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돈이 뭔 줄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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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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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뭔 줄 아시오?" 며칠 전 도쿄에서 처음 만난 그의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뉘앙스로 보아 이 사람이야말로 돈을 정말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사이타마에 사는 그를 만나러, 아니 그의 돈을 만나러 간다. 어쩌면 그의 삐뚤빼뚤 못난 이를 보러 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가난한 농부가 주는 용돈을 한사코 거절하느라 쌀가마를 서둘러 지다가 꼬꾸라져 앞니 몇 개가 부러졌는데 돈이 없어 꾹꾹 손으로 박아 넣었다고 했다.

하정웅! 일본 아키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 올라왔지만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었던 그는 전기부품상에 겨우 취직해 야간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를 제하고 2천 엔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영양실조였다. 그런 그가 1만여 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미술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천경자,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샤갈,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걸작을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은 대한민국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어떻게 돈을 벌어 천문학적 가치의 그림을 샀으며 왜 기증한 것일까.

시력 손상으로 직장에서도 잘린 그는 민단을 찾아갔고 박봉의 총무 일을 맡게 되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교포들은 이름도 쓸 줄 몰랐다. 그는 교포들의 손과 발이 되어 뛰어다녔다. 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 아닌가.

결혼 축의금으로 가전제품을 사러 간 그에게 가게 주인이 사정했다. "오늘 받은 물건값을 가게 부도 막는 데 쓰도록 해 달라. 대신 내가 월부로 갚아 나가겠다." 딱한 사정에 승낙하고 말았는데 월부금 청구서가 계속 그에게 날아왔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 덕분에 그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가게 주인에게 항의하자 가게를 넘겨줄 테니 빚을 갚아 달라고 했다. 그가 빚더미의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나자 자녀들 혼수를 장만하려던 교포들이 몰려들었다. 민단에서의 그의 희생적인 친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러져 가던 가게가 대리점으로 승격했고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까지 납품하는 큰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다 그에게 불치병이 찾아왔다. 절에 갔더니 스님이 벌떡 일어나 "두 손 가득 보물을 꽉 쥐고 있군요. 한쪽 손을 쥐면 한쪽 손은 펴세요"라고 했다. 한 손을 펴고 있어야 넘어져도 편 손으로 땅을 짚을 수 있고, 더 좋은 것이 다가오면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돈이 들어오면 한 손만 쥐고 한 손은 쫙 펴서 사람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병도 사라지고, 편 손에는 늘 더 큰 뭔가가 쥐어지더란다. 남을 위해 사주었던 버려진 땅까지도 수십 배로 올라 거부가 되었다.

당시 무명의 이우환 씨가 유럽에 가려고 500만 엔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선뜻 700만 엔을 건넸다. 성공리에 유럽 전시를 마친 이우환이 그림 13점을 보내왔다. 지금 한 점당 수십억 원의 그림이란다. 그렇게 화가들이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미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다 보니 1만 점의 그림이 쌓이더란다.

그는 그 값비싼 그림들을 그의 장롱에 가두지 않았다. 그림을 움켜쥐었던 손을 활짝 펴고 아끼고 아끼던 고가의 미술품을 아버지의 고국 대한민국 미술관에 모두 다 기증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가의 작품은 집에 감춰 두었을 거라고 수군대더란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라며 해탈한 듯 웃어 보이면서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좋은 것을 보고 또 보면 언젠가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지 않겠느냐며. 사람들이 더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이 보일 듯 다가왔다.

수천억 원의 재산을 내놓을 만큼 부를 쌓았음에도 30대 때 살던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다는 그의 집을 나는 방문한다. 부러진 이를 가지런히 만들 수도 있건만 그 삐뚤빼뚤한 이야말로 삶의 자부심이라던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만큼 돈을 잘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대통령이 되어도 막강한 권력을 두 손 가득 움켜만 쥐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한심한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두 손에 움켜쥔 돈도 권력도 한 손만은 활짝 펼 수 있다면! 좀처럼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장시간 들어주어 고맙다며 환하게 웃던 83세의 그가 벌써 그리워진다. 사이타마! 30대의 그와 80대의 그가 함께 사는 그곳에서 나는 또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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