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지렛대가 많아야 일하기 쉽다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가 요즘 안팎으로 바쁘다. 4월27일 이후 한달남짓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은 '당사자'로, 또 '중재자'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정은과 두차례나 얼굴을 마주했고,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와 나란히 앉았다. 그렇지만 몇 시간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비핵화' 협상은 문 대통령에게도 어려운 시간표다. 그러나 문재인의 외교(外交)가 '한반도 평화'에 초점이 맞춰진 이상 반드시 풀어야할 과제다.

트럼프의 전격적인 북미 회담 취소에서 보듯 무슨 일이든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고산준령을 오르는데 늘 맑은 날씨만 바랄 수 없지 않나.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입에 내뱉고 돌아서자마자 반전의 스프링이 작동한 것도 대사(大事)의 속성이다. 잠시 포트홀(Pothole)에 빠졌던 수레바퀴가 다시 구르기 시작한 것은 어떻든 다행한 일이다. 험담에 열을 올리던 미'북 외교 실무자들이 판문점으로, 싱가포르로 바삐 움직이며 회담 준비를 서두르는 것도 보기에 전혀 나쁘지 않은 장면이다.

이쯤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아무런 문제 없이 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하게 내세웠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의 당사자라는 인식에서다. 하지만 핸들을 쥐었다고 내가 생각한 경로나 계획대로 차가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차가 매끄럽게 잘 굴러가도록 돕는 윤활유의 역할도 운전자의 존재나 위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낡고 녹이 낀 기계일수록 질 좋은 윤활유가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까지 한반도 긴장 완화와 비핵화 문제가 매끄럽게 풀리도록 자리를 깔고 테이블을 놓는데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목표를 의식한 나머지 간혹 무리수를 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산 정상에 오를 때 줄곧 오르막만 오르면 된다는 착각과 마찬가지의 경우다. 더 높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내려가거나 돌아가는 길도 숱하다.

미국은 남북 평화 잔치에 빼놓을 수 없는 지렛대다. 중국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 변수이기는 하나 지금은 먼지만 일으키는 고약한 참견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본은 잔치를 망치려고 줄곧 비를 뿌려대는 존재감 약한 훼방꾼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남북 평화라는 공감대가 아무리 넓고 두터워도 주변에서 얼마나 큰 박수를 쳐주는가도 중요하다.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눈밭에 뿌려진 굵은 모래와 같은 존재일지 모르나 앞으로 그들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보태야할 손이라는 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렛대가 많아야 힘이 덜 들고 일하기도 쉬운 법이다.

기술자의 가방에는 수많은 연장이 들어 있다. 어떤 돌발 변수에도 너끈히 일을 풀어가기 위해서다. 문 대통령의 가방에는 과연 쓸모 있는 연장이 얼마나 될까.

국민이 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한반도 평화라는 외교무대를 흥행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국민은 어설픈 프로모터가 아니라 냉정한 중재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반도 평화라는 소명의식과 역사적 책임감 못지 않게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내는 세련된 기술자 말이다. 복잡한 원리나 어려운 기술을 쓰고도 실제 결과는 간단하거나 쓸모가 별로 없는 '골드버그 머신'(Goldberg machine)이 아니라 단순한 원리나 구조로도 복잡한 기술을 구현해내는, 유능한 매치메이커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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