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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하이바이 마마’,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

우리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가능한가.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가족보다는 개인이 우선되는 시대, 가족드라마는 어딘지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tvN '하이바이 마마'를 보면 가족드라마는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다.◆공포보다는 연민의 존재로 그려진 고스트 엄마보통 귀신은 산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의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의 고스트 엄마 차유리(김태희)는 무섭기는커녕 시청자들을 빵 터트리게 만드는 우스운 캐릭터면서 동시에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연민의 캐릭터다. 그는 딸 서우(서우진)를 임신한 채 사고로 사망한다. 그래서 한번 안아보지도 못한 채 귀신이 되어 가족 주변을 맴돈다. 그것도 무려 5년 간이나. 그러니 그 긴 시간동안 가까이서 쳐다보기만 할 뿐 말도 건네지 못하고 안아보지도 못하는 이 고스트 엄마의 절절한 마음에 연민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그런데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이 고스트 엄마의 환생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시도한다. 늘 옆에 붙어 다니다 보니 딸이 귀신을 보기 시작한 것. 그렇게 귀신을 보다가는 무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차유리는 절망하며 신에게 대든다. 그리고 그것으로 차유리는 49일간 환생해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강화(이규형)의 아내이자 서우의 엄마인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면 다시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주어진 채.'하이바이 마마'는 이처럼 환생이라는 사실상 비현실적인 설정을 차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적 설정은 그것이 보여주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점에서 허용된다. 살아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나 친구나 그들과의 자잘한 일상들이 죽었다 살아난 자의 시선으로 보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도 49일 후 돌아가야 한다는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더더욱.◆망자의 시선으로 본 가족…유족들을 위한 위로이 가상의 설정을 통해 '하이바이 마마'는 산 자와 망자가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차유리는 귀신이 되어서 오열하는 가족을 통해, 삶 자체가 망가져 웃음을 잃어버린 남편을 통해, 또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일을 챙기는 절친을 통해 그들이 살았을 때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 때문에 불행 속에서 허우적대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를 기원한다.강화와 결혼해 서우의 새 엄마가 된 오민정(고보결)을 바라보는 차유리의 시선도 그래서 질투보다는 고마움이다. 웃지 않게 된 강화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차유리는 오민정이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조금씩 웃음을 찾게 해주는 걸 보며 기뻐한다. 또 자신의 딸 서우를 위해 일도 포기하고 힘겨운 육아를 하며 친딸처럼 서우를 보듬어준 오민정을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그래서 다시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곳이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환생한 차유리가 오민정과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등장하는 엄마들처럼 다투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차유리와 오민정은 마치 자매처럼 친해진다.한편 차유리가 귀신이었을 때 이웃처럼 지냈던 다른 귀신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소개된다. 그 귀신들은 자신을 잊지 못하고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과,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매일 같이 1인 시위를 하는 가족을 옆에서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손에 닿진 않지만 그들을 꼭 껴안아준다. 이처럼 '하이바이 마마'는 망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더더욱 절절해지는 가족의 소중함을 담는다. 그러면서 망자들이 곁에서 산 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을 떠나보낸 산 자들을 위로한다.◆새로운 가족드라마의 가능성'하이바이 마마'는 귀신의 환생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져왔지만, 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조금씩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가족드라마는 일일드라마를 빼고는 주중에 찾아보는 건 어렵게 됐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KBS 주말드라마도 시청률은 나오지만 예전만큼의 호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이렇게 된 건 우리네 실제 가족의 양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가 늘 그려내는 대가족 형태는 이제 우리의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1인 가구가 전체의 4분의 1을 넘긴 지 오래고, 가족들도 대부분 핵가족 형태인 게 지금의 현실이다. 게다가 비혼은 유행처럼 늘고 있고, 출산율도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가족의 화목함을 지상과제처럼 다루는 가족드라마의 틀에 박힌 이야기가 공감가기는 어려울 게다.하지만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서 가족의 가치도 점점 하락하고 있다고 보는 건 편견이다.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더더욱 그리워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이바이 마마'는 이러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욕망을 담아내는 대안적인 가족드라마처럼 보인다. 달라진 삶의 방식 때문에 흩어지게 된 개인들이 가족에 대해 갖게 된 더더욱 큰 그리움은,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극적인 상황 속에서 분리된 차유리와 그 가족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가족드라마'하이바이 마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흔한 가족 간의 사사로운 갈등이나 대립도, 뚜렷한 악역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드라마의 그 흔한 이야기 틀이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런 지점은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우리가 가족드라마를 시대착오적이라 느끼게 되는 건 늘 등장하는 고부갈등, 출생의 비밀,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식상한 설정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바라보는 가족이란 그런 자잘한 갈등보다는 살았을 때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흔히 계모라고 부르면 느껴지는 부정적인 편견조차 깨버린다. 계모는 모두 나쁜 엄마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오민정이 술에 취해 투덜대자, 차유리는 다음날 어린이집에 있는 백설공주, 콩쥐팥쥐,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동화책들을 꺼내와 이런 애들의 상상력을 가두는 책들은 치워버려야 한다고 말한다.이처럼 환생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을 가져왔지만 그래서 가족드라마의 클리셰들을 벗어나는 대목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가족드라마도 그 형태를 바꿔 상투적인 틀을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시대에도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제 아무리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 되어도 가족은 늘 우리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을 테니.

2020-04-02 14:30:00

'슬기로운 의사생활' 현장사진. tvN 제공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슬기로운 의사생활'…신원호표 뭔가 다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성공시켰던 신원호 PD가 이번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돌아왔다. 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절친 의사 5인방의 이야기. 기존 의학드라마와는 어떤 지점들이 다를까.◆왜 '슬기로운'일까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신원호 PD의 전작이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감방과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확연히 다르고, 거기 들어오는 죄수들과 환자들 역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이렇게 차별화된 지점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는 '슬기로운' 이라는 수식어와 특정 공간을 가져왔다는 점이다.'슬기로운 감빵생활'이 특이했던 건 감옥을 다루면서도 그 흔한 탈옥이야기가 아니라, 감옥 내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잘 살아가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고로 잘나가던 주인공 제혁(박해수)은 그래서 하루아침에 감방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하지만, 슬기롭게 대처해나간다. 하지만 그의 목표점은 다시 화려한 선수로의 복귀 같은 큰 성공이 아니다. 평범 이하로 떨어진 삶을 그저 평범하게 되돌리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간다.'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물론 배경이 병원이기 때문에 감방 같은 혹독한 추락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도 저마다 어느 정도 성공한 의사들이다. 하지만 안정원(유연석) 같은 병원을 물려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이를 포기하고 대신 절친 5인방과 소외된 환자들을 돌보는 행복한 일상을 선택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제혁과 닮은 점이 있다. 제혁이 밑바닥에서 평범을 향해 가려 했다면 안정원은 정상에 오를 수도 있지만 이를 선택하지 않고 평범을 향해 간다.그런데 왜 이들은 평범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슬기로운' 생활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추구하는 성공이 아닌 행복지향의 삶은 아득바득 정상에서 버텨내는 삶도, 그렇다고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삶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평범한 행복들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슬기로운' 생활의 지혜라는 것.◆목표 지향적 아닌 일상적 스토리들대부분의 드라마들이 하나의 목표를 세워두고 달려가는 '목표 지향적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목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성공지향이 아닌 행복지향의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어서다. 물론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에피소드들이 빠지지 않는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이자, 우리네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중요해지는 건 인물들이다. 일상적 스토리가 파편화되지 않고 묶여질 수 있는 건 결국 인물일 수밖에 없어서다. 안정원을 중심으로 이익준(조정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로 구성된 5인방은 그래서 저마다 개성과 매력이 뚜렷한 인물들이다.안정원이 환자를 위한 배려가 넘치는 키다리 아저씨 의사라면, 이익준은 어딘지 엉뚱한 면들이 많으면서도 못하는 게 없는 천재적인 의사다. 김준완이 환자에게도 동료의사에게도 깐깐하면서도 그와는 상반되게 5인방에 대한 따뜻함을 드러내는 의사라면, 양석형은 은둔형 외톨이에 마마보이지만 별난 매력을 가진 의사다. 그리고 5인방의 홍일점인 채송화는 병원 내에서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후배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의사로 5인방의 애정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드라마는 매회 5인방 중 한 명씩 인물들을 중심에 세워 소개하고 그와 어우러지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다양한 환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병원 내에서의 권력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한 회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드라마의 목표지향점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인물들의 성장스토리가 그 부분을 메워준다.◆'응답하라'를 닮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5인방의 인물을 중심에 세워두고 급하게 목표를 향해 몰아치는 이야기가 아닌 자잘한 일상사와 그로 인해 성장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마치 '프렌즈' 같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물론 5인방의 이야기가 과거 청춘 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그 관계들을 설명하는 과정들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닮아있고 또 채송화를 둘러싼 남성들의 보일 듯 말 듯한 멜로가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어주지만, 그것이 '응답하라'의 남편 찾기 같은 양상으로까지 갈 지는 의문이다.그것보다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그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인물들의 매력만으로도 자꾸만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프렌즈' 같은 오래도록 지속된 시즌제 드라마가 마치 시청자들과 어떤 유대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닮았다. 시청자들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그 인물들이 마치 이웃 같고 친구 같아서 계속 보고 싶어진다.게다가 이러한 일상과 인물을 축적해 담아내는 이야기는 그것이 훨씬 우리네 삶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이란 굉장한 목표를 향한 질주보다는 자잘한 일상들의 누적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신원호 월드는 '응답하라'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거쳐 그 드라마틱한 삶이 매번 슬기로운 선택을 한 생활에 담겨있다는 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만약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보다 긴 호흡의 시즌제 드라마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2020-03-26 13:28:27

조선시대 역병이 창궐해 나라가 혼란에 빠진다는 내용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은 현 국내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겹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19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

코로나19는 대중문화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객들이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극장 대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는 급증했다. 그런가 하면 시국 때문에 몇몇 드라마, 영화들은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코로나19가 예능가에 미친 영향들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관객과 호흡할 수밖에 없는 오디션형 프로그램들이다. KBS '씨름의 희열'은 씨름의 중흥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거의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시점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결승전을 쓸쓸한 무관중으로 치러야 했다. 결승전 참여를 원하는 관객들이 수천 명이나 몰린 상황이었던지라, 무관중 결정은 더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TV조선 '미스터트롯'도 마찬가지였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청률 35%(닐슨 코리아)를 넘어서며 트로트 열풍을 이끈 이 프로그램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무관중 결승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관중으로 찍은 결승전에 시청자들의 유일한 참여 창구가 된 문자 투표로 투표가 폭증하면서 결승전 당일 우승자 발표를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 결국 이틀 후에 임영웅이 최종 우승자로 발표됐지만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는 못했다. 이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물론 이런 악조건을 역발상으로 넘으려는 시도도 등장했다. tvN '코미디 빅리그'는 관객 대신 개그맨들을 투입함으로써 그 리액션까지 또 다른 코미디의 한 부분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MBC '놀면 뭐하니?'는 코로나19로 인해 연이은 취소 사태를 겪고 있는 공연계에 '방구석 콘서트'를 제안함으로써 대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방송을 통해서나마 공연계와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었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겨울방학(?)의 휴지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스튜디오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찍어온 영상을 보며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프로그램 특상 상 야외로 나가 대민접촉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그게 어려워진 탓이었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는 대구 지역의 의사, 간호사들과 화상통화를 통해 현지의 상황과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큰 화제가 되었다.코로나19는 이처럼 예능가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하나의 캠페인으로 이뤄지고 있는 요즘, 예능프로그램들은 적당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도 그럴수록 더더욱 요구되는 소통의 물꼬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코로나19가 새삼 관심을 촉발시킨 콘텐츠들코로나19는 감염병 관련 콘텐츠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사람들이 모이는 극장 출입이 현저히 줄어든 대신 집에서 OTT를 이용한 콘텐츠 소비는 급증했다. 이 시점에 넷플릭스가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즌2를 공개한 건 의도된 건 아니지만 확실히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이미 시즌1으로 '조선시대 좀비'라는 색다른 세계를 통해 전 세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킹덤'은 시즌2에서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동래에서부터 퍼져나간 역병이라는 설정은 작금의 대구, 경북에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진 상황과 맞물려 이 드라마에 실감을 더해줬다. 역병이 발병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좀비들의 확산세와 이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민초들 그리고 이를 심지어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의 이야기는 현재 코로나19가 그려내는 현실적 풍경과도 겹쳐지는 면이 있어서다. 여러모로 '킹덤'은 팬데믹 상황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콘텐츠가 되었다.한편 최근 호평 속에 시즌2를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현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환자들을 위해 대구로 달려간 의사, 간호사들에 쏟아지는 찬사와 맞물려 새삼 그 가치를 드러낸 드라마가 되었다. 심지어 '의인'으로 불리는 대구로 간 의사들에 '낭만닥터'라는 지칭이 생길 정도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환자를 위해 현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의사들에게 보내는 대중들의 존경의 표시가 그 지칭 속에는 담겨있다.코로나19로 극장가는 관객 수가 급감하며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관객이 줄어든 데다, 배급사들도 영화 개봉을 연기하면서 해외의 경우 심지어 극장이 폐쇄되고 영화제 또한 연기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을 다룬 영화들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치사율 100%의 변종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다룬 재난영화 '감기', 2011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전'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코로나 19는 봄이 왔어도 여전히 겨울 같은 우리네 일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상과 밀접한 대중문화도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어려움 속에서도 대중문화는 나름의 해법들을 찾아내고 있다. 물론 궁극적 해결은 이 시국이 완전히 지나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버텨낸다면 우리의 일상에도 또 대중문화에도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을까.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0-03-19 13:26:08

tvN 월화드라마 '방법' 현장포토.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방법', 혐오사회에 던지는 일침

