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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놀면 뭐하니?'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판 제대로 벌인 김태호 PD, 판 제대로 살린 유재석

MBC '놀면 뭐하니?'로 김태호 PD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최근 '놀면 뭐하니?'는 '유플래쉬'에 이어 '뽕포유'로 드럼 지니어스이자 트로트 영재로 거듭난 유재석으로 연일 화제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어째서 '무한도전' 시즌2가 아니라 '놀면 뭐하니?'인가. 1년 여 간의 휴지기를 거쳐 복귀한 김태호 PD에게 이런 질문과 의구심은 당혹감을 느끼게 했을 게다.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불리는 캐릭터쇼의 시대가 지나간 건 업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무한도전' 시즌2를 하라는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을 다시 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물론 '무한도전' 시즌2는 당장 수익이 되는 일이고, 그다지 큰 리스크도 없는 선택일 수 있었다. 그래서 MBC에서도 시즌2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태호 PD가 선을 긋고 굳이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예능 실험을 하게 된 건, 그저 지나간 향수와 추억만을 만지작거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유튜브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예능 형식의 틀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릴레이 카메라라는 실험이다. 김태호 PD는 유재석에게 건네진 카메라가 다음 사람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어디로 누구에게 갈지 알 수 없는 1인 미디어적인 영상이 색다른 예능의 틀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제로 이 형식 실험은 지금껏 예능에 출연하지 않던 많은 배우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문제는 지향점이었다. 릴레이 카메라가 새롭기는 해도 무한 확장될 뿐 어떤 목표나 지향점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유재석이 친 드럼 비트를 갖고 다양한 음악들을 만들어가는 릴레이 음악으로 시도된 이른바 '유플래쉬'로 가면서 하나의 지향점이 만들어졌다.유재석의 드럼 독주회가 그 최종 무대로 세워지고, 비트 하나가 다양한 갈래의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독주회에서 소개되고 거기에 고 신해철의 5주기 추모곡까지 더해지며 하나의 완성도 높은 엔딩이 만들어졌다. 김태호 PD의 실험이 드디어 어떤 성과를 내는 지점이다.그리고 이어진 '뽕포유'는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향해 달려간다. 트로트업계의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놀라운 매력과 예능감이 뒤섞이면서 동시에 유재석이 부를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출구'가 완성된다.아직 발표되기도 전이지만 벌써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는 이 곡들은 아마도 유재석의 트로트 신인 데뷔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 '유플래쉬'와 '뽕포유'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진화가 거둔 어떤 성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시너지가 의미하는 것물론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를 하기 전에도 새롭게 변해가는 예능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의 포지션은 과거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진다. 항상 중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위치가 아니라, 이제 그 마이크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옆 자리로 비켜난다. 그 듣는 위치와 늘 함께 하던 연예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그 화자라는 사실은 유재석이 찾아낸 새로운 포지션이었다.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인 '범인은 바로 너' 같은 프로그램도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의식을 잘 보여준다. 물론 '런닝맨'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10부작으로 완결된 스토리를 갖는 예능 프로그램의 시도인데다, 글로벌한 대중들을 겨냥한다는 점이 그렇다.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의 존재감을 가장 잘 끄집어내 이 시대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형식으로 보여준 건 '놀면 뭐하니?'가 되었다. 그건 유재석처럼 토크면 토크, 콩트면 콩트 그 어떤 것이든 발군의 기량을 가진 인물도 제대로 된 판을 깔아줬을 때 더 빛난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한 마디로 김태호 PD가 판을 제대로 깔았고 유재석은 그 판 위에서 제대로 놀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김태호 PD 덕 뿐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김태호 PD 역시 고백하듯, 유재석이 있어 이런 실험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즉, 김태호 PD도 또 유재석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서로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의식 속에서 이런 시너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연출자도 예능인도 한 시대를 넘는다는 건지난 2일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는 '예능방송인 브랜드평판' 2019년 11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유재석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연구소 측은 유재석 브랜드에 대해 "다양한 에능을 통해 익숙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관심을 높이고 있다"며 "링크 분석을 보면 '공연하다, 만나다, 다양하다'가 높게 나왔고, 키워드 분석은 '일로 만난 사이', '놀면 뭐하니', '나영석'이 높게 분석됐다"고 말했다. 물론 유재석의 브랜드 평판 1위 같은 소식은 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확실히 그의 예능 존재감이 커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중요한 건 한 시대를 구가한 예능인이나 연출자가 새로운 시대를 만나 적응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많던 스타 PD들과 예능인들이 그 시대가 지나가면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이경규처럼 그 오랜 시대를 여러 차례 건너며 현재진행형의 활동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다른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그런 점에서 유재석이 뛰어넘은 한 시대는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최고 주가를 올렸던 스타가 이제 리얼리티 시대에도 여전히 최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이건 또한 '무한도전'으로 예능사에 한 획을 그은 김태호 PD가 유튜브 시대에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의 성공은 앞으로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만들어낼 많은 세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즐거운 신호탄처럼 보인다. 새로운 예능의 재미와 웃음을 열망하는 대중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있을까.

2019-11-13 11:08:07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82년생 김지영',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원작 때도 그랬지만 영화 개봉 전부터 성 대결 갈등 양상으로 인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평점테러까지 이어졌던 영화는 그러나 개봉과 함께 그 반응이 사뭇 바뀌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걸까.◆'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적지 않은 무게감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 원작 소설이 가진 적지 않은 무게감을 부담으로 안고 제작됐다. 2년 만에 백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순전한 소설적 성취라기보다는 이 소설이 던지는 성차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든 신드롬에 가까웠다.MBC 'PD수첩'의 메인 작가로 일하다 육아문제 때문에 전업 작가가 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네 사회가 그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던 무수한 사례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가족사와 또 사회 경험을 통해 그려졌다. 여성들은 일제히 공감을 표했고,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던 젠더 문제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회자됐다. 한 작가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던진 목소리는 그렇게 비슷한 현실을 경험한 여성들의 공감대를 통해 신드롬이 됐다.흥미로운 건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권 전체에서도 벌어질 신드롬의 예고였다는 점이다.2018년 12월 일본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이틀 만에 아마존 재팬 아시아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2019년 8월까지 13만 부 이상 판매됐다.지난 9월 중국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응도 심상찮다. 10월16일 기준으로 중국 최대 규모 온라인 서점인 당당에서 소설 부문 1위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국의 소설에 대한 반응 중에는 "동아시아에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은 김지영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이라는 흥미로운 댓글들도 있었다.그만큼 젠더 문제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그간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아시아권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영화로서는 고스란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화가 결정되던 2017년부터 지금껏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8년에 정유미가 주연배우로 결정됐을 때도 비난의 목소리가 배우에게 향한 바 있고, 영화 개봉에 즈음해서는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이유는 이 콘텐츠가 남녀 간의 성대결을 통해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부터 쏟아져 나온 선입견과 젠더의식이 성대결을 야기한다는 오인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발목을 잡는 듯 싶었다.◆'82년생 김지영', 개봉 후 공감으로 돌아선 이유하지만 영화는 개봉 후 반전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가 평점테러를 할 만큼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되면서다. 사실 이건 젠더 문제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사실 여성들이 겪어온 성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건, 남성들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여성의 불행은 또한 성별을 떠나 우리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영화는 젠더 문제가 바로 이렇게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야 하는 문제라는 걸 오롯이 드러낸다.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 단절이 된 김지영(정유미 분)이 별 문제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 빙의돼 버리는 정신과적 문제를 얻는다. 이를 알게 된 가족들(남편을 비롯해 엄마, 아빠, 동생, 언니 등)이 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구성과 내용만으로 보면 사회극이라기보다는 가족극에 더 걸맞다. 실제로도 영화는 가족 간의 과거사가 현재의 결과들과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후회와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지점은 그래서 여성들이 겪는 공감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절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현재 그 결과로서 만들어낸 자식의 비극을 목도하는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 적지 않다.◆'82년생 김지영'이 악역을 세우지 않은 건무엇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보다 훨씬 담담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마치 르포에 가깝게 당대의 여성들이 겪은 차별의 에피소드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줄줄이 나열했다. 영화는 그보다 김지영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주변 가족들이 가진 저마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 문제는 굉장한 사건을 통해 보여지기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도 모르게 먼지처럼 누적되어 있는 소소한 차별과 편견, 선입견 등의 디테일들을 통해 그려진다.김지영이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육아의 풍경들을 짧게 보여준 후, 저녁 노을이 퍼져가는 시간 베란다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건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담담함을 잘 보여준다. 성차별의 문제는 사실 특별한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가는 그런 것이라는 걸 그 장면이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건 악역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어머니나 아버지는 시대착오적인 말들을 김지영에게 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역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악의가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이라는 것. 그건 어쩌면 그 가부장적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 당연히 감내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그 시대에서도 비극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김지영의 남편 정대현(공유 분)도 어떻게든 아내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누구보다 그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육아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그래서 경력단절 같은 희생을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그 현실 앞에서 남편도 아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게 된다.결국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기보다는 우리네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을 온전히 떠안고 있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그 고통을 공감해보는 것이다. 김지영을 둘러싼 남편의 시선과 부모 그리고 남매, 직장 상사와 동료의 다양한 시선으로 그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더더욱 분명해진다. 김지영의 문제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 그걸 이 영화는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2019-11-06 13:57:43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물론 해외의 유명 음식 다큐멘터리에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깊이와 재미 그리고 연출미학이 균형을 이룬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바람의 파이터'가 도장 깨기 하듯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고 하면 비교적 젊은 세대는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이 프로그램이 그 제목과 캐릭터 연출 방식으로 차용한 건,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또 그 다음 세대가 아는 방학기 화백의 '바람의 파이터' 속 최배달(본명 최영의)일 것이다.도복 하나 달랑 어깨에 들쳐 메고 일본은 물론 중국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했던 전설적인 실존인물. 어딘지 풍성한 몸에 도복 대신 백팩을 한쪽 어깨에 둘러매고 가판 음식들이 즐비한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백종원의 모습은 이제 그 현지 '음식 깨기'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신호와 같은 연출이다.최배달이 그 엄청난 정권과 발차기로 소의 뿔을 꺾고 넘어뜨렸듯, 백종원은 잘 알지 못하면 시도하기조차 어딘지 꺼려지는 시장 골목 음식들이나 길거리 음식들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워 버린다.물론 그건 일종의 유머를 품고 있지만, 거기에는 의미도 담겨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 외국에 대한 감수성도 이제는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꽤 만만찮은 도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현지 길거리에서 풍겨 나오는 낯선 음식 냄새들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조차 알아보기 힘든 음식 앞에서 머뭇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못 먹는 음식이 들었을 것 같고,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맛일 것 같은 불안감. 게다가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들은 우리네 맛집들이 그러하듯이 잘 꾸며진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심지어 길거리 노점이거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야 찾을 수 있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먹기도 전에 마음부터 불편해진다.백종원이 '바람의 파이터'가 되어 그 골목으로 들어가 '음식 깨기'를 한다는 연출적 미학과 유머는 그래서 통한다. 심지어 이 사람은 쉽게 도전하지 못할 현지식들을 너무나 맛있게 먹어치운다. 그러면서 그 곳에 가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뭘 먹을까 설레고 고민돼서.◆먹방도 백종원이 하면 다르더라물론 백종원이 '음식 깨기' 하듯 음식만 잘 먹는 건 아니다. 그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 찾은 터키, 하노이, 뉴욕, 시안, 멕시코시티, 타이베이의 해박한 현지 음식에 대한 식견을 알려준다.터키 하면 떠올리는 음식이 케밥 정도지만 백종원은 귀국길에 발목을 잡는 터키식 해장국 이시켐베 초르바스라는 음식을 소개해준다. 이시켐베가 내장을 뜻하고 초르바스가 국이나 수프를 뜻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으로 대충 이 음식이 내장탕에 해당한다는 걸 말해준 뒤 소금과 후추, 고춧가루 같은 걸 자기 입에 맞춰 먹는다며 먹는 방법 또한 상세히 설명해준다.하노이라고 하면 베트남 쌀국수만 떠올리겠지만, 백종원은 길거리에서 찹쌀밥에 녹두를 썰어 얹어 만든 쏘이 쎄오를 소개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제목에 걸맞게 길거리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 현지 꼬마와 함께 맛나게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베트남에 갔을 때 편견어린 시선으로 어딘지 불결할 것 같아 시도조차 못해봤던 현지인들의 아침 식사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멕시코시티라고 하면 타코를 먼저 떠올리지만 백종원은 시장 통에서 파는 판시따라는 국물이 걸쭉한 음식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멕시코 속 한국이라며 이른바 '멕시코리아'라고 자막이 붙은 이 음식을 국물 맛만 본 백종원은 우리네 시장통에서 나올 법한 "아따-"라는 감탄사로 친근하게 만들어버린다. "끝내준다. 여기 한국이에요"라는 그의 한 마디는 아마도 멕시코시티를 찾는 이들이 이 음식을 찾아 시장통을 어슬렁대게 만들지 않을까.'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그가 음식을 이토록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경험과 정보를 통해 이미 아는 맛이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바로 자신이 아는 맛을 정보로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도 간접적으로 그 맛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러니 현지에서는 낯설어 도전조차 하기 꺼려졌던 음식을 보며 침이 고이는 기이한 경험을 시청자들은 하게 된다.또한 백종원 특유의 유머감각은 음식은 물론이고 현지인들에 대한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지워낸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옆 사람과 눈빛만으로 함께 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하고, 때론 현지인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함으로써 어떤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거의 예술적인 다큐 수준의 연출미학하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그저 먹방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예술적인 수준의 연출미학 덕분이다. 이미 시즌1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카메라를 역으로 돌려 그 음식의 재료를 찾아가는 연출방식은 시즌2에서도 여전히 흥미롭게 보인다.우리에게 흑당밀크티로 잘 알려진 타이베이의 전주나이차의 '진주'에 해당하는 알갱이가 남미가 주산지인 카사바 전분으로 만들어진다는 백종원의 설명에 따라 카메라는 밀크티 위에 얹어진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뒤로 돌아가는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무수히 많은 과정들을 거치고 결국은 맨 마지막에 드론으로 촬영된 푸르른 자연이 비춰지는 모습은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걸어온 길을 새삼 환기시킨다. 자연 어딘가에서 자라고 채취되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리되어 만들어져 우리 밥상에까지 올라온 재료들이 남다른 친근감으로 다가온다.자연 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바뀐 결과물을 그 원형과 이어주는 이런 연출방식은 음식에 대한 친근함을 살리는 효과도 만들어준다. 이를 테면 끓이고 튀기고 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주는 낯설음을 그 원재료를 보여줌으로써 친숙하게 해주는 것.또 특정 지역의 어떤 음식에 얽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옛날 사진을 가져와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과 요소들을 CG를 활용해 동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연출방식도 사용된다. 이런 연출은 보다 쉽게 그 음식의 역사를 알게 해주고, 나아가 음식을 통해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백종원이라는 먹방 파이터와 그의 식견을 통해 깨버리는 외국 현지 음식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정보를 영상화하는 효과적이고 예술적인 연출방식.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 나가 바로 실전에도 쓸 수 있을 만큼의 실용성까지 가진.

