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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만주상여

하굣길, 산모퉁이를 돌아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만나는 길가 작은 기와집. 그 집의 문에 쓰인 낯선 글자 하나는 '영'(灵)이다. 영혼을 뜻하는 한자 '靈'의 속자임을 뒷날 알았다. 늘 굳게 잠긴 작은 이 집의 정체는 마을에 슬픈 일이 일어나면 드러났다. 바로 상엿집이었다. 동네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상엿집에서 끄집어낸 여러 나무 조각들을 이리저리 조립했다. 마침내 종이꽃 등으로 장식된 완성품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상여였다.이어 다 꾸며진 상여 앞에서 누군가 '이제 가면 언제 오나~'며 구슬픈 목청으로 긴 선창을 노래했고, 상여를 어깨에 메고 뒤따르는 상두꾼이 부르는 후렴은 마을을 떠나 개울을 건너 수풀을 헤치고 없는 길을 내며 산속에 이를 때까지 계속됐다. 상복을 입은 행렬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통곡하며 그 뒤를 이었고, 마침내 평토제(平土祭)로 이승과 저승을 가른 뒤, 적막하고 황혼으로 어둠이 내린 산하를 벗어나면 상여는 해체돼 다시 '영'의 제집으로 돌아갔다.삶에서 죽음에 이른 고인(故人)은 무덤에 갈 때 상여를 쓴 탓에 상두꾼의 수고로움이 필요했다. 물론 이익의 '성호사설'을 보면 사람 아닌 소나 말로 상여를 끈 일도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이처럼 사람과 소, 말이 동원됐던 상여 행렬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자동차(영구차)로 바뀐 지 오래다. 장례도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서 적은 매장·수장·천장 등 뭇 방법과 달리 화장이 대세로 자리하니 상여는 쓰임새가 없어졌다.이런 즈음 (사)나라얼연구소가 19일 경북 경산 하양에서 이색적인 상여 행사를 개최, 관심을 끌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시절, 1938년 만주로 살길을 찾아 떠난 동포들이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장례 때 쓰던 '만주상여'의 운구 재현 행사가 열린 것이다. 물론 만주상여는 중국 문화혁명 물결 때 불에 태워지는 곡절도 겪었다. 그러다 2001년 7월 한 동포 할머니 장례식 때 마지막으로 쓰인 뒤 2013년 경산에 옮겨져 이날 다시 등장한 셈이다.장례 문화 변화로 사라진 우리 옛날 상여가 나라 잃은 망국의 애환 사연까지 간직한 만주상여로 우리 곁에 환생(還生)했으니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상여 자원인 만큼 제대로 보존 활용할 만하다.

2019-10-2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동그란 길로 가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박노해 시인의 '동그란 길로 가다'란 시의 전문이다. 조국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66일 만에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던 날, 그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이 시는 조국 전 장관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문재인 후보를 격려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남긴 것이기도 하다. 이번엔 아내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정 교수는 시의 인용에 앞서 '그대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라는 문구를 적었다. 자신과 남편 그리고 가족들의 심경을 토로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핍박받는 정의의 사도임을 자부하는 것이다. 세상이 곡해하는 민주 투사임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자존을 버리지 않겠다는 공언이다. 좌파 민중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이 시는 반야심경의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이란 명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인생무상을 체득한 달관의 경지를 느낄 수도 있다. 삶의 행복이 특별함과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편법과 반칙, 궤변과 요설, 오만과 위선이란 단어들이 떠오르는 그들의 후안무치한 삶의 궤적을 이 시와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곤혹스럽다.그들에게 '유장한 능선'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이 지향한 '동그란 길'은 과연 어떤 길이었을까. 그들에게 담대함은 무엇이며, 인간의 위엄이란 어떤 개념인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하고 거짓된' 그들의 삶과 '동그란 길'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詩)의 차용도 '조로남불'인가. 아니면 문학적인 나르시시즘인가.

2019-10-21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文의 책임 회피 Ⅱ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전후해 정치와 군사의 중추에 있었던 인물들이 패전 책임을 지고 잇따라 자살했다. 육군대신 아나미 고레치카(阿南惟幾)는 14일,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아버지' 오니시 다키지로(大西瀧治郞)는 15일 각각 할복했다. 이들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측근이 뒤에서 목을 쳐주는 '가이샤쿠'(介錯) 없이 할복해 극심한 고통 끝에 사망했다.또 일본 본토 결전을 위해 조직된 제1총군 사령관 스기야마 하지메(杉山元)가 9월 12일 권총으로 자살했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문부대신 하시다 구니히코(橋田邦彦)와 군사참의관을 지낸 시노즈카 요시오(篠塚義男)도 같은 달 14일과 17일 자살했다. 이들을 포함해 자살한 사람은 장성급만 십수 명에 달했다.이런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도조는 왜 자살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태평양전쟁 개전 당시 총리, 내무·육군대신에다 육군참모총장까지 겸임한 최고 책임자였으니 당연했다. 육군 장교인 그의 사위는 이미 자살한 터였다. 그러나 도조는 머뭇거렸다. 차남까지 "함께 자결하자"고 했으나 "내 일은 내게 맡겨라"며 듣지 않았다.그러다 미군 헌병대가 체포하러 도조의 집에 들이닥친 9월 11일 자살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했다. 심장 위치에 그려 놓은 동그라미에 대고 권총을 쐈으나 빗나간 것이다. 이에 "연극이 아니냐"며 도조의 비겁함을 조롱하는 소리가 일본 전역에 진동했다. 관자놀이를 쏘면 확실하게 끝냈을 것이니 그럴 만했다. 이에 대한 도조의 변명이 기가 막혔다. "머리를 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내 모습을 알아보고 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부마 항쟁 기념식에서 "유신 독재 피해자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조국 사태'를 야기한 책임에 대해서는 아직 일언반구도 없다. 남이 한 일은 사과하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사과는 뭉개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여당에서는 조국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책임질 위치에 있는 인사들은 책임지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부터 그러니 뭘 더 바랄까.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이게 우리 수준"이라는 여당 의원의 개탄 그대로다.

