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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의 길

조선 중기의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화(士禍)로 얼룩진 16세기의 위기와 혼돈을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 정신사의 거목이었다. 이 위대한 사상가로 인해 유교가 유례없는 혁명적 실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었다.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는 민암부(民巖賦)의 설파에서 남명은 민중적 지식인의 풍모까지 내비친다.남명은 협객의 이미지도 지녔다. 실제로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는 글귀를 새긴 칼을 차고 다녔다. 벼슬을 사양하며 올린 '을묘사직소'에서도 조정의 실정을 준엄하게 통박하며 청고한 선비의 기개를 드러냈다. 남명의 유학 정신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포용했으며, 제자들에게 병법과 천문, 지리, 의학 등 실용 학문에도 관심을 가질 것을 가르쳤다.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장이 나오고 광해군 정권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한 것은 '앙가주망'에 다름 아니었다. 남명의 유교는 실천철학이요 마음의 철학이었다. 외부 세계의 변혁과 함께 자신의 혁신에도 주목했다. 남명의 정신은 현대의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앙가주망은 문중의 선조인 남명 조식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규정한 앙가주망도 지식인의 사회참여이긴 했지만, 권력에 편승해 감투와 권세를 얻거나 사익을 챙기는 길은 아니었다. 앙가주망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뇌이며 불의에 맞서 진실을 설파하는 지식인의 도덕적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조국 후보자는 서울대생들이 뽑은 가장 부끄러운 동문 투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벼슬길에 나선 후 그의 언행은 지성적이기보다는 선동가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죽창가로 애먼 국민을 분열시키고 친일파로 갈라치기 하고 있다. 할 말이 없으면 "맞으면서 가겠다"고 한다. 조국(曺國) 뜻대로 가다간 좌국(左國)이 될 것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조국(弔國)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상한 소송과 투자 의혹까지 받고 있는 강남좌파의 길에 앙가주망이 웬말인가.

2019-08-20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구의 두 일본인 남녀

두 일본인 남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여럿이다. 1905년에 태어나 1997년 삶을 마감한 노구치 미노루(野口稔) 또는 노구치 가쿠츄(野口赫宙)와 지금도 활동 중인 1927년생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대구에서 태어났고, 한때 경주에서 삶을 살았던, 글을 쓰는 작가이다. 또 일제강점기의 한국 관련 작품을 썼고,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지만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이어간 이력을 가졌다.다른 점도 있다. 앞의 남성은 망한 식민지 나라 사람으로서, 장혁주(張赫宙)라는 한국 이름을 하나 더 가졌다. 한국어, 영어, 특히 일본어로 된 작품을 더 많이 남겼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으나 다시 일본 여성과 결혼했고, 1952년에는 일본에 귀화를 했다. 한국을 비판하고 자신을 낳아준 땅을 싫어했고 마침내 등지고 나라를 버렸다.일본 여성 모리사키는 17년 머물렀던 한국을 떠나 1944년 귀국, 지금까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장혁주와 달리 한국에 '원죄' 의식을 가졌다. 식민지배 시기, 일본 때문에 죽은 숱한 한국인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됐다는 '원죄'에 시달렸다. 그가 태어난 대구나 살았던 경주의 한국을 고향이 아닌 원향(原鄕)이라 불렀다. 1984년 '경주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나의 원향(原鄕)'이란 책은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셈이다.두 작가의 운명은 일제의 식민지배 결과였다. 생명을 준 땅과 나라까지 버린 장혁주, 그 땅과 나라에 원죄를 느낀 모리사키 가즈에. 스스로의 조국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했던 두 사람. 그러나 세월은 두 사람을 달리 평가하고 있다. 대구(한국)는 장혁주를 잊었고, 그와 그의 뭇 작품은 잊혀졌다. 반면, 대구(사람)는 모리사키를 다시 기억해 그 작품도 머잖아 번역, 출판될 모양이다. 두 사람의 역사가 얄궂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15 광복절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였으면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도 없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일본과 한창 경제 전쟁을 치르는 지금, 나라 사정을 살피면 과연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는 실현될지, 언제쯤 이뤄질지 답답하다. 안팎에서 어려운 한국을 흔드는 '아무'가 벌써부터 바다 건너는 물론, 안에서조차 여기저기 우후죽순이니 말이다.

2019-08-19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망조(亡兆)든 미국

로마의 첫 통치자 로물루스는 첫 전쟁을 사비니와 치렀다. 승리한 로물루스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승자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사비니에 로마와 동등하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로물루스와 사비니 왕 타티우스는 공동으로 왕이 됐고 두 부족은 권력을 나눠 가졌다. 세계제국 로마는 패자까지 품은 관용(寬容)에서 싹이 텄다.인류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보편제국'을 이룬 로마의 힘은 관용 한 단어로 집약할 수 있다. 로마제국 설계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통치 방침을 관용이라고 선언했다. 갈리아족, 유대인 등 로마는 이민족들의 다양성을 존중했고 그들에게 시민권을 줬다. 관용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질성을 극복해 제국을 만들었다.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아 로마에 자주 비견되는 것이 미국이다. 실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로마 공화정은 이상적 통치 체제였다. 대통령과 의회, 법원이 권력을 나눠 갖는 체제는 로마를 모델로 했다. 다양한 이민족을 포용해 '팍스 아메리카'를 만든 것 역시 로마를 빼닮았다.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30대 후반의 한국계 외교관이 자괴감을 견딜 수 없다며 사표를 던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주의, 여성 혐오 등을 더는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외교관을 그만둔 이유다. 관용을 비롯해 자유, 공정 등 미국적 가치를 확산하려고 외교관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이런 가치들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것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에 나설 때 트럼프의 참모습을 알아봤어야 했다. 급기야 적도 아닌 동맹국에까지 폭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한국을 조롱·폄훼하고 문재인 대통령 말투를 흉내 내며 희화화했다. 품격·관용은 차치하고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관용은 사라지고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아프리카인 노예로 부를 쌓은 초기의 '야만 미국'으로 퇴보하는 모습을 트럼프에게서 볼 수 있다. 미국도 망조(亡兆)가 단단히 들었나 보다.

