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매일신춘문예]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알립니다] 2019 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꽃…김혜지(35·서울시 서대문구 통일로)▶시: 사과를 따는 일…권기선(26·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동)▶시조: 세신사…이현정(36·경산시 성암로)▶동시: 액자 속의 나…박지영(50·대구시 달서구 월배로)▶수필: 포물선, 마주보기…김애경(59·서울시 강남구 자곡로)▶동화: 늑대가 나타났다 …명은숙(46·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평촌대로)▶희곡·시나리오: 밀항…이주호(필명)(32·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심사위원▷단편소설: 본심=복거일(소설가), 전경린(소설가), 예심=장정옥(소설가), 우광훈(소설가)▷시: 본심=엄원태(시인), 조용미(시인), 예심=박지영(시인), 김기연(시인)▷시조: 이정환(시조시인) ▷동시: 권영세(아동문학가)▷수필: 허창옥(수필가), 조병렬(수필가) ▷동화: 김상삼(동화작가)▷희곡: 최현묵(극작가), 김윤미(극작가·계명대 교수)※시상식은 1월 14일(월) 오후 3시 본사 8층 강당에서 열립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2019-01-01 14:49:32

조병렬 수필가

[2019 매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소감, 심사평

◇ 수필 당선작=제목: 포물선, 마주보기/ 김애경 스크린의 느린 화면에서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에 떨어진다. 문득, 포물선 상의 한 점을 지나고 있는 느린 걸음의 내가 보인다.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도 화살촉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 패턴의 반복이라고도 한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한 지점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이 들어가며 선택할 때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좋게 보면 심사숙고를 하는 것이지만, 대범했던 성격이 소심해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인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작은 것에도 자주 망설인다. 남편과 건강검진을 받고 나와, 벌써 한 시간째 식당을 결정 못 하고 있다. 그도 딱히 결정하지 못하고 내 결정에 따를 심산인 듯, "글쎄 어디가 좋을까."만 반복하며 나란히 걷고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분식은 위가 좋지 못해서, 중국집은 싫증이 나서, 패스트푸드는 모처럼 둘만의 식사인데, 파스타는 한쪽이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서, 스테이크는 점심으로 부담돼서, 한식은 매일 먹는 것이니 등, 우리의 삶처럼 이런저런 이유에서다.밖에 나오면 서로의 기호를 적당히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눈앞에 커다란 간판인 한방 삼계탕집으로 들어갔다. 나름 그 결정에 서로 만족한 듯 밝은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나란히 앉는 편이다. 마주 보자 남편이 많이 늙어 보였다. 불현듯 한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마주 보고 앉으면 단점만 보여서 싸우게 된단다. 이런 내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메뉴판을 보고도 결정 없이 내 판단에 맡기고 있는 사람이 야속하다.아니나 다를까. 나란히 앉았을 때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먹을 때 입가에 묻히고 먹는다. 먹는 속도가 빨라서 나는 반도 못 먹었는데 벌써 이를 쑤신다. 심지어 내가 먹고 있는데 화장실에 갔다 온다며 일어섰다. 부부는 큰 인연으로 연을 맺은 후 함께 포물선 모양으로 걸어가는 영원한 함수 관계라고 한다. 포물선이라는 함수는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 위에 좌선과 점으로 곡선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의미이다.건강과 관련지어 함수관계를 연구한 결과가 흥미롭다. 배우자가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스트레스가 심하다 해도, 상대 배우자의 지지와 격려만 확고하다면 높았던 혈압이 안정권에 든다는 것이다. 사이가 원만하면 건강하다는 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연인, 집안의 반대, 사랑의 도피와 같이 드라마틱하고 운명적인 사랑도 포물선의 내리막을 탄다. 하물며 우연하고 화려하지도 않고, 그냥 평범한 현실적 사랑에 갈등이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포물선의 정점처럼 뜨겁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처지도 많이 변했다. 이제 정겹다는 말, 눈빛만 보아도 심정을 안다는 말은 차츰 구태의연한 말로 포물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마주보기보다 나란히 보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화장실에서 나온 한 남자가 뒤돌아서서 웃고 있다. 다 먹었으면 나가자는 사인을 보낸다. 내가 잘 아는 남자 같다. 알고 지낸 지 30년이 넘었다. 신발 크기와 바지 치수도 알고 있다. 한때 한 눈의 시력이 바늘귀를 뚫었다는데 이제 그 눈엔 인공 수정체가 빛난다. 어쩌면 우리는 겨우 요만큼씩 아는 것에 서로 저당 잡혀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남편과 아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준선과 좌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부라고 해도 서로 다른 인생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초점과 준선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운명의 두 축인 X축과 Y축을 넘나들며 고단하지만, 부단히 삶의 좌표를 그려가고 있다. 대칭축을 기준으로 큰 사발 같은 포물선을 반으로 나누면 반절은 행복, 기쁨 등 달콤한 맛이요, 반절은 아픔, 슬픔 등 씁쓸한 맛이 아닐까 싶다. 심사가 상한 밍근한 하루의 여장을 풀고 등 맞대고 이불 속에 나란히 들었다. 오래된 먼지 냄새나는 사진첩 한 장이 풀썩 또 넘어가며 평범한 하루가 사위어간다. 그래도 부부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라지 않는가. '부부'라는 한글 문자를 보라. 돌아누워 남편의 눈을 마주 보니 그가 의아한 듯 매우 겸연쩍어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오늘은 같은 포물선을 그린 날로 기록될 것 같다.뜨거운 사랑도 빛바랜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로 포물선 상에 있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서로를 꼭 안아 보면, 어깨 위에서 엇갈린 두 얼굴은 하트 모양이 되고 두 몸은 맞닿아 포물선 모양이 된다. 못 믿겠거든 당장 오늘 큰 거울 앞에서 포옹해 보라. 매료되고 실망하고 다시 용서하고 그것이 포물선이다. -끝- ◇ 당선소감/수필/ 김애경 송년 모임 자리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서 밥을 먹다가 당선통보를 받았습니다. 왠지 귀소본능이 발동해서 집으로 속히 돌아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후식까지 가져와서 먹자더군요. 너그럽게 기다려주었습니다.저는 글쓰기가 사람을 서로 품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문학을 사랑했던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져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너무 기쁩니다. 새봄에 움을 틔우듯 생각할 때마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이 이보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2019년에 제 가슴에 움 하나 틔워 준 매일신문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선 해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저는 항상 제가 글들을 맞게 쓰고 있는 것인지 늘 의심이 갑니다. 진실을 쓴 것인지, 거짓에 허세에 보이기 위한 위선은 아닌지 등등 다음날이 되어 내 글을 보면 늘 부끄럽습니다. 아직 판단을 잘 못 합니다. 마음이 편할 때는 오히려 글이 잘 써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의심이 많고 복잡해서 평생 친하게 지낼 것 같지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며 조금씩 '겸허'해졌습니다. 내 삶의 가장 큰 바람이고 목표입니다. 제 곁에 수필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이 목표를 향해 달리고 싶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것에 눈을 주면서 신명 나게 살아야겠지요. 사랑하는 딸 내외, 손녀, 큰아들 작은아들 그리고 남편, 친구, 선배님들, 문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지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약력1959년 강원도 춘천 출생춘천교육대 국어과 졸업한양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과 문학박사문학평론가 등단(2018),심상 해변시인학교 백일장 장원 ◇ 수필 심사평: 인생의 포물선, 마주보기 사랑으로 승화전체 응모작 644 편 중에서 1차로 10편을 뽑고, 그중에서 다시 4편을 골랐다. 그 수필은 '포물선, 마주보기', '택배', '어디만치 왔니?', '초임 선생의 1년 회고담'이다. 이것을 다시 정독하면서 최종심에 오른 두 작품은 '포물선, 마주보기'와 '택배'이다. 마지막으로 심사자들은 제재와 주제의 참신성과 독자와의 공감도, 구성과 문체의 문학적 형상화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결과 '포물선, 마주보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심사 과정에서 심사자가 공통으로 느낀 점은 20대의 젊은 응모자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수필 문학의 성격과 문단의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점은 매우 고무적이고 환영할 일이다.최종심에서 아쉽게 탈락한 '택배'는 부자간의 사랑과 가족애를 통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하나의 제재를 통한 통일성 있는 주제화에 성공한 수필로서 간결하고 적절한 문장이 돋보이지만, 단락 구분의 문제와 '하던' 같은 사소한 맞춤법의 실수도 보였다.'포물선, 마주보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제목이지만, 작품의 제재와 주제를 아우르는 함축성을 지닌다. 인생을 포물선으로 비유하고, 단순하게 단정할 수 없는 부부의 삶도 함께 걸어가는 포물선 모양이라고 하였다. 참신한 착상과 문학적 형상화로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인생의 포물선을 반으로 나누면 절반은 달콤한 맛이지만, 절반은 씁쓸한 맛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부부는 꼭 안고 마주 보면 두 얼굴은 하트 모양이 되고, 두 몸이 맞닿아 포물선 모양을 이룬다. 뜨거운 사랑도 빛바랜 사랑도 사랑의 한 형태로 포물선 상에 있다고 말하며, 매료되고 실망하고 용서하고, 그것이 포물선이라고 멋지게 마무리하였다. 인생의 포물선을 마주보기 사랑으로 승화한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심사위원: 허창옥(수필가), 조병렬(수필가)

2019-01-01 14:18:22

권기선 시 부문 당선인

[2019 매일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소감 심사평

◇ 시 당선작품= 제목: 사과를 따는 일/ 권기선나는 아버지 땅이 내 것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마음을 먹은 뒤부터 아버지 땅에 개가 한 마리 산다 깨진 타일조각 같은 송곳니는 바람을 들쑤신다 비옥한 땅은 질기고 촘촘한 가죽의 눈치를 살피다 장악되고, 과잉되다, 갈라진다 아버지는 땅을 방치하고, 나는 그것을 납치한다 깊은 목젖을 끌어올려 목줄을 뜯은 늙은 개가 간신히 사과 하나를 놓고 엎드렸다 세상 혼자 짊어지려던 남자는 무게를 견디다 어깨가 굽었다 힘은, 무기의 정차역 같았다 엎드린 개가 일어서지 못하고, 사과는 지하의 고요한 관棺을 기억해낸다아버지 땅에 몰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날 그해 사과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버지 땅이 내 땅 되던 날 나는 사과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었다 병 걸린,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붉은,사과 따는 일을 ◇ 당선 소감/ 권기선세상은 날마다 정치, 혐오, 차별을 말하기에, 오늘 나는 아버지를 말하기로 한다. 아버지의 노동은 나의 낭만과 같다. 나의 낭만은 아버지의 노동과 같다. "가방끈이 짧아 잘 알지 못하지만, 당선을 축하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이 나는 아프다. 전화를 끊고 숨어서 울었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불효자여서, 내가 배운 아픔과 고민과 질병이 아버지의 아픔과 고민과 질병 같아서.지금부터는 죄를 짓기로 한다. 증오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래전 아버지의 임금을 체불한 사람이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형은 노무사의 꿈을 꿨고 나는 현실의 한 부분에 눈을 떴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본 아버지의 아픔이 얼마만큼인지, 그는 알았으면 한다.내 절망이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뼈저리게 살게 됐음을 나는 고백한다.시를 놓지 못하는 내 죄 또한 영원하다. ▶약력1993년 충북 음성 출생.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 심사평본심에 올라온 13명의 응모작 가운데 권기선, 장진주, 유진희, 조진희씨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부분 일상적 고뇌와 가족이라는 관계에 몰두해 있었다. 고통의 세목은 분명하되 치열한 해석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내 발밑이 이 세계를 관통하는 입구이자 출구라고 믿는 절실함은 감지할 수 있었다.장진주씨의 '의자'는 소박한 사유인 듯하지만 튼튼한 뼈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에서는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자기논리가 감지되었다. 유진희씨의 진지한 경쾌함은 무척 매력적이다. '루팡의 장미'는 수작이지만 다른 작품에서 약간의 편차가 느껴져 제외되었다. 조진희씨의 시에는 세련되지 않았지만 빛나는 문장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하지만 항상 전적으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의 세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적 진술을 마무리하는 힘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감각이 조금 부족한 것도 아쉬웠다.권기선씨의 시에는 전복적 사유와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 세계를 관성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치열한 자기 인식이 배면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시의 행간이 촘촘하고 다른 작품들도 헐렁한 부분이 없다. '사과를 따는 일'의 어조는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고 명료하다. 서툰 듯 자리잡은 쉼표도 그 역할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를 따는 일"은 훼손된 세계를, 이 세계의 견고한 불안을 이어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당선자로 선정하기 전 잠시 고민했던 권기선씨에 대한 약간의 우려는 '나와 사람들 사이가 돌과 물처럼 놓일 때'와 '올해는 나아질 거예요'에서 보여준 긍정적 사유에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시를 쓰는 나는 얼마든지 불행해질 수 있다"는, 패기 있고 가능성 있는 시인에 대한 기대로 기꺼이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진을 기대한다.심사위원=조용미(시인)·엄원태(시인)