2019-10-30 11:05:16

JTBC '비긴어게인3' 출연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비긴어게인', 금요일 밤의 고막힐링 시간

금요일 밤, 불금이라며 친구, 연인과의 약속이 없는 분들은 이제 TV 앞에 앉아 조용히 귀를 열어 놓는다. 거기 이제 고막을 간지럽히는 힐링의 시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고막힐링의 시간을 만든 JTBC '비긴어게인'. 무엇이 시청자들을 이 음악 프로그램에 푹 빠뜨렸을까.◆영화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된 음악 프로그램JTBC '비긴어게인'은 동명의 영화로 화제가 됐던 존 카니 감독의 '비긴어게인'이 모티브가 됐을 거라 여겨진다. 물론 '국내의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버스킹'이라는 이 프로그램만의 고유성과 차별성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비긴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의 기획대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거리 밴드를 결성하고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녹음하는 그 과정은 충분히 이 프로그램에 영감을 줬을 게다.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와 지나는 자동차 소리 같은 현장의 소리들이 녹음과정에 들어가면서 훨씬 더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음악의 질감은 영화 속에서나 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모두 음악이 달리 들리게 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거기에는 그간 우리가 무대 위에서만 들어왔던 음악에 원천적으로 막혀 있던 일상성과 즉흥성이 더해진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가 올려다보는 무대 위에 존재하던 어떤 것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비긴어게인3'에서 이탈리아 피에트라 다리에서 피아노를 놓고 연주하는 한 외국인 버스커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즉흥으로 하는 연주에 헨리가 바이올린을 얹는 장면이나, 이태리 아말피 성안드레아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주변에 앉아 있던 아말피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 같은 건 무대에서 우리가 발견하기 쉽지 않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다.누군가 그 공간에서 노래나 연주를 시작했고, 그것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참여하게 만든다. 또 헨리가 가르다 호수를 배경으로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 한 이태리 아이가 즉석에서 브레이크댄스를 하겠다고 나서 헨리의 연주와 춤이 어우러지는 장면도 그렇다. 그런 건 맞춘다고 나올 수 있는 음악의 풍경이 아니다. 무작정 악기 들고 현장으로 나섰기에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우연의 순간일 뿐.◆여행과 음악의 만남, 버스킹 예능의 매력여행이 갖는 우연적 요소는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이 여행을 소재로 했던 중요한 이유였다. 이제 음악 프로그램 역시 여행이란 소재를 더해 우연적인 음악의 탄생을 끄집어내고 있다. 2017년 시작한 '비긴어게인'은 처음에는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 노홍철이 함께 하는 음악여행처럼 꾸려졌다.노홍철 같은 비음악인이 참여했던 건, 이 음악 예능이 자칫 너무 음악적인 것으로만 흐르지 않고 예능적인 맛 또한 더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실제로 그 첫 시즌에는 윤도현과 유희열, 노홍철이 게임 같은 걸로 만들어가는 예능적 케미의 재미가 압도적인 음악의 맛과 어우러졌다.하지만 2018년 돌아온 '비긴어게인2'는 예능적인 강박을 벗어내고 김윤아, 이선규, 윤건, 로이킴이, 그리고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이 각각 팀을 꾸려 온전히 특정 외국의 어느 지역에서 버스킹을 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올해 새로이 시작한 '비긴어게인3'는 이전 시즌에서 호평 받았던 박정현, 하림, 헨리, 이수현에 임헌일과 김필을 더해 막강한 라인업을 꾸렸고, 이적, 태연, 폴킴, 적재, 김현우가 또 한 팀을 꾸려 또 다른 색깔의 버스킹을 보여줬다. 오롯이 음악 버스킹의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 '비긴어게인'을 알게 됐고, 실제로 금요일 밤 한 주의 피로를 이 프로그램을 보며 풀어내는 새로운 관전 문화까지 생겨났다.왜 국내에서는 버스킹을 하지 않느냐는 대중들의 요구에 이번 시즌3에서는 떠나기 전 포장마차와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보다 해외가 더 큰 감흥을 주는 건, 그 곳의 이국적인 풍광과 문화 속에서 우리네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음악으로 하나 되는 그 순간이 주는 공감의 쾌감은 이른바 버스킹 예능이 끄집어낸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이 되었다.◆경쟁보다는 하모니를 더 원하게 된 대중들사실 한 동안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오디션이었다. Mnet '슈퍼스타K'가 그 화려한 성공의 막을 올렸고, 그 후로 지상파에서도 SBS 'K팝스타' 같은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Mnet 아이돌 오디션 '프로듀스101'은 많은 논란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배출된 워너원이나 아이오아이 같은 아이돌 그룹들은 단기간에 엄청난 인기를 끌어 모으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로듀스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벌어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다.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냉담한 반응은 단지 조작 논란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오디션이 갖는 경쟁적인 분위기에 대중들도 지쳤던 것이 진짜 원인이다. 논란이 생기기 이전부터 준비했던 Mnet이 새로 내놓은 'World Klass'가 스무 명의 연습생을 모아놓고 경쟁이 아닌 협력을 강조하고 평가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하게 된 건 이런 대중들의 달라진 정서 때문이다.JTBC는 일찍이 경쟁 오디션을 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경쟁보다는 하모니를 추구하는 방식을 시도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팬텀싱어' 같은 음악 프로그램은 크로스 오버 남성 중창단을 꾸리고 대결하는 오디션으로 만들어졌지만, 대결보다는 서로 함께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했다. 계속 팀원이 바뀌는 시스템은 지금의 경쟁자가 훗날의 동료가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오디션이 가능했던 것.여러 악기 연주자와 아티스트들이 모여 밴드를 구성한다는 '슈퍼밴드'도 같은 기조 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들은 대결하지 않았다. 함께 다양한 악기 연주와 목소리들을 맞춰보고 거기서 나오는 독특한 음악의 다채로운 색깔을 보여줬을 뿐이다.'비긴어게인'은 바로 이런 음악 프로그램의 새 경향인, 경쟁이 아닌 하모니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음악을 통한 힐링'까지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음악은 방송 프로그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본질적인 소재지만, 그걸 담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한때는 쇼였고, 한때는 순위 프로그램이었으며 때론 오디션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다양성과 공감과 힐링이 그것이다. 금요일 밤을 기대하게 하는 고막 힐링의 시간. '비긴어게인'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문화평론가

2019-10-23 11:12:58

'나의 나라' 이성계 역 김영철. JTBC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나의 나라', 조선 건국을 청춘들의 관점으로 보면

조선 건국은 사극의 단골소재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방영하고 있는 JTBC '나의 나라'는 소재적 약점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막상 뚜껑을 연 '나의 나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어떤 점이 이런 반응을 만든 걸까.◆무수히 많았던 조선 건국 사극, 그 이유1996년부터 1998년까지 무려 159부작으로 방영한 KBS '용의 눈물'은 최고시청률 49.6%를 기록해 이른바 정통사극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용의 눈물'이 1년 반에 걸쳐 다양한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끌어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고려 말 조선 초 역사적 사실에 담긴 드라마틱한 소재에 있다.구세력의 적폐를 깨치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웅장한 목표가 담겨 있고, 그 과정에서 이성계라는 인물의 위화도 회군,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최영 장군과의 일전, 왕좌에 앉은 태조와 야심가인 아들 이방원의 팽팽한 대결구도까지 역사 자체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용의 눈물'의 성공 이후, 조선 건국의 역사는 사극의 단골소재가 됐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 같은 정치적 이슈들과 맞물려 조선 건국의 사극은 당대의 대중들이 원하는 리더상이나,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는 그릇처럼 등장했다.예를 들어 2014년 방영한 KBS '정도전'은 조선 건국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왕보다는 조선의 시스템을 만들어낸 정도전에 집중했다. 이것은 당시 대선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그다지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우리네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이 투영된 것이었다. 세상은 리더 한 사람에 의해 바뀌는 게 아니라, 법 제도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됨으로서 바뀔 수 있다는 의식이 '정도전'에는 담겨 있었다.2015년 방영한 SBS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단지 이성계나 이방원, 정도전 같은 역사적 인물들 만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걸 분이(신세경 분), 땅새(변요한 분), 무휼(윤균상 분) 등 가상의 민초 조력자들을 더해 그려냈다. 촛불집회 등을 통해 부각된 시민의식 영향으로, 실제 역사의 주인공은 그 현장에 있었던 무수한 민초들이라는 관점이 투영된 것이다.이처럼 사극에서 조선 건국 이야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도 시청자들 사랑을 받았던 건, 그 특수한 역사적 시점이 가진 서사의 매력 자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때 그 때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나 관점들로 재해석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9년 다시 조선 건국을 다루는 JTBC '나의 나라'는 어떤 관점을 담았을까.◆청춘들의 절망과 야망, 생존이 투영된 '나의 나라''나의 나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조선이라는 새 나라에 대한 욕망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거기에는 '육룡이 나르샤'처럼 역사적 인물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이 포진해 저마다 각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신념을 드러낸다.예를 들어 위화도 회군을 해 결국 왕좌를 차지하는 이성계(김영철 분)나 그의 가장 강력한 오른팔이면서 동시에 그를 두렵게까지 만드는 야망을 가진 이방원(장혁 분)에게 조선은 권력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할 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이방원이 앞장서지만, 그것은 훗날 역사가 말해주듯이 부자 간, 또 왕자들 간에 벌어지는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다. 국가라는 대의가 아니라 자신이 왕좌를 차지하는 권력의 의미로서 그들은 '나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다.하지만 이 사극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이자 민초로 등장하는 서휘(양세종 분), 남선호(우도환 분) 그리고 한희재(김설현 분)이 저마다 꿈꾸는 '나의 나라'는 그와 다르다. 이들 청춘들은 저마다 날개가 꺾여있다. 고려제일검으로 불렸으나 억울한 누명을 쓴 채 팽형을 당한 아버지 때문에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막혀 버린 서휘, 서얼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는 자결하고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야 하는 남선호. 그리고 고려의 무능을 벽서로 써 붙이고 다니는 한희재가 그렇다.이들은 모두 새로운 나라를 희구하지만 그건 권력에 대한 야심이 아니다. "밥이 나라"라며 "쌀이 뒷간에서 나면 뒷간이 내 나라"라고 말하는 서휘가 꿈꾸는 나라는 생계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나라이고, 서얼 팔자가 지긋지긋한 남선호에겐 그 팔자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나라다. 한희재는 기생집에서 정보장사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결국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거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 힘을 갖겠다 마음먹는다. 그에게 나라란 종속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삶을 의미하는 셈이다.결국 '나의 나라'가 조선 건국 이야기에 투영한 건 지금의 청춘들의 정서다. 물론 태생적으로 많은 걸 가진 청춘들은 이방원처럼 권력의 야망을 꿈꾸겠지만, 그렇지 못한 청춘들은 어떻게든 서휘나 남선호, 한희재처럼 저마다 꿈꾸는 나라의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이처럼 앞길이 막혀버린 청춘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나의 나라'가 그리는 조선 건국의 이야기는 현재적 의미와 공감을 갖게 된다.◆역사와 상상력의 균형으로서의 '나의 나라''나의 나라'는 최근 들어 사극이 역사를 벗어버리고 심지어 판타지로 흘러가는 경향에서 벗어난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최근 들어 KBS '조선로코-녹두전'이나 MBC '신입사관 구해령',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처럼 로맨스 판타지에 빠져버린 사극들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 역사의 진중함과 상상력의 확장을 적절히 균형 있게 잡아낸 '나의 나라'는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면이 있다.한때 사극이 역사를 벗고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처럼 여겨진 적 있었다. 그래서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또 판타지 사극이나 장르 사극, 팩션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를 벗어버리자 사극 특유의 진중함이 사라지면서 힘이 빠져버린 것도 사실이다. 특히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사극들은 사극이라기보다는 조선 배경의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나의 나라'는 이미 '육룡이 나르샤'가 시도한 것처럼 인물 구성 면에서 역사와 상상력의 적절한 균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조선을 세운 역사적 인물들의 묵직한 이야기를 그려가면서도 그 안에서 상상력으로 덧붙인 새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와 상상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이미 다 알고 있는 팩트임에도 색다른 스토리가 시너지를 만든 것. '나의 나라'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다.문화평론가

2019-10-16 11:34:28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스틸컷. 문석구(이동휘 분) 천리마마트 점장과 정복동(김병철 분) 천리마마트 사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쌉니다 천리마마트', 의외로 강력한 B급 병맛의 세계

김규삼의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드라마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B급 병맛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한 마디로 황당한 장면들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런데 의외로 이 작품은 꽤 강력한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뭘까. ◆원작 웹툰의 드라마화, 오랜 시간 걸린 까닭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지난 2010~2013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원작은 당시 누적 조회수 11억 뷰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사실 2013년에 연재가 끝난 작품이 이제 2019년에 들어서야 드라마화됐다는 건 조금 이례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로 이 작품은 이미 2013년에 김종학프로덕션이 영상화 판권을 구매해 시트콤으로 만들려 했으나 무산됐다. 최근 네이버가 스튜디오N을 설립해 웹툰의 드라마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고 나서면서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드라마화가 성사됐다.만일 2013년에 이 작품이 드라마화되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화제에 호응까지 얻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 훨씬 더 B급 병맛 코드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지지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진지함만이 드라마의 미덕처럼 여겨지던 2013년이었다면 이른바 '저세상 유머'를 보여주는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성공을 쉽게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시작부터 당혹스러운 B급 유머로 문을 열었다.대뜸 대마그룹 회장이란 사람이 자사 주력 상품이라며 '털이 나는 광택제'를 소개한다. 그 말도 안되는 상품에 회장 눈치 보며 동조하는 이사진들 사이에서 오로지 한 사람 정복동(김병철 분)만이 반대의사를 내놓고, 회장은 갑자기 이것이 이사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충언을 한 정복동을 추켜세운다.그런데 이 상황은 실제로 '털이 나는 광택제'가 출시되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서 역전된다. 결국 정복동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대마 그룹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천리마 마트' 사장으로 좌천된다.이런 식이니 병맛을 소재로 하는 웹툰을 잘 모르는 시청자라면 '이게 뭐지'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개연성을 찾기 힘들어 허무하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에 자꾸만 빠져든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것일까.◆대충해도 잘 된다는 의외의 카타르시스정복동이 천리마마트로 오면서 하는 일련의 행보들은 더더욱 황당하다. 망하기 일보직전인 마트에 직원들을 더 뽑는 정복동은 가수 지망생, 명퇴자, 전직 깡패 심지어는 빠야족 족장과 부족들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게다가 부족한 카트 대신 카트 역할을 빠야족들에게 시키고 고객만족센터에 전직깡패 오인배(강홍석 분)에게 왕이 입던 곤룡포를 입혀 왕좌에 앉게 함으로써 불만을 가진 고객들이 무릎 꿇고 불만 사항을 얘기하게 만들며, 취직을 하지 못하고 죽은 아버지를 취직시켜달라며 온 아이에게 아버지는 물론이고 아이까지 취직시켜 서점 겸 공부방을 만든다.이 같은 정복동의 행위는 한 마디로 천리마마트를 망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시험을 치러 천리마마트에 취직한 점장 문석구(이동휘 분)가 정복동의 이런 선택과 결정에 반대의사를 내놓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하지만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이렇게 황당한 결정과 선택들을 하면서도 의외로 잘 되는 천리마마트를 그려낸다. 빠야족들은 광어 해체쇼를 하는 등 놀라운 숨은 재주들을 선보이고, 마트에서 열린 문화행사에서 가수지망생 조민달(김호영 분)의 모두를 놀라게 한 데스메탈 공연은 갑자기 오인배가 무대를 제압(?)하려 하자 조민달의 아들이 올라와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한 편의 뮤지컬 퍼포먼스라 여기게 만들었던 것.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들이 정직원이 되고, 그들이 하는 이상한 행위들이 오히려 마트의 매출을 쑥쑥 올리는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건 우리가 흔히 드라마를 통해 봐왔던 스토리텔링의 개연성이나 현실성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연성을 파괴하고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병(병맛)'으로 끝나는 과정이 주는 의외의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그건 한 마디로 말해 '대충 해도 잘 된다'는 상황이 주는 카타르시스다.◆B급 병맛 코드가 가진 매력의 정체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치밀한 계획을 짜야 하며 누군가의 정치적 음모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항상 촉을 세워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현실에서 이렇게 배웠을 게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현실의 작동방식이기도 하다.하지만 과연 우리네 현실은 엄청난 노력을 하면 성공을 보장해줄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면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청춘들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즉 노력을 해도 애초에 출발선상을 달리 만드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고, 그래서 이른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누구보다 능력이 갖추고 있어도 정직원이 되지 못해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취직이 어려워 창업을 해도 이런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기껏 열심히 해서 가게를 살려놓으면 건물주가 세를 올려 결국 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바로 이 지점에서 B급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저들이 사는 세상이 A급이고 거기에는 그들만의 룰이 존재한다면, 이곳에 사는 스스로를 B급이라 여기는 이들은 그 룰 자체를 비웃는 것으로서 병맛 코드의 카타르시스가 생겨난다.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고, 대충해도 잘 되고, 심지어 망하는 선택을 하는데도 잘 되는 천리마마트는 그래서 그 자체로 불공평한 현실의 아이러니를 담아낸다. 그건 거꾸로 말해 누구는 노력해도 안 되고 열심히 성실하게 해도 안 되지만 누군가는 대충해도 잘 되는 현실세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쌉니다 천리마마트'는 기존 드라마들 속 리얼리티와의 부조화를 드러내며 처음엔 낯설고 당혹스럽게 다가오지만, 시청자가 차츰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기묘한 병맛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마치 A급의 세계에서 늘 개연성의 금과옥조로 여기던 '기승전결'의 구조를 '기승전병'으로 포기하게 만들면서 생겨나는 해방감 같은 것이다.무엇보다 거기에는 우리네 현실을 병맛으로 풍자하는 속 시원한 웃음이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의 별따기가 된 정직원이 되는 길이나 한번 엇나가면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나아가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받는 현실을 꼬집는 날카로운 풍자가 거기에는 어른거린다.또한 '고객이 왕'이라는 때때로 갑질을 정당화하는 명제를 뒤집어 '직원이 왕'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돈으로 갈음되는 갑을 관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까지 느껴진다. 이것이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다가도, 차츰 낄낄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B급 병맛의 매력이 아닐까.문화평론가

