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뒷담] 관련 기사 목록입니다.
반석크리닝, 반석세탁. '크리닝'과 '세탁'을 간판에 함께 표기한 사례.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 세탁소의 진화와 '컴퓨터크리닝'

평소 다닐 때 지나쳤던 으슥한 길로 괜히 발길을 향하면, 늘 걷던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걸으면, 고개를 좀 들어 담벼락 위나 지붕 따위를 또 허리를 좀 숙여 땅바닥의 생김새를 살피면, 대구의 골목길이 감춰 둔 이런저런 이야기가 발견됩니다. 온라인에만 게재하던 골목뒷담을 지면에도 4주에 한번씩 연재합니다.골목길 대표 업종 '슈퍼'에 버금가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세탁소'입니다.그간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슈퍼는 처음에는 '구멍가게' '점빵' '상회' 등으로 불리다가 '슈퍼마켓'이라거나 '마트'로 불리더니 요즘은 주변에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생기면서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물론 편의점으로 옷을 갈아입은 슈퍼가 꽤 됩니다.세탁소는 어떨까요. 구한말 내지는 일제강점기쯤부터 줄곧 '무슨무슨 세탁' 또는 '무슨무슨 사(社)'라는 간판을 달아 온 업종인 세탁소는 1980년대 들어 느닷없이 '컴퓨터크리닝'이라는 단어를 너도나도 간판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보통 '세탁'을 가리키는 클리닝(cleaning)의 옛날 표기인 크리닝 앞에 컴퓨터를 붙였으니, 컴퓨터 세탁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뭘까요.전자동 세탁기가 1980년대부터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무슨무슨 컴퓨터크리닝'이라는 세탁소 이름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수동 내지는 반자동 세탁기(워셔기)가 쓰였는데, 버튼을 눌러 세탁을 자동 제어할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회로가 탑재된 세탁기가 보급되면서 업계에서는 일대 혁명으로 인식했던 셈입니다.1984년 신문들을 살펴봐도 '세탁업소의 컴퓨터 시대 선언'이라는 광고가 등장합니다. '88올림픽도 있고 국민 위생 문제도 있고하니'라며 세탁소 업주들에게 자기네 회사 전자동 세탁기를 설치하라고 홍보하는 내용입니다.온갖 전자동으로 가득한 스마트폰에도 컴퓨터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는 요즘이라면, 그냥 전자동 세탁기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세탁의 자동화에 대해서는 컴퓨터 말고는 실감나게 표현할 단어가 없었던 셈입니다. 세탁소 주인들도, 소비자들도, 그리고 광고에서도 그렇게 공유했습니다.이런 현상에 대해 1991년 11월 27일 한겨레신문 '컴퓨터 만능 환자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는 "우리나라에 컴퓨터 바람이 불면서 심지어는 세탁소에도 컴퓨터 세탁이라고 써 붙여야 장사가 되는 세상이 됐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이어 세탁소 업계는 또 한번 변화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세탁기 없이 기존처럼 수거·배달만 해 세탁공장에 맡기고, 대신 가격을 낮춘 세탁편의점이 등장했습니다. 이어 요즘은 세탁소 프랜차이즈가 여럿 등장해 있습니다.또한 1990년대를 시작으로 대학가 등 젊은층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지역과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새 아파트 단지 등에는 물빨래만 가능한 빨래방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나던 빨래방은 대학가 원룸마다 드럼세탁기가 기본으로 설치되는 등 세탁기의 대중화로 사양길을 걷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형 드럼세탁기로는 소화할 수 없는 이불 세탁이 가능한 점, 아직은 보급이 저조한 건조기를 대용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점 등을 소비자들에게 내세우며 생존하고 있습니다.즉, 요즘 세탁소 업계는 소비자들의 삶의 변화에 따른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포착하면서 이런저런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어 전자동 세탁기 같은 어떤 혁신적 세탁 기술이 등장한다면, 세탁소 간판은 또 한 번 업데이트 붐을 겪을지 모르겠습니다. 컴퓨터크리닝 정도의 센세이션은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요.관련 흔적들을 사진으로 간추렸습니다. 사라진 가게도 있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10-16 18:00:00

추석 한가위 주제 간판 글씨 콜라주.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 "풍성한 한가위, 행복한 추석 되세요"

골목뒷담 30회는 추석 한가위 인사로 대신합니다.대구경북 곳곳 골목의 간판 글씨들을 모았습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9-13 09:00:00

[골목뒷담(後談)29] 뒷골목 현금서비스 '전당포' 간판.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9] 뒷골목 현금서비스 '전당포' 간판