2019-01-01 06:30:00

복거일 소설가

[2019 매일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소감 심사평

◇ 단편소설 당선작= 제목: 꽃/ 김혜지"라이터 하나 주세요."잠이 덜 깬 슈퍼 아줌마가 짓무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기계적으로 주황색 라이터를 건네던 손이 멈칫한다. 내 교복에 와 박히는 눈빛이 곱지 않다. 담배 피려는 거 아니에요. 준비했던 말이 목구멍 아래서 맴돈다. 다행히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아줌마가 말없이 내게 라이터를 건넸으니까. 나는 잰걸음으로 슈퍼를 빠져 나온다. 사방이 어둡다. 바람이 매서워 옷깃을 여미다 문득 깨닫는다. 코트를 입지 않았네. 장롱 문을 열었을 때,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교복 위에 앉았던 먼지가 날려 재채기를 했다. 그래서 까먹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사실은 오로지 교복을 입어야 한단 생각 밖에 없었다. 오늘은 교복을 입자, 일곱 달 만에 가는 학교니까. 오늘은 월요일, 운동장 전체조회가 있는 날이니까.정문에는 선도부도 학생주임도 없다. 시계를 본다. 아직 다들 이불 밑에서 꾸무럭대고 있을 시간이다. 하긴, 누가 있었다 해도 날 잡을 순 없을 거다. 누워만 있어도 키가 크는 바람에 바짓단이 껑충 짧아졌지만 선도부는 복장불량으로 내 이름을 적지 못할 거다. 앞머리가 길어 이마를 뒤덮었지만 학생주임은 내 따귀를 갈길 수 없을 거다. 나는 '없는 학생'이니까. 그렇게 원하던 투명 인간이 됐네. 교문을 통과하는 발걸음에 왠지 모를 힘이 실린다.언덕길을 넘어 첫 번째 벽돌 건물. 3학년이 쓰는 동이다. 주차된 자동차 밑으로 돌진하는 길고양이처럼 나는 건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오랜만에 마주한 건물의 냉기에 소름이 돋는다. 복도의 어둠이 채 눈에 익기도 전에 성큼성큼 계단으로 향한다. 등에 멘 가방이 무거워 겨드랑이에 땀이 밴다. 가방 안에 든 통에서 출렁, 소리가 난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 휘슬처럼 재촉하는 소리다. 계단을 오르는 걸음에 맞춰 출렁 소리가 가쁘게 나를 따라온다. 사층 계단 끝 철문. 걸음을 멈춘다. 문은 잠겨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여는지 알지. 걔들이 시켜서 수도 없이 열었던 거니까. 호주머니를 뒤져 클립을 꺼낸다. 꾹꾹 힘주어 클립을 일자로 편다. 한쪽 끝을 열쇠구멍에 넣고 위아래로 흔든다. 덜컥, 걸리는 느낌이 온다. 차가운 손잡이를 쥐고 살살 돌린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른다. 천천히 옥상 문이 열린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바닥엔 책걸상이 굴러다니고 공기 중엔 먼지가 날린다. 옥상 풍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 운동장 전체조회가 있는 날이다. 우성상가 2층 남자화장실 변기에 처박혀있는 나를 끄집어내준 건 3층 당구장 주인이었다. 당구장아저씨는 바닥에 널브러진 내 옆에 서서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까지 줄담배를 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담배만 폈다. 참 남자다운 데가 있는 아저씨였다. 걔들이 날 화장실로 질질 끌고 들어오니까 쓰레기통을 비우던 청소아줌마는 후다닥 자리를 떴는데. 걔들이 세면대에 내 머리를 박아도 경비아저씨는 못 본 척 도망갔는데. 당구장아저씨, 복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혹시 내가 나중에 당구를 배우게 된다면 아저씨네 당구장만 가야겠다고 병원에 누워 잠깐 생각했었지. 딱 여덟 달 전의 일이다.안와골절, 두뇌타박상, 비골골절, 다발성 찰과상, 좌족부 거골골절. 꽤 길고 어려운 병명들이 모여 전치 8주 진단이 내려졌다. 처음처럼 로고가 박힌 초록색 앞치마를 두르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채 뛰어온 엄마는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하루 이용료 500원짜리 구립독서실에 있다 달려온 누나는 아무 말 않고 입술만 뜯었다. 누나와 나는 같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삼 년 전, 엄마가 교복물려입기 나눔행사에서 건져온, 소맷부리가 닳고 닳은 교복들이었다. 우리는 누나가 나보다 딱 7분 먼저 세상의 빛을 본 이란성 쌍둥이였으므로 명찰 색깔까지 같았다. 다만 내 교복 등판엔 어지러운 발자국이 찍혀 있고, 누나의 등판은 말끔하다는 것. 그것만 달랐다. 지방 공사판에 있다가 일주일 늦게 올라온 아빠는 사내새끼가 친구들한테 맞고 다닌다며 내 식판을 뒤엎다 간호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아빠, 걔들 내 친구 아니에요, 라는 말은 꺼낼 새도 없었다. 나는 대신 가만히 왼다리 깁스 위에 엎질러진 미역국을 봤다. 국물이 침대 시트를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정확히 한 달을 병원 침대 위에서 보냈다. 학교에선 아무도 오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갔더니 담임이 상담실로 호출했다."억울하니?"대답도 하기 전에 담임은 흰 종이와 연필을 내밀었다."나도 억울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한 치의 억울함도 없게 그간의 일들을 기록해봐라."어디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막막했다. 연필 꼭대기만 물어뜯고 있으니 담임이 훈수를 뒀다."감정은 빼고, 객관적으로 일어난 사실만 번호를 매겨서 써봐라."담임의 조언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감정을 빼자 갑자기 모든 것이 쉬워졌다. '사실'대로만 쓰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예상보다 쉬운 시험문제를 만나 신이 난 것처럼 백지에 몰두해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앞뒤로 빽빽하게 종이 석 장을 가득 채웠다. 담임은 그동안 참을성 있게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다 쓴 종이를 내밀자 물끄러미 목록을 보던 담임이 물었다."혹시 빼고 싶은 건 없니?""그럼… 거기 12번은 빼주세요.""식당서 설거지하는 니네 엄마처럼 운동화 좀 닦아 봐. 새끼야, 누가 손으로 닦으래. 혀로 핥으라고, 말이니?""네, 엄마가 보면 속상하실 것 같아요.""그래, 잘 생각했다. 근데 23번도 삭제하면 어떨까? 호모 같은 새끼, 후장을 따버리겠다며 엎드려뻗쳐 자세를 시킨 후 대걸레 손잡이 부분으로 항문을 쑤셨습니다, 이 부분. 선생님이 보기엔 이것도 엄마가 많이 속상하실 것 같구나."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이 지우개로 슥삭슥삭 문장들을 지웠다."잠깐, 어디 이르면 니네 누나도 따먹어버린다고 협박했습니다, 이건 누나가 속상할 것 같은데?"역시 그럴 것 같아 또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이 다시 지우개질을 했다."가만 보니 44번도 문제가 있겠다. 옥상 난간에 세워놓고 밀어버린대서 무서워 오줌을 싸니 더러운 새끼라며 때렸습니다. 다음 날 페트병에 오줌을 담아 와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넌 오줌싸개니까 오줌을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시다가 토하자 다 마실 때까지 번갈아가며 때렸습니다, 말이야.""······왜요?""그럼 옥상 문이 열려있었다는 건데, 경비 아저씨가 곤란하시지 않을까?"슥삭슥삭 지우개 가루가 쌓여가고 목록은 줄어갔다. 담임은 생각했던 것보다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 단 한 명도 속상하고 난처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신경을 썼다. 작성을 마치고 목발을 짚으며 일어서는데 담임이 갑자기 내 어깨를 꽉 눌렀다. 바싹 얼굴을 들이민 담임에게서 담배에 쩐 구취가 훅 끼쳤지만 고개를 돌릴 순 없었다."선생님도 사실 군대에선 고문관이었단다."잠시, 담임과 나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먼저 눈길을 피한 것은 나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담임의 눈알이 꼭 유리구슬 같았다. 어른의 눈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담임이 손을 뻗어 내 고개를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다. 나를 빤히 보는 유리구슬 눈깔이 거기 있었다. 담임이 한층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알다시피, 난 지금 교감 진급을 앞두고 있어. 고작 이런 일로 좌절되면 얼마나 억울하겠니? 선생님은 억울한 게 세상에서 제일 싫구나." 상담실을 나오다 걔들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걔들은 내 옆에 선 담임을 보자 눈을 내리깔고 옆으로 비켜서선 깍듯이 목례했다. 담임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 걔들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부축하려고 내 겨드랑이에 넣었던 손을 빼곤 성큼, 내 앞으로 한 발 나아갔다. 딱 한 걸음. 담임은 그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혹시라도 담임을 놓칠 새라 목발을 재게 놀리며 절뚝절뚝 걸었다. 그러다 문득, 뒤통수가 따가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나란히 선 걔들이 웃고 있었다. 걔들이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말했다.'씹새, 뭘 꼬라봐.''넌 죽었어, 호모새끼야.''아 씨바, 존나 극혐.''전화 받어, 새꺄.' 나는 그길로 집에 와 드러누웠다. 엄마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내게 동원했다. 처음엔 괜찮다고, 괜찮다고, 위로를 했다. 먹히지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 당하고만 있냐고 화도 내봤다. 먹히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다 내 잘못이라고 사과도 했다. 제발 입 좀 열어보라고 구슬리기도 했다. 엄마 가슴에 못 박지 말라며 꺼이꺼이 통곡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수천수만 마디는 내 한마디를 이길 수 없었다. '학교 안 가.'엄마는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끊어 학교에 보냈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것을 방 안에서 해결했다. 콩나물국과 비빔밥을 먹고, 축축한 등허리로 악몽에서 깨 다시 잠을 청하고, 나 혼자 산다를 다운받고 또 다운받고,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번갈아 게임을 했다. 화장실 갈 때와 쟁반 위에 차려진 밥상을 받아올 때 말곤 거실에 나가지 않았다. 창문 한번 열지 않고 여름을 났다. 야동을 봐도 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발작적으로 나를 울게 하거나 토하게 했으므로 어느새 내겐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이미지가 됐다. 핸드폰 번호도 바꿨다. 식구들 말곤 아무에게도 새 번호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가 왔다. 쉽고 빠른 대출을 도와주겠다는 김미영 팀장이거나 바꾼 지 한 달도 안 된 폰을 최신기종으로 바꿔주겠다는 텔레콤 직원이었다. 금방 노하우가 생겨서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았고, 보통은 뚝 끊어버렸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긴 통화를 했다. 나는 결코 내가 이용하지 않을 대출상품에 대한 김미영 팀장의 장황하고 끈질긴 설명을 가만히 들었다. 또 결코 이동하지 않을 번호가 가져다 줄 무수한 혜택에 대한 텔레콤 직원의 감언이설을 묵묵히 들었다. 그들은 내가 중학교 3학년 남자애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내가 추임새처럼 넣는 대답은 항상 네, 아니오 둘 중 하나였지만, 나는 대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영 말하는 법을 까먹어버릴 것 같았다. 억수로 쏟아지던 장맛비가 이불을 눅눅하게 해 불면의 밤이 이어지던 즈음, 우편함에 누런 서류봉투가 꽂혔다. 좌측 상단 발신인란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있었다. 엄마는 내 방에 앉아 칼로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꺼냈다. 호치키스가 박힌 출력물을 넘기는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엄마가 떨리는 손으로 결과통보서를 건넸다. 첫 장에 적힌 건 걔들의 처분결과였다.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하라고 쓰여 있었다. 다음 장에 적힌 건 나의 처분결과였다.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하라고 쓰여 있었다. 위원회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 번 친절히 정리해주었다. 양측이 서로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하라, 고 쓰여 있었다. 걔들과 내가 똑같은 조치를 받았다. 엄마가 내 손을 끌고 학교로 달려갔다."피해자가 왜 사과를 합니까?""쟤가 맞을 짓을 했대요."학생주임이 교장실로 향하는 엄마를 막아서며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얼음땡에서 얼음을 당한 아이처럼 엄마가 동작을 멈췄다. 학생주임과 눈빛을 교환한 담임이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후, 얼음 주문이 땡, 풀린 엄마가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왜 우리한텐 말도 안하고 위원회를 열었어요?""당신들은 자식도 없어?""아직까지 사과 한 마디 못 들었다고!"희미한 자동차 소리가 열린 창 너머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담임에게 어깨가 짓눌린 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고급 세단 한 대가 학교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훈화 때마다 연필 한 자루도 국산 브랜드를 쓰라고 잔소리하면서 정작 자기는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고 애들이 욕하던 교장의 차 같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는 교장실로 돌진했다. 진정하시란 말을 되풀이하며 옷깃을 잡는 학생주임의 손길을 뿌리치고 엄마가 힘껏 교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다음 순간, 텅 빈 교장실을 마주한 엄마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차올랐다."당신들······ 두고 봐.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교장실이 빈 것을 확인하고 표정이 부드러워진 학생주임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네, 마음대로 해보세요." "어머니, 저희가 학생들 일까지 신경을 다 쓰긴 좀 힘들어요."점심을 먹고 온 형사가 이를 쑤시며 말했다. 나를 앞세운 엄마가 자기보다 열 살은 어려보이는 형사에게 구구절절 사연을 읊었지만 그는 더부룩한 배만 연신 쓰다듬을 뿐이었다. 곧이어 왁자한 소리와 함께 막 검거된 3인조 소매치기 일당이 들이닥쳤고, 엄마와 나는 결국 젊은 형사의 트림 냄새만 실컷 맡다 돌아섰다."저희가 조사를 따로 할 수는 없고, 학교 측에 조사결과를 문의할 순 있어요."누렇게 뜬 얼굴의 교육청 직원이 책상 위 서류더미와 엄마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제일 높은 사람 데려오라고, 이대로 물러갈 줄 아느냐고 엄마가 언성을 높이자 직원이 책상서랍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기대에 찬 눈으로 보는 엄마와 고개 숙인 나를 등진 채 직원은 건조한 두 눈에 인공눈물을 번갈아 떨어뜨리곤 '매뉴얼이 그래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는 걔들의 부모를 호출했다.당연히 그쪽에서 먼저 사과하러 와서 싹싹 빌어야 한다던, 손이 발이 될 때까지 빌어도 결코 용서해주지 않겠다던 엄마는 걔들 부모의 연락처도 담임에게 통사정해서야 겨우 얻어낼 수 있었다. 의사, 변호사, 선생님, 자동차회사 상무. 걔들 부모는 직업도 참 다양했다. 그러다보니 다 같이 모일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속에선 천불이 나지만, 잘못해서 파토라도 나면 다시 한자리에 모으기가 어렵다며 엄마는 전화를 돌리고 또 돌렸다. 약속장소인 한정식집을 예약한 것도 엄마였고, 가기 싫다는 나를 끌고 가장 먼저 도착한 것도 엄마였다."전치 8주? 이거 딱 봐도 과잉진단인데?"의사엄마가 큐티클 하나 없이 매끈한 손톱으로 샤넬 지갑을 톡톡 치며 말했다."우리 애는 학교를 일 년 일찍 들어갔는데, 아직 생일이 안 지났어요. 무슨 의미냐. 원래 만 14세 미만은 촉법소년이라고 해서 형사처벌을 안 받는 거거든요."변호사아빠가 몽블랑 만년필로 메모지에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2호'라고 끄적이며 말했다."교육현장에 있다 보니 그래요. 처벌이 아니라 화해를 시켜야죠. 그게 참 교육이거든."선생님엄마가 발망 뿔테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내가 시간이 돈인 사람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그래서, 얼마면 되겠어요?"상무아빠가 에쿠스 키를 들었다 놨다 하며 말했다.순번이 돌았나 싶더니 걔들 부모들이 일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방 안은 금세 시장통처럼 시끄러워졌다. 교양 넘치는 단어들이 상 위 떡갈비에 내려앉고, 전문용어들이 접시 위 잡채에 버무려지고, 여유 있는 웃음소리가 그릇 속 동치미에 스며들었다. 