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책] 후산졸언 시문선집/ 정재화 지음/ 정우락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펴냄

후산졸언 시문선집 후산졸언 시문선집

이 책은 경북 성주의 시골 선비 후산 정재화(1905~1978)가 쓴 시문을 발췌해서 번역한 것이다. 후산은 일제강점기와 민족해방, 극렬한 좌우대립, 6·25전쟁, 조국근대화를 모두 경험했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상투를 틀고 근대를 외면하고 살았던 독특한 지식인이다. 상투를 자르기 위해 들어온 일경을 벼루로 타격하고 만주로 두차례 들어간 인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후산의 손자인 정우락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그 생애의 후반을 지켜보았던 손자가 전통 지식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책을 번역해서 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저자는 "조부와 같은 지식인이 남긴 문헌이 매우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모두 폐기되고 말았다. 이를 발굴해서 근현대사의 사상적·문화적 다양성을 탐구하는 것은 우리시대 사람들에 남아있는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고 밝혔다.

이 책을 통해 근대 한문학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들 지식인이 살았던 시대는 이미 근현대에 해당하지만 그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전통과 깊은 맥락이 닿아 있어 근대 문명과 일정한 길항 관계를 유지하며, 때로 저항하고 때로 적응하는 문학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근대 속에서 고립된 매우 특수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리되지 않은 한문학 자료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지식은 소외되거나 외면되었다. 경제적 사정이 조금 나은 경우는 후손가를 중심으로 문집을 발간해 선조의 생각을 갈무리하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경험한 전통 지식인들의 문적들은 필사 형태로 흩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방이 되자, 민주공화국의 깃발을 만들고 이에 대한 도설을 쓴 '민주공화국기도설'도 흥미롭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대구와 경북 일원의 사람들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아주 험난하게 살다간 사람들이다. 후산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많은 작품을 남기는데, 동지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326쪽, 2만8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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