2019-10-09 13:23:51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동백꽃 필 무렵', 촌므파탈 드라마의 탄생

소소하고 볼거리도 그리 없어 보이는데다, 배경도 어느 시골마을에 불과하고 인물들도 소외된 인물들 천지인 드라마. KBS '동백꽃 필 무렵'은 가진 것보다 못 가진 게 더 많은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0% 시청률을 내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는 건 왜일까.◆김유정의 소설이 아니다, '동백꽃 필 무렵'김유정의 소설인 줄 알았다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그 소설과는 무관하다. 다만 분위기는 여러 모로 비슷하다. 어느 작은 바다를 낀 지방 작은 마을의 풍광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만들어내는 '촌스러움' 때문일 게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촌스럽다'고 말할 때 느껴지는 부정적인 뉘앙스는 없다. 그것보다는 작은 마을이 갖는 사람냄새가 더 느껴진다.사실 엄밀히 말해 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 배경이 되는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농촌 배경의 드라마나, 사투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 같은 것들이 최근 들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래서다. 가끔 시골마을이 등장하는 건 스릴러 같은 살인사건들이 벌어지는 장소로서 나오는 정도랄까. 이렇게 된 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어떤 편견이나 틀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획에서부터 될 드라마들의 요소들을 꼽는데 시골이나 농촌은 아무래도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마치 김유정 소설에 나올 것 같은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대사에 묻어나는 '동백꽃 필 무렵'은 특이한 드라마다. 도대체 무슨 용기로 이런 시도를 한 것이고 기획을 허용한 것일까. 거기에는 KBS '쌈마이웨이'를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쌈마이웨이'에서도 중심에서 밀려난 청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위로를 담았던 작가가 아닌가. 그에게서는 이런 작은 지방 마을도 너무나 아름다워 '한번쯤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특히 소외된 존재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를 끄집어내는데 있어서는 더더욱.◆'쌈마이웨이'에 이은 '동백꽃 필 무렵'의 따뜻한 시선'쌈마이웨이'는 제목에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었던 드라마다. 그것은 본래 태권도가 꿈이었지만 동생 병원비 때문에 부정경기를 하고 영원히 퇴출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고동만(박서준 분)이 쌈(싸움), 즉 격투기로 마이웨이, 즉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제목이면서, 이른바 별 볼일 없는 3류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쌈마이' 취급을 받는 청춘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웨이'를 간다는 뜻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모든 청춘들은 마이너 취급을 받고, 메이저는 항상 저 편에 존재하며 손에 잡히지 않는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지만 현실은 진드기 잡는 일을 하는 고동만이나,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으나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 일을 하는 최애라(김지원 분)는 각각 격투기 선수와 격투기장에서 선수를 소개하는 아나운서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이 바로 '메이저'라고.'동백꽃 필 무렵'은 '쌈마이웨이'의 이런 시각의 연장선이 있는 드라마다. '쌈마이웨이'의 청춘들이 꿈이 꺾여 마이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의 삶 자체가 소외되어 있다. 드라마는 그 곳에서 술집을 내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미혼모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작은 마을인 만큼 남녀가 길거리를 단 몇 분만 함께 걸어도 둘이 이제 곧 결혼할거라는 소문이 나는 그런 곳이다. 그러니 이 곳에서 미혼모로 술집을 한다는 사실이 동백에게 얼마나 큰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겠는가. 그래서 스스로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버티고 살아가지만 그도 가끔씩 울컥 울컥 넘어오는 설움 같은 걸 느낀다. 그런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동백을 그렇게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오직 단 한 사람 황용식(강하늘 분)만은 다르다. 순박하고 촌티 풀풀 날리는 이 옹산의 순경인 황용식은 도서관에서 동백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그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졸졸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 황용식의 촌스럽지만 대책 없는 순박함이 조금씩 동백의 마음을 건드린다.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편견을, 혼자서도 저렇게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내고 게다가 번듯한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며 '장하다'고 말해준다. 그 누구에게도 칭찬을 들어보지 못했던 동백은 그렇게 치명적인 촌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황용식에게 눈이 간다. 이른바 촌므파탈의 탄생이다.◆어째서 이 촌스러움에 빠져들게 된 걸까그런데 이 촌스러움에 시청자들도 점점 빠져들었다. 6.3%(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금세 10%를 찍었다. 입소문도 점점 나기 시작하면서 화제성도 커졌다. 무엇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을까.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가진 독특한 스토리텔링 구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드라마는 동백이라는 소외된 인물에 시청자들이 점점 연민하게 만들고 나아가 공감하고 동일시하게 만들어놓고는, 거기에 황용식이라는 엄청난 돌직구만을 던지는 인물의 거의 찬양에 가까운 동백에 대한 상찬을 늘어놓는다. 동백이 시청자라면, 황용식은 작가인 셈이다. 즉 임상춘 작가는 황용식의 입을 빌어 소외된 서민을 대변하는 동백이 얼마나 가치있고 아름다운 인물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그러니 촌스럽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직언을 날리는 황용식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졸졸 따라다니는 황용식을 단념시키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공유라고 하자, "사람이 어떻게 도깨비를 이겨요?"하고 충격을 받지만 황용식은 자신도 "다이애나 비가 살아온대도 임수정이 저 좋다고 덤벼도" 동백과는 안 바꾼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늘 백안시당하며 살아와 자존감이 바닥인 동백은 황용식의 말 한 마디가 공유의 그 멋진 대사들보다 더 가슴을 건드린다. 그건 판타지라기보다는 더욱 일상적인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건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판타지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행복이 아닐까.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트렌드가 된 시대, 촌스러워도 솔직하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황용식에게 우리가 빠져드는 이유다.그런데 이것은 또한 드라마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수백억씩 들여 제작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한없이 즐겁지만 그럼에도 남는 헛헛함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거대한 판타지가 주는 욕망에 사로잡히다가도 문득 우리의 현실과는 겉도는 저 세계에 허무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게다. 대신 '동백꽃 필 무렵'은 지극히 현실이다 못해 더 바닥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소환해놓고 세상의 속물적 시선으로는 한없이 비천하게 여겨지는 그들이 그걸 벗겨내고 들여다보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존재들인가를 말해준다.'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결코 꽃을 피우지 못할 것 같은 삶조차 사실은 꽃이 피어가는 ' 무렵'에 서 있다고 말해준다. 시골 마을의 촌스러움이 도회지의 세련됨을 이겨내는 순간이다. 그것은 또한 지금의 서민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있는 시대적 변화와도 맞물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2019-10-02 16:01:49

MBC '놀면 뭐하니?'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한 시간 방송 위협하는 10분짜리 웹 콘텐츠들

최근 나영석 PD는 유튜브에 '채널 나나나'를 개설하고 '아이슬란드 간 세끼'라는 웹 콘텐츠를 선보였다. 김태호 PD도 복귀 후 새 예능으로 '놀면 뭐하니?'를 유튜브를 통해 선보인 바 있다. 어째서 이 스타 PD들이 유튜브의 10분짜리 웹 콘텐츠에 뛰어들고 있는 걸까. ◆나영석 PD의 유튜브 실험, '아이슬란드 간 세끼'지난 9월20일 tvN '삼시세끼' 산촌편이 끝나고 이어진 이른바 '아이슬란드 간 세끼'는 5분짜리 정규편성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파격을 선보였다. 본래 원 제목은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인 이 프로그램은 5분이라는 짧은 방송분량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방송이 곧 끝난다는 자막을 담아 의외의 웃음을 안겼다. 과연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 5분짜리 방송은 앞뒤로 광고가 붙었을 만큼 어엿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취를 보였다. 어떻게 이런 방송이 가능했을까.이 프로그램의 시발점은 '신서유기'가 '윤식당'과 퓨전해 만들어낸 '강식당3'에서 강호동이 농담처럼 던진 말로부터 비롯되었다. '신서유기 외전'을 '삼시세끼' 뒤에 매주 5분씩 붙여 내보내자고 했던 것. 그리고 '신서유기6'에서 게임 도중 이수근과 은지원이 아이슬란드 여행권을 상품으로 얻게 되자 이 농담 같은 말은 현실이 됐다.여기서 중요한 건 이 5분짜리 정규 편성된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방영분은 유튜브에 공개될 전편의 예고편 같은 성격이라는 점이다. 첫 방송이 되는 20일 나영석 PD는 이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며 이벤트를 넣는 유튜브 방송을 자신이 개설한 '채널 나나나'를 통해 선보였다. 그리고 정규 편성된 5분짜리 방송이 나간 후, 유튜브에 12분, 8분짜리 동영상 두 편을 공개했다. 그 동영상에는 정규 방송에서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상품 노출에 대한 제한이 없는 유튜브의 성격을 그대로 살린 아시아나 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보여주는 '언박싱' 영상 같은 게 그것이다.나영석 PD의 유튜브 실험은 우리에게 또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MBC '무한도전'이 시즌 종영하고 1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돌아온 김태호 PD의 행보다. 그 역시 유튜브를 통한 '놀면 뭐하니?'라는 릴레이 카메라 형식의 웹 콘텐츠를 먼저 선보였고, 그 후 그것을 TV 버전으로 진화시켰다. 지금도 유튜브에 개설된 '놀면 뭐하니?'라는 채널에서는 TV 방송과 공조해 예고영상을 보여주거나 때로는 미방영분을 내보내기도 하고 있다. 어째서 국내 예능PD 중 양대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나영석 PD와 김태호 PD는 모두 TV 방송과 더불어 유튜브를 공조하고 있는 걸까. ◆플랫폼의 변화가 만든 형식과 내용의 변화그것은 최근 젊은 세대들이 점점 TV로부터 이탈해 인터넷과 모바일로 콘텐츠를 즐기는 경향이 생기면서 방송보다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플랫폼만 옮겨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서 이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내용이나 형식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저 '아이슬란드 간 세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방송 분량이다. 사실상 본방에 해당하는 유튜브에서의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방송 분량은 12분, 8분으로 10분 내외다. 이것은 모바일로 주로 많이 보는 웹 콘텐츠들의 특성이 반영된 분량이라고 볼 수 있다. 김태호 PD가 처음 유튜브에 공개했던 '놀면 뭐하니?' 릴레이카메라의 분량도 10분 내외. 이렇게 분량이 10분 내외가 된 건 모바일 같은 특성상 그 이상을 집중해서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영상 자체가 짧아지자 그걸 담는 편집 방식도 달라진다. 굉장히 압축적이고 속도감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세세하게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조도 바뀌어버린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는 이야기와 상황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오는 이른바 '드립' 형태가 이 짧아진 영상 속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활용된다.영상이 짧아지면서 내용과 스토리텔링 방식이 달라진 대표적인 사례는 웹 드라마다. 우리가 TV시대에 드라마라고 하면 보통 60분 내외를 떠올리지만 웹 드라마는 10분에서 15분 분량으로 한 회가 만들어지면서 기승전결의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 대신 거두절미하고 상황을 보여준 후 바로 바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서두를 길게 가기보다는 공감 가는 특정 상황을 끌어와 바로 바로 갈등을 일으키고 해결하는 이야기방식을 추구하게 된 것. 물론 웹드라마는 2010년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적은 제작비, 인지도 낮은 출연자, 짧은 영상 등으로 '드라마의 마이너리그'처럼 치부되기도 했지만, LTE서비스가 시작된 2013년부터 모바일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하다 2017년에는 가파른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유튜브 사용이 일반화된 대중들의 웹 드라마 시청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히는 '연애플레이리스트'는 2017년 시작해 시즌4까지 만들어진 웹 드라마로 누적 재생수가 무려 4억 뷰를 돌파하기도 했다. 웹 예능에 이어 웹 드라마의 기존 TV 콘텐츠들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들이 조금씩 대중들, 특히 모바일과 인터넷을 더 많이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웹 콘텐츠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달라진 미디어 감성유튜브 같은 새로운 플랫폼이 내놓는 웹 콘텐츠들에 지금의 대중들이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한 때 TV가 주도했던 방송 콘텐츠의 시대가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건, TV 시대의 성패를 가름하던 본방 시청률의 수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특정 편성시간대에 본방하던 시절, 심지어 50%가 넘는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시청률 10%를 넘기는 일 조차 어려워졌고 심지어 5% 미만의 드라마들도 적지 않다.TV 앞에 앉았던 시청자들은 이제 저마다 개인화된 미디어, 즉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미 젊은 세대들 중에는 TV를 보지 않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 이동은 그 미디어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감성들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10분에서 15분 사이로 압축 편집되어 보여지는 웹 콘텐츠는 분량만 줄어든 게 아니라 내용도 형식도 달라졌다.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감성들을 겪으면서 김태호나 나영석 같은 스타 PD들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대중들이 달라지고 그 새로운 감성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금세 외면 받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TV 방송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웹 콘텐츠를 연동하고 경험하려 애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미래의 콘텐츠는 TV가 아니라 웹에 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점점 영화 같은 완성도가 높아지는 콘텐츠들을 네트워크로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라는 세계도 열리고 있다. 미디어의 격변기 속에서 여러모로 TV 영상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2019-09-25 13:09:55

tvN '삼시세끼 산촌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삼시세끼', 출연자를 여성으로 바꿨더니 달라진 이야기