악령이나 초현실적 상황들이 등장하는 오컬트 장르는 주로 신부들이 등장하는 서구의 콘텐츠라는 선입견은 언젠가부터 깨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한국형 오컬트 장르'가 등장하면서다. 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그 하나의 사례다.◆한국형 오컬트와 '방법'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한국형 오컬트의 연원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테면 악령은 아니지만 귀신 들린 인물들이 등장하던 KBS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나, 무속신앙을 소재로 한 '여곡성' 같은 공포영화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오컬트적 요소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현실적 상황과 악령이 등장하는 본격적인 한국형 오컬트가 주목받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검은사제들'이 구마의식 같은 것을 전면에 다루는 서구적 오컬트 장르를 한국적으로 시도한 것이었다면, '곡성' 같은 영화는 무속신앙을 더해주면서 한국형 오컬트의 신기원을 열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곡성'은 "충격적이고 무시무시하며 기절할 정도로 놀랍다(버라이어티지)", "미친 듯한 오컬트 넌센스의 156분(인디 와이어)" 같은 외신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 영화 전문사이트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할 정도였다.한국형 오컬트의 가능성은 드라마에서도 똑같이 이어졌다. 2018년 방영되어 큰 화제를 낳았던 OCN '손 더 게스트'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각종 범죄들을 귀신들린 빙의로 해석하면서 이 드라마는 범죄물과 오컬트 장르를 묶어냈다. 형사와 영매, 사제가 힘을 모아 박일도라는 악령과 맞서는 이야기가 그려졌다.tvN 월화드라마 '방법'은 그 계보를 잇는 한국형 오컬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사진과 물건 그리고 한자이름을 알면 그 사람을 일그러뜨려 죽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저주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부산행', '염력'의 영화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작가 데뷔작이다.좀비, 초능력 같은 소재를 다룬 서구의 장르들을 한국적으로 해석해 내는데 탁월한 연상호 작가는 '방법'에서는 저주를 내리는 무속을 가져와 색다른 스릴러의 세계를 열었다. 진종현(성동일)이라는 악귀 들린 인물에 맞서 백소진(정지소)이라는 방법사와 임진희(엄지원) 기자, 정성준(정문성) 형사가 맞서 싸우는 이야기. 일종의 슈퍼히어로물처럼 초능력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무속신앙을 소재로 하고 있어 살을 날리고 역살을 날리는 이색적인 관전 포인트를 만들어낸다.◆'방법'에 담긴 혐오사회에 대한 은유사실 오컬트 장르도 그렇지만 이런 소재를 가져온 '방법'도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다. 일단 이 장르를 즐기려면 여기 등장하는 일종의 '게임의 룰'들을 이해해야 한다. 백소진이 가진 방법의 능력은, 그가 방법하려는 대상의 물건, 사진, 한자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의 룰이 있기 때문에 스릴러로서의 긴박감이 만들어진다.예를 들어 진종현을 방법하기 위해 그가 쓰던 라이터 하나를 빼내는 과정은 이런 룰이 전제되기 때문에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방법'의 룰은 그것만이 아니다. 직접 대상에 손을 대서 방법하는 법도 있고, 방법을 할 때(살을 날릴 때) 이를 막아 오히려 역살을 날리는 법도 있다. 또 이런 방법이라는 저주를 원천적으로 막는 '귀불(귀신들린 불상)'이라는 장치(?)도 등장한다. 그러니 드라마가 쉬울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은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이 꾸준히 올라 6%(닐슨 코리아)를 넘어섰다. 도대체 무엇이 이 결코 쉽지 않은 드라마에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게 만든 걸까.그것은 한국형 오컬트 스릴러라는 낯선 시도 속에 연상호 작가가 우리 사회에 대한 은유를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방법(저주)'을 '혐오사회'의 디스토피아로 해석해내고 있다.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악인 진종현은 포레스트라는 SNS 회사의 회장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포레스트가 단기간에 급성장해 상장을 앞두게 된 건 '저주의 숲'이라는 서비스를 통해서다. '저주의 숲'은 평소 탐탁지 않았던 사람을 사진과 저주의 사연을 더해 올려놓고 동의를 받는 서비스. 그런데 저주에 대한 동의는 불특정다수의 인물들에게도 동시적으로 방법할 수 있는 길이 된다. 결국 진종현 회장은 자신 속의 악령을 포레스트로 옮겨 거기 저주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방법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오컬트 스릴러는 여기서 사회를 풍자하고 은유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SNS상에서 늘 벌어지는 혐오의 징후들이 실제로 누군가를 안타까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민낯이 아닌가. '방법'은 오컬트의 저주를 SNS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이렇게 연결시킴으로써 단순한 표피적 장르의 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낸다. 바로 이 부분은 '방법'이라는 드라마가 결코 쉽지 않은 많은 룰들을 제시하면서도, 막상 들여다보면 쉽게 몰입이 가능한 이유다. 낯선 초현실적인 세계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를 은유하고 있어서다.그렇다면 과연 이 누군가를 저주하고 혐오하는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뒤틀어진 채 처참하게 저주받아 죽은 사체들. 그건 아마도 혐오사회가 야기하는 끔찍한 결과를 형상화한 것일 게다. 그런 결과가 벌어지기 전에 스스로 하는 작은 말이나 글, 행동들이 누군가에 대한 저주나 혐오는 아니었는지를 되돌아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0-03-12 13:57:25

MBC '놀면뭐하니'에 출연 중인 유재석의 부캐릭터(부캐).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유재석의 부캐 도전과 업글인간

유재석은 최근 꽤 많은 다른 닉네임들을 얻었다.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 그리고 유르페우스가 그 새 캐릭터 이름들이다. 과거 유느님 하나로 불렸던 유재석은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로 '분화'되고 있을까. 최근 등장한 '업글인간'에 해답이 있다.◆하프 연주까지 도전한 유재석 '캐릭터의 무한확장'최근 유재석은 MBC '놀면 뭐하니?'에서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프를 연주했다. 사실 하프 연주는 유재석도 시청자들도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던 면이 있다. 3주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을 연습해 하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게 상식적인 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석은 수석 하피스트 윤혜순의 지도편달을 받으며 하프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를 통째로 외워 연주했다. 물론 이것으로 유재석이 하프를 온전히 연주하게 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게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을 통해 하프라는 악기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또 함께 협연하는 오케스트라와 클래식에 더 친숙하게 다가갔다는 점이다. 유재석은 일회적인 도전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를 본 시청자들은 굳이 하프가 아니라도 클래식 악기가 취미로서도 도전해볼만 하다 느꼈을 법하다.'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지금껏 걸어온 과정들은 다양한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캐릭터를 얻는 시간이었다. 드럼 비트에 도전해 그 위에 여러 연주자들과 작곡, 작사가들의 노력이 얹어져 만들어진 음악으로 드럼 독주회를 함으로써 유고스타라는 캐릭터를 얻었고, 트로트에 도전해 '유산슬'을, 라면 분식집을 통해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캐릭터를 얻었으며 하프 연주로 유르페우스라는 닉네임까지 갖게 됐다. 그 과정은 마치 '무한도전' 시절의 여러 영역에 도전했던 유재석을 떠올리게 하지만, '놀면 뭐하니?'는 이 과정을 1인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하는 도전 과정처럼 그려냄으로써 달라진 트렌드를 반영했다.그런데 달라진 건 이러한 형식적 변화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생겨난 퇴근 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 또한 '놀면 뭐하니?'는 반영한 면이 있다. 지금껏 회사에 매여 있어 하지 못했던 자신의 취미나 또 다른 영역에의 도전이 최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들어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유재석의 다양한 새로운 캐릭터 도전은 일 이외에 색다른 걸 시도하길 원하는 현재의 욕망들을 건드리고 있다는 얘기다.◆'업글인간'이 자기계발과 다른 점은?최근 들어 퇴근 후 운동이나 악기 배우기 나아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하는 독서 토론이나 영화 감상 같은 걸 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주 52시간 제도의 정착도 정착이지만, 퇴근 후 술을 마시는 것만이 유일한 놀이처럼 여겨졌던 사고방식의 변화도 이렇게 퇴근 후 바빠진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을 뜻하는 이른바 '업글인간'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물론 이처럼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자기계발' 열풍이 그것이다. 하지만 업글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계발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자기계발은 해당 직무에 도움이 되는 영역(이를테면 어학 같은)을 배우려 하는 것이지만, 업글인간은 직무와는 상관없는 자신의 삶을 위한 노력에 가깝다. 일보다는 여가나 취미에 더 집중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를 통해 일에서의 성취를 도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그 도전 영역도 거창하지 않고 일상적이다. 이를테면 하루 몇 장의 책을 읽는다거나 일주일에 두 번은 요가 같은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도 이들의 도전 영역이다. 이렇게 된 건 일에만 집중하던 삶에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뀐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이 중요한 만큼 나머지 일 바깥의 삶 또한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 거창하고 막연한 성공보다는 손에 잡히는 일상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도 '업글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어른거린다.유재석의 다양한 캐릭터 확장은 이러한 '업글인간'들에게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다. 계속 해서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게 만들고,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의외로 적응해가다보면 놀라운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유재석의 도전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프 도전이라는 놀라운 결과는 사실상 유희열이 농담처럼 던진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 하프도전을 한 유재석에게 유희열이 이번에는 레슬링 그레꼬로만형과 오케스트라 지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커진다. 그런 작은 말 한 마디가 실제로 벌어지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건 황당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정통한 인물들 역시 처음 그 길을 들어서는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은 다른 의미로도 들린다. 그저 부어라 마셔라 하며 놀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럴 시간에 색다른 분야에 뛰어들어보면 어떠냐고. 유재석의 행보에 업글인간들의 눈이 집중되는 이유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0-03-05 13:57:59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웹툰 원작 '이태원 클라쓰' 인기 비결은

창업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요식업 창업 이야기는 최근 들어 대중들의 관심 콘텐츠 중 하나다. JTBC '이태원 클라쓰'도 큰 범주에서 보면 청춘들의 창업기를 다룬 드라마다. 하지만 안을 잘 들여다보면 청춘들의 기성사회에 대한 도전의식이 들어있다.◆'이태원 클라쓰'의 요식업 창업 판타지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인기 있는 건 백종원이라는 '장사의 신'이 허덕이는 골목식당을 찾아가 솔루션을 제공해 실제 상권을 살려내는 마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중장년까지도 관심이 부쩍 높아진 '창업'의 소재를 갖고 있어서다.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역시 그 소재를 요식업 창업에서 가져왔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박새로이(박서준)가 이태원에 단밤 포차를 열고 성공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물론 그것은 자신과 아버지를 몰락시킨 장대희 회장(유재명)에 대한 복수지만, 그 복수의 방식이 창업을 통한 성공이라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성격을 확실히 보여준다.장대희 회장과 그 망나니 아들 장근원(안보현) 때문에 아버지가 뺑소니로 죽고 자신은 감방까지 가게 된 박새로이. 그는 감방에서 장대희 회장이 포차로 시작해 굴지의 회사로 장가를 일궈낸 자서전을 외우다시피 읽으며 창업을 준비한다. 그리고 감방에서 나온 후 7년 간 원양어선을 타 창업자금을 마련한 후 드디어 단밤을 오픈한다.하지만 의욕과 패기만 넘쳤지 현실성은 제로인 그에게 마치 백종원 같은 능력자가 등장한다. 소시오패스로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못하는 게 없는 데다 원하는 목표는 어떻게든 이뤄내는 조이서(김다미)가 단밤의 매니저로 들어온 것. 조이서는 순식간에 백종원처럼 마법을 부려 파리 날리던 단밤을 줄서서 기다리는 포차로 바꿔놓는다.SNS 시대에 걸맞게 사진이 예쁘게 나올만한 조명에 개성 가득한 인테리어로 재무장하고, 그저 그랬던 음식 맛도 업그레이드시킨다. 여기에 SNS 인플루언서인 조이서의 홍보 마케팅까지 더해지니 매출은 급신장된다. 하지만 박새로이의 단밤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하면서 장가의 방해공작은 본격화된다. 단밤이 세든 건물을 통째로 사버리고 세을 올리는 갑질의 시작. 복수극을 겉면에 세우고 있지만 이면에 놓인 요식업 창업의 어려운 지점들을 이 드라마는 잘도 버무려 판타지로 그려낸다.◆독특한 청춘 캐릭터들의 기성사회에 대한 도전하지만 '이태원 클라쓰'가 단순한 창업기 소재의 복수극이라는 건 아니다. 만일 그것만이었다면 단 5회 만에 10%를 훌쩍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을 게다. '이태원 클라쓰'가 이런 인기를 끌게 된 진짜 이유는 독특한 청춘 캐릭터들에 있다.먼저 주인공인 박새로이는 우리가 최근 봐왔던 그 어떤 청춘 캐릭터와는 상당히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소신과 패기'가 무기인 이 청춘 캐릭터는 목표를 향해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며 어떤 고난이 닥쳐도 버텨내고 이겨내는 인물이다.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전직 조폭 최승권(류경수)이 박새로이를 따라 단밤 포차에서 일하게 된 사연에 담겨있다. 박새로이를 감방에서 처음 만난 최승권은 "전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던 자신과는 달랐던 박새로이의 '시간'을 언급한다. 출감해 최승권이 조폭생활로 살았던 그 시간들과, 자신이 세운 목표대로 차근차근 걸어온 박새로이의 시간이 달랐다는 것. 이것은 단지 현실의 조건들 때문에 겪는 어려움에 안주하기보다는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면서 성장하고 성공하는 새로운 청춘상이다.이 청춘상은 권위주의적인 기성사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신과 패기'가 이득이 없다면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라는 장회장의 이야기에 박새로이라는 청춘은 정면으로 대결한다. 따라서 박새로이는 단지 성공하는 것만으로 목표로 삼지 않는다. 장회장이 했던 방식과는 다른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이루는 성공.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자 복수가 된다. 복수극과 겹쳐놓은 정당한 방법으로의 성공과정. 그것은 부정한 방법을 통해 성공한 자들에 대한 진정한 일침으로 다가온다.사실 청춘드라마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로맨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청춘드라마는 무거운 현실의 그림자들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KBS '쌈마이웨이' 같은 청춘물이 대표적이다. 스펙사회의 장대를 뛰어넘지 못한 청춘들이 이른바 '쌈마이'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이웨이'를 가야 한다고 외쳤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도 청춘드라마로서의 사랑이 빠지지 않지만 그 사랑이야기 역시 소신과 현실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담고 있다.어려운 취업현실 속에서 관심이 급증한 창업을 소재로 하고, 거기에 그런 현실을 만든 기성사회에 대해 청춘들의 목소리로 대결하는 이야기. 이러니 '이태원 클라쓰'가 주는 판타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답답한 현실 속에 잠깐이나 속 시원한 청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적지 않다.

