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삼시세끼', 출연자를 여성으로 바꿨더니 달라진 이야기

뻔할 것 같았던 ‘삼시세끼’ 산촌편, 어째서 달리 보였을까

 

출연자가 바뀐다고 프로그램이 달라질까.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회의적이다.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출연자를 교체해 시작해도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tvN '삼시세끼' 산촌편은 다르다. 무엇이 달라진걸까.

tvN '삼시세끼 산촌편' tvN '삼시세끼 산촌편'

 

◆시즌 반복된 '삼시세끼', 식상할 줄 알았는데

나영석 PD가 만든 tvN '삼시세끼'는 예능프로그램이 그간 해왔던 흐름을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예능사에 남을만한 프로그램이었다. 그간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다. 낚시 소재는 하지 말 것, 출연자를 놀리지 말 것, 대신 뻘밭에 가면 그 뻘을 바라보기보다는 그 곳에서 뒹구는 게임을 할 것 등등이 그 불문율이었다. 그 불문율의 핵심은 '미션'과 '방송 분량'에 맞춰져 있었다. KBS '1박2일'이나 MBC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당대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끝없이 미션을 내려 쉴 틈 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분량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그 불문율을 깨고 정반대의 흐름으로 갔다. 한적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세 끼만 챙겨먹는 것. 애초 예능 선배들은 나영석 PD의 이런 시도를 말렸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강행했고, 첫 녹화를 하고 와서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엔 정말 망한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했더니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시골 생활이 낯선 이서진 같은 차도남이 그 곳에 적응하는 과정은 나름 미션으로 제시되며 흥미진진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그다지 미션이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백이 많아지면서 그 빈 여백 속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왔다. 자연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힐링이 그것이었다. 지금이야 ASMR이 익숙하지만 그 시기에 '삼시세끼'는 빗소리를 분할화면으로 모아 오케스트라로 들려주는 엉뚱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할 일이 없어지면서 자연을 더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생겨난 또 다른 관전 포인트. 이른바 힐링예능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한두 번은 즐거울 수 있어도 반복되면 식상해지는 게 예능 프로그램의 생리다. 몇 차례의 시즌을 거듭한 끝에 '삼시세끼'의 스토리텔링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익숙해졌다. 다시 '삼시세끼'가 산촌편으로 돌아온다고 선언했을 때 그다지 기대감이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 물론 출연자들이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여성들로 바뀌었다고 했지만, 그것이 과연 새로운 이야기나 관전 포인트를 제시할 수 있을까. 기대는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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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

하지만 방송이 시작되면서 이런 반응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식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새로운 재미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출연자들에게서 나왔다. 염정아와 윤세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어 언니-동생하던 사이였고 최근에는 JTBC '스카이캐슬'로 동시에 주가가 오른 출연자들이었다. 여기에 염정아와 같은 소속사인데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막내 박소담이 합류해 완벽한 자매 케미가 만들어졌다.

물론 초반 이런 산골에서의 일상 자체가 주는 낯설음은 분명히 있었다. 당연한 것이 집에서 인덕션에 스위치만 누르면 척척 요리를 했던 환경에서, 이제 밥 한 끼를 위해 직접 아궁이에 불을 피워야 하는 상황이니 낯설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직접 아궁이도 만들고 비 올 때를 대비해 천막도 쳐놓으면서 조금씩 산골 생활에 적응하더니 이내 손발이 척척 맞아돌아가는 놀라운 시너지를 보여줬다. 염정아가 끼니를 구상하고 전체 동선을 진두지휘하며 저 스스로도 솔선수범한다면, 윤세아는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염정아나 박소담이 필요로 할 것을 미리미리 챙겨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해낸다. 젊은 막내 박소담은 힘쓰는 일은 물론이고 아궁이에 불 피우는 일을 전담하며 언니들의 일을 돕는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분명한 나이차와 서열이 있지만, 그 일상 속에서 전혀 서열이 눈에 띄지 않더라는 것이다. 맏언니 염정아는 누구보다 동생들을 챙기려 애쓰고 때론 자신이 잘못 결단을 내려 일을 두 번 하게 되었을 때는 동생들에게 그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막내 박소담은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싹싹한데다 털털했고, 윤세아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왼 손이 모를 정도로 보이지 않게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았다.

사실 서열은 그간 예능 프로그램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던 소재였다. 서열을 뒤틀거나 혹은 서열 구조 때문에 시키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위계로 만들어지는 웃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간 '삼시세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서진이 나왔을 때 함께 출연한 옥택연이나, 유해진, 차승원이 출연했을 때 함께 출연한 손호준은, 남자들 특유의 서열구조 안에 존재했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이 다르게 느껴진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었다. 서열 구조가 없어 모두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쉬며 그래서 일이 척척 맞아 돌아갈 때 오히려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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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시선과 판타지

여성 출연자들이 서게 되면서 여성 특유의 감성들이 프로그램에 더해졌다. 이를 테면 남자들끼리는 잘 못하는 서로에 대한 칭찬을 대놓고 하는 모습이라든가,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껏 흥에 겨워하는 모습,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여주는 감성적인 리액션 같은 모습들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심은 배추가 몇 주가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 부쩍 자란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은 남성출연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리액션이었다. "캐고 우리가 수확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심은 게 자라나는 걸 보는 건 진짜... 최고다." 여성들의 시선과 리액션이 드리워지면서 '삼시세끼' 산촌편은 확연히 이전 시즌들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서열 없이 함께 일하고 독려하고 즐기는 그 과정들을 통해 이끌어낸 '여성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싶다. 마침 추석 명절 시즌에 방영됐던 '삼시세끼' 산촌편은 특히나 일이 많았던 하루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침에 도착해 아궁이 위치를 바꾸고 동선이 길었던 찬장을 가까운 곳으로 옮긴 후, 평상 위에도 그늘을 만들기 위한 차양까지 설치해놓고는 점심을 챙겨먹고 장을 보러 읍내에 나갔다 돌아와 심지어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직접 빚었다. 아마도 만두를 빚어 전골을 해먹겠다 마음먹은 건 마침 방영일이 추석이라는 걸 염두에 둔 포석이겠지만, 그 많은 일들을 누구 한 사람의 '독박' 노동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해 즐거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명절에 전하는 특별한 판타지가 되었다. 여성들은 일하고 남성들은 술 마시는 우리네 명절의 성차별적인 풍경을 뒤집는 판타지.

'삼시세끼' 산촌편이 여성 출연자들로 인물 구성을 바꿔 이처럼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는 건, 지금껏 남성들 중심으로 채워지던 예능 프로그램들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여겨진다. 지금의 반복되어 식상해진 예능 프로그램들에 어쩌면 여성 출연자들의 그들 방식으로 보여주는 말과 행동들이 신선함을 더해줄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기울어진 성비를 맞추는 의미도 있지만 신선함을 위해서라도 여성 출연자들의 예능은 좀 더 시도해볼 구석이 있다는 걸 '삼시세끼' 산촌편은 증명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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