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아파트도 고향이 될 수 있다

대구 수성구 일대 아파트 단지. 매일신문 DB
대구 수성구 일대 아파트 단지. 매일신문 DB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텃밭 가꾸기는 흥미로운 취미이자 건강한 먹을거리 장만, 환경보전, 이웃 간 소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시인들의 텃밭 가꾸기가 취미를 넘어 환경보전과 이웃 간 소통에 기여하자면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도시 농부가 집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의 근교 밭에서 상추를 재배한다고 하자. 그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기에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기른 상추는 유기농 상추가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텃밭을 가꾸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텃밭에 오가느라 길에 쏟아낸 자동차 배기가스는 환경보전에 정면으로 역행한다. 먼 나라에서 수입해 온 채소보다 오히려 푸드 마일리지 {식재료가 생산자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발생하는 환경 부담. '식품 수송량(t)Ⅹ수송 거리(㎞)'로 나타낸다}가 더 클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채소는 대량으로 들여오기 마련이고, 단위 채소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근교 텃밭에서 소규모로 재배한 상추보다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농부 자신은 유기농법으로 채소를 가꾸고 있다지만, 실제로는 수입 농산물보다 환경에 더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근교의 홀로 떨어진 곳에서 텃밭을 가꿀 경우 이웃과 나눔·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환경과 이웃 간 소통까지 생각하는 텃밭 농사를 짓자면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텃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심의 집 근처에서 텃밭을 구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도심 내 텃밭 확보와 관련해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화단이나 조경 면적을 텃밭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구시 조경 관리 조례는 면적 200~1천㎡ 미만의 건물을 지을 경우 전체 면적의 5%를 조경 시설로 갖추도록 하고 있다. 그 이상의 건축과 택지개발에도 일정한 비율로 조경 면적을 갖추도록 정하고 있다. 조경 시설이란 생활 주변 경관 향상과 시민 정서 순화를 위해 설치하는 시설 혹은 식물을 말한다. 건축조례상 조경 시설에는 나무, 잔디, 꽃, 지피식물 등 식물과 분수, 조각, 동상, 의자, 그늘 시렁, 정원석 등이 있다. 텃밭에서 흔히 가꾸는 채소는 대부분 조경 식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구시 조례를 개정해서 건축법상의 조경 면적에 '도시농업시설'을 포함하면 주거 공간 인근에 상당한 면적의 '텃밭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건물을 신축할 때 법정 조경 면적 별도, 또 텃밭 면적을 별도로 확보하자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큰 만큼 '텃밭'을 '조경 시설'에 포함해 '텃밭 부지'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전체 조경 면적에서 일부만 텃밭으로 활용해도 상당한 면적의 텃밭을 확보할 수 있다.

도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수천 가구가 입주해 살지만, 철문과 벽으로 격리돼 사실상 우리 가족만 사는 외딴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까닭에 바로 옆집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시 텃밭은 이웃 간의 소통과 공동체 문화 형성, 이웃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아파트 텃밭을 통해 '이웃'을 알게 되고, 주민들이 인사를 나누기 시작하면, 아파트 단지는 '숙소'가 아니라 '마을'로 거듭나게 된다. 아는 사람이 많은 동네, 상추와 시금치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네에서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얻고, 노인은 외로움과 서글픔을 덜 수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다고들 한다. 아는 사람이 많고, 추억이 쌓이면 아파트도 '고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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