2020-02-27 14:30:00

KBS '개는 훌륭하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개는 훌륭하다'…TV 동물 소재 프로그램의 진화

동물소재 프로그램은 늘 시청자들에게 인기있는 스테디셀러 콘텐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물소재 프로그램이 새로운 진화를 하고 있다. 반려동물 가족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스테디셀러, 동물 소재 프로그램사실 동물 소재 프로그램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스테디셀러로 인기있는 콘텐츠다. '동물의 왕국',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 형식의 동물 프로그램들은 지금도 방영되고 있을 정도. 동물 프로그램에서 확실한 이정표를 남긴 프로그램은 "우- 아-" 하는 시그널로 시작하던 "짝짓기를 합니다"로 유명했던 KBS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다. 1984년부터 시작해서 2004년에 종영한 이 장수프로그램이 흥미로웠던 건 그냥 동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 감정이입해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재미를 위해 넣은 작은 변화였지만 이 내레이션은 동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저 관찰하던 데서 동물에 감정이입하게 함으로써 동물과 시청자 사이를 밀착시켜줬기 때문이다.SBS 'TV 동물농장'은 바로 이 감정이입을 통해 등장하는 동물의 입장을 공감하는 관점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떠나버린 주인을 그 자리에서 계속 지키며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나, 죽은 어미를 대신해 어미 역할을 해주는 고양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에둘러 반추하게 만들었다. 반려동물은 이제 그냥 키우고 사육하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는 가족 같은 존재로 비춰졌다. 이것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달라진 관점을 반영했다. 한 때 '애완견'이라 불렸던 것이 이제는 '반려견'으로 바뀌었다는 건 단적인 사례다. 그저 보고 즐기기 위해 기리는 동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동물의 의미가 거기에는 담겨있다.하지만 최근 들어 1, 2인 가구가 급증하고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반려동물가족 인구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른바 반려동물가족 1천만 시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반려동물 콘텐츠들은 막연히 시청하게 되는 '저들의 이야기'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함께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반려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KBS '개는 훌륭하다'는 바로 이 변화된 시대에 맞게 진화한 동물소재 프로그램의 단적인 사례다.◆'반려동물계의 백종원'으로 등장한 강형욱이른바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은 반려동물가족 인구가 급증하면서 조금씩 그 존재감을 알려왔던 동물조련사이자 전문치료사다. 그는 2007년 '황금어장' 출연을 시작으로 2015년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KBS '개는 훌륭하다'로 '반려동물계의 백종원'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런 수식어를 얻게 된 건 '개는 훌륭하다'에 등장하는 반려동물가족의 갖가지 문제들을 마치 '골목식당'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백종원처럼 강형욱이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아마도 '개는 훌륭하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솔루션은 역대급으로 사나웠고 통제 자체가 되지 않던 진돗개 세 마리를 본인이 직접 그 서열 싸움에 뛰어들어 고분고분하게 만들어냈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사실상 진돗개들이 그 집안에 주인보다 높은 서열을 갖고 있다는 걸 간파한 강형욱은 마치 자신이 반려견 자체가 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가장 높은 서열을 자신이 가져왔고 그렇게 다른 개들도 하나하나 굴복시킨 후 그 서열을 그 집 주인에게 넘겨주는 놀라운 조련의 마법을 보여줬다.강형욱의 솔루션이 독특한 건 늘 그러하듯이 반려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렇게 생긴 문제의 원인이 사실은 견주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강형욱의 솔루션은 반려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견주의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실제로 놀랍게도 견주가 지금껏 해왔던 어떤 행동들을 변화시키자 반려견들 또한 변화한다는 걸 보여준다.◆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잘못된 관점그 솔루션들 중에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되지만 반려견들의 관점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마치 '식구'처럼 키웠지만 그래서 더 예민해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습관이 들어버린 반려견의 사례나, 파양된 유기견들을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둘 데려다 키우다보니 정작 오래도록 함께 지냈던 반려견이 그렇게 온 강아지를 집중 공격했던 사례가 그렇다. 즉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 애정이 많아 반려견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나눠주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주는 행동은 그럴 수 있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반려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습관은 그 개의 수명을 심각하게 단축시킬 수 있는 행위였다. 또 파양된 유기견들을 여러 마리 데려오는 건 견주가 가진 따뜻한 마음 때문이지만, 그것이 정작 본래 집에 있던 개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고 그래서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것도 인간의 관점과 반려견의 관점이 그만큼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개는 훌륭하다'는 그래서 단순히 인간의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의인화'만으로는 더 이상 한 집에서 공존해야 하는 '반려의 삶'이 어려워진 시대를 보여준다. 그저 한 걸음 떨어져서 봤을 때는 그 '의인화'가 어떤 휴머니즘의 스토리를 만들어주었지만, 이제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은 그것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도모해야 하는 존재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결국 우리의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즉 동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인간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물소재 프로그램들이 일방적인 관찰이나 단순한 의인화가 아닌 진정한 소통을 통한 '공존'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제 저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히 어떤 행동을 우리 식으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소통 부재'가 만드는 문제들을 야기한다. 강형욱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개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다만 그 개와 함께 하는 우리들이 부족할 뿐이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0-02-20 14:30:00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 현장사진. 사진 속 인물은 김사부(한석규 분). SBS 제공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돌아온 김사부, 그 낭만적 일침에 빠져들다

형만한 아우 없다? 적어도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같다. 시즌2가 시즌1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3년여 만에 시즌2로 돌아온 '낭만닥터 김사부'. 도대체 무엇이 이 드라마에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시작부터 빵 터진 인기 비결지난 2016년 11월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1에 대한 반응이 터진 건 5회부터였다. 첫 회 9.5%(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1% 내외씩 오르다 5회에서 16.5%로 뛰어올랐고 그 후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며 최고 시청률 27.6%로 종영했다. 이 시청률이 말해주는 건 이 드라마가 초반 적응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즌2는 어땠을까.2020년 1월 시작한 시즌2는 첫 회부터 14.9%를 찍었고 2회는 18%로 치솟았다. 이 시청률은 시즌1의 기대감을 그대로 시즌2가 이어받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낭만닥터 김사부2'는 시작부터 시즌1의 상황 설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낯설음보다는 익숙함을 먼저 강조했다. 돌담병원의 김사부(한석규)라는 존재가 드라마의 기둥을 든든히 잡아주고 그와 대척점으로 도윤완(최진호)이 거대병원 이사장으로 오면서 대결구도를 만들어내며, 여기에 새로운 신진 의사들로 서우진(안효섭)과 차은재(이성경)가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가진 채 돌담병원으로 밀려 내려온다. 시즌1에서 강동주(유연석)와 윤서정(서현진)이 돌담병원으로 내려오게 됐던 것처럼.이런 익숙한 설정을 먼저 보여준 후 '낭만닥터 김사부2'는 그 위에 색다른 이야기 소재들을 더해 넣는다. 이를테면 돌담병원 여운영 원장(김홍파)이 물러나고 대신 그 자리에 박민국(김주헌)이 도윤완의 명으로 원장 자리에 올라 김사부를 몰아내려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그렇다. 또 서우진과 차은재가 가진 트라우마를 넘는 과정도 새롭다. 어려서 부모가 동반자살을 시도한 아픈 트라우마를 가진 서우진이 응급실에 실려온 동반자살 가족의 시술을 거부하자 김사부가 이를 설득하는 과정이나, 수술실 트라우마를 겪는 차은재에게 김사부가 플라시보를 줘 이를 극복하게 하는 과정이 그렇다. 물론 소소한 소재들은 달라졌지만 이야기 구조는 시즌1과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익숙함이 시즌2가 단박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가 되었다. 시청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보다는 여전한 재미를 원했다. 그런데 그 여전한 재미란 도대체 뭐였을까.◆의학드라마? 부조리에 일침 날리는 사회극'낭만닥터 김사부'는 알다시피 의학드라마다. 돌담병원이라는 소외된 지역의 외상치료를 주로 하는 병원이 그 배경이다. 그래서 갖가지 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들을 긴박하게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의사들의 모습과 환자들 저마다의 사연이 드라마의 전편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실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김사부라는 거의 무협지에 나올 법한 의술이 신의 경지에 오른 외과의가 있어 긴박하긴 해도 그리 긴장감을 주지는 않는다.그것보다는 그가 그런 의술을 베푸는 걸 못마땅해 하는 거대병원 이사장과의 갈등과 대결이 긴장감을 만든다. 거대병원의 부속병원인 돌담병원이 김사부에 의해 그렇게 환자들을 치료해내는 일을 거대병원 도윤완 이사장은 탐탁찮게 여긴다. 그것을 드라마에서는 도윤완의 개인적 복수심처럼 그리고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최근 김사부의 모델로도 유명해졌던 이국종 센터장에게 벌어졌던 사태가 보여줬듯이 외상센터를 운용하는 것이 수지타산에는 맞지 않는 장사(?)라 여기는 세태가 여기에는 들어가 있다.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병원에는 손해가 가는 외상센터의 현실. 김사부는 그래도 환자를 치료하는 게 소임이라 여기는 것이고, 도윤완은 병원 경영의 입장에서 손실만을 만드는 김사부를 밀어내려 하는 것이다.이 지점에서 의학드라마는 사회극으로 얼굴을 바꾼다. 의사라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의 본분을 다하려는 김사부를 밀어내기 위해 거대병원은 갖가지 모략과 거짓 선전 그리고 부당한 처분을 내놓는다. 이러한 사회의 세태를 드라마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전한다. '왜곡의 시대. 정당한 신념조차 색깔 프레임에 가두고 보편적 가치조차 이해타산에 맞춰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상한 세상. 권력을 권리라 착각하고 이권을 정의라 주장하는 사람들.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뒤로한 채 상대를 뭉개버려야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으니….' 의학드라마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김사부의 일침에 담긴 낭만 판타지의 힘도윤완으로 대변되는 거대병원과 김사부로 대변되는 돌담병원의 대결. 이건 병원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하나의 사업체로서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다루는 인술이 펼쳐지는 곳으로서의 얼굴이다. 의사도 그 두 얼굴의 어느 쪽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병원을 경영하는 이들이나, 그 편에 선 의사는 수익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병원이 살아야 환자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서서 아픈 환자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의사는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본연의 소명에 초점이 맞춰진다.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생각의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곳이 병원이고, 이것이 현재 우리가 아프면 믿고 찾아갈 수밖에 없는 병원의 현실이기도 하다.하지만 이건 병원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네 사회의 많은 직업군들이 본연의 소임과 실제 현실 간의 괴리를 겪는다. 예를 들어 교사들을 보라. 학생들을 진정한 배움으로 이끄는 것이 그 소임이지만 당장의 입시 교육 속에서 그 치열한 경쟁에서 아이들이 이기게 하기 위해 전면에서 뛰는 것이 현 교사들의 현실이다. 좋은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는 일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고, 그건 또한 교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자본화된 현실이 교사라는 본연의 직업이 가진 소임과 부딪치는 지점이다.그래서 김사부라는 캐릭터는 다분히 판타지적인 면을 드러낸다. 현실에서 그런 선택을 하면 '낭만적'이라며 현실을 모르는 이라 비판받기 일쑤일 게다. 이 드라마 속에서도 김사부의 반대편에 선 자들은 그의 선택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비경제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마도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낭만닥터 김사부2'가 보여주는 다소 낭만적인 판타지는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그런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2020-01-31 06:30:00