출연자가 바뀐다고 프로그램이 달라질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이다.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를 교체해 시작해도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tvN '삼시세끼' 산촌편은 다르다. 무엇이 달라진걸까. ◆시즌 반복된 '삼시세끼', 식상할 줄 알았는데나영석 PD가 만든 tvN '삼시세끼'는 예능프로그램이 그간 해왔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예능사에 남을만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낚시 소재는 하지 말 것, 출연자를 놀리지 말 것, 대신 뻘밭에 가면 그 뻘을 바라보기보다는 그 곳에서 뒹구는 게임을 할 것 등등이 그 불문율이었다. 그 불문율의 핵심은 '미션'과 '방송 분량'에 맞춰져 있었다. KBS '1박2일'이나 MBC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끝없이 미션을 내려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분량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하지만 '삼시세끼'는 그 불문율을 깨고 정반대의 흐름으로 갔다. 한적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 끼만 챙겨먹는 것. 애초 예능 선배들은 나영석 PD의 이런 시도를 말렸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강행했고, 첫 녹화를 하고 와서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엔 정말 망한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시골 생활이 낯선 이서진 같은 차도남이 그 곳에 적응하는 과정은 나름 미션으로 제시되며 흥미진진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지 미션이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백이 많아지면서 그 빈 여백 속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자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힐링이 그것이었다. 지금이야 ASMR이 익숙하지만 그 시기에 '삼시세끼'는 빗소리를 분할화면으로 모아 오케스트라로 들려주는 엉뚱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할 일이 없어지면서 자연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생겨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이른바 힐링예능의 탄생이었다.하지만 한두 번은 즐거울 수 있어도 반복되면 식상해지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생리다. 몇 차례의 시즌을 거듭한 끝에 '삼시세끼'의 스토리텔링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다. 다시 '삼시세끼'가 산촌편으로 돌아온다고 선언했을 때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물론 출연자들이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여성들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그것이 과연 새로운 이야기나 관전 포인트를 제시할 수 있을까. 기대는 별로 없었다.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면서 이런 반응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식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출연자들에게서 나왔다. 염정아와 윤세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어 언니-동생하던 사이였고 최근에는 JTBC '스카이캐슬'로 동시에 주가가 오른 출연자들이었다. 여기에 염정아와 같은 소속사인데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막내 박소담이 합류해 완벽한 자매 케미가 만들어졌다.물론 초반 이런 산골에서의 일상 자체가 주는 낯설음은 분명히 있었다. 당연한 것이 집에서 인덕션에 스위치만 누르면 척척 요리를 했던 환경에서, 이제 밥 한 끼를 위해 직접 아궁이에 불을 피워야 하는 상황이니 낯설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직접 아궁이도 만들고 비 올 때를 대비해 천막도 쳐놓으면서 조금씩 산골 생활에 적응하더니 이내 손발이 척척 맞아돌아가는 놀라운 시너지를 보여줬다. 염정아가 끼니를 구상하고 전체 동선을 진두지휘하며 저 스스로도 솔선수범한다면, 윤세아는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염정아나 박소담이 필요로 할 것을 미리미리 챙겨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해낸다. 젊은 막내 박소담은 힘쓰는 일은 물론이고 아궁이에 불 피우는 일을 전담하며 언니들의 일을 돕는다.흥미로운 건 이들이 분명한 나이차와 서열이 있지만, 그 일상 속에서 전혀 서열이 눈에 띄지 않더라는 것이다. 맏언니 염정아는 누구보다 동생들을 챙기려 애쓰고 때론 자신이 잘못 결단을 내려 일을 두 번 하게 되었을 때는 동생들에게 그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막내 박소담은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싹싹한데다 털털했고, 윤세아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왼 손이 모를 정도로 보이지 않게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사실 서열은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던 소재였다. 서열을 뒤틀거나 혹은 서열 구조 때문에 시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위계로 만들어지는 웃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간 '삼시세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서진이 나왔을 때 함께 출연한 옥택연이나, 유해진, 차승원이 출연했을 때 함께 출연한 손호준은, 남자들 특유의 서열구조 안에 존재했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이 다르게 느껴진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서열 구조가 없어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며 그래서 일이 척척 맞아 돌아갈 때 오히려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시선과 판타지여성 출연자들이 서게 되면서 여성 특유의 감성들이 프로그램에 더해졌다. 이를 테면 남자들끼리는 잘 못하는 서로에 대한 칭찬을 대놓고 하는 모습이라든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껏 흥에 겨워하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여주는 감성적인 리액션 같은 모습들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심은 배추가 몇 주가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 부쩍 자란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남성출연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리액션이었다. "캐고 우리가 수확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심은 게 자라나는 걸 보는 건 진짜... 최고다." 여성들의 시선과 리액션이 드리워지면서 '삼시세끼' 산촌편은 확연히 이전 시즌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서열 없이 함께 일하고 독려하고 즐기는 그 과정들을 통해 이끌어낸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마침 추석 명절 시즌에 방영됐던 '삼시세끼' 산촌편은 특히나 일이 많았던 하루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침에 도착해 아궁이 위치를 바꾸고 동선이 길었던 찬장을 가까운 곳으로 옮긴 후, 평상 위에도 그늘을 만들기 위한 차양까지 설치해놓고는 점심을 챙겨먹고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갔다 돌아와 심지어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직접 빚었다. 아마도 만두를 빚어 전골을 해먹겠다 마음먹은 건 마침 방영일이 추석이라는 걸 염두에 둔 포석이겠지만, 그 많은 일들을 누구 한 사람의 '독박' 노동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명절에 전하는 특별한 판타지가 되었다. 여성들은 일하고 남성들은 술 마시는 우리네 명절의 성차별적인 풍경을 뒤집는 판타지.'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로 인물 구성을 바꿔 이처럼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건, 지금껏 남성들 중심으로 채워지던 예능 프로그램들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반복되어 식상해진 예능 프로그램들에 어쩌면 여성 출연자들의 그들 방식으로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이 신선함을 더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울어진 성비를 맞추는 의미도 있지만 신선함을 위해서라도 여성 출연자들의 예능은 좀 더 시도해볼 구석이 있다는 걸 '삼시세끼' 산촌편은 증명해 보여줬다.

2019-09-18 11:23:31

넷플릭스. EPA연합뉴스 제공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넷플릭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때 넷플릭스는 마치 세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시장을 독식할 것 같은 위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플릭스의 위기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디즈니 같은 막대한 콘텐츠 자산을 가진 미디어 기업이 곧 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거라는 예상이 나오면서다. ◆디즈니플러스 서비스 되면 어떤 일이...최근 몇 년 간 넷플릭스라는 명칭은 우리에게 꽤 친숙해졌다. 이제 네 명이 모여 '넷플릭스 계'를 하는 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4명의 동시접속이 가능한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하면 각각의 계정을 따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넷플릭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기존의 지상파나 케이블 시장으로부터의 이탈 현상이 예고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른바 '코드 커팅(Cord-cutting)' 현상이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넷플릭스 서비스 이후 생겨난 이 현상은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가입자들이 이를 해지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같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걸 말한다.놀라운 건 이런 콘텐츠 소비패턴의 변화를 만든 넷플릭스의 국내 정식 서비스가 2016년에 시작됐다는 점이다. 짧은 기간에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그것은 기존 채널과 콘텐츠에 공동투자하거나 아니면 국내 제작진에 100% 투자해 우리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600억이 투자됐고,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이나 국내 최초로 시도된 선사 배경의 드라마인 '아스달 연대기' 등에 수백 억이 투자됐다. 또 김은희 작가의 '킹덤' 같은 작품은 아예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되며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니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은 이제 국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대작이거나,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작품들이라면 응당 넷플릭스와 함께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단 3년 만에 국내의 OTT 시장을 장악하다시피해온 넷플릭스는 최근 들어 위기론이 솔솔 피어나고 있다, 그것은 디즈니 플러스(+)의 출시가 점점 임박해오면서다. 오는 11월 12일 미국에서 론칭하는 디즈니플러스는 한 마디로 말해 '캐릭터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의 막강한 OTT 서비스를 예고하고 있다. 끝없는 인수합병을 통해 디즈니는 기존 디즈니 캐릭터들을 물론이고 마블 슈퍼히어로, 스타워즈, 픽사 캐릭터들까지 모두 갖춘 무소불위의 라인업을 갖게 됐다. 이러니 넷플릭스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수밖에. ◆넷플릭스에서 사라지는 콘텐츠들중요한 건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던 일부 콘텐츠들을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블에서 제작한 '어벤져스' 시리즈나 관련 슈퍼히어로물들은 보기 어려워진다. 또 디즈니, 픽사, 폭스의 영화나 드라마도 서서히 빠져 2021년 이후에는 아예 목록에서 지워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 마블에서 판권을 빌려와 자체 제작한 '데어데블'이나 '제시카 존스' 같은 드라마 시리즈도 추가 시즌은 제작되지 않는다. '그레이 아나토미'나 '뉴걸' 같은 작품도 디즈니로 귀속된다. 넷플릭스로서는 디즈니 하나가 빠져나가도 큰 타격을 입는 셈이다.하지만 디즈니 작품들만이 아니다. 굵직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일제히 OTT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넷플릭스는 막강한 경쟁자가 생기는 동시에 지워지는 작품들도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통신사인 AT&T가 운영하는 워너미디어는 새로운 OTT 서비스인 HBO맥스를 내년 초 정식 출범할 예정인데, HBO는 '왕좌의 게임',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세계적인 콘텐츠들을 선보여온 제작사다. 우리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E.T.'나 '쥬라기 공원' 같은 작품들로 잘알려져 있는 유니버설 픽처스를 보유하고 있는 컴캐스트도 NBC유니버설이라는 OTT서비스를 내년 초 출시할 예정이다. 이들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넷플릭스의 핫 아이템들도 빠져나갈 예정이다. '프렌즈'가 올해 말 HBO맥스로 옮겨가고, '더 오피스'나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2021년부터 NBC유니버설로 판권이 돌아간다.지금까지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OTT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글로벌 유통방식으로 끌어안은 넷플릭스는 한 마디로 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콘텐츠 제작사들이 직접 유통에 뛰어들면서 넷플릭스는 그 많던 콘텐츠들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항간에는 곧 넷플릭스의 곳간이 텅텅 빌 거라는 다소 과장된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넷플릭스의 위기는 어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얘기할까. ◆넷플릭스가 밀려나면 생겨날 또 다른 위기들그렇다면 넷플릭스의 위기는 '강 건너 불'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제 제작만이 아닌 유통에 뛰어들어 OTT 시장을 잠식해나가는 일은 극심한 콘텐츠 집중현상과 함께 소외 현상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넷플릭스 역시 지금의 위기를 감지하며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직접 제작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경우만 놓고 보면 '킹덤'이나 '좋아하면 울리는' 같은 드라마나 '옥자' 같은 영화 또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만들어졌다. 또 '미스터 션샤인'이나 '아스달 연대기' 같은 작품도 넷플릭스의 투자가 아니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작품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 어울리는 덩치 큰 작품들은 넷플릭스의 투자가 필수적으로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하지만 디즈니플러스나 HBO맥스 같은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OTT 서비스가 넷플릭스처럼 글로벌한 외부 제작사들에 얼마나 투자를 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물론 그 방식이 자신들의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이들 역시 넷플릭스 같은 투자를 통한 제작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보유한 캐릭터들과 작품 연작 시리즈만으로도 글로벌한 힘을 갖추고 있는 이들에게 콘텐츠 회사가 아니어서 투자를 해온 넷플릭스 같은 행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 거대한 글로벌 콘텐츠 공룡에 의해 전 세계의 콘텐츠 시장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네 콘텐츠 제작사들은 향후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떤 대처를 해나가야 할까. 한류가 글로벌하게 알려진 건 초기에는 이벤트적이고 사건적인 것이었다. 즉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해외에서도 큰 반응을 얻게 된 것이 초기 한류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기획적인 한류 콘텐츠를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가 국내에서도 활발히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 '우물 안 개구리'로는 우물 안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형국이다. 글로벌한 시각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접목시켜 독특한 차별성을 가진 작품들로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지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는 막대한 자본과 서비스 노하우가 필요한 유통 자체보다는 콘텐츠에 승부를 거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제아무리 유통의 힘이 강하다 해도 매력적인 콘텐츠는 어디서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넷플릭스의 위기를 우리의 현실을 각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19-09-04 09:23:13

