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매일 신춘문예/단편소설] 닭을 먹다-김호애

삽화:전숙경 작가
삽화:전숙경 작가
김호애
김호애

닭을 먹다/김호애

오늘도 또 우리 암탉이 막 쫓기었다.( ※김유정 「동백꽃」의 문장을 빌려 바꿈.)

마루에서 단잠에 빠져 있다 푸드덕 소리에 잠에서 깼을 때였다. 그 먼 길을 어떻게 찾아온 건지 수탁네 수탉이 우리 집 앞마당까지 찾아와서는 내 귀여운 암탉 목덜미에 콱콱 부리를 박고 있었다. 암탉은 반항 한 번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발이라도 빠르면 모를까, 한 번 쪼이고 얼마 못 가 또 붙잡혀 쪼이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상했다. 안 그래도 수탁에게 빌린 돈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쪼이는 마당에, 닭까지도 수탁네 닭 앞에 맥을 못 추는 걸 보니 자존심이 상했다. 막대로 바닥을 때려 수탁네 닭을 쫓아내고 우리 집 암탉을 두 손에 번쩍 들어 올렸다.

"몸은 비리비리. 눈빛은 흐리흐리. 네 부리는 멋으로 달고 다니냐?"

나는 암탉에게 소리를 질렀다. 닭은 두리번댔다. 찢긴 면두가 덜렁였다.

"뭐하니?"

마당에 들어선 아내가 한심한 듯 물었다. 지친 얼굴엔 짜증이 한 가득이라 나는 절로 움츠러들었다.

아내는 수탁네 마누라에게서 꿔온 보리쌀 한 자루를 평상 옆에 기대어 놓고 그걸 세게 찼다. 자루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내는 니가 그렇게 잘났어? 어? 어?, 하며 자루를 세 번 더 찼다. 기어이 자루가 옆으로 쓰러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내는 평상에 배를 보이고 누워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아휴, 여편네. 잘난 척은. 열 받아, 정말."

아내는 누운 채 눈을 치떠 나를 올려다보았다.

"자꾸 괴롭히지 마라. 콱 잡아먹어 버리기 전에."

암탉이 내 팔목을 차고 품에서 빠져나갔다. 뛰어내린 닭은 곧장 자루 쪽으로 향했다. 그러곤 바닥에 떨어진 곡식 낱알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아내는 눈물을 훔치고 몸을 일으켜 가만, 닭을 내려 보았다. 나는 아내를 피해 방으로 들어갔다.

방엔 지난해 아흔을 넘긴 노모가 자고 있었다. 움직임이라곤 전혀 없는 납작한 등에 놀란 것도 잠시, 노모가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채 눈곱을 떼고 옷매무새를 만지고 손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훑어 귀 뒤에 바짝 대 꽂은 다음에야……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릴 것 없는 앞섶을 가리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이데야 오세요."

노모는 이가 다 빠진 입으로 수줍게 웃었다. 손으로 입을 가렸는데, 막상 입보다도 손이 작아 오그라든 인중이 훤히 보였다.

"막녀는 또 어딜 갔대요?"

노모가 물었다. 여기서 막녀란 젊었던 시절 노모의 시중을 들던 몸종 이름이었다. 이래 봬도 노모는 가진 건 땅밖에 없는 집안의 외동딸로 마을에서 유명했는데, 그 유명세는 가진 건 몸뚱어리밖에 없는 아버지와 결혼을 하고 정확히 십오 년 만에 끝이 났다. 아버지는 노름으로 전답을 몽땅 날린 것도 모자라 나중엔 바람까지 나 집을 나간 것이고…… 하필 그 상대가 막녀였다. 남자는 집에만 머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정의 평화에 이롭다는 걸 어머니는 깨달았다. 가세가 기울 때도 끄떡없던 어머니가 막녀와 남편의 야반도주에 무너진 것도 그때였다. 그 후 어머니는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내왔다. 말도 않고 잠만 자다가 끼니때에나 겨우 일어나 밥을 먹고 다시 눕기 일쑤였다. 오히려 아예 치매에 걸린 후, 내 쥐고 있던 현실의 끈 하나를 놓고 나서야 증세가 좀 나아진 편에 속했다. 며느리를 막녀로, 아들인 나를 남편으로 대하면서 전에 있던 활기를 조금이나마 찾은 것이었다.

