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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MBC 백파더…백종원의 라이브 요리쇼, 과연 통할까?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MBC 백파더…백종원의 라이브 요리쇼, 과연 통할까?

전국의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백종원이 다시 요리 사부로 돌아왔다. 그런데 tvN '집밥 백선생'과는 달리 MBC '백파더'는 라이브 요리쇼라는 색다른 선택을 했다. 과연 이 모험적인 선택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리를 멈추지마! '백파더'가 의도하는 건MBC '백파더'의 포스터는 영화 '대부'(Godfather)에서 따왔다. 검은 정장을 한 백종원이 대부처럼 서 있는데 손에 들려 있는 건 갖가지 식재료들이다. tvN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백주부'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지칭은 어딘지 요리나 가사가 주부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이 담겨져 있어 비판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백파더'는 물론 대부의 이미지를 갖고 오면서도 대놓고 '요리 아버지'라는 요리하는 남성을 전면에 세운다는 점에서 다소 의도적인 프로그램명의 느낌을 준다.백종원이 '백파더'로 돌아온 건 이 프로그램이 아예 대놓고 드러내는 특정한 타깃층과 관련이 있다. 백종원은 요리를 조금이라도 하는 분들이라면 이 프로그램이 재미없을 거라며 보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백파더'의 눈높이는 이 프로그램이 '요린이'(요리+어린이)라고 부르는 요리에 전혀 지식도 경험도 없는 이들에 맞춰져 있다. 첫 회 계란을 소재로 한 한 시간 반 동안의 방송 동안 계란 프라이 하는 법 한 가지를 알려줬다는 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이 가진 낮은 눈높이를 실감할 수 있다.그런데 놀라운 건 누구나 프라이팬에 기름 둘러 계란만 까놓으면 저절로 되는 거라 생각했던 계란 프라이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요린이들이 꽤 많다는 걸 첫 방송부터 보여줬다는 점이다. 두 번째 요리 주제로 선정된 두부로 두부김치 하나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요린이들은 야단법석을 일으켰다. 이는 백종원과 보조로 서 있는 양세형을 놀라게 만들었다.이로써 '백파더'가 의도하는 바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것은 요리에 '요'자도 모르는 이들에게 기초적인 재료로 만드는 간단한 요리들을 그 눈높이에 맞춰 가르쳐주겠다는 것. 이로써 백종원은 누구라도 요리 하나쯤은 뚝딱 해낼 수 있는 요리강국(?)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생방송의 묘미 혹은 방송사고하지만 문제는 '백파더'가 토요일 오후 5시부터 1시간 30분동안 생방송으로 하는 '요리쇼'를 형식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언택트 개념을 적용했고, 그래서 스튜디오에서는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온라인 화상으로 연결된 요린이들이 스크린 가득 띄워져 백종원과 실시간 소통을 한다. 즉 방송을 통해 요리를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실제 백종원과 같이 요리를 하면서 이것저것 일러주는 라이브 요리쇼의 형식을 채택한 것.생방송은 궁금한 점을 바로바로 질문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어떤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을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칫 방송사고의 우려를 갖고 있다. 실제로 첫 방송은 방송사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우왕좌왕하는 프로그램의 면면들을 보여줬다. 방송에 있어서도 능숙하기로 소문난 백종원은 물론이고 양세형도 당황해서 헛웃음을 지었고, 이들은 결국 어찌저찌 시간이 흐르고 방송이 끝나고 나서는 다리가 풀릴 정도로 생방송이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동시에 접속한 50명에 가까운 요린이들이 동시에 질문을 쏟아 내거나 할 때 멘트가 겹쳐지고 때로는 연결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 소리가 뚝뚝 끊기는 돌발상황까지 발생했다. 애써 양세형은 이것이 "생방송의 묘미"라고 둘러 댔지만 실제로는 연달아 터져버린 방송사고가 만든 당혹감이 역력했다.물론 생방송도 여러 차례 하면서 조금씩 안정되었다. 백종원은 대놓고 생방송 재미없다고 선을 그었고 무작위로 마구 이뤄지던 질문과 대답도 어떤 정해진 룰을 따라 함으로써 겹치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갔다. 그래도 생기는 의외의 상황들에도 이제 백종원과 양세형은 느물느물하게 대처하며 넘어가는 요령을 발휘했다.◆요르신의 탄생이 만든 새로운 관전 포인트그런데 '백파더'는 생방송의 그 혼돈 속에서 의외의 스타(?)를 발굴해냈다. 이른바 구미 '요르신'(요리+어르신)이라 불리는 김태훈(65) 씨다. 그 곳 이장이라는 요르신은 지금껏 요리라는 걸 해본 적이 전혀 없는 분으로 '망한 요리'에도 클라쓰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두부김치를 하면서 두부를 시커멓게 프라이팬에 태워먹질 않나, 식빵 토스트를 만드는데 식용유를 들이붓기도 하고 고추장을 바르고 청양고추를 뚝뚝 잘라 넣는 '괴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요르신은 백종원이 알려주는 레시피를 아예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만의 길(?)을 가는 요리를 선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자신이 만든 게 자기 입에는 더 맞다(라면의 경우가 그랬다)고 말함으로써 백종원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요르신이 인기를 끌게 된 건 '백파더'가 가진 일련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정서적 흐름 또한 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즉 모든 국민들이 요리 하나쯤을 해야 한다는 다소 강박적인 프로그램의 모토에 반해 못해도 '나홀로 길'을 걸어가는 요르신의 모습이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줬고, 나아가 요리 대부처럼 서 있는 백종원이라는 권위에도 때로는 자기 요리가 낫다며 '입맛의 다양성'을 꺼내놓는 모습이 전국의 요린이들에게 어떤 쾌감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요르신의 등장은 '백파더'가 추구하는 재미의 방향성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즉 '백파더'는 결국 요린이들에게 요리를 알려주는 정보제공에 포인트가 맞춰진 것이지만, 요르신이 주는 재미는 정보보다는 '엉망진창'이 되는 엉뚱한 상황이 주는 코미디적인 웃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파더' 생방송은 이처럼 정보가 주는 재미보다 한 시간 반 동안 겨우 계란 프라이 반숙 하나를 가르치고 배우는데도 쩔쩔매는 '개그콘서트'의 콩트 같은 상황이 주는 의외의 재미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향성은 과연 괜찮은 걸까.◆요리정보와 쇼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백파더'는 요리 프로그램이 아닌 '요리쇼'라고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즉 요리 프로그램이 추구해야 하는 정보만큼, 생방송이 주는 쇼적인 요소들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라는 뜻일 게다. 결국 '백파더'는 생방송과 동시에 편집본을 구분해서 방영하기 시작했다. 생방송이 다소 정돈되지 않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쇼에 가깝다면, 편집본을 통해 좀 더 정보에 맞춰진 정돈된 영상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백파더'의 생존이 정보와 쇼 사이의 균형 잡기에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최근 들어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다 조금씩 사그라들었던 먹방과 쿡방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음식을 해먹는 일이 공감가는 일상으로 자리하고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백파더'는 정확히 이러한 트렌드 변화에 잘 맞춰진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건은 균형에 있다. 생방송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정보를 전할 것인가. 제작진이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다.

2020-07-30 14: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 시국의 역발상…‘비긴 어게인’이 깨워낸 음악의 새로움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 시국의 역발상…‘비긴 어게인’이 깨워낸 음악의 새로움

코로나19 시국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편은 이런 시기일수록 음악이 주는 힘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걸 보여줬다. 또한 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도.◆코로나19 시국에 버스킹을?코로나19로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영향을 받고 있지만 JTBC '비긴 어게인'만큼 직격탄을 맞은 프로그램이 있을까. 해외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을 소재로 하는 음악프로그램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지금, 해외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길거리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 버스킹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시국이 지나고 나서야 돌아올 줄 알았던 '비긴 어게인'이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건 사실이다.하지만 '비긴 어게인'은 버스킹 장소를 국내로 바꾸고, 그것도 코로나19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찾아 음악으로 작은 위로를 선사한다는 취지를 더함으로써 이런 우려를 기대로 바꿔 놓았다. 첫 방송에 텅 빈 공항을 찾아 그 곳에서 쉴 틈 없이 일하는 분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음악이 가진 마법 같은 힘을 경험하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 곳을 찾은 '비긴 어게인' 가수들이 불러주는 노래는 코로나 상황을 잊게 해주었고, 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칫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만들어지는 시국에도 우리의 마음이 음악 하나로 묶이고 소통하며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2회에 찾아간 대구 동산병원에서 이소라와 크러쉬가 한 버스킹은 이러한 '비긴 어게인'의 취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번 코로나19의 최전선으로 싸워온 의료진들을 위해 불러주는 노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그저 언제 어디서나 틀면 들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의 시대에 살고 있어 흔해져 버린 음악이지만, 실상 음악이 어려운 시국에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가를 실감하게 해준 버스킹이었다.◆'비긴 어게인'이 새롭게 찾아낸 공연의 공간들하지만 이번 '비긴 어게인'이 시도한 역발상을 통해 얻은 더 큰 수확은 공연의 다양한 새로운 공간들을 발견해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텅 비어버린 공간은 그 자체로 공연장이 되어 주었다. 대구 지역 예술가들의 공간 수창청춘맨숀에서 헨리와 수현이 함께 '아로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 깊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어버린 공간을 음악으로 채워넣는 느낌이랄까.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 공연으로 시도된 베란다 버스킹은 마치 세레나데를 부르는 듯한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기도 했다.또 평시라면 관객들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을 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비어버린 경기장에서 초대된 손님들을 잔디밭 위에 앉혀 놓고 노래를 부르는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그 빈 공간이 음악으로 채워지자 코로나19로 헛헛했던 마음도 정서적 포만감으로 채워졌다. 손님을 태우고 어딘가로 떠났어야 하지만 역시 텅 빈 채 정박되어 있는 크루즈에서 펼쳐진 버스킹도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강원도 평창의 산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들도 또 텅 빈 학교를 채우는 노래들도 시청자들에게는 힐링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마법에 걸려 모든 게 멈춰선 텅 빈 공간을 음악이라는 주문으로 깨워내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비긴 어게인'이 찾아낸 새로운 음악적 공간의 백미는 포항 제철소에서 헨리가 그 곳의 다양한 소리들을 채집해 퍼포먼스와 함께 부른 이매진 드래곤스의 'Believer' 공연이었다. 포항 제철의 철의 느낌이 주는 그 강한 인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해낸 듯한 이 공연은 공간이 음악과 어우러질 때 얼마나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가를 보여줬다.◆'비긴 어게인', 그래도 공연은 계속 된다'비긴 어게인'은 코로나 시국에 맞춰 사전 안전망을 갖춘 새로운 공연들을 시도했다. 첫 회에 등장했던 '드라이브 인 버스킹'은 마치 코로나 시국과 맞서 공연은 그래도 계속 되어야 한다는 이 프로그램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자동차를 탄 채 공연을 감상하고, 박수 대신 라이트와 경적을 울려 환호를 표현하기도 한 그 공연은 이 와중에도 공연이 충분히 가능하고 나아가 즐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1층에 관객들이 자리하고 베란다에서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베란다 버스킹, 커다란 경기장에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텐트들을 쳐놓음으로써 더욱 낭만적인 느낌을 연출했던 경기장 버스킹, 산 정상에 편안한 빈백에 앉아 시네마 음악들을 선보였던 '시네마 버스킹' 등등 다양한 비대면 아이디어와 공간을 콘셉트로 삼은 공연들이 펼쳐졌고, 거기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게 만든 마킹들이 여지없이 놓여졌다. 공연의 공간을 극장이나 콘서트홀 정도로 국한해 생각했던 개념을 깨니 다양한 공간들이 가능해졌다.지금도 여전히 공연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비대면 공연은 방송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해낸다면 공연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실제로 거리두기를 한 채 시도되는 공연들이 늘고 있다.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비긴 어게인'이 코로나 시국을 넘어서기 위한 역발상으로 찾아낸 다양한 공연의 공간과 방식은 그래서 향후 코로나가 지나고 나서도 한번쯤 공연계가 숙고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어쩌면 공연과 음악의 새로움을 더해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2020-07-23 14: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사이코지만 괜찮아’…잔혹동화로 꼬집는 현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사이코지만 괜찮아’…잔혹동화로 꼬집는 현실

