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대이은 '가업' 끊겼다…대구 명물골목, 이대로 사라지나

[중구 명물골목의 위기] 섬유산업, 인근 미군부대 군수물자 판매로 형성됐지만 산업 쇠퇴로 골목 침체
전기자동차 등 새로운 산업시대 앞두고 일감 없어져, 손가락만 빠는 실정
인근 아파트 재개발로 쫓겨나기도…"시끄럽고 위험하다" 민원으로 분통

2일 오후 대구 중구 미싱골목 모습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 오후 대구 중구 미싱골목 모습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섬유, 인쇄산업 등이 활발했던 1960~1990년대 생긴 대구 중구 명물골목들이 산업 쇠퇴와 재개발 바람으로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불황까지 더해지면서 원도심의 터줏대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점포수 감소…내리막길

중구의 명물골목 14곳 중 5~6곳은 1960~1990년대 산업 발달과 인근 공장들의 활황으로 생겨났다. 이들 명물골목은 ▷섬유경기 호조로 생겨난 대신동 양말골목‧미싱골목 ▷ 미군부대에서 불하된 폐공구나 군수물자를 팔며 형성된 북성로 공구골목‧교동전자골목 ▷자동차 수출이 활발하던 시기에 폐차장 산업과 함께 커온 남산동 자동차부속품골목 등이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점포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남산동 인쇄골목에서 36년간 인쇄업을 해온 A(65) 씨는 "인쇄업은 10년 전 성서출판단지가 생기면서 상인들이 대부분 성서로 옮겨가거나 가게를 접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자체의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서 인쇄업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사양 업종이다 보니 대를 이어온 사장들은 이제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업을 끝내려고 한다. 그냥 그대로 문 닫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 산업의 영향으로 생겨난 남산동 자동차부속품골목의 경우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들이 교체하고 고칠 수 있는 엔진 등 자동차 부품이 없어지면서 골목도 곧 사라지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차량 부속품을 파는 B(65) 씨는 "앞으로 전기차가 더 늘어나면 엔진 등 교체하거나 고칠 수 있는 자동차 부속품이 사라지지 않느냐. 안그래도 요즘 완성차 업체의 무상 A/S 시스템이 좋으니 차주들이 골목을 찾지 않는다. 골목에서 수리부터 교체까지 한 번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도 좀처럼 손님이 없다. 이 골목을 걸어보면 일이 없어 놀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산업 쇠퇴에도 일부 골목은 그나마 외국 관광객이나 수출을 통해 명목을 유지하지만 코로나19 타격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대신동 미싱골목의 원로 박병문(83) 씨는 "대구에 있는 이불이나 봉제 공장 등이 문을 닫았고 코로나19로 행사 등이 취소돼 단체복 주문이 엄청 줄어서 이곳 상권이 점차 위축되고 있다"며 "그나마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각지로 미싱을 수출하면서 살았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헐값으로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아예 주문이 없다. 미싱이 결혼예물로도 좋은 제품이었는데 이제는 옛날 얘기다. 옷에 흡집이 나면 세탁소나 수선업체에 가지, 집에서 수선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전자제품골목에서 30년 동안 무전기 및 CCTV 판매업체를 운영해온 사장 C(70) 씨도 "무전기의 주 수요층은 관공서, 행사진행업체, 호텔 뷔페 등인데 코로나19로 이런 단체 행사가 싹 다 없어지고 신규 개업도 줄어 수입이 반토막이 났다"며 "임대료 내기도 벅차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했다.

2일 오후 대구 중구 수제화 골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2일 오후 대구 중구 수제화 골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우후죽순 재개발로 골목 사라져

명물골목 곳곳에서 진행되는 재개발 사업도 골목 쇠퇴 이유 중 하나다. 특히 개발로 갈 곳을 잃은 상인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상가번영회 등이 사라지면서 상인들이 구심점을 잃고 있다.

현재 골목 내 재개발 사업이 진행됐거나 예정 중인 곳은 ▷대신동 양말골목‧미싱골목 ▷북성로 공구골목 ▷인교동 오토바이골목 ▷교동 귀금속거리 등이다.

노호삼 대신동 양말골목번영회 회장은 "양말골목은 대로를 하나 두고 대신동, 남산동 각각 나뉘어져 있었다. 원래 대신동보다 남산동 양말골목이 규모가 더 컸지만 옆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상인들이 흩어져 서부시장으로 넘어갔다"며 "상인들이 흩어져 있으니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고 타지에서 물건을 떼가던 도매 장사는 아예 안 된다"고 했다.

기계수리업 골목에서는 재개발 이후 기존 상인들과 아파트 주민 간의 갈등이 예상되기도 한다.

중구 인교동 오토바이골목의 경우 5년 전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아파트 주민들은 '위험하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오토바이 골목이 '유해시설'이라며 민원을 넣었다는 것.

북성로 공구골목 역시 소음이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로 새로 들어설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 마찰이 우려된다.

송병수 오토바이골목상가번영회 회장은 "재개발 이후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면 점포들이 하나둘 떠나 우리 골목은 사라지고, 식당이나 카페 등 주민들이 이용할 상업시설이 대거 들어설 것"이라며 "5년 전 번영회 차원에서 단체 이전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토바이 업체 여러 곳을 한꺼번에 받아줄 지역을 찾기 힘들어 결국 없던 일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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