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선거가 기다려진다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는 생물이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지만, 적어도 대구경북에서는 그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 요즘 유행어로는 선거가 무슨 '불가역적(不可逆的) 대상'이 아닌데도,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됐으니 남사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런 현상이 30년간 계속되면서 특정 정당 구성원들은 썩어 문드러졌고, 유권자마저 우습게 여겼다. 국회의원이 되고,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중앙당 실력자에게 손을 비비고 줄만 서면 될 터인데, 귀찮고 힘들게 지역민에게 봉사할 필요가 없었다. 일부는 고향을 위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지역민을 팔아 출세 가도를 달렸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전부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무책임' '무소신' '무능'의 대명사들이 설치고 행세한 곳이 대구경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황량한 배신의 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모양이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경북의 판세가 요동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이번만큼 박진감 있고 흥미진진한 선거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골 군(郡)까지 한국당과 민주당 혹은 무소속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에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보름 전만 해도 '대구경북마저 이럴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기자 생활 헛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대구시장·경북지사 선거에서 한국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지 10%포인트 이내의 지지율 차이를 보인다는 소식부터 경천동지할 일이다. 1995년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선거다운 선거가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다. 지역 민주당 인사들 숫자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상황에서도 이럴진대, 좀 더 경쟁력 있는 인물이 나왔더라면 뒤집어졌을 것이 확실하다.

선거판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바람' 혹은 '민심의 흐름'이라고들 한다. 전국적으로 민주당이 휩쓸고 있는 판세를 두고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대구경북의 변화는 좀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이다. 수십 년간 쌓이고 쌓인 모순과 적폐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지역에서 한국당에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민심의 반영이 아닐까.

한국당의 구태의연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공천 과정을 보면 민심이 이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의원들이 공천권을 휘두르면서 능력과 경력이 의심스러운 인사,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대거 공천했다. 후보가 주민에게 봉사할 수 있을지 여부는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들 국회의원은 탐욕과 오만에 젖어 희한한 방식의 '사천'(私薦)을 자행한 걸 보면 시대가 달라진 줄 모르는 듯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야말로 대구경북에 '한국당 독주시대'를 종식시킨 주역 중의 주역이다.

이번 선거 후에는 대구경북은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곳이 아니라 '공존'과 '균형'이 가능한 지역으로 바뀔 것이다. 특정 정당이 군림하면서 온갖 악취를 풍겼으니 맑고 깨끗한 공기가 유입돼야 한다. 이제는 유권자를 받들어 모시지 않으면 어떤 정당이든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인에게 경쟁을 시키고 성과를 가져오는 정당에게 표를 주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다고 필자를 정부·여당 편이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라. 지역을 발전시키려면 정당 간 경쟁이 필요하다고 믿는, 소심한 기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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