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아홉 살 인생(위기철 지음/ 청년사/ 2001/ 우남희

마중물 한 모금 마중물 한 모금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리는데 코로나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갑작스런 브레이크에 멘붕이 왔지만 쉬어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숨고르기를 한다.

끝자리가 아홉수인 나이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지만 또 다른 시작을 꿈꾸는 변곡점에 서 있다. 그 꿈을 위해 밑그림을 그리다가 만난 책이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이다. 이 책은 MBC 느낌표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영화로도 제작된 베스트셀러다. 인문과학분야의 '반갑다, 논리야', '철학은 내 친구'뿐만 아니라 '무기 팔지 마세요', '신발 속에 사는 악어' 등 어린이를 위한 책과 장편소설 '고슴도치', '껌'을 쓴 작가가 스물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웠던 인생 이야기를 아홉 살짜리 여민의 눈을 통해 정리한 성장소설이다.

아홉 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과 같이 끝수가 아홉인 수는 일곱, 여덟의 숫자와 달리 십년을 정리하고 또 다른 십년을 준비해야 하는 경계의 숫자다. 그래서 이 숫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작가가 아홉 살이었던 60년대가 아니어도 좋다. 독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홉 살 무렵의 흔적으로 무엇이 있을까. 필자는 마을에 한 대 뿐인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20원의 시청료를 주고도 주인공인 여민이가 그랬던 것처럼 주인집 아들의 눈치를 보며 가진 자의 거드름에 서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여민은 아빠 친구의 집에 얹혀살다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 온다. 서양의 어느 작가가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 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p12)라고 했듯 주워온 강아지로 얹혀사는 삶의 비애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우리 집의 의미를 알게 되며, 사전적 의미가 아닌 아홉 살의 눈높이에 맞는 뜻풀이로 단어들을 습득하며 세상을 알아간다.

자상하면서도 슬기롭고 모범적인 아빠와 당당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엄마, 허풍에 공상을 잘하지만 외로움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기종, 먼저 찜하면 제 것이 되는 '야아도'로 기득권과 소유권을 획득해 제 배만 채우는 악질 풍뎅이영감, 건장한 젊은이가 시험공부를 핑계로 노모한테 생선 장사를 시키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골방철학자, 편지심부름을 갔다가 알게 된 인생 상담사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선생 윤희누나, 토굴 할매의 외로운 죽음, 기종이 오누이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외팔이 하상사, 술주정뱅이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검은 제비, 월급기계 선생, 도도한 여자 친구 장우림 등의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사랑과 이별, 불공평함이 존재하는 세상을 알고 느낀다.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게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기 때문'(P173)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여러 적(敵)들 중 하나가 외로움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서로 만나고 힘을 보태면 강해진다. 그러한 세상살이 속에 살면 외톨이도 고독한 존재도 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며 인생은 아름다워진다'(p223)는 진리 아닌 진리를 하상사의 입을 통해 전한다.

'아홉살 인생'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인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난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희망을 노래하는 책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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