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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대상 "린호아의 그믐달"③]

"너희는 그럼 미국의 용병으로 온 것이냐?""그건 아니다. 우리가 받는 월급은 병사 50달러 내외이고 장교인 내가 중위로 150 달러 정도 받는다. 이것이 용병의 대가라면 너무 싸게 팔려온 거 아닌가.""그건 너희 국가에서 더 돈을 받고 실제론 40%만 주는 걸로 들었다. 호주 군대는 미군과 같은 300달러 정도 받는다는 걸 알고 있다.""상관없다 따로 더 받는 건 우리도 가난한 나라니까 정부가 따로 챙겨 좋은 곳에, 경제개발이나 우리 국방에 쓸지 모르겠다.""너 같은 애국자가 이 나라엔 별로 없는 게 유감이다. 남 베트남 정부 얘기다. 허울 좋은 민주공화국인지 미국의 원조 덕인지 오래전부터 남쪽은 썩었다. 정부 고위직이나 하위 공무원까지 모두 부정을 일삼고 부패 비리에 혈안이다. 무정부 같은 체제에 도둑질이 만연되어 있고." "어느 정도는 맞는 말 같다.""너희 한국군은 이 나라 역사를 아는가?""어느 정도는 교육을 받았다.""지금 우리 북쪽 월맹은 체제가 다른 공산권이지만 이 나라 역사를 비춰 볼 때 오랜 시간 큰 나라 중국의 지배를 1920년까지 받았다. 그 당시는 중국이 청나라였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며 이름도 중국 본토의 월나라 남쪽 지역이라는 호칭으로 월남이라고 불렸다.역사와 전통이 그리고 문화와 의식이 거의 중국화 되어었다. 지금도 그 문화와 풍습이 그리고 글자까지 많이 남아 있다. 그 뒤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전쟁 시엔 일본의 군화발이 전 국토를 짓밟아 놓았다.긴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는 프랑스가 다시 이 나라를 교대로 차지하고 지배해서 그때부터 지루한 독립전쟁, 내전으로 전 국토는 빈곤과 피로 물들었다. 계속 식민지로 만들어 모든 이권을 가지며 갈취해가기 바쁜 그런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은 또 그들에게 시달리며 핍박과 고난 속에 살았다.이어서 중국 공산당의 물결이 이 나라에도 새롭게 들어오게 되면서, 그 이념을 부르짖고 의식을 차리자고 호찌민 주석이 투사로 나섰다. 그러면서 이 땅에 공산당이 결성되고 혁명적인 거국 독립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거의 프랑스를 몰아낼 때쯤 파리 평화 회담이 열리고 큰 나라들의 농간으로 신은 우리편이 아니었는지 이번엔 휴전선이 남북으로 갈라졌다.그러면서 이 땅에 무슨 자원이 많이 있어서인지 놓치기 싫은 어여쁜 애첩이라도 있다는 건지 다시 미국이 개입해 북쪽은 멀리 한 채 남쪽 정부를 도웁네 하며 간섭을 하면서 지금의 이 지루한 싸움이 있게 된 것을 당신들도 알아야 한다.우리는 이제 이 나라의 완전통일과 독립을 원한다. 그동안 우린 너무 고통 속에 살아왔다. 그러니 너희는 아무 이해가 없는 이 나라에 와서 남쪽을 돕고 미국을 도와 싸우면 안 되는 것이다."이 말은 꼬딴의 언니 꾸엉판이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한 말이었다.이런 소리를 서 중위는 비록 적군이지만 이 나라 본토인으로부터 들으니 상황이 달라서인지 그 말이 맞는 말 같이도 들린다. 이 나라가 우리 한반도 역사와 비슷한 면도 있는 것을 느끼며 동병상련의 마음도 가지게 된다.그러면서 서 중위는 작전에 출정해 적군이 보이면 무조건 죽이고 무기를 회수하고 전과만 올리면 최선을 다하는 군대이고 또 개인적으로 자신만 살아서 돌아가면 모든 게 선이고 영광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전에도 가끔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 있고 이데올로기는 또 무엇이며 이 전쟁의 명분은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회의도 들곤 했었다. 모든 전쟁이 국가적 대의를 위해 병사들은 소모품처럼 취급되고 의무이고 명령이라 끌려가 싸우다 죽는 것이 무슨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는지 묻게도 된다.서 중위는 국가의 부름으로 군인이 되어 본분인 명령을 따르고 충성을 하는 것이지만 이 월남이라는 곳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 내 나라 내 형제를 지키기 위해 작전을 하는것도 아니지 않는가.남의 나라에 와서 전우들이 하나 둘 죽는 걸 보면서 과연 이것이 의무이고 숙명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인생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정말 젊음을 다한다는 것은 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이곳 인민의 숙원이자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는 그들을 죽이고 작전을 방해하는 행위도 우리가 정말 잘 하는 짓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비록 그들의 체제가 공산권이라고 해도 우리가 여기 와서 우리 체제와 반한다고 명령이라고 무조건 죽이고 때려부수고 해서는 과연 옳은 일인지 점점 회의가 들었다.좁은 나무 침대 물통 하나가 전부인 움막에서 서 중위는 언제 이송이 될지 자신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답답한 시간만 가고 있었다. 어느덧 2주가 지나고 있다. 또 한 번의 포로 심문이 있던 그 다음날 그 장교 이름이 꾸엉판인데 조용히 서 중위를 불러 부대장은 모르는 자기 생각이니 이곳을 탈출해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거다.자기들 사정이 좋지를 않아 그대로 풀어 주는 건 문책이 있을 것 같고 허술한 경비를 만들어 줄 테니 탈출해 돌아가서 부대 귀대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한다. 깜짝 놀랄만한 제안에 서 중위는 꾸엉판의 손을 얼떨결에 잡으니 얼른 빼면서 오늘 저녁에 감행하란다.아마 경비병이 총은 쏠 것이다. 크게 막지는 않을 것이며 여기 지도도 줄 테니 30분 가면 큰 도로 19번 도로가 나온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잘 돌아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간다. 이 무슨 말인가? 풀어주겠다니 얼떨떨해진다. 한밤중 거의 자정 무렵 꾸엉판이 다시 와서 이제 가야 된다고 후문 쪽을 가리키며 일어나란다.운전병도 곧 나올 것이라며, 그리곤 꼬딴이 자기 친동생이 맞는다고 잘 가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동안 자기 여동생으로부터 남쪽의 정보를 많이 습득하며 지낸 것도 같다. 꼬딴이 서 중위에 대해 살려주라도 했는지 어떤 얘기라도 있었는지는 추측해 보지만 잘 모를 일이고 속단할 수 없었다.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 밀림이 그나마 은폐가 되어 무사할 수 있을지 염려도 됐지만 그런 것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다. 박 상병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중위와 합류하면서 이제 탈출하는 거라고 귀띔을 하며 뛰기 시작할 때 어디서 웅성거리며 경비병인 듯 소리가 들린다.그래도 멈추지 말고 그대로 뛰라는 꾸엉판의 지시를 생각하며 죽기 살기로 뛰는데 뒤에서 고함소리 소총 소리가 따다 당 탕탕 쏴 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뛰었는데 몸에 총알이 박히는 것 같았다. 박상병도 몇 발 맞는 것 같다. 뛰다가 쓰러진다. 박 상병! 일어나! 악을 썼지만 못 일어나겠단다.얼마 뒤따라오는 인기척은 없어 보여 박 상병 몸을 들쳐 없고 걸어 보려고 들쳐 안으니 그대로 축 늘어져 무겁기 짝이 없다. 엎드려 통곡하려는데 자신의 몸도 피가 엉기고 흐르는 것이 보인다. 거의 기다시피 도로를 나오니 멀리서 자동차 불빛인 듯 가까이 오는 것이 보인다. 손을 흔들고 쓰러졌고 깨어보니 이동 병원이었다.병실에서 누워만 있으니 소총중대 일이 엊그제 같이 또 떠 오른다. 탈출 때의 악몽은 거의 매일 겪기도 했었다.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치열한 전투를 하다 부대 내의 소대장 한 명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소대장 교체가 이번에는 내 차례라고 학수고대하던 소대장들은 "야 이 새끼 죽긴 왜 죽냐?"하고 비통해 하며 원망도 섞였었다.물론 전우의 죽음도 애석했지만 자신의 소대장 자리를 교체하기 위해 한국에서 오고 있는 소대장 요원이 우선 교체 순번이 된 자기보다는 결번된 소대에 먼저 배치가 되어야 했다. 때문에 소대장을 면할 기회를 한 번 놓치고 나면 전투를 한 번씩 더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7월23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4회가 게재됩니다)