2019-08-1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조강(糟糠)

일본에서 250만 부나 팔린 후지와라 마사히코(전 오차노미즈대 교수)의 '국가의 품격' 한글판 서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때 조선인들이 베풀어준 음식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패망 후 1946년 8월, 저자 가족이 귀국길에서 겪은 고생과 굶주림, 자신을 핍박하던 일본인을 되레 도와준 조선인들의 온정에 대한 이야기다.피난 경로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지만 만주 신경(창춘) 태생인 그와 가족이 만주나 한반도 북부에서 살다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어머니와 다섯 살이던 저자 등 삼 형제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개성(開城)에 다다르는 과정이 나온다.무사히 귀국 후 어머니가 저자에게 여러 차례 들려준 말도 서문에 담았다. "돈 많은 조선인은 차가웠지만, 궁핍했던 조선인들은 음식을 베풀어주는 등 우리를 따뜻하게 도와주었다"는 내용이다. '비에 젖어 거지꼴인 우리를 따뜻한 마구간에 재워준 분도 있었다.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준 조선인 여러분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북한의 산 어딘가에 묻혀서 흙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회상한다.그때 후지와라 가족이 얻어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격식을 차린 음식은 결코 아닐 터다. 해방 무렵 이 땅의 사람들이 먹던 흔한 밥과 반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이 한 가족을 살렸고 먼 훗날 기억에 박제된 것이다.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청와대 초청 오찬에 제공된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 화제다. 백범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휴대하기 편해 자주 먹었다는 대나무 잎으로 감싼 '쫑즈'와 돼지고기 간장조림 요리 '홍샤오로우'다. 요즘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최근 안동에서 독립군이 먹던 밥상을 복원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항일 투사들이 평소에 먹던 보리개떡, 소금에 절인 콩자반 등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조강(糟糠)과도 같은 음식이다. 조강은 지게미와 쌀겨를 말하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 먹는 음식이다. "조선인은 밥을 많이 먹어서 늘 배가 고프다 투정한다"며 혐한 망언을 쏟아내는 저질 일본 TV 출연자들은 음식의 가치나 박애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

2019-08-16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굴욕적인 평화

초한(楚漢) 쟁패전에서 중원을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북방의 골칫거리였던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되레 포위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월등한 군사력에도 유목 기마병 특유의 치고 빠지는 전략에 말려들었던 것이다. 결국은 매년 많은 양의 비단과 곡물을 보낸다는 치욕적인 화친조약을 맺고 겨우 돌아왔는데,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흉노는 점점 더 많은 공물을 요구하며 변방을 침략해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다. 한나라는 무제에 이르러서야 대군을 일으켜 흉노를 정벌하고 멀리 내쫓았다. 돈으로 산 평화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실증한 역사적 사례이다. 송나라의 경우는 더 가관이었다. 쿠데타를 통해 황제로 등극한 송 태조 조광윤은 도둑이 제 발 저린 탓인지, 무인(武人)의 힘을 약화시키며 지나치게 문치주의를 표방했다.백성의 비약적인 증가와 농업 생산량 증대로 경제적인 번영과 문화적인 융성을 구가했으나 외세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미국 역사학자인 존 킹 페어뱅크가 "경제와 문화 대국이었던 송나라가 가난뱅이 유목 민족에 정복당한 것은 놀라운 역설"이라고 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는 너무도 약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늘 싸움은 피하고 보자는 식이었다.거란족이 세운 요(遼)가 쳐들어오자 '전연의 맹'이라는 강화조약을 맺고 해마다 비단과 은을 보냈다. 서북 지역 탕구스족의 서하가 침입하자 또 강화를 체결하고 많은 공물을 보냈다. 동북 지역의 여진족이 금(金)을 건국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공물을 요구했다. 여진은 기어이 수도 개봉을 함락하고 황제와 일가족을 포로로 잡아갔다. 황제의 아우가 항주로 쫓겨 내려와 남송(南宋)시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나라에 세공을 바치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다가 몽골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송나라에는 상무정신이 없었다. 적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은과 비단을 내주며 달래는 방법을 택했다. 굴욕적인 평화가 오래간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북한은 남한의 쌀 지원도 거절해버렸다.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남한을 '겁먹은 개'라고 원색적으로 조롱한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남북 경제 협력과 평화 타령을 하고 있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보장된다'는 김정은의 충고가 오히려 폐부를 찌른다.