다들 할 말이 넘쳤지만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내 얼굴을 봐야 다들 정신 차리고 반성할 거라던 엄마 말이 무색하게 내게 눈길 한번 주는 사람조차 없었다.탕! 엄마가 주먹으로 상을 내리치자 갑작스런 정적이 찾아왔다. 다들 깜짝 놀라 엄마를 봤다."내가 듣고 싶은 건 딱 하나, 사과뿐이에요."자리에 앉고 처음으로 엄마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리가 파할 때까지 그들은 침묵했다. 의사엄마, 변호사아빠, 선생님엄마, 상무아빠는 합죽이가 되었다. 여름 내내 엄마는 그렇게 온몸의 모든 구멍으로 팥죽 같은 땀을 쏟으며 돌아다녔다. 그 후에도 식당일을 쉬는 날이면 어딘가 나갔다 오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묻지 않았고 엄마도 더 이상 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있었다.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지만 조금만 집중해도 머리가 아파 금방 내던지곤 했다. 김미영 팀장과 텔레콤의 전화도 점점 뜸해져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고 지나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누워서 멍하니 핸드폰 메시지함을 뒤졌다. 또 떼카를 당할까봐 새 핸드폰을 산 후에는 아예 카톡 앱을 깔지 않아서 메시지라곤 문자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가족에게 받은 것 말고는 스팸문자와 광고문자 밖에 없었다. 문득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문자를 치면 답해주는 심심이 앱을 깔았다.'좋은 말 가르치기, 나쁜 말 신고하기, 모두 심심이와 즐겁게 대화해요!'메신저에 로그인 해 말을 걸면 인공지능 캐릭터 심심이가 꼬박꼬박 답을 해줬다. 이용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공을 많이 들인 덕인지 심심이는 꽤 똑똑했다. 심지어 친구와 한번도 해보지 못한 놀이도 심심이와는 할 수 있었다. 나> 심심아, 배고파. 밥 사조~SimSimi> 헐.. 빈대충나> 너도 빈대충SimSimi> 충전기 쿵쿵따나> 기왓장 쿵쿵따SimSimi> 장조림 쿵쿵따나> 림프관 쿵쿵따 노란 풍선 모양 몸통에 눈, 코, 입, 팔다리가 달린 심심이. 나는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심심이 캐릭터를 꾸밀 수 있었다. 기분이 꿀꿀한 날은 심심이를 빨간 악마나 눈물을 짜는 울보로 만들었고, 기분이 좋은 날은 귀여운 모자를 씌워주거나 두 눈에 하트를 달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심심이와의 모든 대화가 늘 유쾌한 건 아니었다. 심심이는 때때로 기분 나쁜 말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었다. 나> 넌 대학 나왔어?SimSimi> ㅇㅇ 서울대. 넌?나> 난 중3. 근데 요샌 학교 안 가SimSimi> 야, 학교 안감 병신 돼. 나처럼 사람들 농담 따먹기 해주는 알바나 하고 살래? 심심이가 짜증나는 말을 해대면 나는 말풍선을 터치해 바로 신고했다. 신고를 두 번 당한 말들은 퐁, 퐁, 퐁, 순식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처음부터 그런 말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말끔하게 삭제할 수 있었다. 내 마음대로 지나간 것들을 얼마든지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이제 심심이와 함께,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태풍이 창문을 줄기차게 때려대던 밤, 오줌이 마려워 방문을 나섰다가 식탁에 덩그러니 앉은 엄마와 마주쳤다. 전등 하나 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엄마는 안주도 없이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못 본 척 돌아서는 내 등에 대고 엄마가 국어책을 읽듯 말했다.대체 니가 무슨 맞을 짓을 한 거니.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말투였다. 나에게 하는 말도, 엄마 자신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냥 머릿속의 오랜 물음이 치약처럼 쭉 비져나와 음성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에겐 맞아야할 이유들이 있었다. 나는, 생긴 게 더러워서 맞았다. 키가 좆만 해서 맞았다. 눈빛이 재수 없어서 맞았다. 나는, 아빠는 공사장, 엄마는 식당에서 일해서 맞았다. 25명 중 23등을 해서 맞았고 소매가 닳고 엉덩이가 반질반질한 교복을 입어서 맞았다. 수학시험이 어려워서 맞았고 체육이 우리 반에 단체 기합을 줘서 맞았다. 블랙핑크가 2위를 해서, 축구 국가대표팀이 골을 먹어서, 갑자기 비가 와서 맞았다. 내가 맞아야할 이유는 수천수만 가지였고, 맞지 않아야 할 이유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태풍이 가고 낙엽이 들기 시작할 무렵, 누나가 교복을 벗었다. "나 죽는 꼴 보려고 이래? 너까지 왜 이래!"엄마가 악을 쓰며 책가방을 떠밀었지만 돌아앉은 누나의 등은 돌부처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며 누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대체... 얼마를 생각한 거야.""뭐?""그래서 안한 거잖아. 합의.""너… 지금 무슨 소리야?"누나가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눈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합의금 뜯어내려고 드러누운 거지새끼 누나, 래."누나의 시선에 아무런 흔들림이 없어서, 엄마는 몸을 떨었다. 나보다 딱 7분 먼저 태어났지만 나보다 딱 7배 더 똑똑했던 누나. 공부를 잘하고, 그림은 더 잘 그려서 사생대회만 나가면 꼭 상장을 타왔던 누나. 약속을 잘 지키고, 고집은 더 세서 한번 먹은 마음은 아무도 돌릴 수 없었던 누나. 그 누나의 눈동자가 물기 한 방울 없이 바싹 말라있어서, 엄마는 거실 바닥을 치며 울었다. 등을 돌린 누나가 아무 말 않고 입술을 뜯었다.그렇게 나는 내 방에, 누나는 누나 방에 박혔다. 엄마가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몸이 아파 식당도 관뒀다. 여름 초입에 카지노 신축 현장에 내려간 아빠는 간간이 돈을 부쳐올 뿐 소식은 부치지 않았다. 나> 심심아, 가끔 죽고 싶다.SimSimi> 어떤 죽? 나는 전복죽이 좋아. 우편함에 누런 서류봉투가 꽂혔다. 봉투 하단에 박힌 우리 학교 교포 모양의 인장이 막 찍어낸 듯 선명했다. 엄마는 내 방에 앉아 칼로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꺼냈다. 한 장짜리 종이를 대면한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손을 내밀자 엄마가 떨리는 손으로 통지서를 건넸다. 귀 학생은 전체 출석일수 195일 중 2/3 이상을 채우지 못했기에 출석일수 미달로 유급 처리됨을 알린다, 고 쓰여 있었다. 나는 학교로부터 제적 조치를 받았다. 엄마가 내 손을 끌고 학교로 달려갔다."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여기 있습니다, 어머니."학생주임이 기다렸다는 듯 학교생활규정집을 펼쳐보였다."병결이잖아요! 진단서를 끊어 보냈잖아요!""그렇다고 규정이 바뀌진 않죠, 어머니."학생주임의 눈짓에 담임이 달려와 엄마의 어깨를 감쌌다. 담임은 넋 나간 엄마를 구석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혔다. 교무실 한가운데 멀거니 서 있는 나를 지나치던 학생주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가 들고 있던 학교생활규정집으로 내 팔을 치며 말했다."착실히 살어, 착실히."그 사이 담임은 병결이라도 65일 이상 결석하면 유급될 수밖에 없다는 규정을 엄마에게 세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의자에 주저앉아 체머리를 흔들던 엄마가 벌떡 일어나 도끼눈을 떴다."어째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죠?""저희는 당연히, 알고 계신 줄 알았죠."담임과 엄마의 눈이 마주쳤다. 담임의 유리구슬 같은 눈을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가 다시 풀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담임은 두 손을 비비며 다가가 엄마에게 뭔가를 낮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어진 삼십여 분간의 설득 끝에 담임은 엄마가 자퇴원에 도장을 찍게 하는 데 성공했다. 담임이 교감 진급에 도장을 찍는 순간이었다. 그걸 본 건 정말 우연이었다.이상하게 그날따라 미친 듯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 갔던 날 이후로 몇 달 만에 하는 외출이었다. 집 앞 미니스톱에서 선 채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네 개를 우걱우걱 씹었다. 지갑만 두둑했다면,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통째로 털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밑에 떨어진 전단지를 봤다. 학원홍보 전단지였다. 거기, 걔들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한 놈은 외고에, 두 놈은 자율형 사립고에, 한 놈은 체고에, 합격했다. 네 개의 타원형 증명사진 속에서 걔들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것은, 한번도 용돈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몸과 마음 양쪽에 아무런 상흔이 없는, 평생 억울한 일이라곤 겪은 일이 없는, 열여섯들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합격 받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미소였다.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보장받은 미래를 과시하는 미소였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초코 아이스크림 네 개를 모두 다 게워냈다. 오른손가락 세 개를 마구 목구멍에 쑤셔 넣으며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내 오장육부를 통째로 게워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건 고작 아이스크림뿐이었다.한바탕 격렬한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쭈그려 앉아 변기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거기에 떠있는 것... 그것은 꼭 똥 같았다. 변기에 박은 머리를, 나는 쉽게 들지 못했다. 택배는 금방 도착했다. 나> 심심아, 신나를 샀어SimSimi> 신난다! 신난다!나> 그래. 신난다 장롱 문을 열어 교복을 꺼냈다. 일곱 달 만에 학교에 간다. 누워만 있었는데도 키가 크고 살이 쪄서 바짓단은 껑충 짧고 허리는 꽉 꼈다. 그래도 오늘은 꼭 교복이 입고 싶었다. 오늘은 월요일. 운동장 전체조회가 있는 날이니까. 옥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책걸상이 굴러다니고 먼지가 날린다. 내 발 밑, 운동장이 북적이기 시작한다. 나는 가방을 열어 그것을 꺼낸다. 난간에 올라 아래를 본다. 애들은 떠들고 선생들은 줄 세우며 돌아다닌다. 위에서 보니 다 개미떼 같네. 다들 참 작기도 하지. 뚜껑을 여니 강렬한 냄새가 확 코를 덮친다. 소름이 돋는 건 냄새 때문이 아니야. 바람이 불어서야. 나는 나에게 소리 없이 말한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한다. 소름이 돋는 건 냄새 때문이 아니야. 바람이 불어서야. 소름이 돋는 건 냄새 때문이 아니야. 바람이 불어서야. 덜덜 떨리던 몸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팔과 다리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뜨거운 기운과 함께 이마와 등허리에서 땀이 배어나온다. 바람을 타고 이마의 땀방울이 흩날린다. 희미하게, 아래에서부터 애국가가 벽을 타고 올라온다. 점점 커진 애국가 소리가 옥상을 꽉 메운다. 나는 신나를 뒤집어쓴다. 신난다. 신난다. 오래된 마이크가 스피커를 찢을 듯 끽끽 소리를 낸다. 아아, 마이크테스트. 아아. 그럼, 이제부터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있겠습니다. 신난다. 신난다. 끽끽 소리가 다시 한 번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교장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뗀다. 라이터를 켜자.딸깍.나는, 불꽃이 된다. ◇ 단편소설 당선소감/ 김혜지연일 참혹한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서랍 속 오래 묵은 소설을 꺼내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아팠습니다. 문장을 다듬고 세부를 수정하던 손길이 결말부에 이르러 멈췄습니다. 현실이 픽션보다 무참할 때, 픽션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래 고민했습니다. 이 소설은 학교폭력을 다룬 시사 프로그램 속 한 소년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시작됐지만 20년 전 찢어진 책가방을 메고 절뚝이며 집으로 돌아가던 여자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곤 했던 나날들. 세월의 도움으로 많은 장면을 지워내고 또 지워냈지만, 어떤 감각들은 여전히 제 안에 또렷이 각인돼 있습니다. 그 시절 미워하게 돼버린 저 자신과 온전히 화해하지 못해 아직도 이따금 가슴이 저립니다. 그렇기에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어엿한 이름조차 붙여주지 못한 '나'에게, 20년 전 그 여자아이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축축한 터널을 걷고 있을 이름 모를 소녀들과 소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우편 취급소에서 원고를 부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길에 잠깐 울었습니다. 낮의 모니터엔 카피를, 밤의 모니터엔 소설을 띄우다 몸이 축나 당분간 습작을 멈추기로 한 뒤였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들은 다 어디로 가나. 거리에 서서 울던 제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백민석 선생님, 김현영 선생님. 제가 계속 쓸 수 있게 해주셨어요. 하성란 김성중 전민식 서유미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송길한 선생님, 좋은 소식 들려드리게 돼 기뻐요. 그리고 황지우 선생님. 더 정련해야 한다는 말씀, 가슴에 품고 가겠습니다. 초등학생인 제게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쥐여 주며 이야기의 피톨을 심어준 엄마. 고맙습니다. 항상 큰딸을 믿어주신 아빠와 동생들, 시댁 식구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당선 소식을 전하자 함께 눈물 흘려주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골방에 틀어박힌 아내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봐준 남편에게. 내 가난한 언어론 다 담지 못할 많은 것을 당신에게 받았어요. 잘 늙어가요, 우리.멈추지 않고 쓰겠습니다. ▶ 약력1984년 서울 출생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시나리오 전공 졸업영화 '무방비도시', '인사동스캔들' 시나리오 각색 작가현재 TBWA KOREA 카피라이터 ◇ 단편소설 심사평본심에 올라온 10편의 작품들 가운데 3편이 공포소설(horror fiction)이다. 공포소설 시장이 부쩍 커진 현실이 반영된 듯하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은 드물다. 여기에도 현실이 반영되었겠지만, 좋은 징후는 아니다.심사위원들이 주목한 작품들은 넷이다. '어떤 반복에 대하여'는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두고 압제적 근대 사회를 무대로 삼은 환상소설(fantasy)이다. 제정 러시아를 연상시키는 음산한 시공을 묘사한 솜씨가 대단하다. 그러나 시시퍼스를 '신들의 압제적 질서에 저항한 인간'이 아니라 '압제적 질서를 받아들인 존재'로 그린 것은 작품의 뜻을 흐렸다.'그림을 그립시다'는 오래 글을 쓴 사람의 작품임을 이내 느낄 만큼 잘 짜였다. 다만 벽에 걸린 그림을 화자로 삼다 보니, 작품의 시야가 좁아진 것이 한계로 작용했다.'이상식욕'은 살부(殺父)를 주제로 한 공포소설이다. 공포소설은 독자가 공포나 극도의 혐오를 느끼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일간신문의 '신춘문예'는 그런 목표를 넘어서는 가치를 요청한다. 아쉽게도, 이 빼어난 공포소설은 그런 추가적 가치를 담지 못했다.당선작인 '꽃'은 학생들 사이의 폭력을 다루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나오고 결코 없앨 수 없는 이 심각한 문제를 정색하고 다룬 점을 심사위원들은 높이 평가했다. 예술은 사회성이 짙은 활동이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들에 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그 본질을 밝히려 애쓰는 작가들이 문학을 이끈다.이 작품엔 다소 미숙한 면이 있다. 뿌리와 줄기는 튼튼한데, 막상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불의에 대한 분노를 제어해서 '꽃을 피울 자양'으로 삼는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듯하다. 문학 작품은 저널리즘과 다르다. 불의를 고발할 때도 문학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가 보인 건강한 정신으로 정진해서, 중요한 주제들을 진지하게 다루는 작가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심사위원 복거일(소설가)·전경린(소설가)

