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맞으면서 어딜 간다는 건지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마라톤은 인간이 만든 스포츠 중 가장 이상한 게임이다. 40㎞가 넘는 거리를 줄곧 달려 체력의 바닥까지 확인하는 고약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달리기를 선택한다. 자신과 싸우고 극한의 거리와 다툰다는 매력에 이끌려서다.

끈기와 오기는 마라톤의 핵심 가치다. 이런 가치를 가슴에 달고 결승점에 닿으려면 컨디션 조절과 경기 운영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제 역량을 넘어서는 오버 페이스는 치명적이다. 빼어난 건각도 페이스를 잃으면 다리가 꺾인다. 요즘 마라톤 경기에서 체력 안배를 돕는 '페이스 메이커'를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도 풀코스 마라톤 선수와 다르지 않다. 가치와 목표라는 상대와 끊임없이 다투기 때문이다. 가치는 철학에 기반하고 목표는 공동선과 공익에 수렴한다. 말하자면 정치 행위는 선의의 시체들로 어지러운 지옥 가는 길을 피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목표가 수단을 언제나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마키아벨리도 말하지 않았나. 가치나 선의, 목표가 절대적이라면 특정한 상황에 적합한 방법이 다른 조건하에서는 재앙일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내년은 올해보다 경제 사정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얼마 전 간담회에서 "반도체 호황이 경제를 이끌어왔으나 3~4년 뒤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기업은 불확실성에 몸을 움츠리고 국민은 다급하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목을 빼고 기다려도 정부에게서 솔루션을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기업 형편도 그렇지만 팍팍한 민생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근심은 천근만근이다.

정치에서 부패와 독선, 무능은 이음동어다. 이는 경제적인 결과를 낳는 정치 문제로 퇴보의 지름길이다. 기회가 사라지고, 혁신은 무산되며 기업가 정신과 투자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가치와 포용, 선의의 방패가 아무리 두꺼워도 현실의 날카로운 창을 막아내기가 어려운 게 이치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20개월을 넘어서고 있다. 60개월의 꼭 3분의 1이다. 국가 경영을 책임진 리더로서 증명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금은 촛불의 염원으로 세운 국가 지도자의 이상과 민생의 현장이 서로 간극을 드러낸 난국이다. 가치 지향의 오버 페이스가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억누를 건 누르고 미룰 건 미뤄야 하는데 대통령이 가치의 절대성만 좇은 탓이다. 개혁의 명분에 집착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노란 조끼' 시위로 궁지에 몰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맞으면서 가겠다"는 집단 오기로 충만하다. 현 정부 DNA에 돌연변이는 없다는 지독한 고집이다.

지도자의 평가에서 도덕성과 대중으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인품은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지혜로움이다. 아무리 호감 가는 지도자라 하더라도 분별력이 떨어지면 큰 흠이다. 잘못된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냉정한 결단은 지도자의 몫이다. 그렇지 않고 결정을 미루거나 반전의 시늉만 한다면 목표점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성장한다면서 역성장하고, 혁신의 구호 뒤에 규제의 벽은 더 두터워지는데 과연 포용국가가 제자리를 잡을 지는 누가 더 잘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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