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위를 보고 걷자' 日 특유 정서 담아내 세계적 사랑받은 곡

한일 수교 3년 전인 1962년 5월 12일 밤, 세종문화회관에서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가 '위를 보고 걷자'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노래가 해방 뒤 최초로 한국 공식 석상에서 불린 일본 노래이다. 그날 아세아 영화제 전야제에서 사카모토가 일본이 출품한 '위를 보고 걷자'라는 영화의 주제곡을 부른 것이다. 그때까지 국교가 없던 일본이지만 문화교류라는 취지에서 '위를 보고 걷자'라는 영화를 출품하였고 역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공(중국공산당 정권'중국)에서는 '태풍'을 출품하였다. 홍콩은 '종말 없는 사랑', 필리핀은 '아리 아리 기타'를 출품하였다. 위를 보고 걷자는 1961년 도시바 레코드에서 발매하여 일본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은 뒤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빌보드 차트에서 3주 연속 1위를 한다. 그 뒤 아시아에서는 1997년 필리핀의 프레디 아귈라가 '아낙'으로 5위를 하였고 2012년 11월 우리나라 싸이가 7주 연속 2위를 하여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요즘은 방탄소년단이 7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오'라는 일본 곡목이 발음하기 힘든 서양에서는 일본 불고기 이름인 '스키야키'라는 노래로 소개되어 현재도 이 노래를 곡목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혜성처럼 빛나던 사카모토는 1985년 8월 43세에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사람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한창나이에 요절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본항공 외에는 절대로 타지 않던 사카모토가 그날은 일정이 바쁘고 일본항공 비행기 표가 없어 전일항공을 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하긴 그만한 영광을 누렸다면 그쯤에서 죽는 것도 크게 허무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위를 보고 걷자의 노랫말은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들어 위를 보고 걷자'라는 말이 반복된다. 보통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실연한 사람이 깨어진 사랑을 그리며 부르는 노래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는 남녀 이별의 아픔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이 가사를 쓴 에로쿠스케는 1950년대 말 일본을 뒤흔든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나중에는 시위까지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투쟁한다. 그러나 그의 뜻은 좌절되고 만다. 이 가사는 그의 정치적 이념적 좌절의 슬픈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질질 짜며 실패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이를 악무는 한 사나이의 모습을 가사에서 본다. 대성통곡하며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방식과는 다른 일본식 불만의 승화이다. 원자탄으로 박살이 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사람들을 만나보면 절대로 흥분하여 미국 사람을 욕하는 법이 없다. 욕은커녕 절대로 감정조차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눈물을 감추고 말없이 있어도 그들의 표정과 언어의 행간에 흐르는 깊은 분노와 적개심을 느끼는 사람은 느낀다.

사카모토는 도쿄와 요코하마 가운데 있는 도시 가와사키 출신이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 도시에서 하루 종일 J.R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울리는 신호음은 '위를 보고 걷자'를 오르골로 편곡한 것이다. 대구의 지하철은 전차가 들어올 때 요란한 기계음을 울리며 주위를 소란하게 한다. 짜증 난다. 알린다는 기능 면에서는 뛰어난 방법일지 몰라도 인간의 정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행동이다. 대구에서도 세계적 음악가가 탄생하여 대구 역에서 전철 도착 때 그의 음악이 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지금이라도 계성고 출신 박태준의 '동무생각', 대건고 출신 남일해의 '이정표', 계성고 출신 도미의 '청포도사랑', 대륜고 출신 여운의 '과거는 흘러갔다', 영남고 출신 신세영의 '전선야곡', 경북고 출신 손시향의 '검은 장갑 낀 손' 등 대구 출신 가수들의 노래가 신호 음악으로 울리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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