'씨름의 희열' 현장사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씨름·농구…스포츠 예능의 화려한 변신

최근 씨름,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때 '스포츠 예능은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기피되기도 했던 스포츠 예능.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명절스포츠 씨름의 변신…'씨름의 희열'씨름은 명절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만큼 씨름이라는 종목이 그간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그나마 민속스포츠라는 점 때문에 명절에 하는 경기가 방송에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씨름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만 가지 기술을 가졌다는 이만기 같은 스타가 있었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모래판의 야생마 강호동같은 캐릭터가 확실한 선수진들이 있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 때는 씨름방송도 펄펄 날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니까.그랬던 씨름이 명절에나 가끔 방송되는 스포츠가 된 건 이만기,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나면서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들이 발굴되지 않았던 면도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늘 똑같은 씨름 중계방송의 구태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천하장사 만만세'로 트레이드 마크된 씨름 중계방송은 너무 민속의 분위기를 유지하느라 세련되지 못한 스포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씨름은 점점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씨름에 대한 관심은 의외의 지점에서 생겨났다. SNS와 달라진 팬덤이 그것이다. 씨름 선수들을 마치 아이돌처럼 바라보고 좋아하는 팬덤들이 SNS를 통해 생겨났던 것.KBS '씨름의 희열'은 바로 이 지점에 착안해 기획되었다. 과거 이만기 시절의 씨름 스타들이 주로 중량급에 있었다면 지금의 팬덤은 잘생긴 외모에 조각 몸매를 가진 경량급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감안해 태백장사, 금강장사 각각 8명씩을 선출해 모래판 위에 세웠다. 체중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슷하게 맞춘 후 서로 대결을 벌여 최종 승자를 뽑는 것. 이 모래판을 비추는 연출 방식도 오디션 방식을 취했다. 출연자가 그냥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토리를 엮어주고 불렀을 때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씨름 선수들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더해졌다.경량급 경기의 특징인 순식간에 끝나는 경기를 포착하기 위해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러자 씨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들은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하고 반색했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팬덤이 더 공고해졌다. 금강 트로이카 이승호, 모래판의 헤라클래스 윤필재, 열정 독기를 보여주는 최정만, 씨름 천재 임태혁 등. 캐릭터가 살아나니 경기도 더 쫀쫀해졌다. 방송이 지금의 세련됨을 더해주면서 씨름이라는 종목의 이미지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더 이상 명절스포츠라는 말이 필요 없게 만든 씨름의 대변신이었다.◆'슬램덩크' 시절을 꿈꾸는 '핸섬 타이거즈'"손은 거들 뿐."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큰 화제가 됐을 때 거의 유행어처럼 돌던 그 말이 최근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이하 핸섬타이거즈)'에 등장했다. 감독으로 출연하는 서장훈이 팀원인 차은우에게 슛 동작을 가르쳐주며 그렇게 말했던 것. '핸섬타이거즈'는 그 앞에 굳이 '진짜 농구'라고 이름붙인 것처럼 적당한 예능 스포츠 그 이상을 추구한다. 그것은 이 팀이 향후 대전을 선출을 제외한 전국 1·2위, 대학 1·2위, 직장 1·2위와 벌이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보통 이런 스포츠 예능이 처음 시작할 때는 오프닝을 하기 마련이지만, '핸섬타이거즈'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시합을 보여준다. 어느 체육관에 모인 출연자들은 그래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 놀라고 갑자기 서장훈의 모교였던 중등농구 최강자 휘문중학교 선수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시작부터 휘문중학교 선수들이 던지는 3점 슛이 계속 들어가며 현저한 실력 차가 드러나지만 의외로 승부근성을 발휘하며 조금씩 따라붙는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강점이 소개된다.체력과 근성이 좋은 줄리엔 강은 골밑 센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모델 문수인은 현역 선수를 방불케 하는 골 결정력을 보여준다. 이상윤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며 전략을 짜고 키 작은 쇼리는 빠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든다. 든든한 골밑 슛을 보여주는 김승현과 승부욕과 순발력을 드러내는 차은우 등 핸섬타이거즈 선수들의 캐릭터가 경기 자체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지고 동시에 원 포인트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예측하는 서장훈의 감독으로서의 면모도 소개된다.첫 시범경기를 끝내고 이뤄지는 훈련은 강도 높게 이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진짜 경기를 준비하는 팀의 모습 그대로다. '핸섬타이거즈'는 그래서 과거 '슬램덩크' 시절 허재와 서장훈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던 그 명장면들을 그려내고 싶어한다. 진짜 농구의 묘미를 스포츠 중계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담아내겠다는 것이다.◆달라진 시청자의 눈, 스포츠 중계도 변신해야스포츠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항상 뜨거운 소재였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축제가 열릴 때면 예능 프로그램들도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적인 스포츠 예능을 빼고 나면 사실 이 소재가 그리 성공적인 적은 그다지 없었다. 야구를 소재로 했던 KBS '천하무적 야구단'도 그랬고 다양한 스포츠에 뛰어들었던 '우리동네 예체능'도 그랬다. 그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는 스포츠 자체가 스포츠 예능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씨름이나 농구처럼 점점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관심을 잃어가는 종목의 경우 그 종목을 재조명해주는 스포츠예능은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봅슬레이나 조정 경기 같은 비인기종목을 조명했을 때 대중적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나아가 '씨름의 희열'이나 '핸섬타이거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우리네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너무 고전적인 틀에 묶여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너무 예능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게 선수들을 캐릭터화해 보여주고 경기도 여러 카메라를 통해 찍혀진 다양한 영상들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분석해주는 것으로 더 몰입을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프로스포츠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여겨진다. 시청자들의 달라진 관전 포인트를 만족시켜주는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면 방송으로서도 스포츠로서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명절이나 특정 스포츠 축제에 잠깐 반짝하는 방송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0-01-24 06:30:00

드라마 '스토브리그'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스토브리그', 야구를 몰라도 빠져드는 야구드라마라니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라는 다소 전문적일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야구를 몰라도 빠져든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무엇이 이런 반응들을 가능하게 만든 걸까.◆야구를 몰라도 열광하는 야구드라마의 탄생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그 첫 번째는 이 작품이 프로야구 프런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라는 소재 자체도 마니아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적당하게 다뤘다가는 전문가 뺨치는 시청자들에게 질타를 받을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전문적으로 다루면 야구를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낯설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구선수들의 이야기도 아닌 프런트들의 이야기라니 더더욱 난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면서도 그 낯설음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내야 하는 미션을 이 드라마는 소재적으로 안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우려는 드라마 첫 회가 방영된 후 금세 깨져버렸다. 첫 회 시청률이 5.5%(닐슨 코리아)로 시청자들이 막연히 느끼는 그 장벽이 나타났다면 4회 만에 11.4%로 치솟은 수치는 이 드라마가 그 장벽을 간단히 무너뜨렸다는 걸 방증한다. 이게 가능했던 건 드림즈라는 만년 꼴찌 프로야구단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뒤에서 팀을 운영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프런트들의 일상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회사생활처럼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야구 소재를 하고는 있지만 마치 '미생' 같은 오피스물처럼 다가왔다.물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촘촘한 취재가 아니면 좀체 다룰 수 없는 프로야구의 뒷얘기들이 소재였다. 선수 트레이드 문제나 스카우트 비리 문제, 용병 기용 문제는 물론이고 연봉협상까지 마니아들도 공감하고 몰입할만한 전문적인 소재들을 가져왔던 것. 하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오피스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계파들 간의 갈등이나 상명하복 구조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시스템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야구를 몰라도 어떤 조직이든 발생하는 그런 시스템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야구라는 소재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15.5%까지 올랐다. 애초 우려와 달리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이야기다.◆백승수라는 시스템 개혁 판타지의 등장이러한 보편적 공감대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역할은 백승수(남궁민)라는 캐릭터가 있어 가능했다. 만년 꼴찌 드림즈에 새롭게 부임한 백승수 단장은 씨름팀 같은 다른 분야에서 여러 번 우승을 한 전적이 있었지만 야구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야구를 모르는 입장에서 드림즈에 들어와 꼴찌 탈출을 위해 일련의 선택들을 하는 백승수는 시청자들에게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이 된다. 그는 야구는 몰라도 결국 스포츠팀이라는 게 어떤 동일한 시스템이며 따라서 만년 꼴찌라는 건 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한다.그 첫 번째는 드림즈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임동규(조한선) 선수가 실질적으로 팀 기여도가 낮은 데다 사실상 드림즈를 자신을 위한 팀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승수는 임동규는 물론이고 코치진과 운영진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을 설득해 임동규를 트레이드시킨다. 그를 내보내고 대신 드림즈에서 나가 바이킹스 최고의 투수로 자리한 강두기를 데려온 것.두 번째 시스템의 문제는 스카웃 비리였다. 고세혁(이준혁) 스카웃 팀장이 돈을 받고 스카웃을 해온 일을 백승수와 운영팀이 찾아내 그를 해고시킨 것. 세 번째는 용병 기용문제였다. 예산이 부족해 계약하려던 용병선수를 놓친 백승수는 대신 메이저리거였지만 군 복무를 기피하고 귀화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길창주(이용우)를 과감히 기용한다. 또 연봉협상에 있어서도 무려 30%나 예산을 삭감한 권경민 상무(오정세)에 맞서 백승수는 최단기간에 협상을 마무리해낸다.백승수라는 인물이 하나의 판타지가 되는 건 그가 '시스템의 개혁자'라는 점이다. 보통 조직이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 책임은 개인으로 전가되는 게 우리네 사회의 현실이다. 하지만 백승수는 이 문제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안을 들여다보고 판단하며 선택한다. 이를 통해 하나하나 그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으로 조직 또한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그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다.◆철저한 취재와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만났을 때'스토브리그'가 특히 우리네 드라마에 의미있는 시도로 여겨지는 건 이 작품이 가진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그 하나는 철저한 취재다. 물론 최근 들어 드라마작가들은 어떤 분야를 다룰 때 취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워낙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은 데다 해당 직업군의 반응들 또한 쉽게 온라인을 통해 전파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어설픈 소재 접근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무려 자문위원만 18명에 달하는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 같은 이야기들이 가능해진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처럼 리얼한 소재들을 가져온다 해도 그것을 극적으로 엮지 않는다면 그만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깊이 그 현실을 알고 있어 극적인 이야기구성을 시도하지 못하는 일도 적지 않다. '스토브리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철저한 취재와 더불어 극적인 스토리텔링 또한 적절하게 균형을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이야기 구조를 보면 이런 균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프로야구 구단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백승수라는 신임단장에게 하나의 숙제처럼 던져지고 문제가 갈등을 점점 키워 올리는 상황까지는 현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침묵하며 무언가 혼자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백승수가 준비한 것들을 꺼내놓고 한 방에 판을 뒤집는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그건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고구마 현실을 계속 목도한 시청자들에게는 속이 시원해지는 사이다가 된다.'스토브리그'의 성취는 그래서 향후 보다 다양한 전문 분야들을 다루는 드라마의 훌륭한 성공방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철저한 취재가 던지는 현실문제와 더불어 현실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캐릭터와 솔루션의 제공이 어떤 전문 분야라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20-01-17 06:30:00

가수 양준일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양준일은 1990년대 활동했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잊혀졌으나 최근 뉴트로 열풍에 재조명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시간여행자' 양준일 신드롬