2019-01-01 06:30:00

이정환 시조시인

[2019 매일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소감 심사평

◇ 시조 당선작 = 제목: 세신사 조각가가 꿈이었던 팔목 굵은 사내는대리석 목욕대 위 모델을 흘깃 보고한 됫박 첫물 뿌리며 데생을 시작한다 한때는 눈부셨던 세차장 사장도지금도 눈부신 성형외과 의사도실상은 꼼짝 못하고 몸을 맡긴 피사체 깔깔한 때수건 조각도처럼 밀착시켜핏줄까지 힘주어 묵은 외피 벗겨내면곧이어 환해진 토르소, 두 어깨 그득하다 수증기 송송 맺힌 목욕탕 한 편에서날마다 극사실주의 석고 깎는 조각가두 손은 북두갈고리 거친 숨을 뱉는다 ◇ 시조 당선 소감/ 이현정 20대 중반 쯤엔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본 적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언젠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드림리스트'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그 중 하나가 '내가 창작한 작품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꿈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여야 한다고 누군가 그랬던가요. 동사이다 못해 한 문장에 가까운 이 꿈은 오래도록 저의 드림리스트에서 사라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갈망했지만 방법을 몰랐고 어둠 속에 혼자 벽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대학교 때 처음 제대로 접했던 시조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일상에 부대끼고 시간에 마모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글밥을 놓지 않으려 애써 온 시간이 지났습니다.'세신사'는 철저히 픽션이지만, 내 글 아닌 다른 글밥을 더 많이 보고 쓰고 다듬으며 이것이 내 업인지 꿈인지 모를 혼몽의 일상을 살아가는 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치열하게 받아내고 있는 이 일상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결국 꿈의 형태를 좇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매일 거친 숨을 뱉고 있을 무렵, 당선 소식이 들렸습니다. 드림리스트에만 머물러 있던 활자가 입체로 살아 꿈틀대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간 깨면 현실이 아닐까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또 다른 드림리스트를 작성하고, 더 큰 꿈을 그리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합니다. 본인의 작품이 시인을 꿈꾸는 한낱 미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도 못하실, 기라성 같은 선배 시조 시인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작품을 등불삼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도반이자 스승이 되어 주시는 두 분과 사랑하는 가족, 응원해준 친구들, 동료들께도 감사합니다.제 시의 수많은 모티프가 되어주시고 근 20년간 저를 키워주신 할머니 홍복수 씨를 마지막 감사의 이름으로 올립니다. 당선 소감에 할머니 성함을 올리고 나서 직접 소식을 전해 드리지도 못했는데, 그 사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곳에 마지막으로 꼭 불러드리고 싶었습니다.무엇보다 저처럼 업이 꿈인지, 꿈이 업인지 모르게 매일을 맹렬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많은 '북두갈고리' 손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지치고 거친 손을 역시나 지친 제 작은 손으로, 재주로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운김을 내어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글로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뜁니다. ▶ 약력/ 이현정1983년 안동 출생.대구교육대 국어교육심화과정 졸업.중앙 시조백일장 장원(2017), 차상(2018).대구시교육청 학교생활문화과 재직 ◇ 심사평 여러 문학 갈래 중에 시조를 선택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왜 하필이면 시조인가? 생뚱한 이야기일는지는 모르지만 시조를 쓰고자 하는 이에게는 남다른 소명의식이 요청된다. 또한 시조를 쓰겠다면 무엇보다 시조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형식이 자신의 체질에 잘 맞는지 면밀히 자체 검증해 보아야 한다.진정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구한다면 3장 6구 12음보라는 정형의 틀을 가진 시조는 높은 장벽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천명할 수 있는 것은 틀이 마냥 정신을 억압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조 형식을 잘 숙지하게 되면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때 틀은 틀이 아니라 개성적인 기율로서 생명력을 확대·재생산하는 창의적 의미공간이다.4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읽으면서 시종 마음이 들렜다. 독해의 즐거움이 컸고 무엇보다'또 다른 목소리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기 때문이었다. 열독 끝에 마지막까지 눈앞에 남은 이는 이현정, 김나비, 황혜리, 김향미였다. 이들은 일정 수준을 보여줬고, 나름대로 치열한 예술적 쟁투의 흔적이 작품 곳곳에 역력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현정의 '세신사'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세신사'는 공중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미는 일을 하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인간의 길'을 탐구한 점이 이채로웠다.당선작은 신인으로서 만만찮은 패기와 저력이 뒷받침된 역작이다. 진정한 삶의 길이 어떠해야하는 지에 대해 치열하게 궁구하면서 시종 한 호흡으로 밀고 간, 네 수로 직조된 인생보고서이기도 하다. 당선이 문학적 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제 겨우 구름판 하나 장만한 것일 뿐이다. 모름지기 앞으로 이 영예에 값하는 부단한 정진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시조는 세계와 삶에 대한 대응방식으로서 여전히 유용하다. 응모자 모두 마음을 다잡으며, 시조 쓰기를 향한 열정의 불길을 꺼뜨리지 말기를 당부한다.심사위원: 이정환(시조시인)