2019-08-1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망사(亡事)된 인사

기초단체장을 3연임하고 퇴직한 인사가 들려준 얘기. 단체장 취임 직후 똘똘하고 정직하다고 평판이 난 공무원 몇 명을 불러 부탁(?)을 했다. "당신들은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 내가 잘못한 일을 거리낌 없이 질타해 주기 바란다." 내부 비판을 통해 더 나은 행정을 펴고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저하던 공무원들은 단체장을 찾아와 비판하기 시작했고 나름 목표한 성과를 거뒀다. 6개월가량 흘렀을까.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찾아온 공무원이 아무 말도 않았는데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오늘은 저 사람이 무슨 비판을 할까란 생각에 얼굴만 봐도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이 법무장관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정하는 등 개각을 했다. 지금껏 문 대통령 인사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 아니지만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개각이 대통령의 국정 쇄신에 기여는커녕 측근들 돌려막기에 그쳤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일방통행 코드 인사가 되풀이되고 말았다.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번 인사에서도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쓴소리를 할 인사들을 기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선 외교·안보 라인. 경질 요구가 쏟아졌던 존재감 제로(0)의 외교·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엔 반미(反美)·친북(親北)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인사를, 국립외교원장엔 대선 때 캠프에 참여한 인사를 임명했다. 외교·안보 위기 돌파는 고사하고 대통령의 정책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인사다.압권은 조 전 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인사 검증 실패 등 책임을 물어도 시원찮을 사람을 발탁한 것도 문제지만 조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직언(直言)은커녕 한술 더 떠 친일·반일로 국민 편 가르기에 앞장선 사람이다. 이순신 장군 시에 나온 '서해맹산'(誓海盟山)을 들먹이며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을 왜군에 빗대는 절묘한 편 가르기를 한 것을 보면 그의 언행은 달라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는데 받침 하나가 다른 망사(亡事)가 되기 십상인 게 인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쓴소리를 하던 측근을 차례로 내치고 백악관을 '예스맨'으로 채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아예 쓰지 않는 문 대통령이 이 부분에선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2019-08-14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대마도 정벌의 교훈

'이종무가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다.'600년 전 여름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년 1419년 6월 19일과 7월 3일(음력) 기록이다. 거제도를 오전 9~11시에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이종무 장군이 이끈 일본 대마도 정벌이다. 이기고 왔으니 고려·조선 조의 3차례 대마도 정벌의 끝인 기해동정(己亥東征)은 우리 군대의 마지막 일본 진출 기록인 셈이다.비록 100명 넘는 전사자가 나왔지만 조선은 승리로 얻은 게 있었다. 먼저 대마도의 항복으로 골칫거리인 왜구의 침탈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을 마련했다. 또 왜구를 달래고 살기 척박한 대마도 사람을 돕느라 그들의 물건을 사고 팔아주는데 든 엄청난 재정적인 부담도 어느 정도 덜었다. 물론 수시로 보냈던 곡식과 토산품 등 양국 간 불균형 무역도 어느 정도 바로잡게 됐다.당시 왜구의 노략질에 시달리던 명나라의 일본 정벌 계획도 미리 막아 다행이었다. 만약 명이 일본과 싸울 경우, 원나라 지배 때 고려가 원의 일본 원정군 지원을 위해 겪었던 인적 물적 동원에 따른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감수했던 일을 조선이 다시 각오해야 하는 탓이다. 아울러 조선은 무기 제조에 필요하지만 조선에 없거나 구하기 힘든 유황과 구리를 보다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600년 뒤 기해(己亥) 여름, 길어질 한·일 경제 전쟁에서 이기려면 할 일이 있다. 우선 만성적 무역적자 구조의 불균형을 바뤄야 한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처럼, 기껏 일본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의 체질과 틀을 바꿀 계기를 이번 기회에 갖춰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기술과 경제 독립을 위한 지속적 지원과 투자를 말만 앞세우지 말고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까닭이다.또 핵심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 길도 찾아야 한다. 유황과 구리 수입을 일본에 기댄 600년 전과 달라야 하고, 되레 일본 밖에서의 안정적 부품 공급이나 국산화로 살길을 내야 한다. 이리만 되면 이번 한·일 경제 전쟁과 미·중 환율 전쟁, 중·러의 하늘 침범, 북한 도발 등 한국의 궁박한 입장을 기다린 듯 큰 폭의 방위비 분담을 압박하는 미국의 평지풍파가 속 쓰리지만 600년 전 여름의 승리 꿈은 꿀 만하다.

