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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구경이’, 이영애를 위한 새로운 여성 서사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 여성 서사로 세워진 독특한 탐정물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이영애가 돌아왔다. 그런데 예전의 우아함의 대명사였던 '산소 같은 여자'가 아니다. 떡진 머리에 게임 폐인인데다 맥주를 물 마시듯 하는 인물이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로 돌아온 이영애. 그는 이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통해 무얼 보여주려는 걸까.

◆'산소 같은 여자'는 잊어라

지금도 이영애 하면 가장 먼저 대중들이 떠올리는 건 MBC '대장금'의 장금이나 '산소 같은 여자'의 광고에 나오는 그런 우아함이 아닐까. '대장금'이 방영된 것이 2003년도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영애의 이 공고한 이미지는 그 사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2005년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특유의 서늘한 눈빛으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했던 그 강렬한 변신이 한 차례 있었지만, 그 짧은 일탈이 그의 공고한 이미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최근 이영애가 출연했던 SBS '사임당, 빛의 일기'는 과거의 그 이미지로의 회귀나 다름없었다. 마치 북한드라마를 보는 듯한 교훈적인 대사들을 읊는 신사임당 역할이 그의 산소 같고, 뭘 해도 우아한 이미지를 다시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필모그래피를 염두에 두고 보면 최근 이영애가 돌아온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는 등장부터가 파격적이다. 거의 산발에 가까운 머리에 늘어진 운동복을 입고 어둡고 음침하기까지 한 집에서 게임에 빠져 "죽여! 죽여!"를 외치며 그는 등장한다. 바퀴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따뜻한 컴퓨터 본체 속에 바글바글 둥지를 틀고 있는 그 집은 딱 봐도 이 구경이(이영애)라는 인물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널려 있는 맥주 캔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게임에 빠져 있는 구경이를 현실로 깨워내는 인물은 전직 동료형사였지만 지금은 보험회사 팀장인 나제희(곽선영)다. 마치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전직 형사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액션물의 클리셰를 여성 캐릭터를 세워 코믹하게 변주한 듯한 장면이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구경이는 그렇게 나제희의 요청으로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통영에 파견된다. 물론 이런 인물이 사회정의 같은 대의가 있을 리 없다. 게임이 팽팽 돌아가는 신상 컴퓨터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유혹으로 그 사건을 맡았을 뿐. 하지만 조사를 하며 평범한 보험사기로 알았던 구경이는 그것이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걸 알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구경이'는 이처럼 전형적인 영웅 서사(특히 형사물이나 탐정물)로 시작하지만, 특이한 건 구경이라는 캐릭터다. 여성 영웅을 중심으로 세워놓았다는 점이 먼저 시선을 끌지만, 그보다 그 캐릭터를 그려나가는 연출이 독특하다. 구경이는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인물이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하기보다는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통해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경쾌함과 발랄함이 부여된 캐릭터다.

게다가 그 인물을 다름 아닌 이영애가 연기한다는 건 그래서 도전이면서도 시청자들의 주목을 끈다. 등장부터 "산소 같은 여자는 이제 집어 치우라"는 듯 캐릭터에 빙의한 이영애의 연기가 도발한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악인 가득 세상에 대한 메시지

그렇다면 이런 독특하고 도발적인 캐릭터 구경이를 통해 이 드라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형사물이나 탐정물 같은 장르물은 대결 구도 자체의 재미와 자극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체로 그 메시지는 악역에서 나온다. 사회가 만들어낸 악역은 그 사회가 갖는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구경이'의 악역은 시작부터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드러낸 케이(김혜준)다. 그는 고등학교 때 길고양이를 시끄럽다며 죽인 수위아저씨가 마시는 막걸리에 부동액을 타 죽게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그 아저씨를 죽인 이유가 흥미롭다. 자신이 친했던 짝이 "그런 인간은 죽어도 싸다"고 한 말에 그걸 실행으로 옮긴 것. 케이는 연쇄살인범이지만, 그의 대상은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놈들을 향해 던지는 "죽이고 싶다"는 살의는 케이에게는 일종의 '살인면허'가 된다. 그들이 원해서 자신이 죽여줬다는 것.

케이가 여성이고 그것도 20대의 젊은 세대라는 건, 그가 저지른 살인행위를 통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단서다. 몰카범을 추적해 몇 가지 화학약물의 결합을 통해 죽이는 케이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부각돼 여성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성범죄 사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악마가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은 N번방 사건 등이 그것이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그런 사건들을 접하며 그 '죽일 놈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 현실 앞에서 갖게 되는 살의. 케이는 그런 놈들에 대한 분노와 살의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캐릭터화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20대라는 건 그런 세상을 만들어낸 기성세대와의 대결구도로도 이 인물을 보게 만든다. 케이의 도발은 그래서 범법행위이고 죄지만,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폭로하며 응징한다는 점에서 통쾌한 느낌마저 준다.

즉 '구경이'는 이러한 케이로 대변되는, 20대 여성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이 처한 부조리하고 부정한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제한다. 기성세대지만 역시 똑같은 상처를 입고 세상과의 문을 닫아버린 구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와 대결하고 때론 소통하는 과정을 그린다. 마치 정반합의 이야기를 그려가듯이 사회 현실의 피해자로서 양극단에 서 있는 구경이와 케이가 그 똑같은 현실을 공감하지만, 서로 다른 선택으로 대결하면서 양자가 조금씩 변화·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이정흠 감독·성초이 작가의 발견

'구경이'는 이영애의 새로운 변신과 그 상대역으로 미워할 수 없는 살벌한 빌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고 있는 김혜준, 여기에 최근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한층 업그레이드된 곽선영,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조현철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는 작품이다. 동시에 이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이정흠 감독의 연출과 신예로서의 도발이 인상적인 성초이 작가의 대본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의 한 장면. jtbc 제공

실제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동원해 진짜 만화 같은 경쾌하고 발랄한 연출을 선보이는 이 감독의 손길 덕분에, 성 작가가 구현해낸 예사롭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특히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과감한 생략과 포커싱을 딱 어울리는 음악에 맞춰 연출해낸 부분은 '구경이'를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여성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려내는 독특한 서사도 주목할 만하다. 즉 '구경이'는 구경이, 케이, 용숙(김해숙), 나제희 같은 여성들의 대결 구도와 연대로 그려지는 탐정물이다.

반면 구경이의 조수 같은 역할을 하는 산타(백성철), 나제희의 부하직원 경수(조현철), 케이의 조력자 건욱(이홍내), 그리고 용숙의 수족인 김부장(정석용)처럼 남성 캐릭터들은 여성 인물들의 보조 역할로 채워져 있다.

그간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뒤틀어낸 이러한 역전된 관계 구도는 그 자체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양한 차원에서 작품에 투영될 수 있게 해준다. 늘 봐왔던 장르물에서 조금 벗어나 색다른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자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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