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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 ‘이생집망’ 모는 정부 대책

[청라언덕] ‘이생집망’ 모는 정부 대책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계속된 부동산 대책을 접하며 문득 내 집 마련의 과정을 떠올려 봤다.부동산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당시지만 전세 탈출, 즉 내 집 마련은 중대한 목표였고 그 방법은 돈을 모아 대출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내 집 마련에 애를 쓴 건 그저 이사하기가 싫어서였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집주인을 만나 전세금 인상 압박을 받은 적은 없었으나, 직장 이동 등으로 이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은 귀찮았고 피곤했다.그래서 묵혀 놨던 청약통장을 써 분양을 받았고, 모아 놓은 돈이 모자라 대출을 끌어 썼다. 어찌어찌 입주해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했으나 기쁨은 잠시였고 그 후 한동안 쌓인 대출금에 이자를 갚느라 먹는 것 줄이며 지내야 했다. 그 과정은 '○○은행 월세살이'나 다름없었다.갭투자 등으로 재산을 많이 불린 이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는 재테크에 소홀했던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오롯이 내 집을 갖게 됐다는 목적을 이뤘으니 만족하며 살아왔다.이런 나의 '내 집 마련기(記)'를 지금은 들려줄 수가 없다. 그 방법은 구시대 유물이 됐고, 자칫 하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 취급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방법이야 별반 다르지 않겠으나 이제는 이행하는 조건들이 쉽지 않아졌다. 집값이 너무 오른 탓이다. 지금의 집값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한 푼 두 푼 모아 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정부가 "집값만큼은 잡겠다"고 나서 20차례가 넘는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30대 후반의 직장인 A씨. '부모 찬스권' 없는 흙수저인 그는 정부가 쏟아낸 정책이 되레 내 집 마련을 더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됐다며 한숨 짓는다.그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웠던 이들 중 하나였다. 생애 첫 집은 새집(아파트)이고 싶었고 이왕이면 쾌적한 주거환경에 교통도 편하고 교육 환경도 좋았으면 했던 게 돌이켜보면 화근이 됐다. 그걸 충족시키기에는 모은 돈이 적었다. '지르기'를 망설이는 동안 집값은 올라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이나 벗어났다.그가 다시금 기댄 건 집값 잡겠다는 정부의 말이었다. 그는 이것을 두 번째 후회 거리로 꼽는다.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대출을 틀어막는 것이었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길도 막아버렸다. 현금 없이는 집을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영끌'(영혼까지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뜻의 신조어) 대열에도 합류하지 못한 그는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란 결론을 내렸다."집이 없으니 집값 내려갈까 집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 없고, 부동산 사이트 서핑 안 해도 되니 눈이 피곤할 일 없다. 정부로부터 투기꾼 취급받을 일도 없다"고 위안하며 "안분지족(安分知足) 삶 누리며 살겠다"던 그가 얼마 전 또 다른 고민을 토로했다.새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시행으로 '전세살이'마저 위협받게 생겼다고.새 임대차법은 계약갱신청구를 통해 세입자가 최대 4년은 큰 전셋값 인상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했으나, 그 후 또는 임대인의 직접 거주로 계약갱신청구가 거절당했을 때는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집값 올라 '이생집망'했는데, 새 임대차법으로 주위 전셋값마저 크게 올랐으니…."부동산시장 과열 주범으로 지목된 다주택자들이 너도나도 집을 내놓고, 정부 대책이 약발 받아 집값이 내려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에게 들려줄 말이 궁색하기 그지없다.

2020-09-24 16:10:52

[청라언덕] 온라인 강의, ‘뉴노멀’ 위한 조건

[청라언덕] 온라인 강의, ‘뉴노멀’ 위한 조건

올 상반기 대학들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코로나19 영향에 아무도 예상 못한 '비대면 온라인 강의'라는 수업 방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했기 때문이다.대학들은 그야말로 온라인 강의 '실험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잡음이 터져 나왔다. 도입 초창기 동시에 접속자가 몰려들면서 트래픽 초과로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했고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실제로 일부 교수는 단순히 과제만 올리는 등 무성의하고 부실한 수업 운영으로 논란을 키웠다. 온라인 강의 준비를 난생처음 해보는 교수들은 자료 준비에 영상을 찍느라 진땀을 뺐다.한동안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등록금 감면 요구도 온라인 강의가 '트리거'가 됐다. 온라인 강의는 올해 대학가를 뒤흔든 거대한 쓰나미였다.그런 혼란을 겪은 지 6개월여가 지났다. 원하든 원치 않든 온라인 강의는 대학 교육의 '뉴노멀'(New Normal·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로 자리 잡는 형국이다.전문가들 또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띨 것이며 온라인 강의도 그런 양상 중의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미네르바 스쿨 설립자인 벤 넬슨 CEO는 지난 6월 국내에서 열린 온라인 국제 포럼에서 "코로나19는 해저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같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개인에게 차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온라인 학습은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모든 이가 접근할 수 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미네르바 스쿨은 별도의 캠퍼스와 강의실 없이 모든 수업을 온라인 강의로 진행하는 대표적인 혁신대학으로 손꼽힌다.정부도 온라인 강의 활성화를 위해 파격적인 제도 개선을 선언했다. 지난 9일 교육부는 '디지털 기반 고등교육 혁신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원격 수업 개설 20% 상한제를 폐지하는 한편 온라인 석사 학위 과정을 허용하고 온라인을 통한 대학 간 공동 학위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게 골자다. 현재 대학은 온라인 강의 등 원격 수업을 총학점의 20% 이내에서 개설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이를 앞으로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문제는 결국 강의의 질이다.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온라인 강의가 시작된 1학기 때와 비교해 2학기 때는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고 준비할 여유가 생기면서 수업의 질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어졌다는 것이 대학가의 반응이다.일부 교수는 직접 기자재 등을 구입해 학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여전히 대면 수업보다 강의의 질이 크게 뒤처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영남대 고등교육중점연구소가 대학의 원격 수업과 관련, 전국 대학생 2만8천4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의 준비 정도가 '높지 않다'는 응답(48.1%)이 '높다'는 응답(21.2%)의 2배가 넘었고 교수의 준비 정도를 묻는 질문에도 '높지 않다'는 응답이 38%로 높다(26%)보다 월등히 많았다.이 밖에 온라인 강의 활성화에 따른 인력 조정이나 등록금 문제, 대면 수업과의 기준 설정 등 적잖은 난관이 남아 있다.과거에도 원격 수업 활성화에 나섰다가 흐지부지된 사례가 있다.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준비할 것이 많다. 온라인 강의는 뉴노멀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뉴노멀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2020-09-17 16:21:46