김수현의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기대감으로 봤는데 보면 볼수록 조용 작가와 박신우 연출자가 새롭게 보인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멜로드라마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 안에 만만찮은 세계에 대한 대결의식을 보여주고 있다.◆잔혹동화로 꼬집는 현실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부제는 모두 동화들로 채워져 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빨간구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젤', '푸른수염', '미녀와 야수' 같은 동화에서 따온 제목들도 있지만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좀비 아이', '봄날의 개' 같은 이 드라마를 쓴 조용 작가가 직접 쓴 동화들도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동화들, 특히 작가가 직접 쓴 동화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그려내는 동화가 아니다. 기존 동화의 세계를 뒤집어놓은 이른바 '잔혹동화'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첫 회 시작과 함께 들려준 첫 번째 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죽음의 그림자를 끌고 다녀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 괴물로 불린 소녀가 강에 빠진 소년을 구해주고 함께 다녔지만, 결국 두려워 소년이 도망치자 엄마가 '넌 괴물이라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 첫 번째 동화는 이 드라마 속 문영(서예지)과 강태(김수현)가 어려서 겪은 사건들을 담고 있다. 동화 속 소녀는 문영이고 소년은 강태다. 숲 속 대저택에서 살았던 문영은 자신에게 정신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에 속박된 채 학대받았고, 그러던 어느 날 강물에 빠진 강태를 구해줬지만 그 역시 도망치고 말았던 것. 드라마 속 동화작가 문영이 쓴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동화가 말하는 건 '그래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그렇게 냉혹하다는 걸 말해준다.이것은 '좀비 아이' 같은 동화를 통해 더 극적으로 제시된다. 감정이 없고 식욕만 있는 좀비로 태어난 아이. 그래서 엄마는 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밤마다 남의 집 가축을 훔쳐 먹이를 주며 키웠는데, 역병이 돌아 먹을 게 없어지자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팔 다리를 잘라주고 남은 몸을 맡기는 엄마. 그런데 아이가 몸통만 남은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던지는 말이 반전이다. "엄마는 참 따뜻하구나." 이 동화는 평범하지 않아 특별(?)하게 키워진 문영이 원했던 것이 결국은 온기였다는 걸 담는다.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가치가 부정된 이들 역시 누구나 온기는 필요하다고.◆달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마치 팀 버튼의 세계가 그러하듯 다소 어둡고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도 동화 같은 따뜻함 같은 게 느껴진다. 문영과 강태가 다시 만나 사랑해가는 그 멜로가 드라마의 겉옷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감싸 안아주며 그를 통해 살아갈 수 있게 하는가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애'로 확대된다. 나아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이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차별당하는 현실까지 그 멜로 속에 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다분히 비판적인 사회극의 특징까지 보여주고 있다.즉 강태와 문영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된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강태는 어려서부터 자폐를 가진 형을 지켜야 하고 자신은 그래서 존재한다는 엄마의 말에 상처 입었다. 문영은 자신에게 집착하며 마치 자신을 그의 작품처럼 여기며 속박하는 엄마로부터 학대받았다. 문영은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빈 깡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강태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채 형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를 은유적으로 해석해 들여다보면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고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된 이들이 서로 만나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과정이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로 읽힌다.그런데 이처럼 어른들의 잘못으로 사랑조차 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에 서 있는 문영과 강태에게서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지금의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다. 거듭된 경제위기에 치열해진 취업 현실 속에서 결혼은커녕,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기며 일찌감치 많은 걸 포기해버린 채 살아가는 청춘들. 물론 드라마의 배경인 '괜찮은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더 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묵직하게 찌르는 건 강태와 문영으로 대변되는 청춘의 초상들이다.이런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7회에 담았던 '봄날의 개'라는 동화의 메시지가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낮에는 잘 놀아서 봄날의 개로 불리던 개가 밤만 되면 울었는데, 사실 그건 목줄을 끊고 봄의 들판을 마음껏 뛰어 놀고 싶지만 오래 묶여 있어 목줄 끊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동화. 지금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봄날의 개 같은 존재들이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위장하지만 밤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무수한 금기에 갇혀 심지어 평범한 삶조차 꿈이 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조금 달라도 스스로 묶어둔 속박을 벗어버려도 괜찮다고.

2020-07-16 14: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투게더’, 언어, 국적 초월 여행 예능의 신세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투게더’, 언어, 국적 초월 여행 예능의 신세계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여행을 통해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투게더'는 이승기와 대만의 스타 류이호가 팬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독특한 여행 예능의 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이승기와 류이호가 함께 여행한다는 것만으로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전 이승기와 류이호는 사전 미팅을 가졌다. 류이호는 '안녕, 나의 소녀', '결혼까지 생각했어' 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팬층이 두터운 대만 배우다. 훈훈한 외모가 이승기와 닮아 있어 어딘가 친숙함을 주지만 그런 사전 미팅의 짧은 만남으로 어색함이 없을 리 없다. 중국어를 잘 모르는 이승기와 역시 한국어를 모르는 류이호는 영어로라도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 능숙하지는 않다. 그러니 첫 번째 여행지인 인도네시아의 욕야카르타 공항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가운 기색은 역력했지만, 금세 어색한 분위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숙소로 가는 차 안에서 간단한 영어만 툭툭 던져 놓을 뿐 침묵이 흐른다.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투게더'는 어쩌면 바로 이 국적과 언어 그리고 문화가 달라 낯설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그 색다른 지점이 기획의 중요한 포인트가 됐을 걸로 보인다. 우리네 여행 예능은 KBS '1박2일' 같은 국내여행을 시작으로 tvN에서 나영석 PD가 해온 '꽃보다' 시리즈 같은 일련의 해외여행까지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tvN '짠내투어'처럼 가성비 혹은 가심비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장착한 여행 예능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러니 여행이라는 소재로 차별성을 찾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하지만 '투게더'는 지금껏 그 어떤 여행 예능이 가지 않았던 길을 국적이 다른 두 명의 스타를 세워 놓음으로써 걷게 만들었다. 이들은 과연 여행을 통해 국적과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까. 궁금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넷플릭스와 조효진 PD 그리고 여행 소재의 만남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가 SBS '런닝맨'으로 유재석의 해외 팬덤은 물론이고 이광수를 '아시아 프린스'로까지 불리게 했던 조효진 PD라는 사실은 이 여행이 그저 평범하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게 해준다. '게임예능'의 대가로 정평이 난 조효진 PD는 이후에도 넷플릭스와 손잡고 스케일을 확 키운 '범인은 바로 너'를 시도했던 PD가 아닌가.'투게더'는 그래서 이승기와 류이호에게 '팬을 만나러 간다'는 여행의 중요한 테마를 집어 넣었다. 현지의 팬이 추천하는 여행 코스들을 체험하며 그 곳에서 제시되는 미션을 해결할 때마다 주어지는 단서를 조합해 팬이 사는 곳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고아 좀블랑에서 동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천국의 빛'을 맞이하고, 프람바난 사원에서 힌두교의 신들을 만난다. 발리에서는 바다 작살 낚시에 도전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한다.물론 이런 명소들마다 주어진 미션들이 있고, 그것을 수행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미션들을 어려워도 해내는 과정들에는 이들의 팬을 만나고 싶은 그 진심이 담긴다. 또한 함께 서로 도와야 해결할 수 있는 미션들은 언어도 국적도 문화도 달라 어색했던 이승기와 류이호의 브로맨스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다. 힘들 때 서로 손을 내밀고, 으쌰으쌰 서로를 응원하며, 미션을 해결했을 때는 서로 부둥켜안고 그 기쁨을 나눈다. 이러니 이들 사이에 놓여진 경계나 어떤 벽 같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또한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미션으로 주어진 배드민턴 대결 같은 미션을 수행할 때는 그 곳 낯선 사람들과 이뤄지는 교감 역시 훈훈한 광경을 연출한다. 어느새 몰려들어 이승기를 외치며 응원하는 팬들은 이들이 아시아 전역에 팬층을 갖고 있는 글로벌 스타라는 걸 실감케 한다.◆넷플릭스여서 가능했을 법한 프로젝트사실 생각해보면 서로 다른 국적의 청년 둘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단순한 콘셉트처럼 보이지만, 국내에서 이런 시도가 잘 보이지 않았던 건 로컬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예능의 특성 때문이었을 게다. 그런 점에서 보면 '투게더'는 넷플릭스 오리지털 시리즈라는 글로벌 관점이어서 가능했을 법한 프로젝트라 여겨진다. 이승기와 류이호를 묶어 아시아 여러 국가의 여행지를 여행한다는 발상은 한국 팬들과 대만 팬은 물론이고 아시아 팬들까지 소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로컬 관점으로 보면 애매할 수 있지만 글로벌 관점으로 보면 이만한 아이템이 없는 셈이다.그래서 '투게더'는 넷플릭스로 상징되는 초국적인 글로벌 프로젝트가 이제는 충분히 가능한 시대에 들어왔다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국경으로 나누어지던 세계가 이제는 네트워크를 통해 하나로 묶여지고, 그것을 콘텐츠로서 실현해 보여주고 있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세계에서 이제 각각 다른 문화들을 가진 이들이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가능성은 이제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다.'투게더'를 보다보면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이웃 동네처럼 가까워져 있는가를 실감하게 만든다. 하루는 인도네시아에 있다가 다음날에는 발리로 또 그 다음날에는 방콕으로 옮겨 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적어도 아시아를 진짜 이웃으로 실감하게 해준다. 물론 어색했던 이승기와 류이호가 단 며칠 만에 스스럼없이 가까워지는 그 브로맨스만으로도 그런 실감은 충분하지만.

2020-07-08 14:21:17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가족입니다’…개인주의 시대에 다시 묻는 가족 진면목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가족입니다’…개인주의 시대에 다시 묻는 가족 진면목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우리가 흔히 가족드라마라고 부르는 그런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가족드라마가 그리곤 했던 막연한 가족애를 담는 대신, 우리가 몰랐던 가족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기억과는 다른 가족의 실체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에서 김상식(정진영)은 고압적이고 때론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그의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내 이진숙(원미경)이 어느 날 갑자기 "졸혼하자"고 하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건 이 집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갑작스런 졸혼 선언에 조금 놀라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써 반대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하지만 김상식은 전형적인 가부장이라는 그런 선입견을 드라마는 금세 보기 좋게 깨버린다. 졸혼 선언에 충격을 받았던 김상식은 어느 날 야간산행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기억이 22살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그의 22살 모습은 가부장과는 거리가 먼 사랑꾼 그 자체다. 아내를 "진숙씨"라 부르고 손을 잡고 걸으려 하며 말투도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그래서 난감해진 건 오히려 아내다. 그는 젊은 시절 상식의 도시락에 넣어줬던 애정 가득한 쪽지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렸지만, 김상식이 그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은 여리고 쉽게 왜곡된다. 심지어 가족에 대한 기억조차 그렇다.자신이 사실은 그런 폭력적인 남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식은 기억을 되찾았다 거짓말을 하며 진숙을 위해 졸혼을 서두른다. 그런데 상식과 진숙 사이에는 가족들은 모르는 비밀이 존재했다. 맏딸 은주(추자현)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대학시절 은주를 갖게 된 진숙이 아기를 위해 자신을 짝사랑하던 상식과 결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상식은 임신한 진숙까지 받아들이며 헌신한 아빠인가 아니면 그걸 약점 삼아 진숙을 억누르며 살아온 가부장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주와 둘째 딸 은희(한예리)는 그래서 엄마 편 아빠 편으로 갈라져 심한 말다툼을 벌인다. 같은 엄마, 아빠이지만 가족의 일원인 딸들이 생각하는 그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다르다. 드라마는 질문한다. 우리는 과연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가족, 가까이 있어 더 모르는"어떤 과학자가 그랬어. 우리는 지구 내부 물질보다 태양계의 내부물질을 더 많이 안다고.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 내부물질을 알면 뭐하니 이런 거지. 가족이 딱 그래." 은희의 남사친 박찬혁(김지석)이 툭 던지는 이 말은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다. 가까이 있어 더 모르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박찬혁은 가족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타인이랄 수 있는 박찬혁이 하고 있는 건 어쩌면 가족이 타인보다도 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걸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가족입니다'는 이런 상황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은주의 남편이 성 소수자였다는 에피소드를 더해 넣는다. 결혼해 함께 살아왔고, 아이를 갖기 위해 홀로 고통스런 시술을 받기도 했던 은주였다. 그런데 뒤늦게 남편이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는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면서 그토록 모든 일에 굳건해 보였던 그는 무너져 내린다. 가족이라 여겼던 삶의 테두리가 그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김상식과 이진숙의 가족은 그래서 그 비밀을 걷어내고 또 기억의 왜곡을 바로 잡아 들여다보면 마치 하나의 허상처럼 보인다. 가족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사실은 타인보다도 모르는 가족.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족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의 가족이 과연 실체가 있었는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게 허용되던 시절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들과 상처들이 비밀처럼 숨겨져 있고 심지어 어떤 건 기억 자체를 왜곡해 애써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지는 않았는지.◆개인주의 시대에 묻는 가족의 의미'가족입니다'는 그래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부모와 자식들이라는 표피적인 가족이 아니라, 저마다의 비밀이나 기억을 갖고 있는 개인에 초점을 맞춰 그 가족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가부장적인 아빠 상식은 젊은 시절 한 여성에게 순애보를 보내던 사랑꾼이었고, 모든 걸 희생하면서 살아오다 졸혼을 요구한 엄마 진숙은 한때 상식의 도시락에 애정 담긴 메모를 넣어주던 여자였다. 너무나 성격이 달라 자매 같지 않다던 은주와 은희는 실제로 아빠가 달랐고, 그저 겉보기엔 잘 나가는 의사 남편과 변리사 아내처럼 보이던 은주와 남편 태형(김태훈)은 성 정체성 자체를 숨긴 채 살아왔던 걸 뒤늦게 알아차릴 정도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대가족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요즘 가족의 존재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한 때 가부장제 같은 권위주의적인 시대가 만든 가족의 문제들은 이제 가족 자체를 거부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대에 '가족입니다'는 새삼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온 걸까. 그건 가족 해체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라는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혼자 사는 삶이어서 더더욱 새로운 가족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새로운 시대에 가족이란 가족이라는 틀에 매몰되는 개인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인들의 진짜 삶이 모여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런 가족일 게다. 가족이지만 별로 아는 건 없는 현 시대에 이제 거꾸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꿈꾸는 이 드라마의 독특한 목소리가 유독 울림을 갖는 이유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0-07-02 15: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꼰대인턴’, 갑을관계 고민하는 오피스드라마의 진화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꼰대인턴’, 갑을관계 고민하는 오피스드라마의 진화