MBC '놀면 뭐하니?'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관찰카메라 시대, 유재석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을까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을 중심으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를 이끈 스타 MC였다. 하지만 지금 관찰카메라 시대를 맞아 유재석에게도 어떤 변화가 감지된다. 그에게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길거리로 나온 유재석의 변화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처음 방영을 시작했을 때 많은 이들이 떠올린 건 '무한도전'에서 잠깐 시도됐었던 길거리 토크쇼였다. 무작정 길거리로 나가 아무나 만나 토크를 나누는 그런 도전. 물론 그 아이디어는 비슷했다. 하지만 형식은 조금 달랐다. 제목에 담긴 것처럼 그저 토크만 하는 게 아니라 '퀴즈'라는 형식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길거리에 만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퀴즈를 풀었다. 처음에는 다섯 문제를 연거푸 맞춰야 백 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룰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자 상금을 받아가는 분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토크에 집중하기보다는 퀴즈에 더 집중되는 면이 생겨났다. 어째서 그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이 아닌 퀴즈 형식을 넣었는가는 유재석이 지금껏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왔던 면면들을 생각해보면 이해되는 일이다.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 캐릭터쇼에 MC로서의 진행을 주로 해왔다. 퀴즈 같은 예능적인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처음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하지만 잠시 휴지기를 갖고 다시 돌아온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퀴즈에 대한 집착을 상당 부분 내려놓았다. 한 문제만 맞춰도 백 만원을 드리는 룰이 제공되었고, 틀려도 조세호가 메고 다니는 이른바 '자기백'에서 공을 뽑아 선물을 드리는 방식이 추가됐다. 퀴즈는 맞춰도 되고 안 맞춰도 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고, 대신 만나는 분들의 이야기로 떠나는 '사람 여행'이 프로그램의 중심적인 포인트가 되었다. 프로그램은 유재석과 조세호의 토크나 진행보다 그들의 질문을 통해 나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호평이 쏟아졌다.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의 변화는 유재석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예능 세계의 변화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보통의 예능프로그램들이 유재석과 함께 하게 되면 전적으로 그에게 최적화된 옷을 제공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지금도 그의 진행이나 캐릭터쇼에 맞춰진 형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도 예전 같은 반응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이제 유재석도 실감하고 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변화에 유재석 또한 발을 맞춰나가는 건 그래서다. 그는 조금씩 관찰카메라라는 새로운 시대의 예능 트렌드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릴레이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유재석의 과거와 현재유재석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 여전히 걸쳐진 채 어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지금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걸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아마도 김태호 PD의 복귀작인 MBC '놀면 뭐하니?'일 게다. '놀면 뭐하니?'에서 김태호 PD는 유재석을 대뜸 찾아가 카메라 한 대를 주고는 알아서 메모리를 채워오라는 미션을 줬다. 제작진이 없이 1인 미디어가 되어 영상을 찍고, 그 카메라가 다른 인물들에게 전달되면서 일종의 '릴레이'를 통해 다채로워지는 실험은 유튜브 같은 1인 미디어 시대를 읽어낸 김태호 PD다운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하지만 릴레이카메라가 두 대로 늘어나면서 출연자들도 우리가 흔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지 못했던 이동휘, 박병은 같은 인물들까지 확장되며 기대감을 높였을 때, 유재석은 엉뚱한 선택을 했다. 즉 김태호 PD가 득의의 미소를 띠며 건넨 카메라 네 대를 갖고 조세호의 아파트에서 과거 연예인들의 게임쇼였던 '동거동락'을 했던 것. 그간 릴레이카메라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좁은 아파트에 모여 갖가지 게임을 하는 모습은 순간적으로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버렸다. 릴레이카메라가 '확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현재의 예능 실험이었지만, 유재석은 그걸 갖고도 과거로 회귀해 복고적인 아이템을 반복했던 것.아마도 이런 상황은 김태호 PD도 예상 못한 난감한 일이었을 게다. 대중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릴레이카메라의 또 다른 시도로 유재석이 배운 드럼으로 비트를 만들고 거기에 아티스트들이 릴레이식으로 작곡을 하는 이른바 '유플래쉬' 아이템이 소개되면서 반응은 다시 좋아졌다. 영상의 릴레이만이 아닌 음악의 릴레이를 시도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고, 나아가 릴레이카메라는 새로운 형식으로서 향후 다양한 아이템들이 그 형식 속에 녹여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낳았다. 실제로 다음 아이템으로 시도된 '대한민국 라이브'는 전국을 이어주는 교통수단을 매개로 동시간대 거기서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릴레이처럼 여러 출연자들이 소개하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놀면 뭐하니?'의 릴레이카메라를 통해서 보여지듯이 유재석은 지금 현재의 예능 환경에 맞게 변화해가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예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조금씩 시행착오를 거쳐 이런 변화를 스스로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찰카메라 시대에도 유재석이 여전한 에이스로 설 수 있는가는 바로 이 적응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이효리에게 한 수 배운 유재석최근 tvN에서 새로 시작한 '일로 만난 사이'는 첫 회부터 4.9%(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화제가 되었다. 유재석이 메인 출연자라는 것이 관심을 끌게 만든 일차적 요인이지만, 그보다 더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게스트가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제주의 녹차밭에서 말 그대로 일을 하며 나누는 유재석과 이효리의 대화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했다. '체험 삶의 현장'과 이 프로그램이 무슨 차이가 있냐며 꼬집는 이효리의 솔직하고 때론 대담한(?) 질문들에 유재석은 진땀을 흘렸다.여기서 특히 주목됐던 건 이효리가 유재석이 무언가 진행을 하거나 토크를 쉬지 않고 하려는 모습에 대해 그건 "옛날 스타일"이라고 대놓고 지적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떠올려 보면 이효리는 이미 '해피투게더' 시즌1 쟁반노래방 시절부터 잘 나가던 예능 블루칩이었다. 또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는 유재석과 함께 '패밀리가 떴다'로 캐릭터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었다. 그리고 관찰카메라 시대로 들어와 유재석이 주춤하고 있을 때조차 이효리는 '효리네 민박'에 이어 '캠핑클럽'으로 다시 예능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되었다. 이효리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미 예전부터 솔직한 모습을 자신의 예능적 자산으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토크쇼에서는 과감한 대화가 되었고, 캐릭터쇼에서는 솔직한 캐릭터가 되었다. 관찰카메라에서 이효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하고 웃음은 물론이고 먹먹함까지 안기는 그런 인물이다.'일로 만난 사이'에서 이효리가 유재석과의 티격태격하는 그 특유의 케미를 통해 전해준 건 관찰카메라 시대에 출연자는 훨씬 더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재석의 진정성은 대부분의 대중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는 늘 캐릭터 뒤편에 서려는 면이 있다는 것. 유재석의 진정한 변화는 그래서 바로 이 캐릭터까지 벗어버리는 지점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많은 프로그램들에 적응해가면서 유재석도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2019-08-28 14:28:03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돌아온 김태호 PD, 그가 펼쳐놓은 예능 신세계

김태호 PD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들고 돌아온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 아니다. 대신 '놀면 뭐하니?'와 '같이 펀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에 나란히 포진한 김태호 PD의 새 예능 프로그램. 어떤 신세계를 들고 왔을까. ◆'놀면 뭐하니?', 릴레이 카메라라는 낯선 확장의 세계지난해 MBC '무한도전'의 시즌 종료를 알린 후 약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 김태호 PD가 복귀 소식을 알린 건 지상파가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유재석과 무언가를 공모(?)하고 있다는 소식이 먼저 전해졌고, 그것은 유튜브를 통한 이른바 '릴레이카메라'라는 것이 곧 밝혀졌다. 무작정 유재석에게 카메라를 건네고는 메모리가 다 할 때까지 채워서 돌려달라는 것이 김태호 PD의 주문이었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도 촬영팀이 전무한 상황 속에 유재석의 손에 들려진 카메라는 그래서 조세호에서부터 태항호, 딘딘, 유노윤호 등을 거쳐 다시 김태호 PD의 손으로 돌아왔다. '무한도전'을 대체하는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을 터지만 김태호 PD는 블록버스터 예능이 아니라 오히려 미니멀한 예능을 시도했다. 계획대로 찍히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 갈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릴레이카메라는 '의외성'의 재미가 있었다.그런데 그 한 대의 카메라가 끝이 아니었다. 유튜브 버전으로 실험한 릴레이 카메라는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으로 토요일 편성을 받아 돌아왔고, 김태호 PD는 카메라 한 대를 더 줘 인물군들을 확장시켰다. 예상대로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동휘, 박정민, 박병은 같은 배우 라인이 '놀면 뭐하니?'에 얼굴을 내밀었다. 굉장한 웃음의 밀도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뻔한 출연자들의 뻔한 웃음보다 낯선 출연자들의 낯선 모습들이 더 주목을 끌었다.물론 네 대로 카메라가 늘면서 유재석이 조세호의 아파트에 그간 릴레이 카메라에 출연했던 인물들을 초대해 '동거동락'식의 다소 퇴행적인 방송을 찍기도 했지만, 김태호 PD는 굳건하게 본래 릴레이 카메라로 추구하려던 방향을 밀고 나갔다. 유재석에게 드럼을 배우게 시켜놓고 그가 친 단순한 비트를 유희열과 이적에게 건네 이른바 '릴레이 음악'을 시도하게 했다. '놀면 뭐하니?'라는 예능 신세계의 진면목이 슬쩍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그건 바로 '확장'의 세계였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거대해지는 프로젝트이자 일종의 영상 실험이면서, 예능 신생아(?)들을 끄집어내기 위한 시도. 김태호 PD가 늘 꿈꿔왔던 예능이 예술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기묘한 실험이 바로 '놀면 뭐하니?'였다. ◆'같이 펀딩', 함께 만들어가는 익숙한 현실 바꾸기 프로젝트토요일 '무한도전'이 방영되던 시간대에 포진한 '놀면 뭐하니?'의 세계가 다소 낯선 실험에 가깝다면, 일요일 주말예능 시간대에 편성된 '같이 펀딩'은 어딘지 익숙한 세계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가끔씩 시도되던 '시청자와 함께 하는' 아이템들이 좀 더 조직적이고 실질적으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이 바로 '같이 펀딩'이기 때문이다.첫 번째 펀딩의 아이템은 유준상이 갖고 온 이른바 '태극기함' 프로젝트다. 국경일이면 당연하게 태극기를 게양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파트 한 동에 한두 집 국기를 게양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본 유준상이 그 태극기를 보관하고 또 꺼내 쓸 수 있는 국기함을 만들겠다고 나선 프로젝트. '같이'와 함께 '가치'의 의미도 담긴 제목처럼, 펀딩을 설득하기 위해서 유준상은 먼저 태극기의 의미를 먼저 찾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산 진관사를 찾아 설민석으로부터 태극기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를 들었던 것. 그 날 이야기에서 특히 일제강점기 진관사에서 남몰래 독립운동을 해온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에 얽힌 이야기는 유준상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모진 고초를 겪으며 독립운동을 해왔지만 한국전쟁으로 사찰이 불타 사료들이 소실되면서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초월 스님. 하지만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 보수공사 도중 나온 보자기 하나가 초월 스님의 숨겨진 독립운동을 알렸던 것. 놀라운 건 그 보자기가 일장기 위에 덧대 태극 문양을 그려 넣어 만든 태극기였다는 사실이다.'같이 펀딩'이 시도한 태극기함 프로젝트는 이러한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긴 것으로 실제 펀딩에 있어서 단 10분 만에 목표를 달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추가수량을 포함한 1만 개의 태극기함 펀딩 역시 방송 마감 후 30분 만에 완료됐다. 최종 1차 펀딩 달성률은 무려 4110%에 달했다.이처럼 '같이 펀딩'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방송이 방송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을 바꾸는 동력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게 되면, 참여가 가능하고 그것이 우리가 현실에서 원했지만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어떤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같이 펀딩'은 김태호 PD가 '무한도전' 시절에도 종종 해왔던 '사회 가치'를 추구하던 아이템들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체계화한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아직은 낯선 시청률, 하지만 실험적 가치는 분명한물론 '놀면 뭐하니?'나 '같이 펀딩'의 시청률은 아직 저조하다. '놀면 뭐하니?'는 4%대 시청률(닐슨 코리아)이고 '같이 펀딩'은 이보다 낮은 3%대 시청률이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즉 지상파의 과거 시청패턴에 맞춰진 시청률 추산이라 낯선 실험이나 시도가 시청자들에게 각인되고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청률이 낮다고 해서 '놀면 뭐하니?'가 동시간대의 KBS '불후의 명곡'보다 가치가가 낮다 보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같이 펀딩'이 동시간대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보다 의미가 없다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시청률이라면 KBS가 오래도록 해와 관성적인 시청층을 갖고 있는 '불후의 명곡'이나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높은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김태호 PD가 들고 온 다소 실험적인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만한 의미가 있다 여겨진다. 언제까지 시청률에 맞춘 틀에 박힌 예능 프로그램들만 만들어낼 것인가. 지금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새로움은 없고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만 가득하게 된 건 당장의 시청률에 갈급하다 트렌디한 시도나 실험을 하지 않게 되면서 생겨난 결과다.'놀면 뭐하니?'는 1인 미디어 시대의 실험으로써 다양성을 축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미디어와 미디어가 연결되면서 생기는 협업의 가능성 또한 열어 놓았다. '같이 펀딩' 역시 방송사와 제작진이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놓았다. 이처럼 김태호 PD는 지금의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든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통해 흥미로워질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보인다.당장의 시청률 수치적 성과는 금세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치에 매몰된 프로그램은 더 이상 이 시대에 의미와 가치를 잃어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적당히 낮은 수치가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수치보다 협업하고 참여하려는 이들이 늘어가는 것이 더 좋은 신호일 지도.

2019-08-21 12:25:22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명과 암, 골목은 살아나고 있나

작년 1월에 시작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최근 여름 특집으로 지난 방송에 나왔던 골목들을 찾아가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1년 반 남짓 흐른 지금, 과연 그 골목들은 살아나고 있을까. 또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과연 통하고 있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현실을 바꾼다는 야심찬 도전방송은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과거였다면 조금 뜬금없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즉 과거의 방송이라고 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떤 세계의 이야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드라마도 예능도 세트에서 찍어 내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현실과의 접점은 원천적으로 차단되던 시절. 하지만 카메라가 점점 가벼워지고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현실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방송과 현실의 접점은 연결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까지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그 많은 지방의 음식점들 간판에 프로그램 이름명이 들어가기 시작한 건 이런 방송이 현실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백종원의 골목식당'은 SBS가 백종원과 해온 '백종원의 3대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의 연장선에서 시작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백종원이 찾아간 식당들이 하루아침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방송의 힘을 실감한 제작진은 그 영역을 실제 식당 창업으로 넓히기 시작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그 시험대로서 백종원이 그간 사업을 해오며 갖고 있는 노하우들을 통해 푸드트럭 창업자들을 살려낸다는 미션을 수행했고,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자 이제 백종원은 '골목상권'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됐다. 첫 번째 골목으로 이대 앞 죽어있던 골목을 찾아가 음식 맛에서부터 메뉴, 서빙, 청결관리 등등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백종원은 텅 비었던 골목이 사람들로 채워지는 기적(?)을 만든다. 물론 그건 방송의 힘이기도 했지만 요식업 사업의 노하우를 꺼내놓은 백종원의 힘이기도 했다.그 후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서울은 물론이고 여수, 거제, 원주, 대전, 서산 같은 지방의 골목들을 찾아가 어김없이 사람들을 몰리게 만들었다. 방송으로 현실을 바꾼다는 야심찬 도전은 성공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완전한 성공일까. 아니면 방송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효과일까. ◆다시 찾은 골목, 과연 현재는 어땠을까그렇게 어언 1년 반, 최근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여름특집으로 과거 이 프로그램이 찾아갔던 골목들을 다시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확인 결과 백종원이 거쳐 간 모든 식당들이 다 잘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대전 청년구단의 경우, 당시 백종원과 시음 대결을 벌이기까지 했던 막걸리집은 자체 생산한 막걸리를 전국으로 유통할 정도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시 솔루션을 통해 '초밥대통령'에서 '알탕대통령'으로 거듭나겠다 했던 초밥집 사장은 어째 과거로 되돌아간 모습이었다. 응원을 하러 갔던 백종원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청년구단의 식당들이 서로서로 상생하기보다는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백종원은 청년구단처럼 함께 상생해야 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메뉴구성에서부터 가격까지 서로가 서로의 미끼가 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방송을 통해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운영하다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포방터 시장의 경우, 돈가스집이나 홍탁집처럼 거의 모범적으로 당시의 솔루션을 지킴으로써 장사가 잘 되고 있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존재했다. 그것은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면서 돈가스집에 끝없는 민원이 제기됐던 것. 돈가스집은 그 포방터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마음이 확고했지만 주민들과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돈가스집 내외는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다른 곳으로의 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방송이 가진 힘은 때론 사람들을 몰리게 만들지만, 그것 자체가 지역의 고충이 되기도 한다.한편 이 프로그램의 첫 골목으로 화제가 됐던 이대 백반집은 초심을 지키지 않은 일로 큰 논란에 휩싸였다. 즉 애초 백종원이 제공했던 솔루션은 지키지 않으면서 그의 이름을 걸어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토로하는 백종원에게 백반집 사장은 눈물로 사죄했고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지만 이 문제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방송의 취지가 무색하게 이를 오히려 활용하기만 하는 가게도 적지 않다는 걸 이대 백반집은 보여줬다. ◆방송과 현실 사이, 초심 잃지 말아야'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으로만 보면 분명 성공적인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이 10%를 넘겼고, 매주 방송이 나간 후 화제성도 최고였다. 게다가 방송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 방송에 나간 골목들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만드는 영향력까지 발휘했다. 백종원은 그 화제성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가 골목상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이 프로그램이 만든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비판을 받아온 프랜차이즈 사업주지만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진정성을 드러냄으로써 골목상권의 사부님이 되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요식업 창업이 많아지고 역시 폐업하는 곳도 많아지는 현실에 어떤 작은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가치로 지목된다.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방송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즉 화제가 됐던 방송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빌런'이라고까지 불리는 문제 많은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개과천선과 식당의 부활이 하나의 반복되는 스토리텔링으로 담겨지면서 생겨난 불편함이다. 포방터 시장의 홍탁집 사장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방송 당시만 해도 왜 이런 가게를 굳이 방송이 내보내고 백종원이 솔루션까지 줘서 살려내려 하느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마음을 고쳐먹고 가게를 되살려낸 홍탁집 사장의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후기가 이런 논란을 잠재워버렸지만, 방송은 항상 그런 문제의 식당을 하나씩 끼워 넣어 논란을 야기해왔다. 그것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시청률이 바로 그런 논란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송은 일종의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큰 상황에서 수혜의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그 취지와 진정성만큼은 확실히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공을 위해 의도적인 가게 선정과 다소 자극적인 편집들은 자칫 이런 진정성을 흐릴 수 있다는 걸 제작진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전국에는 지금도 많은 식당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방송이 그들의 현실을 바꿔주겠다는 그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적어도 작은 희망이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2019-08-14 10:58:04