2019-10-18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曺國)은 어디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시 '낙화' 중 한 구절이다. 법무부 장관을 사퇴한 조국 씨의 뒷모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가야 할 때를 한참이나 놓쳤기 때문이다. 조 씨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검찰 개혁을 들먹이며 장관 사퇴를 분식(粉飾)하려 애썼지만 구차한 변명에 불과했다. '가는 곳마다 둘로 갈라 놓는다'는 조 씨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에 관심이 갈 뿐이다.①서울대로=조 씨는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지 20여 분 만에 서울대에 복직을 신청했다. 신고만 하면 복직이 가능한 만큼 조 씨는 서울대 로스쿨 교수로 돌아가게 됐다. 2학기가 시작돼 강의를 새로 개설할 수 없어 조 씨는 내년 1학기 개강 전까지 연구교수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상당수 서울대 학생들이 조 씨의 복직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등·공정·정의를 내팽개친 장본인이자 부끄러운 동문 1위로 꼽힌 조 씨가 평등·공정·정의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②총선·대선으로=조 씨는 장관 지명 발표 전 고향 부산을 찾아 대통령선거 출마를 염두에 둔 듯한 행동을 했다. 소주 세 병을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왼쪽부터 상표를 차례로 읽으면 '대선, 진로, 좋은데이'였다. 조 씨가 부산에서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고 대선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있다. 대립과 분열의 아이콘이 된 조 씨가 정치인이 돼서도 대립·분열을 촉발할지 걱정이다.③집으로=조 씨는 사퇴의 변(辯)에서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고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고려하면 조 씨는 아버지, 남편으로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가장으로서 만신창이가 된 가족을 잘 다독이기 바란다.④서울중앙지검으로=조 씨는 수많은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검찰은 사퇴와 관계없이 계획대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곧 조 씨를 소환할 예정이다. 조 씨는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 후에야 서울대 복직, 정치 입문이 가능할 것이다. 조 씨의 앞으로 행보는 검찰 수사 결과에 달렸다.

2019-10-17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스칸달론

어느 나라든 정치판이 요동을 치고 국민이 흥분하는 데는 몇 가지 단골 메뉴가 있다. 극심한 빈부 격차나 인종 차별, 증세(增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의 부정부패 등 각종 추문도 이에 못지 않게 사회적 격동과 큰 잡음을 만들어낸다.사회 지도층 인사가 직간접으로 연루된 충격적이고 비윤리적인 사건을 흔히 스캔들(Scandal)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 'skandalon'에서 유래한 말이다. 거꾸로 매달아 올리는 덫이나 그물에 걸려 뭇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된다는 뜻이다.요즘 미국 정가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스캔들 진원지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 탄핵 조사에 들어가는 등 여론이 들끓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도 모자라 우크라이나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의 늪에 한 발짝 더 빠져들어간 모양새다.이번 스캔들의 시발은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다. 트럼프는 이 통화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 아들이 연관된 '우크라이나 의혹'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신속히 수사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통화 기록마저 은폐하려 했다는 내부고발장이 접수되면서 미국 정가를 왈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무엇보다 바이든은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라는 점에서 정적 제거를 위한 트럼프의 정치 공작 냄새가 짙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위는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촉발한 '워터게이트 사건'과 빼닮았다는 점에서 스스로 탄핵의 스칸달론을 더 세게 잡아당긴 꼴이 됐다.지난 두 달여 동안 한국 사회를 양분시킨 혼란의 매듭이 겨우 하나 풀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35일 만에 옷을 벗은 것이다. 진영 논리를 떠나 보통 사람의 분개 등 반조(反曺)의 물결이 더 거셌다. 그렇지만 그가 살아오면서 덕지덕지 쌓아온 허물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그는 퇴임하면서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조국'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무너뜨리는 불쏘시개가 됐다는 점에서 뒷맛이 쓰다.

