:19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노인과 시니어

며칠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다. 젊은 회사원인 글쓴이가 지하철을 탔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비면서 옆에 서 계시던 노인에게 양보했더니 "일하느라 고생하고 힘든 사람이 앉아야지, 나 같은 사람은 조금 서서 가도 된다"며 되레 자리를 권하더라는 사연이다. 글쓴이는 이 경험을 계기로 그동안 노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되돌아보게 됐고, 젊은이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어르신'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하지만 세대 간 벽을 뛰어넘는 이런 훈훈한 사연은 가물에 콩 나듯 접하는 사례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노인 이미지는 이와는 정반대다. 무례하고 시끄러운 철면피의 인상이 더 강하다. 이런 노인의 공통점은 나이를 마치 훈장으로 여기거나 주변 사람과의 공감 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밉상' 노인들이라는 점이다.최근 통계를 보면 국내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800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15.4%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앞으로 10년간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 세대가 노인 인구에 계속 합류하는데 그 수가 무려 805만 명이다. 연평균 80만 명꼴로 그동안 한 해 40만~50만 명씩 늘던 것이 올해부터는 두 배씩 늘어나는 '노인 인구붐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고령화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 1천50만 명, 전체 인구의 20%가 노인인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의미한다.이런 현실에서 노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나 이미지 제고를 통한 세대 간 '격차'나 '불화' 해소가 시급하다는 여론이다. 호칭을 둘러싼 고민도 그중 하나다. 법적·행정적 용어로 만 65세 이상 연령층을 흔히 '노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말 그대로 '늙은이'를 뜻하는 이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더러 '어르신'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높임말이 불편하다는 반응도 많다.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고령자' '시니어' 같은 의미 중립적인 용어다. 알게 모르게 특정 용어나 호칭이 주는 선입견과 차별 의식 등 부작용을 감안하면 노인에 대한 호칭은 신중할수록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에게서 존경받을 만한 따뜻한 심성의 노인, 즉 시니어가 되는 길이다. 노인도 이제 연습이 필요한 때다.

2020-01-1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억울한 옥살이

프랑스 왕정복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정치적 음모에 휘말린 한 사나이의 억울한 옥살이와 기적적인 탈옥 그리고 통쾌한 복수를 그린 작품이다.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빠삐용'도 억울한 옥살이가 모티브이다. 살인죄 누명을 쓰고 악명 높은 감옥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감내하다가 끝내 탈출에 성공한 어느 종신수의 이야기이다.아내를 살해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지옥 같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출해 자유의 몸이 되는 줄거리의 영화 '쇼생크 탈출'도 억울한 옥살이를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의 사법체계와 교정시설에서 탈옥(脫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억울한 옥살이의 사연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불거진다.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죄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3) 씨의 경우도 그렇다. 그가 이춘재의 자백을 계기로 무죄를 주장하며 법원에 청구한 재심 개시가 지난 14일 결정되었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수사기관의 짜맞추기 조사로 연쇄 성폭행범으로 몰려 2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캐나다의 60대 남성이 당국을 상대로 배상 소송에 나섰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예나 지금이나 재력과 권력이 옥살이의 유무와 경중을 좌우하는 행태는 여전한 듯하다. 탈옥 후 도심 한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였던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제는 '유력무죄 무력유죄'(有力無罪 無力有罪)가 더 통용되는 시대이다. 특히 정치적인 성향을 지닌 사안의 유무죄(有無罪)는 권력의 향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2015년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혐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의 징역형이 확정되자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 보복'이라 억울해하며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치부했다. 그 정당이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촛불 시위에 힘입어 권력을 거머쥐자 소위 '적폐 청산' 명목으로 숱한 반대 세력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억울한 옥살이'의 개념을 스스로 흔들어 놓았다.