영화 '나랏말싸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 누가 천만 고지 달성할까

영화가에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경쟁이 시작됐다. 일찌감치 그 첫 발을 내딘 '나랏말싸미'부터 동시 출격한 '엑시트'와 '사자'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 '봉오동 전투'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전망은 어떨까. ◆역사왜곡으로 무너진 '나랏말싸미'지난 7월 24일 일찌감치 개봉해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포문을 연 '나랏말싸미'는 벌써 2주 가까이 지났지만 관객 수는 고작 90만 관객에 머물러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소재로 하고 있고, 흥행 보증수표라고 하는 송강호에 박해일 그리고 고 전미선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캐스팅해 기대감을 한층 높였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지면서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사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라는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행요소였다. 과거 드라마화 되었던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작품의 경우, 한글창제와 유포를 두고 세종대왕이 가상의 조직인 밀본 세력과의 대결을 마치 스릴러처럼 그려냄으로써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작품 역시 가상의 스토리가 더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역사적 팩트인 '세종대왕이 주도한 한글창제'를 지켜냄으로써 역사왜곡 논란에서 비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이토록 좋은 소재를 갖고 오고도 세종대왕이 아닌 신미라는 스님이 주도하는 한글창제를 다룸으로써 역사왜곡 논란에 빠져버렸다. 물론 그것은 왕과 스님이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함께 한글을 만들어가는 그 수평적 시선을 담아내려는 의도에 의해 생겨난 것일 수 있었다. 일파만파 커진 논란에 대해 조철현 감독은 "세종대왕 폄훼의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미 돌아선 대중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어찌 보면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일 수 있는 한글창제의 이야기는 오히려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상력을 허용하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역효과를 만들었다. 즉 지금 현재 일본이 자행하고 있는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야기하는 '역사왜곡'에 대한 정서가 이 영화의 사실왜곡에 얹어져 더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펄펄 나는 '엑시트'와 선전하는 '사자'지난 7월 31일 개봉한 영화 '엑시트'와 '사자'는 두 작품 모두 선전하고 있지만 그 흥행 속도에 있어서는 '엑시트'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엑시트'는 330만 관객을, '사자'는 1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엑시트'의 선전이 돋보이는 건, 재난과 코미디라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장르의 퓨전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재난 장르는 소재적으로만 보면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2006년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천만 관객을 넘었고, 2009년 개봉했던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도 또 좀비 장르지만 재난의 형태로 해석해냈던 연상호 감독의 2016년작 '부산행' 역시 모두 천만 관객을 넘었던 전적이 있다.'엑시트'는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탈출한다는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틀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를 코미디 장르로 섞어내고 있다. 그래서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코미디에 재난 상황이 만들어내는 긴박감 그리고 어김없이 들어가는 감동적인 인간애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감정적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영화가 됐다. 특히 용남(조정석)이라는 잉여 취급받는 청춘이 그 위기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과 인성은 영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사자'는 오컬트 장르와 슈퍼히어로물을 퓨전시킨 독특한 작품이다. '검은사제들'에서 봤던 구마의식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약한 구석을 파고들어 악령이 들게 만드는 검은 주교와 그들을 구해내려는 신부님 그리고 신의 부름을 받은 사자의 대결이 팽팽하게 그려지는 작품. 특이한 건 격투기 챔피언인 용후(박서준)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를 만나 마치 슈퍼히어로 같은 액션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조금 과한 설정들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들이 나오지만, 여름철 소름 돋게 만드는 공포와 시원스런 액션이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두 작품 모두 저마다의 관전 포인트를 분명히 갖고 있지만 '엑시트'의 흥행속도가 '사자'를 앞지르고 있는 건 지금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찌 보면 두 작품 모두 재난적 위기상황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 무게감은 상당히 다르게 다가온다. 즉 '엑시트'가 가진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다는 지점은 요즘처럼 웃을 일 없는 현실 속에서 훨씬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시기 잘 탄 '봉오동전투' 흥행은 어떨까원신연 감독의 '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일본군과 대항하던 독립군 최초의 승리를 담은 영화다. 지금의 한일 정세를 떠올려보면 제대로 시의적절한 소재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봉오동전투'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밀고 밀리는 전장에서의 전투와 전략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에 가깝다.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봉오동전투는 홍범도 장군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영화는 홍범도 장군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가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아닌 해철(유해진)과 장하(류준열) 그리고 병구(조우진)가 이끄는 독립군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해철과 발 빠른 장하 그리고 명사수 병구라는 캐릭터는 봉오동전투라는 역사의 기록을 그 생생한 현장으로 인도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들이 봉오동전투의 핵심전략이로 꼽히는 유인작전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재연해내려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실제로 원신연 감독은 이 사실 재연을 위한 장소 헌팅에 꽤 공을 들였다고 한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승리한 전투였기 때문에 그 특수한 지형 자체가 '봉오동전투'라는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일 수밖에 없었을 터다.전투 과정 자체가 주는 재미가 충분하지만, 지금의 한일관계가 촉발하고 있는 대중정서 역시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영화 속 해철의, "어제 농사 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는 대사는 그래서 그 울림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 이야기는 마치 지금 현재 일본이 우리를 화이트국가에서 배제한 일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과 맞물려 그 '독립'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당시의 독립이 나라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독립은 '경제독립' 같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전반적으로 무게감이 있고 역사적 사실의 재연에 충실한 '봉오동전투'는 그 전투 과정에 보다 집중하면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게다가 그런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의의 또한 충분하다. 다만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대중들이 얼마만큼 이런 의미에 동참하며 영화를 볼 것인가가 흥행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9-08-07 13:34:40

JTBC 캠핑클럽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캠핑클럽', 떠나고 싶다, 저들처럼

JTBC '효리네 민박'으로 호평 받았던 이효리가 '캠핑클럽'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민박이 아닌 캠핑이고 남편 이상순이 아닌 핑클 멤버들과 함께이다. 마침 휴가철을 맞아 저들처럼 떠나고 싶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캠핑클럽'. 무엇이 대중들을 매료시켰을까. ◆'효리네 민박'의 연장선, '캠핑클럽'14년 전 핑클의 팬이었던 분들이라면 아마도 JTBC '캠핑클럽'이 방영된다고 했을 때 반색했을 게다. 그만큼 긴 시간을 지나 다시 핑클 완전체가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울 수 있어서다. 하지만 '캠핑클럽'은 굳이 팬이 아니었다고 해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효리네 민박'을 통해 우리는 제주도에서 지냈던 이효리의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그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캠핑클럽'에 대한 기대감 역시 적지 않을 게다.하지만 우리는 핑클의 다른 멤버들, 이를 테면 옥주현이나 성유리 그리고 이진 같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활동해온 사실도 알고 있다. 옥주현은 뮤지컬계의 디바로 자리 잡았고, 성유리는 여러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또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남다른 토크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진 역시 드라마를 통해 연기를 선보인 바 있으며 '야간개장'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성유리와 함께 나와 남다른 예능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는 핑클 시절 그들의 팬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멤버들의 면면을 대중문화 곳곳에서 봐왔던 셈이다. 그러니 이들이 함께 뭉쳐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굳이 캠핑여행이라는 소재를 가져온 건 '효리네 민박'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워낙 반응이 뜨거워 제주도의 이효리네 집은 찾아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차기 예능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정착지에서 하는 건 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건 이효리의 라이프스타일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우리도 그런 삶으로 들어가 보고픈 욕망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캠핑클럽'은 그래서 정착 대신 '유목'을 선택했다. 낯선 캠핑지에서 보내는 이들의 여행은 아마도 휴가철을 맞은 여행객들의 욕망을 끌어냈을 것으로 보인다. 저들처럼 떠나고 싶다는 욕망. ◆여기가 우리나라 맞아? 국내의 숨은 비경을 보여주는 '캠핑클럽'이제 휴가철이면 북적대는 공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해외여행은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들도 국내 여행보다는 해외여행을 더 많이 소재로 삼는다. 이런 흐름을 생각해보면 '캠핑클럽'이 가져온 국내의 여행지들은 의외의 놀라움을 안긴다. '여기가 우리나라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풍광은 그래서 '캠핑클럽'에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되는 첫 번째 이유다.첫 번째로 찾아간 전북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캠핑장은 마치 '반지의 제왕'을 찍은 곳 같다고 핑클 멤버들이 감탄한 것처럼 아름다운 천년송을 품은 '용담 섬바위'가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그런 곳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모닥불가에 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떠는 광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또 새벽에 일어나 들려오는 새소리와 물소리에 귀를 씻고, 카누를 타고 강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풍류를 즐긴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두 번째로 찾아간 경주 '화랑의 언덕'은 마치 알프스에 온 듯한 넓은 잔디가 펼쳐진 곳으로 저 밑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그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경주 시내로 내려가 스쿠터를 타고 돌아보는 시내 구경이 상쾌하다. 또 롤러스케이트장에 가서 옛 시절을 떠올려보는 묘미도 적지 않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국내여행이 가진 의외의 재밋거리들이 그 안에서 펼쳐진다.티저를 통해 공개된 '캠핑클럽'의 촬영지를 보면 마치 해외의 여행지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전남 신안 증도의 우전해변은 마치 발리의 휴양지를 연상케 하고, 인천 소래습지공원은 작은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의 풍광을 떠올리게 한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두바이의 사막을 보는 듯하고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북유럽의 숲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런 공간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캠핑클럽'이 주는 편안함과 위로는 적지 않다. ◆그 아름다운 풍광 위에 그려지는 사람의 온기하지만 여행의 진수는 그 공간보다 함께 하는 이들에게서 나온다고 했던가. '캠핑클럽'의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핑클 완전체로 모인 이들이다. 아마도 14년 전만 해도 '요정'으로 불리며 다소 경쟁적인 삶을 살아왔을 이들은 어느새 나이가 들어 훨씬 원만하고 편안해진 모습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옥주현을 빼놓고 이효리나 성유리 그리고 이진은 모두 배우자들을 만나 결혼을 했다. 물론 결혼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런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건 그 사람의 변화를 자연스레 만들기 마련이다.이효리는 이미 '효리네 민박'에서 봤던 것처럼 솔직하고 내숭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핑클 시절에 센터 욕심을 냈던 것에 대해 이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그의 달라진 삶의 가치가 느껴진다. 한때 이진과의 불화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놓는 것으로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더 끈끈해지는 과정을 본다는 건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캠핑이라는 소재 자체가 만들어내는 이들의 자연스런 진면목이 주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캠핑카 안에 놓여진 변기를 스스로 수거해 버리고 닦아야 하는 수고를 이효리와 이진이 함께 하며 보여주는 웃음은 요정으로 불리던 핑클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효리는 '갱년기'나 '배란일' 같은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꺼내놓으며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의 거리를 좁혀나간다.무엇보다 좋은 건 이효리가 '효리네 민박'에서도 보여줬던 것처럼, '캠핑클럽'을 채우고 있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이들이 갖는 편안함이다. 그들은 아마도 젊었을 때 치열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애썼을 것이고 팀이기 때문에 때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요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들을 보기가 어렵다.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는 이효리가 다른 친구들이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캠핑카를 빠져나오는 장면에서는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물론 '효리네 민박'의 보통 사람들이 참여했던 부분이 '캠핑클럽'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나이 들어가고 삶이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다는 건 이 프로그램 주는 또 다른 가치가 아닐까 싶다. 어디 꼭 해외로 갈 필요가 있나. 국내라도 마음 맞는 오랜 친구들과 떠나 함께 하는 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여행이 될 거라는 걸 '캠핑클럽'은 보여주고 있다. 또 그런 곳에서라면 바쁘게 살아오며 놓쳤던 삶의 진면목을 다시금 돌아볼 수도 있을 것만 같다는 걸.

