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오모테나시와 곰배상

지난 17일 도쿄 올림픽선수촌 한국선수단 아파트 거주층에서 대한체육회 직원이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의 '이순신 장군' 글귀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압력으로 현수막을 떼기로 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도쿄 올림픽선수촌 한국선수단 아파트 거주층에서 대한체육회 직원이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의 '이순신 장군' 글귀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압력으로 현수막을 떼기로 했다. 연합뉴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매우 유감이다.'(strongly regret)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그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채택한 결정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유감'이라는 수사를 동원했지만 그 행간을 보면 군함도(하시마·端島)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때 약속한 것을 일본 정부가 전혀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질책이다.

2015년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할 무렵 국내외에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와 치부를 숨기고 미화하는 데 이골이 난 일본이 군함도의 어두운 역사를 부정하고 그 진실마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는 예견 때문이다. 이런 우려가 불과 몇 년 만에 현실이 됐다. 일본의 약속은 결국 등재 반대를 입막음할 구실이었음을 국제사회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일제의 만행 등 정치 외교적 쟁점에 대해 둔감한 국제사회를 상대로 자기 이권을 챙기고 영향력을 키워왔다. 국제 협력이나 교류로 치장한 이런 '분식(粉飾) 외교'는 정치와 경제, 문화, 체육 등 각 분야에서 벌여온 추잡한 로비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의 근본이 이런데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라고 그 불순한 의도가 바뀌겠나.

게다가 일본인들은 위안부·강제 징용 등 한반도 침탈의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할 때마다 한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비난해 왔다. 그런데 역사 부정은 그들의 특기다. 군함도 문제만 봐도 누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며 국제법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기는지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9월 도쿄 올림픽 유치 당시 일본은 '오모테나시'(대접이나 환대의 뜻)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마치 '군함도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처럼 말이다. 그러나 거창하게 떠벌린 '오모테나시'나 '군함도 약속'은 철저히 계산된 입발림이었다.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오모테나시에는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방식대로 군말 없이 따르라는 것이 오모테나시의 실체다. 손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식으로 계산만 하는 대접이나 환대는 누가 봐도 역겹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은 매사 껄끄러운 한국에 대해 유독 제멋대로 굴고 있다. 마치 나라 전체가 의기투합해 우리를 '이지메'하는 것처럼 보인다. 까다로운 상대에게 벌이는 이런 '이야가라세'(괴롭힘이나 복수)는 일본인에게는 익숙한 짓이다. 특히 일본 정부와 언론은 여러 외신 보도를 외면한 채 "한국만 후쿠시마 식재료 문제와 도쿄만 오다이바 경기장 악취 문제에 트집 잡는다"며 비난을 쏟아낸다. 제 잘못을 감추고 적당한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일본 특유의 비열한 수법이다. 이러니 선수촌의 골판지 침대가 조롱거리가 되고, 각국 IOC 위원을 모시는 전세기에 수십억 원의 세금을 쏟아붓는 얼빠진 짓이 나오는 이유다.

박경리 선생의 책 '일본산고'(日本散考)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는 대목이다. 곰배상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상을 말한다. 통속적이고 허접한 오모테나시보다 미련스러울 만큼 은근하고 두터운 정을 담아내는 곰배상이 차라리 더 낫다. 물론 여기에 일본, 일본인은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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