[청라언덕] "한끼듭쇼!" 코로나 뛰어넘는 연대의 힘

[청라언덕] "한끼듭쇼!" 코로나 뛰어넘는 연대의 힘

지난해 연말 코로나19가 중국을 휩쓸었을 때만 해도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멈춰서는 것이 내 일상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2월 말 대구에서 신천지발 코로나19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마스크가 생활필수품이 된 지 6개월, 벌써 두 계절이 지났지만 언제쯤 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코로나19로 인한 재난의 고통은 취약계층에 더욱 가혹하다. 가장 약한 부분부터 먼저 부서지기 때문이다. 실직과 폐업이 줄을 이으면서 먹고살 일이 막막한 이들도 상당수다.9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일할 능력이 있어도 그냥 쉰 인구가 총 246만2천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취업을 희망하지만 고용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구직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 역시 68만2천 명으로 2014년 통계 작성 이후 8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았는데도 취업자 수는 27만4천 명이나 줄었다고 한다.비대면이 '뉴노멀'이 되면서 교육 불평등도 더욱 확대됐다. 교육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지만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등 비싼 기기와 데이터 설비를 갖추지 못한 아이들은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무료급식소와 복지시설 등은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급증하면서 또다시 운영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수록 경제적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의 어려움도 눈덩이처럼 늘어나지만 언제쯤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을지 아무도 낙관하지 못한다.지난 8일 제277회 임시회가 개원하는 날 대구시의회를 찾았다. 가정복지회에서 9월부터 새롭게 시작한 '한끼듭쇼'라는 기부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서다.'한끼듭쇼'는 평소 "밥이나 한 끼 하자"는 우리 사회의 흔한 인사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만남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밥 한번 먹자'고 말만 건넸던 지인에게 비대면으로 마음을 전하는 형식이다.3만원을 내면 가정복지회가 한 끼 식사를 포장해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에게 직접 배달해주고, 남은 금액은 어려운 이들의 한 끼 마련에 쓰이게 된다. 음식점과 카페 등 대구 지역 자영업자들과 함께 진행해 매출 급감에 고심하는 자영업자에도 도움이 된다.이날 대구시의회를 찾은 것은 릴레이 형식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부 행사이다 보니 '가장 맨파워가 뛰어난 집단이 어딜까' 고심한 결과다. 사실 인원이 많아 부담이 되긴 했지만 내가 나눈 한 끼 밥이 일파만파로 번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구시의원 30명에게 먼저 한 끼를 대접했다.가정복지회는 지난 5월부터 '찐 기부야 챌린지'를 통해 재난지원금 10% 모금운동을 진행해 온라인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태블릿 PC와 노트북 컴퓨터 등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번에는 연말까지 어려운 이웃들과 밥 한 끼를 나누는 '한끼듭쇼'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가정복지회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피로감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인 기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결국 장기화하고 있는 위기를 넘길 방법은 서로 돕는 우리 사회의 '연대의 힘'밖에는 해법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코로나19로 마음까지 우울한 지금, 밥 한 끼 나누고 싶은 소중한 사람을 찾아 기부해보면 어떨까? 그 따뜻한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대구시민 모두가 함께 밥 한 끼를 나누는 행복한 캠페인이 되길 응원한다.

2020-09-10 16:24:49

[청라언덕] 의사들은 왜 환자 곁을 떠났나

[청라언덕] 의사들은 왜 환자 곁을 떠났나

직장 동료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친이 다발성 디스크로 수술이 급한 상황이지만 아직 수술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지만 전공의·전임의의 집단 휴진 사태와 맞물리며 수술을 받지 못하고 퇴원했다.동료의 부친은 현재 척추 신경이 눌려 걷지 못하고 머리에 물이 찬 상태다. 수술이 한시가 급하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의료계 집단 휴진에 환자들은 수술 시기를 놓칠까 안절부절이고, 대학병원 교수들은 연일 이어지는 당직 근무에 파김치 신세다.지역 대학병원 교수에게 상황을 물었다. "신규 환자는 못 봐요. 수술실도 이전에는 하루 20개가량 열었지만 지금은 응급수술만 2개 정도 돌리고 있어요. 수술을 하고 싶어도 마취과 인력이 없어 불가능해요."왜 의사들은 가운을 벗었을까. 의사들의 요구를 '밥그릇 싸움'으로만 여기기엔 정부의 이번 의료정책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필수·응급의료 인력 부족, 의료 서비스 불균형, 공공의료 분야 인력 부족 등을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등 인위적인 공급 확대로 풀긴 어렵기 때문이다.논란의 핵심은 공공의대와 의과대 정원 확대를 통한 지역의사제 도입이다. 공공의대는 공공보건의료대학원으로 공중보건 분야와 감염·응급·분만·수술 등 필수 임상 분야, 국제 보건 분야 등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게 골자다.지역의사제는 지역 내 우수 인력을 의사로 선발해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공공·필수 의료 분야에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제도다.필수·응급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건 해당 분야 전문의가 취업할 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후 대학병원 교수가 되지 않으면 전문성을 살려 수술할 병원이 거의 없다. 소아외과나 심장외과, 산부인과 등도 마찬가지다.지역 간 의료 격차는 심하지만 잘 발달된 교통망으로 한두 시간이면 대도시의 대형병원에 갈 수 있는 점도 지역의사제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의료취약지역을 해소하려면 응급 이송 체계를 완비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공공의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의과대에는 반드시 실습 병원이 있어야 한다. "안동병원을 의과대 실습 병원으로 만든다고 칩시다. 전공의, 전임의가 실습할 환자가 충분할까요? 서남대가 대학병원을 못 만든 이유이고, 제주도 전체를 담당하는 제주대병원이 실습이 미숙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예요." 경북 중소도시에서 오랫동안 봉직한 의사의 말이다.개원의인 친구는 "의사의 이기심을 자극하는 정책을 펴면 된다"고 했다. 필수·응급의료와 기피 과에 대한 의료수가를 현실화해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면 민간이 알아서 취약지역에 병원을 짓고 진료과를 개설한다는 것이다. 의과대 교육 커리큘럼에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내용을 한층 보강하는 것도 대안으로 꼽힌다.의사 단체는 3일 협상안을 마련해 정부, 여당과 대화 재개를 선언했다. 여야도 공공의료 정책 전반을 다시 논의하는 기구를 국회 내에 설치하기로 했다.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집단 휴진은 이어지고 있다.의사들의 주장은 충분히 논의할 만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집단 휴진은 온당치 못하다. 집단행동으로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이 반복돼서도 곤란하다.선한 목적이라도 수단을 정당화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줄 안전망을 재구축하는 획기적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2020-09-03 17:45:44

[청라언덕] 스타 TK 의원을 보고 싶다

[청라언덕] 스타 TK 의원을 보고 싶다

야당 국회의원은 제약이 많다. 정부 부처와 산하 공공기관들은 야당 의원에게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정부 부처에 자료를 요구해도 민감한 대목은 야당 의원에게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임위원장이나 상임위원회 간사 정도를 맡으면 그나마 말발이 선다. 그 외에는 장·차관을 상대로 목에 핏대를 세워도 그때뿐이다. 전문성도 약하고 감투도 없는 야당 초·재선 의원이 떼를 쓰고 악을 쓰는 것은 스스로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행위다.21대 국회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범여권이 180석을 넘게 차지하면서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을 보이콧하면서 영향력은 더욱 떨어졌다. 역대 최약체 제1 야당이 됐다.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TK) 초·재선 의원은 고달프다. 4·15 총선에서 당선된 TK 의원 25명, 모두 통합당 소속 또는 같은 성향의 무소속이다. 초선이 12명으로 절반에 이르고, 재선은 9명으로 초·재선이 전체의 80%가 넘는다.TK 정치권은 여당으로 시작한 20대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사실상 와해되다시피 했다. 정치력은 바닥을 쳤고, 정치권은 사분오열됐다. 문재인 정권 적폐몰이의 중심에서 모욕도 겪었다.TK 정치권은 21대 국회에서 지역 정치력 복원이라는 막중한 숙제를 떠안고 있다. 초·재선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TK 정치권이 정치력을 복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선 의원들에게 공부와 지역구 관리, 두 가지에 특히 공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의원 시절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역구 관리를 위해 금귀월래(금요일에 귀향했다가 월요일에 여의도로 돌아오라)도 누누이 강조했다.10여 년 전 국회 출입 기자 시절, 경기도 군포에서 배지를 달고 있던 김부겸 의원을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수도권 의원들은 지역구의 이해 당사자들이 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탓에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당시 주로 만났던 TK 의원들은 좀 달랐다. 관심 있는 분야에는 전문성을 보였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대신 '형님, 동생' 등 폭넓은 인맥을 통해 정치 경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런 정치 스타일이 4년, 8년 계속되면 결국은 수도권 의원들과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고,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도 없다.TK 정치권에서 스타 의원이 나온 적이 있었나? 송곳 같은 질문으로 장관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을 쩔쩔매게 하는 의원은 대부분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야당 의원이 오히려 의정 활동하는 데는 제약을 덜 받는다. 책임에서 자유로운 야당 의원이 정부 여당을 제대로 공격만 해도 언론에서 다뤄주고, 지역구에서 환영받는다.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곧 시작된다. TK 초·재선 의원들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은 약속으로 저녁 시간을 낭비할 게 아니라 국정감사 자료를 한 보따리씩 들고 가서 열공을 해야 할 시기다. 국감 준비를 보좌진에게 모두 맡기는 의원은 자격이 없다. 부동산, 코로나19, 검찰 개혁, 실업 문제 등 정부 여당의 실정은 차고 찼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밋밋한 질문으로 시간만 축낼 게 아니라 제대로 따지고 대안을 제시하는 TK 의원을 보고 싶다. 선거에서 '묻지마 지지'를 해 준 지역 유권자들이 최소한으로 기대하는 것이고, 초심을 잃지 않은 의원들의 당연한 의무다.기획탐사팀장 이창환