나는 노모의 곁에 앉았다. 노모를 보니, 한 마리뿐인 우리 집 암탉이 건달 같은 수탁네 닭에게 수모를 당한 것도 있고 하여, 괜히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노모에게 수탁네 수탉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수탁네 수탉이 말이에요, 글쎄. 그게 어디 보통 수탉이에요? 하여튼 그 덩치 큰 그놈이 우리 암탉을 막 쪼는데, 어휴 피가 얼마나 나는지. 수탁이 그 새끼는 닭 관리를 어떻게 하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노모는 화들짝 놀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기분 푸시라고 말했다. 나를 달래주는 그 말은 별 위로가 될 만한 말이 아님에도 그냥저냥 듣기 좋은 소리라 노곤하게 마음이 풀렸다. 그러다 갑자기 노모는 눈빛을 빛내며 뭔가 생각났다는 듯 호들갑스럽게 박수를 쳐댔다. 내가 바라보자 노모는 과장되었던 호흡을 진정시키고 침을 꾹 삼킨 뒤 속삭였다.

"그거 알아요? 사실 나는요, 수탁이 엄마가 차암 싫어요. 당신이 수탁이 엄마한테 감자 뒀잖아. 발뺌할 생각은 마요. 내가 봤으니까. 그 감자는 내가 당신 둔 거였는데. 나쁜 사람."

노모는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요?"

내 말에 노모는 나를 노려보았다. 입술을 어찌나 악물었는지 턱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노모는 빼빼 마른 주먹을 꼭 쥐어 내 뺨을 세차게 때려 갈겼다. 내가 놀란 틈을 타 또 한 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직전에 또 한 대. 나는 넋이 나간 채 그 매를 다 맞아냈다. 도합 세 대였다. 귀 아래가 뜨거웠다.

"감자 말고 또 뭘 뒀어요? 응? 이거 줬디?"

노모는 내 사타구니 사이를 쥐어 곧 뜯어낼 기세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숨이 턱 멎었다. 쩔쩔매는 나를 보며 노모는 더욱 악을 썼다.

"내가 모를 줄 알아, 응? 내가 모를 줄 알아, 응?"

노모는 읊조리며 더 세게 힘을 줘 나도 모르게 노모를 세게 밀쳐버렸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몸을 말았고 어머니는 뒤로 나자빠져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통에 벽에 걸려 있던 말린 옥수수 다발이 떨어졌다. 사방으로 낱알이 흩어져 방 꼴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에쿠쿠, 하며 머리를 매만지던 노모는 고래고래 막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가 방 꼴을 보면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울 게 뻔해, 나는 본능적으로 노모의 입을 틀어막았다. 입이 막힌 뒤에도 내내 나를 노려보던 노모는 나를 밀쳐내고 핑 돌아누웠다.

얼얼하던 아래가 진정이 되자 어머니가 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 말은 그리 놀랄 만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수탁네 엄마를 좋아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마을에서 수탁네 엄마를 좋아하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 그러니 감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더 주었다고 해도 이해가 갔다. 그건 남우세스럽다 하여 숨길 일도 아니었을 뿐더러 모두가 알고 있어 어느 누구에게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일이었다.