매일신문 | #양준일 #JTBC #슈가맨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 다시 무대에 서게 된 양준일. 그에게는 '시간여행자'라는 호칭이 붙었다. 20대 때는 배척받고 차별받던 그가 50대가 되어서 다시 서게 된 무대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런 열광을 만들어낸 것일까.◆'슈가맨3'가 소환해낸 탑골 GD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그렇다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 느낌. JTBC '슈가맨3'에 양준일이 나와 '리베카'를 다시 불렀을 때 아마도 당대를 살았던 중년들은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실제로 양준일과 '리베카'라는 곡은 노래가 나왔던 91년도만 해도 어느 정도 인지가 될 정도였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와 곡은 아니었다. 그러다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가수와 노래. 그런데 '슈가맨3' 무대에서 다시 그 노래를 들어보니 지금의 감성에 더 어울리는 곡으로 다가온다. 그 때는 너무 앞서가 있어 낯설게까지 느껴졌지만 지금은 세련된 곡으로 느껴지는 것. 거기에 양준일이 살짝 살짝 흔들어가며 곁들이는 춤은 무대를 더 멋지게 만들어낸다."나는 노래를 목소리로 10% 표현하고 90%는 몸으로 표현한다"고 스스로 말했듯이 가창력 중심의 가수들이 넘쳐나던 90년대에 양준일이 주목받기는 어려웠다. 심지어 파격적인 퍼포먼스에 거침없는 표현을 담은 곡은 그에게 선입견과 편견을 심어 주었고, 재미교포로서 노골적인 차별도 받았다.그런 그가 '슈가맨3'에 등장하자마자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유튜브 콘텐츠 덕분이다. 90년대 KBS '가요톱10'이나 SBS '인기가요' 같은 가요프로그램 영상을 올려놓고 함께 보며 댓글을 다는 이 콘텐츠를 통해 양준일은 일찌감치 '탑골GD'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그래서 세대별로 가수와 음악을 알아보는 관객들을 나누어 보여주는 '슈가맨3'에서 10대와 40대가 이례적으로 양준일을 알아본 건 '온라인 탑골공원'의 영향이 컸다.중요한 건 과거의 그 힙한 음악과 춤이 50대의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양준일은 이 부분에 있어서도 시간의 흐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멋진 춤동작과 트렌디한 노래. 게다가 무엇보다 나이 들어 훨씬 원숙해진 아티스트로서의 면면이 묻어나는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미국에서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있다는 양준일은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갔지만 이 방송이 만들어낸 여파는 그를 끝내 놔주지 않았다. 그를 다시 국내로 소환시킨 건 팬들이었다. 새롭게 팬덤이 만들어졌고 그는 콘서트를 겸한 팬 미팅을 위해 국내로 돌아왔으며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양준일 신드롬에 담긴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슈가맨3'에 나온 양준일은 우리가 연예계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음악에 푹 빠져 하고픈 대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자유로움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야기를 할 때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 가장의 태도를 드러냈다.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특별한 계획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며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라 하는 말이 특히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건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는 아니지만 자신 스스로 자족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면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평범하고 소박한 삶이 가진 가치를 드러낸 말이었다.저마다 가슴 한 편에 꿈을 갖고 살아왔지만 그게 꺾어진 채 하루하루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보통의 서민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있을까. 양준일 신드롬은 이런 서민들이 가진 갈증들을 툭툭 건드리며 점점 커져갔다.양준일은 아이돌 강박에 빠져 있는 우리네 가요계가 가진 갈증 또한 건드리는 존재가 되었다. 10대부터 20대까지 마치 모든 걸 쏟아내고 얻어야 그 삶이 인정받는 것처럼 치부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네 가요계도 아이돌에 집착해온 흐름이 만들어졌던 게 사실이다.하지만 그러면서 생겨난 반작용이 아티스트에 대한 요구다. 젊은 날의 한때가 아니라 평생 동안 추구된 어떤 것으로 삶을 인정받고픈 욕망들이 우리네 사회에 생겨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0대에 활동했고 그러다 다시 50대에 소환됐지만 여전히 자기 스타일대로 살아가며 음악을 하는 그 모습은 바로 우리가 찾던 아티스트의 초상이었으니 말이다.너무 많은 가수와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업화된 음악들은 어떤 패턴을 보이기까지 하며 쉽게 다운로드 받아 소비되는 복제 음원의 시대에 그 음악의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간다. 그래서 나타난 반작용은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아티스트와 예술에 대한 욕망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나 양준일 신드롬은 맞닿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뉴트로와 빈티지 문화에 대한 기대양준일 신드롬의 기저에 깔려 있는 건 최근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로 자리하기 시작한 뉴트로(New+Retro)다. '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뉴트로는 레트로가 보여주는 추억이나 회고, 복고와는 다른 현상이다. 과거를 경험했던 기성세대들이 그 과거를 향수하는 것이 레트로라면 뉴트로는 그 경험을 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옛 것이 가진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조명하는 현상이다.이것은 우리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낡은 것은 지워버렸던 과거의 삶의 방식이자 문화 소비 방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즉 옛것과 새로운 것을 단절시켜 새것으로 옛것을 대치하던 문화 소비에서 그 연계성을 찾고 그 시간의 흐름이 주는 가치를 찾는 노력이 바로 뉴트로라는 것이다.양준일 신드롬은 그래서 단절되어 있던 많은 것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엮어지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그 안에서 연결된다. 우리에게 그간 부재했던 빈티지 문화(과거와 현재를 단절이 아닌 연속성으로 보는 문화)가 그 안에서 어른거린다. 이런 변화된 문화 소비 방식과 삶의 방식이 묻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양준일 신드롬이 가진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지는 면이 있다. #양준일 #JTBC #슈가맨

2020-01-10 06:30:00

2019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코미디언 박나래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2020년 예능 트렌드 전망

2020년에는 어떤 예능프로그램들이 트렌드를 만들어낼까. 트렌드 전망이라는 것이 변수가 많기 마련이지만 2019년의 흐름들을 들여다보면 새해의 트렌드 역시 어느 정도는 그려볼 수 있다.◆김구라 일침, 지상파 예능도 달라질까2019년 지상파 예능들이 생각만큼 선전하지 못했다는 건 연말에 열린 방송3사의 '연예대상' 결과를 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특히 대상 수상자만큼 큰 화제가 된 김구라의 일침은 현재 지상파 예능이 처해있는 위기감을 실감하게 한다. "연예대상도 물갈이를 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KBS도 시청률이 안 나왔다. 5년, 10년 된 국민 프로가 많다보니 돌려막기 식으로 상 받고 있다. 더 이상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콘텐츠 없이 개인기로 1~2시간 때우는 거 하면 안 된다." 김구라의 이 말은 그다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들이 새로운 성취를 이룬 게 많지 않았다는 걸 공감하게 한다.지상파들은 이제 관찰카메라 형식을 예능의 중심축으로 세우고 있다. 'KBS 연예대상'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대상과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준 사실이나, SBS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최우수프로그램상을 받은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물론 거의 유일하게 MBC가 '놀면 뭐하니?'나 '같이펀딩', '구해줘 홈즈' 같은 신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켜 성과를 냈지만, MBC도 역시 '나 혼자 산다'같은 관찰카메라가 대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박나래 대상을 통해 입증시켰다.2020년에도 관찰카메라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중심 형식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케이블, 종편에 유튜브나 넷플릭스까지 등장해 프로그램들이 다양해지는 상황 속에서 지상파는 그 플랫폼에 가장 효과적인 형식으로 관찰카메라를 버리기가 어렵다. 가족, 친구, 자녀, 반려동물 같은 관찰카메라가 담아내는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들은 그간 지상파들이 주로 보여줬던 관전 포인트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KBS가 '1박2일'을 버리지 못하고 SBS가 '런닝맨'을 못 버리는 것처럼 장수프로그램이라는 안전한 선택도 지상파는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그나마 MBC처럼 '놀면 뭐하니?' 같은 유튜브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들이 변화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전망이다.◆비지상파 시즌제 예능, 그 이상의 시도 나올까사실 2019년에는 tvN이나 JTBC 같은 비지상파 강자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이렇다 할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tvN은 여전히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바꿔 약간의 스토리텔링 방식 변화들을 가미하면서 등장했고, JTBC 역시 시즌제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거 등장했을 뿐 신규 예능프로그램의 성취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tvN은 '스페인하숙' 같은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았고, '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을 세워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며 호평 받았으며 나아가 '신서유기'의 외전으로서 '아이슬란드 간 세끼'나 '라끼남' 같은 프로그램이 유튜브 버전으로 주목받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여행과 먹방이라는 소재를 벗어나진 못했다.그나마 JTBC는 조금 성적이 나은 편이다. '슈퍼밴드'라는 신규 프로그램과 '비긴어게인3', '슈가맨3'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금요일 밤 JTBC만의 음악 프로그램 블록을 만들었고, 이효리는 물론이고 핑클 멤버들을 모두 끌어 모아 시도한 '캠핑클럽'은 큰 성취를 거뒀으며 '뭉쳐야 찬다'는 스포츠 스타들을 대거 기용해 스포츠 예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슈가맨3'는 최근 뉴트로 열풍과 맞물리면서 이전 시즌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다. 또 새롭게 런칭한 '이태리 오징어순대집'과 '막나가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JTBC 역시 몇몇 레귤러 장수 프로그램들은 종영하거나 정체된 상황이라 초창기 JTBC 예능이 해왔던 참신한 시도들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tvN은 새해를 맞아 달리기 리얼리티 'Run',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 프로그램 '좋은가요', 고양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냐옹은 페이크다', 아이들을 사회생활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나의 첫 사회생활' 그리고 나영석 PD가 도전하는 숏폼 옴니버스 예능 '금요일 금요일 밤에' 등이 새롭게 시작한다. 특히 유튜브 시대의 짧아지는 콘텐츠 트렌드를 반영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오디션 타고 온 종편 예능의 약진 계속될까올해 예능가에 가장 큰 파장은 Mnet '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파문이다. 한때는 오디션의 명가로 불렸던 Mnet이 주춤하는 사이, 오디션 형식은 이제 종편의 성공 형식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TV조선 '미스트롯'이 최고시청률 18%(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기록을 거두며 '송가인 신드롬'을 일으켰던데 이어, MBN '보이스퀸' 역시 8%를 넘기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과거 종편이 '황금알', '동치미' 같은 프로그램들이 화제를 모으며 이른바 '집단 토크쇼' 붐을 이뤘던 것처럼 이제는 중장년층을 집중적으로 겨냥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또 하나의 종편 트렌드로 자리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TV조선이 '미스트롯'의 성공에 힘입어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트롯'을 1월2일부터 방송하는 건 단적인 사례다.종편이 시도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Mnet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미스트롯'처럼 중장년층의 음악 장르를 시도하거나, '보이스퀸'처럼 주부들의 현실을 오디션 형식에 엮어 노래만이 아닌 감동적인 스토리로 그려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보이스퀸'은 마치 과거 '주부가요열창'의 종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지만, 그 플랫폼의 고정시청층과 잘 맞아 떨어져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종편 예능은 이처럼 지상파나 케이블이 해온 완성도 높고 스타일도 세련된 형식을 추구하기보다는 종편의 시청층에 맞는 눈높이를 찾아감으로써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2019년의 예능은 전반적으로 지상파, 케이블, 종편 등이 저마다의 플랫폼 성격에 맞는 효과적인 방식들을 모색했던 해였다. 거기에는 일정한 성과들도 있었지만 한계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올해는 그 모색한 결과들이 플랫폼에 맞는 예능 형식으로 등장해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과연 올해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화제가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20-01-03 06:30:00

SBS 드라마 'VIP'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종영 'VIP' 예상 깨고 선전

종영한 SBS 드라마 'VIP'는 애초 이 정도의 기대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보란 듯이 15%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화제성도 뜨거웠다. 도대체 이 작품의 무엇이 이런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가능하게 했을까.◆별 기대가 없었던 작품, 그러나SBS 드라마 'VIP'는 방영 전까지만 해도 굉장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장나라 같은 신뢰를 주는 배우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작가와 감독 모두 첫 입봉작이라는 사실이 그랬다. 이 대본을 쓴 차해원 작가는 공모전에 당선된 후 첫 작품이고, 이정림 감독 역시 첫 연출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큰 기대를 가질 수는 없었다.이런 낮은 기대감 속에서도 첫 회 시청률이 6.8%(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건 꽤 선전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VIP'는 단 몇 회 만에 시청자들을 주인공 나정선(장나라 분)의 시선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문자 메시지 하나를 통해서였다. 같은 VIP 전담팀의 팀장인 남편 박성준(이상윤 분)이 팀내 내연녀를 뒀다는 메시지. 나정선은 그 후 팀원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고, 시청자들도 누가 내연녀일까 하는 궁금증에 빠져들었다.이런 궁금증은 결국 '불륜'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일 수 있었다. 그래서 관심은 증폭되었지만 그것만으로 'VIP'가 순항하기는 어려웠다. 여기서 'VIP'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불륜'이라는 소재에 사회적 함의를 담아 넣을 수 있는 우리네 사회의 돈으로 구분되는 계급구조의 현실이었다. 성운백화점의 VIP들을 위해 파티를 열어주기도 하고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전담팀의 일은 심지어 그들의 불륜까지 덮어주는 것이었다.부부이자 팀장과 팀원인 박성준과 나정선의 관계는 그래서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가 중첩되며 애매해진다. 자신들에게 벌어진 불륜은 사적인 관계로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VIP들의 불륜은 감춰주는 게 그들의 일이 된다. 불륜이란 소재가 자본화된 세상의 사회적 의미를 끄집어내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주게 된 것이다. 'VIP'는 이처럼 통속적일 수 있는 불륜이란 코드를 가져와 자본으로 서열화된 우리네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꺼내놓는다.◆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과 판타지'VIP'는 여기에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밀려나지 않는 나정선 같은 리더십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시크한 매력으로 전담팀의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에이스 이현아(이청아 분)라는 든든한 걸크러시 캐릭터와, 육아문제로 회사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만년 사원으로 살아가는 송미나(곽선영 분) 그리고 누구보다 동료로서 함께 아파하고 즐거워해주는 강지영(이진희 분) 같은 여성들을 포진시킨다.물론 이 드라마는 전면에 페미니즘적 관점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남성들의 세계와 여성들의 세계를 병치해 놓는다. 박성준과 그를 끌어주는 하재웅 부사장(박성근 분) 라인이나 배도일(장혁진 분)처럼 권력을 위해서는 뭐든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일삼는 남성들의 세계가 그 라인문화에 의해 세워져 있다면, 나정선과 친구이지만 팀원인 이현아와 송미나, 강지영은 이 성운백화점에서 늘 한 걸음씩 밀려나 있지만 서로를 토닥이며 동지의식의 끈끈한 연대를 보여준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전담팀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지만 이들의 팀장이 박성준이라는 점은 우리네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담아낸다.물론 성차별적인 현실만을 드라마가 강조한 건 아니다. 거기에 바람직한 남성상의 판타지들을 대안적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드라마는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장관 아들이지만 신분을 속이고 건실하게 팀원으로 일하며 나정선을 때로는 위로해주기도 하는 마상우(신재하 분)나, 성추행 사건을 미투 폭로한 일로 사내에서 편견의 시선을 받는 이현아를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바라봐주는 차진호(정준원 분) 그리고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뒤늦게 이해하고 아내 송미나를 돕기 위해 나서는 이병훈(이재원 분) 같은 남성들이 그들이다.◆두 개의 세계, 당신에게 진짜 소중한 사람은그래서 드라마는 두 개의 세계를 병치시킨다. 하나는 VIP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수직적 관계로 이뤄진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수직적 세계 속에서 겪는 어려움과 서러움들을 서로 공감하며 보듬어주는 수평적 세계다. 박성준은 하재웅 부사장의 내연녀들과 차명계좌를 관리함으로써 이사로 승진하지만 그 수직적 세계가 그를 행복하게 해줄 지는 미지수다. 그는 자신의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부사장의 딸인 하유리(표예진 분)와 내연관계를 이어가지만, 갑자기 다쳐 쓰러진 아내 나정선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보살핀다. 수직적 세계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사랑과 성공이라는 판타지가 실상은 불륜이자 욕망이었다는 그를 통해 드러난다.반면 이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현아는 차진호와 드디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고, 송미나는 남편 이병훈과 위기를 이겨내고 알콩달콩한 가정으로 돌아온다.'VIP'는 그래서 이 두 개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VIP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현실에서 우리가 갑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허물조차 감춰주던 저 VIP와, 그런 현실에서 돌아와 서로를 다독이는 진짜 VIP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지만 우리는 종종 그걸 잊는다. 자본화된 사회가 주는 화려해보이기만 하는 저들의 겉모습에 눈이 멀어서.'VIP'는 첫 입봉작이라고 믿기 힘든 작가와 감독의 역량이 묻어난 작품이다. 이렇게 불륜이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가져와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 후 거기서 확장해 사회적 함의까지 끄집어내는 대본이 그렇고, 대단히 섬세한 감정 표현을 인물들의 손짓 하나 대사 하나에도 집중하게 만든 연출이 그렇다.게다가 김준석 음악감독의 효과적인 배경음악은 드라마 매회 말미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압축적이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연출과 더해져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장나라와 이청아, 곽선영 같은 연기자들의 호연이 더해져 대본, 연출, 연기의 삼박자를 갖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애초 예상을 훌쩍 깨는 결코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 아닐 수 없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25 13:14:56

