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더 스파이'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지구에 핵이라는 재앙적 무기가 개발되었지만 그동안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렇지만 핵전쟁 발발 초읽기에 들어간 위험시기는 있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중 과도한 핵개발 경쟁의 시기였다.

'더 스파이'(The courier, 감독 도미닉 쿡)는 일촉즉발의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핵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킨 두 남자의 실화를 그린 첩보물이다. 고전적이며 정통적인 첩보영화의 스타일에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긴장과 감동을 주는 웰메이드 스릴러다.

소련 군사정보국 올레크 대령(메랍 니니트쩨)은 나날이 광포해지는 당 서기장 후르시초프가 불안하기만 하다. 언제 핵전쟁을 일으킬지 모를 충동적인 인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올레크는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를 핵전쟁을 막기 위해 소련의 핵개발에 대한 실상을 서방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영국의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동유럽을 무대로 서구의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다. 어느 날 영국 상무국 직원과 미국 여성이 그에게 접근한다. 소련에 가서 물건을 받아오는 운반책(courier)을 맡아달라 부탁한다. 이들이 영국의 대외정보국 MI6와 미국 CIA 요원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는 이 일을 거절한다. 단순하고 위험하지 않으며, 조국을 위한 일이라는 거듭된 부탁에 마음이 흔들려 일단 모스크바로 가기로 한다. 이렇게 이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더 스파이'는 미소 냉전시절 첩보전에 뛰어든 영국 사업가가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첩보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브리지 오브 스파이'(2015년 작)가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 교환 작전에 투입된 변호사의 실화를 그려 감동을 준 것처럼 '더 스파이'는 오직 가족을 위해 세일즈를 하던 사업가가 스파이 세계의 한복판에 떨어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중심이 된다. 그것은 바로 소련의 쿠바 핵미사일 배치다.

이때 미국은 소련의 핵무기 개발을 과소평가했다. 그레빌의 '심부름 일'이 아니었으면 알아채기도 어려웠다. 올레크의 정보를 CIA를 통해 보고 받고 위성의 방향을 바꾸어 쿠바를 정밀 촬영한다. 그리고 미사일 기지를 밝혀내고 존 F. 케네디 대통령까지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영화는 이런 세기적 사건과 함께 당시 첩보전의 첨예한 긴장감을 잘 그려내 주고 있다. 영국대사관 내에도 도청장치가 설치되고, 첩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KGB의 계략 등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긴장한 그레빌이 기내 화장실에 들어가 토하는 장면 등 여느 스파이 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설정들도 눈에 띈다. 첩보의 문외한이 첩보전 한가운데 투입되다 보니 그 긴장감이 관객에게 더욱 강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영화는 두 주인공의 '브로맨스'(남성간의 깊은 우정) 감성도 잘 키워나간다. 형식상 올레크는 서방의 대외협력자를 포섭한다는 명목으로 그레빌을 만난다. 둘의 사업적 만남이 이어지면서 올레크는 영국 그레빌의 집으로 와서 그의 가족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그것은 그레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둘의 신뢰는 더욱 깊어가고, 둘의 안위까지 챙길 정도로 성숙해간다. 올레크는 자신을 알렉스라 불러달라고 한다.

한 번도 발레를 본적이 없는 그레빌을 볼쇼이 공연에 초대해 함께 관람하는 장면은 둘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무대에는 소련의 자부심이었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공연되고 있다. 왕자와 악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조 오데트가 올레크의 처지와 비슷해 비극미를 더해준다.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영화 '더 스파이'의 한 장면

올레크는 소련으로 보면 배신자다. 조국의 일급 기밀자료를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에 넘겨준 반역자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인류를 핵전쟁의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정보가 서방과 소련 핵경쟁의 균형을 맞춰 지구의 평화를 유지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소련과 서방의 첩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당연히 정보가 샌 것을 소련 정부는 알아차리고 KGB의 감시망도 좁혀진다. 그렇지만 둘의 신념을 위한 선택은 멈추지 않는다.

그레빌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뛰어난 연기가 극의 중심을 잡는다. 사익만 쫓던 장사꾼의 인류애적 변신을 관객이 충분히 설득될 수 있도록 사실적인 연기를 펼친다. 소련에 다녀온 후 바뀐 그를 바람이 난 것으로 오해하는 아내와의 갈등 속에서도 올레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후반에는 등뼈가 보일 정도로 감량하는 연기 투혼을 보이기도 한다.

실화의 힘은 역시 강하다. 엔드크레딧과 함께 당시 기록 사진들이 보이는데, 그들의 희생과 숭고한 신념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111분. 15세 이상 관람가. 28일 개봉.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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