2020-01-1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달나라 사람의 헛소리

프랑스의 시인으로 공산주의자였던 폴 엘뤼아르는 1948년 10월 스탈린주의 정권의 루마니아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는 누구도 웃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행복의 빛을 발견했다." 이를 두고 2010년 타계한 영국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청중은 분명히 망연자실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소련과 우호 관계를 맺는 데 단서는 없다. 러시아 국민의 희생은 그 지도자들이 국민의 희망을 체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소련을 무조건 옹호했던 사르트르 유(類)의 좌파 지식인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회고록에서 한 말이다. '반동'으로 몰려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수많은 러시아 국민을 망연자실케 하는 헛소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1960년대 서독 학생운동의 지도자 루디 두치케도 마찬가지다. 그는 체코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68년 봄 프라하를 방문해 현지 학생들에게 "다원적 민주주의가 진짜 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체코 학생들은 당황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다원적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역사학자로 공산권 붕괴에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았던 에릭 홉스봄의 헛소리도 가히 압권이다. 그는 1994년 BBC방송 인터뷰에서 "스탈린 치하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이 사망했더라도 진정한 공산사회 건설로 이어졌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소련의 붕괴를 안타까워하면서 "이 세계는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시한 양자택일에 직면하여 사회주의를 반대하기로 결정했던 것을 조만간 후회할지 모른다"고도 했다.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많은 말을 쏟아냈다.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인, 국민을 망연자실케 하는 헛소리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찰 인사는 (청와대) 수사와 별개로 이뤄진 것"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인사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줬다" 등등. 특히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조국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초,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마음의 빚을 졌다"는 대목은 역시 '달나라 사람'답다고 할 만하다. 이번 기자회견 뒤 사이다 판매량이 급증했을 것이란 생각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2020-01-15 06:30:00

김해용 논설실장

[야고부] 기후 악당

요즘 호주에서는 붉은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이후 다섯 달째 이어지고 있는 대화마(火魔)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초대형 산불로 뜨거운 열·공기가 상승하면서 형성된 화재적란운(火災積亂雲) 때문에 마른 붉은 하늘에 번개가 치는 현상이 빈번하다는 것이다.호주 산불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남한 면적의 107%에 해당하는 지역이 산불에 휩싸이면서 5억~10억 마리로 추산되는 야생동물이 희생됐고, 호주 대륙에만 서식하는 코알라도 8천 마리가 피해를 입어 멸종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호주 대륙은 다른 대륙에서 볼 수 없는 240여 종의 포유류가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다. 하지만 이번 참화로 호주 대륙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는 비관론마저 나오고 있다.기후학자들은 호주 산불 사태 원인으로 '인도양 쌍극' 현상을 지목하고 있다. 인도양 동쪽과 서쪽 바다의 수온 차가 심해지면서 인도양 서쪽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동쪽 지역 즉, 호주 대륙에는 고온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남극 진동의 반경 약화(남극 상공의 기류 약화)도 원인 중 하나다. 두 현상이 겹쳐지면서 시드니 서부 기온이 48.9℃까지 치솟는 등 호주 대륙은 유례없이 뜨거워지고 건조해졌다.씁쓸한 것은 호주 산불 대재앙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이다. 인도양 쌍극과 남극 진동 약화는 지구온난화의 파생 현상인 탓이다. 사실, 지구온난화에 관해서 호주는 할 말이 없는 나라다. 청정국가라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호주는 화석 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말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순위를 봐도 58개국 중 53번째 나라다. 비영리단체들로부터는 2016년 '기후 악당 4개국'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이때 우리나라도 기후 악당국 중 한 곳으로 함께 지목됐다. 지난해 말 CCPI에서도 한국은 58개국 중 55번째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래서 유례없이 따뜻한 올겨울 날씨를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다. 북극 진동 약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이라서 그렇다. 호주의 일은 결코 '바다 건너 불 구경거리'가 아닌 듯하다. 당장 올봄 산불 걱정부터 앞선다.