2019-10-16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文의 책임 회피

지배층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가장 뻔뻔한 사례를 꼽으라고 하면 일본의 무조건 항복 후 미군 제1진이 일본에 상륙한 1945년 8월 28일, 당시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 총리가 발표한 '1억 총참회론'를 들 수 있겠다. "…일이 여기에 이른 것은 물론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도의를 잃은 것도 (패전의) 한 원인이다. 일억 총참회야말로 국가 재건의 첫걸음이자 단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궁극적으로 히로히토(裕仁) 천황(天皇)이 져야 할 침략전쟁의 책임을 희석하는 것으로, 이를 두고 일본 역사소설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모두가 나빴으니 서로 책망하는 것은 그만두자는 '대충주의'로 귀결돼 천황에 대한 처벌 장애물로 기능했다고 비판한다. 저명한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도 나치 패망 뒤 독일 일각에서 제기됐던,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호소에 같은 비판을 했다.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다"는 소리는 독일인이란 집단 중에서 실제로 죄를 지은 개인을 숨겨줄 뿐이라는 것이다.히로히토의 '죄'를 희석하는 작업에 지식인들도 가담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는 등 조선 식민사학을 만든 쓰다 소치키(律田左右吉)이다. 그는 1946년 4월에 발표한 '건국의 사정과 만세일계의 사상'이란 논문을 통해 '1억 총참회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을 잘못된 길로 이끈 것은 '다수 국민'에게 그 책임이 있다. 황실(皇室)은 시대 추세의 변화에 순응해 그때그때의 정치 형태로 적합했으나, 국민은 그렇지 않았다. 국민은 위정자에게 국가를 맡겼고, 결국 그들로 인해 국가가 궁지에 빠졌기 때문에 천황을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이 스스로 반성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변'(辯)은 이런 책임 회피의 전형이다. '조국 사태'로 우리 사회가 큰 진통을 겪은 데 대해 국민에게 송구하다면서도 정작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그 진통을 야기한 자신의 '근원적' 책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특히 언론이 신뢰받도록 자기 개혁을 위해 노력해 달라며 언론에 화살을 돌린 것은 일본 위정자들의 '국민 탓'의 '문재인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2019-10-15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유튜브 권력

'유튜브가 교사'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뭐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어를 치는 게 대세였다. '검색의 생활화'가 유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긴가민가하는 주위 사람에게 묻는 것보다 검색이 더 빠르다는 의미다.하지만 요즘은 포털보다 유튜브가 한 수 위다. 기성 매체를 통해서는 좀체 접하기 힘든 영상들이 유튜브에는 지천이다. 기존 플랫폼이 따라갈 수 없는 강점을 무기로 트렌드를 바로바로 쫓아가는 1인 크리에이터의 주 활동 무대가 되면서 새로운 콘텐츠 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대중의 눈길을 끄는 개성 있는 콘텐츠 생산을 통한 치열한 경쟁 구도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진화력을 극대화시켰다. 이런 매체 특성 때문에 기존의 매체를 뛰어넘어 '유튜브 권력'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TV에서 높은 지명도를 자랑해온 소위 '예능 스타'들이 유튜브에 잇따라 입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종원의 요리비책' 채널은 구독자 수 285만 명, 최다 조회수 547만 명, 누적 조회수 9천336만 회에 이를 정도다.구글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인이 만든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가 10만 명이 넘는 채널은 2015년 367개, 2016년 674개, 2017년 1천275개로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구글과의 광고 수익 배분과 후원, 상품 판매 등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그제 국회 기재위 국감에서 일부 인기 유튜버의 탈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년여간 탈세 혐의가 짙은 유튜버 7명이 총 45억원의 소득을 탈루했다가 적발된 것이다. 고소득 유튜버의 소득과 탈세 규모가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국세청은 이들에게 총 10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관련 세무 규정의 미비에다 '신종 사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점을 틈타 일부 유튜버들이 탈세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은 큰 문제다. 같은 1인 미디어 채널인 아프리카TV가 세금을 원천 징수하는 투명한 구조인 반면 구글 유튜브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탈세도 문제이지만 탈세를 부추기는 잘못된 구조부터 고쳐야 한다.

2019-10-11 20:33:06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흙떡' 맞은 삶

'시주하고 흙떡을 맞다.'1902년 18세에 결혼해 군인이 되었다. 그러나 1907년 23세 때 군대 해산, 이듬해 의병으로 싸우다 잡혀 종신형으로 옥에 갇혔다. 1910년 26세에 나라가 망하자 오히려 풀려났다. 다시 1913년 29세에 독립운동을 하며 비밀결사 참여와 친일파 처단, 독립자금 마련 등으로 세월을 보냈다. 1921년 37세에 또다시 잡혀 사형 구형, 무기징역 선고, 감형으로 1937년 53세에 풀려나자 독립운동을 준비했다.1945년 61세, 환갑 지나 해방됐지만 너무 많이 잃었다. 의병 투쟁 중 아내를 여의고, 다시 만난 아내마저도 무기징역 옥살이에 1남 1녀를 남기고 먼저 세상을 떴다. 불행은 이어졌다. 가정은 비록 다시 꾸렸지만 투옥으로 제대로 살피지 못한 딸과 아들이 폐결핵으로 차례로 곁을 떠났으니 말이다.게다가 광복은 됐지만 옛 동지들과 재건한 독립운동단체가 곧바로 해산당했다. 6·25전쟁 전후에는 사회주의자로 몰려 가족과 헤어져 도망다녀야 했다. 이미 민족 지도자 여운형·김구 같은 인물의 암살에서처럼 친일 세력의 보복이 일제만큼 두려웠던 시절이었다.그에게, 되찾은 조국의 분위기는 '독립운동가의 삶이 시주하고 흙떡을 맞은 격'이었다. 일제에 맞서 버티던 그였지만, 1955년 71세가 되자 그런 세월을 견딜 수 없었던지, 남은 삶의 짧음을 느껴선지, 지난날의 기억을 더듬어 옛일을 구술 기록으로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뒀다.되찾은 나라에서 맛본 배신과 표변(豹變)의 사회를 살아갈 아들이 눈에 밟힌 듯 그가 되풀이한 이야기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 아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말씀은 '친구는 죽음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들이 자라 아버지 유훈을 새겨 지금도 간직하는 까닭이다."얼굴을 아는 사람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사람과 잘 사귀는 데는 신의(信義)가 제일이니라."그는 독립운동가 우재룡으로,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 지휘장이다. 그를 기려 아들(우대현)이 최근 '대한광복회 우재룡'을 펴냈다. 3·1운동 100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대한광복회 결성지 대구에서 발간됐으니 반기고 축하할 일이다.