2020-08-27 17:29:05

[청라언덕] 옥동자 순산(順産)~ 모두가 삼신할매

[청라언덕] 옥동자 순산(順産)~ 모두가 삼신할매

집안 대소사가 생기면 '삼신할매'부터 찾았다. 뒤꼍 장독대에 대나무를 꺾어다가 세워 놓고 '삼신할매, 삼신할매' 두 손을 비볐다. 정성을 다한 정화수 한 그릇엔 비는 이의 맑은 마음이 담겼다. 오육십 년 전 부모의 삶은 그랬다.'삼신'이란 '삶의 신'이란 뜻이다. 한자 영향으로 삼신(三神)으로 쓰지만 생명을 낳는 신을 말한다. 아기가 영양을 공급받는 태(胎)를 순수 우리말로 '삼'이라 하니 삼이 곧 삼신할매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사업이 신청 마감 종료 시한(7월 31일)을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됐다. '쇠고집'이던 군위군이 대승적 차원에서 군위·의성 공동후보지로 마음을 돌렸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앞서 신공항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옥동자를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했다. 군위가 유치 신청을 하자 "옥동자를 낳을 때는 원래 산고가 많다"며 그간의 수고로움을 에둘러 표현했다.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은 얽히고 설킨 대구공항 이전 문제를 풀기 위해 불철주야 뛰었다. 기부 대 양여 방식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대구공항 부지와 이전터 간 비용 격차를 맞춰내고 첨예한 경제·정치적 이해관계가 걸쳐 있는 군위와 의성을 합의 테이블로 이끌었다. 이전지 선정 주민투표 후에도 신공항은 군위의 불복으로 여전히 '난산'(難産)이었지만 두 단체장은 옥동자를 낳게 했다.물론 지난 14일로 예정됐던 국방부 이전지 선정이 의성군의 반발로 다시금 2주간 미뤄졌다. 하지만 경북도와 대구시, 국방부는 합심해서 의성군과 합의점을 찾고 있어 곧 낭보가 날아들 것으로 보인다.통합신공항은 추락하는 지역 경제와 사회·문화 전반에 반전 모멘텀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경북연구원은 신공항의 경제 효과를 51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다 '할 수 있다'는 심리적 부양은 대구경북이 다시 도약하는 활주로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경북도의 한 사무관이 공항 결정 기한을 이틀 앞두고 들려준 얘기가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는 군위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터라 '신공항 무산론'이 팽배했다.침대 머리맡에서 뭔가 꼼지락거리기에 놀라 잠을 깨니, 에어컨 실외기 틈으로 날아든 참새 한 마리가 있었다. 참새가 깃에 윤기가 흐르고 잘생겼다. 한참을 쳐다보다 날려 보냈다. 비상하는 참새를 보고 생각했다. "신공항은 꼭 되어야 한다. 아니, 꼭 된다."출근 뒤에도 길조(?) '참새 에피소드'를 팀원들과 나누고 '신공항 된다' 구호로 일과를 시작했다. 열망이 닿았을까. 몇 시간 뒤 군위의 '조건부 공동후보지 수용'이란 소식을 들었다. 이 도지사도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속에서 '고생이 많구나' 하며 손수 지으신 밥을 떠 먹여 주셨다는 일화로, 신공항의 간절함을 담아내기도 했다.이렇듯 신공항은 모든 이의 정성이 잉태했다. 개개인의 염원을 넘어 가톨릭, 불교, 개신교, 심지어 민간신앙 지도자와 기(氣)를 연구하는 도사(?)들까지 군위를 방문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어머니는 출산할 때까지 열 달 동안 태교(胎敎)를 하면서, 닭고기를 먹으면 아기의 피부가 닭살처럼 될까 봐 먹고 싶어도 참았다. 오리고기도 손가락이 짧거나 발가락 사이가 붙는다 해 피했다. '새 생명'을 위하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다.대구경북민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신공항을 점지하고 낳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사업의 연착륙과 활성화를 위해 먹고 싶은 음식도 마다하는 어머니의 정성으로 지역 이기주의 등 고비 고비를 넘어야 한다. 신공항 태교는 이제부터 시작이자 시·도민 전부의 몫이다.

2020-08-21 06:30:00

[청라언덕]우리가 코로나19를 기억하는 법

[청라언덕]우리가 코로나19를 기억하는 법

'잭 버틀러, 수잔 그레이, 웨스트 우드, 제임스 데이비드….' 2020년 5월 24일 자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이름'들이다.이날 뉴욕타임스는 기사 한 줄 없이, 사진이나 그래픽 하나 없이 1천 명의 이름으로만 1면 전면을 촘촘히 채웠다.이날 지면에 오른 이름들의 정체는 코로나19 사망자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을 일일이 검색해 미국 사망자의 1%에 해당하는 1천 명을 선정하고, 이들의 삶을 숙연하면서도 위트 있게 표현했다.'알란 룬드, 81, 워싱턴, 놀라운 귀를 가진 지휘자' '테레사 엘로이, 63, 뉴올리언스, 디테일한 꽃 장식으로 유명한 사업가' '마리 조 다비토, 82, 톨톤,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즐거워함'….돌이켜보면 이날 뉴욕타임스 보도는 '코로나19 희생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전혀 달랐다.대한민국 코로나19 사망자들은 온전한 이름으로 남지 못했다. '100번째 사망자' '76세 남성'….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번호와 나이, 성별이 다였다.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범정부 차원이 됐든, 지방정부 차원이 됐든 코로나19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애도에 너무나 소홀했다.다른 재난 사고들에 대한 추모 열기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로나19 희생자들만 비껴 갔다.코로나19 희생자들에겐 죽음마저 가혹했다. 유족들은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희생자들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에 따라 생을 마감했고, 개인 보호구를 착용한 최소한의 유족만 화장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지난 2월 18일 첫 환자 발생 이후 하루 741명까지 치솟았던 대구 확진자도 어느새 '0명'으로 가라앉았다. 13일 기준 41일 연속 0명(지역감염 기준)으로, 한때 전국 확진 환자의 90%를 차지했던 대구가 코로나19 대확산의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다행히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제 대구도 '코로나19를 기억하는 법'에 주목하기 시작했다.첫 번째 기억하는 법은 '감사'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달 시청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대구로 달려와 주셨던 2천500명 이상의 전국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소방대원들이 아니었다면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또 하나의 기억하는 법은 '추모'다. 코로나19 '영웅'들을 위한 감사의 자리뿐 아니라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도 함께 마련하자는 것이다.지역사회 안팎에서는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역할을 다했던 대구 동산병원과 2025년 준공 예정의 대구시청 신청사(달서구 감삼동 옛 두류정수장 부지) 등에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영구히 기릴 수 있는 추모의 공간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잇따르고 있다.코로나19로 숨진 대구 지역 사망자는 13일 기준 '187명'에 달한다. 전국 305명의 61.3%다.단순 수치로 비교하면 미국 사망자의 0.0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희생자들이 남긴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지금까지 세계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바이러스에 가장 먼저 희생된 사람들…. 그들은 평범한 대구 시민이자,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친구였다. 바로 '우리'였다.