백종원, 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출연하는 SBS '맛남의 광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한상 푸짐 '백종원표 예능' 참 맛있지유~

먹방에 쿡방은 물론이고 지역 농수산물을 살리기 위한 솔루션에 공익성까지 담았다. SBS '맛남의 광장'은 그래서 지금껏 백종원이 시도해온 다양한 음식프로그램의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다.◆풍년일수록 힘들다, '맛남의 광장'이 나선 이유11월부터 1월까지 잡히는 양미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그래서 동해안에 가면 양미리가 지천이다. 하지만 이런 풍어를 맞고도 어민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양이 많아도 그만한 수요가 없는데다, 냉동하면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생선이지만 수요가 없는 건 주로 구워먹거나 말려 먹는 것 이외에 다양한 요리방식의 저변이 없어서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찾지 않고 상품성이 없어 유통도 되지 않게 된 것.SBS '맛남의 광장'에서 백종원은 한창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내고 있는 동해안 어촌을 찾아 양세형과 맛있게 양미리를 구워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마치 KBS '6시 내 고향' 같다고 양세형이 말하자, 백종원은 우리 프로그램은 "10시 내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 장면은 지방의 제철음식을 찾아나선 '6시 내 고향'이 줄곧 보여주곤 하는 먹방을 연출한다.갓 구워낸 양미리를 통째로 씹어 먹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그리고 백종원은 양미리를 구입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양미리 조림 조리법을 알려준다. 그건 일종의 쿡방이다. 백종원 특유의 쉬운 레시피가 빛을 발한다.다음 날 옥계휴게소에서 백종원과 출연자들(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그렇게 탄생한 양미리 조림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미 사전 정보를 알고 찾아온 손님들의 반응이 전파를 탄다. 마치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등장했던 백종원 특유의 음식 솔루션과 그걸 손님들에게 내놓고 보여지는 리액션 영상이 채워진다.아이러니하게도 풍년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지역의 농수산물들은 의외로 넘쳐난다. 강원도의 양미리는 물론이고 살이 적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홍게, 심지어 감자 같은 대표적인 지역 작물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현실이다. 백종원은 홍게로 홍게라면을 만들고 못난이 감자로 감자 치즈볼을 만들어 손님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도시와 지역을 연결하자 생긴 시너지이제 중요해지는 건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지역까지 가지 않고도 양미리를 인근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게 유통의 길을 열어 주는 일이다. 여기서도 백종원은 자신의 인맥을 100% 활용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선뜻 그 뜻에 동참했다. 백종원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없어 버려지는 양이 30t이 넘는 어느 강원도 농가의 이른바 '못난이 감자'를 보는 즉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30t을 사달라고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전량을 수매했다. 안 팔리면 자기가 다 해먹겠다며.하지만 안 팔리기는커녕 수많은 소비자들이 이마트 매장과 쇼핑몰 SSG닷컴으로 못난이 감자를 샀다. 못생겼지만 맛과 영양은 그대로인 못난이 감자는 900g 당 780원에 팔린다. 결국 소비자들도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백종원은 정용진 부회장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크게 공감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매가 필요한 농수산물들을 이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전해졌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했던 부분인 유통 문제가 백종원의 전화 한 통과 그 뜻에 동참한 정용진 부회장의 약속으로 해결된 것이다.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준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수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많아 버려지던 농수산물을 팔 수 있게 된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그런 좋은 물건들을 전량 받아 팔 수 있게 된 마트로서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무엇보다 이런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업 이미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런 상품들을 그간 가까이서 구매할 수 없어 TV로 보기만 했던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일이다. 도시와 지역을 방송이 연결시키는 것만으로 생겨난 놀라운 시너지다.◆방송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나가는 백종원의 진화백종원은 지금껏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하지만 아무 프로그램이나 나온 건 아니었다. 그는 음식연구가로서 음식 관련된 프로그램에 특화된 방송인으로 맹활약했다. 처음 백종원이 했던 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와 간편하게 레시피를 알려주던 레시피 방송이었다. 그건 쿡방보다는 백종원의 방송적응기에 가까웠다.그러다 그는 tvN '집밥 백선생'으로 본격 쿡방을 선보였고, SBS '백종원의 삼대천왕'을 통해 먹방을,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자신의 프랜차이즈 경험이 녹아난 음식점 솔루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세계의 음식을 소개하며 인문학적 정보를 더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최근 백종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맛남의 광장'은 그가 지금껏 해온 먹방, 쿡방, 솔루션 프로그램의 노하우가 모두 녹아든 공익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으로 그의 진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맛남의 광장'이 아이디어로 나온 건 이미 3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지역을 다니다가 휴게소에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방송을 준비하려 했지만 미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다린 만큼 '맛남의 광장'에 대한 백종원의 애착은 특히 크다.'맛남의 광장'이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보여주듯이 백종원이 하는 방송의 또 다른 특징은 방송이 방송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이건 그가 방송 소재로 잡고 있는 음식이라는 아이템이 가진 파괴력 때문이다. 본래 방송의 힘은 한때 음식 프로그램에서 홍보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게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이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는 걸 백종원은 보여주고 있다.여기서 가장 중요해진 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어려움에 처한 골목식당을 살린다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취지처럼, '맛남의 광장'의 지역을 살린다는 취지가 중요한 이유다.

2019-12-18 11:18:12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연예인 관찰카메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지금 지상파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건모 사태를 보면 연예인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이 보인다.◆김건모 논란으로 후폭풍 맞은 '미운 우리 새끼'SBS '미운 우리 새끼'는 최근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미혼으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철없는 일상을 그 부모들이 관찰하는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김건모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개국공신으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집에다 정수기에 물 대신 소주를 가득 담아 이른바 '정술기'를 만들기도 하고, 소주 기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아들이 하는 일상의 '해괴한 짓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거나 "뭐하는 짓인지"하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진 불편함을 대신 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의 초반 전성기를 만든 주역들은 출연자들보다는 그 엄마들이었다.하지만 엄마들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때론 과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 챙기는(?) 그 멘트들도 점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을 엄마들이 들여다보는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더하기 시작했다.최근 생활고를 토로했던 슬리피가 이상민을 만나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듣는 광경이나, 배정남이 이성민과 함께 화보를 찍는 장면, 임원희와 정석용이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가서 펼쳐지는 짠내 가득 여행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소개됐다. 그렇게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는 듯싶었다. 김건모 논란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고 피해주장 여성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안이 아니지만 이런 의혹제기는 공교롭게도 '미운 우리 새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김건모의 결혼소식이 전해졌고, '미운 우리 새끼'는 그의 프로포즈 장면이 나갈 거라는 예고를 내보낸 상황이었다.논란이 터진 후 '미운 우리 새끼'는 방송을 내도, 또 내지 않아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내지 않는다면 마치 김건모 논란이 사실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낸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운 우리 새끼'는 편집 없이 방송을 강행했다.◆김건모 사태가 끄집어낸 관찰카메라의 맹점해외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쇼는 말 그대로 리얼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들은 일반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때론 폭로에 가까운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다소 유화된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담는 내용도 폭로라기보다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게 관찰의 주체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달리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MBC '나 혼자 산다'가 한 때 15%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승승장구했던 건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관찰 영상에 대해 이런 저런 멘트를 덧붙이면서다. '나 혼자 산다'의 관찰 주체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 영상을 보며 던지는 짓궂은 농담들은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 관찰의 주체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밉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관찰카메라는 관찰 주체의 호감과 애정이 기본 전제가 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김건모 사태는 이런 관찰 주체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호감이 일순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었다. 아직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랬다. 그간 엄마의 시선이 상쇄시켜줬던 김건모의 갖가지 기행들은 호감이라는 필터가 치워짐으로써 달리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이런 문제는 '미운 우리 새끼'만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나 MBC '전지적 참견 시점'같은 관찰카메라들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나 혼자 산다'는 기안84의 기행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줬지만, 때때로 그의 작품이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전현무와 한혜진의 연애와 결별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과 부딪히며 구설이 되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에 대한 매니저의 과한 관리(?)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본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관찰의 초점이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매니저의 연예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시점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은 조금씩 식어버렸다.◆연예인 관찰카메라 득만큼 실도 커연예인 관찰카메라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것으로 해당 연예인의 호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별한 끼나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들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형식이다. 출연자는 그저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를 관찰하는 이들의 호감어린 멘트들이 덧붙고, 자막과 편집까지 마술을 부리면 그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관찰카메라는 결국 그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그 호감어린 시선이 지워지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 고스란히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커진 호감은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날 때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간다. 그건 해당 연예인에게도 큰 타격이지만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에도 직격탄이 된다.'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는 그래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한껏 집중된 관찰카메라의 조명을 그 연예인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지만, 조명이 꺼져버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실체는 더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이것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출연만 하면 존재감을 확 키워줄 것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실체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11 11:31:00

'유 퀴즈 온 더 블럭'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유 퀴즈 온 더 블럭', 유재석이 만난 위대한 서민들

