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수 기자의 클래식 산책]<14>바흐는 왜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까

헨델(1685∼1759)은 '음악의 어머니', 바흐(1685∼1750) 앞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붙는다. 바흐가 어떤 업적을 남겼기에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붙은 걸까?

바흐가 활동했던 바로크(1600년경∼1750년) 시대에는 지금 서양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많은 특징적인 양식이 시작되고 발전했다. 바흐는 교회음악은 물론 유럽의 모든 새로운 조류를 흡수해 바르크 음악을 꽃피웠다. 현재 많이 연주되고 있는 음악은 바로크 음악에서 발전한(고전, 낭만주의 음악)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다.

바흐의 업적은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서 찾을 수 있다. 평균율은 음을 조율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음률을 평균해 실용적으로 간편하게 한 것'이다. 평균율 이전에는 '순정률'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순정률 음악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올림과 내림이 많은 조는 사용할 수 없었고, 음역이 맞지 않아 조를 옮기려 해도 쉽게 옮길 수가 없었다. 바흐는 1721년, 1741년 각각 2권의 평균율 곡집을 발표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접한 후 작곡의 기초를 다시 공부했다고 전해지며, 특히 쇼팽은 모든 곡을 외워서 칠 정도로 연습해 자신의 24개 '전주곡'을 바흐처럼 24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흐는 주옥 같은 오르간과 바이올린 작품을 많이 남겼다. 오르간 음악 하면 떠오르는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전곡 연주 자체가 큰 영광으로 여겨지는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건반악기를 위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 2권', 첼로를 위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관현악곡 편성에 큰 영향을 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관현악 모음곡' 등등. 바흐는 각 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독주곡과 합주곡을 작곡해 악기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다.

바흐는 또 교회음악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당시의 교회음악은 정치의 보수적 경향, 그리고 주요 작곡가들이 여흥음악 및 세속음악을 선호함에 따라 열악한 상태에 있었다. 바흐는 이러한 교회음악에 칸타타와 미사곡, 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바흐는 살아있을 때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망한 직후에도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나 기념물 하나 없었다. 바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한 이는 바로 멘델스존이었다. 그는 고전파, 낭만파 음악, 오페라 등 당대 음악을 연주하기에도 바빴던 시대에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치부되던 바흐의 작품을, 그것도 교회에서 연주되던 곡을 교회가 아닌 공연장에서 연주했다. 이후 바흐 협회가 결성되고 1900년엔 바흐 전집 악보가 발간되는 등 '바흐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바흐는 어느새 '음악의 아버지'로 추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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