MBC '꼰대인턴'은 꼰대와 인턴이라는 갑과 을을 상징하는 위치에 선 인물들이 정반대의 역전된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갑질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담는 최근의 경향과 달리 이 오피스드라마는 양자의 입장을 들여다본다는 점이 특이하다.◆꼰대와 인턴의 관계를 뒤집어보면만일 저런 꼰대를 내 밑에 두게 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은 바로 그런 상상에서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 많은 청춘들이 인턴으로 등장하는 오피스드라마에서 그들은 꼰대들의 갑질에 너덜너덜해지는 입장이 아니던가. '꼰대인턴'은 발칙하게도 이 상황을 뒤집는 상상을 드라마의 주요 배경으로 삼아 넣는다. 한 때 옹골 라면사업부 팀장으로서 당시 인턴으로 들어왔던 가열찬(박해진)에게 갖가지 갑질을 해 결국은 퇴사하게 만들었던 이만식(김응수) 부장. 하지만 그로부터 5년 후 상황은 역전된다. 퇴사한 가열찬은 준수식품에 들어가 핫닭면을 성공시키면서 승승장구하고 회장이 총애하는 마케팅 영업팀 팀장이 된다. 하지만 옹골에서 퇴직해 아파트 경비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이만식은 그의 오랜 친구인 준수식품 마케팅영업본부장 안상종(손종학)의 제안으로 가열찬의 팀에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오게 된다.이 역전된 상황만 놓고 보면 마치 가열찬의 일방적인 갑질 복수극이 그려질 것 같지만 드라마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퇴사하며 이만식 같은 꼰대는 되지 않겠다 마음먹었던 가열찬은 이만식에 대한 사적 복수심과 자신의 소신 사이에서 갈등하고, 이만식이 의외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나아가 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꼰대 짓도 해야 하는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이만식이다. 그 역시 꼰대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그런 갑질까지 하게 됐다는 걸 가열찬은 조금씩 알아간다. 또한 을의 위치에 처하게 된 이만식 역시 자신이 했던 꼰대 짓으로 힘겨웠을 비정규직 인턴의 입장을 공감하기 시작한다.◆오피스 드라마의 진화, 진짜 꼰대는 누구인가'꼰대인턴'이 특이하게 느껴지는 건 단순한 갑을 대결을 다루고 있지 않아서다. 팀 내에서 팀장과 인턴은 마치 갑과 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팀이고 그래서 위기상황을 맞았을 때 모두가 힘을 합쳐 이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이를 넘어섰을 때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뻐한다. 다만 이런 동료를 갑과 을로 애써 나눠놓고, 팀장으로 하여금 꼰대 짓을 하게 만드는 이들은 저 뒤편에 서 있는 경영진들이다. 그들은 실적을 성적표처럼 들고 팀장을 압박한다. 결국 그 역시 한 사람의 샐러리맨일 수밖에 없는 팀장은 싫어도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다.우리네 오피스 드라마가 갑을 관계를 본격적인 소재로 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13년 방영된 KBS '직장의 신'은 부장조차 쩔쩔매는 슈퍼갑 계약직 미스 김(김혜수)이 등장해 갑질에 철저히 '을질'로 역공하는 판타지를 통해 시청자들을 속 시원하게 만들었다. 2014년 드라마화된 tvN '미생'에서도 철저한 을의 위치에서 힘겹게 버텨내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비정규직 인턴 장그래(임시완)의 이야기를 그렸고, 2015년 JTBC '송곳'은 대량 해고 사태에 맞서 싸우는 비정규직의 대결을 다뤘으며, 2016년 방영된 '욱씨남정기', 2017년 방영된 '김과장' 역시 갑질 하는 꼰대들과 맞서는 당당한 을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하지만 갑과 을의 단순한 대결을 다루던 우리네 오피스 드라마도 조금씩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방영된 SBS '스토브리그'는 단적인 사례다.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에 오게 된 백승수 단장(남궁민)이 팀원들과 힘을 합쳐 다음 시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다뤘다. 여기서 갑질하는 존재는 단장이 아니라 구단주의 조카인 권경민(오정세) 같은 인물이다. '꼰대인턴'은 바로 이런 '스토브리그'가 그려냈던 진짜 배후에 존재하는 갑에 대해 팀이 하나가 되어 대결하는 구도를 담는다.우리네 오피스드라마에서 '꼰대'와 '인턴'은 너무나 정형화된 위치로 그려지곤 했다.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꼰대들이 드라마의 극성을 높여 놓는다면, 짠내 가득한 비정규직 인턴들의 고군분투는 이들의 사이다 복수극이나 혹은 그 시스템으로부터의 탈출을 담는 게 하나의 공식이 되어 있었다. '꼰대인턴' 역시 그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그 위치가 만들어내는 역할과 입장에 대해 들여다본다는 점이 다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애초 이 드라마를 기획하게 된 그 상상, 즉 꼰대와 인턴이 역전된 관계는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계를 뒤집어 놓으니 비로소 누구는 꼰대 역할을 하고 누구는 비정규직 인턴으로 버텨내야 하는 회사의 수직적인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된 것이다.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꼰대인턴'의 미덕은 우리가 막연히 꼰대와 인턴을 나눌 때 머리 속에 그리는 나이와 세대에 대한 관점 또한 편견이라는 걸 보여준 점이다. 나이가 아닌 서열구조에 따라 젊은 꼰대가 가능하고, 나이 든 인턴 또한 가능하다는 것. 여러모로 '꼰대인턴'은 단순한 대결로 그려지는 갑을 관계를, 그 역할을 뒤집어 놓음으로써 역지사지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할 거리들을 만든다는 점에서 오피스드라마의 또 다른 진화로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2020-06-25 15: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변함없는 트렌드 세터 이효리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변함없는 트렌드 세터 이효리

이효리는 한번도 트렌드의 중심에서 빗겨간 적이 없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 혼성 댄스그룹 활동을 위해 소속사까지 갖춘 이효리는 역시 여전히 뜨겁다. 도대체 이효리의 무엇이 이런 지속적인 열광을 만드는 걸까.◆돌아온 이효리, 이 솔직 당당함을 누가 이길까이효리가 돌아왔다. 이번엔 MBC '놀면 뭐하니'의 혼성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란다. 심지어 소속사까지 갖추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는 이효리는 한껏 설레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 '깡 신드롬'으로 세간의 모든 화제를 쓸어 담고 있는 비도, 또 유산슬에서부터 유르페우스 같은 다양한 부캐(부캐릭터)를 확장시켜 화제가 되고 있는 유재석 앞에서도 이효리의 당당함과 솔직함은 모두를 압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둘 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이 미혼 시절 한 시상식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는 공연 영상을 보면서, 다소 난감해 한 비가 의도적으로 그 때 "훨씬 친해질 수 있었는데 바빴다"고 선을 긋자, 이효리가 한 발 더 나가 "사귈 수도 있었어"라고 말하는 대목은 단적인 사례다.이효리는 다소 난감할 수 있는 이야기나 상황에 오히려 더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혼성 그룹을 하며 "꼬만춤은 포기 못한다"는 비의 이야기에 이효리가 "그럼 나도 해도 돼?"라고 되물어 비와 유재석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효리는 세상사를 어느 정도 겪어본 성인으로서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걸 드러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졌다.이효리의 솔직함은 유재석이라고 해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의 다른 출연자들은 유재석을 유느님처럼 바라보며 조심스러워하지만, 이효리는 "이렇게 저렇게 다 생각을 해봐도 오빠가 (혼성그룹에) 왜 있어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그의 포지션에 대해 지적했다. 그런데 그건 향후 유재석이 이 혼성그룹 활동을 할 때도 내내 따라다니는 질문이 될 수 있었다. 그 이유를 고민하고 자신의 포지션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효리는 피하지 않고 조언해준 것이다.◆구시대 감성 유재석과 비 사이에서 빛나는 이효리의 트렌디함'놀면 뭐하니'의 혼성 그룹 프로젝트에서 유재석과 비는 다소 구시대 감성을 드러낸다. 이번 프로젝트가 시작된 게 과거 90년대만 해도 쿨 같은 혼성 그룹이 여름 시장이면 여지없이 히트곡을 냈던 그 시절을 회고하게 되면서였다. 특히 댄스에 그 누구보다 갈증을 느끼는 유재석은 과거 클럽에 가면 흘러나오던 빠른 비트의 템포에 매료되어 곡 선정에 있어서도 그런 부분을 강조했다. 그건 유재석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것이지 실제 가수였다면 구시대적이라고 외면 받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비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7년 냈던 '깡'이 당시에 혹평과 조롱을 받았던 건 거기 등장하는 춤이나 음악이 시대에 뒤떨어진 과한 춤이라는 대중들의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혹평과 조롱이 하나의 현상이 되고 그걸 비 스스로도 즐기는 대범함을 보여주자 '깡'은 오히려 화제가 되면서 차트 역주행을 하게 됐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에 나온 비 역시 가장 막내면서도 구시대적 감성을 드러내곤 한다.하지만 여기에 다행스럽게도 트렌드 세터의 대명사 격인 이효리가 들어감으로써 그 구시대적 감성을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현재와 공유하려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레트로가 뉴트로의 성격을 갖게 된 것. 비가 노래의 아이디어로 '포기하지 마'라는 다소 옛 감성의 이야기를 꺼내놓자 이효리가 요즘은 "그런 바이브가 아니다. 포기해"를 제안하는 대목이나, 유재석이 돈이 없던 과거 시절을 떠올리며 "그 여름 내가 돈이 있었다면"이란 아이디어를 내자 이효리가 "상상플렉스로 하자"고 제안하는 대목은 그의 트렌디함이 더해져 옛 감성과 현재의 바이브가 만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이효리, 소길댁, 린다G이들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혼성 그룹의 이름과 자신들의 예명을 만들었다. 무수히 많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그 중에서 이들이 선택한 그룹명은 '싹3'다. 여름 가요시장을 싹쓸이 한다는 의미도 있고 세 사람의 싹이 모였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유재석이 해왔던 '부캐의 확장' 대열에 이효리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린다라고 부캐명을 처음에 지었던 이효리는 '지린다'라는 뜻을 더해 린다G가 되었다. 미국에서 미용실로 자수성가한 캐릭터 스토리를 더한 린다G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제주도의 소길댁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제주도에서는 너무나 친근하고 다정한 소길댁으로 살다가 서울에 오면 린다G가 되어 한바탕 뒤집어놓는 이런 부캐 활동은 이효리로서는 '즐거운 일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끔 유재석이 제주도를 찾아갔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끼와 흥을 보여주며 "나도 같이 가"라고 했던 이효리가 아닌가. 그의 당당한 일탈이 지금의 대중들에게도 어떤 시원함을 안겨주는 이유다.이효리는 과거에도 예능에서의 소탈한 모습과 가수로서의 섹시하고 화려한 모습 사이를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한 바 있다. 그러다 관찰카메라 시대가 되자 대체불가의 솔직함으로 무장한 채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을 공감시켰고, 이제는 린다G가 되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려 한다.