수탁네 엄마는 젊고 희고 가슴이 큰 여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탁네 엄마가 머문 자리에서는 진한 꽃향기가 났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수탁네 엄마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다 나도 모르는 새 노모의 곁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 노모의 살 냄새에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일순간 몹시 불쾌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수탁에게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심만이 반듯하게 섰을 뿐이었다. 어머니나 암탉의 원수를 갚아주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는데, 그것 말고는 이 결심의 시작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그저 그 즈음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나보다 덩치도 좋고 힘도 센 수탁을 어떻게 혼내줘야 좋을지 생각했다. 그때 밖에서 또다시 닭 두 마리가 엉겨 퍼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당 구석에 있는 닭장으로 가보니 언제 어떻게 들어간 것인지 수탁네 수탉이 닭장 안에서 내 암탉을 또 괴롭히고 있었다. 암탉은 좁은 닭장 속에서 도망도 못 가고 속수무책으로 픽픽 당하기만 했다. 나는 닭장 문을 열었다. 그 사이 푸득! 수탁네 닭이 날아올라 내 어깨를 딛고 밖으로 몸을 내뺐다. 나는 날렵하게 돌아섰고 이제 막 땅에 착지하려는 수탉을 발로 찼다. 푹신하면서도 묵직한 무게가 발끝에 걸렸다. 닭은 똥을 싸지르며 나동그라졌다.

닭을 찬 건 나였는데 순식간에 눈앞이 아득해진 건…….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오른쪽 귀와 광대가 흙바닥에 쓸렸다. 눈에 흙이 들어갔다. 온갖 구멍에 소금이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까끌한 그 이물감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꺼풀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살 껍질이 벗겨져 촉촉하게 속살이 드러난 볼에서는 흙이 만져졌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욕을 해댔다.

"그러게 누가 남의 닭을 차래?"

고개를 들어보니 수탁이 제 닭을 끌어안은 채 씩씩대고 있었다. 붉은 윤기가 좌르르 흐르던 수탁의 닭은 그새 그 빛을 잃고 초라하게 떨고 있었다. 그것도 수탁의 팔에 가래 같은 똥을 흘리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났다. 닭만 건드려도 저렇게 벌벌 흥분을 해대니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주는 일도 손쉬울 것 같았다. 나는 덩치도 산만하고 기운도 장사 같은 수탁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저 수탉만 손본다면, 손대지 않고도 코를 풀 수 있는 것 아닌가. 통쾌한 생각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흙이 들어간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흐르는지 찝찔한 무언가가 연신 입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목젖을 보이며 크게 웃었다. 수탁은 한참 더 노려보다 병신, 고자 새끼, 각오해, 하고 엄포를 놓은 뒤 닭을 꼬옥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흠씬 쪼임을 당하고도 천하태평 졸고 있는 암탉을 닭장에 고이 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수탉의 꽁지깃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부엌에서 나온 아내는 그런 나를 발견하곤 으레 짓던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지금 피눈물 흘릴 사람이 누군데. 쯧."

아내는 마당에 물을 한 바가지 쏟아버린 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침 집 안에서 막녀를 찾는 노모의 외침이 들려왔다.

"네. 가요, 가!"

아내의 대답을 끝으로 이내 사방은 고요해졌다. 수돗가 옆에 세워둔 깨진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눈에서 흐른 건 눈물이 아니라 피였다. 나는 그제야 아내의 말이 이해가 갔다. 흉측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탁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분명 겁에 질려 공포에 떠는 얼굴이었다. 나는 더 흉측한 표정을 연습했다. 입술을 위로 올려 잇몸을 더 드러내 보였다. 눈꺼풀이 절로 떨렸다.

손에 물을 받아 얼굴을 씻어내고 눈알에 물을 끼얹어 들어간 흙을 빼냈다. 피부 안쪽에 박힌 돌 알갱이들을 긁어내는 건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밤에는 아내가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내가 신음할 때마다 아내는 더욱 세게 볼을 긁듯이 발랐고 노모는 아내의 허벅지를 누르며 막녀야, 살살해야지, 하고 달랬다. 아내는 무릎을 들어 노모의 손길을 털어냈다.

상처가 베개에 닿지 않게 신경 쓰느라 깊이 잠들지 못했다. 내가 뒤척이자 옆에 자던 노모도 같이 뒤척였다.

"죄송해요, 어머니."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아니에요."

노모가 대답했다. 그 한마디로 잠깐이나마 잠에 들 수 있었다.