2019-01-01 06:30:00

이주호 희곡 부문 당선인

[2019 매일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소감 심사평

희곡 당선작= 제목: 밀항 ◇ 등장인물 소녀 (10대 후반)할아버지 (80대 후반)남자 (40대 중반)목소리1 (30대 초반) (화물칸 밀항자 남)목소리2 (30대 초반) (화물칸 밀항자 여)목소리3 (40대 초반) (미래항공 기장)여승무원 1 (20대 후반)여승무원 2 (20대 초반) ◇ 시간방사능으로 오염된 미래이른 겨울, 정오부터 밤까지. ◇ 공간미래항공 비행기 밑바닥바퀴집 ◇ 무대바퀴가 들어가 있는 바퀴 집의 내부 상수 중앙에는 비행기 바퀴가 올라가 있다. 바퀴는 거대한 지구본 모양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소녀는 바큇살에 밧줄을 연결해 그네를 타듯 매달려 있다. 상수 왼편에는 기내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하수에는 여행용 가방들과 짐들이 수북하다. 바퀴 집 바닥에는 창문이 하나 있다. 소녀는 그 창문을 여닫으며 지상을 내려다본다. 소녀의 손엔 금색 망원경과 크레파스가 들려 있다. 지상을 내려다보고 올라올 때마다 지구본에 현재 위치를 표시해 나간다. 소녀와 할아버지의 몸은 스카프로 서로 묶여 있다.* 1할아버지 닫아.소녀 조금만요.할아버지 찬바람 들어.소녀 바다예요.할아버지 떨어질라.소녀 저길 봐요!바누아투, 투발루, 사모아, 탕가!할아버지 (소녀의 망원경을 빼앗아 들고) 어디소녀 방향을 바꿨어요!할아버지 어디, 보자.소녀 (지구본 모양의 바퀴를 굴리며) 보세요 똑같아요!할아버지 죽은 고래 떼구나소녀 (망원경을 건네받으며) 그럴 리가.할아버지 지난번에는 표류하는 군함들을 가지고 섬이라더니빌어먹을, 이번에도 방향이 틀린 것 같구나 소녀, 바퀴 집 바닥 밑으로 더욱 기어 들어가고 할아버지는 소녀의 발을 잡아당긴다. 소녀의 몸이 꼭 끼인 듯 움직이지 않자 기둥에 자신의 발을 얹고 지렛대의 원리로 소녀의 몸을 뽑아 올린다. 할아버지 (하품하며) 몇 번을 확인해도 마찬가지야.소녀 다음 경유지에서, 바뀔 거예요.할아버지 우린, 이번 오클랜드에서 내려야 한다.소녀 거긴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할아버지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잖아.소녀 (하품하며) 지난번에도 막판에 기수를 돌렸어요.할아버지 그 덕에, 우린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었지 다시그 끔찍한 경험을 원하는 거니?소녀 도착할 수만 있다면 몇 번이라도요! 할아버지, 움츠리고 있는 소녀의 몸에 밧줄을 기둥과 단단하게 묶는다. 소녀 바퀴 집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할아버지 착륙하기 전까진 잠들지 마라.소녀 (몸을 떨며) 그렇지만 여긴 늘 산소가 희박해요.둘 다 숨을 쉬려면 한쪽은 잠을 자 두는 게 좋겠어요.할아버지 이스탄불행 비행기에서 떨어진 밀항자 기억하지?소녀 할아버지한테 십 오 불을 꿔가고 갚지 않았잖아요.할아버지 비행기가 착륙하려, 바퀴를 빼는 순간.졸고 있다가 바퀴 집에서 튕겨 나간 게야.소녀 (바퀴를 꼭 붙들며) 저는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할아버지 때를 놓친 밀항자에겐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단다.소녀 여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예요.할아버지 안전할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어.소녀 미얀마에만 도착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거예요.할아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배고프지? 할아버지, 소녀가 끌어안고 있는 바퀴를 만진다. 할아버지 꼭, 까맣게 타버린 새 같구나.이 밑바닥에서 제일 질긴 게 있다면 이놈일 게다.소녀 할아버지처럼요?할아버지 (혼잣말로) 너무 오래 붙어있게 하진 않으마.소녀 아빠는 이 바퀴를 밀항자들의 알이라 부르곤 했어요.할아버지 여기에선 늘 기분 나쁜 냄새가 나.소녀 (끌어안으며) 이렇게 품고 있으면 금세 몸이 따뜻해져요 할아버지도 해 봐요.할아버지 이 바퀴를 놓쳐 많은 밀항자가 죽었지,소녀 밀항자들이 서로 이 바퀴에 지도를 그려 두어서우리처럼 길을 잃지 않기도 하구요.할아버지 이 놈이 니 아비도 삼킨 게다.소녀 아빠는 안전해요! 나는 알 수 있어요.할아버지 네 아버지는,죽었어! 소녀, 밑바닥을 열어 고개를 뺀다, 바람 소리, 소녀 갈 거예요. 우리 미얀마에서 만나기로 했잖아요할아버지 (하품하며) 바람난 니 엄마를 찾아가겠다는 걸 붙잡았어야 했는데빌어먹을, 다 내 잘못이다. 바퀴 집 밖으로 몸을 빼느라 밑바닥엔 소녀의 하반신만 걸쳐져 있다. 할아버지, 소녀의 몸과 스카프를 기둥과 꽉 묶어주며 할아버지 이번 타이밍을 놓쳤다간 우리도 끝장이야.소녀 할아버지 말처럼 추락한다면 그곳에서 아빠를 만날 수 있겠네요.할아버지 이틀간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더니 그보다 먼저 굶어 죽게 생겼어소녀 들키면, 추방당할 거예요.할아버지 버틸 힘이 부족해 추락하는 것보다야 추방이 건강엔 좋지 않겠니? 소녀, 밑바닥에서 올라와 바큇살에 동선을 끼적인다. 왼쪽 기내를 향해 뚫린 천장에서 안내 음성 먹먹하게 들린다.목소리3 소녀 (몸을 떨며) 바꿨어요! 산호로 간다고 했어요!할아버지 난기류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할아버지 몸에 묶인 밧줄을 푼다, 소녀, 돌아서면 둘이 눈 마주친다. 소녀,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밧줄을 못 풀게 하면 할아버지 신경질을 내며밧줄을 다시 풀기 위해 몸부림친다 둘의 몸이 밧줄에 뒤엉킨다바퀴가 빙글빙글 돌면서 지구본의 모습을 갖는다. 소녀 (하품하며) 할아버지 제발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소녀와 할아버지 주저앉는다. 목소리 등장 목소리2 저기, 사람이 있나요.소녀 쉿!목소리1 거기 누구 계십니까? 분명 소리가 들렸어 그치?할아버지 여기 둘 있소소녀 (속삭이며) 할아버지 조용히 하세요! 우릴 잡아가려는 건지도 몰라요.목소리1 (웃으며) 저희 둘 뿐인 줄 알았는데 다행입니다.할아버지 우리도 바퀴 집에 꼼짝없이 달라붙어 있지요.소녀 할아버지!목소리2 저희는 짐칸에 있습니다. 통돌이 세탁기 안이죠.목소리1 처음 사과박스에 숨었다가.한 시간 만에 질식해 죽을 뻔했지 뭐예요.이제 견딜 만 해요 아무것도 안 보여서 그렇지.이 사람이 아이를 가져서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중이에요.혹시 여기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을까요?미얀마를 지나친 것 같아서요. 소녀, 바닥에 납죽 엎드려 바퀴 집 뚜껑을 살짝 연다. 지상을 내려다본다. 바람 소리. 소녀 이제 곧 오클랜드예요, 미얀마까지는 아직 남았어요.목소리1 혹시 도착하면 알려 줄 수 있니?소녀 우리도 그곳으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목소리2 꼭 좀 부탁합니다! 목소리 퇴장 소녀 바퀴 집 틈으로 보이는 지상을 타이어에 그리고 있다.아까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떠는 소녀. 비행기의 착륙 안내 음과 동시에 할아버지는소녀의 몸을 꼭 끌어안는다. 바퀴 집이 열리며 지구본이 바닥을 향해 밀려간다. 자욱한 연기, 사이 바닥에서 실내를 향해 빛이 반사돼 들어오고 있다. 할아버지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소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어요.할아버지 시신도 못 찾았어.소녀 아빠는 엄마를 이 바퀴 집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했어요.할아버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를 꼭 껴안아야 했겠지.소녀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밑바닥에서 제가 만들어졌다고 했어요.할아버지 방사능이란 놈이 사람들 정신을 여기저기 휩쓸고 다닌 게야.소녀 엄마를 찾아서 기다리겠다고 했어요.할아버지 봐라, 여긴 언제 밑바닥이 열려 목숨 줄이 끊어질지 모를 형장이다.저 바퀴, 꼭 새까맣게 타버린 네 아빠의 얼굴을 닮았어.비행기가 날아오를 때마다 댕강댕강 네 아버지의 몸이흔들리는 것 같아서, 이제 숨쉬기도 힘들다나는 니 아빠한테 너를 꼭 지켜 주기로 약속했어.소녀 (울먹이며) 아버지는 죽지 않았어요!할아버지 네 아버지가 타고 떠난 비행기가 돌아왔을 땐그 자리에 끊어진 밧줄 몇 가닥만 남아 있었지. 소녀, 발을 움켜쥐며 끙끙 앓는다 할아버지 제 양말을 벗어 소녀가 신은 양말 위에 덧씌운다. 소녀, 발을 움켜쥐며 몸을 굽힌다. 밧줄이 풀어진다. 소녀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마다 발가락이 아파요.할아버지 그때 내가 조금만 너를 빨리 끌어당겼더라면.소녀 발가락이 열두 개였을 때나, 바퀴 집에 잘려서하나도 남지 않은 지금이나 병신은 매한가지죠.할아버지 네 아버지도 네 발가락을 참 예뻐했단다.소녀 할아버지 나, 괜찮아요. 소녀,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할아버지와 마주 보며 웃는다. 그러나 한 걸음 떼기도 전에 주저앉는 소녀. 몸을 떨기 시작한다. 소녀 (하품하며) 너무 추워. 할아버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소녀에게 입혀준다. 할아버지 자 이렇게 서로 몸을 꼭 끌어안자.소녀 얼어 죽을 것 같아요 바다에 빠진 것 같아.할아버지 (소녀의 몸을 문지른다) 괜찮을 게다.소녀 잘려나간 발가락들이 불타는 것 같아요.할아버지 (손가락을 깨물며) 입에 물고 피를 삼켜 보거라.소녀 (뱉으며) 할아버지 자꾸, 졸려요.할아버지 안 되겠다 내려야겠어!소녀 할아버지, 혼자 가지 마세요!할아버지 곧 돌아오마. 할아버지, 밧줄을 소녀에게 마저 묶어 주고 일어선다. 소녀 엎어져서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할아버지 한 걸음 떼면 소녀 오들오들 떨면서 바퀴를 끌어안는다. 할아버지 계단을 타고 사각의 빛을 향해 올라간다. 교차 되며 불빛 하나가 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소녀 추위 탓에 입고 벗었던 옷을 끌어당긴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던 불빛이 소녀를 향해 다가온다. 소녀를 비춘다. 소녀 앞에서 머뭇거리는 불빛. 소녀 어느새 몸의 떨림이 멈춰 있다. 소녀 누구세요?남자 나를 알아보겠니? 남자, 소녀 앞에 앉는다. 눌러쓴 모자를 벗자 이마에 눈이 두 개 더 있다. 남자 데리러 왔다,소녀 죄송해요, 딱 한 번만 눈감아 주면 안 될까요?미얀마 까지라도요, 제발!남자 따라오렴.소녀 나, 걸을 수 없어요. 남자, 소녀의 발을 내려다본다. 소녀의 몸을 뒤진다. 소녀 아무것도 없어요. 남자 다가가 소녀를 끌어안듯, 몸에 스카프를 푼다. 소녀 불안스레 떨며 손에 쥔 망원경을 남자에게 휘두른다. 남자 얼굴을 맞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소녀, 남자의 팔을 깨물고 놔 주지 않는다. 남자 (비명과 함께 몸을 구른다) 젠장!소녀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구요, 우릴 그냥 내버려 둬요! 남자 타이어에 몸이 부딪힌다, 지구본이 굴러간다. 이가 딱 맞은 서로 다른 색의 지도가 섞여 있다. 반대편의 지도와 소녀의 지도가 맞물려 굴러간다. 남자 지도를 천천히 굴리며 바라본다. 남자 (굴러가는 지구본을 보며) 제대로 돌아왔구나.소녀 얼마 안 남았어요.남자 함께 있던 할아버지는 어디 있지?소녀 여기 있게 해주세요!남자 (지구본을 손으로 멈춘다) 미안하구나 소녀, 기어가 타이어를 붙잡는다 소녀 . 