2020-06-18 15: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로 등장한 비대면 콘셉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로 등장한 비대면 콘셉트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네 일상을 바꿔놓고 있는 가운데, 예능 프로그램들도 색다른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언택트 예능'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 비대면을 콘셉트로 하는 이들 언택트 예능의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일까.◆현지에서 한국행을 택한 '배달해서 먹힐까'tvN '배달해서 먹힐까'는 본래 '현지에서 먹힐까'의 스핀오프격 프로그램이다. 태국에서 팟타이가, 중국에서 짜장면이, 미국에서 치킨과 햄버거가 과연 먹힐 것인가를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들여다보는 게 '현지에서 먹힐까'가 가진 기획 포인트였다. 태국에서 시도했던 시즌1은 첫 시도인 데다 실험적인 성격이 강해 1%대(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종영했지만, 중국에서 짜장면이 먹힐 것인가를 이연복 셰프가 합류해 보여줬던 시즌2가 최고 시청률 5%(닐슨 코리아)를 넘기면서 시즌3는 미국에서 짜장면과 치킨, 멘보샤 등을 파는 시도로 이어졌다.이처럼 '현지에서 먹힐까'는 우리네 이른바 K푸드가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있는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 프로그램이 더 이상 현지인 해외로 나가는 걸 어렵게 만들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국내에서 배달음식에 도전하는 '배달해서 먹힐까'다. 우리가 배달음식으로 익숙한 짜장면이나 치킨 같은 건 도전과제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보다는 배달이 쉽지 않은 파스타를 주 메뉴로 삼았고, 그 셰프로 샘 킴이 합류했다. 파스타라는 메뉴의 특성상 배달하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으면 불거나 양념이 면에 흡수되기 마련이라 이걸 고려해 조리하는 게 샘 킴에게는 숙제로 주어졌다.물론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대면접촉이 어려워진 상황에 내놓은 자구책이지만, '배달해서 먹힐까'는 의외로 괜찮은 역발상으로 평가된다.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의 배달문화가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배달음식을 먹는 분들을 '랜선 회식'처럼 연결해 보여준 부분도 흥미로운 시도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현장을 담았던 '현지에서 먹힐까'만큼의 반응이 나오지는 않지만 언택트 시대의 색다른 예능의 풍경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음악 프로그램의 언택트 도전코로나19 시국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건 음악 관련 프로그램이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하며 나누는 교감이야말로 음악 프로그램이 갖는 핵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면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 그것도 집단으로는 더더욱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라 음악 프로그램들의 관객 모집은 원천적으로 쉽지 않게 되었다. TV조선 '미스터 트롯'이 그토록 큰 화제를 일으켰지만 결승전을 무관객으로 치렀다는 건 코로나 시국이 만든 음악 프로그램의 처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트로트 열풍을 타고 SBS가 야심차게 런칭한 트로트 버스킹 '트롯신이 떴다' 역시 마찬가지의 장벽에 부딪쳤다. 코로나 이전에 찍은 베트남에서의 트로트 버스킹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시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이 프로그램은 그 핵심 관전포인트라 할 수 있는 버스킹 자체가 무색해졌다. 그래서 대안적으로 선택한 것이 '랜선 버스킹'이다. 특별하게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것을 랜선으로 많은 관객들이 참여해 듣는 걸 방송 프로그램화한 것이다.막히니 오히려 더 커진 갈증이랄까. 콘서트들이 거의 대부분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을 겪으며 음악에 대한 갈증은 더 커졌다. 그것은 관객들도 그렇지만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MBC '놀면 뭐하니'가 했던 랜선 방구석 콘서트였지만 그것이 가진 한계는 역시 관객의 직접적인 현장 리액션을 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비긴어게인'이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를 버스킹 장소로 선택하고 '드라이브 인 버스킹(자동차 안에서 버스킹을 감상하는 방식)' 같은 다양한 언택트의 방법을 고안해낸 건 흥미로운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첫 버스킹 장소로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텅 비어버린 공항을 택한 것이나, 이번 사태로 특히 의료진들이 어려움을 겪은 대구를 다음 버스킹 장소로 선택한 것도 시의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버스킹의 의미를 아예 코로나 시국과 연관지어 연결함으로써 음악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응원을 거기에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코로나19는 우리네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 변화는 이 시국이 지나간 후에도 계속 이어질 거라고 한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특히 현실과 일상을 담아낼 수밖에 없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그래서 이 언택트 상황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비긴어게인'이나 '배달해서 먹힐까' 같은 해외로 가던 프로그램들이 이제는 국내로 돌아서고, '삼시세끼'처럼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을 피해 섬에 들어가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일이 많은 이들이 꿈꾸는 판타지가 되었다. 결코 짧게 끝나지 않을 코로나의 여파가 앞으로도 남아있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이 변화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할 수 없는 제한들이 생겨난 형국이지만, 그걸 뛰어넘고 적응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색다른 언택트 방송의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볼 시점이다.

2020-06-11 16: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1일1깡'이 대세…3년 전 망한 비의 ‘깡’, 밈으로 신드롬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1일1깡'이 대세…3년 전 망한 비의 ‘깡’, 밈으로 신드롬

3년 전 출시된 곡이지만 너무 과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망했던 비의 노래 '깡'이 최근 다시 음원차트에 들어와 역주행을 시작했다.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지며 갖가지 재치 있는 댓글이 붙는 '밈 현상'이 벌어지면서다. 도대체 이런 밈 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차트 역주행 만든 깡 신드롬'1일1깡'이란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떠돈다. 하루에 한 번씩 비의 노래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항간에는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을 해야한다는 '1일3깡' 이야기도 나오고, 하루에 몇 깡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깡 공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깡 신드롬'의 양상이다. 도대체 이미 과거에 실패한 노래가 어째서 지금 다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걸까.'깡'은 비가 2017년 냈던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발매 당시 시대에 뒤떨어진 과한 춤이라며 혹평과 조롱을 받고 망한 그 곡이 다시 살아난 건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한 여고생 유튜버가 패러디 영상을 올린 게 그 발화점이 되었다. 약 20초 분량으로 과장된 비의 춤과 뮤직비디오를 따라한 이 영상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무려 조회수 400만(6월 1일 현재)을 훌쩍 뛰어넘었다.덩달아 '깡'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에도 불이 붙었다. 지금까지 무려 1천200만 조회수를 넘긴 뮤직비디오에는 댓글만 13만 건이 넘게 달렸다. 뮤직비디오도 재밌지만 여기 달린 댓글을 읽는 것이 더 재밌다는 반응이 쏟아지면서 댓글 창은 일종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재간둥이 표정 금지', 꼬만춤 금지' 같은, 비가 추는 특유의 춤 동작이나 행동들을 지적하며 금지하는 '시무20조' 같은 조항들이 댓글로 붙을 정도로 화제가 된 '깡'은 비를 갑작스레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는 어찌 보면 조롱에 가까운 이 댓글 현상을 자신 또한 즐기고 있다며 선선히 받아들임으로써 신드롬을 더 확산시켰다. 결국 화제가 된 '깡'은 3년 만에 음원 차트에 재진입시키는 기현상을 만들었다.◆깡 신드롬에 담긴 인터넷 밈깡 신드롬은 '밈 현상' 혹은 '인터넷 밈(Mem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대중의 콘텐츠 소비방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본래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사용한 용어다. 신체적 유전을 넘어 종교, 사상, 문화 같은 정신적 사유 활동까지 유전되고 전파되는 현상을 그는 '밈'이라 불렀다. 여기서 따온 '인터넷 밈'은 '기존의 콘텐츠가 대중을 통해 유통되고 재생산되면서 생기는 문화적 요소'의 의미로 지칭되었다. 여기서 중요해진 건 소비 방식의 흐름이다. 과거 콘텐츠는 생산자가 만들고 소비자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갔지만, 이제는 거꾸로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재생산되기도 하고 재해석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과거 KBS '가요탑10' 같은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양준일 같은 옛 가수가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선택되어 '탑골 GD'로 재해석된 사례는 대표적인 인터넷 밈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또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할로 등장해 "사딸라!"를 외쳤던 김영철과,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이란 캐릭터로 "묻고 더블로 가!"를 외쳤던 김응수가 '짤방'이라는 형태로 화제를 일으켜 두 사람 모두 햄버거 광고 모델을 하게 된 것도 인터넷 밈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인터넷 밈의 파괴력이 가진 양면인터넷 밈은 최근 들어 '챌린지' 형태의 캠페인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코가 발표한 '아무 노래'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 동작으로 인터넷 밈을 일으켰다. 이효리나 강민경 같은 셀럽들 또한 참여하게 되면서 이 놀이는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영상 조회수는 놀랍게도 1억 뷰를 넘어섰다. 이처럼 챌린지 형태의 인터넷 밈은 콘텐츠 마케팅에 있어서 중요한 새로운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이러한 엄청난 파급력은 인터넷 밈이 공익적 의미를 띠는 챌린지와 접목되었을 때 그 긍정적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나 최근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헌신한 의료진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벌어졌던 '덕분에 챌린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하지만 반면 무분별한 상업적 마케팅 수단으로 점점 부각되고 있는 인터넷 밈은 그 영향력만큼 드리워진 그림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집중된 조롱이나 비난 같은 부정적 댓글들이 자칫 인터넷 밈을 타고 놀이처럼 번지게 된다면 그 부정적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비의 깡 신드롬은 '인신공격'이 아닌 트렌드에 맞지 않는 콘텐츠에 대한 풍자에 머물렀기 때문에 선선히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놀이가 될 수 있었지만, 만일 그 선을 넘게 된다면 그저 웃으며 넘길 수는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터넷 밈은 이 힘을 바람직하게 이끌 수 있는 인터넷 문화와 발을 맞출 때 긍정적인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제 그만한 책임감 또한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2020-06-04 17: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개그콘서트' 21년 만에 사실상 폐지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개그콘서트' 21년 만에 사실상 폐지