사라진 것도 같은데 여전히 존재하는 가게가 있습니다. 전당포(典當鋪)입니다.급하게 쓸 돈(급전, 急錢)이 필요하면 물건을 가져가 처분하거나 담보로 맡기고 돈을 구하는 업소입니다. 그 시초는 조선시대 '자모전가' 내지는 개화기 때 등장한 전당포입니다.값 나가는 귀금속과 가전제품부터 곤로·그릇 같은 세간살이, 책,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취급했다고 합니다. 백화점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품목을 다뤄 온 점포입니다.전당포가 일반화된 시기는 1960년대라고 합니다. 번화가 뒷골목엔 꼭 있던 게 1970년대에는 대학가로도 번졌습니다. 대학생들이 입학선물로 받은 시계를 등록금이며, 하숙비며, 술값을 마련코자 들고 왔습니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는 전당포가 사양길을 걷기 시작한 시기로도 평가됩니다. 국민소득이 오르면서 좀 살만해졌고, 은행 대출 문턱도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는 신용카드까지 도입돼 역시 전당포의 쓸모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결국 1990년대에는 전당포 운영을 가리키는 '전당업' 소관 '전당영업법'이 폐지됐습니다. 1999년 3월 31일의 일입니다. 전당포에 대한 각종 규제가 폐지됐다는 얘긴데, 이는 다른 생활금융 분야들의 덩치가 급격히 커지면서 굳이 소수의 전당업만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전당포의 최전성기이면서 사양길도 분명 지나고 있었던 1980년대 전국 전당포 수는 2천여곳에 달했습니다. 그랬던 게 크게 감소해 지금은 대부업 현황에 섞인 상황입니다.그러면서 전당포는 아예 소멸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당포는 'IT 전당포'로 변신해 생존의 길을 찾았습니다. IT 전당포는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났는데, 스마트폰·노트북·디지털카메라 따위 IT 제품이 젊은층의 필수품이 되기 시작한 시기와 궤를 같이 합니다.요즘 대학생들은 각종 IT 제품을 매개로 IT 전당포에 가서 급전을 구한다고 합니다. 과거 입학선물로 받은 시계를 들고 가던 게 IT 제품으로 바뀐 셈입니다. 그래서 예전 전당포 주인들에겐 '짝퉁' 시계를 감별하는 능력이 중요했는데,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컷 수(촬영 회수)를 따지는 등 IT 제품 상태를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IT 제품 만큼 대중화된 게 '명품'입니다. 많이 팔린 명품은 전당포로도 많이 유입된다고 합니다. 으슥한 뒷골목 전당포가 아니라 전국 곳곳 번화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전당포'로 들고 온다고 합니다. 전당포를 닮은 중고명품 매입·판매 매장도 많이 생겼습니다.20세기에 멈춰 있는 전당포 간판 사진들입니다. 사라진 곳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운영되는 곳도 일부 있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9-07 18:00:00

[골목뒷담(後談)28] 맛있는 글씨.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8] 맛있는 글씨

골목에서 볼 수 있는 글씨 가운데 '음식 글씨'가 참 많습니다. 대한민국 자영업 대표 업종이 바로 '먹는 장사'이니까요. 식당도 많고, 술집도 많고, 이런저런 식재료를 파는 가게도 많습니다. 그래서 점포 이름이 적힌 간판은 물론 밖에도 내놓은 메뉴판 같은 것들에서 세상 온갖 음식이 적힌 글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중엔 업소에서 파는 음식의 맛이 느껴지는 듯한 '맛있는 글씨'가 꽤 있습니다.어느 가게 바깥에 걸어둔 메뉴판에선 냉면과 잔치국수의 쫄깃한 면발이 느껴집니다.깊은 맛의 찜 요리가 간판 메뉴인 한 식당 이름 '속풀이'는 글씨를 '속풀이체'라고 명명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속이 '확' 풀릴 때의 쾌감이 잘 표현된 것 같습니다.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다슬기'라는 글씨 역시 '다슬기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듯 합니다. 다슬기의 유려한 곡선이 글씨에 잘 담겼습니다.한 인삼 가게 간판 글씨 5자는 맨 왼쪽 인삼 그림과 잘 어울립니다. 인삼 6뿌리가 간판에 그려져 있는 셈입니다.한 장어 식당 입구의 가게 이름 글씨는 아래 그림들을 가리더라도 '팔딱팔딱' 뛰는 장어가 절로 떠오릅니다.어느 채소 가게는 아예 콩나물 및 숙주나물 캐릭터를 간판에 넣었습니다. 따로곰탕이 유명한 또 어느 가게는 네온 간판 뒤 소머리 그림이 포인트입니다. 둘 다 요즘 요식업 프랜차이즈 간판에 흔히 그려지는 식물·동물 캐릭터들과 좀 달라 오히려 신선합니다.그리고 이건 미용실 간판 글씨인데 왠지 모르게 바다에서 나는 '김'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밥 때가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8-31 06:00:00

'패션이'와 '푸르마'.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7] 대구의 '망한' 캐릭터…'패션이'와 '푸르마'

