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피부를 판 남자'

"등을 내어주면 자유를 주겠다" 난민 청년에 달콤함 유혹 제시
거액 얻은 대가로 인권 짓밟혀
인간이 미술품이 된다는 발상…물건보다 못해진 자유의 역설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자유를 사기 위해 자신을 판 남자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곧 구속으로 바뀌고, 물질의 가치만 인정받으며 사라지는 자신에 괴로워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는 플롯이다. 16일 개봉한 '피부를 판 남자'(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는 피부를 팔아 예술품이 된 한 남자의 딜레마를 그린 영화다.

시리아 난민 샘 알리(야흐야 마하이니)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무일푼에 희망마저 사라져버렸다. 자유를 외쳤던 그에게 난민의 생활은 속박 그 자체였다.

그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세계적인 예술가 제프리(코엔 드 보우). 그는 파우스트에게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처럼 그에게 피부를 팔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의 등에 문신을 새겨 예술품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벨기에로 보내주고, 돈까지 주겠다고 한다. 벼랑 끝에 선 샘이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그는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1920년대까지 유럽에서는 인간 동물원이 존재했다. 토속 아프리카인들을 동물원 우리에 가둬두고 입장료를 받아 관람토록 한 것이다. 인간이 상품화된 믿기 어려운 일이 버젓이 자행됐다. 비인간적인 식민주의 사고의 끝을 보여준 사례다.

등에 문신을 새긴 샘도 전시품이 된다. 호텔에서 따뜻한 잠자리와, 거액의 계약금까지 받았지만 그는 피부만 판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보기 위해 벨기에까지 왔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했다. 자유를 위해 몸을 팔았지만, 그가 산 자유는 자유가 아니었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피부를 판 남자'는 한 난민 청년의 선택을 통해 여러가지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먼저 자유의 의미이다. 샘은 자유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시리아에서 구금된다. 그는 탈출해 레바논에 정착하지만, 그 어떤 곳으로도 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비자를 받을 수 없는 난민인 것이다.

세계에서 하나의 상품이 갈 수 없는 곳이 없다. 물건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상, 이 얼마나 가혹한 역설인가. 샘은 피부에 '솅겐 비자'의 타투를 새긴다. 유럽 26개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꿈의 비자다. "왜 비자 모양의 타투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프리는 "상품 같은 형태로 탈바꿈하면 샘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유는 거대한 회의에 직면한다. 인간의 존엄성, 인권이다. 샘은 자신이 물료의 가치만 인정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미 계약은 이뤄졌다. 그는 작가의 전시품이며, 그가 죽더라도 피부는 떼어 전시된다는 사실이다. 미술관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석상처럼 쪼그리고 앉는 샘의 처지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화는 난민이 직면한 자유의 패러독스와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어가는 현대의 부조리를 묵직한 우화로 그려내고 있다. 샘은 자신이 받는 돈을 시리아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그들에게 이 돈은 자식을 판 대가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금쪽같은 돈이다. 한때 산업화를 위해 도시에서, 정글에서, 먼 이국땅에서 자신을 마다하지 않던 어느 가난한 나라의 역군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가난한 이에게 접근해 자유의 생계 자금을 제안하는 파렴치한은 흥미롭게도 현대의 개념미술이다. 이 영화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의 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돼지에게 명품 로고를 타투해 유명해진 현대미술가다. 그는 2006년 급기야 사람의 등에 문신을 새겨 전시했고, 실제 경매로 팔기까지 했다.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영화 '피부를 판 남자'의 한 장면

인간이 미술품이 된다는 발상은 인간 동물원의 저의와 다를 바가 있을까. 영화는 현대미술이 가진 극단적 오만을 비판한다. 익명의 그래피티 작가 뱅크시는 현대의 부조리를 벽화로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폐허 속에 핀 꽃처럼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죽어가는 무생물에 또 다른 생명력을 호흡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프리의 작품은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지극히 사적인 명예욕에서 발현된 것이다. 한 개인의 가난을 구제했다고, 난민의 처지를 세계에 알렸다고, 또 미술품 수집가의 기호를 충족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튀니지의 여성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실제 일화를 모티브로 난민과 부의 불균형, 자유와 인권, 개념미술의 극단적 예시 등을 흥미롭게 전해준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고통스러울 고민들이지만, 알라딘 램프의 지니처럼 가볍게 터치하는 영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전형적인 결말로 관객을 위로한다.

특히 프랑스의 '여신'(?) 모니카 벨루치가 제프리의 메니저 소라야로 출연,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 반가운 영화이기도 하다. 104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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