2019-07-15 18:00:00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②

이렇게 다국적 군인만 드나드는 사무실에 여직원은 분위기 메이커도 되고 지역 사정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서 꼬딴은 업무에 아주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월남인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 몸이 말랐고 성격은 온순한 편이다. 그러나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되면 여간 화를 내는 게 아니다.당연한 자존감이 있는 민족인데 많이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참을성도 있고 눈치는 아주 빠르다. 꼬딴은 이제 18살, 다 큰 나이지만 체격이 워낙 약해 보이고 표정이 어두워 잘 농담하기가 쉽지 않다. 어린 여동생 같기도 해 부대 병참 중대에서 음식재료인 A 레이션, B 레이션 등을 얻어다 차에 실어 자주 갖다 줬다.처음엔 사양을 하더니 받아놓고는 열대과일을 들고 와서 나눠주고 서 중위한테는 특별히 망고와 용과 같은 좀 귀한 걸 가려 주곤 해서 정이 들었다. 이성 간이 아닌 오누이의 정이랄까 그 집 아버지가 전투에 일찍 사망해서 안 계시단다. 엄마 혼자 4남매를 키웠다고 집안 얘기를 듣기도 해 딱하기도 해서였고 군내 거주민들 사정 같은 것도 가끔 얘기해 줘 친해지기도 했다.서 중위는 월남 도착 후 5개월 반 동안은 전투 중대 소대장을 했다. 그 당시엔 배 타고 일단 월남 도착하면 병과에 관계없이 소총부대로 가서 전투 경험을 갖게 했다. 4개월 16일 동안 작전에 참가하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 중대원들과 정이 들만하니까 헤어지게 된 것이다.월남 실정을 몸에 익히고 나면 자신의 병과대로 차출이 되어 원래 병과 분야에서 사단이나 연대 내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보직이 변경된 채 1,2년을 다른 직책으로 기간을 채우고 귀국하기도 한다. 운이 없거나 탁월한 전투 능력이 보이면 그 중대에 말뚝이 되기도 하는데 서 중위는 4개월 만에 연대로 돌아와 민사과에 배치되어 대민 업무를 보게 되었다. 월남어 교육도 사단에서 3개월 마치고 군청에 정보장교로 자주 나가게 되면서 미군과 월남 군 요원들과 같이 근무를 한지는 또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그러던 중 연대장 지시로 3대대에 민원이 발생해 사건 조사차 출장을 갔다가 오는 도로상에서 납치가 된 것이다. 좀 늦은 시각인데 군 짚차에 운전병과 둘이 타고 19번 도로를 거슬러 부대로 귀대 중 깔딱 고개 오르막 중턱쯤에서 난데없이 민간인 차림의 서너 명이 도로를 막고 도와 달라는 시늉을 해서 차를 세웠다.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차에서 내리진 않고 상황 판단을 하는데 난데없이 숲속에서 대 여섯 명이 소총을 겨누며 나타나 총을 몇 발 쏘아대며 내리란다. 원래는 짚차에도 호위병 두 명이 좌우 경계를 하며 운행을 해야 하는데 가끔 다니던 길이라 방심을 한 거다. 운전병과 둘이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이없어 하며 안 내릴 수 없었다. 서 중위 계급장을 보더니 인솔자인 듯 보이는 사내가 뭐라고 지시를 하는 것 같았다.우리를 무장해제 시킨 후 손을 묶고 차에 다시 타게 한 후 그들 중 한 명이 운전을 하고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작은 짚차에 7명이 탄 채 어디론가 도로를 이탈하여 한참 가더니 내리란다. 거기서부터는 우리 두 사람 눈을 천으로 가리게 한 후 또 한참을 걷게 한다. 한참 만에 어느 곳에 도착해 건물로 데려갔다.그때까지 눈은 가리 운 채다. 이곳이 이 지역 VC들의 임시 근거지인 곳으로 알게 됐다. 하늘이 잘 안 보이는 울창한 정글 속에 나무와 갈대로 지은 듯한 전통가옥 건물이 서너 채로 그리 많은 병력이 주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중에 한곳으로 데려간다. 덩그러니 나무 침대와 궤짝 같은 게 하나인 숙소 같다.두 사람을 같이 들어가게 한 후 엉성한 나무 침대에서 그날은 지새게 했다. 다음날 군복을 입은 나이 든 사람과 여군 장교인 듯한 사람이 들어온다."소속과 직책 이름을 대라?""백마부대 연대 민사과 중위 서 대규다.""언제부터 전투에, 아니 이곳에 왔는가?""71년 3월 18일 날 캄란 베이에 내렸고 쭉 연대 민사과에 있다.""월남 말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디서 배웠나?""잘 하는 건 아니고 사단 내 월남어 교육대에서 3개월 교육받았다.""우리가 누구인 줄은 아는가?""모른다. 월맹 정규군인가?""그렇다. 월남 인민 해방군 사령부 직할 부대다. 난 이곳 지역 부대 부 사령관이다. 포로인 너희는 조만간 본부로 이송될 것이며 앞으로 많이 협조하면 살려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오래 구금되어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 잘 판단하고 처신하기 바란다. "첫날은 이렇게 부사령관의 문초로 끝이 났고 다음 날부터는 여군 장교가 심문을 했다. 너희 군은 우리 양민과 군에 많은 피해와 손실을 안겨 왔다. 부대 규모와 병력을 물었고 계획된 작전 시기를 물었지만 아는 대로 적당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아는 것이라곤 연대나 군단 규모 작전이 장소와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기밀사항이라 잘 알 수가 없었고 분야가 다른 대민 사업 쪽이라 이해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나중엔 이들도 이해를 했는지 그렇게 험하게 다루진 않았다. 그래도 신분이 장교라 아무리 신빙이라도 포로 몸 가치가 있는 모양인지 본부 명령에 따라 이송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서 중위의 운전병이자 당번병인 박 상병은 다른 방에서 비슷한 심문과 대우를 받은 것 같았다.한낮의 태양이 화염방사기 불꽃처럼 뜨겁다. 저녁이면 달빛이 수풀 사이로 내려앉아 고향 생각에 멍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이 두 사람에게 닥쳐올지 침울한 나날이 그냥 지나갔다.이때쯤 지역 신문과 연대 및 사단에서 한국군 두 사람이 납치되어 포로가 됐다고, 큰 뉴스가 되고 있었다. 연대에선 즉각 구출 작전 및 협상이 기획되고 있고, 린호아 군청에서도 실종 지역 인근 부대 참모진들이 연대에 들어가 작전을 세우고 군청 연락 사무실은 목격자 및 탐문수사로 비상이 내려져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다.2, 3일이 더 지났는데도, 모든 걸 포기하고 어디로 끌려가려니 생각만 하고 있는데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리곤 여자 장교가 나타나 나를 다시 심문하려는지 단둘이 앉게 되었다. 이제 보니 그 여군은 복장도 단정하고 몸매도 좋고 좀 합리적인 데도 있어 보이는 사람같다.포로면서도 남자라 그런지 그런 상황에서도 그런 게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군청 사무실 꼬딴과 얼굴 생김새도 비슷해 농담처럼 혹시 린호아성의 꼬딴과 형제는 아닌지 서 중위는 한번 물어본다."​린호아 성 군청에 꼬딴이라고 있는데 혹시 아는지?" 물었더니 눈을 크게 뜨고 얼굴 색깔이 좀 변하는 걸 볼 수 있었다.모른다고 딱 잡아 땐다. 그 직원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서 중위는 직감을 발휘하여 꼬딴이 언니가 있다면서 자신을 소개해 준다고 했었다고 말을 하니 그냥 피식 웃는다. 그러면서 그런 얘기는 더 이상 않고 지금 이 지역이 한국군 월남 군이 합동작전으로 당신을 찾고 있으며 우리 사정으론 본부로 당신 둘을 보내야 하는데 교통 편과 호송 인원이 마땅치 않아 고심 중에 있다는 걸 얘기하곤 나가 버린다.며칠 전에도 포로 심문을 받았다. 별로 영양가 없는 답변만 하고 있는 걸 아는지 큰 기대도 안 하는 것 같다."주로 하는 임무는?" "대민 사업과 민사 정보 관계 통역 일이다.""너희 군은 왜 이곳에 와서 우리의 통일 임무를 방해하고 있는가?""그것은 우리 대통령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다. 우린 단지 국가의 부름과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전투를 할 뿐이다."(7월16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 '린호아의 그믐달' 3회가 게재됩니다)