▶얘 누군지 아시나요? 대구의 골목, 공공시설 간판, 공사장 펜스 같은 데서 이따금 볼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이름은 '패션이'. 대구시 캐릭터입니다. 2000년에 지정돼 올해 성인, 그러니까 나이가 20세가 됐는데, 여전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섬유패션도시 대구시를 상징하는 이름 및 캐릭터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그 수식만큼 이 캐릭터도 시민들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난해 대구시가 채택한 시민제안 가운데 이 캐릭터의 교체 건도 있었습니다.그러는 즈음에 대구시는 '수달' 및 '컬러풀프렌즈' 캐릭터를 내놨습니다. 수달은 대구 도심 신천과 금호강 등의 하천에 사는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 동물입니다. 컬러풀프렌즈의 컬러풀은 대구시 브랜드 슬로건 '컬러풀 대구'의 그 컬러풀입니다. 혹시 둘은 새 대구 대표 캐릭터 후보일까요?아무튼 패션이는 20대가 되자마자 죽음을 맞을 처지가 됐습니다. 잔인합니다. 물론 길거리 곳곳의 흔적으로는 시민들과 계속 조우할 것입니다.그리고 하나 더 곁들이자면, 얘들도 모르실 겁니다. '함박이'와 '생글이'라고 합니다.▶비슷한 사례를 대구 바로 동쪽 경산에 있는 대구권 대학인 영남대학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푸르마'입니다.영남대는 대학 상징으로 '천마'(天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남대 홈페이지에 가면 천마에 대한 설명은 있는데, 천마의 '귀요미' 버전인 셈인 푸르마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푸르마는 영남대 공공자전거 브랜드로 유명했습니다. 영남대는 참 넓습니다. 전국에서도 손에 꼽힙니다. 그래서 교내에 순환버스가 다닐 정도인데, 푸르마 자전거도 학생들의 이동에 유용하게 쓰였습니다.그랬던 푸르마 자전거는 지난해 6월 운영이 종료됐습니다.수년 전 까지만 해도 푸르마 캐릭터는 학생들의 과제 표지에도 쓰이는 등 '엄근진'(엄격, 근엄, 진지)한 천마와 비교해 영남대 학생들의 대학생활에 잘 녹아들었던듯 합니다만, 이후 학생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졌습니다. 이제 신입생들은 아예 푸르마가 뭔지 모릅니다.'뽀로로' '상어가족' 등 유아 콘텐츠의 인기는 물론 카카오톡 등 성인들이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애용하는 모습만 봐도 요즘은 캐릭터 시대입니다. '미키마우스' '헬로키티' '심슨가족' '스폰지밥' '미피' '무민' 같은 오래된 캐릭터들은 웬만한 대기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잘 만든 캐릭터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행복도 선사합니다. 스무살이 되도록 대구 시민들의 스타가 되지 못한 패션이는, 대학 티셔츠나 '과잠바'가 유행할 때 등짝에 새겨지지 못하는 등 영남대 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에서 사라져버린 푸르마는, 그래서 아쉽습니다.사실 저희도 그런 게 있긴 합니다. '매일누리'라는 캐릭터입니다. 모르는 신문사 직원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름이나 디자인이나 좀 촌스럽긴 하지만, 레트로(복고)가 각광 받는 요즘 나름 '먹어줄' 것도 같은데, 아무튼 지금은 신문사 건물 지하 1층 신문전시관 입구에 조용히 잠자고 있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8-21 16:47:56

휴가 글씨.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6] 휴가 글씨

7월 말부터 8월 중순쯤까지 휴가철엔 가게마다 '휴가 글씨'가 붙습니다.대구 도심의 다수 상권은 8월 1~4일 나흘이 휴가였습니다. 즉, 어제까지였습니다. 물론 가게마다 하루, 이틀, 며칠 씩 차이가 나긴 합니다. 상인회, 번영회, 협회가 있는 상권은 보통 날짜를 정해 함께 쉽니다. 알림 종이를 상가 주요 장소마다 붙이기도 하고, 많이 인쇄해 가게마다 한 장 한 장 붙이기도 합니다.손글씨로 쓴 알림 종이들도 눈에 띕니다. '하계휴가' '하기휴가' '여름휴가', 아니면 그냥 '휴가중' '휴가' '쉽니다' '휴무' 등 표현도 다양합니다.휴가 전 설렘을 알림 종이에 표현하기도 합니다. 글자로, 이모티콘으로, 그림으로, 인쇄로. 표현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으레 붙는 코멘트인 '감사합니다'를 곁들이는가 하면, 휴가를 가는 것이 죄송할 일이 아닌데 '죄송합니다'라는 코멘트도 붙입니다. 비상연락처도 표기해 놓습니다. 헛걸음 하셨을 손님에게 미안했는지 재치 있는 '이벤트' 메시지도 적습니다. (이 기사 속 사진을 들고 방문하시면 안 됩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8-05 14:03:38

대구 북성로 및 쪽방촌에 새겨진 '철거' 'X' 글자들.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5] 철거되는 대구 북성로