2020-01-14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윤석열 대망론'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는데 바람이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윤석열 검찰총장 수족을 잘라낸 '대학살'에 이어 그를 항명(抗命)으로 몰아세워 사퇴를 압박하는 문재인 정권을 보면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올랐다. '나무=윤 총장, 바람=정권'으로 바꿔 읽으면 문 정권의 후안무치한 민낯을 잘 알 수 있다.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됐을 때, 문 정권 출범 후 앞선 정권에 칼을 휘두를 때만 해도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 등 집권 세력에게 '영웅'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장 임명장을 주며 "우리 윤 총장"이라고 했고, 정권 사람들은 "진짜 검사"라며 '윤비어천가'를 불렀다. 윤 총장이 조국 전 장관과 가족 비리, 친문(親文) 인사들이 개입한 의혹 등을 모른 척하고 넘어갔으면 정권은 윤 총장에게 계속 훈풍(薰風)을 쏟아냈을 것이다.지금까지 '검사(檢事) 윤석열'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권력 비리를 파헤치는 검사 본연의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라"는 문 대통령 지시를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윤 총장에게 삭풍(朔風)이 닥쳐온 이유는 단 하나. 문 정권을 향해 칼을 들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을 계속 놔뒀다가는 정권 안위마저 위태롭게 되자 그를 찍어내려 정권이 총동원됐다.'문재인 대(對) 윤석열 전쟁'에서 문 대통령이 검찰 인사란 칼을 휘둘렀다. 역설적인 것은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더 큰 인물로 키워주는 것은 문 정권이란 사실이다. 윤 총장을 겁박할수록 정권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무도할까 의문을 품는 국민이 많아질 것이고, 법치에 대한 원칙·소신으로 정권을 수사하는 윤 총장에게 지지를 보내는 국민은 더 늘어날 것이다.1987년 대통령 직선제 후 현직 대통령과 대척점(對蹠點)에 선 인사가 대권을 거머쥔 경우가 많았다. 문 대통령이 딱 그렇다. 윤 총장이 정권을 제대로 단죄한다면 대권주자로 '민심의 부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같은 난세엔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망론'이 피어오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 진영에 마땅한 구심점이 없던 차에 윤 총장을 무럭무럭(?) 키워주는 문 정권에 "땡큐"라고 인사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2020-01-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미드웨이 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번 주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영화로는 첫 골든글로브 수상인 탓에 국내 팬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고, 다음 달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수상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생충'에 쏠리는 관심은 자연스럽다.하늘을 찌를 듯한 '기생충'의 기세와 달리 조용히 팬들의 발길을 당기는 영화가 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미드웨이'(Midway)다. 독일 출신 로란트 에머리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상영 열흘째인 9일 현재 누적 관객 수 78만 명을 기록했다. 2001년 국내에서 약 10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진주만'과 비교해 '미드웨이'의 속도가 훨씬 빨라 앞으로의 흥행 예측이 쉽지는 않다.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마이클 필립스 감독의 '불굴의 미드웨이'도 1일 미국에서 개봉했다. 무엇보다 국내 팬들의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미드웨이 해전 영화를 꼽자면 1976년 잭 스마이트 감독의 '미드웨이'다. 헨리 폰다, 찰턴 헤스턴, 제임스 코번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가 들어오자 대구 각 중·고교마다 문화교실 작품으로 단체 관람을 했는데 칠성시장 부근의 신성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이런 '미드웨이 붐'은 최근 '노 재팬' 등 높은 반일 정서와 맞물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미드웨이 해전의 전모를 '학습'하는 분위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매주 유튜브에 연재돼 높은 조회수를 기록 중인 미드웨이 해전 리뷰 '불타는 하늘'은 이런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 지난 2012년 미드웨이 해전의 전모를 56편으로 나눠 상세히 분석한 '대사의 태평양전쟁 이야기' 블로그에 대한 재조명 열기도 뜨겁다. 진주만은 일본의 성공, 미국의 상처로 귀결되는데 반해 미드웨이는 미국의 굴기, 일본 패망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국인의 기대심리를 잘 반영한다. 단순히 '미드웨이'를 즐기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교훈을 얻으려는 요즘 트렌드가 듬직하다.

2020-01-10 18:44:05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풍선 유감

'휘파람을 불지마 그건 너무 쓸쓸해. 촛불을 끄지마 어두운 건 싫어. 너와 나 빨간 풍선 하늘 높이 날아. 가슴 깊이 묻어 둬 너의 슬픔이랑….' 197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해 파격적인 음악으로 선풍을 일으켰던 삼형제 록 밴드 '산울림'의 노래 '빨간풍선'이다. 그런데 바보같이도 느껴졌던 무미건조한 가수의 목소리에는 당대 청년들이 갈망했던 자유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날아오르는 풍선의 속성에 구속을 싫어하는 인간의 해방감을 담은 것일까. 형형색색의 풍선들은 눈에 띄기 쉽고 보기도 좋아 선전용이나 야외 행사용으로도 두루 쓰인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이벤트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1986년 미국 클리블랜드의 풍선 사고도 그렇게 일어났다.어떤 단체가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풍선 150만 개를 하늘에 띄웠다. 두둥실 떠오른 각양각색의 풍선들은 장관을 연출했고 사람들은 넋을 잃고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재앙으로 돌아왔다. 활주로에 바람 빠진 풍선이 나뒹굴며 공항이 마비되었고, 온 도시가 풍선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지구상에서 풍선의 역사는 수백 년이 되었다. 원시적인 풍선은 동물의 창자로 만들었는데 중세 유럽에서는 궁정의 광대들이 다양한 형태의 풍선을 만들어 막대기에 매달고 다녔다. 1960, 70년대 우리 농촌에서도 경조사를 위해 돼지를 도축하고 난 부산물인 방광에 바람을 불어넣어 어린이들이 축구공처럼 가지고 놀기도 했다.오늘날의 풍선을 발명한 것은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페러데이였다. 그는 화학실험을 하면서 두 겹의 고무를 용접해 가방 모양으로 만든 후 수소를 채워 넣고 공중으로 띄우며 기체의 성질을 관찰한 것이다. 풍선이 상업화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고무 생산업자인 토머스 핸콕에 의해서라고 한다.2020년에도 전국에서 새해맞이 풍선 날리기 행사가 열렸지만, 이제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떨어진 풍선 조각을 먹이로 착각한 야생동물과 해양생물의 목숨을 위협하며, 미세플라스틱 오염원 증가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류가 멋모르고 누리는 문명의 이기에는 늘 이렇게 반대급부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20-01-10 06:30:00