2019-07-08 18:00:00

이정환 시조시인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시는 의미와 이미지에 기대어 쓰지만 시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표현에서 맛 볼 수 있는 말맛이다. 이번 시니어문학상 공모작품에서는 대체적으로 말을 끌고 가는 말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향상되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가 젊고 세련되어 오랜 기간 시를 매만진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투고한 작품 편편이 심혈을 기울인 듯했다.당선작은 동봉한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안정감을 주는 작품을 선정했다. 선정된 분들의 시는 다양한 인생의 연륜이 축척되어서인지 인생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었으며 진솔하게 시로 풀어내어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베들레햄별꽃', '그네', '사과와 벌레의 함수관계', '북항', '비의 집', '스쿠터가 돌아오는 저녁', '끝을 만지다', '범종', '골목의 생존 방식', '어머니의 숟가락'으로 10편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범종'에서 "귓전에 맴도는 소리 한 웅큼 잡아 맛을 본다"는 표현이 돋보였고, '북항'에서 "파도 울음 사이로 꼬리만 남은 겨울이 서표처럼 꽂힌다"와 "저 폐선은 바다의 아픈 손가락이다"라거나, '골목의 생존 방식'에서 "골목은 구멍들을 이어주는 숨길이고 구멍은 숨을 저장하는 숨통이다"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말 하지 못한 다른 작품들도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삶의 진정성이 베여있었다.노년의 시 쓰기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고,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 라는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한 점을 획득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시는 마음의 눈을 뜨게도 하면서 마음을 아프게 찌르기도 해 나를 돌아보며, 삶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기에 적극 글쓰기를 권장하는 측면에서 시니어 문학상이 더욱 발전하길 바라며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시 읽기가 즐거운 심사였다.심사위원= 이정환(시조시인)·박지영(시인)

2019-07-05 01:30:00

장호병 수필가

[2019년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심사평

100세 시대라 말하면 희망사항이라 웃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100세 삶을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100세가 뭐냐, 120세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것만이 축복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건강하게 의미 있게 보람 있는 삶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이제 시니어는 이 사회의 주류다. 고령화 시대 운운하지만 그만큼 이 시대의 주체세력 중심세력도 시니어들임을 말함이다.매일신문이 선도적으로 시니어문학상을 제정하여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금년에도 참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놀라운 것은 한 편이 아니라 5편에서 10편씩의 작품을 응모했다는 것이다.작품들도 수준작이었다. 그것은 곧 시니어들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의 뒷전에서 비생산적인 부류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주체적 삶을 살면서 사회와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 했던 저력으로 이젠 자신을 위한 알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해서 녹녹치 않았던 삶을 이겨낸 힘과 지혜와 자랑스러움이 글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삶의 문학 아니 문학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이번 당선작 10편을 뽑기 위해 작품을 읽고 또 읽었다. 살아온 삶의 날들이 얼마나 질곡이 많은 시대였던가. 그 시대의 주인공들, 그리고 이만한 오늘이 있게 한 역전의 용사들 고백이요 흔적들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고 귀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러나 문학상이다. 겨루어야만 한다. 어떻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는가가 궁극적 결과물로 나와야 한다. 진솔한 이야기면서 문학적인 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들이 수준작이었다.최종 당선작이 된 조순환씨의 '용산방죽' 강문희씨의 '오래된 편지' 주영순씨의 '무량수전에서' 장기성씨의 '코뚜레' 성보경씨의 '모란을 그리다' 조이섭씨의 '나미비아의 풍뎅이' 윤진모씨의 '나의 로망' 김태호씨의 '틈' 민병숙씨의 '초원의 빛' 김현숙씨의 '반딧불이 한의원'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등 외로 밀려 안타까웠다.문학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 감동을 어떻게 불러일으키느냐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이의 능력이다. 해서 문장력(표현력)과 구성에 주제의 의미화와 형상화는 문학으로의 수필이게 되게 하는 힘이다. 사건의 열거나 겪었던 일의 사실 기록만인 응모작도 많았다. 내 글을 읽고 공감 내지 감동을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 이야기면서 읽는 이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작품으로 수상하신 수상자에겐 큰 축하를 보내며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에겐 내년에 꼭 더 좋은 작품으로 도전해 주길 바란다.심사위원=장호병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최원현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2019-07-05 01:30:00

박희섭 소설가

[2019 매일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심사평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지난 세월을 회고할 때면 내 인생을 글로 쓰면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는 말을 종종 덧붙이곤 한다. 맞는 말이다. 반세기 넘는 유장한 세월의 질곡을 헤쳐 온 삶의 여정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해 낼 수 있으랴. 더욱이 그 어느 나라와도 달리 비교할 바가 없을 정도로 격동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변혁을 몸소 겪어낸 우리 한국의 시니어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백인백색이란 말에서 보듯 우리네 인생사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운 양태도 달리 없다. 이처럼 다사다난하고 신산한 세상살이를 글로 표현해내는 작업은 전문작가에게 있어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평소 글을 잘 쓰지 않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할 터이다.이러한 어렵고 힘든 작업을 거친 끝에 응모된 원고들은 하나같이 세상살이가 빚어내는 온갖 곡절 많은 사연들을 세상의 난장(亂場)처럼 보여주고 있다.가족사적인 기록을 담은 글이나 유소년기의 서정적인 기억들을 소중하게 풀어놓은 추억담이 있는가 하면 사업가로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좌충우돌 성공담이나 공직에서 일생을 봉직한 공무원의 일대기도 있다. 또한 노인의 투병기와 노동자의 경험담도 있었고 교사로서의 어려움과 자긍심을 연대기적으로 토로한 내용도 보였다. 역시나 동족상잔인 6.25전쟁과 좌우 이념에 희생당한 가족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이런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남편과 처제 사이의 불륜을 그린 '미망'은 사건 자체의 충격보다, 피해자로서의 정신적 고통과 비탄의 슬픔을 흔히 매몰되기 쉬운 자기애적 연민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잘 풀어낸 수작이다. 욕정에 빠진 남편의 일탈로 인한 한 여인의 마음에 뿌려진 고뇌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아울러 불행과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마음의 지옥을 만들어 가는지를 가혹하리만치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아울러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 월남전의 전투경험담을 기록한 '린호아의 그믐달'은 당시 파병장교로서의 기억을 간결하고 진솔하게 드러낸, 전쟁의 상흔과 아픔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수상자분들께 진심어린 축하를 드린다.심사위원=김주영(소설가)·구활(수필가)·박희섭(소설가)

2019-07-05 01:30:00

이성상 대상 당선인

[2019 매일시니어 문학상] 대상 당선소감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아픔을 재조명해보고 탐구해 보는 일일 것입니다. 문창과를 나오지 않고도 문학적 글을 잘 쓰는 분들을 보고 용기 내 글공부를 시작한 지 한 6년 됐습니다. 부족한 글을 당선시켜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이번에 뽑아 주신 '린호아의 그믐달'은 월남 참전 경험을 글로 옮겨 본 것입니다. 종전 2년 전 있었던 참전 실화이지요. 지금도 월남 중부의 지역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네요. 그 당시 그곳에서 우리는 습도가 많아 찜통같이 더워도 철모를 쓰고 방탄복을 걸치고 헬기에 올라 작전을 했고 때론 정글을 누비며 VC들을 만나면 총을 쏴 댔고 죽이고 그들 무기와 소지품을 전리품으로 부대로 가져오기도 했지요. 그들과 맞닥뜨려 총질하다 우리도 부상을 입기도 하고 죽은 병사도 있어 슬픔과 두려움과 울분을 삼키기도 하면서 보낸 참전기입니다.서 중위는 그 후 필리핀 클락 기지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고 귀국을 하고 대위 진급 후 전역을 했고요. 군청 근무하던 꼬딴은 그 후 언니 때문에 어떤 피해나 곤란을 겪지는 안 했는지 궁금한데 시집도 잘 갔는지 잘 살고 있으면 그녀도 환갑은 됐을 것 같고요. 종전이 되어 백마 사단이 주둔해 있던 남국의 작은 군청 소재지였던 그곳 린호아 지역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지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도 못가 보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전 위성 하이테크 대표이사베트남 전 참전 용사

2019-07-05 01:30:00

1971년 5월 베트남 혼슈산 계곡에서 작전 중인 필자(왼쪽)

[2019 매일시니어 문학상] 대상 당선작 - 논픽션 '린호아의 그믐달'

