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씨름·농구…스포츠 예능의 화려한 변신

달라진 시청자의 눈, 스포츠 중계도 변신해야

최근 씨름,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때 '스포츠 예능은 망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기피되기도 했던 스포츠 예능.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씨름의 희열' 포스터. '씨름의 희열' 포스터.

◆명절스포츠 씨름의 변신…'씨름의 희열'

씨름은 명절스포츠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만큼 씨름이라는 종목이 그간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그나마 민속스포츠라는 점 때문에 명절에 하는 경기가 방송에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씨름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만 가지 기술을 가졌다는 이만기 같은 스타가 있었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모래판의 야생마 강호동같은 캐릭터가 확실한 선수진들이 있었던 시절 이야기다. 그 때는 씨름방송도 펄펄 날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무려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니까.

그랬던 씨름이 명절에나 가끔 방송되는 스포츠가 된 건 이만기,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나면서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스타들이 발굴되지 않았던 면도 있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늘 똑같은 씨름 중계방송의 구태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천하장사 만만세'로 트레이드 마크된 씨름 중계방송은 너무 민속의 분위기를 유지하느라 세련되지 못한 스포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씨름은 점점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씨름에 대한 관심은 의외의 지점에서 생겨났다. SNS와 달라진 팬덤이 그것이다. 씨름 선수들을 마치 아이돌처럼 바라보고 좋아하는 팬덤들이 SNS를 통해 생겨났던 것.

'씨름의 희열' 현장사진. '씨름의 희열' 현장사진.

KBS '씨름의 희열'은 바로 이 지점에 착안해 기획되었다. 과거 이만기 시절의 씨름 스타들이 주로 중량급에 있었다면 지금의 팬덤은 잘생긴 외모에 조각 몸매를 가진 경량급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감안해 태백장사, 금강장사 각각 8명씩을 선출해 모래판 위에 세웠다. 체중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슷하게 맞춘 후 서로 대결을 벌여 최종 승자를 뽑는 것. 이 모래판을 비추는 연출 방식도 오디션 방식을 취했다. 출연자가 그냥 나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토리를 엮어주고 불렀을 때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씨름 선수들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더해졌다.

경량급 경기의 특징인 순식간에 끝나는 경기를 포착하기 위해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이러자 씨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들은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하고 반색했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팬덤이 더 공고해졌다. 금강 트로이카 이승호, 모래판의 헤라클래스 윤필재, 열정 독기를 보여주는 최정만, 씨름 천재 임태혁 등. 캐릭터가 살아나니 경기도 더 쫀쫀해졌다. 방송이 지금의 세련됨을 더해주면서 씨름이라는 종목의 이미지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 더 이상 명절스포츠라는 말이 필요 없게 만든 씨름의 대변신이었다.

'핸섬타이거즈' 현장사진. '핸섬타이거즈' 현장사진.

◆'슬램덩크' 시절을 꿈꾸는 '핸섬 타이거즈'

"손은 거들 뿐." '슬램덩크'라는 만화가 큰 화제가 됐을 때 거의 유행어처럼 돌던 그 말이 최근 SBS '진짜 농구, 핸섬타이거즈(이하 핸섬타이거즈)'에 등장했다. 감독으로 출연하는 서장훈이 팀원인 차은우에게 슛 동작을 가르쳐주며 그렇게 말했던 것. '핸섬타이거즈'는 그 앞에 굳이 '진짜 농구'라고 이름붙인 것처럼 적당한 예능 스포츠 그 이상을 추구한다. 그것은 이 팀이 향후 대전을 선출을 제외한 전국 1·2위, 대학 1·2위, 직장 1·2위와 벌이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 이런 스포츠 예능이 처음 시작할 때는 오프닝을 하기 마련이지만, '핸섬타이거즈'는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시합을 보여준다. 어느 체육관에 모인 출연자들은 그래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 놀라고 갑자기 서장훈의 모교였던 중등농구 최강자 휘문중학교 선수들과 한 판 대결을 벌인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시작부터 휘문중학교 선수들이 던지는 3점 슛이 계속 들어가며 현저한 실력 차가 드러나지만 의외로 승부근성을 발휘하며 조금씩 따라붙는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강점이 소개된다.

'핸섬타이거즈' 현장사진. '핸섬타이거즈' 현장사진.

체력과 근성이 좋은 줄리엔 강은 골밑 센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모델 문수인은 현역 선수를 방불케 하는 골 결정력을 보여준다. 이상윤은 전체 게임의 흐름을 파악하며 전략을 짜고 키 작은 쇼리는 빠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든다. 든든한 골밑 슛을 보여주는 김승현과 승부욕과 순발력을 드러내는 차은우 등 핸섬타이거즈 선수들의 캐릭터가 경기 자체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지고 동시에 원 포인트로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예측하는 서장훈의 감독으로서의 면모도 소개된다.

첫 시범경기를 끝내고 이뤄지는 훈련은 강도 높게 이어진다.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 진짜 경기를 준비하는 팀의 모습 그대로다. '핸섬타이거즈'는 그래서 과거 '슬램덩크' 시절 허재와 서장훈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던 그 명장면들을 그려내고 싶어한다. 진짜 농구의 묘미를 스포츠 중계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담아내겠다는 것이다.

◆달라진 시청자의 눈, 스포츠 중계도 변신해야

스포츠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항상 뜨거운 소재였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축제가 열릴 때면 예능 프로그램들도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적인 스포츠 예능을 빼고 나면 사실 이 소재가 그리 성공적인 적은 그다지 없었다. 야구를 소재로 했던 KBS '천하무적 야구단'도 그랬고 다양한 스포츠에 뛰어들었던 '우리동네 예체능'도 그랬다. 그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는 스포츠 자체가 스포츠 예능보다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지진 않았다. 다만 씨름이나 농구처럼 점점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관심을 잃어가는 종목의 경우 그 종목을 재조명해주는 스포츠예능은 충분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MBC '무한도전'에서 봅슬레이나 조정 경기 같은 비인기종목을 조명했을 때 대중적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무한도전' 동계올림픽 특집 현장사진. '무한도전' 동계올림픽 특집 현장사진.

나아가 '씨름의 희열'이나 '핸섬타이거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우리네 스포츠 중계방송 자체가 너무 고전적인 틀에 묶여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너무 예능적으로 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스포츠를 더 즐길 수 있게 선수들을 캐릭터화해 보여주고 경기도 여러 카메라를 통해 찍혀진 다양한 영상들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분석해주는 것으로 더 몰입을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프로스포츠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한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여겨진다. 시청자들의 달라진 관전 포인트를 만족시켜주는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면 방송으로서도 스포츠로서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명절이나 특정 스포츠 축제에 잠깐 반짝하는 방송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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