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며느라기’, 며느리가 겪는 일상 속 먼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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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TV ‘며느라기’, 막장이 아니라 더 실감나는 시월드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웹툰 '며느라기'의 한 장면

본래 '며느라기'는 수신지 작가의 웹툰으로도 이미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결혼 후 며느리가 시월드에서 겪는 갖가지 불평등한 상황들을 담담하지만 신랄하게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최근 카카오TV에서 20분 남짓 숏폼 드라마로 제작돼 큰 공감을 얻고 있다.

◆막장과는 너무나 다른 '며느라기'의 시월드

흔히 '시월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시어머니가 김치로 싸대기를 올리고, "감히 어디서" 혹은 "니까짓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막장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시월드 속 시댁 식구들은 과연 인간일까 싶을 정도로 그려지곤 한다.

이른바 '뒷목 잡는 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생긴 건, 상당 부분 몰상식한 시월드의 세계가 보는 이들의 분통을 터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그런 몰상식한 시월드의 몰락을 보기 위해 채널을 돌리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막장드라마 속 시월드는 현실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실을 은폐한다. 그런 막장드라마를 보며 시어머니들은 말한다. 세상에 요즘도 저런 시어머니가 있냐고. 그렇게 과장되어 괴물화된 시월드는 그래서 그것이 허구라는 걸 오히려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지금은 과거와 달라졌고, 그런 시월드는 막장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치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시대는 바뀌었고 그래서 시월드도 사라졌을까.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 포스터
카카오TV 웹드라마 '며느라기' 포스터

수신지 작가의 웹툰을 드라마화한 '며느라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월드는 그런 막장드라마 속 과장된 세계가 아니라, 너무나 평온한 듯 당연하게 보이는 일상 속에 먼지처럼 스며있는 차별 속에 있다고 말한다. '며느라기'의 민사린(박하선)의 남편 무구영(권율)이나 그의 부모인 무남천(김종구)과 박기동(문희경), 그리고 그의 형 무구일(조완기) 또 여동생 무미영(최윤라)은 누구 하나 드러내놓고 '몰상식한' 말들을 꺼내놓는 그런 인물들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어머니 박기동의 생신상을 며느리 민사린이 차려주면 너무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하는 시누이 무미영은 그런 요구를 하면서도 "일하느라 바쁜데 아무래도 어렵겠죠?"하고 되묻는다. 또 시댁에 생신상을 차려주기 위해 전날 찾아온 며느리에게 시부모들은 꽤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평온한 듯한 세계 속에서 민사린은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언짢음을 느낀다. 시댁 식구들이 모두 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 혼자 과일을 깎아 내오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일어나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리는 민사린은 그걸로 점수를 딸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런 잘 보이려는 행동들이 변화시키는 건 없다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설거지 하는 동안 깎아 내놓은 과일을 다 먹고는 남은 거라도 먹으라며 "너랑 나랑 한 개씩 먹어치우자"고 말하는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는 드디어 깨닫는다. 시월드에서 자신은 그런 거나 '먹어치우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웹드라마 '며느라기' 장면 캡처
웹드라마 '며느라기' 장면 캡처

◆너무 담담해 공포감을 주는 시월드의 당연한 생각들

이 드라마가 놀라운 건 이런 며느리(혹은 예비 며느리)가 받는 이러한 취급이 시월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공기처럼 퍼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자친구네 저녁 초대를 받아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회사 동료가 밥 먹고 나서 설거지는 자신이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에 다른 동료가 "너 가사도우미 면접 보러 가니?"하고 던지는 일침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민사린 스스로도 시어머니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생신상을 차려주며 시댁에서의 갖가지 독박 노동을 감수했던 것처럼, 며느리의 그런 노심초사는 사회가 여성들에게 당연한 듯 부과하고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친정엄마조차 자신의 딸이 사부인에게 잘 보이는 것이 자신의 면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부인 생신상은 잘 차려 드렸니? 네가 잘못하면 다 엄마 흉 되는 거 알지? 우리 사린이야 말 안 해도 잘 하겠지만 예의 바르게 공손히 잘 하고 출근 잘 해라.'

시부모에게 잘 하는 며느리를 이른바 '착한 며느리'라고 부르며 그 차별적인 독박 노동을 강요하는 건 시어머니만이 아니고 친정엄마도 심지어 남편도 마찬가지다. '며느라기'가 2회에 보여준 착한 며느리를 포기한 무구영의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명절에 시댁에서 그 실상을 대놓고 팩폭하는 장면은 '착한 며느리'라는 허상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끄집어낸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 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 씨와 미영 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 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착하다'는 말 한 마디로 며느리들에게(자발적인 시어머니도 포함해) 모든 노동을 떠안게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에 대한 질타가 거기 담겨 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 그 일을 겪었던 무구영이 민사린을 만나러 가며 하는 생각은 너무 담담하고 당연하다는 뉘앙스로 오히려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무구영의 이 생각 속에는 엄마와 며느리의 노동을 '착하다'는 의미로 당연하게 내면화하고 있어 그 부조리함을 깨닫지 못하는 남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이 이럴진대 세상은 오죽할까.

웹드라마 '며느라기' 장면 캡처
웹드라마 '며느라기' 장면 캡처

◆20분이라는 숏폼이어서 강력해진 메시지

'며느라기'는 카카오TV에서 매회 20분 남짓의 숏폼 드라마로 방영된다. 그런데 이 짧은 형식이 아니었다면 '며느라기'가 갖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 숨겨진 디테일한 먼지 차별의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었을까 싶다.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잠재적으로 그려져 있는 1시간에서 심지어 1시간 반에 이르는 드라마의 분량은,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로 애초부터 채우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다. 사실 '며느라기'의 지극히 소소하고 심지어 그런 먼지 차별에 익숙해져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둔감하게 여길 수 있는 내용은 1시간 남짓의 드라마로는 효과적일 수 없다. 억지로 늘인다면 다소 느슨한 드라마가 될 것이고, 몰입도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분 남짓의 숏폼으로 만들어지면서 '며느라기'는 군더더기 없이 채워진 드라마가 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장면 하나하나가 불필요한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는 압축미를 보여준다.

본래 이런 압축미는 '며느라기'의 원작 웹툰이 가졌던 덕목이기도 하다. 한 컷 한 컷 속에 압축적으로 담아낸 대사들과 민사린의 담담하게 시작해 불편해지는 표정들이 효과를 만들어냈던 것도, 짧지만 많은 여백들을 남겨둬 오히려 독자들이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게 해줘서였다.

마찬가지로 드라마화된 '며느라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똑같은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미세먼지처럼 잘 보이지 않아 차별인지조차 잘 인지하지 못했던 며느리들의 저마다 경험치가, 작품이 구현해낸 그 일상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생겨난 일이다.

'며느라기'는 그런 점에서 드라마의 다양한 형식이 어째서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형식의 틀로 봐야 드디어 더 제대로 보이는 세계가 존재한다. 지배적인 장편 드라마들의 세계 속에서 소외되는 소재들이 있다. 가부장제 틀의 관점이 당연시됨으로써 소외되는 며느리들의 세계가 존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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