뿌연 연기가 혼바산 중턱에서 피어오른다. '꽈 꽝' 소리도 났었지만 사위가 조용하다. 966포대의 포격 연습 같기도 하지만 혹시나 또 붙었나 해서 이내 상체를 일으켜 봤지만 작전 상황은 아니란다. 한낮의 열기를 식힌 해변의 초저녁 바람은 시원함을 더 하는 것 같아 서 중위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다시 침대에 눕는다.금세 날은 저물어 서쪽 하늘엔 벌써 초승달이 떠 있다. 밤하늘엔 축포가 터진 듯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비가 멈춘 밤, 야간 매복을 할 때는 달이 없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그래도 한밤중 전쟁터에서 보는 달은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푸근하게 만들 수가 없었다.​ 서 중위는 지금 야전병원에 있다. 포로가 됐었고 탈출 중에 VC로부터 공격을 받아 동료는 죽고 자신도 2발이나 관통상으로 쓰러졌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게 기적 같다. 하마터면 죽을 목숨이었는데 그래도 다행인지 어깨와 다리에 총상이 급소를 피했다. 긴급 헬기로 후송되어 총알 제거 수술과 치료 후 입원치료 중이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월남 중동부 캄란베이에 있는 미 공군 병원으로 전투 중 발생한 외상 부상병들을 집중 치료하는 곳이다. 현재 2주째다. 피습 당시 피를 너무 흘려 의료진들이 많이 우려했다는데 긴급 수술받고 다행인지 이틀 만에 깨어났단다. 깨어나 두리번거리며 처음 눈에 들어온 풍광은 거의 비슷한 총상으로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미군 병사 둘과 월남 군 한 명이 보였었다. 그중에는 한 쪽 다리를 절단한 병사도 있고 한쪽 팔 한쪽 다리를 붕대로만 감은 채 목발로 움직이는 병사도 있다. 그들은 후송을 갈 거라고 했다.창밖으로는 가까이 남중국해가 푸르게 햇빛에 반짝이며 거대한 푸른 평원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병원은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고 몇 척은 부두에 정박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선박 주변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크레인은 하역작업이 한창이다. 부두마다 군수품인 듯 야적물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말로만 듣던 미군 기지 최대 병참부대가 있는 곳으로 모든 보급품들이 더 북쪽에 있는 다낭과 이곳에서 내륙 기지로 출하된다고 했다. 주변 도로 위도 덩달아 바쁘다. 한국군 십자성 부대 트럭들도 장갑차의 칸보이 속에 1번 도로 위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아직도 악몽 속의 그날이 뚜렷이 기억나지만 생각하기가 싫어 눈을 감는다. 미군 간호장교가 서 중위 옆으로 와 "어떠냐?"라고 깨운다. 다리 통증이 여전하다고 답을 한다. 그랬더니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며 "유 워 럭키!"란다. 총알이 조금만 아래나 옆으로 갔더라면 당신은 이곳에 못 올 뻔했고 얼굴도 멀쩡하고 다른데도 손상은 없으니 너의 여자 친구는 매우 고마워할 것 같단다. 위로랍시고 한 마디 던지고는 웃으며 다른 환자 들 쪽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긴다.이 미군 간호장교, 나이도 들어 보이는데 주근깨가 좀 있긴 해도 상당한 미인이다. 조금 살이 찌긴 했지만 자칭 '마라린 먼로'라며 항상 유쾌한 표정이다. 그녀의 그윽한 푸른 눈과 영산홍 같은 입술은 혈기 팔팔한 청년부상병들을 늘 설레게 했고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다.서 중위는 백인 여자를 코앞에서 보는 건 익숙하진 않지만 왠지 축복 같고 통증도 잠시 멈추는 듯 감사한 마음이다. 병사들에게 이 간호장교는 생김새로 웃음도 주고 다정하기까지 해 병원 생활에 더 안정감도 주면서 회복에 큰 일조를 한다. 내일이 없어 보이는 전장의 병사에게 그 시절, 여자는 위로였고 어머니였고 희망이 되기도 했다.나른한 오후의 군청 청사 안은 언제나 많은 지역민 군인 공무원들이 찾아 붐비는 시장처럼 시끄럽다. 한 미 월 연락 정교들은 오늘도 몇 군데 자리를 지키고 있고 무전기와 전화도 계속 시끄럽다. 타이피스트 꼬딴은 왁자지껄한 소음에도 언제나 신경 안 쓰는 듯 보고서 타이핑에 열중이다. 닌호아성 성장인 군수는 중령 계급장을 단 군인으로 이곳의 수장이다. 월남인 치고는 체격이 좀 큰 40대의 군수는 언제 봐도 표정이 환하고 사는 게 즐거운 듯 느긋해 보인다. 배가 드물게 복어처럼 나왔고 사복 차림에 옷맵시가 늘 깔끔하다. 주변에서 늘 말을 들어서인지 이 사람도 흔한 부정 축재자 타입 같다.5월의 이곳 날씨는 이제 우기를 끝내고 서서히 건기 철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정오의 햇빛은 벌써 섭씨 30 도는 넘어가는 듯 군복 상의가 실내에서 땀으로 젖기 시작한다. 미군 위컴 중위도 웃통을 벌써 벗어던졌다. 그는 늘 대마초를 피워대고 있어서 실내 공기가 늘 짚 풀 태우는 냄새 같은 역한 향을 만들고 있다. 씩 웃으며 오늘도 가느다랗게 담배처럼 만 대마초 한 대를 서 중위에게 권하지만 전에 한번 입에 댔다 그냥 그 냄새가 싫어 거절한다. 대신 말보로 한 대를 꺼내 피운다. 그러면 꼬탄은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출입문도 반쯤 열려 있다.여직원 꼬딴은 우리나라 여중생 정도나 될까 가냘픈 몸매에 아오자이를 입고 있을 때가 많고 잘 웃지도 않고 늘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 중인 어수선한 나라 늘 시끄러운 청사 내 분위기, 늘 죽고 다치고 멀리 포탄 터지는 소리, 소총 소리 그리고 장갑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리는 이 나라, 무슨 해피한 일이 있어서 표정을 밝게 하고 있겠는지 당연할지 모른다. 야간 통금이 해제되는 아침 6시나 되어야 민간인들은 군청이 있는 도심에서 외각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 8시면 다시 시내로 내려와 마련해 놓은 좁은 숙소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또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해야 하는 실정에 다들 지쳐 있는 듯했다.베트남 중부 냐짱 위에 위치한 린호아 성 지역은 오래전부터 인구도 많고 산악과 들판이 적당히 혼재한 지역이라 치안이 불안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야간에 자주 출몰하는 VC들의 습격으로부터 주민 보호 차원에서 만든 방침이라고 했다. " 꼬딴?""예스, 루테넌 서. 저 불렀어요? " "그래, 이 서류작성 좀 부탁해. 급한 거야." "네, 1 시간쯤 걸려요." "그래, 조금 더 빨리 좀 해 보고...." "꼬딴은 어디 사냐? " "위쪽 쑤안트에 살아요." "언니도 같이 사냐?" "언니는 사이공에 있다 지금은 나트랑에 있어요." "학교는 마쳤냐?" "예, 그리고 나트랑에서 애들 가르쳐요." "그래, 언니가 몇 살? " "왜 자꾸 언니 나이를 물어요?" "언니가 예쁘드만. 꼬딴보다 키도 크고 나이도 더 먹어서 데이트라도 한번 해 보려고. 하하하." "언니 애인 있어요." "거짓말 말고. 소개 좀 해봐?" "언니 외국 남자 싫어해요." "왜 그래 다 동양 사람인데. 저기 미국산 고릴라보단 훨씬 인간적이잖아." "저 친구는 대마초만 피어 대서 꼬딴이 아주 싫어하는 거 내가 알지. 하하." "그래도 부자 나라 사람이라 좋아할 수 있지만 냄새는 좀 심하네요." "그래 나도 이 친구 '누린내'는 좋아할 수가 없어. 하하하" "서 중위님 이거 언제 찍어요? 계속 말 시키면...." "아, 미안 미안, 부탁해!" "조금만 기다리세요.."