2019-10-1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한국판 홍위병'

'대약진운동'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은 '문화대혁명'으로 위기 탈출을 도모했다. 대륙 전역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홍위병(紅衛兵)이란 이름으로 동원해 '정신상태가 불순한 지도층 인사'를 직접 구타하고 때려서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광풍(狂風)을 일으켰다.홍위병에 의해 희생된 대표적 인물이 마오로부터 국가주석을 물려받은 류샤오치(劉少奇)였다. 류를 비판한 마오의 글이 발표되자 홍위병들은 류와 부인을 거리로 끌어내 수모를 줬다. 홍위병은 마오에 의해 '주자파(走資派) 수괴 1호'로 꼽힌 류의 모자를 벗겨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류는 신발을 한 짝만 신은 채로 비난을 들어야 했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 "이 녀석들아! 나는 엄연한 이 나라의 국가주석이다"는 류의 외침도 소용없었다. 마오의 고향 후배이자 혁명 동지인 류는 지방 소도시에 가택연금을 당했다가 숨졌다. 홍위병들에게 체포될 때 걸렸던 심한 감기가 폐렴으로 이어져 사망했다.친문(親文) 좌파 진영이 어린이들에게 욕설이 섞인 '검찰 비하 노래'를 합창시키고 이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에 유포했다. '한국판 홍위병'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검찰 개혁 동요 메들리'란 영상에서 어린이들은 "적폐검찰 오냐오냐 기밀누설 꿀꿀꿀" "석열아 석열아 어디를 가느냐, 국민 눈을 피해 어디를 가느냐" 등의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 얼굴도 안 가리고 정치 선동에 이용했다" "북한과 뭐가 다르냐" 등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아무리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호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을 비판하고 싶더라도 어린이들을 동원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어른들의 이전투구에 어린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아이들에 '증오의 동요'를 합창하도록 한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1천만 명이 넘는 홍위병이 가져온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420만 명이 투옥 및 조사를 받았고 17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형된 사람이 13만 명을 넘었다. 검찰을 비하하는 어린이들의 합창을 담은 영상이 홍위병 출현 전조(前兆)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좌파의 선전·선동이 어느 지경까지 갈지 걱정이다.

2019-10-10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청와대로 간 차사(差使)

자식들간에 벌어진 왕자의 난에 울분을 참지 못한 조선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내려놓고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형제들을 죽이고 왕좌를 거머쥔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를 궁궐로 모셔오려고 애를 썼다. 왕위 계승의 정당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한양에서 특별한 임무를 띠고 오는 차사를 죽이거나 가둬버리고 돌려보내지 않았다.그래서 생긴 말이 함흥차사(咸興差使)이다. 한 번 가면 소식이 없거나, 심부름을 간 사람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를 두고 함흥차사라 부른 것이다. 그로부터 70년 후인 성종 때에는 함안차사(咸安差使)라는 말이 또 생겨났다. 경남 함안에 절세 미녀인 딸을 둔 자가 큰 죄를 짓는 바람에 조정에서 판관을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는 사람마다 재색을 겸비한 여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죄인의 딸이 된 노아라는 여인은 부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던 것이다. 판관들은 매력적인 미모에 한시를 지을 정도의 학식까지 갖춘 그녀에게 홀려 하룻밤만 보내고 나면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의기양양하게 임지로 떠난 젊은 관리조차 노아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전철을 밟자, 조정에서는 강직하고 엄격하기로 이름난 위인을 특별히 선임해서 보냈다.그러나 준엄한 왕명을 받들고 일도양단의 각오로 내려온 그 판관 또한 역참에서 일하는 시골 아낙네로 변신한 노아의 의도적인 매력 발산에 이끌리고 말았다. 결국은 역원(驛院)에서 노아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애틋한 밤을 잊지 않기 위해 판관은 그녀의 팔뚝에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넣었다. 이튿날 함안 관아에 도착한 판관은 죄인의 딸부터 잡아들이고는 단칼에 처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팔뚝에 드러난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노아를 풀어주고 판결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함안군 읍지에 전하는 일화이다.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고 특별한 임지로 부임했다가 함흥차사나 함안차사가 되는 사례가 옛일만은 아닌 듯하다.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안고 국리민복을 호언장담하며 청와대로 입성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부끄러운 말로를 보면 그렇다. 작금의 혼란한 정국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도 어쩌면 '청와대로 간 차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9-10-09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농사의 역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전 세계 141개국 1만2천여 명의 기업인을 상대로 '앞으로 10년 내 가장 큰 리스크'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한국은 '실업 및 불완전고용'을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고 미국은 해킹을, 일본은 지진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뭐…"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입으로는 농사를 말하지만 농사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따라서 '농사나 짓는다'는 말은 그냥 한 번 해보는 소리이거나 심각한 실업난 탓에 더 이상 취업 가능성이 없고 비빌 언덕도 없는 처지라는 의미다.그런데 실제 농림어업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는 통계다.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2016년까지 매년 6만2천 명씩 감소하던 농림어업 취업자가 2017년 6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선 후 1년 새 9만4천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제조업 취업자가 같은 기간 10만5천 명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지난해 국내 실업자 수는 2000년 이후 최대인 107만여 명을 기록했다. 2016년 이래 3년 연속 100만 명을 웃돌았다. 특히 15~29세 청년층은 넷 중 하나가 넓은 의미의 실업자다. '일자리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가 54조원의 재정을 쏟아붓고 받은 성적표다.한국노동연구원장을 지낸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는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는 경제 기반의 붕괴 신호'라고 주장했다. 농림어업 생산성이나 두드러진 매출의 변화 없이 농림어업 취업자가 통계적 추세를 뛰어넘을 정도로 증가하는 것은 제조업, 서비스업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어 결국 농림어업으로 떠밀리는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지난해 농림어업(6만9천 명)과 공무원(2만9천 명) 취업자만 늘었을 뿐 제조·서비스업에서는 오히려 8만9천 명이 줄었다. 이는 세금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가치를 창출하는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경제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징후다. 이런 추세라면 탈(脫)제조업에 따른 농업국가로의 진행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이제 씨가 되고 있는 셈이다.