2020-08-13 15:44:51

[청라언덕] 진정한 광복을 향해

[청라언덕] 진정한 광복을 향해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6·25전쟁의 영웅이다. 한국광복군에 몸담아 일제와 맞서 싸웠다. 6·25전쟁 발발 직후엔 흐트러진 국군 부대를 수습, 한강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6일 동안 저지했다. 1980년대 우리 정부는 그를 김종오, 맥아더, 워커 장군과 더불어 6·25전쟁 4대 영웅으로 발표하기도 했다.그는 '항일'에다 '반공'에 앞장섰으니 일부 인물들처럼 논란의 여지도 없다. 군부 독재에도 반대한 인물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가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반발, 야당 정치인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에선 그를 '캡틴 코리아'라고도 부른다. 김홍일 장군이 바로 그다.전쟁기념관은 매달 '이달의 호국 인물'을 선정해 발표한다. 대한민국 수호에 기여한 인물을 기린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처가 매달 선정해 발표하는 독립운동가 명단. 추모 행사나 전시회 등으로 이들의 공훈을 널리 알린다.'8월의 호국 인물'이 바로 김홍일 장군. 8월은 마침 광복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김 장군은 독립운동 경력도 있으니 8월의 호국 인물이란 옷이 더욱 잘 어울린다. 참고로 '8월의 독립운동가'는 이석영 선생. 이회영 등 6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만주로 망명, 삶과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분이다.설사 8월의 독립운동가가 김 장군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에게 의거에 쓸 폭탄을 제공하는 등 임시정부의 의열 투쟁을 지원했다. 중국 국민당의 국민혁명군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소장까지 진급했고, 임시정부의 권유로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해 광복군을 육성했다. 더구나 이달 8일은 그의 서거 40주기다.김 장군에 대한 얘기가 이리 길어진 건 그럴 만한 시기여서다. 15일은 75번째 맞는 광복절. 독립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날이다. 그들을 떠올릴 일은 또 있다. 지금 일본과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선열들이 피눈물로 걸었던 길과는 조금 다를지라도 지금의 우리 또한 위험 부담을 감수한 채 일본과 맞서야 할 상황이다.더구나 최근 일본과의 사이는 더욱 껄끄러워졌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한 게 문제. 그들은 지금도 전략 물자의 북한 유입 등 안보상 이유 때문이라 둘러대고 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우리 국민은 별로 없다.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우리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리자 그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벌인 짓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지난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민심은 들끓었고,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그 흐름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끊기지 않고 있다. 더구나 한일 간 갈등은 쉽게 숙지지 않을 조짐이다. 일본 강제 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 절차, 그에 따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이슈까지 '산 넘어 산'이다. 우리로서도 쉽지 않은 길이다. 일본은 여전히 힘든 상대다. 그래서 '진정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온다.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 교육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마음 편히 세상을 바라보기 힘든 때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잘 벼려야 한다. 교육을 통해 과거사를 잊지 말아야 하고, 김 장군과 같은 선열들을 더욱 잘 기억하며 의지를 다져야 하는 이유다.

2020-08-06 17:36:26

[청라언덕] 자극→변화→발전

[청라언덕] 자극→변화→발전

'자라목'으로 고생하는 현대인들이 적지 않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던 기자는 이처럼 요상한 질병의 기원을 찾아봤다. 여러 설(說) 가운데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호모사피엔스 저자)의 해석이 가장 그렇듯 하다.그는 자라목의 시초를 인류의 직립보행에서 찾았다. 사지(四肢)를 땅에 댄 채 고개를 쳐들고 다니던 유인원 때는 자라목이 없었다는 것이다.직립의 부작용은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엎드리지 않고 기립 생활을 하면서 골반이 좁아졌고, 이 때문에 출산의 고통과 출산 중 사망률이 증가했다. 임신부는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조산'하게 됐고, 인류의 '아기들'은 지구상 포유류 가운데 가장 미숙한 상태로 태어났다.이같은 부작용 때문에 인류가 직립보행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도구를 사용할 수 없었으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불'을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불이 없어 생식을 계속했다면 질긴 고기를 소화하느라 뇌로 투입돼야 할 에너지가 낭비됐고, 지금의 기술 발달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자라목 등의 불편이 따르더라도 직립보행은 인류 문명의 위대한 혁명적 변화로 평가되는 것이다.발전은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반드시 '변화'를 수반해야 하고, 그 변화는 새로운 '자극'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발전'이라는 현상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독립적 시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자극→변화→발전'이라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면서 만들어진 진화된 상태를 일컫는다.지역에는 최근 신선한 자극제가 출현했다. 수십 년 사용한 공항을 이전하는 대형 국책 사업이다. 전투기 소음으로 인한 괴로움과 대형 국책 사업 추진에 목말라 있던 갈증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여당 중진 의원 출신 대구시 경제부시장 내정도 눈길을 끄는 '자극제'다. 힘없는 야당 소속의 권영진 시장의 '상상력'도 놀랍거니와 고심 끝에 수락한 홍의락 전 의원의 결단도 대단해 보인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신선한 자극제'를 넘어 새로운 발전상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코로나19는 대구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가 창궐한 올해 상반기 경제 실적은 대부분 지난해 통계여서, 추락하는 지표는 하반기부터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표 변화에 따라 심리가 크게 달라지는 경제 여건상 크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체감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대구는 코로나를 이겨낸 성숙 하면서도 따뜻한 시민의식이 있다. 손해 좀 보더라도 대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DNA'가 뼛속 깊이 박혀있다. 이를 십분 활용하면 통합신공항 후속조치과 협치행정쯤은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다. 대구 근대사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하던 자극들을, 반드시 변화'발전 궤도에 까지 끌어 올릴 수 있어 보인다.통합공항 이전지 유치 신청 마감일(31일)이 도래했다. 2만여명의 군위군민들은 물론 550만명의 대구경북 시도민은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통합공항으로 지역은 최대 경제효과 50조원을 기대한다. 대구시가 전 시민 대상으로 보내주는 긴급재난지원금(2천400억원)의 200배가 넘는 규모다.이제 지역은 통합공항을 통해 세계 일류 도시로 이륙하는 일만 남았다. 코로나19를 저 뒤에 남겨 두고 말이다.

2020-07-30 20:48:16

[청라언덕] 성장주의부터 버려야 뉴노멀 가능하다

[청라언덕] 성장주의부터 버려야 뉴노멀 가능하다

한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상륙한 지 6개월이 넘어섰지만 당초 기대했던 바와 달리 바이러스는 전혀 숙지지 않고 있다.22일 기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27만8천512명으로 매일 새로운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방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나 싶었던 우리나라에서도 매일 수십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 중이다. 가을을 앞두고 환절기 2차 대유행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코로나19 초기, 많은 이들이 '포스트 코로나'와 '뉴노멀'을 논했다. 언택트를 넘어 온택트가 일상이 되는 디지털 사회, 돌연변이가 지속되면서 상시적인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돼 있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특히 베네치아 등 세계 유명 관광지에 관광객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자연환경이 다시 회복되는 기적 같은 광경을 보며 코로나19의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 인간이 파괴한 생태계와 환경오염에서 비롯된 역풍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문제는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그린 뉴딜'과 '데이터 뉴딜'은 이런 코로나19로 야기된 위협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한 데다, 핵심마저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먼저 가장 시급한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에 대한 대처 방안이 빠져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코로나19 대확산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살신성인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갈아 넣어 겨우 막아 낸 것이나 다름없다.의료진들은 "이런 위기 상황이 또다시 닥친다면 반복할 자신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감염병의 대유행이 상시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한국 의료 체계'라는 자화자찬에 도취돼 있을 일이 아니라 지난 3월 대구의 사례처럼 의료 체계 붕괴를 막을 대책부터 고민해야 한다.돌봄에 대한 대처 방안도 빠져 있다. 코로나19로 복지시설과 학교, 유치원 등이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에 대한 돌봄은 고스란히 각 가정이 책임져야 했다. 갑자기 닥친 돌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돌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감염병이 창궐해 온 나라가 '일시 멈춤' 상태가 될 때는 과연 돌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일회용 사용이 다시 급증하면서 지구 환경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있는 점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개인마다 하루 한 장씩 소비하는 일회용 마스크 폐기물,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등장한 카페 일회용 컵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없다.그나마 친환경을 내세운 '그린 뉴딜' 계획도 앞으로 인류 생존에 더욱더 큰 위협으로 작용할 기후 문제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전략 없이 기존 친환경 사업의 나열에 그치고 있는 데다, 대기업의 전기·수소차 등 그린 모빌리티 보급 확대와 같은 산업적 측면이 더 강조되면서 정작 생태계 파괴를 막을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친기업·시장 중심 정책, 기술 관료주의에 바탕을 둔 성장주의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단어는 같지만 유럽연합의 그린딜 정책은 농업과 생물 다양성 회복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온실가스 저감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뉴노멀'은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새로운 접근 방식에서 시작돼야 한다. 물론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기 부양 정책은 시급하고 필요하지만, 기후 위기와 불평등 위기 대응을 위해 사회·경제구조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2020-07-23 17:14:22