2019-07-05 01:30:00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문학적 기교가 아니라 진솔한 삶의 이야기 우선

제5회 매일시니어문학상이 지난 달 7일 응모작 접수를 마감한 결과 3개 부문에 모두 1천642편이 접수됐다. 부문별로는 논픽션 37편, 시(시조 포함) 787편, 수필 818편이었다. 논픽션과 수필 부문은 지난해 보다 많이 늘어났으며, 시 부문은 지난해(1천 7편)보다 많이 줄었다.매일신문은 예심과 본심을 거쳐 대상 1편(논픽션)을 비롯해 각 부문별로 논픽션 부문 12편, 시 10편, 수필 10편의 당선작을 선정했다. (당선작 및 당선인 2면) 각 부문별 심사위원들은 "시니어문학상 제정 취지에 걸맞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회한이 묻어 있는 작품이 많았다" 며 "성인을 위한 문학교실이 대중화되면서 시니어 문학상의 문학적 완성도가 초창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고 소감을 발표했다.심사위원들은 그러나 "문학은 기교가 아니라 사람살이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매일시니어문학상은 우리나라 선배 세대들의 삶을 기억하고, 이를 후배 세대에 전함으로써 세대간 공감을 이룩하고, 선배세대들의 신산한 삶과 성취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한 것인만큼 앞으로도 진솔한 삶의 이야기로 응모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시상식은 7월 23일(화) 오전 11시 대구은행본점(대구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310) 강당에서 열린다.

2019-07-01 15:36:32

일러스트 전숙경 (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논픽션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②/김길영

◆대공표지판을 메다50년 9월 7일. 새벽 5시, 보현산 쪽으로 북진한다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내가 맡은 임무는 대공표지판을 메고 맨 앞에 전진하는 것이었다. 대공표지판이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 크기의 두 장의 천이다. 한 장은 흰색이고 또 한 장은 붉은 색 천을 똘똘 말아서 매고 다녔다. 통신병과 함께 중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임무로 아군 비행기가 공습할 때 재빨리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작업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게을리 하면 자칫 아군에게 인명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아군의 최전방 공습을 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나의 임무가 부대 맨 앞에 서는 위치라서 적에게 집중포화를 맞을 수도 있지만, 총검을 들고 싸우는 전투병 못지않게 내가 맡은 임무 또한 작전수행에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처음으로 격전을 치른 곳은 보현산 줄기의 작은 봉우리였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고, 가파른 비탈에서 격전이 벌어지다보니 쌍방 간 부상병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인민군 병사 몇 명은 나무 둥치를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퇴각하는 인민군 잔병들도 부상병들을 돌보지 못하고 달아나기 바빴다. 저들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전우애를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석양녘에 고지를 탈환하고 산 정상에서 점호를 해본 결과 중대병력이 소대 병력으로 줄어 있었다. 나는 고향 친구이자 경주중학생이던 박준영을 만났다. 둘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 형제가 이렇게 반갑겠나 싶었다. 같이 징집되어 같은 부대, 같은 소대에 편성된 전우들 중에 박준영을 포함한 몇 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중대병력이 소대병력으로중대장과 소대장이 전사하고 이등상사가 중대장 임무를 대행했다. 첫날 전투에서 많은 병력이 희생되었다. 조그만 봉우리 하나를 탈환하는데 엄청난 병력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이렇게 병력 손실을 입으면서 백두산, 압록강까지 전진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낮에 점령한 고지를 사수해야 했기 때문에 최정상을 기준으로 사방 4-50미터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2인 1조로 야간보초를 섰다. 암호도 하달 받았다. 생면부지 병사와 한 조가 되어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부대에 소속되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전우애 때문일 것이다. 참호 속에서 전우의 나이와 고향, 가족사까지 일일이 묻고 물어 모든 것을 알고 나선 마음이 놓였다.◆보현산 전투영천 보현산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며칠 동안 보현산을 샅샅이 뒤져 인민군 잔당을 소탕한 후에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진지를 구축하고 정밀수색 중에 능선 아래 골짜기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총상을 입은 인민군 소좌 한 명과 사병 두 명이 발견 되었다. 소좌는 포로로 후송처리하고, 사병 두 명을 심문했더니 포천, 원주가 고향인 중학교 상급생이었다. 그들은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단기 훈련을 받고 전투에 참가한 학생들이었다. 두 사병은 포로로 처리하지 않고 부대에서 우리 병력처럼 데리고 다니다가 북진할 때 원주에서 귀가시켰다.50년 9월 11일. 우리 8사단과 3사단의 연합작전으로 인민군 15사단 보병연대를 청송일대에서 섬멸했다. 아군은 단번에 15킬로미터를 북진했다. 이때가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기 며칠 전의 전황이었다.50년 9월 17일. 영천전투에서 기선을 잡은 8사단은 의성을 거쳐 안동 강변에서 야영을 했다. 그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달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고향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입대 며칠 전 결혼한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몽달귀신을 면해주려고 부모님이 부랴부랴 맺어준 인연이었다.야영을 마친 16연대는 영주. 풍기. 죽령까지 북진하여 인민군 주력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작전을 폈다. 8사단 3개 연대는 도송산 죽령-소백산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구축했다. 우리 16연대는 단양. 21연대는 예천지역에 각각 배치되었다.50년 9월 19일. 밤에는 인민군 1개 사단 규모와 맞닥뜨렸다. 작전이 시작되자 치열한 공방전이 이틀이나 계속 되었다. 완강하게 버티던 적과 싸웠으나 우리의 인명 피해는 미미했다. 이때 생포된 인민군병사들만도 몇 백 명쯤 되었다.◆생포된 인민군안동에서 제천으로 그리고 원주로 가평으로 숨 가쁘게 북진하는 동안 큰 전투는 없었다. 적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쫓고 쫓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서울성동중학교에 도착한 8사단 전 병력은 4일간 재정비검열을 받았다. 내가 군에 입대 후 처음으로 소고기 맛을 보았고 술을 마셔봤다.50년 9월 28일. 부대검열이 끝나고 작전수송차량에 승차 했다. 중부전선 동두천을 경유 철원에 입성하면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철원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약간 경사진 길이었다. 길 양편으로 띄엄띄엄 경주 봉황대 같은 봉우리마다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영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환영인파가 도열하듯 계속 늘어났다. 우리 부대는 의기양양하게 환영인파에 손 흔들어 답하면서 걸어 들어갔다.◆철원평야 대 혈전철원시가지 곳곳에는 방공호가 있었다. 상황이 급한 인민군 부대는 민간복장으로 갈아입고 위장하면서 우리를 환영하는 척했던 것이다. 철원시가지를 경유하면서 진격명령이 내려져 마침내 대 혈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마땅히 은폐할 곳이 없었다. 대평원에서 논두렁이나 밭고랑에 몸을 숨겼지만,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져 피아간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었다. 3대대장이 철원시내 작전 도중 도로에 매설된 지뢰 폭발로 전사하자 부대 병사들은 적개심에 불타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적군도 만만치 않게 대응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나와 함께 논두렁을 타고 공격하던 허경행 전우가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었다.우리 부대는 전방 고지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많은 포로를 잡았다. 생포한 포로 중에는 적군의 사단군악대원 25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병사들은 모두 북한지역 중학생이었다.

2018-11-19 13:03:10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소감]노병의 증언/김길영

나에게도 상복이 돌아왔다.논픽션부문과 시 부문까지 겹상을 받고 보니 여기저기 자랑하고픈 생각이 앞선다. 나이 들어서 상을 받는 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기쁘기도 하다. 글쓰기 도반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에게까지도 알리고 말았다. 칭찬이라는 게 어른 아이 막론하고 좋은 것이다.나는 늦깎이 문학도다. 지난 9년 동안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글 동냥하듯 시와 수필을 배웠다. 그것도 부족하여 지금 나는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 상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글쓰기 결과물을 얻은 것 같아 기쁘고 감개가 무량하다.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이 벌써 4회째를 맞는다. 대한민국 시니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니어문학상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층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거나 6.25전후 세대들이다. 우리들은 광복을 맞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와 5.16, 12.12 같은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끌어올린 세대들이다. 이제 매일신문사에서 큰 판을 벌여 놓았다. 굽은 허리를 쭉 펴고 희미해진 정신을 가다듬어 실컷 즐겨볼 일만 남았다.나는 오늘 이 상에 만족하지 않겠다. 늦깎이로 시작한 글쓰기인 만큼 다음에도 다른 장르에 또 도전하여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알찬 열매를 거두고 싶다.이 기쁨을 시와 수필을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과 수필사랑문학회, 텃밭시인학교, 푸른시창작원, 경희미디어문예창작과 교수님과 학우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나누고자 한다.대한민국시니어들에게 문학상을 제정해 주신 매일신문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018-11-12 11:52:34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노병의 증언/김길영

