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꽃과 운명/ 차벽 글·사진/ 착한책 희고희고 펴냄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가 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한껏 지력(地力)을 모아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이달 초 '봄의 화신'처럼 날아든 이 한 권의 책이 손에 잡혔다. 내용은 여말선초 목은 이색부터 조선말 문학가 홍명희에 이르기까지 '꽃을 사랑한 선비 100인, 꽃에게 운명을 묻다'이다.

이제껏 꽃은 심미적인 감상의 대상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들 100인의 선비들은 꽃을 '간화'(看花)가 아닌 '독화'(讀花)의 상대로 여겼다. 꽃에서 마음의 양식을 얻고 그 마음까지 뚫어 본 것이다. 꽃은 아름다운 망울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견뎌내야 한다. 이에 선비들은 그 점에 감동했고 그 지혜를 얻어냈으며 그 과정에서 삶의 깨달음을 견지할 수 있었다.

김시습은 분재나 화분, 정원에 심은 매화를 사랑하는 것은 진정 매화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연의 심술과 온갖 해충, 혹한을 이겨내고 받아들이며 피워낸 청초함과 향기가 매화 본연의 모습이며, 그것을 사랑한다고.

'깨끗한 흥취는 오래가기 힘들어/잠시 뒤에 아 이미 글러버렸다/국화의 참모습을 그리고 싶어도/그림 잘 그리는 이도 지금은 드물다/도연명이 가버린 지 이미 오래이니/나는 장차 누구에게 돌아갈고'(이색의 '새벽에 국화를 대하다' 중에서)

19세에 원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했고 귀국 후 벼슬살이와 유학보급에 앞장섰던 이색은 왕조 교체기 시대적 난맥상 속에서 이성계가 벼슬길에 나서길 종용했으나 이를 거절, 결국 69세에 죽임을 당했다. 뛰어난 인물이 시대를 잘 못 만나 그 뜻을 완성하지 못한 이색은 '일찍 핀 매화가 들국화처럼 간' 경우다. 이에 그는 매화와 국화를 통해 자신의 심정과 시대 흐름을 꽃에 빗대어 노래했다.

서리가 올 때까지 피는 국화, 눈보라 속에서 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봄 동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등은 옛 선비들이 삶을 돌아보고, 지조와 절개를 함께할 화우(花友)와 다름 아니었다.

652쪽, 2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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