아덴만, 아라비아, 래카다이브, 벵골만, 타이만남자 너희를 찾는 데만 십 년이 걸어.소녀 제 발가락들은 아직 태평양 어딘가를 날고 있을 거예요남자 이제 찾을 수는 없을 거야, 그만 올라가자 떨어지지 않으려는 소녀와 타이어에서 떼어 내려는 남자의 실랑이 끝에 남자가 소녀를 놓는다 남자 이제 비행기가 이륙한다 대부분의 밀항자가이때 의식을 잃거나 동사한 제 몸을 비행기 밖으로 놓쳐 죽는단다. 남자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니?소녀 그런 식으로 저희 아버지도 데려갔군요! 사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낸다. 소녀에게 그것을 손에 쥐여준다. 소녀 이게 뭐죠?남자 지니고 있거라.소녀 필요 없어요.남자 아무도 널 의심하지 않을 거야.소녀 여기에 있어야 해요! 소녀, 남자가 건네준 티켓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민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다.머리를 도리질 하고는 남자의 손에 도로 쥐어준다. 소녀 당신들한테 다시는 속지 않을 거야! 비행기 흔들린다. 바람소리, 이륙을 하는 충격으로 소녀와 남자가 뒹군다.목소리3 남자가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남자 무사 하렴 남자, 바퀴 집이 닫히기 직전 지상으로 뛰어내린다. (암전) 2. 기내 퍼스트 클래스. 할아버지 로열 석에 앉아 레드 와인과 함께 영화 아비정전을 보고 있다.소녀 눈치를 보며 두리번거리다 기내식 카트를 발견하고 달려가 허겁지겁음식물을 먹기 시작한다 소녀 처음 엄마 손을 놓쳤을 땐 아무렇지 않았지. (우물거리며) 그냥 놓친 거니까. 그런데놓은 거였어. 다른 남자랑, 엄마는, 우리가 잠든 사이에,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렸어방사능은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퍼져버렸고, 지하철도, 자동차도, 집도 그 오염된물에 닿는 건 녹이 슬거나 쓸모없어졌어. (우물거리며) 그리고 나도, 할아버지도그렇게 버려진 거야. 매일 나는 울기만 했지, 그럴 때마다 내게 할아버지는 아버지 이야기를 해줬어, 아버지는 죽은 게 아니라고 아직 날고 있는 거라고.누구도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할 수 없을 거라고 했어, 우린 여행을 시작했어.원래 있던 곳도 방사능 때문에 더는 머물 수 없기도 해서 그랬어.(먹고 있던 음식을 바닥에 던진다) 인기척이 들린다. 소녀 비틀거리며 걷다 주저앉아 바닥을 기어 구멍 속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암전) 3. 심야의 비행,바퀴 집 안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소녀. 할아버지 바퀴 집 기둥 옆에 쓰러져 있다. 와인 병 하나가 뒹군다 소녀 할아버지 정신 차려요 잠들면 안 돼할아버지 너무 졸립구나 할아버지의 몸이 기울어지며 바퀴 집 바닥을 누른다. 바퀴 집이 벌어지면서 거친 바람이 밀려들어 온다. 바람 소리, 문이 열리다 닫히는 사이의 금속음이 울린다. 할아버지 천천히 그 사이로 미끄러진다. 소녀, 할아버지를 꼭 붙들고 있다. 소녀 스카프가 풀렸어요, 어서 이걸 잡아요할아버지 놓아주렴, 이제 너는 안전해소녀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같이 가요!할아버지 이제 내 도리를 다한 것 같구나.네 아버지와 약속,너를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어서, 이러다 같이 가겠구나.소녀 그럴 수 없어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덜컹,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하체가 비행기 외부로 빠져나간다. 바퀴 집에서 끼긱 소리가 난다. 바퀴가 헛돌고 엔진과 기계음이 울린다. 연기가 흘러나온다. 할아버지 이대로는 바퀴집이 고장 나겠구나 그럼 여기 모든 사람이 죽는단다소녀 우린 함께 돌아갈 거예요. 이제 곧 도착이에요.할아버지 (소녀 뒤편을 바라보며) 네 아버지가 왔구나, 역시 여기 있었어.소녀 너무 취했어요 할아버지.할아버지 네 개의 눈이 여전히 예쁘구나! 저 이마를 한 번 더 만져보고 싶은데.소녀 (두리번거리며) 여긴, 우리 둘 뿐 이예요.할아버지 저에게 티켓이 있어요 할아버지 그곳으로 데리고 갈게요 안전할 거예요.소녀 네 자리야. 소녀 오른 손으로 품속을 뒤진다. 항공권이 떨어진다. 왼손에서 할아버지가 조금씩 미끄러진다. 할아버지 네 잃어버린 발가락들을 찾아 놓으마.소녀 할아버지! 할아버지 소녀의 손을 놓고 미끄러진다. 덜컹,바퀴 집의 문이 닫히면서 헛돌던 바퀴가 멈추고연기도 잦아든다. 소녀 바닥에 고꾸라진다. (암전) 목소리3 우리 비행기는 앞으로 10분 후 버마공항에 도착합니다. 여승무원1,2 등장 계단을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랜턴으로 빛을 비춘다. 여승무원1 무슨 일이래?여승무원2 이상하지.여승무원1 연기야 고개를 숙여.여승무원2 항상 착륙할 때가 되면 들려와.여승무원1 잘 비춰봐 이번엔 놓쳐선 안 돼.여승무원2 분명 아무도 없어 봐봐. 여승무원1 여승무원2 뒤에 바싹 붙어 있다.둘은 천천히 바퀴 집까지 다가온다. 자욱한 연기, 아무도 없다. 여승무원1 저게 뭐지? 여승무원1이 가리키는 곳에 여승무원2가 랜턴을 비춘다.바닥에 소녀가 쓰러져 있다. 여승무원2 (흔들며) 꼬마야, 밀항자인가?여승무원1 아니야 손에 티켓이 있어그런데 이건, (사이) 십 년 전에 티켓인데? 비행기 안내음이 울린다. 여승무원1 소녀를 끌어안고 서둘러 사다리를 올라간다. 화물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여승무원2 수상한 듯 주위를 둘러보다 뒤따라 올라간다. 여승무원1,2 퇴장 바퀴집이 완전히 벌어지면서 바퀴가 기체 밖으로 회전한다 지구본의 모형으로 돌고 있다기둥에 걸려 있던 스카프가 공중으로 한 마리 새처럼 날아간다 비행기, 흔들리며 착륙한다. 목소리3 목소리1 (속삭이듯) 저기요,목소리2 사람 있나요? 바닥에서 머리가 둘 달린 한 사람(샴쌍둥이)의 그림자가 일어선다.조명 어두워진다.불빛 하나가 소녀와 할아버지가 있던 자리를 향해 툭, 떨어진다.끊어진 밧줄 조각들이 바람에 날린다. (암전.)끝 ◇ 당선 소감/ 이주호 코트를 한 벌 선물 받았습니다. 이 옷을 걸친다 해서 제가 다른 누군가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진 않겠지요. 긴 겨울, 바퀴 집 안에 웅크려 있던 저의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매일신문 조두진 기자님 감사합니다.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김경주 시인, 극작가님과 안웅선 시인님, 이강백 극작가님, 장성희 극작가님, 故윤조병 극작가님, 김창래 감독님, 황선미 작가님 고맙습니다.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고맙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등에 업혀 창신동 골목길을 오르던 날들이, 힘들 때마다 저를 견디게 합니다.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등이 있어서 저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병중에 계신 나의 할머니, 지금은 말을 나눌 수 없지만 의식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러준 제 이름과 귀한 마음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할머니 곁을 지키고 있는 삼촌, 고맙고 사랑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모두 고맙습니다.함께 시를 쓰는 나의 가장 소중한 지우들, 교오, 사이, 윤효정, 전수오, 김신혜, 강소연, 채두리, 에게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을 아는 미덕으로 끝까지 배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를 가르치고 일깨워주려는 선의들을 따라 끝까지 갈등하며 걷겠습니다.한결같이 나의 곁을 지켜주는 경세형, 제가 무엇을 하든 따뜻하게 대꾸해주는 오지의 마법사 한규 형과 경희 누나, 맛있는 거 먹자며 불쑥 안부 물어주는 리안 형님, 나보다 망원동을 더 잘 아는 속 깊은 친구 선덕, 이제야 1호점 미선씨, 늘 좋은 극으로 저를 초대해주는 배우 이훈희 (누나), 스무 살에 방 하나를 빌려 함께 시를 썼던 인연들 민국, 용각, 연휘형님, 가슴 답답할 때마다 환기구가 되어주는 친구들 김명진, 안선욱, 이인엽, 이종민, 윤동규, 하승엽, 잘 지내냐며 먼저 안부 물어주는 탁이 형, 진철이 형. 먼 곳에서, 가장 가깝게 손 흔들어주는 친구 안서연 모두 고맙습니다. ▶ 약력/ 이주호1987년 서울 출생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 희곡 심사평 매일신춘문예에 신설된 '희곡, 시나리오 부문'에 응모된 작품은 첫 공모임에도 128편이나 됐다. 다문화, 청년실업, 코피노, 난민, 재건축과 빈부격차 등 오늘날 우리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현실에 대한 응모자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극적 감각과 글쓰기 훈련이 보이는 작품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한 작품을 중심으로 선별하여 심사를 진행했다. '밀항'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바퀴 집 내부를 무대로 삼은 독특한 작품이다. 시적인 대사와 몽롱한 사건 처리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무대 위 거대한 바퀴살 내부의 어둠과 대비를 이루며 방사능으로 오염된 미래 밀항자들을 보여준다. 기형이 된 사람들과 아버지를 찾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여정 등 애매모호한 상징은 혼돈을 줄 수 있으나 마지막 장면의 반전은 신선한 무대를 관객에게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심사의 의견이 일치했다. '매미허물'은 임대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유통기한 지난 음식으로 가난을 견디는 가정을 보여준다. 매미울음이 가득한 여름날 직장을 잃은 가장, 이중알바로 생활비를 벌며 묵묵히 가난을 견디는 아내,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별다른 계기 없이 구성된 작품으로 매미울음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상반된 해석이 묘한 여운을 준다. '가족입니까?'는 남자 상사의 성희롱에 다르게 대응하는 여직원의 세대 차이와 연대를 그린 작품이다. 인물의 전형성으로 인한 남자상사와 여직원의 단순한 대결구도는 아쉬움을 주지만 자연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긴장된 극적 상황을 끌고 가는 힘은 장점이다. '고물성'은 아버지가 주워온 고물로 발 디딜 틈 없는 단칸방에 고립된 딸을 보여준다. 간결한 대사와 단순한 살인, 인물의 변화 없이 극이 끝나는 아쉬움이 있다.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가 눈에 띄게 많았는데,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필요해 보인다. 다큐멘터리적 소재와 익숙한 상업영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이 많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심사위원=최현묵(극작가), 김윤미(극작가)