[청라언덕] '영끌'한 '주린이'에게 해피 엔딩은 올까

[청라언덕] '영끌'한 '주린이'에게 해피 엔딩은 올까

아내가 주식 투자에 손대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가 주식을 살 정도면 대한민국 전 국민이 다 하는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로 '주린이'(주식+어린이)다. 거액은 아니지만 우량주 위주로 몇 종목을 샀고, 수익률은 (아직까진) 꽤 높은 편이다.아내의 표정이 주가에 따라 출렁이진 않지만, "누가 무슨 종목을 사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말은 자주 얘깃거리가 된다. 하지만 아내는 주가 차트조차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초보자다. 높은 수익률은 그동안 숨겨왔던 실력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로 폭락했던 국내 증시가 빠르게 회복하며 강세장을 이어가고 있는 덕분이다.대박의 꿈을 좇는 개인투자자는 정말 많이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개인의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3천212만 개로 올해 들어서만 276만 개나 증가했다.종목만 잘 고르면 예·적금 상품을 압도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고, 정부 규제가 심하고 목돈이 들어가며 청약 당첨 경쟁이 치열한 부동산시장보다 진입 문턱도 낮다.세계 경제가 곤두박질쳐도 대박을 좇는 개미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는다.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배운 학습 효과도 만만치 않다. '주식은 결국 오르더라'는 경험이다.''는 세대와 성별을 망라한다. 자산이 적은 20, 30대는 복권 당첨을 꿈꾸듯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투자 대박'밖에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다.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60, 70대도 SK바이오팜이 '따상상상'(공모가 2배에 시초가 이후 3일 연속 상한가)이라는 역대급 신기록을 세우자 앞다퉈 공모주를 찾고 있다.불안정한 경기에 고용시장이 악화되고, 갈 곳을 잃은 돈은 넘쳐나는데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임금 외 다른 소득을 찾는 소득의 이중구조화가 더욱 공고해진 셈이다.코로나19를 견뎌낸 강세장은 반갑지만 마냥 좋아하기엔 영 께름칙하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면 어느 정도까지인가요?'라는 질문이 돈다.예·적금은 기본이고, 전세자금과 주택담보대출, 마이너스통장, 신용대출, 카드론, 보험 약관대출, 자녀 저축, 보험 해지 환급금에다 가족 친지들의 여윳돈까지 끌어모아야 '영끌' 축에 속한단다. 이들에게 주식 투자는 '투자'가 아니라 '도박'에 가깝다.이처럼 빚을 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가계 빚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28조9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48조9천억원보다 80조원 늘었다. 올 상반기 증시로 순유입된 개인투자자 자금은 39조원에 이르고, 지난달 신용대출도 3조1천억원 증가했다.불어날 대로 불어난 가계 빚이 집값이나 증시 폭락 등에 노출되면 가계 파산과 금융기관 부실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투자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그야말로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다.코로나19 사태를 겪는 세계 경기와 금융시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빚을 내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는 격변하는 금융시장을 버텨내기 어렵다. 강세장의 흐름 속에서 낸 성과는 언제든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주식은 결국 오른다'는 낙관론에 취해 무리하게 빚을 낸 건 아닌지, 자신의 투자금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인지 돌아볼 시점이다.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투자는 오를 종목을 잘 찍는 실력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는 자기 성찰에서 나온다.

2020-07-16 17:52:33

[청라언덕] 주인과 노예

[청라언덕] 주인과 노예

15년 전 야구 담당 기자 시절의 이야기다. 대구 시내 모 고교 야구선수들이 집단으로 숙소를 이탈해 팔공산 모처에 숨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어린 선수들은 감독의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반발해 숙소를 벗어났고, 일부 선수는 야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이 감독에 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감독과 학교 관계자, 학부모들은 난리가 났다.취재가 시작되자 감독과 학교 관계자가 밤늦도록 기자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부모들이 설득에 나서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기사화되지 않았지만 스포츠계에 만연했던 비정상적인 훈련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눈길을 끈 것은 해당 고교 야구팀은 전국대회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 감독은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판이 자자했었다. 성적으로 보면 감독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한 야구인은 "요즘 이런 일이 발생했으면 정말 난리가 났을 거다"며 헛웃음을 지었다.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팀에서 감독과 선배 선수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버린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을 취재하면서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과거 스포츠계에서 폭언과 폭행은 일상적인 일로 간주됐다. 알고도 모르는 척 눈을 감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감독 등 지도자들 사이에 성적을 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폭언과 폭행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많았다.선·후배 사이 엄격한 규율도 폭언과 폭행의 원인이 됐다. 혈기 방장한 젊은 선수들이 합숙 훈련을 하면서 동료를 향해 폭언과 폭행을 행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적에 따른 과도한 스트레스를 동료를 괴롭히면서 해소하려는 왜곡된 모습도 나왔다.일부 엘리트 종목에서 이 같은 폭언과 폭행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과감하게 틀을 깨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한 사람을 허망하게 잃었다. 최 선수의 일기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는데 강도가 들어 날 찔러줬으면…. 길가다 누군가 (나를) 차로 쳤으면…. 이 생각이 수백 번씩 머릿속에 맴돈다.'체벌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최 선수가 숙소를 이탈했다가 복귀한 적이 있었다. 감독은 부모가 보는 앞에서 최 선수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했고, 심지어 어머니에게 딸의 뺨을 때리라고 강요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나중에 숙현이를 만나 '많이 아팠니?'(어머니), '안 아팠어'(최 선수), '조금만 참고 견디자'(어머니)는 대화를 나눴다. 그날 숙현이와 아내가 많이 울었다."감독과 선수의 관계가 아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보다 못하다. 노예는 주인에게 대가를 지급받지만 최 선수는 돈까지 빼앗기다시피 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에서 발생했다. 최 선수와 같은 사례가 다른 종목이나 팀에서는 절대 없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솔직히 제2의 최 선수 사건이 터질까 겁이 난다.문제가 불거지면 호들갑을 떤다.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린다. 그러는 사이 제2의 최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통령이 나서 철저한 조사와 처벌, 재발 방지를 지시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유족을 위로하러 칠곡까지 왔다.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최 선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스포츠계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사회적인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꼭 필요하다.대부분 20, 30대인 꽃다운 청춘들을 지켜줘야 하는 건 우리의 선택이 아닌 의무다. 아무리 좋은 성적도 사람의 목숨보다 귀할 수는 없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기획탐사팀 차장 이창환