대구 중구 북성로 일부 지역 및 대구시민회관 건너편 쪽방촌이 곧 철거에 돌입합니다. 한 민간 재개발 사업의 여파입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북성로 도시재생 뉴딜사업'도 이 일대에서 이뤄져 '호재'라고들 얘기합니다.그러면서 철거가 예정된 건물들에 붉은 글자가 새겨지고 있습니다.그간 대한민국에서 이뤄진 여느 재개발, 뉴타운, 뉴딜 등의 이름이 붙은 사업 초기에 현장에서 목격이 돼 온 글자들입니다.누가 법으로 따로 지정해 준 것도 아닌데, 서울이나 대구나 어디나 똑같이 붉은색 락카 스프레이를 사용해 또한 똑같이 '철거'와 'X'라는 글자를 새깁니다.빨리 쓰느라 그랬는지 '철'의 받침 'ㄹ'이 'z'이 되고, '거'가 '지'가 되기도 합니다. 'X'의 교차하는 2개 선은 보통 위에서 아래로(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으로) 긋습니다. 그래서 X의 두 선은 어떤 건 마치 국기봉 같기도, 또 어떤 건 '게'의 다리 같기도 합니다.철거 글씨를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투입됐는지 가늠할 수 있는 힌트는 철의 'ㅊ' 필체이지 싶습니다. 'ㅈ' 위의 '·'을 세로로 그었느냐, 가로로 그었느냐, 또는 점으로 찍었느냐, 그러면 그 점의 굵기가 어느 정도이냐 따위를 살펴보면 될 것 같습니다.사실 좀 더 자세히 보면 '철(撤)거'는 글자가 아니라 '철(鐵)조망'입니다. 건물 주위를 '꽁꽁' 둘러싸고 있습니다.북성로 공구골목의 일원이었던 가게 일부는 대구 북구 유통단지로 갑니다. 북성로 상권은 그만큼 규모가 작아집니다.적산가옥을 다시 꾸며 영업을 이어나갈 것 같았던 한 디저트 가게는 아쉬운 창업 스토리가 됐습니다. 한 책방은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북성로로 왔다가 또 어딘가로 떠나야 할 지 모를 처지라 합니다. 대구 근대건물 리노베이션 대표 사례로 시민들 및 관광객들에게 소개 돼 온 '소금창고'도, 아이러니하게도 리노베이션(Renovation, 기존 건축물을 헐지 않고 개 · 보수해 사용하는 것)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철거됩니다. 1907년 세워진 소금 창고 건물(및 1937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포함)은 이래 저래 용도가 바뀌고 또 한동안 비어 있으면서도 겪지 않았던 '죽음'을 태어난 지 110여년만에 처음으로 맞게 됐습니다.이렇듯, 잘 살아보자고 하는 사업이라곤 하지만 그게 완벽하지는 않아 보입니다.북성로는 1906년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자리 북편에 도로 및 일대 상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대구 최고 번화가였고, 한국전쟁 시기를 지나 1970~80년대 전국 최대 공구골목이었다가, 잠시 침체기를 겪더니, 2010년 전후로 다양한 상업 및 문화 공간이 들어서며 변신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 다음 북성로의 역사는 어찌 될까요?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9-07-30 18:34:42

서문시장 장애물 없는 소방통로.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4] 11월 30일은 서문시장 4지구 화재 2주년

11월 30일은 서문시장 4지구 화재 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2016년 11월 30일 오전 2시 8분 4지구 남서편에서 시작된 불로 지하 1층 및 지상 4층 규모 4지구 상가가 전소됐습니다. 679개 점포가 피해를 입어 상인회 추산 1천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2018년 11월 30일 다시 가 본 서문시장은 모처럼 날이 풀려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인파 사이로 눈에 자주 잡힌 게 바로 빨간 소화기였습니다. 출입구 눈에 잘 띄는 곳마다 있었습니다. 소화기 옆에 물을 채운 양동이를 함께 둔 곳도 있었습니다. 소화기보다 양동이가 좀 더 쓰기 편한 화재 상황이 분명 발생할 수 있습니다.과거부터 사용돼 온 소화기함도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고, 새로 설치된 호스릴 소화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한 수산물 점포는 눈에 잘 보이도록 소화기를 벽면 위쪽에 비치해 놓기도 했습니다. 불이 나면 소방차 등 소방장비의 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의 시장통 소방통로도 장애물 없이 꽤 잘 확보돼 있었습니다.4지구 대체상가인 베네시움 건물에는 층마다 공기호흡기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소화기 색깔인 빨간색이 아닌 은색으로 된 이 물건은 화재 현장의 유독가스로 인한 산소결핍 발생시, 호흡기를 보호해주는 장비입니다.불에 타 사라진 4지구 상가 건물 자리 가장자리에는 여전히 초록색 가림막이 둘러 쳐져 있습니다. 2년째 서문시장의 한 풍경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에는 이곳에 건물을 새로 짓는 재건축 사업 추진 계획이 윤곽을 드러낼 전망입니다. 이 가림막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11-30 14:43:45

대구 수성교 장식물 DAEGU, TAEGU 표기.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3] TAEGU? DAEGU? 수성교 장식물 자세히 보니

대구 수성교를 도보로 건너다보면 교량 중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식물입니다. 도로를 중앙에 두고 양쪽 인도에서 한개씩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여기 적힌 글자가 수상합니다. 팔공산과 낙동강을 형상화했다고 하는 심볼 아래 글자입니다.얼핏 보면 DAEGU라고 적혀 있는데 자세히 보면 TAEGU입니다. 덧 쓴 것 같기는한데, 하나의 표기가 하나의 표기를 가린 게 아니라 두 표기가 모두 보이니, 표기의 변천사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TAEGU가 DAEGU로 바뀐 것은 2000년 우리말 로마자 표기법이 변경되면서부터입니다. 아마도 그때쯤의 기록일 것입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11-12 16:36:41

