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장하성의 오만한 무지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5세기 독일의 신학자·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zanus)는 유한한 인간은 절대자인 신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신에 대한 인간의 알지 못함/알 수 없음, 즉 인간의 앎/지식의 한계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쿠자누스는 이런 겸양을 'de docta ignorantia'라고 명명했다. 그의 대표 저서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의 뜻은 '박학(博學)한 무지' '깨달은(또는 깨달아 안) 무지'이다. '똑똑한 바보'처럼 형용 모순인 이 표현을 통해 쿠자누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박학한 무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가 아니라 무지함을 깨달은 '똑똑한 무지'이며, 참된 앎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지혜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에 대한 인간의 앎/지식도 무력하고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임마누엘 칸트는 '물(物) 자체'(Ding an sich, 사물의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서 '물'을 '세상'으로 바꿔놓아도 칸트의 명제는 유효하다. 그 누구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완전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참 지식도 이런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자신의 앎/믿음이 틀린 것으로 드러났을 때 버리거나 고치는 겸손한 앎이기도 하다. 올바른 정책은 여기서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믿음은 이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믿음(집착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은 '나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오만한 무지'다.

최저임금 인상 이후 저소득층의 소득은 도리어 줄고, 소득의 원천인 일자리는 줄어들며, 소득 양극화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최저임금을 올리면 가계소득이 올라가고, 이는 소비지출을 늘려 기업 투자 증대로 이어지고, 이는 고용을 늘려 다시 가계소득이 증가한다는 '행복한 시나리오'만 생각한 그의 지식의 얄팍함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비율이 선진국 평균의 두 배를 넘는 25%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과당 경쟁으로 이들은 이미 생존의 한계에 와 있다. 최저임금 폭등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숨겨진 비밀'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그의 믿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조차 무시한 게으름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그의 방어 논리는 한마디로 요설(妖說)이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등치(等置)시켜서는 안 되며,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소득주도성장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경제 이론의 하나가 아니라 무오류(無誤謬)의 도그마다. 이런 사고 구조에서는 현실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인다. 국민소득이 줄고 성장률은 뒷걸음치는데 그는 "거시적(!)으로 적정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50년대 미국의 외교관이자 전략가인 루이스 할레는 외교정책은 세계에 반응해서가 아니라 의사결정자들이 상상한 세계상에 반응해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세계상이 실질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거짓인 한, 아무리 유능한 전문가라도 그러한 세계상을 바탕으로는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문재인 청와대와 장하성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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