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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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199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에 현대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기억이 있다. 이제 할리우드 영화 속 전자기기는 대부분 한국산이고,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한국 음식을 물론이고, 한국식 사우나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내 한국 출신 영화인들의 비중도 높아졌다. 한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미나리'의 감독 리 아이작 정을 비롯해 '푸른 호수'의 저스틴 전의 활약이 돋보인다. 저스틴 전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를 공동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 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애프터 양'의 감독 코고나다 또한 한국계이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에 대한 묘사가 늘었다. '푸른 호수'는 한국에서 입양된 한 남자의 아픈 수난을 가슴 찡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우리가 듣고 자란 자장가로 시작해 한복을 입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그려냈다.

11일 개봉 예정인 '엄마'(감독 아이리스 K. 심)는 한국식 발음 'Umma'를 그대로 따온 할리우드 공포영화다. 미국의 외딴 농장에서 딸 크리스(피벨 스튜어트)와 함께 양봉을 하며 살아가는 아만다(산드라 오)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삼촌이 한국에서 방문해 죽은 엄마의 유품을 전해 준다. 그날 이후 아만다는 엄마의 환상에 사로잡힌다. 엄마는 자신을 떠난 딸에 대한 원망을 죽어서도 풀지 못한다. 미국까지 따라 온 엄마의 귀신은 아만다에 빙의해 크리스까지 위협한다.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엄마'는 한국 엄마와 딸의 끊을 수 없는 애증관계를 공포에 대입시킨 영화다. 엄마는 전통적인 억압의 시대를 겪으며 고통을 받는다. 딸이 유일한 위안이면서 고통을 전가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딸이 떠나면서 원망은 한이 돼 유품에 각인된다.

'엄마'는 70, 80년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한을 품은 여인의 공포를 미국까지 확장시킨 영화다. 그때는 '조선여인 잔혹사'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한 품은 여인을 그린 영화가 많았다. 여인으로 태어나,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로 온갖 구박을 받다가 억울하게 죽어 귀신이 된 한 맺힌 이야기들이었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며 고통을 받는 원혼이 '엄마'에서 그대로 채용됐다. 엄마의 한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않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익숙한 설정이기에 그대로 공감된다. '엄마'는 가장 한국적인 설정으로 탄생된 미국 공포영화인 셈이다.

아이리스 K. 심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인 이민가족의 비극을 그린 다큐멘터리 '더 하우스 오브 서'로 주목을 받은 한국계 감독이다. 아만다 역을 맡은 산드라 오는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해진 이민 2세대로 2005년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한국계 배우이다.

아이리스 K. 심은 '엄마'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산드라 오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미나리'에도 참여한 이용옥 디자이너 등 한국인들이 많이 참여해 다양한 한국 문화가 등장한다.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엄마'에는 한국어 대사가 많다. 삼촌과 엄마의 대사는 모두 한국어이고, 산드라의 환상 속 엄마의 목소리 또한 한국어다. 미국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제사도 가족이 죽은 날 제사를 통해 존경을 표시하는 의미로 묘사된다. 엄마의 제사상을 차리고 두 번 절하는 것까지 한국식 문화와 고유 정서를 담았다.

아만다가 목욕할 때 한국식 때수건까지 등장한다. '이태리 타올'이라고 불리던 것인데, 이제 미국영화에서 때수건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

특히 '엄마'를 비롯해 '한복', '제사' 등이 한국어 그대로 쓰인다는 것이 놀랍다. 특히 '탈'은 '마스크'가 아닌 '탈'이라는 한국식 발음 그대로 쓰였다. 다음 달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종이의 집' 한국판에서는 하회탈이 등장할 예정이어서 한복, 갓에 이어 한국의 탈이 다시 세계적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90년대 초 미국영화에서 한국은 변방 그 자체였다.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묘사와 달리 한국은 가난하고 별나며, 그래서 이상한, 차별적인 묘사로 일관했다. 1993년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폴링 다운'에서 한국인은 불친절하며 미국에 와서도 한국어를 쓰는 야박한 별종으로 묘사해 미국 한인들을 분노케 했다. 그 바람에 한국에서도 수입불가였다가 1997년 겨우 개봉되기도 했다.

'엄마'는 한류 열풍에 이어 미국 영화계에 부는 한국 바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서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다. 83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영화 '엄마'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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