2019-08-13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여름꽃

내리쬐는 햇빛과 태풍의 숨결이 언뜻언뜻 섞인 바람에 연신 출렁이는 연분홍 웨이브피튜니아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달 들어 도청교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름꽃 이야기다. 7, 8월 무더위를 견디며 피는 여름꽃은 봄꽃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꽃을 피우고 주위 분위기를 한결 청량하게 또 편안하게 바꿔준다는 점에서 여름꽃의 존재는 더욱 경이롭다.8월은 삼복더위가 절정에 다다르는 시기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 속에서도 갖가지 여름꽃은 어김없이 알록달록 꽃을 피워낸다. 백일홍과 접시꽃, 나팔꽃, 맨드라미, 패랭이꽃, 쑥부쟁이, 해바라기, 원추리, 백합, 메리골드, 피튜니아 등은 여름을 장식하고 채우는 대표적인 꽃들이다. 예전과 달리 해바라기백합 등은 도심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다. 시골이나 이맘때 청주나 태백시의 '해바라기 축제'를 찾지 않는다면 못 보고 넘어갈 꽃들이다.대신 요즘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백일홍이다. 신천동로를 지나다 보면 키 나지막한 배롱나무를 온통 붉게 물들인 백일홍꽃이 때를 맞았다. 안동시내 육사로나 옥동로 등에도 요즘 백일홍이 한창이다. 수령 380년의 고목 등 120여 그루의 배롱나무가 꽉 들어찬 풍천 병산서원의 백일홍도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태양의 기운이 강한 성하(盛夏)에는 바깥나들이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작심하고 떠나는 휴가라면 몰라도 주말에 가까운 교외로 향하는 발걸음도 쉽지는 않다. 그래도 집을 나서지 않으면 여름꽃이 펼치는 세계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 5년 연속해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로 벌어지는 '월복'(越伏)이 들면서 삼복더위가 더 길어진 느낌이지만 입추가 지났고 더위가 가시어 풀이 더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處暑)도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노(NO) 재팬' 사회 분위기에다 여유가 없어 아직 여름휴가를 내지 못한 직장인이라면 광복절 공휴일과 주말에 잠시 짬을 내 가까운 곳으로 여름꽃 구경이라도 나서는 것은 어떨까 싶다. 화사한 여름꽃 축제를 염두에 두고 일정을 맞춘다면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색다른 테마여행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8-1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독수리와 제국

독수리는 수리류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크며 가장 강한 맹금류이다. 넓고 긴 날개를 쭉 펴고 창공에 날아오르면 지상의 모든 동물들은 긴장하기 마련이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는 위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역의 확장성 때문에 유사 이래 패권을 추구했던 많은 국가와 통치자들이 스스로의 상징으로 삼았다. 서양 문화의 모태인 그리스 문명에서 독수리는 으뜸가는 표상이었다. 독수리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 그 자체였다. 로마제국에서 독수리는 초기 건국신화에 등장한 이후 제국의 유일무이한 상징이 되었다.로마의 저력을 견인했던 군단기를 내건 장대 위에는 어김없이 독수리상이 버티고 있다. 이 군단 깃발이야말로 로마의 명예이자 영광이었다. 로마의 통치력을 상징하는 신성한 영물이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자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쌍두 독수리를 내세웠다. 동·서를 모두 계승한다는 의미였다. 기독교 개종과 함께 서로마제국의 권위를 계승하고자 했던 게르만족의 신성로마제국도 쌍두 독수리 문장을 사용했다.이 같은 독수리의 상징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제국은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었다.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나치가 차용한 독수리는 광대한 제국과 강력한 군사력을 지녔던 로마의 이미지를 주목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치 독일과 로마제국을 동일시하며 유럽 정복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나치의 방식으로 재현하려던 그들의 광기 어린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현대 지구촌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국장에도 어김없이 독수리가 등장한다. 나치의 독수리가 검은 독수리인데 반해 미국의 국조(國鳥)는 흰머리 독수리이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강연장 스크린에 학생단체가 가짜 대통령 문장(紋章)을 띄운 게 논란이 되었다. 머리 둘 달린 독수리가 골프채를 쥔 모습은 러시아 스캔들과 골프에 빠진 트럼프를 비꼰 것이라고 한다. 무상한 게 권력이요, 제국의 운명인가. 민주제도가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코미디언 같은 대통령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독수리도 이젠 사양길로 접어든 것인가.

2019-08-1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적반하장의 번역

국가 간 소통에서 오역(誤譯)은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1956년 11월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가 모스크바 주재 폴란드 대사관 리셉션에서 NATO 회원국 대사들에게 한 연설의 오역도 그런 경우다. 당시 흐루쇼프는 "당신들이 좋든 싫든 역사는 우리 편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묻어버릴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은 이를 서방에 대한 공격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였다.그러나 "We will bury you"로 번역된 연설문의 러시아어 원문은 'My vas pokhoronim'으로, 직역(直譯)하면 영어 번역문과 똑같은 의미지만 실제 의미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 것이다" 또는 "우리는 당신들보다 오래 살아 당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다"이다. 즉 흐루쇼프가 의도한 것은 "우리는 자본주의를 끝장내버릴 것이다"가 아니라 "공산주의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파멸을 고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였다.('오역의 제국', 서욱식)그러나 서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설 다음 해인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충격은 이런 의심에 기름을 부었다. 흐루쇼프의 '연설'이 괜한 엄포가 아니라고 믿게 된 것이다.이에 흐루쇼프는 경악했다. 미국과 같은 핵보유국이 됐지만, 아직 전체적인 핵전력에서 미국에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흐루쇼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연설'의 진의(眞意)를 해명했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자신이 굳게 믿는 역사 발전 전망을 얘기했다는 것이다.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비판을 두고 양국 정부가 치고받으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은 일본 언론이 적반하장을 사전에 나오는 대로 "도둑이 정색하고 뻔뻔하게 나온다"고 번역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색을 하면서 강하게 나온다"고 의역한 마이니치 신문을 제외하고 NHK 등 상당수 일본 매체가 그렇게 번역했다.그러나 한국에서 적반하장은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화를 낸다"는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일본 언론이 번역에 좀 더 세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이란 표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그렇게 표현했어야 했나라는.