국채보상운동 당시 성금 모금 조형물.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야고부] 아이, 어른의 거울답다

'…14세 상노(床奴) 김육봉 구화 1원, 9살 이용봉 세뱃돈 신화 4원 90전, 9살 이덕봉 세뱃돈 1환과 용돈 1환, 10세 김쾌문 신화 50전, 10세 김홍동 학자금 500냥, 9세 방경룡 1원, 인력거군 정화선의 10세 딸 구화 15전, 품팔이 과부의 10세 딸 구화 20전, 김치홍의 14세 딸 바느질 품삯 1원, 박처간의 8세 여종 시월이 60전, 이주현의 6세 딸 세뱃돈 3환, 수원 6세 어린이 신천동 세뱃돈 50전, 서울의 10세 김갑경이 9세 안옥남·김병돌과 함께 각 20전씩….'과연 놀랄 만하다. 우리 역사에서 나라 언론이 이처럼 어린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미주알고주알 나날이 드러내 알린 일이 있었던가. 또 이렇게 어린이들이 세상과 어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이리도 어린아이들이 나라의 어려움에 보탬이 되겠다면서 고사리손으로 소중한 돈을 모아 바친 일이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그러나 모두 사실이다. 1907년 3월부터, 당시 발간된 신문 여기저기에는 자고 나면 새로운 어린이 이름이 숱하게 등장했고,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온 백성을 들끓게 만든, 일제에 진 나라의 빚 1천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 나라 어린이들의 상상하지 못한 기부였다. 드러난 신분과 행적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역사에 길이 남을 옛 아이들의 기부 행렬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의 세계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에 의해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2천475건의 국채보상운동기록물에서 확인됐다. 사업회 김지욱 전문위원에 따르면, 특히 이들 아이를 포함한 학생·청소년의 기부만 최소 120건이 넘어 전체의 5%여서 더욱 놀라울 뿐이다.지난달 경북도와 한국국학진흥원이 한국 보유 16종의 세계기록유산에 대해 소개한 책 '이야기로 보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에 처음 공개된 김 위원의 분석 자료는 '아이는 어른의 거울'임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특히 현재의 인색한 기부 문화를 살피면 100년 전 한국 어린이들의 기부는 오늘날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어른들의 알량한 기부가 판을 치는 오늘, 옛 어린이들의 때묻지 않고, 신분과 빈부 등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의젓함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새해 벽두 확인한 옛 아이들의 일, 널리 알릴 만하지 않은가.

2020-01-09 06:30:00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신년 전야 미사를 앞두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한 여성 신도가 손을 세게 잡아당기자 얼굴을 찡그리며 화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야고부] 아시시의 장미