KBS '개그콘서트'가 휴식기를 선언했다. 휴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업계에서는 폐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개그콘서트'마저 떠나면서 이제 지상파에서 공개코미디는 사라졌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것이며 향후 개그맨들의 향방은 어디로 향할까.◆20년 넘게 이어져온 '개그콘서트'가 어쩌다가KBS '개그콘서트'는 저물었다 여겼던 코미디의 부활을 알렸던 프로그램이다. 1980년대 예능 프로그램의 주 트렌드는 콩트 코미디였다.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1번지', '쇼 비디오 자키'로 이어지는 콩트 코미디의 시대는 그러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버라이어티쇼가 새로운 예능의 트렌드로 들어오면서 이제 끝나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1999년 갑자기 등장한 '개그콘서트'는 공개 코미디라는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와 다시금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렇게 어언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 '개그콘서트'는 휴식기를 선언했다.휴식기라고 했지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전혀 기약이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폐지'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2%대(닐슨 코리아)까지 추락했다. 한때 35% 최고시청률을 내기도 했던 '개그콘서트'의 초라해진 모습이다. 어째서 '개그콘서트'는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가장 큰 원인은 예능 트렌드의 변화다. 유튜브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짤방들의 일상에 맞닿은 리얼한 웃음들을 공개 코미디의 '짜놓고 치는 개그'가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현장에서 찍어온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는 방식으로 현장성을 가미하려 했지만 생각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 장소만 일상으로 들어갔지 그 곳에서의 웃음의 코드 또한 대본에 맞춰하는 콩트였기 때문이다.트렌드 변화와 함께 달라진 시대정서와 감수성 또한 '개그콘서트'의 한계를 만든 주요인이었다. KBS라는 공영방송의 틀은 소재나 표현에 있어서 좀 더 엄밀한 제한을 만들었다. 한 때 '개그콘서트'의 주류였던 가학개그나 외모개그 같은 건 더 이상 무대에 세워질 수 없었고, 정치, 시사 풍자 개그 역시 스스로 느끼는 중압감이 커 기피되었다.'건전한 웃음'이라는 공영방송으로서 지켜야할 선은 점점 '개그콘서트'의 어깨를 무겁게 했고, 시대에 맞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도 버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선순환을 이루며 신인 개그맨들이 새롭게 스타로 떠오르는 그런 흐름은 끊겨버렸다.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지 않자 옛 개그맨들이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었다.◆개그맨들의 입장에서 본 '개그콘서트'의 휴식기'개그콘서트'마저 휴식기를 선언했다는 건, 이제 지상파 3사가 모두 공개 코미디를 내렸다는 걸 의미한다. 한 때 MBC '개그야', SBS '웃찾사'가 차례로 폐지되며 위기설을 낳았지만 그래도 '개그콘서트'는 꽤 오래 버텼다. 그런데 지상파에서 공개 코미디가 사라졌다는 건 개그맨들 입장에서 보면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현재 남은 tvN '코미디 빅리그'와 서수민 PD가 JTBC에서 숏폼 드라마 콘셉트로 시도한다는 '장르만 코미디'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찾아진다.거꾸로 생각해보면 개그맨들은 지상파의 한계를 절감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코미디 빅리그'가 케이블 채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표현들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반면 지상파는 그럴 수 없었다. 물론 당장 일자리를 잃어버린 개그맨들을 구제할 수 있는 KBS의 복안이 절실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KBS도 유튜브 채널 '뻔타스틱'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코미디를 시도한다는 계획을 알리기도 했다. 여러모로 지상파라는 부담스러운 플랫폼보다는 비지상파나 유튜브 같은 다양한 채널이 지금의 개그맨들에게는 훨씬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개그콘서트'보다 일찍 폐지한 MBC, SBS 개그맨들은 훨씬 더 일찍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소극장 코미디 무대에 서고, 유튜브를 통해 인기 크리에이터로 자리매김하거나 때로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입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즉 과거의 형태 그대로 유지해온 '개그콘서트'라는 무대가 어떤 면에서는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 적응해야할 개그맨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그렇다면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개그콘서트' 이후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어떤 대안들을 바라봐야 할까. KBS가 시도한 19세 이상 관람가의 코미디쇼인 '스탠드 업'은 저변이 넓진 않아도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안적 시도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그것은 표현이나 소재를 제한할 게 아니라 관람 등급을 제한함으로써 개그맨들에게 좀 더 자유를 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다.또 최근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오는 7월 JTBC에서 숏폼드라마 코미디 형식으로 시도하는 '장르만 코미디' 같은 프로그램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공개 코미디에서 벗어나 '숏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더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휴식기를 선언한 '개그콘서트' 역시 모두가 단정하듯 굳이 '폐지'라는 수순을 밟을 필요는 없다. 이만한 브랜드를 굳이 버리기보다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식을 휴식의 기간 동안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콩트 코미디의 끝자락에서 공개 코미디가 탄생했듯이 어쩌면 공개 코미디의 끝자락에 선 지금이 새로운 코미디 형식이 탄생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2020-05-28 17: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인간수업’, 청소년의 진짜 세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인간수업’, 청소년의 진짜 세계

김진민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소재를 다루고 있다. 19금 청소년 범죄물이 그것이다. 최근 벌어진 N번방 사건으로 논란이 생길 위험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과감한 솔직함으로 호평 받는 드라마가 되었다.◆우리네 청소년 드라마와는 다른 '인간수업'지난 4월 29일 넷플릭스에서는 김진민 감독의 10부작 드라마 '인간수업'을 전 세계 190개 국에 공개했다. 그런데 특이한 건 고등학생들이 주인공들이지만 19금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지금껏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청소년 드라마들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이 19세 이상 관람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에게 청소년 드라마 하면 떠올리는 이른바 '학원물'은 대부분 건전한 틀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입시 같은 학업 문제와 친구들 사이의 왕따 문제 같은 갈등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 학원물은 대부분 그 학교라는 테두리를 그리 벗어난 적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청춘의 달달한 첫 사랑 로맨스가 더해지거나.하지만 '인간수업'은 다르다. 그것은 'Extracurricular(정식과목 이외의)'라는 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수업'은 학교 바깥에서 이 고등학생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놀랍게도 그건 청소년까지 이용하는 성매매다. 학교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심해 보이는 주인공 오지수(김동희)는 성매매 어플을 운영해 돈을 버는 인물. 그런데 그 어플을 이용해 성매매를 하는 이들 중에는 같은 반 서민희(정다빈) 같은 고등학생도 있다. 서민희는 그렇게 돈을 벌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친구이자 학교 짱인 곽기태(남윤수)에게 선물을 사주는 데 쓴다. 그리고 오지수의 비밀을 알게 된 배규리(박주현)는 뭐든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자신을 상품 취급하는 부모들에게 반항하면서 그 범죄의 세계에 깊이 가담하게 된다.이처럼 '인간수업'은 지금껏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좀체 다루지 않았던 어두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걸까. 그것은 그게 바로 청소년들의 진짜 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무수한 학원물들이 담아냈던 건전한 세계를 오가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그렇지 않은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적지 않다는 것. 다만 어른들이 믿고 싶지 않았을 그 세계를 '인간수업'은 용감하게도 끄집어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자극적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도발19금 청소년 범죄물이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간수업'은 자극적인 면이 있다. 김진민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말했듯, 국내의 지상파에서는 애초에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소재다. 하지만 '인간수업'은 어찌 보면 넷플릭스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 콘텐츠들의 상당 부분이 19금이고, 소재나 표현수위가 굉장히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콘텐츠들은 호평을 받는 작품들이 많다. '브레이킹 배드'나 '나르코스' 같은 작품들이 그렇다. 이게 가능한 건 과감하고 파격적인 선택들을 하고 있지만, 그 작품들이 분명한 메시지와 완성도로 작품성 또한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수업'이 그렇다. 자극적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도발인 데다, 완성도 또한 높다. 넷플릭스라는 공간에서 '인간수업'은 그래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넷플릭스가 집계한 한국인기콘텐츠 1위를 달리고 있고, 우리네 반응 또한 좋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최근 28.3%로 비지상파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JTBC '부부의 세계'가 말해주듯 이제 성인 콘텐츠에 대한 수용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그 폭이 넓어졌다. '인간수업' 같은 청소년 성매매 소재의 콘텐츠가 받아들여지는 건 다름 아닌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제공서비스) 를 통해 우리네 시청자들 역시 성인 콘텐츠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별로 없어졌기 때문이다.◆외면해왔던 진짜 세계가 던지는 충격'인간수업'이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논란이 아닌 화제작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건,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자극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범죄를 미화한다거나 청소년 범죄자들을 두둔하는 그 어떤 여지조차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의 진정성은 주인공인 오지수가 어른의 부재에 의해 탄생한 괴물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는 생존본능에 충실하며 그래서 때론 찌질한 면면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진 범죄라는 것조차 모른 채 그 세계로 들어왔다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그런 인물.본래 이 작품의 원제는 '극혐'이었다고 한다. 워낙 제목이 강렬해서 김진민 감독의 제안으로 '인간수업'으로 바꾸었지만 원제가 이 작품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청소년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진짜 어른들이 부재한 그 세계는 저들의 표현대로 '극혐'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우리네 어른들은 그 세계를 굳이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고도 또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세계는 있을 리 없고 아름다운 청소년기만 존재한다고 줄곧 그런 콘텐츠들로 이야기해왔던 어른들에게 이 작품은 만만찮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2020-05-21 17: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더 킹:영원의 군주’ 시청률 부진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더 킹:영원의 군주’ 시청률 부진

최근 내놓는 드라마마다 성공시킨 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는 그만한 기대감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반응이 좋지만은 않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것일까.◆평행세계로 돌아온 '더 킹'김은숙 작가는 최근 이른바 3부작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을 연거푸 성공시켰다. 모두 대작인 데다 김은숙표 멜로가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으로 거둔 성취인지라 그 의미는 남달랐다. 그래서 신작 '더 킹'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첫 회부터 11.4%(닐슨 코리아)의 높은 시청률을 낸 건 그 기대감의 반증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평행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납득되지 못했고, 백마 타고 등장한 황제는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본래 김은숙표 판타지는 저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소 황당한 설정조차 달달한 멜로와 귀에 콕 박히는 시적인 대사들로 믿고 싶은 세계를 그려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 '더 킹'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그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낯선 데다, 멜로 또한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난항을 겪게 됐다. 이런 반응들을 시청률은 고스란히 반영했다. 조금씩 빠지더니 8.1%까지 추락한 것.물론 '더 킹'이 그려내는 평행세계는 흥미로운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즉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라는 두 세계를 넘나들며,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마치 장기 말처럼 이리저리 배치함으로써 두 세계를 모두 장악하려는 이림(이정진)과 이러한 세계의 교란과 혼돈을 막으려는 이곤(이민호)과 정태을(김고은)의 대결은 흥미롭다. 특히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유혹해 저 편 다른 세계에 있는 도플갱어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려는 이림의 야망은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마력을 보여준다. 이림이 가진 야망과 큰 그림은 그래서 '더 킹'의 평행세계라는 세계관에 강력한 힘을 만들어낸다. 그와 맞서는 이곤과 정태을의 세계를 뛰어넘는 공조(?)와 멜로가 정당성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색다른 세계관을 가져오면서 너무 익숙한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설정들을 초반에 많이 배치한 건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낯선 세계에 좀 더 정면으로 부딪쳐 색다른 스토리텔링을 구사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이 색다른 세계관을 가진 작품 역시 그런 뻔한 멜로가 아닌가 하는 오인을 불러 일으켰고, 그 멜로 또한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드라마는 폭넓은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멜로 빼놓고 보면 독특한 세계관의 도전이 보인다사실 김은숙 작가와 멜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인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그리고 '연인'이라는 이른바 '연인 3부작'은 김은숙 작가를 멜로 장인이라는 지칭으로 불리게 했다. 그 후에도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김은숙 작가는 신데렐라 판타지를 주로 담는 멜로를 계속 그려왔다는 점에서 비판받기도 했다.그러던 김은숙 작가가 최근 쓴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은 그의 멜로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진화함으로써 그의 진가를 드러냈다. 즉 '태양의 후예'를 통해 의학드라마, 액션, 재난 같은 다양한 장르들을 실험했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는 문학적인 서사를 통해 시공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시도했으며,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그래서 이번 작품인 '더 킹'에서도 평행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그의 멜로와 어떻게 어우러질 것인가가 궁금했던 지점이었다. 하지만 평행세계라는 매력적인 세계관을 그려내면서 거기 얹어진 멜로가 이미 '연인' 시리즈와 '시크릿 가든' 같은 작품에서 흔히 활용되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건 한계로 지목되었다. 즉 모두가 기대하는 멜로의 구도가 그리 신선하지 못했고 나아가 지금의 젠더 감수성에도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발목을 잡은 상황이 되었다.그래서 멜로를 빼놓고 보면 '더 킹'은 마치 해외 SF 판타지 드라마의 세계관을 가져온 듯한 신선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0과 1의 세계를 넘나들며' 두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이림과 그 질서를 지켜내려는 이곤의 대결이 벌어지고 그래서 과연 누가 영원(0과 1)의 군주가 될 것인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차라리 멜로를 넣지 않고 장르의 묘미를 극대화했거나, 멜로를 넣는다면 이 색다른 세계관에 맞는 색다른 멜로를 구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어쩌면 김은숙 작가 역시 두 개의 세계에서 갈등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늘 그려왔던 익숙한 멜로의 세계와 지금의 트렌드가 요구하는 색다른 장르의 세계 사이에서. 그 두 개의 세계를 모두 섭렵해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맞는 균형점을 내놓는 건, 어쩌면 0과 1 두 세계를 평정해 영원의 군주가 되는 일만큼 어렵다는 걸 '더 킹'을 통해 김은숙 작가는 절감하고 있지 않을까.