2019-07-31 10:58: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왕좌의 게임'이 뭐길래, 우리네 드라마에 미친 영향

미국드라마 HBO '왕좌의 게임'은 지난 5월 시즌8로 대미를 장식했다. 미국드라마지만 이 드라마가 우리네 드라마에도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도대체 '왕좌의 게임'의 무엇이 이런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 걸까. ◆에미상 최다 후보를 낸 '왕좌의 게임'의 저력2019년 에미상에서 HBO '왕좌의 게임'은 역대 최다 부문 후보로 지명되는 신기록을 만들었다. 지난 16일 CBS 방송에 따르면 '왕좌의 게임'은 에미상 후보작 리스트에서 베스트 드라마 시리즈 부문을 포함해 총 32개 부분에 등재됐다고 한다. 이 기록은 지난 1994년 ABC에서 방영됐던 '뉴욕경찰 24시(NYPD 블루)'가 세웠던 18개 부문을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마지막 시즌8까지 총 73편이 제작된 이 드라마는 전 세계 170여개국에서 방송되며 말 그대로 '글로벌한 인기'를 누렸다. 마지막 시즌은 미국에서만 한 편당 평균 4300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고, 제작비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마지막 시즌 한 편당 제작비는 무려 1천500만 달러(약179억 원)에 달했다. 올해도 에미상 후보작에 대거 리스트되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미 에미상에서만 총 4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올해의 결과가 더더욱 기대되는 대목이다.워낙 글로벌한 인기를 누린 작품이어서인지, '왕좌의 게임'은 미국드라마지만 우리네 대중들도 열광한 드라마였다. 마지막 시즌의 경우 그 엔딩을 두고 꽤 시끌시끌한 논쟁이 붙었을 정도였다. 2011년 4월 시즌1을 시작해 지난 2019년 5월19일 시즌8로 대장정을 마무리한 이 드라마가 이토록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왕좌의 게임'은 용이 날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류의 판타지 장르지만, 훨씬 더 현실성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결을 갖고 있다. 즉 뒤편으로 갈수록 판타지의 영상들은 점점 전면에 등장해 화려해지지만, 그 과정은 철왕좌(Iron throne)에 앉기 위한 칠왕국의 치열한 전쟁과 암투로 채워졌다. 그만큼 이 판타지의 세계가 마치 진짜 존재하는 것 같은 리얼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뒤로 갈수록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판타지들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산자들의 전쟁이 아니라, 산자와 죽은 자들의 전쟁으로 구도가 바뀐다. '얼음과 불의 노래'라는 원작에서 느낄 수 있듯이, 후반부 판타지는 얼음의 세계에서 되살아난 죽은 자들의 군대와 그들에게 불을 뿜어 녹여버리는 용을 위시한 산 자들의 군대가 맞붙는 이야기.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 적이 등장하자 왕좌를 두고 싸우던 산 자들이 그들과 대적하기 위해 뭉치게 되는 '왕좌의 게임'의 국면전환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그것은 일종의 냉소적인 허무주의가 주는 공평한 위로다. 즉 '누구나 죽는다'는 그 전제 하에 들끓는 욕망들이 누군가는 영웅을 만들고 누군가는 허무하게 죽어가지만 결국은 다 같은 운명이라는 위로를 준다는 것. ◆'왕좌의 게임'이 우리네 드라마에 미친 영향물론 그런 위로는 보기에 따라서는 논쟁적인 결말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애초에 추구하려 했던 그 거대한 세계관을 완성시킨 이 작품은 글로벌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 여파는 우리네 드라마에서도 발견된다. 가상의 판타지물이지만 그것이 과거의 어떤 연대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건 사극이었다. 2015년 방영됐던 김이영 작가의 '화정'은 광해군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선악구도를 나누기 보다는 왕좌를 향한 '욕망하는 인물들'을 세운 바 있다. 물론 김이영 작가가 '왕좌의 게임'의 영향으로 이 작품의 색깔을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그 영향은 있었다고 보인다. 김이영 작가의 최근작인 '해치'의 경우도 이러한 '욕망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하지만 무엇보다 '왕좌의 게임'이 자꾸만 거론되는 드라마는 tvN '아스달 연대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사극이 좀체 건드리지 않았던 상고시대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엮은 '아스달 연대기'는 그 의상에서부터 '왕좌의 게임'과 비교되었다. 물론 '아스달 연대기'의 이야기는 '왕좌의 게임'이 가진 북구신화적인 판타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스달 연대기'는 좀 더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왕좌의 게임'을 거론하게 만드는 건 그 글로벌한 야심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500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우리네 사극의 역사를 벗어나 상고시대가 갖는 전 세계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공간을 가져왔다는 점이 그렇다. 아마도 '왕좌의 게임' 같은 글로벌 드라마의 성공을 보면서, 우리네 드라마가 우물 안에만 있어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래서 그 완성도는 차치하고라도 그 시도만큼은 분명 이해되는 면이 있다.이렇게 드라마 자체가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는 경우 이외에도, 많은 사극 신들이 '왕좌의 게임'의 전투 신을 연상시키는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도깨비가 되는 김신(공유)이 적들과 싸우는 장면이다. 말을 타고 달려드는 적들 앞에 홀로 칼을 들고 마주서는 이 장면을 비교해 분석해놓은 한 네티즌의 글을 보면 그 유사성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또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호텔 델루나'에 등장하는 나무의 이미지도 어딘지 '왕좌의 게임'에 철왕좌와 대비되는 상징으로 나오는 나무가 떠오르는 건 '왕좌의 게임'이 가진 그림자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게다. ◆우리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여러모로 '왕좌의 게임'은 이제 드라마가 국가를 뛰어넘어 글로벌하게 소비되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국적성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경계를 넘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현지화'의 이름으로 우리네 드라마에 투자하면서 생겨난 변화이기도 하다. 결국 드라마는 제작비와 무관할 수 없다. 그 제작비가 글로벌 시장으로부터 들어온다면, 작품 또한 그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그렇다고 우리가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게다.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네 드라마가 그런 규모의 작품을 감당할 만큼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식 '왕좌의 게임' 같은 느낌을 주는 '아스달 연대기' 같은 야심찬 시도는 그래서 그만큼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이미 글로벌하게 열린 시장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로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개항되고 있는 시대에 쇄국을 외치는 역사적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그 속에서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에 글로벌한 보편성을 더하려는 노력을 계속 시도할 때만이 우리네 드라마의 생존이 보장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시련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게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말에 담긴 위기와 기회의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2019-07-24 11:29:38

MBC '검법남녀2'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검법남녀2', 시즌제 드라마의 정석을 보여주다

'검법남녀2'는 시즌제 드라마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시즌1의 성공을 이어서 더 강력한 몰입감으로 돌아온 '검법남녀2'. 우리네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은 이 드라마로 좀 더 분명해졌다. ◆MBC 드라마의 구원자가 된 '검법남녀'작년 5월부터 7월까지 방영됐던 MBC '검법남녀'는 사실 그다지 큰 기대감 없이 시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MBC는 최승호 사장 체제로 바뀌긴 했지만 이전 10년 간의 방송 파행으로 여전히 후유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부문은 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물러난 장근수 전 드라마 본부장은 정윤회씨의 아들 배우 정우식에게 특혜 출연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본인은 "정우식이 정윤회 아들인지 전혀 몰랐다"고 했지만 MBC 김민식 PD는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장근수 본부장은 때로는 제작사 대표를 통해서, 때로는 연출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특정 남자배우를 반드시 드라마에 출연시키라고 종용하셨습니다"라고 털어놔 저간의 MBC드라마의 파행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줬다. 실제로 제작사들과 작가들 그리고 배우들까지 나서서 MBC드라마를 보이콧했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이러니 최승호 사장 체제로 바뀌어 정상화를 시도한다고 해도 MBC드라마가 제 자리를 찾는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작년 '검법남녀'는 이런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MBC드라마의 가능성과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기여한 드라마가 되었다. 드라마에는 잘 출연하지 않던 정재영을 주인공으로 세운 건 사실상 캐스팅의 난항을 뚫기 위한 자구책에서 시작되었지만 '검법남녀'로서는 옳은 선택이 되었다. 정재영은 백범이라는 검시관 캐릭터를 200% 소화해내면서 '검시를 통한 증거' 이외에는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 이 인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게다가 법의학이라는 소재는 사체 검시라는 자극적인 코드를 끌어들이면서도 그 정당성으로서의 정의 구현을 더함으로서 자극과 메시지의 적절한 균형을 가능하게 했다. 최고시청률 9.6%를 낸 '검법남녀'는 한 동안 힘겨운 길을 걸을 것이라 예고됐던 MBC드라마를 단번에 끌어올려준 구원자가 되었다. 이로써 고개를 돌렸던 작가들과 배우들도 조금씩 MBC드라마의 가능성과 진정성을 다시금 보게 됐다. ◆시즌2로 돌아온 '검법남녀', 더 강력해졌다사실 미드 같은 경우, 법의학을 소재로 하는 장르물들은 넘쳐난다. 시즌12까지 나왔던 '본즈'나 무수한 시즌과 스핀오프를 만들어냈던 'CSI'가 대표적이다. 우리에게도 '싸인'이나 조선시대판 CSI라고 불리는 '별순검' 같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검법남녀'는 검시관과 검사의 조합인데다, 다양한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오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부부가 각자 다른 공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특이한 사건을 가져와 누가 먼저 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재산상속의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가 그렇고, 연속살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살인은 하나이고 나머지는 사체를 가져와 연속살인인 것처럼 꾸며낸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가 그렇다. '검법남녀2'는 시즌1에서도 그러했듯이 어떤 정황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그 예단과 예측이 틀렸다는 걸 백범 검시관이 증거로 증명해내는 과정을 그려낸다. 반전 요소들이 연속적으로 들어가 있어 시청자들은 계속 바뀌는 정황들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이러한 에피소드별로 구성된 시즌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캐릭터다. 각각의 사건들이 병렬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를 하나로 꿰는 캐릭터의 강력한 힘이 있어야 드라마가 일관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소설 쓰지 마"라는 대사를 입에 달고 다니는 백범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요즘처럼 증거 없는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주목하게 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도베르망 캐릭터를 가져온 도지한 검사(오만석)라는 끈질긴 인물이 더해지고, 성실하게 끝까지 밀고나가는 은솔(정유미) 검사가 가세하면서 캐릭터들은 매력적인 조합을 만들었다. 여기에 백범을 보필하는 장성주(고규필)나 은솔을 돕는 강동식(박준규) 수사계장 같은 긴장을 살살 풀어주는 유쾌한 캐릭터들까지 더해졌다. 이 정도면 시즌3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검법남녀2'가 담아내는 시대정서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검법남녀2'가 지금의 대중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시대정서다. 이번 시즌2에서는 특이하게도 검사와 검사, 의사와 의사의 대결구도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백범이라는 검시관과 대적하는 인물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닥터 K(노민우)라는 인물이고, 그를 사주하는 이들이 도지한과 은솔 검사의 수사를 방해하는 비리검사 노한신(안석환)과 갈대철(이도국)이라는 구도 때문이다.그래서 노한신과 갈대철은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닥터 K를 조종해 증인이 될 만한 이들을 제거해나간다. 하지만 닥터 K가 법의학은 물론이고 동물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의사라는 점은 검시로 증거를 찾아내는 백범을 미궁에 빠지게 만든다. 독사에 물려 죽은 것처럼 위장된 사체에서 다른 증거를 찾기 위해 검시에 집착하는 백범은 그것이 닥터 K가 그에게 보낸 일종의 도전이자 시험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이성을 잃어간다. 즉 사체 앞에서는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백범이 그 완벽주의에 흠집이 가기 시작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구도를 더 팽팽하게 만든다.게다가 이런 대결구도는 현재 대중들이 가진 정서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많은 수사 요소를 가진 장르물들은 그 적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미 tvN '비밀의 숲'에서 검찰 조직 내부의 비리가 얼마나 커다란 사회적 악을 만들어내는가를 들여다 본 바 있지만, 최근에도 OCN '보이스' 같은 드라마에서 수사를 하는 형사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건 역시 내부의 적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OCN '왓쳐' 같은 드라마는 그래서 비리 경찰들을 잡는 경찰 내부 비리조사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검법남녀2'는 비리 검사들과 진실을 두고 벌어지는 한 판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여기에 사체를 두고 벌어지는 법의학과 법의학의 대결이 주는 묘미도 빠질 수 없지만.최근 '검법남녀2'는 기자간담회에서 일찌감치 시즌3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사실 시즌제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배우가 계속 출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재영과 정유미 모두 시즌3 합류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화답하듯 노도철 PD도 시즌2 "마지막회에 시즌3의 도입부를 담을 것"이라고 해 '검법남녀'가 향후에도 시즌제를 계속 이어갈 거라는 의지를 드러냈다.이제 국내드라마들도 시즌제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tvN '아스달 연대기'가 그렇고 JTBC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렇다. '검법남녀'는 그런 점에서 보면 보다 일찍이 시즌제의 정석을 시도한 드라마로 남을 것 같다. 어쩌면 훗날 예고된 드라마 시즌제에 중요한 기점을 만든 드라마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2019-07-17 15:11:44

tvN '60일 지정생존자'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정치가 식상해? '보좌관', '지정생존자'의 정치는 다르다

사실 대중들에게 정치는 그리 호감을 가질만한 소재는 아니다. 현실 정치가 보여주는 실망감이 정치 소재 드라마 시청에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새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는 정치드라마들이 시도되고 있다. ◆'보좌관', 정치인의 뒤편을 들여다보면JTBC 금토드라마 '보좌관'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에 이런 부제가 붙은 건 그 관전 포인트가 정치인에만 맞춰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이 드라마는 정치인의 뒤에서 실질적인 일들을 하는 보좌관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서 주로 보게 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정치의 겉면'이라면, 이들 뒤에서 실제로 정책법안을 만들고 치열한 생존전쟁을 벌이며 때로는 위험한 거래와 암투를 벌이는 보좌관들의 면면은 '정치의 속내'라고 말할만하다.정치의 겉면이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대의명분의 세계라면, 정치의 속내는 그런 대의명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복마전에 가까운 권력 투쟁의 세계다. 주인공 장태준(이정재)은 송희섭 의원(김갑수)의 보좌관으로서 그가 걸어가는 길에 놓여진 걸림돌이나 더러운 것들을 치워주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송희섭 의원과 당내 원내대표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조갑영 의원(김홍파)의 약점을 찾아내 그것으로 정치적 거래를 시도하기도 한다. 법무부장관이 되려는 송희섭 의원을 보좌하는 대가로 그는 의원이 되는 것을 약속받지만,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냉혹한 이 세계에서 영원한 약속도 없고 영원한 동지나 지지자도 찾기 어렵다. 그것은 권력의 꼭대기에 서야 비로소 하고픈 정책도 펼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정치판이기 때문이다.물론 '보좌관'의 핵심적인 재미는 장태준 보좌관과 강선영 초선의원(신민아)가 비밀리에 연애를 하는 연인이면서도 이를 속이고 공조하며 서로가 원하는 목적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공적인 관계 속에서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적인 관계로 엮어진 이 두 사람은 그래서 아슬아슬한 정치판의 역학구도 속에서 서로를 도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간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알아채고 이를 이용하려는 오원식(정웅인) 보좌관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위기를 맞는다. 이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판세의 재미가 '보좌관'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이유지만, 그것이 결국 담는 건 정치 역학이 우리가 보던 겉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보좌관'은 이처럼 우리가 겉만 보고 판단했던 정치의 세계를 좀 더 내밀하게 다루며, 그 안에 다양한 인물들의 시각을 얹어 놓는다. 즉 장태준이나 강선영처럼 정치의 최전선에서 뛰며 살벌한 현실 정치의 복마전에 뛰어든 인물의 시선이 있는 한편, 이제 갓 이 세계에 발을 디뎌 여전히 정의를 꿈꾸는 순수한 인턴 한도경(김동준) 같은 인물의 시선도 있다. 또 그 중간 즈음에 걸쳐 현실정치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이상을 놓지 않는 윤혜원(이엘리야) 같은 비서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정치의 뒤편을 다양한 인물의 시선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보좌관'이 그리는 정치의 세계는 훨씬 다이내믹하다. 막연한 이상과 합리화된 현실 사이의 끝없는 이합집산.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런 과정의 연속이라는 걸 '보좌관'은 보여준다. 막연히 정치 이야기하면 식상하게 느끼며 심지어 무관심해왔다면 이 역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60일, 지정생존자', 미드를 가져왔지만 우리식으로 해석된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어느 날 갑자기 국회의사당에 폭탄테러가 벌어지면서 대통령을 위시한 국가의 리더들이 모두 사망하게 되고 마침 그 날 그 자리에 가지 않았던 환경부장관 박무진(지진희)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60일 간 국정을 운영하게 되는 이야기다. 미국 ABC에서 방영됐던 인기드라마 '지정생존자'가 원작이지만 여러모로 이 드라마는 우리식의 재해석과 현지화가 고려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먼저 제목 차이에서부터 드러난다. 미국과 우리의 헌법차이 때문에 '60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추가된 것. 미국의 경우는 승계해서 그 국정의 빈자리를 채우고 재선을 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우리의 경우는 60일이라는 권한대행의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어떤 지도자의 면면을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물론 시간제한은 그만한 긴박감 또한 추가되기 마련이다.또한 첫 회에 등장한 한미 FTA 협상 테이블의 에피소드 또한 우리식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자신들이 가져온 엉터리 환경평가서를 근거로 디젤차량을 수입하게 만들려 하자 환경부 장관인 박무진은 그것이 수치적으로 잘못됐다는 걸 지적한다. 협상이 결렬되고 대통령에게 불려간 박무진은 그 환경평가사를 그냥 받아들이자는 대통령의 제안에 거부의사를 밝히고 결국 해임될 위기에 처한다. 또한 폭탄 테러가 벌어진 그 날, 대통령 비서실장인 한주승(허준호)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던 상황 역시 우리식의 설정이 들어간 부분이다. 결국 해임 위기에 처해 국회의사당에 가지 않아 생존하게 된 박무진은 한미 FTA 같은 통상압력이나, 남북 관계 같은 대외적 상황들 그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내 정치 상황 속에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60일, 지정생존자'의 관전 포인트는 박무진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환경평가서를 두고 자신은 과학자라며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말하는 박무진은 순수와 이상을 가진 정치인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정치와는 사뭇 괴리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이 살벌한 현실 정치 속에서 어떤 자신만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가 이 드라마의 주요한 재미의 지점이 되는 것. 결국 저 '보좌관'이 여러 인물들이 가진 이상과 현실들을 그 역학적인 관계 구도 안에서 풀어내며 만들어져 가는 정치를 보여준다면, '60일, 지정생존자'는 이상을 가진 정치인이 그걸 지키거나 때론 포기해가며 조금씩 현실 정치에 구현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정치가 식상하다고? 그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다흔히들 정치는 식상하다고 느낀다. 심지어 국회의사당 안에서 드잡이를 하며 실력행사를 하는 장면이 뉴스의 한 장면을 장식해도 이제 대중들은 시큰둥해한다. 그만큼 익숙한 풍경이고, 저들이 늘 하는 일이 저런 일이라고 우리는 치부한다. 그러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점점 커져간다.하지만 그러한 식상함은 어쩌면 생물 같은 정치를 마치 죽은 것처럼 토막 내 어떤 단면만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무관심을 조장해온 결과일 수 있다. 너무 이상적이거나 혹은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모두 정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보좌관'이나 '60일, 지정생존자'가 다루려는 좌절된 이상과 과잉된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타협점을 찾아가는 정치의 이야기는 어쩌면 죽어서 무덤덤해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건 다름 아닌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라는 걸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이제 2020년 총선까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2019-07-03 13:11:23