2019-10-07 20:13:41

정인열 논설위원

[야고부] 할 말 못하는 총리

"앞 사람의 실패를 보고 뒷사람은 마땅히 경계할 것입니다…개과자신(改過自新·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함)하여 영원히 국가의 수명을 누리게 하소서."(이순)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라."(충담사)신라가 통일되고 경덕왕이 그 덕에 전성기를 누린 까닭은 있다. 왕에게 할 말을 하는 신하와 백성이 있고, 왕은 귀를 연 때문이다. 763년 8월, 경덕왕이 음악을 즐긴다는 소문에 왕의 총애에도 관복을 벗고 입산, 출가했던 이순(李純)이 찾아와 입을 열어 말렸고 왕은 따랐다.왕은 765년 3월, 지나는 충담사를 불러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할 노래를 부탁했다. 오늘날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 향가의 하나인 '안민가'는 그렇게 탄생됐다. 이에 왕이 왕사(王師)로 삼으려 하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스님은 할 일을 거기까지로 그쳤다.앞서 경덕왕 14년(755), 경주 망덕사 두 탑이 흔들렸다. 마침 당나라는 755~763년 안록산과 사사명이 반란을 잇는 혼란에 빠져 현종과 양귀비가 죽고 나라는 위기였다. 이런 틈을 타 백제 멸망 이후 사이가 나빠진 일본이 756년부터 6년 기한으로 신라 정벌을 준비했다.다행히 경덕왕은 망덕사의 흔들린 두 탑의 징조에다 일본의 침략 준비 정보를 미리 입수, 군제 개편 등 발 빠르게 대비했다. 게다가 신라와 우호 관계였던 발해가 일본이 내민 신라 정토(征討)의 검은손을 뿌리친 외교 행운도 겹쳤으니 세상 소리에 귀를 연 경덕왕이 신라 56왕 중 찬란한 시기의 영광을 누릴 만했다.도종환 시인은 문재인 정부의 장관으로 발탁되기 전 시절인 2008년, 한 언론에 쓴 글에서 "왕이 정사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단걸음에 달려가 '개과자신'하기를 직간하는 태도는 얼마나 늠름합니까"라며 부러워했다. 시인 마음이 같다면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지금 그러면 어떨까.도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최장수 국무총리 자리를 지킬 이낙연 총리면 더욱 좋다. 최근 국회에서 조 장관 해임 건의 요청에 총리는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며 발을 뺐다. 귀를 닫은 대통령과 조 장관에게 '할 말'을 하는 모습을 역사에서만 상상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2019-10-07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감탄고토(甘呑苦吐)

다산 정약용이 지은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이전에 달게 먹던 것을 지금은 쓰다고 뱉는다. 사람은 이익에 따라 교묘히 바뀐다'는 구절이 나온다.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유래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뚜렷한 주관이나 소신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배척하는 행태'를 이른다.하지만 세상에는 우선 입에 단것이 되레 내 몸에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良藥苦口利於病),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忠言逆耳利於行). 따라서 감탄고토는 쉽게 해서도 안 되고, 또 쉽게 당해서도 안 되는 양날의 칼과 같다. 이를 경계하는 비유는 서양의 이솝우화에서도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로 일찍이 등장했다.배 고픈 파리가 꿀단지 주변을 맴돌면서 꿀맛을 즐기다가 기어이 날개가 꿀에 젖고 말았다. 그때부턴 움직일수록 온몸이 꿀 속에 더 깊이 파묻힐 뿐이었다. 옆에 있던 불나비가 '탐욕이 파멸을 불렀다'고 비웃었다. 그런데 밤이 되고 촛불이 켜지자 이번에는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맴돌다가 그 현란한 색깔에 취해서 결국은 제 몸을 태우고 말았다. 이를 본 파리가 자기보다 더 바보라고 혀를 찼다.입만 열면 적폐 청산을 부르짖더니 스스로는 더 지독한 적폐를 쌓고 있는 작금의 정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적폐 청산의 화살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불과 두 달 만에 윤 총장을 '척결의 대상자'로 몰고 있다. 속담집에 기록해 둘만한 감탄고토의 전형적인 행태이다."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하게 대하라"던 대통령조차 '수사 관행 개혁'이니 '절제된 검찰권 행사'니 하면서 자기 충복의 적폐 수사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숯덩이가 껌정을 지우겠다는 망동을 옹호하는 적반하장의 세태이다. 공자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잘못'(過而不改 是爲過矣)이라고 했다.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라는 우리 속담도 있다.