선잠에 들어 꿈을 꾸었다. 수탁에게 두들겨 맞는 꿈이었다. 꿈이었는데도 주먹질마다 고스란히 아팠다. 가까스로 꿈에서 깨어난 뒤에는 온몸이 뻐근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수탁의 닭을 죽이면…… 수탁은 바로 날 죽일 거라는 걸. 무식한 수탁이 놈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였다. 수탁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수탁네 닭을 처리해야 했다. 무슨 방법이 좋을까. 생각나는 게 없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원망스러워 뒤통수를 퍽퍽 쳤다. 그때 노모가 이쪽으로 돌아누우며 눈을 떴다. 달빛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다 안다는 얼굴로 어보, 닭 잡는 데는 뱀만 한 게 없디요. 한입에 삼키니까, 했다.

노모는 맑은 눈빛으로 웃었다.

뱀. 정답은 뱀에 있었다. 명쾌한 해결책이었다. 더군다나 뱀은 구하기도 쉬웠다. 마을 뒷산에만 올라가도 지천에 널린 게 각종 뱀이었다. 수탁네 수탉이 좀 많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닭은 닭이었다. 그러니 주제도 모르고 뱀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내가 아닌, 뱀이 닭을 해친다면. 나는 수탁의 노골적인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것은 면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가장 아끼는 닭을 잃은 슬픔으로 얼마간은 까칠하게 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뱀을 잡으러 가기 위해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뱀들이 너른 바위에 몸을 말릴 시간이 되었다. 나는 튼튼한 가방을 메고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뱀을 때려잡을 긴 막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내에게는 약초를 좀 캐오겠다 했다. 아무 풀이나 쑥쑥 뽑아오지 말라며 당부하는 아내의 얼굴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내가 모처럼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만족한 듯 보였다. 나는 걱정 말란 의미로 막대를 휘젓다 아내의 옆구리를 깊이 찔렀고 나동그라졌던 아내는 벌떡 몸을 일으켜 내 등짝을 후려쳤다. 나는 손이 닿지 않아 문지를 수도 없는 등을 옴찔이며 대문을 나섰다.

"더를 두고 어디 가세요!"

뒤에서 노모의 절규가 들려왔다. 노모는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가만 보니 바지도 홀랑 벗은 채였다. 늘어진 노란 팬티 아래로 허벅지 가죽이 덜렁였다. 아내가 어머니를 막았다. 어머니는 어디 더러운 손으로 나를 만지냐며 아내의 손을 거칠게 쳐냈다. 아내는 한 발짝 떨어져 질린 표정을 했다. 아내는 예, 예, 하며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노모의 바지를 가지고 나왔다. 입기 좋게 허리춤을 벌려주자 노모는 손끝으로 아내의 어깨를 짚고 선 채 바지를 꿰입었다. 노모의 허리는 어찌나 굽었던지 무릎이 가슴에 닿을 지경이었다. 다 입고 나서는 같이 가요. 혼자 안 보내요, 했다. 나는 차마 그런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와 함께 뒷산으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그 흔하던 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서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바람에 잎사귀들이 몸을 비비는 소리만 시끄럽게 났다. 내가 이곳저곳, 바위틈, 나뭇잎 더미, 나무뿌리 아래를 휘젓고 다닐 때, 뒤따라온 노모는 빨간 점이 진하게 박히고 대가 긴 버섯을 귀에 꽂거나 팔목에 감는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그거 절대 입에 넣으면 안 돼요. 먹으면 안 돼요. 알겠죠, 어머니? 네?"

나는 재차 말해 주의를 주며 땅에 시선을 떼지 않고 뱀의 흔적을 찾았다.

등 뒤의 노모까지 살뜰히 챙겨가며 곳곳을 들쑤셨다. 수탁의 뱀을 한 방에 삼킬 아가리가 큰 뱀을 찾아 헤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무겁게 늘어져 반쯤은 엉덩이에 걸쳐진 바지를 추어올리는 노모와 눈이 마주쳤다. 불룩한 노모의 주머니에는 누가 봐도 독버섯인 것들로 가득했다. 노모는 지친 와중에도 그것들을 소중히 챙겼다. 못내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배가 고팠다.

