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매일 신춘문예/시조] 동강할미꽃의 재봉틀-김태경

김태경
김태경
박기섭(심사위원)
박기섭(심사위원)

◆동강할미꽃의 재봉틀

김 태 경

솜 죽은 핫이불에 멀건 햇빛 송그린다

골다공증 무릎에도 바람이 들이치고

재봉틀 굵은 바늘이 정오쯤에 멈춰 있다

문 밖의 보일러는 고드름만 키워내고

숄 두른 굽은 어깨 한 평짜리 가슴으로

발틀에 하루를 걸고 지난 시간 짜깁는다

신용불량 최고장에 묻어오는 아들 소식

호강살이 그 약속이 귓전에 맴돌 때는

자리끼 얼음마저도 뜨겁게 끓어올랐다

감치듯 휘갑치듯 박음질로 여는 세밑

산타처럼 찾아주는 자원봉사 도시락에

그래도 풀 향기 실은 봄은 오고 있겠다

◆[당선소감] "말과 행동이 아름다운 새로운 길 걸어가겠다"

'입 다문 꽃봉오리 무슨 말씀 지니신고

피어나 빈 것일진댄 다문 대로 곕소서'

이은상 시인의 양장시조입니다. 꽃잎을 피우기 전, 입 다문 꽃봉오리가 지니고 있는 긴장과 아름다움이 4음보의 율격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화자의 설렘과 바람이 진솔하게 드러나 숭고함이 느껴집니다. 왜 시조냐고 묻습니다. 12년 전에 만난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은 이토록 큽니다. 한눈에 반해버린 시조에 대한 매력은 이제 생활이 되었고, 시조를 향한 발걸음은 창작과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열심히'가 아니라 '치열하게!' 쓰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균형 잡힌 시대의식과 꿀을 따는 호랑나비 같은 감성으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구축해 가겠습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몸을 더 낮추어 여린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부터 실천해야겠습니다.

한 발 내딛기가 그토록 어려웠던 시조라는 광장으로 문을 열어주신 박기섭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자랑스러운 시조 시인이 되는 것으로 평생에 걸쳐 큰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오래 지켜봐 주시기를 감히 청해 올립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시조를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곁에서 지켜봐 주며 함께 아파해 준 가족,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열린시조학회의 여러 선생님과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선배 문우님들께 오늘의 영광을 바칩니다. 말과 행동이 아름다운 시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1980년 서울 출생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2014년 《열린시학》 봄호 평론 등단

건국대'중부대 출강

◆[심사평] 재봉틀에 담긴 신선한 시상·치밀한 결구 돋보여

시조는 정형시다. 그래서 형식의 준거를 따지고 완결의 미학을 운위한다. 시조 형식의 핵심은 맺고 푸는 데 있다. 맺되 옹이를 지우고, 풀되 굽이치는 여울을 둔다. 그럼으로써 율격의 자연스러움을 담보하는 것이다. 신춘의 원고 더미를 앞에 두고 선 자는 그 '옹이'와 '여울'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부푼다.

막상 심사에 들어가자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응모작들의 다양한 경향성이다. 특정 주제에 쏠림이 없거니와, 20대에서 70대에 걸친 폭넓은 연령층에 지역도 수도권과 제주를 포함한 거의 전국이 망라되어 있다. 시조에 만연한 자연서정이나 역사인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반면, 당대 삶의 여러 풍경에 직핍한 현실 대응 시편들이 두드러진다. 또한, 묻혀 있던 순우리말과 사투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도 매우 활발하다.

최종심은 말 그대로 각축이다. 어금지금하고 어련무던한 작품들 속에서 단 한 편을 가리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숙고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김태경의 '동강할미꽃의 재봉틀'과 송가영의 '아침을 깁다'다. 공교롭게도 두 편 다 '재봉틀'의 서정이다. 쉬 우열을 가리지 못한 것은 두 대의 재봉틀이 연이어 선자의 시선을 '박음질'한 탓이다. '아침을 깁다'가 보여준 정제된 사유와 숙련된 시상은 오랜 습작의 결과물이다. 하나, 선자는 능숙한 바느질보다 '동강할미꽃의 재봉틀'이 들고나온 '굵은 바늘'의 가능성에 더 높은 값을 치기로 한다.

'동강할미꽃의 재봉틀'은 시상의 발화가 신선한 데다 치밀한 결구가 돋보인다. 우리나라 특산인 동강할미꽃을 제목으로 한 데서 이 작품의 작의는 분명해진다. 늙도록 '발틀에 하루를 걸' 수밖에 없는, 그것이 이 땅 오늘의 엄연한 삶의 실존임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솜 죽은 핫이불' '고드름' '자리끼 얼음' 같은 이미지가 그런 삶의 신산을 대변한다.

재봉틀 굵은 바늘은 생존의 한복판인 정오쯤에 멈춰 있다. '감치듯 휘갑치듯 박음질로 여는' 세상에도 풀 향기 실은 봄은 오는 것을. 그 봄의 전언이 생존의 질곡 속에 더욱 선연한 희망의 빛을 던지리라.

생존 현실의 비애를 그려낸 '당신이 잠든 사이'(나동광) '어시장 삽화'(정영화) '일어서는 골목'(이현정), 삶의 현장 정서를 떠올린 '빨래'(윤애라) '뻐꾹새 탁란'(박주은) '목발'(박한규) '요양원 가수'(김수환), 환경과 인간의 문제를 결속한 '땅, 흔들리다'(이정은) '워낭 풀등'(엄미영), 유일하게 사설시조의 가능성을 접목한 '노랑무늬영원'(권규미), 그리고 20대의 활달함으로 꿰맨 '신발의 역사'(서희) 등도 오래 눈길이 머문 작품들이다. 정유년 신춘의 빗장을 열어젖힌 또 한 사람의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모든 투고자들의 분발을 빈다.

(심사위원: 박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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