2020-05-14 17: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돌아온 ‘삼시세끼’ 어촌편5…고립을 힐링으로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돌아온 ‘삼시세끼’ 어촌편5…고립을 힐링으로

tvN '삼시세끼' 어촌편이 시즌5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시청률이 9.2%를 넘기며 일찌감치 대박 프로그램을 예고했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의 일상. '삼시세끼' 어촌편5의 무엇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고 있을까.◆5년 만에 돌아온 '손이 차유'아마도 시청자들은 차승원,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이번 tvN '삼시세끼' 어촌편5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더 높았을 게다. 이른바 '손이 차유'로 불리는 이들의 조합이야말로 진정한 '삼시세끼' 어촌편의 원조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삼시세끼'는 2014년에 첫 방송을 시작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스핀오프격으로 어촌편이 이듬해에 방영되면서 최고 시청률 13.3%(닐슨 코리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해에 다시 돌아온 시즌2 역시 13%대의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였다.만재도라는 섬에서 지내는 이들의 '삼시세끼'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끌었던 건 거친 듯 섬세하게 뭐든 척척 요리를 해내는 '차줌마' 차승원과 우리네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보여주며 매일 낚시를 하러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인 유해진의 부부 같은 케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을 보조하는 손호준이 등장하면서 이 조합은 완성되었다. '삼시세끼'의 기획의도가 그러한 것처럼 이들은 섬에서 낚시를 하거나 채취를 해서(때로는 슈퍼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세 끼를 챙겨먹는 모습만으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하지만 이 완전체가 다시 어촌편으로 돌아오는 데는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촌편 시즌3, 4는 이서진과 에릭, 윤균상이 출연했고, 2019년 차승원과 유해진은 어촌편 대신 '스페인 하숙'에 배정남을 더해 출연했다. 그래서 5년 만에 모인 '손이 차유' 완전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들었다.첫 회는 이들의 조합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 일이 돌아갈 정도로 잘 맞는가를 보여줬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해진은 불을 피우고 차승원은 오자마자 김치에 깍두기를 담그기 시작했고 손호준은 차승원을 찰떡같이 보조해줬다. 이들은 그저 추적추적 비 내리는 그 곳에서 수제비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해변에서 따온 전복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콩나물밥을 해먹는 그 과정을 보여줬다. 불 피운 아궁이로 따뜻해진 방 안에 둘러 앉아 맥주 한 잔 마시며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고립을 힐링으로 바꾼 역발상이번 시즌5는 만재도 아닌 죽굴도라는 무인도에서 촬영되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주민분들이 사는 만재도에 촬영팀이 들어가는 건 그 자체로 민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사람이 없는 죽굴도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들어갔다.사실 조심스러울 수 있는 기획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인도 라이프를 즐기는 모습이 자칫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의 부유층들은 코로나19를 피해 자신들의 소유한 섬으로 들어가 호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이런 우려를 첫 회 만에 날려 보냈다. 조심스럽게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이 이번 편에 임하는 자세와 의도를 전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답답한 시국에 그들은 한 목소리로 "조금이라도 웃으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게다가 이들의 일상은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소소한 것들이었다. 빗속에서 겉절이를 담그고 걸어서 11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섬을 산책하고, 끼니를 챙겨먹는 소소한 일상들. 하지만 이 소소한 일상은 코로나19로 자발적인 고립의 삶을 지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힐링이 아닐 수 없었다.◆ 더 간절해진 삼시세끼의 소중함'삼시세끼' 어촌편5가 죽굴도라는 무인도에 들어가 마치 소꿉장난하듯 끼니를 챙겨먹으며 보내는 편안한 일상은 고립을 힐링으로 바꾼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무인도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고립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고립을 오히려 조용히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바꾼 건 그 곳을 함께 찾은 사람들의 끈끈한 관계 덕분이다.결국 이 관전 포인트는 그대로 코로나19로 인해 고립된 일상을 보내는 시청자들 역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 어려운 시국을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저들이 무인도에서 수제비와 된장찌개를 끓여가며 삼시세끼를 해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처럼, 우리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한 끼를 챙겨먹는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물론 애초부터 '삼시세끼'는 이런 고립된 곳에서의 일상의 즐거움을 전면에 꺼내 보인 바 있다. 정선편에서 첫 시도됐던 '삼시세끼'는 지금껏 여행예능들이 바깥으로만 떠돌던 것에서 벗어나 정착한 이들의 한가로운 한 때를 담아냄으로서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디 푹 박혀서 세 끼나 챙겨 먹고픈 도시인들의 고립의 욕망을 건드렸던 것.그래서 코로나19라는 시국에 등장한 이번 '삼시세끼' 어촌편5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진가를 더더욱 드러내는 면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늘 보여줬던 우리가 별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일상의 가치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도드라져 보여서다.

2020-05-07 17: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실험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실험들

봄을 맞이해서일까. 멜로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만큼 생각보다 그 반향이 크지가 않다. 저마다 새로운 실험을 더해 돌아왔지만, 한 방이 부족한 느낌. 이건 멜로의 운명일까 아니면 실험이 부족한걸까.◆반 토막 난 '반의 반', 호평 받지 못한 '더 킹'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은 AI라는 소재를 가져와 짝사랑을 담은 멜로드라마로 해석해내려는 실험을 했다. 이미 죽은 사랑을 잊지 못해 AI를 통해서 그를 복원해내고 짝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하원(정해인)이 그런 그를 짝사랑하는 서우(채수빈)를 만나면서 반쪽짜리가 아닌 완전한 사랑을 이뤄간다는 이야기. AI 같은 미디어를 통해 소통하고 사랑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법을 짝사랑으로 은유해낸 이 작품은 그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낯선 세계를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더니 심지어 0%대에 근접했고, 결국 16부작에서 12부작으로 조기종영을 결정했다. 안타깝게도 제목처럼 반 토막이 나 버린 것.'반의 반'은 '공항 가는 길'을 썼던 이숙연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모았다. 이숙연 작가는 '공항 가는 길'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간은 문학적으로 은유하는 감성 멜로를 잘 그려내는 작가로서 '반의 반'에서는 골목길이 갖는 감성을 잘 포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설득되지 않은 멜로는 AI 소재를 접목한 이 실험을 미완으로 만들었다.김은숙 작가의 신작으로 관심을 모은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 역시 평행세계라는 낯선 소재를 가져와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이라는 두 개의 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로맨틱 코미디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평행세계라는 소재의 실험을 보편적으로 설득시키는 데는 아직까지 실패하고 있다. 그 세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면서, 이 작품은 백마 타고 온 황제가 걸 크러시를 보이는 형사와 사랑을 하는 또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로 비춰지게 됐다.벌써부터 섣부른 예단이 나올 법한 드라마지만,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그래도 여전히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낯선 세계가 제대로 설득되고, 그 판타지가 단순한 신데렐라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면 반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초반의 설정들은 이런 반전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드러내지만.◆청춘을 들고 온 '화양연화', 성공할 수 있을까종영한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멜로에 날씨라는 색다른 요소를 접목한 작품이었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실패한 드라마였다. 최고시청률이 2.6%에 머문 이 드라마가 그나마 괜찮은 종영을 할 수 있었던 건 초반의 다소 심심한 전개에서 중반을 넘기며 주인공 목해원(박민영)네 가족의 비극을 끄집어내면서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통 멜로가 가진 애틋함을 잘 그려낸 작품이었지만, 역시 정통 멜로만으로는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부족하다는 걸 드러낸 작품이기도 했다.새로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 역시 정통 멜로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런 점에서는 성공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드라마다. 다만 '화양연화'가 가진 강점은 90년대 청춘의 시간들을 강력한 추억의 코드로 끌어안고 있고, 그것이 현재와의 대비를 통해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메시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당대의 대학을 경험했던 중년들이라면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정통 멜로라는 것.최근 들어 멜로는 멜로만으로는 힘을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점점 정설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멜로는 대부분 타 장르와 결합을 통해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적 틀을 가져온 후 그 위에 얹어지는 멜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접목만으로 멜로가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MBC 수목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은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아픈 상처 또한 잊지 못하는 남자와 과거의 상처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여자의 멜로를 다뤘다. 기억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가져와 멜로로 엮어놓은 좋은 시도지만 시청률에 있어서는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최고 시청률 5.4%). 또 KBS 수목드라마 '어서와'는 남자로 변하는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반려 로맨스라는 색다른 시도를 했지만 시청률은 1%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최근 쏟아져 나온 작품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과연 여전히 멜로드라마는 유효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통 멜로만으로는 분명 부족한 면이 있다. 그래서 저마다 색다른 소재나 요소들 심지어 장르적 틀까지 가져오려는 실험들이 최근 멜로드라마에서는 엿보인다. 실험 자체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성패를 가르는 건 그러한 새로운 시도가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큼 충분히 완성도가 높은가 하는 점일 게다. 그런 점에서 현재 멜로드라마들의 전반적인 부진은 그 장르의 죄가 아니다. 다만 그 실험이 완전하지 못했을 뿐.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0-04-30 15:55:35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팬텀싱어3’ 크로스오버 오디션의 귀환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팬텀싱어3’ 크로스오버 오디션의 귀환

JTBC '팬텀싱어'가 시즌3로 돌아왔다. 2017년 방영됐던 시즌2 이후 3년 만이다. 이제 2회가 방영됐지만 4% 시청률을 넘겼고 "기다리길 잘했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무엇이 '팬텀싱어'의 시즌제를 공고하게 만들어낸 것일까.◆'팬텀싱어3'…다시 시작된 귀호강 오디션2016년 첫 시즌을 열었던 JTBC '팬텀싱어'는 오디션 최초로 남성 4중창단을 결성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최고 시청률 4.6%(닐슨코리아)를 달성한 시즌1은 성악, 뮤지컬, 팝이 결합된 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장으로 시청자들을 인도했다. 흔히 클래식이라 불리는 미지의 영역을 방송 프로그램 그것도 오디션의 영역으로 끌어왔고, 그 과정에서 크로스오버라는 대중적인 지대를 안전장치로 내세웠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성악 특유의 안정되고 중후한 창법이 4중창단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면, 그 위로 뮤지컬과 팝의 창법이 얹어짐으로써 대중들도 즐길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냈다. 또한 팝송 중심으로 듣던 해외의 음악들 바깥에 존재하던 이태리, 독일, 프랑스 등의 음악들이 이들 오디션 참가자들에 의해 그 매력을 드러냈다. 우리도 열광했지만 그 노래의 본국에서도 '팬텀싱어'의 무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이듬해 방영된 시즌2는 훨씬 더 많은 실력자들을 끌어 모으며 역시 방영 내내 화제가 이어졌다. 시청률도 최고 4.9%를 달성했다. 여기서 결성된 포레스텔라, 포르테 디 콰트로 같은 팀들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여러 콘서트를 통해 대중적인 열광을 이어갔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20년 4월 드디어 시즌3가 방영을 시작했다. 기다린 갈증이 컸던 걸까. 2회 만에 4.1% 시청률을 내며 역대 시즌의 기록을 갈아엎을 태세다. 매 시즌이 그러했지만 이번 시즌 역시 남다른 실력자들이 대거 등장했다.전조에 전조를 더해 프로듀서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유채훈, 우리말 가사로 된 '첫사랑'을 불러 옥주현을 눈물 흘리게 만든 남태평양 피지에서 온 소코,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런던 로얄 오페라단 소속 가수 길병민,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을 불러 인터넷에서 '연어장인'으로 불리는 이정권, 오페라 투란도트 'Nesson Dorma'를 불러 모두를 경악시킨 불꽃 테너 박기훈, 피아노 치는 소리꾼 고영열, 뉴욕 예일대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 테너 존 노, 색깔이 다른 카운터테너 윤진태와 최성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Music of the night'을 불러 모두를 매료시킨 독일 바이마르 유학생 구본수, 영화 '알라딘' 더빙판 노래의 주인공 뮤지컬 배우 신재범 등이다. 쟁쟁한 실력자들이 만들어내는 귀호강 오디션에 시청자들은 빠져들었다.◆무엇이 '팬텀싱어'만의 차별점을 만들었나시즌2 이후에 어째서 '팬텀싱어3'는 3년이라는 공백을 거쳐 돌아왔을까. 시즌1, 2가 모두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듬해에 시즌3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진 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여타의 아이돌 오디션과 달리 그만한 수익성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르적 특성상 공연 수익 정도가 대부분인 '팬텀싱어'는 그래서 성공해도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유로 시즌이 미뤄졌다. 하지만 이렇게 3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건 시즌3로서는 더 밀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실력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백기는 그 실력자들이 다시 모여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어주었고 그건 결과로도 나타났다.앞서도 말한 것처럼 '팬텀싱어'는 손실을 보지는 않는다고 해도 큰 수익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은 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점은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질 높은 수준의 무대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팬텀싱어'는 탈락자들의 무대를 일일이 다 보여주고, 그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담아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자극을 굳이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대신 합격자들의 무대에 집중해 보여줌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데 포인트를 맞췄다.이것은 향후 이들이 이합집산하며 중창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드러날 '팬텀싱어'만의 색깔이었다. 오디션이 갖는 경쟁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하모니에 더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극보다는 힐링을 추구했다. 마치 매 회가 잘 짜여진 크로스오버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 것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에 '팬텀싱어3'가 집에서 보는 랜선콘서트의 즐거움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막강한 실력자들과 크로스 오버라는 새로운 지대의 매력 그리고 이들을 자극이 아닌 힐링 오디션으로 꾸려낸 제작진의 남다른 오디션 연출은 '팬텀싱어'가 시즌3까지 호평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난해 조작으로 추락했던 오디션의 대안으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진다.