옛날 가게 홍보 스티커.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2] 옛날 가게 홍보 스티커 갤러리

길을 가다 우연히 옛날 가게 홍보 스티커로 가득한 건물 현관(입구 안쪽)을 발견했습니다. 대구 시내 한 건물입니다.현관은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이 반드시 거치는 공간입니다. 옛날 가게 홍보 스티커들이 붙은 곳은 실은 전기계량기가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만, 현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눈길이 자주 쏠릴만한 위치에 있기도 했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게시판'이 설치돼 있을 만한 위치였습니다. 그러니 이런저런 가게 홍보 스티커가 많이 부착됐을 것입니다. 그게 지금까지 보존됐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스티커들을 살펴봤습니다. 사라진 가게가 많고, 이름을 바꿔 이어지고 있는 가게도 있습니다. 전화번호는 스티커에 적힌 곳이 아닌 다른 가게에서 지금 쓰기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화번호가 여전한 가게도 있습니다. 오래된 가게라는 얘기입니다.금호호텔 옆에 있어 찾기 쉽다는 의미의 문구도 보입니다. 과거 높이 솟은 금호호텔은 대구 시내 곳곳에서 잘 보여 이정표 내지는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금호호텔은 2015년 철거됐습니다.휴대폰(휴대전화) 번호와 '삐삐' 번호를 함께 쓰던 시절의 가게 홍보 스티커도 보입니다. 삐삐는 '무선호출' 'B.P'(Beeper(무선호출장치)의 약자. 휴대전화는 H.P, 즉 콩글리시 Hand Phone의 약자) 등으로도 표기됐습니다. 최근 가수 아이유가 신곡 '삐삐'를 공개했는데, 그런 시기라 그런지 더욱 반갑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10-16 00:00:01

국정원(국가정보원) 간첩 신고 홍보 시력검사표.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1] 국정원의 '간첩 잡는' 시력검사표?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모두 읽으실 수 있나요? 맨 아래 글자까지 읽을실 수 있다면, 시력 2.0입니다. 과거 국정원(국가정보원)에는 '광고천재' 이제석 같은 직원이 적잖게 있었나 봅니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간첩 신고 홍보를 시력검사표라는 아이디어로 꾸미다니요.우리사회곳곳에는간첩과좌익사범및국제범죄사범이숨어있을지모릅니다여러분의신고정신이국가안보를지켜줍니다당시 간첩 신고 상금도 눈에 띕니다.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 상금 제도는 상금 변천사가 제일 눈길을 끄는 요소입니다.70년대에 간첩 500만원(이하 최고액 기준), 간첩선(간첩들이 타고 온 배나 잠수정 등) 1000만원이었습니다.80년대에는 간첩 3000만원, 간첩선 5000만원으로 5~6배로 인상됐습니다. 당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물가 역시 큰 폭으로 뛰었으니 인상에 일리가 있습니다.이어 90년대에도 간첩 1억원, 간첩선 1억5000만원으로 높아졌습니다.그러다 2011년 간첩 5억원, 간첩선 7억5000만원으로 16년만에 올랐습니다. 수억원씩 오른 겁니다. 정부는 인상 이유로 "국민들의 안보의식과 신고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이 소식을 전하며 '간첩 로또'라는 제목을 기사에 달았습니다. 로또 복권 1등 당첨금 액수와 비슷하니 간첩을 잡으면 인생이 '쫙' 편다는 얘기였습니다.이어 2016년 신고 상금 최대한도가 20억원으로 '확'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간첩 등 국가안보 위해 사범의 활동이 수법이 날로 은밀화 및 지능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상금을 높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간첩 신고 전화도 한차례 변동이 있었습니다. 1965년 '113'이 도입됐습니다. 이어 2002년 '111'이 추가됐습니다. 113은 경찰청으로, 111은 국정원으로 연결되는 게 차이점입니다. 어릴 적에 날씨를 알아보려고 '131'(일기예보 안내전화)을 누른다는 게 그만 113을 눌렀다가 왠 아저씨가 낮게 깐 목소리로 전화를 받길래 깜짝 놀라 끊고는 '혹시 장난전화 했다고 잡으러 오는건 아닐까'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이 밖에도 새마을운동 심볼에 곁들여진 '반공'이라는 글자, 동네 골목마다 한집씩 있었던 '주민신고센타' 등의 흔적을 오래된 골목길에 가면 지금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10-10 11:06:34

물을 공급하느라 지친 물탱크의 표정입니다. 대구.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20] 골목길 이방인들의 표정

길을 걷다 보면, 지구를 찾은 이방인인듯한 이들의 얼굴을 종종 마주할 수 있습니다. SF(공상과학) 영화나 에니매이션 작품의 등장인물들 같기도 합니다. 폐업한 가게 간판 뒤에 숨은 웃는 표정,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티슈 디스펜서와 물탱크와 복사기의 표정도 있습니다. 불철주야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경찰관들이 모인, 대구 한 경찰서 건물은 밤이면 늘 졸립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9-21 16:22:41