"어머니, 좀 쉬었다 갈까요? 끼니도 좀 때우고요."

"네, 감사해요."

노모는 안심한 듯 웃었다.

평평한 나무 둥치를 찾아 노모를 앉히고 나는 그 옆 비탈에 기대앉았다. 가방에서 주먹밥 한 덩이를 꺼냈다. 노모가 따라올 줄 모르고 한 덩이만 챙긴 것이었는데 크기가 웬만한 아이 머리통만 해 둘이 나눠 먹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주먹밥을 반으로 가르자 쉰내가 팍 터져 나왔다. 밥 안에 뭉쳐 넣은 나물에서 나는 것 같았다. 코를 깊이 박고 다시 냄새를 맡자 그리 쉰 것 같지는 않아 반쪽을 노모에게 건넸다. 나머지 반쪽은 내가 먹으려다 그냥 가방에 넣었다. 생각해 보니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그저 배가 고프지 않았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노모는 이도 없는 입 안으로 밥덩이를 밀어 넣기 바빴다. 다 먹은 뒤엔 내가 남긴 몫까지 몽땅 꺼내 먹었다. 대가 이거 좋아하는 둘은 어떻게 알고, 하며 허겁지겁 씹고 삼켰다. 목이 메는지 가슴을 치던 노모는 돌연 뒤로 벌렁 누우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 아. 어보, 어우."

노모의 얼굴은 삽시간에 창백해지다 입술 주위부터 푸르스름하게 변해갔다. 나는 놀라고도 덜컥 겁이나 노모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노모의 눈알이 회까닥 뒤로 넘어갔다. 호흡은 딸꾹질을 하듯 간신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식으로 이어졌다. 얼떨떨해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이 산을 내려가야 한다. 빨리.

머릿속에 번뜩인 건 이 생각뿐이었다. 몸보다 발이 한발 늦게 움직여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이곳이 어디쯤인지를 가늠하고 돌아갈 길을 떠올렸다. 산 둘레를 천천히 돌았을 뿐 아주 깊은 산골짜기까지 들어온 것은 아니라서, 잘만 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련으로 위로 뻗친 노모의 한쪽 팔을 당기자 노모의 상체가 통째로 따라 올라왔다. 바람결같이 가벼웠다. 등을 노모의 가슴 앞에 바짝 대고 노모의 팔을 어깨 앞쪽으로 잡아끌었다. 그 반동을 타고 노모의 몸이 내 등위로 온전히 올라왔다. 그때 노모의 오른편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꼬리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가 질질 끌리는 기분. 뭐에 걸렸나 싶어 아래를 흘긋 봤을 때 나는 매우 놀라 하마터면 나의 어머니를 내다 던질 뻔했다. 머리가 어른 손바닥만 한 노란 구렁이가 노모의 발 한쪽을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구렁이의 턱 아래가 부드럽게 움직일 때마다 노모의 복사뼈는 논바닥에 박히듯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 노모는 몸을 푸르르 떨었다. 나는 노모를 등에 업은 채 뱀의 몸통을 힘껏 밟았다. 왼팔로 노모의 몸체를 단단히 받치고 오른손으로는 노모의 다리를 세게 잡아 뺐다. 노모의 작은 발이 쑥 빠졌다. 복사뼈부터 발등까지, 뱀 이빨에 찍힌 상처가 길게 그려졌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노모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뱀은 노란 침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다. 곧 기력이 다했는지 그 움직임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나는 노모를 업고 산길을 뛰어 내려갔다. 땅 위로 솟은 돌부리를 밟고도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뛰는 동안 나는 오로지 수탁을, 수탁의 수탉만을 생각했다. 이게 다 그놈들 때문이었다. 기다려라. 기다려. 조금만, 기다려라. 속으로 되뇌었다. 단박에 마을 초입에 다다랐다.

