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물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명석한 두뇌와 놀라울 정도의 체력과 집중력으로 도무지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범인을 잡아낸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이상의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런데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는 왜 지극히 평범한 형사를 내세웠을까.
◆'모범형사', 강도창이라는 형사의 정체
형사물의 주인공이라 하기엔 너무 평범하다. 아니 평범하다 못해 부족한 면들, 심지어 현실에 타협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JTBC 월화드라마 <모범형사>의 강도창(손현주)이 그 주인공이다. 같이 시작한 동기 우봉식(조희봉)이 빨리 승진해 인천 서부경찰서 강력2팀 팀장이 되었지만 그는 지금도 그 팀장의 지시를 받는 팀원이다. 어쩌다 나이는 40대 중반이지만 가정을 꾸리지도 못했고, 이혼해 자식까지 빼앗긴 상심에 술에 빠져 살아가는 여동생 강은희(백은혜)마저 건사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러니 그에게 코앞으로 다가온 승진 심사는 그만큼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침 그 때 5년 전 자신이 최종적으로 수사를 마무리해 사형 구형을 받은 이대철(조재윤)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대철이 진범이 아니라는 정황과 증거들이 나오면서 강도창은 갈등하게 된다. 심지어 강력2팀 팀원들에게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 자기 입장을 얘기하며 조용히 넘어가자고까지 하지만, 서장까지 나서 사건을 덮으려 하고 인천 부동산 거물 오종태(오정세)와 정한일보 사회부 유정석 부장(지승현) 그리고 문상범(손종학) 서장과 남국현 강력1팀장(양현민) 그리고 검찰까지 개입된 혐의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강도창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자신의 잘못된 수사 하나 때문에 무고한 피해자가 죽게 생긴 데다 그의 딸마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게 되면서 그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렵게 재심에 들어가지만 결과는 정해진 대로 사형 집행. 결국 이대철은 강도창에게 딸을 부탁하며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모범형사'가 그리는 강도창이라는 형사는 우리가 흔히 보던 형사물의 영웅들과는 사뭇 다르다.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다른 수사력을 갖춘 인물도 아니다. 대신 이 인물의 차별점은 적어도 창피한 줄은 알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에게 피해가 올 수도 있는 길을 걸어간다는 점 정도다. 어째서 '모범형사'는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걸까.
◆영웅이 아닌 모범을 택한 '모범형사'
이 드라마의 제목에 들어가 있는 '모범'이라는 단어는 어딘지 형사물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거기에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담겨져 있다. '모범'이라는 지칭이 끄집어내는 건 그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지키지 않는 '불량'하고 '불법'적인 이들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고 권력과 돈으로 사건을 덮으려는 오종태, 그의 죄를 덮어주는 대가로 거래를 하는 법무부 장관과 검경 그리고 언론이 그들이다. 이렇게 불량하고 불법적인 이들은 심지어 시스템화되어 공고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검경은 이대철이 진범이 아니라는 증거를 숨기고, 언론은 이에 공조해 이대철을 잔인무도한 살인범으로 만들며, 심지어 법무부 장관은 무고한 이대철을 사형 집행해 더 이상 이 사건이 거론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그 시스템이 너무나 공고해 반대편에 서 있는 강도창이나 그의 파트너 오지혁(장승조) 같은 인물은 마치 바위를 마주한 계란 같은 힘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아마도 지금의 대중들이 거대한 권력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이 힘 없는 강도창 같은 인물이 과연 저들과 대적해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청자들의 '서민 영웅 판타지'는 커진다. 자신마저 외면하면 그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 같아 나섰다는 강도창 같은 돈키호테라도 있어야 이 무력한 세상에서 작은 숨통이라도 트일 것 같아서다.
영웅이 보통 이상의 무언가를 꿈꾸는 판타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라면, '모범'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탄생시킨 판타지라는 점에서 씁쓸한 면이 있다. '모범형사'는 이처럼 대단한 영웅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저 모범적으로 살아달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래서 강도창이라는 인물이 판타지가 되는 지점에는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씁쓸하지만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풍자가 숨겨져 있다.
◆조남국과 손현주가 그리는 서민 영웅에 대한 기대감
이 작품을 연출한 조남국 PD와 주인공 강도창 역할을 연기하는 손현주는 여러 작품을 함께 했다.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이웃집 웬수' 같은 다소 가벼운 작품을 함께 한 두 사람은 '추적자'에서 드디어 케미의 잠재력을 터트렸다. 그 후로 '황금의 제국'을 같이 했고 '모범형사'로 돌아왔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모범형사'는 여러모로 두 사람이 함께 해 큰 성공을 거두었던 '추적자'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백홍석(손현주)은 형사였고 억울하게 사망한 딸의 진범을 추적하며 맞닥뜨리게 되는 거대 권력과 한바탕 붙는 서민영웅이었다.
손현주가 형사라는 역할로 그려내는 서민영웅의 아우라는 평범한 이들의 억울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점에서 '추적자'와 '모범형사'는 닮았다. 올바르게 정의를 향해 걸어가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힘없는 약자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력해 보이는 약자들이 의외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건 연대를 통해서다.
'모범형사'는 이대철이 사형집행을 당한 후, 무력감을 공유하는 약자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대철을 돕다 같이 물을 먹어버린 강력2팀이 그렇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사형집행 당하는 걸 볼 수밖에 없게 된 그의 딸 은혜(이하은)가 그렇다. 또 그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멈추지 않는 강도창의 파트너 오지혁(장승조)도 이 약자들의 연대에 들어와 힘을 내기 시작한다. 이런 연대를 통한 권력과의 대결 구도는 이 드라마가 갈수록 몰입감을 높이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당하던 약자들이 권력에 일침을 가하는 그 장면이 못내 기대되기 때문이다.
'모범형사'의 몰입감은 조남국 PD의 담담한 연출에 의해 더욱 힘이 생긴다. 조남국 PD는 극적인 연출보다는 강도창이라는 인물이 겪게 되는 감정 변화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조차 외면하려 했던 강도창이 조금씩 변화해 급기야는 서장에게 "경찰 얼굴에 먹칠하는 건 너야"라고 일갈하게 되는 과정은 의외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최근 장르물의 전성시대를 맞아 형사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양적으로 많아지면서 어떤 공식화된 전개를 보이기도 하는 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이코패스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의 살인 수법은 갈수록 잔혹해진다. 그래서 형사들도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간다. 갈수록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형사물들 속에서 사람 냄새나는 형사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모범형사'의 강도창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는 마치 지금의 대중들이 공권력에 원하는 바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굉장한 힘을 보여 달라고 했던가. 그저 모범적으로 살아달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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