2019-10-05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문재인과 인조

문재인 대통령을 조선 선조에 빗대지만 면밀하게 살피면 인조(仁祖)에 가깝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낸 '반정'(反正)으로 집권했다. 인조와 그를 옹립한 서인은 반정이라 했지만 병자호란 등 백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을 고려하면 반정이란 말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출범했다고 내세우지만 나라를 이끌어온 것을 보면 혁명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 하나만 하더라도 촛불을 든 시민에게 얼굴을 들 수 있겠나.광해군은 명·청 교체기 '실리 외교'로 어려움을 헤쳐나갔다. 그와 달리 인조는 명을 추종하는 '명분 외교'로 돌아섰다. 우방인 미국·일본과 소원해진 반면 북한·중국에 경도된 '문재인 외교'가 떠오른다. 국제 정세 변화를 읽지 못한 인조의 외교는 끝내 병자호란을 불러왔다. 외톨이 신세가 된 문재인 정권 외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이다.권력욕에서 인조와 서인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자식인 소현세자를 비롯해 며느리, 손자가 인조의 권력욕에 목숨을 잃었다. 서인은 왜란 극복의 주역인 대북을 숙청한 데 이어 노론·소론으로 분화하면서 권력을 독점했다.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은 '우물 안 개구리'에 안주한 채 조선을 망국의 길로 몰고 갔다.집권 세력의 권력욕은 인조와 서인에 못지않다. 국민은 떡 줄 생각도 않는데 20년·50년 집권을 들고나온다.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정 전반에 집권욕이 스며들어 있다. '장기 집권'이란 코드로 이 정권이 목을 매는 사안들을 보면 그 속셈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적폐 청산, 세금 퍼주기,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일본 때리기는 물론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다. 검찰 개혁의 작은 노림수는 조국 수사 막기이고, 큰 노림수는 장기 집권에 걸림돌이 될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것이다.임기 반환점을 앞둔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남은 기간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정권을 빼앗겨서는 절대 안 된다"는 명제가 뇌리에 박혀 있어서다. 정권을 잃고 폐족(廢族) 신세까지 전락했던 쓰라린 기억도 집권욕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인조반정 13년 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287년 후에 조선이 망했다. 이 나라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두렵다.

2019-10-04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용문사 윤장대

마니차(摩尼車)는 티베트 불교에서 주로 쓰이는 불교 도구다. 경통(經筒) 또는 '기도바퀴'라고 불리는데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죄업이 하나씩 사라지고 몸으로 수행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티베트 영상물을 보면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데 손에 쥐고 돌리는 마니차부터 사원에 세워진 대형 마니차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주로 원통형 금속으로 만드는데 다각형의 마니차도 있다. 표면에 만트라(眞言)를 새겨넣고 내부에는 두루마리 경전을 넣어 일상에서 늘 가까이 하는 법구다.이런 티베트 불교문화는 원나라가 들어선 13세기부터 한국 불교문화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불교 건축물이나 공예품에 독특한 채색과 문양을 더한 장엄구(莊嚴具)와 법구류에 중국의 형식과는 다른 티베트·몽골적 요소가 우세해진다. '탕카'(Thangka)로 불리는 탱화가 대표적으로 괘불이나 윤장대도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례 중 하나다.몽골학 전문가들은 '원사' 등 역사 기록을 들어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 인구의 절반이 고려인이었다는 내용을 부각한다. 당시 '몽골풍' '고려양'이라는 말이 유행한 것도 두 나라의 교류가 그만큼 활발했고 불교문화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증거한다는 것이다.문화재청이 그제 보물 145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보물 684호 용문사 윤장대(輪藏臺)를 묶어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1173년(고려 명종 3년)에 만들어진 이 윤장대는 1670년(현종 11년)에 수리한 기록이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전륜장(轉輪藏)이다. 높이 420㎝의 팔각형 불경 보관장으로 대장전 내부 좌우에 1구씩 놓여 있는데 글을 모르는 이들이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과 같다.옛 기록에 개경(개성) 승천사나 파주 혜음사, 옥천 지륵사, 화순 쌍봉사 등에 윤장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남아 전하는 곳은 용문사 윤장대뿐이다. 강화 전등사나 논산 관촉사, 진천 보탑사에도 윤장대가 있지만 모두 용문사 것을 본떠 만든 최근의 것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무늬로 장엄한 용문사 윤장대와 대장전은 천년지장(千年之藏)이라는 점에서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하는 소임이 막중하다.

