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남북, 경쟁 잘만 하면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남북 강산이 두 쪽으로 갈라진 지도 벌써 70년이 넘었다. 그러는 사이 서로 가는 길이 닮은꼴이기도 했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했다. 이는 남북 강산의 하늘과 땅, 사람의 기운이 서로 작용하는 바가 달라서일 것이다. 서로 경쟁하며 견제하기도 했고 상대를 거울삼아 다른 길로 나선 일들도 숱했다. 남북 강산의 다른 두 체제는 그렇게 지금까지 지냈다. 되돌아보면 배울 바가 없지 않은 그런 역사임이 틀림없다.


먼저 경쟁이 성공적인 결과로 끝난 일, 토지개혁이다. 이는 1945년 8월 광복 이후 북쪽에서 먼저 시작돼 1946년 3월 마쳤다. 그 거센 바람은 남쪽으로도 불어닥쳤고 남쪽 해방 정국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러나 친일 지주 등 반대 세력에 부딪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0년 3월, 한국전쟁 직전에야 공포될 수 있었다. 이는 식민 지배 독립국 가운데는 성공 사례가 드물 만큼의 성과였다. 비록 두 쪽의 개혁 방식은 달랐지만 빼앗긴 땅을 백성에게 돌려주는 목표는 같았다. 두 체제의 성공작이었다. 남쪽은 이로 인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다음은 불행한 경우다. 1960, 70년대, 남한 독재와 북한 세습의 씨앗을 뿌린 일이다. 남에서는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고, 북에서는 1967년 김일성의 유일 독재 체제가 구축되고 김일성은 수령에 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남에서는 장기 집권을 위한 1972년의 10월 유신과 11월 유신헌법이, 북에서는 세습을 위한 1974년 유일 체제 10대 원칙 제정과 김정일 후계자 결정이 이뤄졌다. 가지 말아야 할 닮은꼴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총탄 서거라는 오점을, 북은 유례없는 독재 세습 국가의 오명을 얻었다.


1980, 90년대의 모습도 새길 만하다. 남쪽은 1987년 민주화로, 반면 북한은 1980년 김정일의 세습 공식화로 한 획을 그었다. 또 남쪽은 1988년 하계 올림픽으로, 북쪽은 맞불로 1989년 제13회 세계청소년축전을 열어 세 과시 경쟁의 길을 걸었다. 게다가 1990년대 남북은 각각 최대 규모 고통의 동병상련을 겪었다. 남쪽이 1997년 '단군 이래 최대 위기'의 IMF 경제난을 만났고, 북쪽은 1995~200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인 '고난의 행군'으로 무려 33만~300만 명이나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대재앙에 시달렸다.


2000년대의 남북은 두드러졌다. 두 차례(2000년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 북한의 두 차례(2006년2009년) 핵실험, 서해 무력 충돌(2002년 2009년)로 남북이 맞은 기회와 시련의 시기였다. 특히 2010년대는 더욱 그랬다. 먼저 권력 이동이다. 남쪽에서는 촛불 시위 끝에 2017년 진보 정권이 들어섰다. 북에서도 2011년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3대 세습 정권이 출범했고 그는 도발의 날을 보냈다. 2013~2017년 네 차례 핵실험, 2018년에는 한 달 만에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의 직통 전화도 갖게 됐다.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보면 앞으로 남북 강산에 다가올 일에 더욱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강산을 휘감는 바람의 세기도 예사가 아니어서다. 무엇보다 북쪽의 '위로부터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김정은 출범 10년이 가져올 변화의 바람은 지금까지 70년 세월의 바람과는 분명 다르다. 바람의 방향도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혹 남북 토지개혁에 버금갈 일의 징조 바람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구상 이후 불어오는 남북 강산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촉감이 좋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 9월 22일 0시 기준 )

  • 대구 41
  • 경북 27
  • 전국 1,72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