집에 도착해 마당의 평상에 어머니를 뉘이자 무언가를 직감한 아내가 방에서부터 뛰어나왔다. 아내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주저앉았다. 방금까지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통증이 뒤꿈치부터 엉덩이 위까지, 달군 불쏘시개로 쭉 긋듯 돋아났다. 빳빳하게 쥐가 나 다리에 경련이 일었다. 근육이 제멋대로 쪼그라들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 와중에 나는 어머니가 뱀에 물렸다고, 발이 통째로 뱀의 목구멍까지 넘어갔었다고, 억지로 잡아 뺐는데 이빨이 박혔을지도 모른다고, 아내의 단단한 어깨를 붙들고 울부짖었다. 아내는 침착하게 어머니의 귀 아래에 손을 대 맥을 짚은 뒤 발을 살폈다. 그러곤 대야와 수건을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아내의 불호령에 정신이 번쩍 들어 굽혀지지 않는 무릎으로 뛰어 대야와 수건을 갖다 바쳤다. 아내는 그사이 부엌에서 검은 액이 담긴 유리병을 몇 개 가져왔다. 오소리 기름이었다. 그녀가 믿는 만병통치약.

아내는 대야에 수건을 넣고 그것이 다 잠기도록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기름에 푹 젖은 수건을 건져내 어머니의 발목에 난 상처 위에 올렸다. 그리고 계속해 어머니의 손을 주물러 따뜻하게 했다. 나중엔 노모의 머리를 받쳐 들고 기름을 조금씩 입에 흘려 넣었다.

"소금."

아내의 말에 나는 냉큼 소금을 찾아왔다. 아내는 그것을 크게 한 줌 쥐어 노모의 발목을 덮고 있던 수건을 걷어내고 드러난 상처 위에 꾹꾹 얹으며 눌렀다. 몇 초 뒤, 정신을 잃었던 노모가 기적처럼 눈을 번쩍 뜨며 발을 찼다. 노모는 몸을 뒤틀어 평상 아래에다 위에 든 것을 모두 게워냈다. 불어터진 밥알들이 쏟아지고 이내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이 다 튀어나올 것처럼 기침을 해대던 노모는 겨우 정신이 좀 드는지 입맛을 다시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안도의 괴성을 지르며 노모를 힘껏 끌어안았다.

노모는 안정을 차츰 찾아가는 듯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다. 잇자국을 보면 독사가 아닌 건 분명한데 왜 이렇게 마비증세가 심했는지 모르겠다며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을 했다. 이거 먹었나, 하며 아내가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버섯 몇 개를 살폈다. 그러다 아냐, 조금만 더 빨리 기름을 먹였으면 괜찮았을 거야, 하고 읊조렸는데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못 들은 척해야 했다. 나 때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는 노모의 발을 문 구렁이를 잘 알았다. 독은 없지만 먹성이 좋은 그 뱀은 어릴 때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뱀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나는, 겨우 발 한 쪽 물린 걸로는 어머니의 생명에 큰 지장이 없을 거라 확신한 게 맞았다. 나는 그 뱀이 욕심 났다. 그러니 어머니를 업고 산길을 뛰어 내려오는 길에도 그 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건 당연했다. 정말이지 그 뱀을 이대로 놓치긴 아까웠다. 어머니를 모셔놓고 다시 돌아갔을 때 나 잡아가쇼, 하고 뱀이 그대로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저 정도 크기면 수탉을 한입에 넣고도 남을 뱀이 아닌가. 미련에 미련이 남아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정신을 잃은 노모를 잠시 내려놓고 되돌아 산으로 다시 올라갔었다. 비실거리는 뱀을 말아 가방에 넣었을 때, 어머니를 업었을 때만큼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뱀을 챙기고서야 노모에게로 돌아갔고 결국 아주 조금 늦게, 집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나의 노모는 그 사고가 있고 주저앉은 뒤로 일어나지 못했다. 누워만 있어 등허리에는 욕창이 생겼다. 아내는 헛구역질을 하며 어머니를 돌보았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뱀을 보살폈다. 노모까지 저렇게 된 마당에, 이 뱀이라도 잘 길들여 복수를 성공시켜야 했다. 그 마음 하나가 전부였다. 마을의 쥐를 잡아 뱀에게 먹여 몸보신을 시켰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뱀은 살찌고 가죽에선 윤기가 흘렀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늦은 밤, 집에서 몰래 나와 뱀을 수탁의 닭장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아내를 안고 두 마리의 뱀처럼 엉겨 긴 잠을 잤다.