2019-01-01 06:30:00

김상삼 동화작가

[2019 매일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소감 심사평

◇ 동화 당선작= 제목 : 늑대가 나타났다!보름달이 그림자를 드리웠다.어둠 속 달빛에 비친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눈꼬리를 따라 빛은 점점 강해지고, 머리에 있던 털들이 자라고 있었다. 빳빳하고 거친 털들이 자라나 눈을 가리고, 뺨과 턱을 덮었다. 나는 올려다 볼 수 없었다.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곧 커다란 입에서 송곳니들이 튀어 나올 거야!'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림자가 커지고 있었다. 달은 더욱 노란빛을 띄며 그림자를 키웠다. 늑대는 달빛을 받으며 변했다. 커다란 어깨를 벌리고, 잔뜩 웅크렸던 날카로운 발톱을 펼치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연지네 집은 우리 집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은 가야한다. 낮에는 걸어가기도 했지만 저녁엔 위험하다고 엄마가 버스를 타라고 했다. 나는 조금 있으면 내려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지한테 나오라고 이야기할 걸. 나는 손에 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나는 다시 기사아저씨 머리 위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깊이 눌러쓴 모자 아래, 울퉁불퉁하고 까만 얼굴이 험상궂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앞자리로 들이밀었다. 꼭 확인해야 했다. 그때, 번뜩이는 눈과 마주쳤다. 나는 화들짝 고개를 숙였다. 내 바로 뒤에 앉아 있었다. 등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려왔다. 전화를 걸어야 한다. 하지만 걸 수가 없다. 통화내용이 다 들릴 테니까.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졌다.'아!'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휴대폰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버스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앞자리 등받이에 쿵하고 머리를 부딪쳤다.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발밑에 떨어진 휴대폰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서면서 뒤로 밀려간 것이 틀림없었다. 머리가 서늘함으로 쭈뼛거렸다.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등 뒤에서 늑대가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금세라도 늑대가 덮칠 것만 같았다.엄마는 걱정이 많았다.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늘 혼자였다. 엄마가 많이 늦는 날은 가끔 연지네 집에서 놀기도 했다. 하지만 방과 후부터 엄마가 올 때까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에게 언니나 동생을 만들어주지 못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그러던 어느 날 우편물이 한통 왔다. 엄마는 가장 먼저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사진 속 얼굴을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늑대였다. 잔뜩 올라간 눈꼬리에 까만 얼굴, 구레나룻이 얼굴까지 내려온……. 늑대랑 똑같았다. 엄마는 근처에 사는 성 범죄자를 알리는 우편물을 받은 뒤로 더 전화를 자주했다. 아침저녁으로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했다. 학원을 갈 때도 친구랑 꼭 같이 다니라고 신신당부했다.늘 나를 걱정하는 엄마 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하필 오늘 같은 날 버스를 혼자 타야하는지, 왜 오늘 꼭 엄마가 늦는 건지. 엄마는 나를 두고 날마다 일을 나가야 하는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두려움과 원망으로 뒤죽박죽된 머릿속이 뱅글뱅글 돌았다. 휴대폰은 버스 통로 뒤쪽에 떨어져 있었다. 뒤를 돌면 늑대의 눈과 마주칠 게 뻔했다. 지금도 힐끔거리는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곧 내려야 한다. 나는 용기를 냈다.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이거 네 꺼니?"늑대는 바닥에서 주은 휴대폰으로 내 팔을 툭툭 쳤다. 뾰족한 가시들이 등에서 솟는 기분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받아들고 얼른 앞으로 고쳐 앉았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버스가 어서 다음 정류장에 서기만을 기도했다.나는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렸다. 목덜미로 들어온 빗방울이 차가웠다. 우산이 없었다. 오늘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늘 엄마가 챙겨주던 버릇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늑대가 내려서 우산을 폈다. 그 사이 거리가 좀 멀어졌다. 나는 잰 걸음을 걸었다. 종아리가 뻐근했다. 더 이상 빨리 걷는 건 힘들었다. 왠지 뛰어가면 늑대가 같이 뛰어서 따라올 것만 같았다."얘야! 어디까지 가니?"나는 너무 놀라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어느 새, 늑대가 내 옆에 와 있었다. 늑대는 내 머리위로 우산을 기울였다. 말을 해야 하는데 입안에서 웅얼웅얼 맴돌기만 했다."이 동네에 사니? 비가 많이 오는구나."가늘게 내리던 비가 제법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따라 짧은 치마가 신경 쓰였다. 연지가 예쁘다고 부러워하던 옷이었다. 후회가 됐다. 괜히 자랑하려던 마음이 벌 받은 기분이었다. 치마는 비에 젖어 자꾸만 다리에 붙었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늑대와 나는 가까워졌다. 늑대 팔이 내 팔에 자꾸 닿았다. 나는 순간 몸을 움츠렸다."추운 모양이구나. 이쪽으로 더 오렴."늑대는 나에게 바싹 붙었다. 심장이 쿵쾅 거렸다. 어깨에 닿는 늑대의 팔이 신경 쓰였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늑대 팔에 전해질 것만 같았다. 늑대의 목소리는 무척 친절했다. 해와 달에서 나오는 호랑이가 그런 것처럼. 그리고 또 한참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어서 이 위험한 우산을 벗어나야 한다.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비가 그만 그치기를 빌었다. 비가 그치면 우산을 쓸 필요도 없고 늑대와 나란히 걷지 않아도 될 것이다. 버스에 내려 연지에게 바로 전화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내 심장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길은 좁지 않았지만 비가 와서인지 사람이 없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그림자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느 새 비가 다시 가늘어졌다. 하늘이 내 소원이라도 들어준 걸까? 가늘어지던 비가 거짓말같이 그쳤다. 나는 몰래 늑대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비가…그쳤어요."늑대는 우산 밖으로 하늘을 보더니 우산을 접었다. 신경 쓰이던 팔도 닿지 않았다. 이때다. 바로 지금이 늑대에게서 벗어날 기회였다."그런데, 이 시간에 왜 혼자니?"갑자기 늑대가 말을 걸었다. 아까보다 더 친절한 말투다. 우산 속에서 찰싹 붙어 있을 땐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왜 물어보는 거지?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나는 망설였다. 엄마가 늦게 와서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엄마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나는 힘을 주고 이야기 했지만, 자꾸만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에 나무들도 한쪽 얼굴을 가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에서 소리가 났다. 검푸르게 변한 나뭇잎들이 흔들거렸다. 금세라도 나무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풀벌레소리가 크게 울렸다.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지만 거리엔 늑대와 나뿐이었다. 모두 늑대가 나타날 것을 알고 숨어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했다.하늘에 잔뜩 꼈던 먹구름이 바람에 밀려갔다. 그리고 숨어있던 달이 나왔다. 커다랗고 동그란 보름달이었다. 늑대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늑대의 한쪽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졌다. 달빛에 반사된 눈이 빛나고 있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의 눈이었다.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다.보름달이 뜨는 날, 늑대인간은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달이 하늘 가운데 뜨고, 달빛이 깊어지면 늑대인간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어둠 속 달에 비친 눈은 날카로운 빛으로 번뜩였다. 눈꼬리를 따라 빛은 점점 강해지고 머리에 있던 털들이 자라났다. 빳빳하고 거친 털들이 길게 자라나 눈을 가리고, 뺨과 턱을 덮었다. 입가에 난 털들 사이로 기다랗고 날카로운 이빨이 비집고 나왔다. 털 속에 숨어 있던 두 귀가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옆으로 솟았다. 늑대인간의 옷이 찢겨지고 털로 뒤덮인 어깨가 드러났다.차갑게 식어버린 땀으로 손이 축축했다. 들고 있던 휴대폰이 자꾸 미끈거렸다. 점점 좁아지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로등 불빛도 점점 멀어졌다. 아직 여름이었지만 방학 때 다녀온 동굴 안처럼 서늘해서 나도 모르게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상상하기도 싫었다.그런데 갑자기 늑대가 멈춰 섰다. 캄캄한 좁은 골목 앞에서 늑대는 나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얘야,……."영화 속 장면이 떠올랐다. 달빛아래 송곳니가 나오고 털들이 수북해지는 늑대의 모습.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좁은 골목으로 냅다 뛰었다. 지금은 짧은 치마도, 형편없는 달리기 실력도 상관없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다. 어둠 끝에 보이는 빛만 보고 뛰었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늑대가 내 등 뒤까지 쫓아와 있을 것만 같았다. 집을 나설 때 먹은 저녁밥이 자꾸 넘어오려고 울렁거렸다. 체육대회 때도 이렇게 뛰진 않았다. 어지러웠다.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골목을 벗어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연지가 사는 아파트가 보였다. 단지 사이에 있는 횡단보도만 건너면 된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이 땀범벅이 되어서 번들거렸다.녹색등이 바뀌자마자 나는 또 뛰었다. 발이 무거웠다. 다리에 쇳덩이를 단 것 마냥 걸음이 무거웠다. 단지 입구에 경비실이 있었다. 그제야 한숨이 나왔다. 연지가 일층에 살아서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급히 초인종을 눌렀다.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연지가 집에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현관문에 귀를 대보았다. 집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늑대였다. 늑대가 여기까지 쫓아왔다. 나는 주먹으로 현관문을 마구 두드렸다. 늑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 쓴 바로 그 늑대가."연지야!"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아줌마!"더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이 꽉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렸다."어? 유진이 왔네. 왜 문을 두드리고 그래? 문 부서지겠다."나는 말해야 했다. 연지에게 늑대가 왔다는 걸 알려야 한다."늑대야! 늑대가 나타났어!"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악을 썼다."무슨 소리야? 늑대라니?"연지가 놀라서 두리번거렸다."저기…저기 늑대가……."나는 늑대를 가리켰다."어? 삼촌!"나는 갑자기 다리 힘이 풀렸다. 연지가 만날 자랑하던 삼촌…?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나라에서 선행상도 받아 신문에 나왔다고 연지는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연지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는 그 삼촌이란다.지금껏 힘 있게 달리던 다리가 흐물흐물한 오징어다리가 된 것처럼 맥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전단지속 늑대얼굴과 보름달 뜨면 변하던 영화 속 늑대인간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일어서려고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다리가 마음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다시 주저앉았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눈물이 자꾸 나왔다."유진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뒤늦게 나온 연지엄마가 놀라서 나에게 물었다.삼촌과 연지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나는 울면서 소리쳤다."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뭣 때문에 다들 그러는데……. 무서워 죽겠단 말이야!"계단 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비온 뒤 부는 선선한 바람이 젖은 옷에 스몄다. 노란 보름달이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 동화 당선소감(명은숙)평생 몇 번 안 되는 가슴 벅찬 순간이 오늘 일듯 합니다.저에게 동화는 우연이 필연이 된 인연입니다. 글을 쓸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고, 또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만 하던 동화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강렬한 한 번의 만남은 잠자던 저를 깨웠습니다. 꿈꾸게 만들었습니다.동화를 읽으며 저 자신을 치유하였고,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의 꿈을 보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숨겨놓았던 나만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너무나 설레고 기쁩니다. 물론 글이 당선되어 기쁜 건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제가 정말 기쁜 건, 마음 속 이야기보따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일 것입니다. 이제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맨 먼저, 군포어린이도서관'창작동화아카데미' 문우님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칠고 엉성한 제 글들을 진솔하게 같이 고민해주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저에게 처음으로 글이라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박경태 선생님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으로 인해 동화라는 아름다운 문학을 알게 된 것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신 위로와 격려, 철학 안에 깊이 있는 글을 써야한다는 말씀, 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작년 초에 갑자기 남편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글은 저에게 큰 힘이 돼주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고 남편이 보내준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소중한 선물을 지키고 키워나가겠습니다. 저에게 희망을 주신 매일신문과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약력1973년 서울출생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TESOL학과 졸업군포어린이도서관 '창작동화아카데미'수료 ◇ 동화 심사평밋밋하게 흐르는 강 보다 굽이쳐 흐르는 강이 더 아름답다. 산허리를 휘도는 물줄기가 바위절벽을 만들고, 소에서 용틀임치는 물이 흙과 모래를 옮겨 갈대밭과 습지를 품기 때문이다. 동화도 밋밋한 이야기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앞부분에서 주인공이 확실한 목표(동기)를 설정하고, 그 목표달성을 위해 펼쳐지는 사건이 갈등과 뒤틀림으로 꼬이면서 굽이치는 강물처럼 그렇게 아름다움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동화 작가의 능력이다.이런 관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은 정선옥의 '말하지 않아도' 윤슬의 '퍼팩트 워치' 강다현의 '괴짜 할아버지의 비밀' 정미영의 '완벽한 내짝꿍' 그리고 명은숙의 '늑대가 나타났다'이다.'완벽한 내 짝꿍'은 전학 온 로봇이 짝꿍이 되면서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통계적 숫자로 제시함으로써 완벽함을 보여주지만, 너무 기계적이라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특히 사진처럼 그려낸 로봇의 그림보다 내가 싫어했던 영미의 그림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물질문명에 압도되는 현실에서 인간애를 조명한 수작이지만 미약한 갈등과 느슨해진 긴장감이 아쉬웠다.'늑대가 나타났다'는 서두에서 늑대의 야만성에 성범죄자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켜놓고, 버스를 타고 친구 집에 갈 때까지의 성범죄에 대한 과민반응을 다룬 작품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연이 삼촌을 중간 어딘가에 암시로 언급하지 못한 게 옥에 티였다. 그럼에도 시적 리듬을 탄 간결한 문체와 남다른 심리묘사로 펼치는 짜임이 깊은 내공을 헤아리게 한다. 큰 나무의 어린 싹으로 믿고 뽑으니 정진 바란다.김상삼 동화작가

