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소울'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우리는 피투성이 존재다.

피투성(被投性). 던져진 존재, 내 뜻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삶의 무게는 더욱 무겁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행로는 가끔 절망을 안겨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원하지 않았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가능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삶의 고민도 생긴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감독 피트 닥터, 켐프 파워스)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이다. 통상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전하는 장르가 아닌가. 그러나 '소울'은 어른들에게 더 진한 감성을 자아내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뉴욕의 한 중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는 조(제이미 폭스)에게 두 가지 큰 행운이 찾아온다. 하나는 임시직이 아니라 연금과 보험이 보장되는 정규직 교사라는 제안. 하필 그가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찾아온다.

풍요한 삶과 배고픈 꿈의 갈등에서 조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선택한다. 기쁨에 겨워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맨홀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깨어보니 저 세상으로 가는 계단이다. 가장 행복한 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소울'의 한 장면

너무나 억울했던 조는 평생을 꿈꿔 왔던 무대를 포기할 수 없어 도망치다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이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꼬마 영혼들이 인간 수업을 받는 곳이다. 자신의 취향을 찾고, 성격도 만들어지는 수련원인 셈.

조는 이곳에서 꼬마 영혼들이 '지구 통행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가 된다.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나길 거부하는 유급생 22(티나 페이)를 맡게 된다. 22는 테레사 수녀조차 멘토가 되기를 포기한 문제아. 조는 22가 '지구 통행증'을 받으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2에게 필요한 마지막 열정 한 조각을 찾아 주기 위해 애를 쓴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생전 세계도 있지 않을까?'

영화 '소울'의 출발점이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도 왜 성격이 다른 자녀가 태어날까. 생전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까.

픽사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은 전통적 애니메이션의 틀을 벗어난다. 전작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에서 보여준 피트 닥터 감독의 놀랍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다. 어린 딸의 좌충우돌 감정변화를 보고 '인사이드 아웃'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처럼 '소울'도 딸의 성격이 왜 다를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생전 세계가 태어났다.

'업'이 삶의 의미를 아름답게 그렸다면, '인사이드 아웃'은 감정의 탄생과 소멸을 형상화한 애니메이션이다. 동화 같은 단순한 환상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의 근원적 물음까지 접근한 성찰적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소울'도 생각할 지점을 많이 배치해 풍성한 느낌을 준다.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처럼 가을바람에 날아온 단풍나무 씨앗은 삶에 대한 애착과 자연과 인생, 생명 등 삼라만상의 법칙을 전해주는 듯하다.

먹다 남긴 피자와 빵 조각, 아빠의 양복과 엄마의 실타래 등 대사 없이 사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은유와 상징도 곳곳에 담겨 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조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내가 가진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게 한다.

'소울'은 픽사 애니메이션 최초로 흑인이 주인공이다. 또한 대부분의 캐릭터가 흑인이고 흑인 문화인 소울 음악이 제목을 통해 연상되기도 한다. 뉴욕 지하철에서 기타를 치며 구걸하는 기타리스트도 흑인 청년이다.

중구난방인 아이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 첫 장면부터 흑인 여성 뮤지션 도로시아(안젤라 바셋)의 색소폰 선율이다. 이외에도 재즈 음악이 영화 전편에 흐른다.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화 '레이'(2004)에서 전설적인 음악가 레이 찰스 역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제이미 폭스가 조의 목소리 연기를 한다. 영화 속 조의 아버지 이름이 '레이'이기도 하다.

작화도 예전 만화적인 톤에서 벗어나 사실적이다. 실제 거리를 보는 듯하다. 뉴욕 거리 풍경에 대한 고증을 많이 한 결과. 대신 '태어나기 전 세상'은 '인사이드 아웃'처럼 파스텔 톤에 캐릭터들도 비슷해 친숙하게 다가온다. "내 바지 어딨어?"라는 한국어 대사도 나오고, '호호만두'라는 한국어 간판도 나온다.

'소울'은 여러모로 애니메이션의 전환점이 될 영화다. 어른들까지 감동시키는,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확장시킨 작품인 것이다. 1월 20일 개봉 예정. 107분. 전체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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