2019-08-09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己亥倭亂(기해왜란)

이스라엘 민족은 나치 독일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혹한 시련을 겪었다. 그 수난의 대가로 1948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와 독립국가를 세웠지만,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아랍국들은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1967년 6월 5일 일어난 이른바 '6일전쟁'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250만 명인데, 아랍권은 1억5천만 명이었다. 신생국가인 이스라엘은 군사력 또한 한참 열세였다.그러나 전쟁은 불과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기적이었다. 승리의 비결은 지도자들의 치밀한 작전 계획과 허를 찌르는 기습 폭격으로 제공권을 장악한 데 있었다. 지상전에서도 이스라엘군은 무기의 열세를 운영 능력과 정비 기술로 만회했다. 무엇보다도 승리의 신화는 탁월한 정신 전력의 결과였다. 전쟁이 터지자 미국의 유대인 유학생들은 참전을 위해, 아랍권 학생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사라졌다는 유명한 얘기가 나온 것도 그즈음이다.아랍 연합군이란 거대한 골리앗이 다윗의 이스라엘에 패배한 것은 군사력이 아닌 정치적·전략적 실패의 결과였다. 위정자들이 국민을 하나로 아우르지 못했고, 나태한 국민은 정치권을 불신했다. 만일 이스라엘이 6일전쟁에서 졌다면 2천 년 만에 세운 나라는 다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밀려나 '디아스포라'의 운명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백의종군의 고난을 겪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었을 때 조선 수군은 궤멸한 상태였고 지상군도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고작 40여 일 만에 12척의 군함으로 330척의 왜군과 맞섰다. 명량해전이었다. 그 짧은 기간 장군은 백성들을 위무하며 희망을 복원하고, 전장을 치밀하게 분석해 적을 무찌를 전술을 세웠다. 가능한 한 승산 있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자신 있는 전술로 싸운 것이다.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라 하여 덮어놓고 달려든 게 아니었다. 백성들과 함께 총력전 체제를 구축한 뒤 최선의 전략 아래 사력을 다해 싸워서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일본의 선전포고로 기해년 '경제왜란'이 발발했다. 왜란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과 민족의 자존이 걸린 전쟁이다. 틈만 나면 이순신 장군과 12척의 배를 입에 올리는 문재인 정권의 전략은 무엇일까.

2019-08-08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강남 좌파의 이중성

환경운동가이자 전 미국 부통령인 엘 고어가 2010년 아내 티퍼와 이혼했다. 사이가 좋기로 소문난 고어 부부가 갈라선 것은 의외였다. 부부 싸움 중 티퍼가 "나는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믿지 않아"라고 말하자, 엘 고어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부이자 명문가 출신이면서 환경운동에 매진하는 엘 고어의 이중성을 비꼬는 유머였다.엘 고어는 전 세계에서 수천 회의 강연을 하면서 친환경, 친자연 생활 습관을 외치는 환경전도사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지만, 위선 논란에 시달렸다. 테네시정책연구센터는 엘 고어가 아내와 둘이 사는 저택에 20개의 방과 8개의 화장실이 있으며 월평균 전기료는 130만원(일반 가정의 20배)에 달해 환경적으로 매우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 후 엘 고어는 집을 친환경적으로 개조해 태양열, 지열을 이용한 난방시설과 빗물 사용 설비, 친환경 단열재를 갖춰 체면을 가까스로 지켰다.미국에서는 엘 고어처럼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을 두고 '블리딩 하트 리버럴'(Bleeding Heart Liberal·동정심이 과도한 민주당 지지자)이라고 비꼬곤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처음 쓴 '강남 좌파'와 같은 의미다.현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이끄는 인사들은 전형적인 고학력 부자들이다. 장하성 주중대사는 지난 4월 103억9천887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장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물러나면서 토지 2억2천여만원, 건물 17억9천여만원, 예금 82억5천여만원 등을 신고한 바 있다.'죽창가'를 외치고 서울대 재학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으로 구속됐던 조국 전 민정수석의 재산 신고액은 54억7천645만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억1천601만원이다. 토지·건물은 공시지가 기준이므로 실제 재산은 훨씬 많다.우리 사회에서 부자라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변호사·교수 출신에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 입만 떼면 '노동자' '소외계층'을 외치는 모습은 왠지 어색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그들의 주의·주장이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현 정부 들어 서민생활이 훨씬 나아졌는가?

2019-08-07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실리와 명분

한·일 외교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과 세조(재위 1455~1468) 때 빛이 났다. 이는 무엇보다 두 임금의 대일 외교를 뒷받침한 탁월한 외교관인 충숙공 이예(1373~1445)와 문충공 신숙주(1417~1475)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국가 기틀을 다지던 15세기 조선 전기 외교의 중심 인물이자 대일 외교의 황금기를 연 이들에게 내린 시호에 나란히 충(忠)이 들어갈 만큼 충성을 인정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업적은 많다. 일본 파견이 46년간 40차례 넘은 이예와 1회에 그친 신숙주였지만 공통점은 조선의 부국강병과 실리(實利) 외교였다. 특히 일본과의 교린(交隣) 외교 정책을 중시했다.이예는 세종에게 일본에서 구해온 무쇠로 된 화통완구(火㷁碗口)라는 무기를 바치며 구리로 된 조선의 화통완구를 대신해 무쇠로 만들 것을 건의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무기에 절실한 구리(銅)와 유황(硫黃)은 물론, 금은(金銀)이 생산되지 않거나 적어 일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어 금수(禁輸) 등 만약을 대비한 조치였다. 실제 뒷날 정부는 조선 내 구리 생산과 납품 정책을 폈다.실리 외교는 신숙주도 이었다. 신숙주는 이예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8도(道) 66주(州)의 일본 등의 지리정보를 담은 '해동제국기'를 만들 때 일본의 구리와 유황 등 조선에서 나지 않는 광물의 생산지까지 적어 만약을 대비토록 했다. 특히 신숙주는 30여 년간 사신 파견, 여진족 토벌군 사령관, 영의정 등 국정 경험으로 일본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았다. 죽으며 성종에게 "일본과 실화(失和)하지 말 것"을 진언했고, 문집에서 "우리나라는 사방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왜(倭)의 접대는 더욱 어려워 한 번이라도 그 기미를 잃으면 남방은 지키기 쉽지 않다"며 일본을 경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세월이 흐르면서 실리보다 명분이 앞섰다. 일본과 관계도 나빠졌다. 일본 등 사방에 대한 경계 역시 무너졌고, 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 한일병합의 국치(國恥)만 남았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터졌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하나 되어 일본과 싸워 이기자'고 외친다. 대통령은 5일 남북 경제협력으로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도 했다. 공감하지만 이런 외침이 왜 이리 공허하게 들리는지 모를 일이다.