LG텔레콤 PCS019(좌측), KTF SHOW(우측).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9] 사라진 상표와 상호

세상에서 사라진 상표와 상호가 골목엔 있습니다. 세상은 급히 변해도 골목길은 멈춰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느린 곳이기 때문입니다.골목엔 철거되지 않은 간판이 꽤 있습니다. 사라진 가게 간판 앞에(위에) 새로 들어선 가게 간판을 덧대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간판 설치 업소는 단단히 걸려 있는 옛 간판을 굳이 떼어내지 않고 새 간판을 다시 단단히 고정하는 용도로 씁니다. 그 자세한 기술 원리는 여쭤보지 못했습니다.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도, 방치된 옛 간판이 꽤 있습니다. 건물에 칠해진 간판은 그 건물 칠을 새로하지 않는 이상 없애기 어렵습니다. 대구 중앙로 '본영당서점'(1945~2008) 간판이 대표적입니다. 그 덕분에 대구 향토서점의 중요한 역사 한 구절이 대구 중앙통 골목에 새겨졌습니다. 무궁화백화점의 랜드마크 가게였던 '삼보조명랜드'는 건물 바깥에 칠해진 간판은 지워졌지만, 건물 내부 간판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이런 것들 가운데서 사라졌거나 바뀐 상표·상호도 찾을 수 있습니다. ▷쌍용제지가 1995년 시장 점유율 1위로 키우기도 했던 화장지 브랜드 '비바' ▷후지필름과 제휴해 이름을 알렸던 '롯데필름' ▷서일공업사로 시작해 지금은 에넥스가 된 '오리표씽크' 등입니다. 또 LG텔레콤의 PCS 시절 브랜드 'PCS019'와 KT의 자회사였던 KTF의 무선통신 브랜드 'SHOW'의 로고가 새겨진 장비가, 어느 골목길에 철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2014년 하나카드로 통합된 '외환카드'와 2017년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동부화재' 간판도 골목에 있습니다. 금융권은 이런저런 인수합병이 잦아 상표 및 상호 변경 역시 자주 하는 편입니다.길바닥에도 있습니다. 한번 설치하면 교체하기 쉽지 않고 상태가 양호하면 굳이 갈지 않아도 되는 맨홀이 대표적입니다.▷'두루넷'(2006년 하나로통신에 인수된 뒤, 2008년에는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하나로통신'(두루넷을 인수한 다음 SK텔레콤에 합병돼 SK브로드밴드가 됨.)▷'데이콤'(2000년 LG그룹에 편입됐고,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LG파워콤'(한국전력공사의 통신사업 부문이 2000년 분리됐고, 2002년 LG그룹에 편입된 뒤 2010년 LG파워콤과 함께 LG텔레콤으로 합병.)▷'대구도시가스'(대성에너지의 옛 이름, 2011년 변경.) 맨홀이 대구 시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이건 사라진 명소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대구 한 식당에는 대구 도심의 나름 유명한 호텔이었던 '뉴종로호텔'의 설탕(혹은 프림)통이 양념통으로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매일신문사의 손님 맞이 공간이기도 했던 '매일커피숍'은 안내판만 남아 있습니다.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아 참 다행입니다. 잘못된 표기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대신 일부는 근현대문화재급 장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될만해 가치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자체로 근현대문화재급이 될 수 있어 주목할만합니다. 업장은 사라졌지으나 간판은 철거하지 않고 남겨뒀기에 대구관광의 주요 이미지가 됐던 '정소아과의원'이 바로 그렇습니다.정소아과의원은 최근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간판도 다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7-26 05:00:00

대신지하상가 옛날 간판.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8] 옛날 간판 특구, 대구 '대신지하상가'

옛날 간판 특구라 할만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구 서문시장 바로 옆 대신지하상가(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470)입니다. 300여m 길이 지하상가에는 330여개 업체가 모여 있습니다. 의류, 주단, 각종 잡화가 주요 판매 품목인데요. 1970년대에 조성된만큼 오래된 가게도 많다는 사실을 옛날 간판들이 한눈에 보여줍니다. 다만, 드문드문 가게는 사라졌고 간판만 남은 곳도 있기는 합니다.상가 입구에 있는 미도파레코드 대신지하상가점 간판이 가장 눈길을 끕니다. 미도파레코드는 사실 부산에 1953년 설립된 레코드사가 원조입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대구와 부산이 가요 레코드 취입의 중심지였지요. 부산에 미도파레코드가 있었다면 대구엔 좀 더 앞선 1947년 설립된 오리엔트레코드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가게가 단순히 유명한 레코드사 이름을 따 온 것인지, 아니면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좀 더 알아볼 계획입니다.의류, 주단, 각종 잡화가 주력인 상가이기에 '패션'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래서 '하이패션' '숙녀복' '와이샤스' '니트' '마춤' 등 다양한 관련 키워드가 멋진 글꼴로 표현돼 있습니다.'정찰판매'는 요즘 보기 힘든 단어라서 신기합니다. '혼수전문'이라는 단어는 이곳이 결혼을 하는 자식 세대와 혼주가 되는 부모 세대가 함께 분주히 드나든 곳임을 짐작케 해줍니다.그러고 보니 상당수 간판은 글꼴이 꽤 비슷해서 어느 한 분의 작품인 것 같다는 추측도 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곳은 그 분이 남긴 갤러리이기도 한 셈입니다. 역시 좀 더 알아볼 계획입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7-10 13:22:11

