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숨은 이야기 <21> 비극적 결말의 성취

잭슨 폴록 작 'The Deep' 잭슨 폴록 작 'The Deep'

 

잭슨 폴록, The Deep, 캔버스에 유화와 에나멜, 220.4x150.2cm, 1953, 퐁피두센터

잭슨 폴록(1912~1956)은 삶과 예술 모두에서 극단적이었다. 그는 오로지 작업에 몰입하는 현재를 통해서만 생동하는 삶을 느꼈고 그 안에서 자기 존재가 고갈될 때까지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에드 해리스가 감독 겸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영화 <폴록>(2000)에서 화가는 마치 먹잇감을 사냥하는 초원의 고독한 야생동물처럼 온몸의 말초신경을 곤두세운 채 바닥에 놓인 화폭 주변을 빙빙 돌아다닌다. 폴록에게 캔버스는 화가의 신체를 위해 제공되는 행위의 장이었고 그는 본능과 직관을 캔버스 위로 분출시켰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1952년 미술잡지 '아트 뉴스'에서 유럽의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에 반대하는 유기적・역동적 추상, 즉 미국에서 새로이 시작된 뜨거운 추상을 가리켜 '액션페인팅'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추상표현주의의 한 축인 '액션페인팅'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가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며 그 행위에 인간존재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여기서는 '잊음'의 개념이 바로 창조의 근원이며, 화가는 그림 안에서 이 세상은 물론이고 자신의 신체까지도 잊어버린다.

"내가 그림 안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작업을 끝낸 후에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깨닫게 된다"라는 폴록의 말처럼, 그림이 화가를 부르는지, 화가가 그림을 부르는지 모르는 완벽한 상호침투 속에서 색색의 물감들이 화폭 위로 뚝뚝 떨어진다. 화가의 신체와 그림 사이에 아무런 속박도 없이 '주고받는'(give and take)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내면의 리듬과 충동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면서 그의 몸은 점점 더 신들린 듯한 춤동작을 펼치다가 때로는 화면 속으로 빠져버리기도 한다. "NO.1"(1948년 작)에서는 화면에 화가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1947년부터 시작된 물감을 흘리는(dripping) 기법이 점차 끈적거리는 물감의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바뀌게 된다. 모더니즘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흘린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들이붓고 튀게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NO.4"(1950년 작)에서 나타나듯이 폴록은 캔버스에 물감이나 자동차 도료를 들이붓고 건축공사용 흙손이나 나이프로 혼신의 힘을 다 해 짓이기며 신체의 궤적을 남겼다.

"The Deep"(1953년 작)이란 제목의 그림에서는 드리핑으로 화면을 덮는(all-over) 스타일이 사라진 대신 구름을 연상시키는 흰 층들이 겹쳐져 있다. 화면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측량할 길 없어 보이는 심연에는 소멸의 무한한 깊이가 보인다. 그동안 올오버 페인팅을 통해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형상/배경의 구분을 없애버렸던 폴록이 다시 194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때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한 것일까? 깊은 나락(abyss)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이 작품은 폴록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듯 하다. 1956년 8월 11일 밤, 만취한 상태로 뉴욕에서 뉴저지 집으로 운전하던 중 시골길의 가로수를 들이받아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자동차는 시속 200km를 넘겼다고 한다. 폴록을 잘 아는 사람들은 자동차 사고를 가장한 자살로 추측했다. 그의 나이 겨우 마흔 네 살이었다.

생전에 폴록은 결코 헐벗은 무명화가가 아니었다. 현대미술의 대모이자 열렬한 미술품 수집가인 페기 구겐하임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그녀가 운영하던 뉴욕의 '금세기의 미술 화랑'에서 열렸던 개인전(1943)을 계기로 단박에 화단의 조명을 받았다. 1949년 8월엔 '라이프' 주간지에서 그를 독창적인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작가로 넓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함으로써 대중적인 유명세도 얻었다. 그런 그가 왜 작업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술에 절어있었을까? 놀랍게도 폴록은 12살 때부터 알코올 의존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자 계층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생활고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부모는 다섯 형제를 큰 사랑으로 키웠기에 불행한 가정사가 원인인 것 같지도 않다. 아마도 그는 삶을 영위하기 힘든 본질적인 불안과 고독을 안고 태어났던 것 같다.

1937년 12월, 그는 자발적으로 재활센터에 입원해서 알코올 중독치료를 받았고, 융 학파의 정신분석학자 조셉 핸드슨으로부터 오랜 시간 치료도 받았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꽃처럼 스스로를 산화시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작업하는 동안에만 모든 불안을 잊고 화산과 같은 에너지를 용솟음치게 하던 그가 자동차 사고가 나기 전 거의 2년 반 동안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건 그에게 죽음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창조 에너지의 고갈 때문이었는지 죽음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폴록에게 작업에 몰입한 시간은 영원한 현재이자 동시에 스스로 사라지는 시간이었는가 보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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