이 글은 예비역 하사 이규락의 6.25전쟁 참전기(參戰記)이다. 필자에게 수차례 들려준 이야기를 종합하여 「노병의 증언」이란 제목을 붙이고 글을 완성해서 그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연락이 끊겼다. 6.25전쟁 발발 65년 만에 '판문점선언'으로 종전이 눈앞에 온듯하다.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이 시점에 알리고 싶다.◆군 입대내가 군에 입대한 것은 경주공업중학교 3학년 때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중앙학련회 간부들이 내려와 학련회 중심으로 학도병 입영을 독려했다. 나는 학급장이었고 그 땐 학생들도 좌우로 갈라져 갈등을 빚을 때였다. 내가 학도병을 지원하지 않고 징집명령에 따라 입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앞서 학도병으로 입영한 경주지역 학생들이 안강전투에 참전하여 참패를 당했다. 군인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시상황이 워낙 다급한 나머지 사격연습 몇 번 시켜서 안강전투에 투입시켰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한 학도병들이 안강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50년 8월 28일. 나는 할머니를 비롯한 부모형제, 그리고 신혼의 아내와 헤어져 집결지인 경주향교로 갔다. 경주향교강당에는 경주중학생과 경주공업중학생, 경주문화중학생 등,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얼핏 보면 학도병들의 출정식 같았다. 이때 징집에 응해서 작별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사지로 가는 마지막 인사나 다름없었다. 그러기에 보내는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 모두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만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주먹밥 한 덩이씩 받아먹고 트럭에 분승하여 대구로 갔다. 초행길인 대구는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서 마치 전쟁터로 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결지가 대구남산초등학교였다. 대부분 학생들이었는데, 모인 숫자가 수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점호를 마친 후에 분산 배치되었다. 경주에서 징집되어 온 우리들은 동인로터리 부근에 있는 제사공장(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다구라'제사공장)에 수용되었다. 그곳이 임시 훈련소였다. 군대 조직을 편성하고 내무반도 배치 받았다. 교복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군인이 다된 기분이었다. 내무반에서 내무규율이나 근무요령 등 기초교육만 받고 밤 10시경 소등과 동시에 취침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닥쳐올 일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기 때문이다.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느 전선에 배치될 것인지 두려움뿐이었다. 안강전투에서 맥없이 죽어간 학도병들처럼 나도 어느 산천에 묻힐지 모르는 불안감이 잠을 설치게 했다. 앞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선배들의 많은 희생을 본 터라 내가 적군과 대치상황에서 총을 겨눠 적을 사살하고 내 목숨을 지켜낼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생각보다 밤은 길었다.◆영천전투50년 8월 29일. 아침 5시에 나는 기상나팔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긴장상태에서 살아보지 않은 나는 흥분이 되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를 보냈다. 그 다음 날은 왼 종일 제식훈련만 받았다. 9월 1일이 되어서야 봉덕동에 있던 국방군 6연대 사격장에서 M1소총과 실탄을 지급 받고 3일 동안 사격훈련을 받았다.50년 9월 4일. 한 밤중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부대는 대구역에서 기차를 탔다. 밤중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기차선로를 확인해보았다. 복선이 아닌 걸로 봐서 경주방향으로 간다고 지레짐작했다. 하양역에서 내려 어느 과수원창고에서 하룻밤을 세우고 아침밥을 먹었다.50년 9월 5일. 하양에서 금호 소재지를 지나 일본군이 경비행기 저장방카로 사용하던 격납고에 분산 배치되었다. 하루 종일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틀간 꼼짝하지 않고 대기하면서 출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 너머 영천 쪽에서는 포탄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요란했다. 비가 오는 밤하늘엔 전폭기가 떠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50년 9월 6일 새벽. 8사단 16연대는 영천시가지 탈환작전에 돌입했다. 시가지는 모두 피난을 떠난 뒤여서 인기척 없이 주인 잃은 개들만 총소리에 놀라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우리는 첫 전투로 소규모의 적을 만나 접전 끝에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내 곳곳에 인민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부상자들은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저항하던 인민군 잔병들은 보현산 방향으로 물러갔다. 영천 시내를 탈환한 여세를 몰아 고경초등학교 뒷산에 집결해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2018-11-12 11:52:09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씨름 혹은 싸움-정경용

딸을 툭! 툭! 건드렸다. "하지마!" 귀찮아 하던 딸이 곧 일어나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엎어놓고 팔을 비틀고 다리를 꺾고 어깨와 등을 흠씬 패고 나서 씩씩거리며 보일듯 말 듯한 웃음을 보였다. 한바탕 장난질이 끝나고 나서 나는 딸을 꼭 껴안았다.미용실을 경영하는 바쁜 시간 속에서 초등학교 4학년의 아들과 새로 입학한 딸의 표정에 나는 민감하게 대처를 하였다.밖에서 싸움을 한 날이나 고민이 있어 보이는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장만하였다.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햄이나 계란말이 또는 고기 반찬을 지지고 볶았다. 굳었던 표정이 밝아졌다. 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물어보면 줄줄 풀어 놓았다.오늘은 딸이 지능이 모자라는 저능아 짝꿍에 대하여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짝꿍이 화장실을 갈적마다 같이 갔어요. 이쪽인데 자꾸 저쪽으로 갔어요.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말도 못 알아듣는 것인지, 그래도 다른 때는 손잡고 가면 잘 따라왔는데 오늘은 그만 옷에다 똥을 쌌어요"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딸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짝꿍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짝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해보겠다고 하면서 볼에다 뽀뽀를 해주었다. 짝꿍을 보살피려면 참 힘들겠지만 나보다 약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공부보다 더 중요하다고 위로해주었다.미용실 손님에 치이고 살림에 부대끼다보니 몸이 많이 지쳤다. 사지가 쑤시고 붓고 저렸다. 만만한 게 딸이었다. 초등하교 입학하기 전에는 허리나 등을 밟아 달라고 부탁하면 잘 해주었다. 딸은 점점 싫증과 부담을 느꼈고, 어느새 훌쩍 자라서 밟히는 나도 아팠다. 딸에게 밟히는 시원한 통증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딸과 장난을 치다가 딸의 주먹질이 시원했다. 그 후 시원함을 느끼는 쾌감도 있었지만 바쁜 틈새의 오붓한 시간을 함께 하는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는 자주 장난을 하였다.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아들과 딸의 숙제를 들여다보고 나서 점포에 딸린 단칸방에 잠자리를 펴는데 딸이 갑자기 달려들어 나를 쓰러트렸다. 허우적거리는 동선을 그리며 이불 위에다 몸을 눕혔다. 나를 엎어놓고 등에 올라탔다. 팔을 뒤로 꺾어서 등에다 붙이고 자근자근 주물렀다. 주먹으로 어깨를 퉁퉁 치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리를 꺾고 양 다리를 엑스 자로 어긋맞춰 지긋이 눌렀다."엄마! 시원해? 내가 엄마 안마해주려고 목욕관리사 아줌마가 손님에게 하는 것 찬찬히 봤어요. 엄마가 아프면 나에게 장난거는 것 다 알아요"딸이 엎드려 내 귀에 속삭였다. 속내를 들키고 말았다. 울도 담도 없는 난달 가게에서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였다. 손님에게 매달려 매일 방치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돌며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툭하면 저보다 큰 애들하고 싸움을 하는 통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어느날은 맞고 들어와서 훌쩍거렸다."울긴 왜 울고 다녀? 억울하면 때린 애 집에 가서 울어야지 가서 더 맞던지, 사과를 받던지, 네 선에서 해결하라구. 생각 좀 해봐 손님네 애들하고 싸움이나 하고 어떻게 장사를 하겠어"그렇게 막무가내인 줄만 알았는데 엄마를 읽을 줄 았았다.