2019-01-01 06:30:00

권영세 아동문학가

[2019 매일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소감, 심사평

◇ 동시 당선작/ 제목=액자 속의 나/ 박지영언제부턴가엄마가 날 보고 잘 웃지 않아요나를 보며 웃는엄마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반짝이는 금박 테두리안으로 들어가요 태권도 발차기를 하는미술대회에서 그림을 그리는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를 하는영어 상장을 든 귀여운 아이 옆에슬며시 다가서요 ◇ 당선소감/ 박지영회사 동료들로부터 4차원이란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어른들은 관심도 없는 일에 호기심을 갖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별일도 아닌 일에 깔깔거렸으니까요. 하지만 어른 행세하느라 마음껏 까불지 못했습니다.퇴직 후 우연한 기회에 동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동시를 쓰면 마음껏 까불수 있겠구나! 그 생각뿐이었습니다.동시 공부를 하면서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동시는 분명 동童+시詩인데 저는 동童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詩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 하다 보니 동童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동童도 모르고 시詩도 모른 채 동시를 쓰고 있었던 게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동童과 시詩 둘 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그 둘을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가 마냥 까부는 것만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고민의 옅은 흔적을 알아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감사한 분이 많습니다. 혜암 최춘해선생님, 혜암아동문학교실 김성민, 정순오선생님, 낙선도 공부라 생각하고 도전을 권하신 선배님들, 즐거운 합평시간을 함께한 15기 동기들. 모두 감사합니다.제게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그건 제 아버지 덕분입니다. 가난한 촌부이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분입니다. 집안사정으로 펼치진 못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아버지 마음 깊은 곳에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수업 중에 쫓겨 난 어린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이 상이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그만 웃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평생을 함께 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한 엄마에게도 이 상을 바치고 싶습니다.마지막으로, 겉으로는 남의 편인 척 하지만 항상 제 편인 남편 그리고 키워준 것보다 더 잘 자라준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박지영)1968년 경주 출생2017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당선(산문)2017 경북일보문학대전 은상(수필) ◇동시 부문 심사평일천 편에 가까운 응모작(945편) 중에서 시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동심과 시심의 조화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짐작되는 다음 여섯 편의 동시를 우선 뽑았다.장재옥(경기) 씨의 '할머니와 채송화' 김양희(서울) 씨의 '붕어빵이다!', 권영하(경북) 씨의 '할아버지가 쓰시던 카세트테이프', 이미화(대전) 씨의 '굄돌', 민진식(대구) 씨의 '씨앗', 박지영(대구) 씨의 '액자 속의 나'였다. 이 작품들에 대해 동시로서의 시적 형상화 능력 및 작품의 참신성과 독창성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음 두 편 중에서 당선작을 결정하기로 했다.민진식 씨의 '씨앗'은 시가 다소 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동심의 눈높이에 마음이 끌렸다. 또한 여섯 개 연의 중심 생각들이 조화를 이룬 시의 구조가 자연스러웠고, 화자가 속삭이는 듯한 이야기를 머리에 떠올리며 지루하지 않게 시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응축되지 못한 메시지로 인해 전체적으로 시가 산만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시의 내용이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을 갖지 못해 먼저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분이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을 통해 볼 때 동시인으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어 다음을 기대하기로 한다.마지막으로 남은 박지영 씨의 '액자 속의 나'는 동심의 주체인 어린이 화자가 직접 말하는 듯한 시적 표현에 호감이 갔다. 화자의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자아가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어린이들의 보편적인 심정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 진솔함을 느꼈다. 특히 '나를 보며 웃는/ 엄마 얼굴이 보고 싶을 때'의 현실적 상황과 '번쩍이는 금박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요'의 상상적 상황을 적절하게 배치한 점과 감정의 절제 등이 시를 돋보이게 했다. 소박하면서도 전체 구조가 단순해서 쉽게 읽혔지만, 동심을 제대로 살린 표현에서 끌림과 여운이 있어 작품을 끝까지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한번 빛났다가 사라지는 별이 아니라 문단의 지평을 여는 동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한다.권영세(아동문학가)

2019-01-01 06:30:00

김태형 기자 thkim21@msnet.co.kr

2019 매일 신춘문예, 7개 부문 4천 782편 접수

'2019 매일 신춘문예' 응모작 접수를 마감한 결과, 7개 부문에 4천 782편이 접수됐다.부문별로 단편소설 298편, 시 2천275편, 동시 945편, 동화 128편, 수필 644편, 시조 364편, 희곡·시나리오 128편이었다. 이는 지난해 4천545편에 비해 237편 늘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 신설한 희곡·시나리오 부문은 응모작 편수가 시행 첫 해임을 감안한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시나리오와 희곡이 문학도들에게 인기 장르로 부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올해도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응모가 이어졌다. 미국과 호주, 일본에서도 항공 우편으로 응모작이 날아들었고,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도 참여했다. 가장 어린 응모자는 16세였고, 80대 응모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 응모자가 시와 단편소설 분야에 동시 응모하거나 동화와 동시 등 2개 이상 분야에 응모한 경우도 많았다. 4개 분야에 응모한 사람도 있었다.매일신문은 12일 신춘문예 예심에 착수했다. 예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응모작들이 대체로 예년작들과 비슷한 완성도와 신선도를 보이고 있으나 일부 작품은 상당한 내공을 느끼게 해 본심 심사에서 당선작 선정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동시 분야에 40, 50대 이상의 응모가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 이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어린 시절 동심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심정이 반영된 것" 이라고 평가하며 "실제로 사회인 문예교실에서 동시를 배우는 40, 50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2019매일신춘문예 당선작은 2019년 1월 2일자 본지에 발표하며, 시상식은 1월 14일(월) 오후 3시 본사 8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2018-12-12 18: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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