2019-08-06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박정희 때리기'

#1.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이 40년 만에 그가 거쳤던 부대에 다시 걸렸다. 내란죄로 사형되고서 김의 사진은 군에서 사라졌었다. 그의 사진을 부대에 걸려는 움직임은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계속됐다. 재작년 기무사 국감에서 한 여당 의원은 "전두환·노태우 사진도 있는데 사령관을 지낸 김의 사진은 왜 없냐"고 따졌다.#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이어 베트남 전쟁 중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베트남 피해자들을 대리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했다. 이들은 "한국 군인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한 잘못에 대해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사과·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며 "이는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두 사건은 별개인 것 같으나 지향하는 바에서 일맥상통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넘어 '박정희 시대' 폄하 의도가 도사려 있는 것이다. 사진이 군에 다시 걸린 것을 기화로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고 머지않아 유신 독재를 끝낸 '민주투사'로 둔갑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자고 베트남 정부가 강조한 마당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베트남 파병을 한 박 대통령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일본에 단호히 대응해야 총선에 유리하다는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 나도 그저 표, 표,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 정권의 추악한 민낯"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살든 죽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고 야당은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대통령 등 집권 세력이 그렇게도 반일을 부르짖은 것이 총선 승리를 노린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문재인 정권의 지난 2년 3개월은 '과거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부정, 폄하, 단절, 파기, 파괴에 열을 올렸다. 한·일 경제 전쟁 원인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진보 진영에서 한·일 국교 단절 주장까지 나왔는데 양국 국교 정상화는 박 대통령이 했다. '50년 집권'을 노린 집권 세력의 보수 결집 구심점 타격을 목표로 한 '박정희 때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다.

2019-08-0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화이트리스트

검은색과 흰색은 인간의 눈이 인식하는 사물과 자연현상 등 환경의 산물이다. 쉽게 말해 밤과 낮처럼 매일 일정하게 바뀌는 천문 현상에서 검고 희다는 지각이 생기고 이를 부호화한 것이 바로 흑과 백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인식은 단지 색(色)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태양처럼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수록 인간 행동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해의 주기적 변화에서 파생된 검거나 흰 것의 특성이 모든 사물에 투영되고 관념으로 굳어진 것도 '문명 현상'의 하나다.'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와 같은 용어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 식별 기호다. 블랙리스트는 영국 극작가 필립 매신저가 1639년 발표한 '이상한 전투'(The Unnatural Combat)에 처음 나온다. 하지만 실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청교도혁명으로 불리는 영국의 내란 때부터다. 혁명으로 찰스 1세가 처형되자 그의 아들 찰스 2세는 크롬웰에 쫓겨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공화정이 와해되면서 1660년 왕위에 오른 그는 아버지의 처형을 주장한 의원과 재판관 명단을 작성하고 박해하는데 바로 '블랙리스트'다. 기피 또는 요주의 인물을 담은 목록이다.이와 반대되는 용어인 '화이트리스트'는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됐는데 어떤 권리나 서비스 등에 접근이 허용된 사람과 기관의 목록을 가리킨다. 화이트리스트에 들면 어떤 규제나 법령, 조건 등을 서로 면제하는데 쉽게 말해 주의나 경계가 필요하지 않는 우호적 관계라는 의미다.일본이 2일 한국을 수출 간소화 대상국가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뺐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약에 어긋난 부당한 조치이자 양국 관계를 수렁에 빠뜨린 어리석은 결정이다. 지금은 비록 국력에 강약은 있더라도 모든 국가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초(超)연결' 시대다. 당장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에 따라 내린 결정이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피해와 부작용에서 일본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혼란과 불신 등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아베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2019-08-03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자작극