2020-07-09 17:36:48

[청라언덕] ‘10조(兆)’쯤이야

[청라언덕] ‘10조(兆)’쯤이야

칠순의 촌로(村老)는 평생 못 해본 일이 하나 있다. 몇 살 덜 먹은 아내는 딱 한 번 경험했다. 스물두 살 되던 해 코 닿을 거리에서 시집온다고 이사(移徙)를 맛봤다. 그러고는 평생 그 자리서 늙었다.자식은 젊어서 이사를 했다. 학교와 직장을 찾아 도회지로 떠났다. 이들에게 '이사'는 고립을 벗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노부부(老夫婦)는 세상을 등질 때까지 해서는 안되는 금기(禁忌)처럼 여겼다.코로나19는 이사 없는 마을까지 잘도 찾아왔다. 백발의 동무들은 노닥이던 마을 회관을 떠났다. 코로나는 뜸했던 자식 발길마저 잘라냈고 마을은 더욱 적막해져 갔다.고목도 꽃 필 날이 있다 했던가. 촌가마다 공짜 돈이 생겼다. 자식들이 오지 않는 대신 코로나 긴급생계지원금이 왔다. 가지(子女)가 많아야 모을 법한 용돈만큼, 목돈이 들어왔다. 한동안 넉넉했다. 코로나가 자식보다 나은 '효자'라고 입을 모았다.굴뚝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배었다.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동네 개들이 킁킁대며 혀를 낼름거렸다. 무섭긴 해도 코로나는 사람이나 개나 모두에게 좋았다.문제는 그 한철이 지나서 생겼다. 통장을 빼꼼히 들여다보던 눈은 '또 목돈을 언제 주느냐'에 멈췄다. 쟁기와 호미는 진작에 놓았다. 코로나가 코와 혀를 마비시킨다더니, 만원에도 벌벌 떠는 촌로는 이제 큰돈 아니면 쳐다도 안 보게 됐다. 이제나저제나, 코로나 지원금만 기다리고 있다.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만들었다. 세간은 천문학적 규모라며 입을 떡 벌렸다. 이제는 수천억원에 경악하는 사람은 없다.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비용 10조원이란 예산에 찬사(?)를 쏟아냈다. 단군 이래 최대 공사, 20년간 먹고살 재원….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10조는 명함도 못 내밀게 됐다.코로나 뉴딜에 500조, 국민기본소득 120조, '조'(兆) 단위는 이제 100단위쯤은 되어야 맛이 난다. 코로나가 '1조'를 '껌값'으로 만들었다.1조가 얼마나 큰돈인가. 6천원짜리 자장면으로 온 국민이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도 1천만 명은 또다시 야식으로 먹어야 하는 금액이다. 장당 0.97g 나가는 5만원권 지폐는 1톤 트럭으로 열아홉 대 하고도 반 차를 더 실어야 1조가 된다.정치권은 대한민국의 40%대 부채 비율을 낮다고 보고 있다. 60%도 괜찮다고 한다. 10% 증가할 때마다 200조가 생겨난다니 20% 올리면 공돈 400조원을 만들 수 있다. 부채 비율이 한국은행 이자 도깨비방망이와 진배없다.미국·일본·유럽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돈을 찍어내는 나라다. 물이 있는 고무 대야에 소금을 더 타고 빼고 한들 물과 소금이 어차피 이들 나라 것이라 농도는 문제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축통화 '기침'에 감기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는 그럴 수가 없다. 소금값은 언젠가는 치러야 한다.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부채 비율의 마지노선을 46%로 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그런데도 '아전인수'(我田引水) 통계를 들고 부채 비율 높이라며 '염전'(鹽田)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앞으로 '1조, 10조밖에 안 드네'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코로나 청구서는 곧 날아든다. 서서히 나타나 '나와 상관 없는 일이야'라는 착시현상이 뒤따르겠지만, 연착하는 기차처럼 반드시 온다. '이사 없는 마을'까지 잘도 찾아온 코로나의 진짜 무서움은 바로 돈에 대한 무감각증(症)이 아닐까.

2020-07-02 15:24:37

[청라언덕]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인가?

[청라언덕]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인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의성·군위군 간 유치 신청 갈등으로 무산 위기까지 내몰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이달 중순 통합신공항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대구시를 다녀간 국무총리 비서실 관계자들은 "예비이전후보지 선정 때부터"라고 동의했다는 후문이다.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을 둘러싼 숱한 갈등은 결국 최초 결정을 잘못 내렸기 때문이란 게 지역사회의 중론이다. 통합신공항 이전은 법적 절차에 따라 예비이전후보지 선정→이전후보지 선정→주민투표→유치 신청→최종 이전지 선정의 단계를 밟는다. 현재 이전 사업은 올 1월 21일 주민투표 이후 유치 신청 갈등에 발목이 잡혀 5개월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다음 달 3일 예정의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제3 이전후보지 재추진'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앞서 국방부는 지난 2017년 2월 통합신공항 예비이전후보지로 의성 비안·군위 소보 공동후보지와 군위 우보 단독후보지를 발표했다. 논란의 중심은 성주·고령 공동후보지 경우 고령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예비이전후보지에서 제외한 반면 의성·군위 공동후보지는 군위군의 반대에도 제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당시 군위군은 공동후보지에 대한 국방부의 의견 회신 요구에 '공동후보지와 단독후보지 주민 간, 지자체 간 갈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공동후보지 선정을 강행했고, 여태 단 한 번도 강행 배경을 공식적으로 설명한 적이 없다.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난맥상은 '누구를 위한 통합신공항이냐'는 점이다. 통합신공항 이전 건설 사업의 절대 명제가 대구경북 공동 번영임에도, 정작 공동 번영의 주체인 시도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지난 22일 대구시의회 통합신공항 건설 특위 결과 보고회에서도 "통합신공항 이전지 선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은 진정 반영됐는지, 또 반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앞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해 10월 15일 대구시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최종 선정 기준에 주민투표와 함께 시도민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여론조사 유불리를 따지는 지자체 간 갈등으로 또 무위에 그쳤다.각설하고, 이제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은 '극적 합의냐' '재추진이냐' 중대 기로에 섰다.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여전히 최선은 지자체 합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공동후보지가 됐든 단독후보지가 됐든 권 시장과 이 도지사가 의성·군위군 간 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마지막까지 역할을 다해야 한다.그러나 끝내 합의에 실패한다면 더 이상 특정 지자체의 이기주의로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이 표류하게 놔둘 순 없다. 제3 이전후보지, 통합신공항 이전 사업 재추진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번에는 반드시 갈등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대구경북 시도민 여론을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합의 실패와 재추진에 따른 반대 급부, 이를테면 무책임 행정과 대구경북 리더십 부재에 대한 비판은 권 시장과 이 도지사가 온전히 감내해야 할 몫이다.제3 이전후보지 재추진은 지난 3년 5개월간 군위·의성군 단독·공동후보지 선정에 쏟아부은 시간과 예산, 모든 에너지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최악의 경우 시장직, 도지사직까지 내려놓겠다는 사생결단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구경북 리더로서의 올바른 모습이다.

2020-06-25 16:10:24

[청라언덕] ‘말인따나’

[청라언덕] ‘말인따나’

'말인따나'.외국 말이 아니다. 대구경북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다. 표준말로는 '내키지 않겠지만 말이라도 성의 있게' 정도가 되겠다. 보통은 따뜻하고 점잖은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 또 서운함을 토로할 때 상대방을 책망하면서 말의 머리에 앞세우기도 한다.예를 들면 '말인따나, 고생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형태로 활용한다. 최근 '여의도'에서 이 말을 자주 하고 듣는다. 우리 정치인의 말본새에서 지도자의 품격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정치인에게 무기는 말과 글인데 그동안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지난해 3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발언하자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태극기 부대가 써준 연설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응수했다. 심지어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숫제 일본 아베 총리의 수석 대변인 나베로의 빙의였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오죽하면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16일부터 1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29.3%가 제20대 국회가 가장 잘못한 일로 '막말 논란 등 수준 낮은 국회의원 처신 문제'를 꼽았을까!제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도 여야는 거친 설전을 벌이고 있고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주변 지인들의 입에서는 '말인따나'라는 탄식이 이어진다.아울러 '말인따나'가 요즘 여의도에서 많이 회자됐다는 건 최근 정치권에서 대구경북이 섭섭함을 토로하면서 어떤 상대를 성토할 일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미래통합당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공천 과정에서 '텃밭'에 대한 오만함과 무례가 도를 넘었을 때, 4·15 총선 참패 후 당의 위기 수습 방안을 논의하면서 영남 2선 후퇴 주장이 나왔을 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수' 언급마저 금지하며 당의 노선을 급격하게 왼쪽으로 옮길 때는 공사석에서 '말인따나'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열을 올렸다.김형오 전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은 "보수의 본류인 대구경북에 미리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천 과정에서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보수당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혜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지역민의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총선 참패 후 수도권 통합당 당선인들은 "쫄딱 망할 위기에서 건져 주신 대구경북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만 당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공략해야 하기 때문에 내키지 않더라도 당분간은 저희에게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부탁을 했어야 했다.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성공적인 조국 근대화로 보수당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주신 대구경북을 존경합니다. 든든한 버팀목인 여러분을 믿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텐데, 다소 낯선 상황이 생기더라도 저를 믿고 함께해 주십시오"라고 정중하게 예의를 갖췄어야 했다.나랏일이고 명분에 동의하면 격식을 갖춘 말 한마디에도 자신의 곳간을 열어 주는 이들이 대구경북 사람들이다. 그런 마음으로 독립운동의 선두에 섰고 한국전쟁 때도 목숨을 나라에 바쳤다.대구경북이 대통령선거(2017년)-전국동시지방선거(2018년)-국회의원선거(2020년)에서 모두 참패해 위상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통합당에 뭐 그리 대단한 걸 바랄까!'그저 말인따나….'