2019-10-03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200만 명 뻥튀기

2016년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간에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당시 카와자 무하메드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부 장관은 "파키스탄이 시리아에서 IS(이슬람국가)와 싸우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핵위협을 했다. 이스라엘이 까먹은 것 같은데 파키스탄은 핵 보유국이다"라고 경고했다.그 발단은 AWD NEWS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파키스탄이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하면 이스라엘은 이 나라를 핵 공격으로 파괴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러나 가짜뉴스였다. 기사가 출처로 제시한 것은 모세 아얄론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의 보고서였는데 그는 이미 사임한 뒤였다. 이를 두고 세계는 아시프 장관이 가짜뉴스에 '낚였다'고 조롱했다.대중 전체가 가짜뉴스에 낚이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가 프랑스 혁명 전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가짜뉴스를 믿은 프랑스 국민이다.실제로 앙투아네트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혁명세력이 유포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만 그와 비슷한 말이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다. "나는 빵이 없다는 농부들의 말에 대한 고귀한 공주의 임시방편-그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이자-이 떠올랐다." 브리오슈란 빵 부스러기에 버터를 많이 넣어 만든 과자이다. 루소가 고백록을 쓴 해는 1766년으로 당시 앙투아네트는 12세, 프랑스로 시집오기도 전이었다.러시아 볼셰비키의 배후는 유대인이라는 히틀러의 '유대-볼셰비키'론을 믿은 독일 국민, 간토(關東) 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뉴스를 믿은 일본 국민도 빠질 수 없다.지난 주말 '조국 지지 집회'의 참가 인원이 200만 명이라는 여당의 주장은 가짜뉴스로 국민을 낚으려는 전형적 선동이다. 성인 기준으로 1㎡당 모일 수 있는 인원을 추산하는 페르미기법을 적용하면 최대한 늘려잡아도 5만 명이다. 경찰도 10만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자 "숫자의 외피에 집착하지 말고 촛불의 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여기는 말장난이다. '200만 명 뻥튀기'는 무서운 진실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권이 머릿수로 '조국 수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반민주적 발상에 젖어 있다는.

2019-10-02 06:30:00

조향래 논설위원

[야고부] 희대의 변명

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품을 지닌 유학자임을 자처하던 사람이 한밤중에 젊은 과부와 정을 통하다 들켰다. 정신없이 줄행랑을 치다가 분뇨 구덩이에 빠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앞에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비굴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양반의 위선에 역겨워진 호랑이는 호된 질책을 남기고 가버렸다.새벽에 들에 나온 농부가 "여기서 뭘 하시느냐"고 묻는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든 유학자는 금세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신의 언행을 그럴듯하게 둔갑시킨다. "하늘이 아무리 높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아무리 두터워도 조심스럽게 디디지 않을 수가 없는 법…." 조선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한문 단편소설 '호질'(虎叱)에서 당시 양반 계층의 곡학아세와 위선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풍자했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개념이다.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가 고발인과 배심원들에게 토로했던 항변과 연설을 재현한 작품이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적당한 타협과 선처로 비켜갈 수도 있었던 죽음조차 피하지 않았다.부끄러운 삶보다는 의로운 삶을 택했고, 살아서 침묵하기보다는 죽어서 일깨우려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진술은 일반적인 변명이나 변론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철학적인 삶과 혼란한 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항변이었다. 우리 현대 사회에도 한글학자 이희승의 수필 속 '딸깍발이' 같은 올곧은 선비정신을 지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조인 조무제 같은 분이다.그는 청렴한 법관의 대명사였다. 대법관 시절에도 보증금 2천만원짜리 원룸에 살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도, 월급을 아껴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았다. 관직에서 물러날 때도 '관피아'와 '전관예우' 같은 탐욕과 부정의 사슬을 단연코 거부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편법과 위법을 다 동원한 구린 의혹들에도 파렴치한 변명과 뻔뻔한 위선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조국(曺國)이라는 벼슬아치와는 너무도 대비가 된다. '호질'의 호랑이조차 어안이 벙벙해질 노릇이다.

2019-10-01 06:30:00

이대현 논설위원

[야고부] '두 번은 안 당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루비콘강'을 건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하는 검찰을 비판한 것은 "나는 조국(曺國)과 함께 끝까지 가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조 장관 사퇴를 원하는 국민 여론과는 정면 배치된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지지 진영의 수장(首長)을 자처한 것이다. 대통령이 루비콘강을 건너간 만큼 이제 국민은 문 대통령에 대한 기대·미련을 강물에 던져버리지 않을 수 없다.'국정 농단' '사법 농단' 비판까지 받으며 문 대통령이 직접 '조국 구하기'에 나선 것은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는 심리가 깔렸다. 조 장관 문제를 정권 운명이 달린 것으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숱한 의혹들과 여론을 외면한 채 조 장관을 이렇게나 감싸고도는 문 대통령을 이해하기 어렵다.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과 좌파 진영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조국 구하기'에도 특기(特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첫째는 본질(本質) 흐리기를 통한 되치기 수법. 조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 수사 압력이란 비판이 쏟아지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피의 사실을 흘렸다"며 검찰을 공격했다. '야검야합'(野檢野合)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문제를 희석하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검사와 통화한 조 장관을 질책하기는커녕 문 대통령은 오히려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이 역시 본질 흐리기를 통한 되치기로 봐야 한다.집권 세력은 이제 검찰에 '악'(惡)이란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조국 구하기'의 둘째 수법이다. 상사의 갑질과 폭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검사의 묘소를 참배하고, '강원랜드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검사와 대화한 조 장관의 행보는 '검찰=악한 기관=개혁 대상'이란 인식을 퍼뜨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은 검찰을 두고 '쿠데타'라는 표현까지 써 공격했다. 대검찰청 앞에선 검찰 개혁을 명목으로 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적폐 세력, 일본에 이어 검찰이 악으로 규정돼 타도 대상이 된 것이다.조국 사태로 국민 대다수는 이 정권의 본질을 잘 알게 됐다. 정권엔 안 된 일이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천만다행이다. 좌파 진영의 농간에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당하지 않으리라 믿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2019-09-30 06:30:00