아시시의 성(聖) 프란치스코(1181~1226)는 '빈자(貧者)의 성인'이라 불린다. 이탈리아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10대 시절을 지낸 그는 수도자가 된 이후 온 생애를 철저한 금욕과 절제, 청빈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백 년마다 한 번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다면 세상의 구원은 보장될 것"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그런 성 프란치스코도 사람인지라 성욕 때문에 괴로워했다. 성욕이 일 때마다 그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음욕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며 피투성이가 되도록 장미 덤불 위를 뒹굴었다. 프란치스코 사후 아시시의 성당 마당의 장미들은 가시가 없다고 전해진다. 아시시의 장미를 다른 곳에 심으면 가시가 생겨나고, 아시시에다 옮겨 심으면 가시가 없어진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현 교황의 이름은 바로 이 성 프란치스코에서 딴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콘클라베(교황 선거)에서 3분의 2 이상 표를 얻었을 때 옆자리에 있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자신을 껴안는 순간 성 프란치스코가 떠올랐다고 한다. 즉위 이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몸에 밴 겸손과 탈권위적인 행보를 보이며 역대 여느 교황들이 경험치 못한 큰 사랑을 대중들로부터 받고 있다.그런데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됐다. 한 여성이 자신의 팔을 확 잡아당기자 여성의 팔을 두 번 내리치는 모습이었다. 평소 인자한 이미지와 상반된 모습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논란이 일었고, 교황이 순간적으로 인내심을 잃었다고 공식 사과하기에 이르렀다.가톨릭계에서는 '교황 무오류설'이라는 용어가 있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황의 공식적 선언에는 오류가 없다는 시각인데, 교황도 사람일진대 모든 언행이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누가 신체적 고통을 갑자기 가하면 '억!' 소리가 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성 프란치스코조차도 음욕과 싸웠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버럭 화내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2020-01-08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문 정권의 입법독재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가 발효되기 전까지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연임 제한 규정이 없었다. 이를 축자적(逐字的)으로 해석하면 무한정 연임해도 헌법 위반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등 후임 대통령들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연임하고 물러난 선례를 존중하고 따른 것이다.제퍼슨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임기가)헌법에 의해, 혹은 관습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면 명목상 4년 임기는 종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나는 훌륭한 전임자가 남긴 선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연장한 첫 사례가 되고 싶지 않다."이런 연임 제한 전통은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으로 인기가 높았던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때 재확인됐다. 그랜트의 측근들이 3연임을 주장하면서 의회에서 찬반 논쟁이 일자 하원은 이렇게 결의했다.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대통령이 남긴…두 번의 임기 후 물러났던 선례는 미국 공화국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이 유서 깊은 전통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고 비애국적인 행위가 될 것이며, 미국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역설적이게도 이런 전통을 위반한 첫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으로, 4연임했다. 이는-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헌법의 맹점을 파고든 '내용적 위헌'이었다. 이에 민주·공화 양당은 1947년 대통령 임기를 4년씩 2연임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 제22조를 합의 통과시켰다.이런 사실은 의회의 법률 제정권에 시사하는 바 크다. 헌법의 맹점을 이용한 '내용적 위헌'은 민주주의의 보전과 발전에 더 큰 위험이라는 것이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도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민변, 참여연대 등 친여 인사들이 법관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까지 발의한 문재인 정권의 '입법 독재'는 그런 위험이 눈 앞의 현실임을 잘 보여준다.이런 입법 독재를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무법적 공권력 행사'로 규정했다. "입법부가 정한 법이면 무엇이든, 이런 법 아래서 정부가 내리는 결정은 무엇이든, 이를 법이라고 부르는 것, 이런 것만큼 웃기는 코미디가 없다. 이는 무법적 공권력 행사다."

2020-01-0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휴머니튜드

'정면으로 다가가 시선을 맞춘다. 3초 이내에 "안녕하세요? 기분이 어떠세요?" 말을 건넨다. 어깨나 등에 손을 올린다. 3분이 지나도 당신을 거부하면 "오늘은 그만 할게요. 다시 봐요" 인사하고 돌아나온다.'프랑스의 치매 케어 전문가 이브 지네스트의 책 '휴머니튜드 혁명'에 나오는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다섯 단계'의 내용이다. 병원과 복지시설에서 흔히 발생하는 치매 환자와의 소통 장애 해결법을 전파해온 그는 최근 국내 TV 다큐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인물이다. 그는 인천 시립 노인치매요양병원 중증 치매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휴머니튜드 케어'를 통해 치매 환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소통의 문제점을 직접 증명한다.휴머니튜드는 '인간다움' 뜻을 가진 조어다. '보고, 말하고, 만지고, 서고 걷는' 네 가지 기본 특성에 기초한 대화가 막힌다면 치매 환자와의 소통이 어렵다는 점을 이브 지네스트는 강조한다. 화를 내고 욕하며 공격하는 치매 노인의 행동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데 대한 방어적 행동이라는 사실을 시청자가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치매 환자와의 소통 첫 단계는 '눈 맞추기'다. 정상인의 시야 범위는 120도이지만 치매 환자는 시야각이 매우 좁다. 정면에서 환자의 눈을 응시하고 얼굴 간격도 25~30㎝를 유지해야 소통이 가능해진다. 인천 치매요양병원에서 60일간 진행한 휴머니튜드 실험 결과 눈을 맞추고 어루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태도는 달라졌다. 환자를 침대에 묶는 구속 띠도 사라졌고, 신경안정제 약물 사용도 절반으로 줄었다. 누워만 있던 노인이 일어나 걷게 되고, 입을 닫았던 할머니는 간호사와 대화를 시작했다. 통제와 억압이 아닌 존중과 사랑이 가져온 치유력이다.대구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복지사가 이용자들을 상습 폭행하고 학대해 온 사실이 적발됐다. 사건 은폐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 사례에서 국내 병원과 사회복지시설이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환자나 이용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늘 그들과 마주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휴머니튜드 케어는 국내 약 75만 명의 치매 환자만을 위한 케어 방식이 아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2020-01-06 06:30:00

경상감사가 집무를 보던 선화당(宣化堂•대구시 유형문화재 1호).