2020-04-23 14:10:27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킹덤’에서 ‘반도’까지…K좀비는 장르가 될 것인가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킹덤’에서 ‘반도’까지…K좀비는 장르가 될 것인가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즌2가 공개되면서 K좀비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올 여름 개봉할 연상호 감독의 '반도'에 벌써부터 해외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은 K좀비가 가진 가능성이 어디까지 나갈 것인가를 기대케 한다.◆'킹덤'의 조선 좀비에 쏟아진 글로벌 팬덤조선 좀비라는 지칭은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조선하면 떠오르는 사극의 이미지에 좀비라는 서구 장르가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은희 작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에서 이 이질적인 요소를 '굶주림'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낸다. 권력자들의 학정과 오랜 가뭄으로 심지어 인육을 먹는 참담한 굶주림의 기록들은 우리네 역사에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다. 사람이 사람을 먹지만 거기 깔려 있는 슬픔의 정조는 그래서 '킹덤'의 조선 좀비에게서 느껴지는 독특한 민초들의 색깔이 더해졌다. 그래서 이 조선 좀비들이 떼로 몰려나와 달려드는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처연하다. 거기에는 심지어 아녀자들과 아이들까지 있으니 당대의 민초들의 극심한 기아가 어느 정도인가를 이 조선 좀비에게서 가늠할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민초들의 형상을 더한 조선 좀비만이 '킹덤'의 전부는 아니다. '킹덤'은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권력욕에 굶주린 조선 좀비 또한 그려낸다. 사실상 민초들을 좀비 떼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기도 한 이 좀비들은, 민초들의 배고픔과는 달리 권력에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이들로서 누가 권력을 이어받을 핏줄의 적자인가에 집착한다. 그래서 '킹덤'은 권력과 싸우는 정치극으로서의 면모를 담게 된다.이런 면들은 '킹덤' 시즌2가 공개된 후 미국의 유명 잡지 포브스에서 이 작품을 심지어 좀비 장르의 레전드로 불리는 '워킹데드'보다 훌륭하고 '왕좌의 게임'과 비견된다는 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저 물고 뜯는 스릴러와 액션으로서의 좀비가 아니라 정치극적 요소들을 더함으로써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현재까지를 반추하게 되는 이야기로 은유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우리네 사극의 요소들이 좀비 장르와 섞이면서 나온 결과다. 즉 우리네 사극들은 심지어 상상력으로 그려진 퓨전사극에서조차 권력과 정치를 주요 소재로 다뤄지지 않았던가.이런 현재성을 은유하게 만드는 좀비물이라는 색다름을 더한 '킹덤'은 그 배경으로서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아직 서구인들에게는 낯선 사극의 시공간을 깔아놓음으로써 독특한 미적 성취를 더했다. 궁궐에서 좀비들과 벌이는 사투와, 조선의 아름다움으로 대변되기도 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지붕과 아담한 연못 위의 정자를 배경으로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은 그 자체로 독특한 조선 좀비의 색깔을 만들었다. 시즌1에서 난데없이 '갓'이 화제가 되더니, 시즌2에서는 코로나19 시국과 맞물려 이 조선의 정경과 어우러진 좀비들과의 대결에 글로벌 집콕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영화 '반도'로 이어질 K좀비, 과연 하나의 장르가 될까'킹덤'이 끄집어낸 K좀비에 대한 관심은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반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어쩌면 K좀비를 애초에 주목시켰다고 볼 수 있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의 후속작이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가는 KTX에서 벌어지는 좀비들과의 사투를 그린 '부산행'은 그 독특한 아이디어와 다이내믹한 좀비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서구의 장르들을 우리 식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계속 시도해왔다. '부산행'이 좀비물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면, '염력'은 슈퍼히어로물의 재해석이었다.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반도'는 '부산행' 그 후 4년이 지난 시점을 다룬 작품으로 공개된 예고편만으로도 해외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영화정보 사이트인 인디와이어는 공개된 '반도'의 예고편에 대해 "이 영화가 '부산행'의 속편이라는 걸 깨닫지 못할 정도로 대규모 액션 시퀀스와 폭발적인 스릴이 가득하다"고 극찬했고, 또 다른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인 벌처는 "코로나19시대, 연상호 감독은 좀비로 가득한 황무지로 우리를 안내한다"며 "이건 단지 티저일 뿐이다"라고 적었다.좀비 장르는 본래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최근까지 주로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하위 장르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류 장르로 떠오르고 있는데다, 코로나 19로 인해 '감염'과 '전파'를 소재로 하는 좀비물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 K좀비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우리네 콘텐츠로서는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넷플릭스가 최근 네이버 인기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을 원작으로 하는 학원 좀비물 시리즈 제작을 확정했다는 소식은 향후 K좀비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일본의 사무라이 장르가 있듯이 우리에게도 K좀비라는 색다른 장르가 조금씩 글로벌한 콘텐츠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한번 물리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강력한 전파력으로.

2020-04-16 13:48:56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부부의 세계’…뻔한 불륜극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부부의 세계’…뻔한 불륜극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

부부라는 관계는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일까. 그리고 그 관계의 파국은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올까.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불륜 치정극 속에 섬세한 심리를 담아냄으로써 부부 관계의 적나라한 실체를 꺼내 보이고 있다.◆뻔한 불륜극, 그 이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거두절미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 이태오(박해준)와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지선우(김희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가장 완벽하게 보였던 세계의 파국. 하지만 지선우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건 자신이 알고 지내던 남편의 친구, 절친까지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기대되는 대로 지선우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이야기의 소재와 설정만 보면 '부부의 세계'는 우리가 그토록 막장드라마를 통해 많이 봐왔던 불륜치정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막장드라마의 대표적 사례로 얘기되는 '아내의 유혹' 역시 배신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수극이 아닌가.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그저 표피적인 불륜과 복수라는 코드를 활용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겪는 지선우의 심리를 보다 섬세하게 담아낸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지선우의 입장에 깊숙이 몰입되고, 그래서 그 충격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이입된다.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무엇 때문에 이런 불륜 치정의 소재를 통해 이제 무너져가는 한 부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담아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지선우가 착각했던 것처럼 가장 완전한 사회의 기본단위로서 가족과 이를 지탱해주는 것이라 믿어온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다."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며 뻔뻔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 양 떠들어대는 이태오나, 세상에는 불륜하는 남자와 불륜을 들키는 남자로 나뉜다며 마치 모든 남자들의 불륜은 당연하다 말하는 손제혁(김영민) 같은 인물들의 무책임한 말과 행동, 생각들은 순식간에 부부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이유가 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남자친구에게 상습적인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민현서(심은우)가 지선우를 도우며 동지적 관계가 되는 건 물리적 폭력이나 불륜 같은 정신적 폭력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암시한다.이처럼 '부부의 세계'는 뻔한 불륜에 맞불륜까지 등장하는 소재를 쓰고 있지만 이를 통해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세계에서도 자행되는 폭력을 드러내고, 그것이 얼마나 이 세계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드러냄으로써 부부관계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배우자들 모두가 노력해야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부부의 세계'에 담긴 카타르시스의 정체'부부의 세계'는 복수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물리적으로 부딪치는 난타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난타전보다 더 타격감을 주는 건 이들의 말 하나와 어떤 행동 하나가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다. 이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식 앞날 생각해 용서하고 살라"는 시어머니에게 지선우가 던지는 말은 저주에 가깝다. "이혼할 겁니다. 빈털터리로 쫓아낼 거구요. 이 동네 다시는 발도 못 붙이게 만들 겁니다."이태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지선우에게 은근히 접근해 맞불륜을 제안하는 손제혁을 오히려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이태오의 자산 관련 자료들을 모두 넘기라는 지선우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지선우가 "본능은 남자한테만 있는 게 아니야"라고 할 때 그 말의 타격감은 마치 불륜은 남자의 전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던 손제혁의 당황하는 얼굴을 통해 통쾌하게 작렬한다.하지만 무엇보다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부유층의 위선과 허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태오의 뻔뻔하고 저질스런 욕망이 그렇고,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을 것처럼 보이지만 엉뚱하게도 그와 불륜을 맺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다경(한소희)이 그렇다. 좋은 차에 큰 집에서 살아가지만 쇼윈도 부부인 고예림(박선영)과 손제혁 부부가 그렇고, 혼자 살아가며 남의 집 안 되는 걸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보며 살아가는 설명숙(채국희) 같은 인물이 그렇다.완벽해 보이지만 깨지기 쉬운 건 부부의 세계는 물론이고 뭐 하나 걱정 없을 것 같은 부유층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시청자들은 저 세계 역시 위태롭고 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관계의 파국은 빈부를 가리지 않는 법이니 그 누구라도 노력하지 않는 관계는 깨지기 쉽다는 걸 확인하면서. '부부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바라봤던 부부라는 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지만, 그 포커스를 부유층의 실체에 맞춤으로써 시청자들을 더욱 깊은 카타르시스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2020-04-09 11:13:12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하이바이 마마’,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하이바이 마마’,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가능성