정경훈 논설위원

[야고부] 조국이 만든 패륜아

1702년 12월 14일 46인의 낭인(浪人)이 억울하게 할복을 강요당한 주군(主君)의 원수를 처단한 이른바 '추신구라(忠臣藏) 사건'은 당시 도쿠가와 츠나요시(德川綱吉) 막부(幕府)에 큰 충격을 줬다. 우선 막부 체제의 기반인 주군과 가신(家臣)이라는 주종 관계와 일본 전체를 규율하는 법률의 충돌이기 때문이었다.일본 지배층의 여론은 처음에는 동정적이었다. 그 요점은 주군에 대한 가신의 충성이 일본 전통이고 도쿠가와 막부가 통치 이념으로 중시해 온 유교 윤리 즉 군신 간의 공적 윤리와 가족 친구 간의 사적 윤리를 나란히 세우는 윤리 체계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이에 반대한 유학자가 공적 윤리와 사적 도덕은 같을 수 없다고 한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이다. 그는 이 사건의 처리 방법에 대한 막부의 자문 요청에 응한 '소라이의율서'(徂徠擬律書)에서 낭인들은 할복해야 한다고 했다."의리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하는 길이며 법은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기준이다. 46인의 사무라이들이 주군을 위해 원수를 갚은 것은… 의롭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 무리(黨)에 한정되는 일이므로 궁극적으로 사적(私的)인 논의일 뿐이다.… 사사로운 논의를 가지고 공정한 논의를 해친다면 앞으로 천하의 법도가 서지 않게 될 것이다." 개인 도덕을 공무의 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는 공적 윤리를 사적 도덕 위에 놓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가치의 경중(輕重)이나 우열(優劣)이 있는 게 아니라 영역이 다른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처결 방법으로 할복을 제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이란 사적 윤리를 존중하는 동시에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타협이었다. 막부는 소라이의 주장을 받아들였다.조국 법무부장관이 자택 압수수색을 지휘하는 검사에게 전화로 "신속하게 해달라"고 한 것을 두고 '수사 외압'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전화한 것 자체도 문제지만 비판 여론에 대해 "인륜의 문제"라고 한 것은 더 문제다. 사적 윤리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나저나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딱하게 됐다. '패륜아'가 되게 생겼으니.

2019-09-28 06:30:00

서종철 논설위원

[야고부] 옥상의 재발견

지난 봄, 대구 서구청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구청 옥상으로 안내받아 올라간 적이 있다. 옥상을 정원으로 꾸민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지나다니며 늘 낡은 콘크리트 건물 외형만 봐온 터라 꼭대기 층에 갖가지 수목과 화초가 피고 벤치에다 산책 데크까지 오밀조밀 들어선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알고 보니 대구시가 옥상 녹화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보도다. 2007년 처음 착수해 지난해까지 220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도심 일반 건물과 공공기관 등 모두 665곳의 옥상에 녹지 공간을 만들었다. 그 면적도 축구장 17개 규모에 이른다. 올해도 11억원가량의 사업비를 들여 67곳의 옥상 정원을 꾸밀 예정이다.물론 옥상에 잔디를 깔거나 채소와 꽃을 심는데는 예산이 쏠쏠하게 들어가고 유지관리에도 적지 않은 품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거의 쓸모 없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옥상이 시민과 직원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해 도시 일상에 활력을 준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삭막한 도시의 상징물인 건물의 옥상이 변신해 하나의 도시 인프라가 된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옥상 공간의 재창조는 현재진행형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의 경우 매년 6월 '옥상축제'를 개최할 정도다. 옥상을 다양한 형태의 녹지 공간으로 바꿔 시민이 공유하고 제2의 도시 물관리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등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뉴욕시도 하수 범람을 막기 위해 옥상 녹화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5년부터 추진해온 '6 슈퍼 소우킹(Super-Soaking)' 프로젝트가 좋은 예로 옥상 텃밭인 '루프탑 팜' 플랜이나 초화류만 심는 메도우(meadow) 가든 조성 등을 통해 빗물이 바로 하수관에 흘러가지 않게 막아 대규모 하수 배수관리 인프라를 대체하고 있다.땅의 제약이 큰 대도시에서 녹지 공간을 새로 확보해 열섬 현상과 미세먼지 저감 효과까지 거두는 옥상 녹화사업은 의미가 크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은 아니더라도 시민이 만족하고 일상에서 즐기는 옥상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그만큼 도시 생활의 만족도도 비례해 커질 것이다.

2019-09-27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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