2020-06-18 15:02:00

[청라언덕] 친일과 반공 사이

[청라언덕] 친일과 반공 사이

친일 청산. 광복 후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 풀지 못한 숙제다. 잊을 만하면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은 되풀이되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국내에도 활개를 친다. 이제라도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면 '정치적 탄압'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이들이 꼭 있다.6일은 현충일이었다.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을 기리는 날이다. 이 와중에 '친일 파묘(破墓·무덤을 파내는 것)' 논란이 불거졌다.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 인사들의 묘역을 없애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특히 '6·25 전쟁 영웅'이라는 백선엽(99) 전 장군을 두고 말이 많다. 친일 전력(그가 설립, 운영했던 사학재단 선인학원의 총체적 비리가 아니라) 때문에 눈을 감아도 현충원에 안장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이 있다.간도특설대는 일부 고위 간부 외엔 조선인 위주로 운영한 특수부대. 일제의 괴뢰 정부인 만주국 소속이었다. 유능했지만 잔인함으로도 악명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군은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 2년간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책 '간도특설대'(김효순 지음)에 따르면 백 전 장군의 회고록 '군과 나'(일본어판)에는 그곳에서 복무했던 내용이 나온다. 그는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 독립군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죄는 없었다. 다만 동포에게 총을 겨눈 건 사실이고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사죄, 반성은 없다.일제에 부역하던 이들은 해방 후 미 군정 치하에서 권력 집단으로 모습을 바꿨다. 미 군정은 통치 편의를 위해 이들을 청산하는 대신 기용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한몫했다. 1949년 6월 6일 무장경찰들이 반민특위에 난입, 무력화하도록 조치했다. AP통신에 제 입으로 밝힌 얘기다.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현충원에 묻힌 친일 군인은 모두 56명(일본군 20명, 만주군 36명).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해 파악한 숫자란다. 만주군 중 14명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다. 이들은 모두 해방 후 국군으로 임관했고, 반공의 최전선에 섰다. 이 중 백 전 장군을 포함해 46명이 별을 달았다. 친일 행위자들이 반공주의자로 간판을 바꿔 승승장구한 셈이다.보수, 우파라는 이들은 백 전 장군을 반공에 앞장선 민족 원로라 추앙한다. 미래통합당은 그가 마땅히 서울 현충원에 묻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일본과 싸운 이순신 장군, 홍범도 장군에 견주며 영웅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침 7일은 홍 장군이 독립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대파한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날. 홍 장군의 유해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다.이 갈등은 지난해 서훈 논란을 빚은 약산 김원봉의 경우와 묘하게 대비된다. 의열단 수장이었던 그는 일제에 맞서 치열하게 무장 독립투쟁을 하다 해방 후 북한 정권에 몸담았다. 일제와 싸우다 북한으로 간 약산은 거부하면서 일제를 위해 총칼을 잡다가 북한과 싸운 백 전 장군은 품는다? 친일은 반공으로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문제라는 건가. 반공으로도 지우지 못할 죄 아닌가.일제의 폭정에 맞선 항일 행위는 자신의 목숨에다 가족, 집안, 친구까지 파멸로 몰아갈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난을 감내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에 섰던 이들을 미화해선 안 된다. 나중에 사회 지도층이 됐다면 더욱 그렇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런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2020-06-11 18:32:53

[청라언덕]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다

[청라언덕]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다

전국으로 확산된 세입자 월세 감면 운동은 지난 2월 대구에서 시작됐다. 서문시장의 한 상가 주인이 "월세를 받지 않겠다"며 20여 명의 세입자에게 돌린 문자가 발단이 됐다. 건물주는 "그동안 도움받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이라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이번 사례만 보더라도 코로나 정국에서 보여준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적어도 서울에서 태어나 이제 막 대구 생활 6개월 차에 접어든 기자의 시각에선 말이다.직업 특성상 서울-대구 간 왕래가 잦은데, 가장 큰 차이점은 택시운전사들의 마스크 착용이다. 수도권에선 답답하다는 이유로 절반가량은 착용하지 않지만 지난 4개월간 대구에서는 같은 상황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좁은 차 안에서 내만 편하자고 (마스크) 벗으마 어데 내만 걸리능교. 내 손님, 그 가족들, 싹 다 안 걸리겠능교." 오랜 마스크 착용으로 귀에 진물까지 보이던 한 대구의 운전기사 말이다.대구의 거리두기 운동은 어느 지역보다 철저했다. 젊음의 상징인 동성로는 한산했고, 경로당은 폐쇄하는 등 거리두기에 남녀노소가 없었다.월세 감면에도 서문시장 상인들은 스스로 문을 닫았다. 손님의 드문 발길도 그렇지만 방역 취약 지역으로 판단해 6·25전쟁 통에도 하지 않았던 임시 폐업을 상인들이 나서서 결정한 것이다. 다른 상권도 방역을 이유로 한동안 문을 닫았고, 교회·사찰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등 대구 시민들은 한동안 금전과 '믿음'까지 양보하며 코로나와 싸웠다.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대중교통 이용 금지 등 코로나 방역 대책도 대구가 선도했다. 대책 마련을 공부하다 '역학조사' 전문가가 된 권영진 시장은 5개월째 시청 집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중증 치매 환자인 어머니와도 생이별 중이다. 그러면서 휴일에 제 돈 내고 지인과 골프를 쳤다는 이유로 수족과 같은 공직자를 잘라내는 등 코로나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행정 기준을 적용했다.이 같은 시민 의식이 '총선 싹쓸이'로 인해 또다시 '보수꼴통'으로 폄훼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총선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25곳의 TK 지역구 가운데 무려 9명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0% 이상의 득표를 기록해, 당선 가능 고지에 올라섰다. 또 경북 경주 1곳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 전원은 15% 이상을 득표해 선거 비용을 모두 돌려받았다. 선거비 보전은 다음 총선 도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득표 기준이다. 자칫 상대를 헐뜯는 것 같아서 정확한 수치를 비교 않겠으나, 호남에서 통합당 후보들이 얻어낸 결과와는 크게 다른 점은 확실하다.특히 중요한 점은 지역에서 진보 정당 후보자들의 득표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이 어찌 꼴통일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1인 승자 독식 구조의 현행 선거법 허점으로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바닥을 치는 지역 경제를 볼 때 21대 국회에서 TK 위상은 시급한 숙제다. 민주당의 전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되거나, 미래통합당이 중도를 표방하며 보수층을 소외시킬 경우 지역의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이제는 당당히 외치며 대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대구경북은 꼴통 보수가 아니라고! 코로나와 싸워 온 정직하고 착한 시민이 있을 뿐이라고! '개발'이란 유혹을 뿌리치고 후세대를 위한 근대 유산을 가장 많이 보전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이다.