실과 바늘을 간판에 표현한 예쁜 옷수선 가게 간판.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7] 골목 대표 업종 '옷수선 가게'

골목 대표 업종은 '슈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간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슈퍼는 '구멍가게'와 '점빵'과 '상회' 등으로 불리다가 '슈퍼마켓'이라거나 '마트'라는 이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또 골목 곳곳에 '편의점'이 생기면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편의점으로 변신해 생존한 슈퍼들이 있기는 합니다.아무튼 슈퍼는 기업과 프랜차이즈의 골목 침투 같은 새로운 흐름에 점점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입니다.그래서 골목을 다시 살펴보면, 골목 대표 업종은 '옷수선 가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크게 번창한 적은 없지만, 골목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건재합니다. 기업과 프랜차이즈가 쳐들어 오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럴 일도 딱히 없을듯합니다.이런 이유는 아닐까요. 슈퍼에 있던 주판은 계산기로 다시 컴퓨터(pos단말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옷수선 가게의 미싱기는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되지 않았습니다. 옷은 여전히 직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실·단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또한 옷수선은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감성도 녹여내야하는 영역입니다. 옷이 몸을 가리면 그만인 거적데기가 아니라 몸을 꾸미는 취향의 영역에 있어서입니다.수선집마다 개성 그리고 기조 내지는 철학이 있는 것도 그래섭니다. "0.5인치 줄일거면 그냥 입어"라고 하는 A수선집 아저씨가 있습니다. 허리를 만지면 다른 부분이 탈이 나는 바지가 유독 있습니다. "0.2인치 더 줄여야겠는데?"라고 하는 B수선집 아주머니 말도 틀린 게 아닙니다. 정장 바지는 딱 맞게 정교하게 수선해야 합니다. C수선집 아저씨는 어디다 따로 입력하지도 않았는데 제 허리 사이즈를 외우십니다. "전에 31인치 바지를 30인치로 줄였잖아? 그러면 이 바지도 좀 더 줄여야하지 않을까?"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6-19 17:58:35

쌀집 간판.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6] 쌀집점빵

골목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글자가 있습니다. '쌀'이 그렇습니다.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있었고 주요 품목으로 쌀을 내건 쌀집 겸 점빵이 있었는데, 이젠 쌀 소비량도 줄고(2017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8kg으로 역대 최저치 기록), 이런저런 마트도 골목 곳곳에 생겼고, 젊은이들은 즉석밥 제품도 많이 찾고 있어 그렇게 자리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으니, 낡은 간판만 남은듯 합니다. 물론 여전히 쌀을 파는(사는) 구멍가게가 적잖게 있습니다. 동네의 터줏대감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튼 쌀 품종 수만큼, 지역마다 나는 쌀의 맛이 저마다 다른 만큼, 글자 모양도 다양합니다.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6-07 16:36:27

길바닥 위 뿔소.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5] 동심으로 봐야 보이는 골목길 동물 친구들

골목길에 가면 동물 친구들이 있습니다. 길냥이들 말고도, 길바닥이며 담벼락이며 계단에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는데, 동심으로 봐야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뿔소는 마치 '큐비즘'(cubism)으로 잘 알려진 피카소가 그린 것 같습니다. 가로수 보호대에는 부엉이와 토끼가 살고 있습니다. 담벼락에는 고양이도 있군요. 바다가 고향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옛적에 건물을 지을때 장인들은 바닥에 저렇게 불가사리로 멋을 내기도 했답니다. 전신주 전깃줄에 달린 꽃게는 그림자 덕분에 정체를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부산 용두산공원 계단입니다. 용의 머리(龍頭, 용두)가 지명인 곳이니만큼, 주변에는 저렇게 용이 되기 전 이무기들이 화재 등 비상시 물을 뿜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이무기들은 그렇게 시민들을 도우며 덕을 쌓아야 용으로 승천할 수 있는가봐요. 여러분 살고 계시고 또 오가시는 골목길엔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나요?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5-23 15:28:09

지수전(급수관 도중에 설치하여 급수를 제한하거나 제지하는 밸브) 대구직할시.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4] '대구직할시'와 'TAEGU' 흔적