우리 시대에도 가족드라마는 가능한가. 1인 가구가 급증하고 가족보다는 개인이 우선되는 시대, 가족드라마는 어딘지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tvN '하이바이 마마'를 보면 가족드라마는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알게 된다.◆공포보다는 연민의 존재로 그려진 고스트 엄마보통 귀신은 산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의 존재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의 고스트 엄마 차유리(김태희)는 무섭기는커녕 시청자들을 빵 터트리게 만드는 우스운 캐릭터면서 동시에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연민의 캐릭터다. 그는 딸 서우(서우진)를 임신한 채 사고로 사망한다. 그래서 한번 안아보지도 못한 채 귀신이 되어 가족 주변을 맴돈다. 그것도 무려 5년 간이나. 그러니 그 긴 시간동안 가까이서 쳐다보기만 할 뿐 말도 건네지 못하고 안아보지도 못하는 이 고스트 엄마의 절절한 마음에 연민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그런데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이 고스트 엄마의 환생이라는 과감한 선택을 시도한다. 늘 옆에 붙어 다니다 보니 딸이 귀신을 보기 시작한 것. 그렇게 귀신을 보다가는 무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에 차유리는 절망하며 신에게 대든다. 그리고 그것으로 차유리는 49일간 환생해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강화(이규형)의 아내이자 서우의 엄마인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면 다시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주어진 채.'하이바이 마마'는 이처럼 환생이라는 사실상 비현실적인 설정을 차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적 설정은 그것이 보여주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점에서 허용된다. 살아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나 친구나 그들과의 자잘한 일상들이 죽었다 살아난 자의 시선으로 보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그것도 49일 후 돌아가야 한다는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더더욱.◆망자의 시선으로 본 가족…유족들을 위한 위로이 가상의 설정을 통해 '하이바이 마마'는 산 자와 망자가 공존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차유리는 귀신이 되어서 오열하는 가족을 통해, 삶 자체가 망가져 웃음을 잃어버린 남편을 통해, 또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일을 챙기는 절친을 통해 그들이 살았을 때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 때문에 불행 속에서 허우적대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찾아가기를 기원한다.강화와 결혼해 서우의 새 엄마가 된 오민정(고보결)을 바라보는 차유리의 시선도 그래서 질투보다는 고마움이다. 웃지 않게 된 강화가 너무나 안쓰러웠던 차유리는 오민정이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조금씩 웃음을 찾게 해주는 걸 보며 기뻐한다. 또 자신의 딸 서우를 위해 일도 포기하고 힘겨운 육아를 하며 친딸처럼 서우를 보듬어준 오민정을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그래서 다시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곳이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환생한 차유리가 오민정과 마치 솔로몬의 선택에 등장하는 엄마들처럼 다투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차유리와 오민정은 마치 자매처럼 친해진다.한편 차유리가 귀신이었을 때 이웃처럼 지냈던 다른 귀신들의 절절한 사연들이 소개된다. 그 귀신들은 자신을 잊지 못하고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과,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매일 같이 1인 시위를 하는 가족을 옆에서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손에 닿진 않지만 그들을 꼭 껴안아준다. 이처럼 '하이바이 마마'는 망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더더욱 절절해지는 가족의 소중함을 담는다. 그러면서 망자들이 곁에서 산 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을 떠나보낸 산 자들을 위로한다.◆새로운 가족드라마의 가능성'하이바이 마마'는 귀신의 환생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가져왔지만, 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색다른 가족드라마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가족드라마는 조금씩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가족드라마는 일일드라마를 빼고는 주중에 찾아보는 건 어렵게 됐다.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KBS 주말드라마도 시청률은 나오지만 예전만큼의 호응을 얻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이렇게 된 건 우리네 실제 가족의 양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가 늘 그려내는 대가족 형태는 이제 우리의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1인 가구가 전체의 4분의 1을 넘긴 지 오래고, 가족들도 대부분 핵가족 형태인 게 지금의 현실이다. 게다가 비혼은 유행처럼 늘고 있고, 출산율도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가족의 화목함을 지상과제처럼 다루는 가족드라마의 틀에 박힌 이야기가 공감가기는 어려울 게다.하지만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서 가족의 가치도 점점 하락하고 있다고 보는 건 편견이다.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가족을 더더욱 그리워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이바이 마마'는 이러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욕망을 담아내는 대안적인 가족드라마처럼 보인다. 달라진 삶의 방식 때문에 흩어지게 된 개인들이 가족에 대해 갖게 된 더더욱 큰 그리움은,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극적인 상황 속에서 분리된 차유리와 그 가족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악역이 존재하지 않는 가족드라마'하이바이 마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흔한 가족 간의 사사로운 갈등이나 대립도, 뚜렷한 악역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족드라마의 그 흔한 이야기 틀이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이런 지점은 주목해볼만한 부분이다. 우리가 가족드라마를 시대착오적이라 느끼게 되는 건 늘 등장하는 고부갈등, 출생의 비밀,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식상한 설정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바라보는 가족이란 그런 자잘한 갈등보다는 살았을 때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더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흔히 계모라고 부르면 느껴지는 부정적인 편견조차 깨버린다. 계모는 모두 나쁜 엄마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오민정이 술에 취해 투덜대자, 차유리는 다음날 어린이집에 있는 백설공주, 콩쥐팥쥐,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동화책들을 꺼내와 이런 애들의 상상력을 가두는 책들은 치워버려야 한다고 말한다.이처럼 환생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을 가져왔지만 그래서 가족드라마의 클리셰들을 벗어나는 대목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가족드라마도 그 형태를 바꿔 상투적인 틀을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시대에도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제 아무리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 되어도 가족은 늘 우리에게 소중할 수밖에 없을 테니.

2020-04-02 14:30:00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슬기로운 의사생활'…신원호표 뭔가 다르다?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슬기로운 의사생활'…신원호표 뭔가 다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이어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성공시켰던 신원호 PD가 이번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돌아왔다. 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절친 의사 5인방의 이야기. 기존 의학드라마와는 어떤 지점들이 다를까.◆왜 '슬기로운'일까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신원호 PD의 전작이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감방과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이 확연히 다르고, 거기 들어오는 죄수들과 환자들 역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이렇게 차별화된 지점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는 '슬기로운' 이라는 수식어와 특정 공간을 가져왔다는 점이다.'슬기로운 감빵생활'이 특이했던 건 감옥을 다루면서도 그 흔한 탈옥이야기가 아니라, 감옥 내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함으로써 잘 살아가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최고로 잘나가던 주인공 제혁(박해수)은 그래서 하루아침에 감방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로 추락하지만, 슬기롭게 대처해나간다. 하지만 그의 목표점은 다시 화려한 선수로의 복귀 같은 큰 성공이 아니다. 평범 이하로 떨어진 삶을 그저 평범하게 되돌리려는 게 그의 목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아간다.'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물론 배경이 병원이기 때문에 감방 같은 혹독한 추락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도 저마다 어느 정도 성공한 의사들이다. 하지만 안정원(유연석) 같은 병원을 물려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이를 포기하고 대신 절친 5인방과 소외된 환자들을 돌보는 행복한 일상을 선택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제혁과 닮은 점이 있다. 제혁이 밑바닥에서 평범을 향해 가려 했다면 안정원은 정상에 오를 수도 있지만 이를 선택하지 않고 평범을 향해 간다.그런데 왜 이들은 평범을 선택하는 것일까. 그것이 '슬기로운' 생활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추구하는 성공이 아닌 행복지향의 삶은 아득바득 정상에서 버텨내는 삶도, 그렇다고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삶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평범한 행복들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슬기로운' 생활의 지혜라는 것.◆목표 지향적 아닌 일상적 스토리들대부분의 드라마들이 하나의 목표를 세워두고 달려가는 '목표 지향적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목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성공지향이 아닌 행복지향의 이야기를 추구하고 있어서다. 물론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이기 때문에 환자들의 에피소드들이 빠지지 않는다. 저마다 아픔을 가진 환자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휴먼스토리이자, 우리네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중요해지는 건 인물들이다. 일상적 스토리가 파편화되지 않고 묶여질 수 있는 건 결국 인물일 수밖에 없어서다. 안정원을 중심으로 이익준(조정석), 김준완(정경호), 양석형(김대명), 채송화(전미도)로 구성된 5인방은 그래서 저마다 개성과 매력이 뚜렷한 인물들이다.안정원이 환자를 위한 배려가 넘치는 키다리 아저씨 의사라면, 이익준은 어딘지 엉뚱한 면들이 많으면서도 못하는 게 없는 천재적인 의사다. 김준완이 환자에게도 동료의사에게도 깐깐하면서도 그와는 상반되게 5인방에 대한 따뜻함을 드러내는 의사라면, 양석형은 은둔형 외톨이에 마마보이지만 별난 매력을 가진 의사다. 그리고 5인방의 홍일점인 채송화는 병원 내에서 귀신으로 불릴 정도로 후배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의사로 5인방의 애정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드라마는 매회 5인방 중 한 명씩 인물들을 중심에 세워 소개하고 그와 어우러지는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 그리고 다양한 환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병원 내에서의 권력관계 등을 복합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한 회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드라마의 목표지향점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인물들의 성장스토리가 그 부분을 메워준다.◆'응답하라'를 닮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5인방의 인물을 중심에 세워두고 급하게 목표를 향해 몰아치는 이야기가 아닌 자잘한 일상사와 그로 인해 성장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마치 '프렌즈' 같은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물론 5인방의 이야기가 과거 청춘 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그 관계들을 설명하는 과정들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닮아있고 또 채송화를 둘러싼 남성들의 보일 듯 말 듯한 멜로가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어주지만, 그것이 '응답하라'의 남편 찾기 같은 양상으로까지 갈 지는 의문이다.그것보다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사건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그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인물들의 매력만으로도 자꾸만 이 드라마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프렌즈' 같은 오래도록 지속된 시즌제 드라마가 마치 시청자들과 어떤 유대감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닮았다. 시청자들은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그 인물들이 마치 이웃 같고 친구 같아서 계속 보고 싶어진다.게다가 이러한 일상과 인물을 축적해 담아내는 이야기는 그것이 훨씬 우리네 삶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준다. 결국 한 사람의 삶이란 굉장한 목표를 향한 질주보다는 자잘한 일상들의 누적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신원호 월드는 '응답하라'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거쳐 그 드라마틱한 삶이 매번 슬기로운 선택을 한 생활에 담겨있다는 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만약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보다 긴 호흡의 시즌제 드라마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2020-03-26 13:28:27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19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코로나19가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

코로나19는 대중문화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객들이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극장 대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콘텐츠 소비는 급증했다. 그런가 하면 시국 때문에 몇몇 드라마, 영화들은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코로나19가 예능가에 미친 영향들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예능 프로그램은 관객과 호흡할 수밖에 없는 오디션형 프로그램들이다. KBS '씨름의 희열'은 씨름의 중흥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거의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시점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결승전을 쓸쓸한 무관중으로 치러야 했다. 결승전 참여를 원하는 관객들이 수천 명이나 몰린 상황이었던지라, 무관중 결정은 더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TV조선 '미스터트롯'도 마찬가지였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청률 35%(닐슨 코리아)를 넘어서며 트로트 열풍을 이끈 이 프로그램 역시 코로나19의 여파로 무관중 결승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관중으로 찍은 결승전에 시청자들의 유일한 참여 창구가 된 문자 투표로 투표가 폭증하면서 결승전 당일 우승자 발표를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 결국 이틀 후에 임영웅이 최종 우승자로 발표됐지만 깔끔한 마무리가 되지는 못했다. 이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물론 이런 악조건을 역발상으로 넘으려는 시도도 등장했다. tvN '코미디 빅리그'는 관객 대신 개그맨들을 투입함으로써 그 리액션까지 또 다른 코미디의 한 부분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MBC '놀면 뭐하니?'는 코로나19로 인해 연이은 취소 사태를 겪고 있는 공연계에 '방구석 콘서트'를 제안함으로써 대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방송을 통해서나마 공연계와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었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겨울방학(?)의 휴지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스튜디오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찍어온 영상을 보며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프로그램 특상 상 야외로 나가 대민접촉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그게 어려워진 탓이었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는 대구 지역의 의사, 간호사들과 화상통화를 통해 현지의 상황과 그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큰 화제가 되었다.코로나19는 이처럼 예능가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하나의 캠페인으로 이뤄지고 있는 요즘, 예능프로그램들은 적당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도 그럴수록 더더욱 요구되는 소통의 물꼬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코로나19가 새삼 관심을 촉발시킨 콘텐츠들코로나19는 감염병 관련 콘텐츠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사람들이 모이는 극장 출입이 현저히 줄어든 대신 집에서 OTT를 이용한 콘텐츠 소비는 급증했다. 이 시점에 넷플릭스가 김은희 작가의 '킹덤' 시즌2를 공개한 건 의도된 건 아니지만 확실히 반사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이미 시즌1으로 '조선시대 좀비'라는 색다른 세계를 통해 전 세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킹덤'은 시즌2에서 보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동래에서부터 퍼져나간 역병이라는 설정은 작금의 대구, 경북에 특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진 상황과 맞물려 이 드라마에 실감을 더해줬다. 역병이 발병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좀비들의 확산세와 이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민초들 그리고 이를 심지어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의 이야기는 현재 코로나19가 그려내는 현실적 풍경과도 겹쳐지는 면이 있어서다. 여러모로 '킹덤'은 팬데믹 상황에 직면한 상황 속에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콘텐츠가 되었다.한편 최근 호평 속에 시즌2를 종영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현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환자들을 위해 대구로 달려간 의사, 간호사들에 쏟아지는 찬사와 맞물려 새삼 그 가치를 드러낸 드라마가 되었다. 심지어 '의인'으로 불리는 대구로 간 의사들에 '낭만닥터'라는 지칭이 생길 정도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환자를 위해 현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의사들에게 보내는 대중들의 존경의 표시가 그 지칭 속에는 담겨있다.코로나19로 극장가는 관객 수가 급감하며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관객이 줄어든 데다, 배급사들도 영화 개봉을 연기하면서 해외의 경우 심지어 극장이 폐쇄되고 영화제 또한 연기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감염병을 다룬 영화들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치사율 100%의 변종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다룬 재난영화 '감기', 2011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전'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코로나 19는 봄이 왔어도 여전히 겨울 같은 우리네 일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상과 밀접한 대중문화도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어려움 속에서도 대중문화는 나름의 해법들을 찾아내고 있다. 물론 궁극적 해결은 이 시국이 완전히 지나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버텨낸다면 우리의 일상에도 또 대중문화에도 기다리던 봄은 오지 않을까.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20-03-19 13: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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