[야고부] 달구벌의 음향(音香)

조선 후기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한 송홍록은 데뷔 시절 경상감영의 명창 선발전에 나왔다가 창피를 당했다. 심사위원인 한 기생에게 몇몇 대목이 신통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절치부심하며 고향 남원으로 돌아간 송홍록은 피를 토하는 소리 공부를 다시 하고서야 득음(得音)하여 국창의 반열에 올랐다.조선시대 대구의 경상감영 선화당은 판소리 경연대회 본선이 열린 무대였다. 전주대사습놀이 예선을 거친 다음 경상감영의 명창 선발전을 통과해야 한양에 가서 전국적인 명창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대구는 날뫼북춤과 영제시조가 흥행한 곳이다. 대구는 박태준, 현제명, 권태호 등 유명 음악가들에 의해 우리나라 근대의 서양음악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다.대구는 대한민국 제1호 클래식 감상실 '녹향'이 문을 열어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6·25전쟁 중에도 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서 바흐의 음악이 흘렀던 기적의 공간이었다. 대구는 또한 대중가요의 메카였다. 많은 유명 가수를 배출했고, 대구에서 탄생한 노래들이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한 김희갑, 김영광, 배상태 등이 대구에서 활약했다.'봄날은 간다'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히트곡도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나왔다. '비나리는 고모령'은 대구가 무대이다. 백년설(나그네 설움), 신세영(전선야곡), 남일해(빨간 구두 아가씨), 곽순옥(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여운(과거는 흘러갔다), 이용복(그 얼굴에 햇살을), 김광석(일어나)에 이어 양파와 방탄소년단(BTS)의 뷔와 슈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요즘 대구 출신 가수들은 팔방미인이다. 아이돌 가수 양파는 예쁜 모습에다 공부도 썩 잘해 인기가 높았다. 지구촌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한 BTS의 멤버 7명 중 2명이 대구 출신이다. TV매일신문이 특집으로 마련한 뷔와 슈가의 특별영상이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멋진 비주얼과 다재다능한 재능에 해외 팬들의 호응도 뜨겁다. 음악의 도시 달구벌의 숨결이 낳은 초특급 월드 스타들이다.

2020-01-03 19:23:45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18세 학생 선거의 덫

법(法)의 한자를 풀면 물(水)과 간다(去)가 된다. 물처럼 흐르는 게 법이다. 물은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만나면 둘러 가기도 하지만, 웅덩이나 파인 곳에 이르면 흐르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법이 사람과 만나면 고약한 존재가 되곤 한다.대한민국 법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그렇다. 특히 근대적 의미에서 서양식 잣대의 법이 많이 들어온 시기로 볼 만한 일제강점기의 암흑기를 돌아보면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 일제는 나라를 삼키기 전부터도 그랬지만 1910년 한국을 지배하면서 자고 나면 새로운 법을 발표할 만큼 온갖 법을 등장시켰다.이유는 너무나 뻔했다. 새로운 법의 지배 틀을 밤낮으로 내놓은 까닭은 법에 낯선 한국인을 얽어매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일제가 얼마나 많은 법을 만들었는지 당시 총독부 기관지(매일신보)는 '매일 비 오듯이 쏟아졌다'고 할 정도였다. 그들 멋대로 만든 법이니 한국인은 날마다 죄인으로 붙들려 갔다.이런 아픈 역사적 배경을 안고 출발한 많은 오늘날의 법이기에 그때처럼 지금도 힘이 약하거나 가난한 사람 편이 아닌 때가 일쑤였다. '돈 없으면 유죄요, 돈 있으면 무죄'인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서글픈 유행어가 없어지지 않고 생명력을 잇는 까닭이다.지난달 27일 국회의 선거법 개정으로 오는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만 18세가 되는 50여만 명이 첫 투표의 행운을 누린다. 종전 19세의 선거 연령이 낮춰져서다. 고교 3학년도 5만 명쯤으로 추정되는데, 자칫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선거법은 전문가도 헷갈릴 정도로 복잡해 자칫 학교 안팎에서 잘못 말하거나 행동했다가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라 법 적용의 악명도 감안하면 미리 경계해야 한다. 18세로 투표 나이를 낮춘 것을 마냥 반길 수만 없게 됐다. 생애 첫 선거 투표, 잘 대처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 여야 경쟁이 치열해 이들 18세 젊은 새로운 유권자 포석을 위한 유혹도 커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야 모두 이들 18세 학생 유권자들을 전과자로 모는 짓은 말아야 한다. 18세 첫 유권자 역시 덫에 걸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현실을 몸소 체험하는 모험은 피할 일이다.