상대방을 악으로 몰기 위한 가장 비열한 방법이 상대방이 악임을 각인시키는 '자작극'이다. 나치가 폴란드 침공 명분을 만들기 위해 1939년 8월 31일 독일-폴란드 국경에 접한 독일 도시 글라이비츠(Gleiwitz)의 방송국을 공격한 자작극이 그런 경우다.나치의 국가보안부 수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지시한 이 자작극은 폴란드 육군으로 변장한 독일 요원들이 방송국을 급습해 직원들을 제압한 뒤 독일에 대한 전쟁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4분 만에 끝났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폴란드의 소행으로 굳어져 있었지만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하이드리히의 지시를 받아 자작극을 벌인 친위대 장교 알프레트 나우요크스의 증언으로 실체가 드러났다.소련과 핀란드 간의 '겨울전쟁'도 소련의 자작극으로 시작됐다. 소련은 침공 나흘 전인 1939년 11월 26일 핀란드와의 국경지대인 마이닐라(Mainila)에서 소련 초소가 핀란드군의 포격을 받아 다수의 소련 병사가 폭사(爆死)한 것처럼 꾸몄다.그러나 당시 핀란드군의 장사정포는 국경에서 20~25㎞ 떨어진 지점에 배치돼 있었다. 이는 핀란드군 장사정포의 사정거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피격당했다는 소련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미실행 자작극도 있다. 1962년 3월 미국 군부가 쿠바 침공 명분을 만들려고 계획한 '노스우즈'(Northwoods) 작전이다. 여러 실행 계획이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쿠바가 저지른 것으로 위장한 테러를 벌인다'였다. 여기에는 미국 최초의 지구 궤도 비행을 시도하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로켓 폭발 등의 사고로 사망하면 이를 쿠바의 소행으로 몬다는 황당한 시나리오도 있었다. 이 작전은 당시 라이먼 렘니처 합참의장을 거쳐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까지 올라갔으나 케네디 대통령이 거부해 무산됐다.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실에 '태극기 자결단'이란 이름으로 커터 칼과 죽은 새, 협박 편지가 담긴 소포를 보낸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 유모(35) 씨가 구속됐다.그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진보' 전체에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진보는 기껏 이런 음모밖에 없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구치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성찰해보기 바란다.

2019-08-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우지마라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겠지만/…/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어느 시인은 '소주 한잔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라는 시에서 고단한 삶에 지쳐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를 이렇게 위로했다. 이 친구는 우선 경제적인 어려움이 원인인 듯하다. 경제난은 가정의 해체를 초래한다. 한 여류 시인이 남긴 '겨울 풍경'이라는 제목의 시구는 그런 정신적인 아픔을 절절히 토로한다. '헐벗은 나무/ 둥지튼 새들은 떠나갔다/ 허둥대는 바람같이/ 떠도는 마음 하나 못 붙들고/ 삶은 종종 살얼음판이었다/….'앙급지어(殃及池魚)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재앙이 연못 속 고기에 미친다'는 의미로, 까닭 없이 화를 당하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성문에 불이 붙었다. 거센 불길을 잡느라 성안 백성들이 모두 동원되어 연못 물을 퍼날랐다. 그런데 막상 불을 끄고 나니 연못 안 고기들이 모두 말라죽게 생긴 것이다.대한민국이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다. 동해의 독도 영공에는 러시아와 중국 군용기가 무단으로 침범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쏘아올리는데, 우리와 관계가 소원해진 미국은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다. 예로부터 못난 지도자를 만나면 물 밖에 가장 먼저 나뒹굴게 되는 것은 힘 없는 민초들이다.'우지마라 우지마라/ 사랑이란 다 그런거다/ 저마다 아픈 사연 가슴에 묻고 살지/ 우지마라 우지를 말어라/….' 고단한 가족사를 지녔던 가수 김양의 노랫말처럼 가난한 서민들은 삶의 애환을 이렇게 스스로 달래고 있다. 그래도 인생의 봄을 다시 기다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나라가 어려워지건 말건 만면에 웃음이나 흘리고 다니는 철없는 위정자들이 그 눈물과 아픔을 어찌 알겠는가.

2019-08-01 06:30:00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이러면 지는 건데…

'그들이 나의 건강을 좀먹었나 봅니다. 이러면 지는 건데….'저항시인 이육사. 1904년 안동에서 태어나 17세 때 대구에 와 17년을 살았고, 1927년 10월 18일 터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으로 첫 옥살이를 했다. 이후 열 여섯 번이나 더 붙잡히고 옥에 갇혔다. 1944년 1월 16일 중국 북경 감옥에서 40년 삶을 마칠 때까지 17차례나 체포 투옥 고문으로 온몸은 만신창이였다.그의 이런 독백은 최근 발간된 고은주의 소설 '그남자 264'에 나온다. 시와 글을 통한 항일로는 모자라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원이 되어 무장투쟁으로 독립의 소원을 이루려 했던 그였다. 그러나 고문에 망가진 몸을 어찌할 수 없어 경주 한 사찰에서 요양할 때, 위로 방문한 서울의 한 서점 여사장에게 한 말이다.그의 신음처럼 일제는 그랬다. 한국을 삼키고 먼저 한국인의 건강한 신체를 망치고 좀먹는데 나섰다. 매일 새 법령을 냈고 어긴 한국인을 처벌했다.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새 법(조선태형령)으로 다스렸다. 볼기를 때려 불구로 만들기 일쑤였다. 항일 뜻을 꺾고, 감옥도 덜 늘려 돈을 아낄 수 있었으니 딱이었다.고문은 더했다. 혹독하고 악명 높았던 고문에 대한 공포는 착한(?) 한국인이 독립운동가를 밀고하게 만들고, 배신과 변절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마련이었다.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 군사교육을 받고 귀국한 뒤 이육사가 또다시 붙잡힌 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가까운 처남의 자수 때문이었으니 말이다.'그남자 264' 속 이육사가 고문과 악형으로 끝내 목숨을 잃는 과정은 최근 벌어지는 일본의 경제 보복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날, 한국인 몸을 망쳐 재기할 수 없도록 만신창이로 만들 듯, 이제 일본은 한국 경제의 가장 아픈 곳을 찾아 상처를 덧나게 하여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자 하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지금, 분명 옛날과 다르다. 한국의 겉은 건강하다. 속조차 그럴까. 경제, 소비도 그렇다. 올해 상반기 일본 차 3만 대 수입에 한국 차 수출은 32대였다. 차뿐이랴. 일본에 기대 우리 산업 체질과 맷집을 키우는 데 소홀하고 경제 독립의 뜻을 느슨히 한 결과이리라. 일본인 200만 명이 한국에 올 때, 일본을 찾는 700만 명 넘는 한국인에게 묻고 싶다. '일본 NO'라고 외치기만 하면 될까.