2020-06-04 17:59:16

[청라언덕] ‘빈대’ 잡기 후폭풍

[청라언덕] ‘빈대’ 잡기 후폭풍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5·11 정책 발표 후 지역 건설·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이 부쩍 많아졌다. 정확하게는 불만과 우려가 늘었다.규제지역에 한정했던 전매 금지(소유권 등기 이전 때까지)를 대구 등 지방 광역시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21탄으로 정부는 이를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8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비규제지역의 짧은 전매 제한 기간을 악용해 전매를 목적으로 청약 시장에 투기 수요가 유입, 청약이 과열되고 이 탓에 실수요자들의 당첨 확률이 낮아지는 등 피해를 본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곁들여 수도권과 광역시 민간택지 단지의 고경쟁률을 뚫은 당첨자 4명 중 1명이 전매 제한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분양권을 매도했다는 자료를 내밀며 "전매 제한 기간이 늘어나면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청약 시장에서 가수요, 투기 요소를 걷어내겠다는 정부 방침은 그른 게 없다.실제로 코로나19에 대구의 부동산 거래 시장이 얼어붙었지만 신규 분양 단지들의 나 홀로 '불패'는 이어지고 있다.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리, 세 자리에 이르렀으니 정부 말대로 실수요자의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그럼에도 "빈대(투기 세력) 잡자고 초가삼간(지역 부동산 시장)을 태우는 꼴"이라 힐난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업계 이기주의로만 치부할 수 없다.정부는 집값을 잡겠다고 수많은 정책을 내놨고 지금까지의 방식은 과열지구를 콕 집어 규제를 가하는 '핀셋' 방식이었다. 그러나 과열은 규제를 피한 주변으로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예 지역 특성, 사정 살피지 않는 '뭉뚱그리기식' 정책을 꺼냈다.전매 금지를 대구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나타날 현상은 '수성구'와 '비(非)수성구', '달구벌 라인'과 '비달구벌 라인' 간 양극화 심화다.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수성구는 대출 규제와 함께 전매 금지라는 제약을 받아왔는데, 대구 전역이 전매 금지가 되면 수성구를 옥죈 규제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셈이 돼 수성구 쏠림 현상이 다시 가속할 것이라는 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예상해볼 수 있는 결과다.대출 규제 장벽은 존재하니 자금력이 수성구 진입의 자격 요건이 되고 수요가 집값 상승을 부를 것이라는 건 상식이다.한국감정원의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3월 이후 하락 후 보합을 이어가던 수성구 매매가는 정책 발표 뒤 일주일(18일) 만에 대구서는 가장 큰 폭인 전주 대비 0.08% 상승한 데 이어 25일에도 0.07% 뛰었다.비인기 지역은 반대 상황에 몰릴 게 뻔하다. 청약 당첨 기회가 높아졌다고는 하나 가격 상승이 예상되지 않는 곳에 애써 쌓은 청약 가점을 사용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아 미분양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시장 반응에 사업 외면·포기, 부도 사태 등이 발생하면 주택 공급의 지역적 불균형은 물론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지역 경제 전반이 침체할 수 있다는 건 기우일까.이런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구 단위 규제의 광범위함을 지적하며 읍·면·동 단위로 축소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청약시장에서 통상 투기 수요 유입 여부를 경쟁률 20대 1로 본다. 규제의 칼은 이런 곳에 휘두르면 된다. 빈대 잡자고 너른 지역 불을 지르는 건 무모함이며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지역 사정 살피기가 귀찮았다면 부지런함이 요구된다.

2020-05-28 15:19:50

[청라언덕] 구독경제와 대학 교육

[청라언덕] 구독경제와 대학 교육

대구의 한 대학 관계자(50대)는 요즘 귀가하면 '넷플릭스'를 시청하기 바쁘다. 지난달에 새 TV를 장만한 기념으로 출가한 딸이 넷플릭스에 가입해 줬는데 영화나 드라마 등 콘텐츠를 마음껏 선택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주말에 '미드'(미국 드라마의 준말)를 보고 있노라면 반나절이 금세 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코로나19 사태로 넷플릭스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외부 활동이 크게 줄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넷플릭스가 새삼 주목받은 것이다.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로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고객을 사로잡는 데 큰 전환점이 된 듯하다.넷플릭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구독경제'라는 개념이 빠지지 않는다. 구독경제의 대명사로 넷플릭스가 꼽히기 때문이다. 구독경제는 일정액을 내면 사용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신개념 유통 서비스. 매월 1만원 내외(서비스에 따라 차등)를 내면 각종 콘텐츠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운영 체제가 대표적이다.넷플릭스의 세계적인 성공은 구독경제 보편화에 가속을 붙였다. 세계적인 기업인 아마존이나 구글 등이 이미 구독경제를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들도 구독경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구독경제는 이용자에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매달 비용을 내면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운영 기업에는 따박따박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구독경제는 대학생들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요즘 20대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손쉽게 접하다 보니 누구보다 디지털과 친숙하다. 이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한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방송이나 영화, 음악은 물론, 배달이나 배송까지 크고 작은 구독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대학생 A(22) 씨는 "유료인 것이 다소 부담은 되지만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데다 맞춤형 서비스가 이뤄져 대접받는 느낌도 있다"고 말했다.구독경제가 대학생에게 친숙한 만큼 대학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영남대는 올해 1학기부터 구글 기반의 G-Suite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학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모든 구성원이 무료로 구글 드라이브와 메일을 무제한으로 이용하고 구글 미트(Meet)를 활용, 실시간 온라인 화상 강의나 자료 공유 등을 할 수 있는 것이다.원래 이 서비스는 유료지만 교육기관에 한해 구글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학 계정을 사용하는 한 누구나 공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구글이 대학생들을 잠재 고객으로 보고 펼치는 일종의 마케팅이지만 대학 입장에서는 이를 잘 활용하는 사례다. 당연히 학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찾아보면 이처럼 무료나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IT 기업들의 서비스가 많을 것이다.더 나아가 기업들의 구독경제 방식을 벤치마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대학 특유의 콘텐츠를 개발해 재학생이나 아니면 졸업 후 사회인이 된 졸업생이라도 정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만하다.최근 대학마다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강의도 양질로 제작한다면 하나의 좋은 구독경제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이 일정 부분의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자연스레 대학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구독경제가 앞으로 대학 교육의 트렌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2020-05-21 18:19:28

[청라언덕]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위험한 줄타기

[청라언덕] 공익과 프라이버시의 위험한 줄타기

대구 수성구 수성알파시티 내 대구디지털진흥원에는 '5G 스마트시티 통합관제센터'가 구축돼 있다. 이곳에서는 수성알파시티 내 실증도로 운영과 지능형도로안전 시스템 도로 위험 정보 제공, 불법 주정차 무인 관제, 스마트 가로등, 차량번호 인식, 스마트 워킹, 지하 매설물 관리 등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모든 서비스를 관장한다.일렬로 설치된 모니터에는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와 불법 주정차, 범죄 발생 여부, 통과 차량 수, 과속 건수, 유동 인구 숫자까지 등장한다. 이 같은 정보는 100여 개의 서버에서 수합하고 인공지능이 정보를 분석한다.또한 실시간으로 행인의 얼굴을 분석해 동일인 여부를 판단하고 특정 지역 내에서 행인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사람의 움직임을 분석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지도 감지할 수 있다.만약 이 관제 시스템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일어난 서울 이태원 일대에 구축돼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부가 이 시스템에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신분증 얼굴 사진을 제공했다면 행인의 얼굴 영상과 대조해 이태원을 찾은 이들의 신원을 모두 특정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생체 감시 방식이다.인공지능 CCTV가 아니더라도 개인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은 굉장히 많다. 이태원발 코로나19 확산에서 보듯 휴대전화와 기지국의 통신 기록과 수많은 CCTV, 신용카드 결제 기록, 모바일 기기의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통신 기록 등으로도 개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지금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에 대한 요구는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확산 공포를 이길 수 없다. 시민들은 공익을 위해 통제를 용인하며, 감시에 협조한다. 방대한 개인정보는 막강한 힘을 부여하고, '빅브라더'를 택한 정부는 그 편리한 권력을 놓기 주저한다.세계 각국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에서 시민 감시를 확대하고 있다. 확진자 동선 추적이 인권 침해라고 비난하던 유럽 국가들도 휴대전화 위치 추적 정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비상조치를 발동했다.정부도 코로나19 경제 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개인정보 빗장 풀기에 나섰다. 개인의 정치적 견해나 정당·노동조합 가입 여부, 진료기록, 성생활 등 사생활과 연관된 개인정보라도 가명으로 처리하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합되고 가공돼 어딘가에서 쓰일 수 있는 셈이다.'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위기를 맞아 인류는 특별히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와 민족주의적 고립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글로벌 연대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 정보 보호 분야에서 공익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충돌할 때 타협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증폭될 것이다.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악용이 두려워 사용자 인식 기술의 발달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에 어느 수준까지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규정하고 어길 경우 확실하게 책임을 묻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경제 회복을 이유로 방치하면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이라는 기본권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2020-05-14 16: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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