길거리에서 무수히 많은 인생들을 만났던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12월 3일부로 일단락을 맺었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겨울 휴지기에 들어간 것.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떤 성취를 거두었을까.◆'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만난 사람들인천의 어느 마을, 꽃이 만개한 꽃밭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유재석과 조세호는 그 길에서 한 어르신을 만난다. 그리고 그 어르신으로부터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한 가운데 꽃밭도 있고 원두막도 있는 특이한 그 마을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들어보니 그 꽃밭은 본래 마을을 관통하는 8차선 도로 부지였다. 도로 하나가 마을들 사이에 놓여져 왕래를 끊어버릴 수 있다는 소식에 어르신과 마을 몇 분이 뭉쳐서 반대를 했고, 그 곳에 꽃을 심기 시작했다는 것. 그 작은 손길에 마을 사람들이 사비를 들여 동참했고 무려 7-8년 간이나 가꿔져 지금의 그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다는 것이었다."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요. 꽃 피워주고 새싹 피워주고 내가 해준 것만큼 저 꽃송이들이 커요. 내가 물 주고 사랑 준 것만큼...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여기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참 좋아요." 어르신의 그 한 마디가 유재석과 조세호를 감탄하게 만든다.어느 작은 마을에서 만난 이름 모를 어르신이지만 이토록 위대한 이들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넘쳐난다. 매번 어느 동네를 가든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분들이 나타난다.어려서부터 아팠다는 딸에게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오히려 너무나 감사함을 표하는 딸, 요양원에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때 가장 마음 아프고 좀 더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는 어느 요양사, 먹고 살기 힘들어 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생업에 뛰어들게 한 장남에 대해 지금도 미안함을 갖고 있는 백발의 엄마에게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흐름 아니냐며 섭섭하거나 서운해 한 적 없다고 말하는 칠순이 다 되어가는 아들, 자식들을 위해 시멘트바닥이 패일 정도로 수십 년을 하루도 변함없이 그 곳에 서서 세탁 일을 해온 아버지...아주 평범해 보이는 우리네 이웃 같은 사람들의 '보석 같은' 삶의 이야기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게 빠져들고, 그 어떤 코미디보다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힘은 바로 그 놀라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려주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길거리 퀴즈쇼에서 진솔한 토크쇼로의 진화처음부터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사람여행'이런 콘셉트를 제대로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8월 처음 시작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물론 사람들과의 토크가 주된 내용이긴 했지만 어딘지 퀴즈쇼에 더 집중하는 느낌이 컸다. 100만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서 당시만 해도 다섯 문제를 연달아 맞춰야 했다. 문제를 내고 맞추는데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초반 신경을 썼다는 의미다.하지만 추운 겨울 길거리 토크쇼 자체가 어려워 휴지기를 갖고 봄에 다시 돌아오면서 이제 한 문제만 맞춰도 100만원의 상금을 드리는 쪽으로 룰이 바뀌었다. 즉 퀴즈 그 자체보다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당연히 유재석과 조세호가 퀴즈쇼라는 형식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웃음의 포인트는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온전히 마이크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서민들에게 넘기자 의외로 보석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유재석과 조세호는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언변에 박장대소하기도 했고, 달달한 첫 만남과 사랑이야기에 광대가 승천하기도 했으며, 너무나 가슴 먹먹한 이야기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 위대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재석과 조세호는 입보다는 귀가 되어주는 것으로 더더욱 그 존재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막막했던 그 길이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위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까 설레는 길이 됐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갔고, 차츰 그들을 알아보고,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이들이 저들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꺼이 털어놨다. 프로그램은 갈수록 풍성해졌다. 길거리 퀴즈쇼가 진솔한 토크쇼가 되면서 프로그램은 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우리가 간과했던 사람의 위대함'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늘 정해진 틀에서 정해진 출연자들과 함께 예능을 만들어오던 그 방식을 탈피한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내밀하고 진솔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낸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전면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무엇보다 컸지만, 그만큼 연출자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촬영, 편집, 자막에 들어갔다.시그니처 편집처럼 되어 있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또 나뭇잎을 타고 날아오르기도 하는 CG 처리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상에 역동감을 만들어줬다. PD의 감수성 넘치는 자막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잘 정리해서 효과적으로 전해지게 만들어줬다. 또 유재석과 조세호만의 인터뷰에 더해 추가로 더 내밀한 인터뷰를 따로 붙여넣어 이야기의 심도를 높여줬다.무엇보다 눈에 띠었던 건 어느 한 지역을 찾아가 만난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 한 편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구성의 힘이었다. 예를 들어 문래동의 공장지대를 찾아가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를 부제 'Don't stop me now'로 엮어내는 식이다. 한 때 IMF를 맞아 철공소들이 도산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버텨내고 있는 그 지역의 공통된 분위기를 그 부제로 묶어낸 것.이런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노력보다 이 프로그램을 완성시킨 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프로그램은 그토록 많은 위대한 서민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건 사실 어떤 사람이든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저마다 드라마 몇 편씩에 해당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위대하다는 걸 증명해주었다. 이름 없이 묵묵히 제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대중문화평론가

2019-12-04 14:13:08

최근 화제가 된 유튜브 채널 EBS '자이언트 펭TV'의 캐릭터 펭수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 EBS사옥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대빵 나와"…펭수가 뭐길래, 이토록 열광하나

여기저기 펭수 이야기가 떠돈다. 펭수에게 몰려드는 방송가의 러브콜에 이어, 최근에는 광고계에서도 서로 끌어가기 위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물론 계보가 있을 정도로 EBS 캐릭터들은 많지만 신드롬까지 일으킨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다. 도대체 무얼 건드린 걸까.◆남극 '펭' 씨에 빼어날 '수', 펭수 신드롬"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최근 영화 '백두산'의 제작보고회에서 하정우는 그렇게 말했다. 이 한 마디는 최근 펭수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뜨거운 지를 잘 말해준다. 펭수는 영화 '백두산'은 물론이고 '천문'에도 영화 홍보를 위한 콜라보 작업에 투입되었다. 하정우가 그렇게 말한 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얘기다.최근 나영석 PD도 펭수를 거론했다. 그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 '신서유기 외전 : 삼시세끼 –아이슬란드 간 세끼'의 첫방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은지원, 이수근을 달나라 보내겠다고 한 공약이 실제로 이뤄질 것 같자 구독 취소 방송을 하면서 그는 "펭수를 구독하라"고 독려했던 것. 그만큼 펭수가 뜨거운 캐릭터라는 걸 반증하는 사례다.나이는 열 살. 키는 210cm로 큰 남극 유일의 자이언트 펭귄, 펭수. BTS 같은 우주대스타가 되는 게 꿈이라는 이 펭귄 캐릭터는 머리에 미역 줄기를 매달고 오디션을 봐 EBS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EBS 캐릭터지만 지난 3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개설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화제가 된 이 캐릭터는 지난 9월 드디어 빵 터졌다. 'EBS 아이돌 육상대회(이육대)'라는 동영상이 업로드되면서다.물론 조금씩 그 귀여우면서도 할 말은 하는 캐릭터가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지만, '이육대'는 펭수의 인기를 훨씬 더 폭넓은 세대로 확장시켰다. MBC의 '아이돌 육상 대회'를 패러디한 이 영상에는 번개맨, 뚝딱이, 뿡뿡이 같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EBS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그 캐릭터들은 지금도 인기가 있지만, 그걸 보고 자란 세대들이나 그 부모들에게도 향수와 추억을 자극했다. 이렇게 모든 캐릭터를 한 자리에 모아놓은 펭수라는 존재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2030 성인들은 열광했다. '이육대' 영상은 1,2부를 합쳐 3백만 조회 수를 훌쩍 넘기며 본격적인 펭수 신드롬을 촉발시켰다.◆방송사 대통합에 이어 어디든 환영받는 펭수펭수의 인기는 지상파 같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앞 다퉈 펭수를 모시는(?) 기현상을 만들어냈다. 물론 최근 들어 방송사 간의 프로그램 영상 공유는 일상화되고 있을 정도로 그 벽은 얇아졌지만 그래도 EBS 캐릭터가 MBC, SBS를 종횡무진 넘나든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펭수는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는 물론이고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도 출연해 맹활약했다. 이른바 방송사 대통합을 이룬 것.펭수는 방송에 이어 앞서 말했던 영화계에도 진출했고 최근에는 광고업계에서도 블루칩으로 모셔지고 있다. 특히 펭수가 좋아한다는 참치와 가장 좋아하는 과자라 밝힌 빠다코코넛을 만드는 회사들의 광고모델 제의가 쏟아졌다. 또 최근 이랜드의 스파오는 펭수 나이와 같은 10주년을 맞아 내달 펭수 콜렉션을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EBS 캐릭터인지라 광고모델 제의에도 신중히 접근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펭수가 나선다면 어디든 환영하는 분위기다.펭수에 대한 러브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지난 23일 공개된 '펭수 외교부 장관 만난 썰' 편은 외교부 같은 정부 부처에서도 펭수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알리기 위한 영상이기도 했지만 펭수의 외교부에서의 맹활약은 이 캐릭터의 대체불가 매력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했다. 외교부 앞에서 일정을 치르러 나가는 강경화 장관을 보고 "여기 대빵이 어디 있냐?"고 묻는 펭수라니. 그 한 마디에 강경화 장관조차 빵 터졌다. 외교부에 입성해 6개 지역 외교관들을 만나 가진 펭수 해외진출 방안 토론회에서도 펭수 특유의 순발력에 외교관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펭수가 어디서든 환영받는 캐릭터가 됐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영상이었다.◆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 펭수도대체 무엇이 펭수의 이런 어마어마한 신드롬을 만든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딱 하나만 짚어 얘기하라면 유튜브 시대에 부응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육대'에 대거 EBS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펭수는 그들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교육방송에 걸맞는 교육적 메시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재미와 공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특히 직장인들까지 펭수에게 빠져드는 건 수직적 사고 자체가 없어 어디든 거침없이 치고 들어가는 '사이다 화법' 때문이다. EBS 사장 김명중을 아랫사람 대하듯 이름을 부르고, MBC에 가서는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 같은 말을 툭툭 던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연출하는 PD 같은 '직속상관'을 마치 로드매니저 부리듯 한다는 건, 상하조직생활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에게는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줄 수밖에 없다.그런데 펭수의 이런 화법과 거침없고 재미있으며 때론 귀여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물론 PD의 고민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생태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EBS 캐릭터들과 차별화된 건 애초 펭수가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대중들과 만남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새로운 매체나 채널은 그 자체로 새로운 캐릭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 아는 연예인도 유튜브를 하게 되면 또 다른 모습과 캐릭터를 보이게 된다. 그건 그 채널이 요구하는 어떤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펭수는 어찌 보면 '유튜버' 혹은 '1인 크리에이터' 같은 캐릭터를 입게 되었다. 거침없이 할 말은 하고, 때론 공감 가득한 말로 대중들을 위로하며, 스튜디오가 아닌 현장으로 뛰어들어 그 곳에서 부딪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는 어째서 펭수가 방송사 대통합 같은 걸 보다 쉽게 이뤄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BS가 강조되기보다는 유튜브 스타 같은 면모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상파들조차 펭수 섭외에 너도 나도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그래서 펭수 신드롬을 잘 들여다보면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가는 대중들의 새로운 욕망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저마다 할 말은 하고 싶고 또 공감 받고 싶으며 나아가 유튜브 스타 같은 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런 욕망들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물론 그런 욕망을 건드린다고 해도 견고한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겠지만.대중문화평론가

2019-11-27 13:36:35

KBS 2TV 1박2일 시즌4 출연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민, 연정훈, 문세윤, 라비, 딘딘, 김선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시즌4로 돌아오는 '1박2일', 부활할 수 있을까

KBS '1박2일'이 시즌4로 돌아온다. 새로운 PD와 새로운 출연진들이 진용을 갖췄다. 정준영 논란에 김준호, 차태현 내기 골프 보도까지 나오면서 무기한 중단되었던 '1박2일'. 과연 시즌4는 부활할 수 있을까.◆'1박2일 4'가 익숙함을 선택한 까닭KBS '1박2일'이 오는 12월 8일 시즌4 첫 방송을 시작한다. 지난 10월 말 시즌4로 돌아온다고 공식발표가 나왔고, 그 후 누가 새로운 출연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1박2일 4'는 김종민만 남기고 모든 출연자를 교체했다.지금껏 예능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연정훈에, 최근 '맛있는 녀석들'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문세윤,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와 '유령을 잡아라'로 호감도를 높여온 김선호, 래퍼지만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더 많은 딘딘과, 막내로 가수이자 음악감독인 라비가 합류했다.티저로 나온 영상을 보면 아직까지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갈지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자신은 구멍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티저 영상 속에서 이들의 색다른 조합이 만들어낼 케미는 분명 기대되는 면이 있다.기대감과 함께 남는 우려도 적지 않다. 편성시간대를 늘 방영했던 일요일 저녁으로 잡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1박2일 4'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했다는 점이다.2007년부터 방영한 '1박2일'은 햇수로 벌써 12년이 훌쩍 지난 장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이 프로그램의 패턴을 알고 있다. 여행과 복불복의 적절한 조합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인데, 여행이 소재적으로 익숙해지자 점점 복불복 게임에 집착하는 양상을 띠었다. 그래서 '1박2일'은 출연진을 교체하며 시즌을 거듭해왔다. 나영석 PD가 했던 최고의 출연진 조합 이후, 게임화되어가는 '1박2일'에 그나마 새로움을 더했던 건 '1박2일' 시즌2와 시즌3에서 유호진 PD가 합류했을 때 정도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익숙한 패턴을 반복했던 것.'1박2일 4'는 결국 전 시즌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반에는 새로운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소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새로움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캐릭터가 새로운 여행 형식이나 이야기 틀을 더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변별력을 찾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그런데 왜 '1박2일 4'는 새로움이 아닌 익숙함을 택했을까. 그건 여전히 KBS라는 채널에 맞게 고정 시청층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이다. 새로운 시청층을 유입시키기보다는 고정층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는 걸 '1박2일 4'의 선택은 보여주고 있다.◆복병은 비슷한 여행 예능이 너무 많다는 것일요일 저녁 그다지 뜨거운(?) 프로그램이 없다는 사실은 '1박2일 4'의 선택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무작정 안도하기에는 외부 환경들이 많이도 변했다.가장 큰 복병은 KBS를 떠난 '1박2일' 출신 PD들이 바깥에서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계속 만들고 있고 또 만들어질 거라는 점이다. 물론 원조논쟁을 벌일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나은 여행 예능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있는 나영석 사단은 '1박2일 4'가 옛날 프로그램 같은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나영석 PD는 '1박2일'을 정점에 올려놓고 tvN으로 옮겨와 다양한 여행 예능 실험을 했다. 국내에만 국한되는 한계를 넘어 해외 여행으로 소재를 확대했고, 출연진도 어르신들부터 여성, 젊은 세대들까지 넓혔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정착형 여행을 시도했고, 창업 소재까지 더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외국인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특히 최근 방영하는 '신서유기7'은 국내 복고 콘셉트로 만들어 '1박2일' 전성기 시절의 풍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해외와 국내를 자유롭게 오가고, 다양한 여행 콘셉트를 더해 각이 세워진 나영석 사단의 예능들은 그래서 '1박2일 4'의 그 익숙한 세계에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1박2일 3'에 합류했다 MBN으로 이적한 유일용PD의 '자연스럽게'도 '1박2일'의 유전자가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방의 점점 비어가는 집들을 찾아가 그 곳에서 정착해 살며 지내는 모습을 담는 방식이다. '1박2일'보다는 나영석 사단이 만들었던 '삼시세끼'에 더 가깝기도 하지만, 김종민과 은지원이 고정으로 출연하고 최근 김준호까지 이 프로그램에 들락거리는 건 어딘지 '1박2일'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다른 콘셉트라고 해도 이렇게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졌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다양한 새로움도 시도되고 있음은 새로 시작하는 '1박2일 4'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1박2일 4'에 남은 가능성은 뭘까이런 부담감들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2일 4'가 가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것은 점점 이탈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서 더 끈끈해진 남은 고정 시청층들을 이 프로그램이 확실하게 집어낼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다.워낙 브랜드 가치가 높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본 이상은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 기반 위에 매회 지금 시대에 맞는 이슈들을 더해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고정층을 기반으로 신규 유입까지 가능할 수 있다.또한 최근 예능 트렌드 중 뉴트로 같은 복고 콘셉트가 유행한다는 건 '1박2일 4'가 제대로 스타일만 갖춘다면 의외로 힙한 예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서 전제되는 건 뉴트로가 갖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어떤 것을 가져오되 현재 시점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탑골공원' 같은 뉴트로의 열풍은 과거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현재에 어떻게 소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최근 예능 주요 트렌드가 된 관찰카메라가 재미보다는 의미에 집중하자 그 반작용으로 웃음에 더 초점을 둔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갈증이 커지는 것도 '1박2일 4'로서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웃음의 강도를 확실히 높여 일요일 밤 제대로 웃게 해줄 수 있다면 집 나간 시청자들도 돌아오지 않을까.새로 시작하는 '1박2일 4'는 우려를 어떻게 기대감으로 바꿀 것인가에 관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앞선 시즌의 익숙함 위에 어떻게 새로움을 더할 것인가. 충분한 웃음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의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1박2일 4'의 부활 여부는 이런 질문들에 제대로된 답을 내느냐에 달려 있다.