2019-07-3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하찮은 벌레'

"처음에 상대는 권총을 뽑아들고 1파운드를 요구했습니다. 그걸 주니까 또다시 총을 꺼내 들고 2파운드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재자는 1파운드 17실링 6펜스를 받고서 나머지는 미래에 대한 호의의 약속이라고 둘러댔습니다."히틀러의 요구대로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합병키로 한 1938년 9월 29일 뮌헨협정 6일 후인 10월 5일 처칠은 영국 하원에서 체임벌린 총리와 히틀러 간의 정상회담을 이렇게 평가했다. 뮌헨 협정과 그에 앞선 9월 15, 16일의 베르히테스가덴 회담, 같은 달 22, 23일 고데스베르크 회담 등 3차례의 정상회담 모두 외교 협상이 아니라 노상강도를 당한 것이라는 소리였다.그도 그럴 것이 회담에서 체임벌린 총리는 말 그대로 히틀러에 질질 끌려다녔다. 무조건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협상으로 히틀러를 달랠 수 있다는 소망적 사고, 히틀러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며 목적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오판이 결합한 결과였다.베르히테스가덴 회담에서 체임벌린은 주데텐 독일인들에 대한 자율권 보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율권 보장에서 주데텐란트의 할양(割讓)으로 문제의 '차원'을 바꿔버렸다. 체임벌린은 회담 시작 2시간 만에 이를 받아들였다.이후 회담도 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다. 고데스베르크 회담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군대의 주데텐란트 철수 시한이 10월 1일로 확정됐다. 3차인 뮌헨회담은 할양 지역이 조금 줄어드는 등 약간의 세부 조정이 있었지만, 본질은 2차 회담과 다르지 않았다.지난 2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청와대가 "9·19 남북 군사합의에는 탄도미사일 금지 규정이 없다"고 했다. 도발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사일 도발과 그에 이은 김정은의 '겁박'에 함구한 채 "지금까지 남북, 북미 관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26일 불교계 인사 초청 청와대 오찬)고 했다. 이런 모습이 김정은에게 어떻게 비칠까?히틀러는 1939년 8월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장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적수들은 하찮은 벌레에 지나지 않아. 난 그들을 뮌헨에서 보았어."

2019-07-30 06:30:00

박병선 논설위원

[야고부] 쪽바리 근성

한국은 욕이 발달한 나라다. 온갖 육두문자가 난무하지만, 그중에 잘 쓰이진 않지만 치명적인 욕설이 하나 있다. '쪽바리 근성을 가진 놈'이 그것이다. '쪽바리'는 일본 사람을 비하하는 속어이지만, 그런 근성을 가진 사람으로 공인되면 인간관계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쪽바리 근성'은 얍삽하고 이중적인 인간성을 가졌다는 뜻이다.실제 일본인은 어떠할까? 과거 일본의 전쟁 방식을 보면 이중적이고 비겁한 모습을 유감없이 연출했다. '진주만 공습'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1941년 12월 9일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는데,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었다. 청일·러일전쟁도 그러했듯, 기습 공격은 일본의 전매특허였다.미국은 '진주만 공습'을 사전 통고 없는 '비열한 전쟁'(sneaky war)으로 인식하며 2001년 '9·11테러'와 비슷하게 간주한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은 '진주만 공습'과 9·11테러가 같이 취급받는 데 분개한다는 점이다. '진주만 공습'은 정상적인 군사행동이며 선전포고는 사정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당시 일본은 공습 30분 전에 주미대사관을 통해 선전포고문을 전달하려 했지만, 암호 해독과 타이핑이 늦어져 공습 1시간 뒤 통고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을 내세운다. 선전포고문이 전달된 시각은 일본 육군이 2시간 30분 전에 영국령 말레이 반도에 상륙한 뒤였다. 일본인은 눈앞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명분을 쌓고 변명을 하는 데 익숙한 민족이다.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전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일본인론(論)이 가능하다. 전쟁이라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정치 행위로서 그 인간, 그 민족을 알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장이므로 설명하기 쉽다"고 했다. 섬나라 특성 때문에 타 민족을 무시·배척하고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는 근시안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루스 베네딕트는 명저 '국화와 칼'에서 '아름다운 국화를 키우면서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는' 일본 문화의 이중성을 진단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은 아베 정부가 우방국에게 자행하는 '등에 칼 꽂기' '뒤통수 때리기'의 전형이다. 힘을 기르지 않으면 일본의 이중성과 거짓 핑계에 번번이 놀아날 수밖에 없다.

2019-07-2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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