2018-10-22 11:17:38

신송우 씨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신송우 '이름 짓기'

◆내가 선택하는 행복한 삶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당선 소식을 접했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던 터라 지하철 바퀴 구르는 소리보다 더 가슴에서 쿵쾅 소리가 나는 듯 했다.중학교 때였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내 기행문이 교내 방송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문학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누구나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문학도의 꿈을 접고 현실에 충실해야만 하였다.퇴직을 앞두고 고향 가는 길에 동생이 "형님! 퇴직하면 무엇 하며 지내시렵니까?" 그동안 학교 일에 전념하며 지내던 터라 "이제 좀 쉬어야지" 통상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 고민이 시작되었다.이 세상을 등질 때까지 행복한 삶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용기 내어 늦깎이로 문학에 발을 들여놓았다.문학아카데미 개강식 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부분 나보다는 젊은 사람들이라 놀라며 머뭇거리다 겨우 용기를 내어 뒷자리에 앉았다.문학 분야에 초보인 나는 그들에게 뒤질세라 강의 내용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문학에서 나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지금까지 안전한 레일 위에서 앞만 보고 달려온 지하철과 같은 삶이었다면, 이제는 버스를 타고 부대끼며 전후, 좌우,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쉬지 않고 나아가리라.끝으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를 아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8-10-08 10:39:45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이름짓기

며느리가 임신하였다는 기쁜 소식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빙판길에서 넘어지면서 한 차례 실패가 있고 난 뒤라 너무 서두른다고 나무랐다. 내심으로는 손자를 얻는다는 반가움에 좋은 이름을 지어보려고 궁리를 하였다. 본관의 같은 항렬자에 부르기 쉽고 적기 쉬운 것으로 짓기로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름을 지으려고 노력하였다.오래전 N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한울'이라고 응모를 한 결과 그 이름이 채택되어 현판식을 했다. 그때 특정 종교 신자로부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중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산악회를 조직하고 이름을 지었다. 학교가 자리한 곳이 높은 산이기도 했고 높은 산을 오른다는 뜻으로 고산회(高山會)라고 지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둘레길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정도이니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 되고 말았다.학교 관리자가 되고 운동장 동편에 다목적 건물을 지었다. 개관을 앞두고 이름을 공모하였다. 고심 끝에 제출한 '미래관'이 채택되었다. 그곳을 가끔 지나가다 현판을 보며 학생들이 저마다 미래의 꿈을 갖고, 가꾸어 간다고 여기니 가슴이 뿌듯하였다.퇴직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파크골프를 배웠다. 클럽에 가입하고 첫 모임을 했다. 임원에 선정되지 않았으나 클럽을 상징하는 이름을 '한마음'이라고 정하였다. 골프 회동 시 가끔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우리 클럽 이름이 뭐냐고 들먹이면 이내 수그러들기도 한다.내 이름에는 항렬자 외에 소나무 송자가 들어간다. 백부님께서 나무 목(木)에 귀족의 작위를 일컫는 공(公)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지었단다. 한학을 공부한 대구의 K 교육장은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란다. 그때마다 백부님에게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제대로 듣거나 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아쉬움이 있다.어릴 때 동네 여자 이름 끝 자가 대부분 숙, 순, 옥, 자였다. 그네들이 시집을 가더니 고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는 '보람' '아라'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반 출석부를 작성하다 깜짝 놀랐다. 이름이 '아라'인데 하필이면 성이 박씨가 아닌가. 그가 어른이 되었을 때 놀림감이 될까 염려가 되었다. 학생 어머니와 의논하여 개명 절차를 밟아 주었다. 그 학생의 어머니가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조아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아들 이름을 족보의 항렬자에 맞게 지었다. 가운데 한 글자만 짓다 보니 쉽사리 해결되었다. 딸 이름 짓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부르기 쉽고 쓰기 쉬운 이름으로 지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의 일이다. 딸은 자기 반에 같은 이름이 셋이나 있다며 몇 날을 뽀로통했다. 시집을 가서 딸이 태어나자 직접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다.출산 예정일이 다가오자, 아들은 연일 독촉을 하였다. 지금까지 여러 이름을 짓는데 자부심을 가졌다. 막상 내 손자 이름을 짓는 일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평소에 본인의 사주와 맞는 이름에 복을 더하기 위하여 짓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너희 부부가 의논하여 짓든지 아니면 철학관을 방문하여 상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아들은 할아버지가 지어야 한다며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출산일은 수도꼭지 틀어 놓은 양동이에 물이 차오르듯 다가오는데 그럴듯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 중에는 이름을 이태나 늦게 지어 두 살이나 적은 이도 있었다. 이름을 짓겠다고 서점에 가서 작명에 관한 책을 모두 샀다. 산책을 하나하나 정독을 해봐도 기준이 제각각이었다. 읽은 책 내용의 공통점을 나 나름대로 정리하였다.먼저 본관에 돌림자가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고심 끝에 선대에 훌륭하신 분의 이름으로 내정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문했다. 모두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디어 손자의 이름을 '신채호'라고 지었다.아들과 며느리를 집으로 불러 앉혔다.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면서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훌륭하게 키우라고 당부하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마주 보더니 이내 얼굴이 보름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무거운 등짐을 내려놓았다. 손자가 자라서 반드시 이름값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신송우

2018-10-08 10:39:24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지심도 동백/류재홍

수필 – 류재홍 '지심도 동백' - 당선소감수필 밭에 이름을 올린 지 내년이면 십 년입니다. 돌이켜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해 놓은 게 별로 없습니다. 작가다운 프로 근성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아예 손 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하게 매달리지도 못했으니까요. 몸이 따라주지 못한 점도 있겠지만, 타성에 젖어버린 마음 탓이 더 크리라 봅니다.마냥 주저앉고 싶던 차에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좀 망설였습니다. 내 주제에 무슨, 자괴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때 책 한 권 내겠다며 덤벼들었던 '책 쓰기 포럼'의 열정이 떠올랐고, 다시금 그 맛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정신력을 끌어올릴 무언가가 절실했다고 봐야 더 옳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며칠을 글과 씨름했습니다.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수필다운 글에 매진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보렵니다. 내 안의 틀을 깨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이 꿈이 한낱 욕심으로 끝나더라도 너그럽게 봐 주십사 미리 부탁드립니다.내 글의 근간이 되어준 가족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뭉친 여세주 교수님을 비롯한 수요반 문우들께 이 공을 돌립니다. 늘 아껴주시는 달구벌수필 선생님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니어 문학상'을 제정한 매일신문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2018-10-02 05:00:00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지심도 동백/류재홍

지심도 동백류재홍 불현듯 눈을 떴습니다. 시계가 네 시를 막 지나고 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 깜깜합니다. 창문을 열려다 밀려오는 바람에 놀라 얼른 닫고 맙니다. 봄이라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양팔을 벌려가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어떤 이는 글쓰기로 새벽을 밀어내고 누구는 독서로 하루를 연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몸부터 풀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돌아오지 않아서 어르고 달래가며 쓸 수밖에 없습니다.부부 동반으로 지심도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낮부터 따뜻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남편이 봄옷을 꺼냅니다.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지만, 모른 체했습니다. 일찌감치 세탁해서 넣어둔 겨울옷을 꺼내기도 싫었거니와, 추운 것보다 더운 걸 더 못 견디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집을 나서자마자 어깨를 웅크립니다.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 안을 아무리 훈훈하게 해 놓아도 자꾸만 웅숭그립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는 쉼 없이 달려 거가대교 휴게소에 다다랐습니다. 모두 전망대로 올라간 틈을 타 휴게소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본 남편이 반색하며 입어봅니다. 시중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가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지심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하늘에서 본 섬 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서 지심도라 한다는데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이름인 동백섬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도 동백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섬은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모두 봄바람에 신명이 나 있습니다. 우리도 콧노래를 부르며 둘레 길을 올랐습니다.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니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작년 이맘때 보았던 사량도 동백이 생각납니다. 사량도에는 온갖 종류의 봄꽃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을 지나다 무엇에 끌린 듯 멈춰 섰습니다. 나무도 땅도 온통 검붉게 물들어 있는 게 묘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수많은 동백꽃이 한데 어우러져 아우라를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렸거나 누웠거나 한결같은 색이었는데,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해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이곳에서도 그런 동백꽃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꽃을 볼 수도 있을 거야. 여기는 말 그대로 동백섬이 아닌가. 마음은 벌써 부풀어 오른 풍선입니다. 둘레길 초입에 조그만 카페가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이 있어 나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한 무리의 붉은 꽃이 하트 모양으로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카페주인이 손님을 끌려고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아무려면 이것뿐일까. 인위적인 것에 코웃음 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군데군데 동백꽃은 피어있었습니다. 땅에는 더 많은 꽃이 서로를 껴안고 누워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붉은빛도 분홍도 아닌 희멀건 색은 내 마음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비수처럼 꽂히는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망했습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끝물이라 그런가, 꽃이 왜 이래." 지나가는 사람들도 투덜거렸습니다. 맛도 멋도 잃어버려 휘적휘적 걷기만 했습니다.한 바퀴 빙 돌아 다시 하트 모양의 동백꽃 앞에 섰습니다. 아직도 선홍색 그대로 환합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지막하고 여린 아기 동백이 몇 개의 꽃을 달고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제야 떠올랐습니다. 지심도 동백은 수백 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라고 말한 것을. 이곳은 원래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 오래된 나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늙을 대로 늙은 몸에서 청춘의 힘을 맛보려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새삼 지나온 산을 뒤돌아봅니다. 장대한 거목들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꽃은 그저 꽃일 뿐인데 미우니 고우니 하며 호들갑 떨게 무어냐며 일갈하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거나 선명하거나 다 같은 동백꽃이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2018-10-02 05:00:00

김철순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동네 솔밭을 들어서는데 당선소식을 받았다. 풋풋한 솔향이 묻어 싱그럽고 흡족한 마음이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힘을 생기게 한다. 부단한 노력은 아니지만 꾸준히 즐긴 덕분이라 믿고 싶다.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허전해졌다, 일상이 되어버린 친구 같은 존재다. 수필을 알고 지내면서 사색을 자주 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느낌이나 감정,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은 내 감흥을 일으키고 설레게 한다. 그것들이 나를 인내하게 하고 지탱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잘 익은 삶에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듯이 내게도 그런 성찰이 기다려진다.