꿈에서 뱀은 수탁을 한입에 삼켰다. 수탁의 몸피만큼 부푼 뱀이 바닥을 굴렀다.

장마가 다 지날 때까지, 수탁에게선 어떠한 소식도 없었다. 수탁이 보이질 않으니 수탉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그의 집에 찾아가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쌀독이 빈 핑계를 대 아내를 그 집에 보냈다. 낮에 나간 아내는 해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작은 자루 하나 들리지 않은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묻는 내게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넋을 놓고 앉아있을 뿐. 그 집에 다녀오고 나서 아내는 어머니의 부름에도 대꾸없이 평상에 앉아 있기만 했다.

볕 아래 오래 있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익은 아내가 가만 나를 올려다보았다. 무서운 얼굴이었다.

"왜 그래?"

조금 떨며 물었다. 다시 보니 아내의 얼굴은 이상하게 야위어 있었다. 머리는 세어 희었다.

"배고프다. 배고파. 내가 너 먹여 살리려고…… 배가 고파."

아내는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어지러운지 잠시 이마에 손을 짚었다가 그대로 대문을 나섰다. 그날 밤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꼭 요 앞에 마실 나가는 것 마냥 떠나버려 밤새 기다리게 만든 아내가 야속했다. 나는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돌아오면 잘해줘야지, 그 생각만 간절했다.

아내가 떠난 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노모를 씻기는 것은 물론 작은 수발을 드는 것조차도 버거웠다. 나를 남편으로 모시며 존대를 하던 어머니도 언제부턴가는 나를 막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노모는 점점 괴팍해졌다. 오소리 기름을 한 병 다 먹여도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배고픔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나날이 날카롭고 사나워졌다.

쌀독은 빈 지 오래였다. 나도 점점 힘이 빠지고 눈앞이 아득해질 때가 많았다. 어떻게 해야 쌀독에 쌀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아내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건가. 무엇을 하고 수탁네 집에서 쌀을 꿔온 것인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막녀야, 배고프다니까!"

노모는 누워 다급히 방바닥을 두드렸다. 무언가에 쫓기는 얼굴이었다. 나도 더 이상 지독한 허기를 참을 수 없었다. 집에 먹을 수 있는 건 정말이지 암탉 한 마리뿐으로 다른 건 하나도 없었다. 닭장에 가보았다. 그 닭마저도 굶주려 비실대고 있었다.

죽어가는 닭을 잡는 건 쉬웠다. 닭은 금세 상에 올랐다.

노모는 씹을 이도 없으면서 허겁지겁 닭을 뼈째 입에 밀어 넣어가며 먹었다. 닭 기름으로 입 주위가 번들번들해진 노모를 바라보았다. 나도 내 몫의 고기를 챙기기 위해 두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노계라 살이 질겼다. 그리고 그날 밤 노모는, 끝내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내게는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자존심 상하게도 수탁이 그리워졌다. 배가 고팠다. 음식을 얻으러 가야 했다. 수탁이 내 모든 계략을 눈치채 나를 때려죽인다고 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수탁의 집으로 가는 그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원래 이렇게 멀었던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두려운 마음은 한 조각도 없는데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았다.

해가 기울었다. 길 위로 그림자가 늘어졌다. 수탁의 키보다도 길었다.

집 주변은 조용했다. 지독히 조용해서인지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기웃기웃 집 주변을 돌다 그의 닭장 문이 훤히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닭이 본능적으로 내는 그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그리고 나는 너른 닭장에 엎어져 있는 수탁을 발견했다.