2020-01-03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새로운 온을 꿈꾸며

올 한 해는 온 나라가 우리말로 100을 뜻하는 '온'을 앞세운 날들이었다. 독립운동의 분수령을 이룬 3·1운동 100주년을 비롯하여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무장 항일 투쟁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義烈團) 결성 100주년, 구상 시인 등 인물 탄생 100주년에다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이를 기념했다.온은 숫자 100을 뜻하기도 하지만 '모두'를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백(100)의 온은 '전부'를 일컫기도 하지만, 흔하지 않거나 이뤄지길 바라는 어떤 대상이나 목표와 관련해서 쓰인 단어로 볼 수도 있다. 백(百)의 글자가 들어간, 백세(百歲) 시대나 백년(百年) 손님 또는 백년(百年) 해로(偕老), 백년(百年) 하청(河淸) 등 숱한 단어들을 살펴보면 알 만하다.우리에게 100의 남다른 기억 속에는 '100억불(弗) 수출'이란 구호도 뚜렷하게 한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세월, 선진국 눈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이 상상과도 같았던 '100억불' 수출 목표를 세워 이뤄낸 일은 '한강의 기적'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갓 태어난 아이의 '100일'을 축하하듯 우리에게 100은 기릴 만한 숫자였던 것이 틀림없다.특히 대구경북에서는 엄혹했던 망국의 일제강점기 때인 1919년 거국적 자발적으로 일으킨 3·1만세운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는 그런 불행한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며 각오를 다진 100년 행사가 넘쳤다. 어느 곳보다 많은 희생을 치렀고 압도적인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위기에는 기꺼이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대구경북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그런 뜻깊은 2019년을 맞아 준비했던 갖가지 100주년 기념과 축하 행사도 이제 오늘로 막을 내리고 역사 속으로 묻히고 다시 올 새로운 온을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2020년의 첫날인 내일이면 새로운 온의 100을 맞는 일들이 또다시 온 나라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2019년 돼지띠의 해는 지고, 쥐띠의 해가 뜨는 2020년에는 2019년 뭇 온을 계기로 다진 각오를 바탕으로 국운(國運) 상승을 가져올 여러 온 기념이 활짝 펼쳐지길 꿈꾼다. 정치적 혼란 때마다 제 역할을 했던 대구경북이 앞장을 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2019-12-31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원수와 동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왕자 규와 소백은 왕위를 두고 형제간에 싸움을 벌였다. 이때 규를 받들던 관중은 화살을 날려 소백을 죽이려 했다. 곧 제나라 환공으로 즉위한 소백이 관중을 처형하려 하자 충신 포숙아가 막아섰다. 관중의 인물됨을 역설하며 오히려 재상으로 삼으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관중을 중용한 환공은 춘추시대의 패자로 부상했다.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내용이다.당 태종 이세민은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일으켜 황태자인 형 이건성을 제거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일찌감치 이세민을 경계하며 죽여야 한다고 주청했던 사람이 바로 이건성의 책사였던 위징(魏徵)이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세민이 위징을 잡아다 "왜 형제를 이간질해 참변을 초래했느냐"고 호통을 치자, 위징은 오히려 "옛 태자가 내 말을 들었더라면 이 지경이 되었겠느냐"고 당당하게 맞섰다.위징의 충심과 강단이 마음에 들었던 이세민은 자신의 신하가 되어 달라고 했고, 위징은 '어떠한 간언(諫言)도 받아들일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후 위징은 황제에게 수없이 쓴소리를 했고, 당 태종은 숱한 갈등과 불같은 화를 참으며 위징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세로 일컫는 '정관의 치'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자신을 노골적으로 모욕하고 경멸하던 에드윈 스탠턴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스탠턴의 능력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스탠턴은 링컨을 도와 남북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가장 슬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당선 직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국회의원을 통일부 장관에 기용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국리민복을 위해서 원수를 동지로 포용하며 직언을 정책으로 반영하려는 통합의 정치술이었다.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君明臣直)고 했다.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고, 양약(良藥)은 입에 쓰다'고 했다. 제 편만 챙기고 사탕 발린 소리만 들으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다가 망하는 것은 임금과 간신들의 업보라고 치자. 모진 세월을 피눈물로 감내해야 하는 국민은 어찌할 것인가. 그렇게 또 한 해가 저물었다.