2018-09-10 11:52:40

[시니어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 ]매화 향기를 배다/김철순

매화 향기를 배다 베개를 밴다. 수면에 좋다고 해서 만든 매실베개다. 딱딱하면서도 안정된 촉감이 목 언저리에 전해온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다글다글 구르는 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약간 거북했지만 길들이니 이제 솜을 채운 베개보다 편안하다. 고향 집 마당에는 매화나무가 있었다. 십여 년 자란 나무는 함박눈에도 혹독한 추위에도 끄떡없었다. 겨울 삭풍에 서 있는 매화나무는 움츠려 있지만은 않았다. 한 해 동안 꽃 피우고 열매 맺느라 굽어지고 상처 난 가지는 햇살을 모아 추스르고 다독였다. 연명할 만큼의 물만 빨아올리며 삼동을 건너온 매화나무는 눈보라 속에서 향기를 머금으면 그 자태가 선연했다. 꽃샘바람까지 이겨내고 꽃이 만발하면 마당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매화나무는 철철이 색다른 풍경을 그렸다. 꽃 진자리에 매실이 열렸다. 매실은 이가 시리도록 상큼하고 붉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매실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고 갈증이 가셨다. 잘 익은 매실은 살구 맛이 났다. 하지가 되면 어머니는 매실을 따서 항아리에 넣었다. 상큼한 향기는 집안에 며칠 동안 머물렀다. 매실청은 배앓이 상비약으로 보관했다. 더부룩한 속을 달래주는 속청이었다. 매실청으로 차를 만들었다. 여름날은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끈하게 몸을 다스렸다. 양념으로 나물 무침과 조림요리에 엿물 대신 넣으면 향긋한 맛이 났다. 백일 동안 숙성된 매실 향은 매화 향보다 진했다. 나이든 매화나무는 곡선이 부드럽다. 이른 봄 묵은 가지에 매화 한두 송이 툭툭 터지면 고요한 선율이 흐른다. 꽃이 지면 그 자리가 허전해질까 봐 새순이 금방 돋아 어느새 무성해진다. 꽃이 피어 열매 맺기까지 매화나무의 절정기를 지나면서 휘어지고 부드러워져 그 모양새도 낮게 갖추어진다. 산고를 거친 여인의 완숙한 매력이듯. 매실 속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한여름 번개와 천둥의 놀람이 새겨지고. 나무에 둥지를 튼 참새의 지저귐과 곤줄박이의 울음도 들어있다. 매실 알알이 겨울의 인내와 봄의 정취와 여름의 번성도 들어있으리라. 씨앗 한 알을 들여다보면 점점이 박힌 숨구멍이 있다. 바람, 이슬, 눈, 비, 까지 마신 흔적이다. 단단한 껍데기로 싸고 있는 씨앗은 겹겹이 주름이 잡힌 입을 꽉 오므리고 있다. 그 속에는 생명 하나가 잉태되어 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세상을 푸르고 생기롭게 한다. 매실을 모아 베개를 만든다. 육즙을 우려낸 말캉해진 매실은 푹 삶아내어 대소쿠리에 박박 문질러 육질을 벗겨낸다. 그러고는 여름 볕에 널어 이리저리 굴린다. 바싹 말린 씨앗은 눈부시도록 뽀얗게 또록또록해진다. 씨앗의 뾰족한 침은 무딘 칼로 다듬으면 동글동글하게 얌전해진다. 씨앗을 베개 속통에 넣으면 매실베개가 된다. 매실베개를 흔들면 딸각거리는 소리가 정겹다. 꿈같은 신혼, 원앙금침 속에는 신랑과 내가 머리를 뉘이고도 남을 구봉침 베개가 들어있었다. 양 베갯모에는 암수 봉황 한 쌍과 새끼 일곱 마리가 명주실로 수 놓였다. 부귀와 다복 그리고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문양이었다. 그 기억의 집합이 내 가슴속에 진한 매화 향기로 남아있다. 친정어머니는 신랑과 다투더라도 잠은 꼭 한 베개를 배고 자라고 당부했다. 서로 생각의 높이를 같이하라는 깊은 마음이었으리라. 중매로 만나 낯가림도 있었지만 한 베개에 머리를 뉘이며 정이 들었다. 불같은 남편과 물 같은 나는 베갯머리에서 밀고 당기며 서로를 맞추어갔다. 어머니는 베개를 꿈을 꾸는 자리라고 함부로 밟거나 던지지도 말라고 했다. 살면서 늘 꿈을 꾸었다. 매화나무가 이름다이 꽃을 피우듯 예술을 향한 소망들이 자꾸만 돋아났다. 그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줄기였기에 잘 가꾸고 싶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 앞에서 자꾸만 시들어갔다. 삶이 나아지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지천명 고개를 훌쩍 넘고 있었다. 틈틈이 글공부를 했다. 못다 읽은 책을 읽으며 감성을 가다듬었다. 펜을 들고 써내려갔다. 서툴지만 한 줄기 두 줄기 써내려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열매도 맺었다. 자랑거리는 아니라도 가슴에 영근 알맹이들이 지금은 밀알이 되어 또 다른 발아를 꿈꾼다. 다음 해에 싹 틔울 매실 씨앗처럼. 어언 수많은 계절을 순환했다. 따뜻한 봄날인가 하면 어느새 폭염의 여름이고 서늘한 가을인가 하면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 숱한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향기롭게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로 성장했을까. 가끔 고향 집에 들러 매화나무를 볼 때마다 내 삶의 향기를 생각한다. 잘 익은 삶에는 발효된 희로애락이 들어있다. 인내, 눈물, 슬픔, 외로움 같은 것들은 나를 단단하게 했고 그 안에는 물과 바람과 하늘과 내가 사는 세상의 모든 소리까지 들어있다. 매실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인생의 사계를 배는 기분이다.

2018-09-10 11:52:29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사과를 깎는 시간/당선소감

그간에 누군가 내게 시집을 건네 준 적이 있었던가, 시집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숨 가빴던 초등교원생활 어느 날, 정년퇴직 공문이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내 속을 꺼내 보이는 일, 얼굴 뜨겁다. 결코 쓰고 싶은 대로 써지지 않는다. 타고 난 시인처럼 수월하지 않다. 시도 배워서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간의 수상실적으로 바우처 혜택을 받아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한 학기 해보고, 지난 이태동안 학사편입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시집이나 시론, 철학과 미학에 관하여 읽었다. 여전히 시는 어렵고, 쓸수록 더 난해하다. 한창때 빛나는 젊은 시인들은 가히 아름답다. 기대 또한 무한하다. 나는 평생 주어진 일에만 매진했으나, 비로소 시를 쓸 여유, 세계를 바라다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처음 운전을 배워 올림대로를 달릴 때의 불안을 극복한 통쾌함처럼. 시를 쓰는 일 또한, 고통을 극복한 기쁨이다. 시 한 편의 환희는 오래간다. 그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내안에 있을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수많은 어릿광대 타자(他者)들을 환대할 것이다. 꼭 시詩가 아니어도, 시詩 이상으로 살아가는 분들은 더 많이 있다. 내가 쓴 시가 나 자신을 구원시키는 일은 물론, 누군가를 위로받게 하고 견디게 하는 살만하게 하는 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8-08-20 11:28:16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햇반의 온도/당선소감

문득, 여고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백일장에서 입상하고 가슴 설렜던 그때 그 시간이 먼 길 돌아 당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 왔습니다. 늦깎이로 시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갈등과 방황으로 몇 번이고 접을까도 생각 했지만, 어느덧 詩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이끌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뜻 있는 한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가족이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공부하며 힘이 된 문우들께도 고마움을 보냅니다. 길을 열어 주신 대구매일 신문사와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08-20 11: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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