2019-11-20 12:10:06

MBC '놀면 뭐하니?' 스틸컷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판 제대로 벌인 김태호 PD, 판 제대로 살린 유재석

MBC '놀면 뭐하니?'로 김태호 PD가 돌아온다고 했을 때, 많은 대중들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최근 '놀면 뭐하니?'는 '유플래쉬'에 이어 '뽕포유'로 드럼 지니어스이자 트로트 영재로 거듭난 유재석으로 연일 화제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어째서 '무한도전' 시즌2가 아니라 '놀면 뭐하니?'인가. 1년 여 간의 휴지기를 거쳐 복귀한 김태호 PD에게 이런 질문과 의구심은 당혹감을 느끼게 했을 게다.사실 리얼 버라이어티쇼라고 불리는 캐릭터쇼의 시대가 지나간 건 업계 사람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무한도전' 시즌2를 하라는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것을 다시 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물론 '무한도전' 시즌2는 당장 수익이 되는 일이고, 그다지 큰 리스크도 없는 선택일 수 있었다. 그래서 MBC에서도 시즌2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태호 PD가 선을 긋고 굳이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예능 실험을 하게 된 건, 그저 지나간 향수와 추억만을 만지작거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유튜브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예능 형식의 틀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릴레이 카메라라는 실험이다. 김태호 PD는 유재석에게 건네진 카메라가 다음 사람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어디로 누구에게 갈지 알 수 없는 1인 미디어적인 영상이 색다른 예능의 틀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실제로 이 형식 실험은 지금껏 예능에 출연하지 않던 많은 배우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문제는 지향점이었다. 릴레이 카메라가 새롭기는 해도 무한 확장될 뿐 어떤 목표나 지향점이 생기지 않는다는 건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실험이 유재석이 친 드럼 비트를 갖고 다양한 음악들을 만들어가는 릴레이 음악으로 시도된 이른바 '유플래쉬'로 가면서 하나의 지향점이 만들어졌다.유재석의 드럼 독주회가 그 최종 무대로 세워지고, 비트 하나가 다양한 갈래의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채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독주회에서 소개되고 거기에 고 신해철의 5주기 추모곡까지 더해지며 하나의 완성도 높은 엔딩이 만들어졌다. 김태호 PD의 실험이 드디어 어떤 성과를 내는 지점이다.그리고 이어진 '뽕포유'는 유재석의 트로트 가수 데뷔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향해 달려간다. 트로트업계의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놀라운 매력과 예능감이 뒤섞이면서 동시에 유재석이 부를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출구'가 완성된다.아직 발표되기도 전이지만 벌써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는 이 곡들은 아마도 유재석의 트로트 신인 데뷔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놀면 뭐하니?'가 쏘아 올린 두 개의 공, '유플래쉬'와 '뽕포유'는 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진화가 거둔 어떤 성과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김태호 PD와 유재석의 시너지가 의미하는 것물론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를 하기 전에도 새롭게 변해가는 예능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유재석의 포지션은 과거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진다. 항상 중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위치가 아니라, 이제 그 마이크를 길거리에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옆 자리로 비켜난다. 그 듣는 위치와 늘 함께 하던 연예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그 화자라는 사실은 유재석이 찾아낸 새로운 포지션이었다.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인 '범인은 바로 너' 같은 프로그램도 유재석의 새로운 도전의식을 잘 보여준다. 물론 '런닝맨'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10부작으로 완결된 스토리를 갖는 예능 프로그램의 시도인데다, 글로벌한 대중들을 겨냥한다는 점이 그렇다.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의 존재감을 가장 잘 끄집어내 이 시대에 맞는 스토리텔링과 형식으로 보여준 건 '놀면 뭐하니?'가 되었다. 그건 유재석처럼 토크면 토크, 콩트면 콩트 그 어떤 것이든 발군의 기량을 가진 인물도 제대로 된 판을 깔아줬을 때 더 빛난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한 마디로 김태호 PD가 판을 제대로 깔았고 유재석은 그 판 위에서 제대로 놀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김태호 PD 덕 뿐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김태호 PD 역시 고백하듯, 유재석이 있어 이런 실험들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즉, 김태호 PD도 또 유재석도 시대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서로 달라진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의식 속에서 이런 시너지가 가능했다는 것이다.◆연출자도 예능인도 한 시대를 넘는다는 건지난 2일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는 '예능방송인 브랜드평판' 2019년 11월 빅데이터 분석 결과 유재석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연구소 측은 유재석 브랜드에 대해 "다양한 에능을 통해 익숙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관심을 높이고 있다"며 "링크 분석을 보면 '공연하다, 만나다, 다양하다'가 높게 나왔고, 키워드 분석은 '일로 만난 사이', '놀면 뭐하니', '나영석'이 높게 분석됐다"고 말했다. 물론 유재석의 브랜드 평판 1위 같은 소식은 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확실히 그의 예능 존재감이 커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중요한 건 한 시대를 구가한 예능인이나 연출자가 새로운 시대를 만나 적응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많던 스타 PD들과 예능인들이 그 시대가 지나가면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이경규처럼 그 오랜 시대를 여러 차례 건너며 현재진행형의 활동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다른 대부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다.그런 점에서 유재석이 뛰어넘은 한 시대는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최고 주가를 올렸던 스타가 이제 리얼리티 시대에도 여전히 최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이건 또한 '무한도전'으로 예능사에 한 획을 그은 김태호 PD가 유튜브 시대에도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의 성공은 앞으로도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만들어낼 많은 세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즐거운 신호탄처럼 보인다. 새로운 예능의 재미와 웃음을 열망하는 대중들에게 이보다 좋은 소식이 있을까.

2019-11-13 11:08:07

영화 '82년생 김지영'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82년생 김지영', 악역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원작 때도 그랬지만 영화 개봉 전부터 성 대결 갈등 양상으로 인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평점테러까지 이어졌던 영화는 그러나 개봉과 함께 그 반응이 사뭇 바뀌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걸까.◆'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적지 않은 무게감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 원작 소설이 가진 적지 않은 무게감을 부담으로 안고 제작됐다. 2년 만에 백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순전한 소설적 성취라기보다는 이 소설이 던지는 성차별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만든 신드롬에 가까웠다.MBC 'PD수첩'의 메인 작가로 일하다 육아문제 때문에 전업 작가가 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네 사회가 그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했던 무수한 사례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가족사와 또 사회 경험을 통해 그려졌다. 여성들은 일제히 공감을 표했고,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등장했던 젠더 문제를 상징하는 작품처럼 회자됐다. 한 작가가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던진 목소리는 그렇게 비슷한 현실을 경험한 여성들의 공감대를 통해 신드롬이 됐다.흥미로운 건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권 전체에서도 벌어질 신드롬의 예고였다는 점이다.2018년 12월 일본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이틀 만에 아마존 재팬 아시아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2019년 8월까지 13만 부 이상 판매됐다.지난 9월 중국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반응도 심상찮다. 10월16일 기준으로 중국 최대 규모 온라인 서점인 당당에서 소설 부문 1위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국의 소설에 대한 반응 중에는 "동아시아에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은 김지영 안에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이라는 흥미로운 댓글들도 있었다.그만큼 젠더 문제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그간 가부장적 체계 속에서 억압된 삶을 살아온 아시아권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무게감은 일반적인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영화로서는 고스란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실제로 영화는 영화화가 결정되던 2017년부터 지금껏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18년에 정유미가 주연배우로 결정됐을 때도 비난의 목소리가 배우에게 향한 바 있고, 영화 개봉에 즈음해서는 평점 테러가 이어졌다.이유는 이 콘텐츠가 남녀 간의 성대결을 통해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부터 쏟아져 나온 선입견과 젠더의식이 성대결을 야기한다는 오인은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발목을 잡는 듯 싶었다.◆'82년생 김지영', 개봉 후 공감으로 돌아선 이유하지만 영화는 개봉 후 반전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가 평점테러를 할 만큼 성별 갈등을 부추기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공감하게 되면서다. 사실 이건 젠더 문제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사실 여성들이 겪어온 성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건, 남성들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여성의 불행은 또한 성별을 떠나 우리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영화는 젠더 문제가 바로 이렇게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가야 하는 문제라는 걸 오롯이 드러낸다.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 단절이 된 김지영(정유미 분)이 별 문제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 빙의돼 버리는 정신과적 문제를 얻는다. 이를 알게 된 가족들(남편을 비롯해 엄마, 아빠, 동생, 언니 등)이 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구성과 내용만으로 보면 사회극이라기보다는 가족극에 더 걸맞다. 실제로도 영화는 가족 간의 과거사가 현재의 결과들과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후회와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지점은 그래서 여성들이 겪는 공감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왔던 시절의 가부장적 분위기가 현재 그 결과로서 만들어낸 자식의 비극을 목도하는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 적지 않다.◆'82년생 김지영'이 악역을 세우지 않은 건무엇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보다 훨씬 담담하게 그려진다. 소설은 마치 르포에 가깝게 당대의 여성들이 겪은 차별의 에피소드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줄줄이 나열했다. 영화는 그보다 김지영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주변 가족들이 가진 저마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 문제는 굉장한 사건을 통해 보여지기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 우리도 모르게 먼지처럼 누적되어 있는 소소한 차별과 편견, 선입견 등의 디테일들을 통해 그려진다.김지영이 집안에서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육아의 풍경들을 짧게 보여준 후, 저녁 노을이 퍼져가는 시간 베란다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건 그래서 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담담함을 잘 보여준다. 성차별의 문제는 사실 특별한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넘어가는 그런 것이라는 걸 그 장면이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건 악역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어머니나 아버지는 시대착오적인 말들을 김지영에게 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악역으로 그려지진 않는다. 악의가 없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이라는 것. 그건 어쩌면 그 가부장적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이 당연히 감내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그 시대에서도 비극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김지영의 남편 정대현(공유 분)도 어떻게든 아내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 누구보다 그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육아를 전혀 책임지지 않는 사회와 그래서 경력단절 같은 희생을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그 현실 앞에서 남편도 아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게 된다.결국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성별 갈등을 부추긴다기보다는 우리네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을 온전히 떠안고 있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그 고통을 공감해보는 것이다. 김지영을 둘러싼 남편의 시선과 부모 그리고 남매, 직장 상사와 동료의 다양한 시선으로 그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더더욱 분명해진다. 김지영의 문제는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 그걸 이 영화는 지극히 차분한 어조로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2019-11-06 13: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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