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이야기] <20>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중앙한약방

◇3대째 가업 한약방 고서'고약통…박물관 온 듯 3대 90년 전통

2대 박재규(오른쪽) 원장과 3대 박신호 대표가 초대 고 박성환 원장이 필사해 만든 의서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imaeil.com 2대 박재규(오른쪽) 원장과 3대 박신호 대표가 초대 고 박성환 원장이 필사해 만든 의서를 펼쳐보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imaeil.com

 

한약방과 약업사, 제탕원, 한의원 등 한의약 관련 업소가 몰려 있는 대구 약전골목은 오랜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점포가 많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노포가 '중앙한약방'이다. 중앙한약방은 고 박성환 1대 원장이 1926년 개업한 90년이 넘은 가게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현재 손자 3대 박신호(53) 대표가 맡아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박재규(88) 2대 원장은 "북한에서 난 약재도 대구 약전골목 바람을 쇠지 않으면 약효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대구 약령시는 대단했다"며 "최근들어 그 명성이 쇠퇴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한약방을 3대에 걸쳐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다"고 말했다.

 

 

◆ 3대 걸쳐 이어오고 있는 한약방

중앙한약방은 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약 냄새와 함께 여러 개의 약장과 약탕기가 눈에 띈다. 정면 벽에는 초대 고 박성환 원장과 2대 박재규(87) 원장, 3대 고 박수호 원장, 그리고 현재 박신호 대표의 사진과 각종 자격·면허증, 인허가증 등이 걸려 있다.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가족박물관이 나온다. 박신호 대표가 2010년 한방 관련 기록과 자료를 모아 꾸며 놓은 곳으로 초대 박성환 원장이 직접 필사한 의서와 처방전, 주요 의서 요약집, 약장, 저울, 약을 빻는 주발, 병풍 등이 전시돼 있다. 한켠에는 실물 거북 박제도 눈에 띈다. 박 대표는 "이곳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환자의 특성에 맞게 약재의 종류와 복용기간 등을 자세하게 정리한 한방의약서와 각종 기기가 전시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3대째 운영 중인 90여 년 된 중앙한약방. 이채근 기자 3대째 운영 중인 90여 년 된 중앙한약방. 이채근 기자

 

중앙한약방은 초대 원장 고 박성환이 고향 예천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박성환은 당시 대구의 한약재 거상 김홍조 약방에 들어가 서사(입출고 관리)로 일하게 된다. 한문에 조예가 깊었던 박성환은 한문으로 된 의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면서 한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일을 배운 박성환은 22세 때 1926년 천안당한약방을 개업한다. 2대 박재규 원장은 "선친은 한학을 공부한 의원으로 침과 처방에 탁월했지만 사람과 술을 좋아해 그다지 돈을 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박재규 원장은 돈을 벌고 싶어 따로 약재상을 운영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과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약방은 어려워졌다.

박 원장은 한국전쟁 때 부산서 잠시 살았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동양의학전문학원을 다녔다. 1회 졸업할 수 있었지만 한의사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진맥하고 침 놓고 하는 게 성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열심히 약재를 팔아 1956년 대구 약전골목 중심에 중앙한약방을 열었다. "아버지는 처방전 내고 저는 한약을 짓고 약재를 판매했다"고 했다.

잘 됐다. 그러나 박 원장은 돈만 벌지 않았다. 한약재도매시장을 설립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산지의 약재들이 모이는 시장이 있어야 약령시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호사다마라 했던가? 신용금고와 호텔 사업에 손을 댔다 부도가 났다.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전재산을 처분하다시피 했다. 남은 돈으로 현재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러는 사이 첫째 아들 수호 씨가 경희대 한의대를 나와 함께 일했다. 중앙한약방 3대 원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2009년 박수호 3대 원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총명했다. 기대도 컸다. 돈을 벌기보다 존경받는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돈은 내가 벌면 되니까…"(이 부분에서 박 원장은 말끝을 흐렸다)

할 수 없이 삼남인 박신호 대표가 가업을 잇게 됐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한약과의 거리가 멀었다. 뒷수습을 위해 서울서 대구로 내려왔다. "가업을 잇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대학 재학 중 아버지가 가업을 이으라고 했지만 일본으로 도망쳤니까요."

오래된 한약방임을 보여주는 약장과 약탕기. 이채근 기자 오래된 한약방임을 보여주는 약장과 약탕기. 이채근 기자

 

박 대표가 결심을 바꾼 것은 집안의 가보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 할아버지 때부터 소중하게 간직해 온 처방전과 의서, 각종 기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일본에 있을 때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가업을 잇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마음이 바뀌었다"면서 "할아버지와 형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한약방 운영은 쉽지 않았다. 한약은 사양산업으로 분류돼 약령시는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먼저 한 것은 '가족박물관' 개관이었다. 우리의 전통을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을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필사해 만든 의서가 있었고, 질병에 맞게 내놓은 처방전, 그리고 각종 한약 기기 등을 꾸며 놓으면 좋은 박물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한방의 대중화를 위해 이벤트도 벌이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를 활용해 한방 체험을 기획했다. 각종 한약 재료를 활용한 '학초단 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입소문을 타고 국내인은 물론 일본이나 대만, 미국 등 외국인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업 워크숍장소 등에서의 출장체험서비스도 하고 있다.

중앙한약방은 초대 고 박성환 원장이 필사해 만든 의서와 각종 처방전이 전시된 작은가족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중앙한약방은 초대 고 박성환 원장이 필사해 만든 의서와 각종 처방전이 전시된 작은가족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 4대 이어 갔으면…

2대 박 원장은 요즘 오전 10시 나와 단골을 상대로 약을 처방하고 지어 준다. "아직 건강하다. 나에게 약 지으러 오는 단골도 많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약방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도 고민이다. 중앙한약방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저는 물려주고 싶은데 자녀들은 한의약엔 전혀 관심이 없다"면서 "저는 맡은 만큼 한의약 대중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한약방 2대 원장의 아들인 박신호 대표에게 설립자인 고 박성환 원장이 각종 의약서를 요약해 직접 손으로 쓴 책자를 펴 놓고 중요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관련기사

AD

문화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