대구광역시, DAEGU(영문표기) 이전에 대구직할시, TAEGU가 쓰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공공시설물에서 일제히 표기를 바꿨지만, 남아있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잘못된 게 아닙니다. 표기를 바꾸려고 계속 쓸 수 있는 공공시설물을 교체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골목에서 대구의 옛 명칭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골목은 '역사책'이 되는 것이니 의미도 있습니다. 대구는 1981년 직할시로 승격했고, 1995년 광역시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앞서 조선때부터 대구부였던 것이 1949년 대구시로 바뀐 바 있습니다. 또 TAEGU가 DAEGU로 변경된 것은 2000년 우리말 로마자 표기법이 변경되면서부터입니다. 최근 어느 언론에서는 해외 유명 사이트에서 대구를 가리킬 때 여전히 TAEGU가 쓰인다며 정부가 나서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대구가 좀 더 알려지면 'TAEGU가 실은 지금의 DAEGU더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설명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 표기된 거 어쩔 수 없는 건 그대로 쓰면 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대구국제공항 공항코드가 'TAE'입니다. 국제적 약속이기에 우리 표기법이 변경됐다고 마음대로 못 바꿉니다. 대신 'TAE가 DAEGU의 옛 표기인 TAEGU에서 따온 거야'라고 한 줄 정도 설명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5-15 16:30:56

골목 대문 꼬부랑 문양.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3] 꼬부랑 대문 문양

골목 대문 문양의 대표 주자는 사자 문고리, 그리고 바로 꼬부랑(∽) 문양입니다. '덩굴문양' 또는 '넝쿨문양'으로 불리는 이 문양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과 유럽은 물론 중동에서도 건축, 미술품, 의복 등에 전통적으로 써 왔습니다. 이게 20세기에 골목 대문에도 표현됐습니다. 꼬부랑 철제 재료를 대문 장인들은 뻔하게 쓰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조합해 다양한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바퀴도 있고, 재해석한 전통문양도 있고, 온갖 기하학이 펼쳐집니다. 대구 중구 진골목 정소아과 대문에도 있습니다. 대문 말고도 담벼락 창살이나 창틀에도 썼던듯 합니다. 꼬부랑 대문 문양은 요즘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파트 전성시대이기에 대문을 따로 달 일도 많지 않거니와, 달더라도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나온 걸 쓰기 때문입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5-10 10:38:47

고향손국수. 황희진 기자

[골목뒷담(後談)12] 골목 간판 이력서

노포(老鋪)의 이력은 이따금 간판이 말해주기도 합니다. 옛 간판과 새 간판이 함께 있는 경우입니다. ▶대구 불로동 '고향손국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3개 간판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게입니다. 직접 글씨를 칠한 간판부터 컴퓨터 디자인으로 인쇄한 간판까지, 간판 제작 기술 및 트렌드의 변천사도 보여줍니다. ▶이런 사례는 오래된 도심에 적지 않습니다. 대구의 경우 옛날부터 상권이 번성했던 북성로, 교동, 동인동, 약령시, 종로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걸었던 간판을 그대로 둔 북성로 '경신방염공사'는 수십년 역사를 간판 배치로 한눈에 보여줍니다. 동인동 '옥포열쇠'는 '옥포철물상사'로 취급 품목이 많아졌습니다. 약령시 '영대약업사'와 '광신한약방'의 오래된 한자 글씨 간판은 약령시의 분위기를 더욱 올려줍니다. 1907년 개업해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물포로 알려져 있는 종로 '대구지물'은 건물 벽면에 옛 간판 글씨가 쓰여져 있습니다. 이 건물 2층에 가면 과거 가게의 모습 그대로가 보존돼 있기도 합니다. ▶동인동 '대륙서점'은 시차를 옆으로 가게가 확장하면서 간판도 추가된 곳입니다. 교동 '황시당'은 조금 특이한 경우입니다. 주인도 각각 다르고 과거부터 모두 금은방이었는데 사진 맨 왼쪽 한 곳은 구제옷가게가 됐습니다. 업종은 바뀌었지만 간판을 교체(철거)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처럼 건물의 가게는 수시로 바뀌는데 간판은 바꾸지 않은 곳이 꽤 많습니다. 북성로 독립출판서점 '더폴락'은 이전하면서 과거의 간판을 떼지 않았고 현재의 자리에서 불과 수m 떨어진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성로 식당 '제크'는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까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간판을 교체해 온, 전례가 없는 간판 변천사를 가진 곳입니다. 그 기록을 따로 이력 간판으로 만들어 걸어뒀을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이 곳은 2017년 초 다른 가게로 바뀌었습니다. 가게가 바뀌는 공사 당시 벽면에 적혀 있던 '옛날에 제크'라는 문구가 묘했습니다. 오래된 간판의 의미 중 하나가 '이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다'라는 메시지의 표현일 것입니다. 교동 '스튜디오 유연한'은 과거에 '형제조명'이라는 곳이 있었다며 간판을 그대로 둔 것은 물론, 가게 전면 알림글을 통해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유연한에서 알립니다. 형제도 없거니와 조명 가게는 더욱이 아니기에 간판을 바꾸려 했으나 나름의 멋이 있어 그냥 두었습니다만 삼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형광등과 꼬마전구를 사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형제조명이란 간판을 걸고 있는 이 공간은 서울과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튜디오 유연한입니다. 스튜디오 유연한은 책, 포스터 등의 인쇄 매체를 기반으로 한 작업에서부터 브랜딩과 웹, 모바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골목폰트연구소(www.facebook.com/golmokfont)의 도움을 얻어 작성했습니다.

2018-05-02 09: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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