2019-12-30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형·아우가 원수'

도사자란 도법자치(道私者亂 道法者治). "사사로운 길을 따르는 자는 어지러워지고, 법의 길을 따르는 자는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법가인 한비자(韓非子)가 지은 '한비자' 궤사(詭使) 편에 나오는 문구다.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청와대 감찰 중단 의혹을 지켜보면서 '도사자란'이 떠올랐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라는 사사로운 길을 따랐다가 몰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버랩된다. 송철호 울산시장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문 대통령에겐 사사로운 길로 보지 않을 수 없다.'형' '아우'라는 코드가 아니고서는 두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당선 직후 송 시장의 언론 인터뷰 중 일부다. "저는 집도 이사하고 더 이상 (선거) 안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가 찾아왔다. 만났더니 '형, 이사했다며? 다시 이사 가소' 그래서 '내는 내 맘대로 못 사나?' 하니까 '그게 운명인데 어쩝니까?' 그래서 다시 이사를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행비서를 지낸 유 전 부시장은 문 대통령을 '재인이 형'이라고 불렀다.송 시장이 문 대통령의 '형'이 아니었다면 정권 차원의 뒷받침을 받아 시장에 당선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속이 되고도 남을 비리를 저지른 유 전 부시장이 문 대통령의 '아우'가 아니었다면 청와대 감찰 중단을 넘어 국회 수석전문위원, 부산시 경제부시장으로 승승장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우'이자 '형'인 문 대통령이라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다.촛불로 태어났다는 정권이 국기 문란에다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건들에 휘말렸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을 볼 면목이 없게 됐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권에서 '아우 찬스' '형님 찬스'가 횡행한 것도 가증스럽다.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는 법칙이 다시금 확인됐다.형·아우에서 촉발한, 정권을 휘청거리게 할 사건들이 줄을 이을 개연성이 크다. 정권을 장악한 586들이 형·아우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움으로 말미암은 국가 혼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다.

2019-12-27 18:54: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정치 좀비들

민주주의는 그 향유자들이 지키려는 의지가 없으면 언제든 사멸한다. 가장 비극적 사례가 1933년 3월 24일, 모든 법률의 제정·개정·폐지 권한을 행정부에 일임한 '수권법'(授權法·정식 명칭은 '국가와 민족의 위기를 제거하기 위한 법')의 독일 의회 통과다. 이는 히틀러 독재의 헌법적 장애물을 깨끗이 치워버린, 독일 민주주의의 '자살'이었다.자살인 이유는 사회민주당과 이미 의원들이 체포돼 의회에 출석할 수 없었던 독일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당, 사민당, 공산당에 이은 원내 제4당인 가톨릭중앙당의 찬성은 뼈아팠다. 이 당이 반대표를 던졌다면 수권법은 통과될 수 없었다.자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권법 통과 후 중앙당을 시작으로 모든 정당이 자진 해산했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그전에 불법화됐다.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나치 일당 독재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슬프게도 정당들은 이를 편안해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이 야기한 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이 그 배경이었다.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그 심리를 이렇게 기술한다. "이것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던 감정, 민주주의에서 구원되고 해방되었다는 감정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원치 않는 민주주의란 게 대체 무엇인가? 당시 대부분의 민주주의 정치가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권좌에서 물러나자. 우리가 정치적 삶에서 물러난다. 우리가 없어져야 한다."('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문재인 정권의 공수처법 수정안을 밀실에서 합의해 준 이 땅의 군소정당의 행위도 민주주의의 자살이다. 수정안은 문 정권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의 원천 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조계 친위 세력들이 공수처에 대거 포진하는 길을 닦아놓았다. 그리고 외부건 내부건 견제 장치는 모두 없앴다. 말 그대로 문 정권의 '정치보위부'이고 '게슈타포'이다.군소정당들은 '밥그릇' 욕심에 눈이 멀어 이에 합의해줬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정치 좀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좀비들이 툭하면 '민주주의'와 '국민의 뜻'을 입에 올린다. 이젠 웃음도 안 나온다.

2019-12-2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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