SBS '녹두꽃'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지금 드라마들...개화기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중요해진 건

최근 대중문화 콘텐츠들은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개화기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작년 방영됐던 '미스터 션샤인'이 그렇고 지금 방영되고 있는 '녹두꽃' 같은 작품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이 다루는 개화기는 과거와 뭐가 달라졌을까. ◆'녹두꽃'에 담긴 개화기의 풍경최근 방영되고 있는 SBS 드라마 '녹두꽃'은 지금껏 사극이 좀체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이 벌어진 1894년은 갑오개혁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일제의 강압에 의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지금껏 우리는 '갑오경장'이라 낮춰 불러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시점이 우리네 역사에 있어서 근대로 넘어오는 기점이 됐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녹두꽃'은 그래서 근대의 시작점으로서 민중의 의식이 깨어나 봉기의 형태로 등장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사건과 동시에, 일제에 의해 벌어졌지만 근대적 변화를 일으켰던 갑오개혁이라는 사건을 배다른 형제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한때는 '거시기'로 불리며 민초들을 괴롭히며 살다 전봉준(최무성)을 만나 동학군의 별동대장으로 거듭나는 백이강(조정석)이 전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그의 배다른 동생으로 일본 유학을 하며 문명의 힘을 실감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신분제 사회의 높은 장벽을 느끼고 '개화'라는 명목으로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백이현(윤시윤)이 후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여기서 개화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백이현이라는 캐릭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드라마에서 그는 신분제 사회가 갖는 전근대적인 조선의 시스템에 절망한다. 양반이라는 이름으로 군림하고 농민들의 피고름을 짜내 제 배를 채우며, 양반이 아니면 세상에 나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부딪친다. 물론 그가 말하는 문명을 이 드라마는 더 극악한 '야만'이라 말하고 있다. 문명화를 이야기하며 사실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는 일제가 그렇고, 거기에 자신을 파괴하듯 동조하는 백이현이 그렇다. 전봉준이나 송자인(한예리) 그리고 백이강은 그런 '문명의 야만'의 드러내는 백이현을 꾸짖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항상 근대가 열리는 과정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의도적으로 도외시하다 보니 생겨난 '패배의식'을 '녹두꽃'은 이런 민중의식의 태동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신분제의 폐단을 깨기 위해 개화는 필요했지만 그것이 일제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우리 스스로의 주체적인 근대화를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 드라마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민중의식의 태동을 통해 그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가 막연히 개화기 하면 떠올리는 망해가는 조선과 일제의 침탈의 풍경 속에 우리 스스로 깨어나고 있던 민중의식이 있었다는 걸 담아내는 것이다. ◆개화기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드라마들개화기는 사실 드라마에서 다루기 까다로운 시기로 여겨져 온 바 있다. 예를 들어 2007년 방영됐던 KBS '경성스캔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상황 속에서의 혁명과 멜로를 다룬 드라마로 호평과 함께 만만찮은 반발도 일으켰던 작품이다. 사실 당시만 해도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는 일제와 구한말 조선의 대결구도가 반드시 다뤄져야 하는 어떤 시대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 등장한 "네가 나한테 혁명이 뭔지 가르쳐 줘. 그럼 내가 너한테 사랑이 뭔지 가르쳐줄게." 같은 대사는 사실 당시에는 파격이었다. 혁명과 사랑이 같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이 드라마는 일제와 대결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되 그들 역시 박제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있는 한 사람들이었다는 걸 그려낸다. 그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무게에 짓눌려 좀체 보여주지 못했던 당시 근대화가 변화시켜놓은 실제 대중들의 일상을 이 드라마는 외면하지 않는다. '모던걸'과 '댄스보이'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살아나고 그들의 혁명이 사랑과 병치되었다.이런 일제강점기의 이미지에 묶인 개화기의 풍경을 다양한 일상의 이야기들로 풀어내려 하는 시도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물론 전형적인 일제와 독립운동의 대결구도를 그린 KBS '각시탈' 같은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지만, 2017년 '시카고 타자기'나 2018년 '미스터 션샤인'이 그리는 개화기 풍경은 암울했던 시대상과 더불어 개화가 가져온 낭만 또한 피어나는 시기로 재탄생했다. 판타지를 가진 타자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생과 후생이 엮어지는 '시카고 타자기'는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며 당대의 치열했던 청춘들의 저항과 사랑을 담아냈다. '미스터 션샤인'은 개화기 일제의 침탈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의병의 이야기를 그 시기에 탄생한 철도, 호텔, 거리, 빵집 등등의 풍경들 속에서 어우러졌던 남녀들의 이야기로 그려냈다. ◆콘텐츠 개화기, 우리에게 개화기 재조명이 중요한 이유'시카고 타자기'나 '미스터 션샤인' 그리고 '녹두꽃'으로 이어지는 개화기의 재조명은 지금처럼 글로벌 콘텐츠의 시대가 일종의 '콘텐츠 개화기'를 요구하는 상황에 더더욱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콘텐츠 시대를 이끄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이제 콘텐츠들은 국적과 언어의 경계가 무색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콘텐츠들이 시시각각 이편으로 유입되어 들어오고, 우리의 콘텐츠 또한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 보며 열광한다.최근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가 시작과 함께 HBO '왕좌의 게임'과의 유사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우리가 접하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간 물리적 장벽으로 나뉘어 있던 콘텐츠와 문화들은 이제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장벽 없는 교류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눈높이는 이미 글로벌 감수성에 닿아 있다. 19세기 말 개화기가 극한에 이른 신분사회의 끝에서 민중의식이 깨어나면서 동시에 제국주의의 물리적 침탈에 의해 자행되었다면, 지금의 콘텐츠 개화기는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무혈혁명'으로 이뤄지고 있다.과연 이 콘텐츠 개화기에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지켜내면서 동시에 글로벌한 보편적 감성과 어우러지게 할 것인가. 우리의 문화가 갖는 고유성과 글로벌 문화가 갖는 보편성을 어떻게 균형 맞출 것인가. 지금 우리가 던지게 되는 이 질문은 사실상 19세기 말 개화기에도 이미 던져졌어야 하는 질문들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근대화의 새로운 물결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것이 당시에도 필요했다는 것이다.그래서 그간 미진했던 개화기라는 시기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이제 점점 많아지고, 당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과 재조명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된다. 그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반성하고 극복해내는가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콘텐츠 개화기에 어떤 열쇠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9-06-26 13:19:55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유튜브까지 진출한 백종원, 방송영역도 프랜차이즈처럼

백종원은 이제 유튜브까지 진출했다. 단 3일 만에 구독자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유튜버로서 자리를 잡은 것.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유튜브를 진출한 백종원에 대해 항간에는 '골목상권 침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과연 이를 어떻게 봐야할까. ◆백종원의 유튜브 진출, 이미 보장된 성공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 11일 유튜브에 '백종원의 요리비책'이라는 채널을 열었다. 이 채널에서는 '백종원의 대용량 레시피', '백종원의 장사이야기', '백종원 레시피' 같은 코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다양한 요리 관련 아이템들을 소화해냈지만, 이 채널의 방향성은 그것들과는 또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것은 타깃층이 주로 음식점을 오픈할 계획을 갖고 있는 예비창업주나 혹은 오픈은 했어도 경험이 일천해 요식업에 대한 노하우 자체가 일천한 사업주들이라는 점이다.'백종원의 대용량 레시피'는 그래서 방송적으로만 봐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스케일을 보여준다. 100인분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솥을 사용하고 재료도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한다. 즉 과거 tvN에서 했던 '집밥 백선생'이 가정에서 누구나 쉽게 집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알려줬다면, '백종원의 대용량 레시피'는 장사를 위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 레시피 차이는 확연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제육볶음을 가정식으로 할 때는 고기와 양념 그리고 야채를 순차적으로 넣는 방식으로 레시피가 구성되지만, 장사를 위한 제육볶음은 일단 고기만 양념으로 볶아낸 걸 대용량으로 준비해두고, 손님이 왔을 때마다 1인분씩 양념된 고기를 꺼내고 거기에 야채를 볶아 내놓는 방식으로 레시피가 구성된다.'백종원의 장사이야기'는 실제 요식업을 하는 사업주들의 고민을 컨설팅해주는 동영상으로 우리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많이 봐왔던 솔루션 제공을 강의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백종원 레시피'는 사업자가 아닌 보통의 가정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주는 방송으로 이 채널에 사업자들만이 아닌 보통 사람들도 유입되게 해주는 동영상이다. 구성만으로 보면 이미 보장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백종원이 그간 여러 방송을 통해 쌓아온 신뢰와 방송 이미지에 실제적인 노하우 공개라는 특화된 정보가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방송 채널은 사흘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넘어섰고 6월18일 현재 160만 명을 돌파했다. 유튜브에서는 구독자 수에 따라 실버(10만), 골드(100만), 다이아몬드(1천만) 플레이 버튼을 주는데 백종원은 단박에 골드 버튼을 얻은 것. ◆이것은 과연 골목상권(?) 침해일까항간에는 백종원의 이런 유튜브 진출이 일종의 '골목상권' 침해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일반 개인들이 유튜브를 개설하고 몇 년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그런 성과를 이미 갖고 있는 유명세를 가져와 단박에 얻어간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다. 또 이런 진출은 마치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골목상권을 없애는 것처럼 유튜브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과연 이건 사실일까.물론 유명인의 진출이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을 그 채널로 빨아들임으로써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채널이 소외되는 현상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유튜브 사용자들의 특성상 유명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집중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유명인의 채널을 구독한다고 해서 다른 채널을 구독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결국 채널 구독의 문제는 유명인이냐 아니냐 또는 그런 경쟁적인 채널들이 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채널 자체가 가진 콘텐츠 경쟁력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또한 이런 지적들이 나오게 된 건 실제 물리적인 공간에 있는 골목상권과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 올려져 있는 유튜브가 전혀 다른 공간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걸 무시한데서 나온 성급한 판단이기도 하다. 유튜브는 백종원 같은 유명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다른 채널이 가려지거나 볼 기회 자체를 잃는 그런 공간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이라야 한쪽에서 채널 헤게모니를 가져가면 다른 채널이 못 보는 것이지만, 유튜브는 말 그대로 선택적 시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또 어떤 면으로 보면 비슷한 종류의 동영상 콘텐츠들이 몰려 있는 건 경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너지를 만드는 게 유튜브 같은 공간의 특성이다. 유튜브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라면, 한 방송을 보고 있을 때 사이드 바로 관련 영상들이 제시되는 걸 잘 알고 있다. 즉 백종원 같이 음식 관련 유명인이 채널을 개설하면 동종 채널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아 유입효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많은 연예인들이 최근 다양한 분야의 유튜브 방송을 개설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종원의 프렌차이즈를 닮은 방송 영역 확장그런데 왜 이런 미디어의 차이가 분명하고 다른 유명인들의 유튜브 방송이 많아진 요즘, 유독 백종원의 유튜브 방송에 대해 '골목상권 침해'라는 비판이 나오게 된 걸까. 그것은 그가 더본코리아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부정적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백종원은 지금껏 방송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골목상권'과 배치되는 프랜차이즈 사업주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그런 비판적 요소들을 그는 방송을 통해 어떤 신뢰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요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어디서든 섭외 1순위로 꼽히는 방송가의 블루칩이 되었다. 현재 그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tvN '고교급식왕'에 출연하고 있고 tvN '강식당' 같은 프로그램에서 필요할 때마다 등장하는 요리 사부님으로 활약하고 있다.그런데 돌이켜보면 백종원이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거친 다양한 방송 영역의 확장이 그가 해왔던 프랜차이즈 사업의 영역확장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는 점이 새삼 스럽다. 즉 그는 처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요리연구가라기보다는 재밌게 요리하며 소통하는 '방송인으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인기를 통해 tvN '집밥 백선생'으로 그만의 노하우를 담은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며 '선생'이 되었고, SBS '백종원의 3대천왕', '백종원의 푸드트럭'을 거쳐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요식업을 하는 이들의 '선생님'으로 불리게 되었다. 방송 영역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집밥 백선생'의 쿡방에서, '백종원의 3대천왕',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등의 먹방으로 영역을 넓혔고 그러면서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요식업 관련 솔루션방송으로 확장되었고 이제는 유튜브를 통한 글로벌 콘텐츠로까지 나아가게 됐다.물론 추정이지만 아마도 이러한 음식을 두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송영역의 확장은 그의 프랜차이즈 경험에서 나오는 건 아닐까. 그는 전문가의 방송출연이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방송능력과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정확히 알고 한 단계씩 영역을 넓혀왔다. 프랜차이즈 사업가로서 마치 음식점의 성패 역시 맛도 있어야 하지만 대외적인 이미지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2019-06-19 09: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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