터진 바짓단 아래로 이미 새카매진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가랑이 사이엔 구더기가 들끓었다. 나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위에 든 모든 것을 게워냈다. 흰 물이 와락 쏟아졌다. 닭 두어 마리가 다가와 내 토사물을 콕콕 쪼았다. 나는 수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닭들은 나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탁을 쪼며 구더기를 파먹기 바빴다. 수탁이 가장 아꼈고, 내가 발로 찬 적이 있는 그 수탉은 무리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검붉은 벼슬을 이마 아래까지 축 늘어뜨리고 수탁의 눈을 쪼고 있었다.

닭장을 나오면서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뱀의 허물을 주웠다. 그 길이와 무늬를 보니, 내가 풀어놓은 구렁이의 것이 맞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자꾸만 닭의 머릿수를 세고 또 셌다. 셀 때마다 그 수가 달랐지만 대충 봐도 열네 마리는 족히 넘는 듯했다. 당분간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음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한 뒤, 마당에 있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물을 올렸다. 물은 금방 끓어올랐다. 나는 다시 수탁의 닭장으로 향했다.

수탁의 눈구멍에 대가리를 박고 정신없이 쪼아대는 수탉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그 큰 닭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위협을 느꼈는지 양 날개를 뒤틀며 퍼덕였다. 내 상체만 한 닭의 세찬 날갯짓에 허둥거리다 그만 크고 날카로운 닭의 발톱에 턱 아래와 팔을 찍히고 말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닭의 목을 움켜쥐었다. 마지막 남아있는 힘까지 끌어모아 닭의 목을 비틀었다.

으드득.

닭의 숨통이 끊어지는 느낌이 손을 타고 찌릿하게 전해졌다. 요령 없이 비튼 탓에 닭의 작은 눈알이 튀어나와 부리 옆으로 흘렀다. 부러진 부리 안쪽으로 주홍색 혓바닥이 보였다. 만지지 않아도 딱딱해 보였다. 나는 끓는 물에 닭을 넣었다 뺐다.

큰 몸에 빡빡하게 박힌 깃털을 뽑았다. 꼬랑지에 돋은 검은 깃털을 뽑을 때에야 비로소 내 마음속 어떤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보이는 마른 것이란 죄다 솥에 넣었다. 마당 곳곳에 떨어져 있던 말라비틀어진 버섯까지도 한데 넣어 닭을 삶았다.

솥뚜껑을 열어보았다. 보얀 국물에 닭이 푸욱 삶아지고 있었다. 그 냄새는 수탁네 마당을 가득 채웠다. 마당뿐 아니라 마을까지 퍼질 기세였다. 누군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뒤늦게 걱정이 됐다.

다 삶아진 닭을 큰 쟁반에 담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누런 살덩이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수탁네 장독에서 간장을 덜었다. 닭과 간장. 이거면 충분했다. 상을 차리고 닭을 먹으려는데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제야 무서운 현실감이 들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탁의 아내일까? 그래, 수탁의 아내일 것이다. 조심조심 그 여편네를 제압할 막대를 찾아 들고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탁의 방엔 나의 아내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시퍼렇게 변한 사람 다리 같은 게 놓여 있었다. 켜켜이 쌓인 이불에 가려 있어 다리의 주인은 알 수 없었지만 여자 다리임엔 틀림없었다.

그건 누구의 다리이고 왜 당신은 여기에 있고 등등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내의 팔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왔다.

상을 가운데 두고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았다. 닭의 다리를 크게 뜯어 아내에게 건넸다.

"고생 많았네."

내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먹자, 하니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내가 받을 때까지 고기를 건네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내가 말하며 아내는 다리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작은 입으로 가져갔다. 머뭇거리다 이내 고기를 뜯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나도 다리 한 쪽을 뜯었다. 오래 삶은 탓에 닭 뼈가 쑥 뽑혔다. 수탁의 냄새일지 모를 누린내가 났다.

나는 이 모든 일을 먹어 없애기로 했다.

살코기를 씹다 보니 언젠가 먹어 본 적 있는 맛이 났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가 나를 위해 삶아준 닭의 맛이 떠올랐다. 이 닭을 노모와 함께 먹지 못한다는 게 슬펐다. 내 슬픔을 보았는지, 아내도 전에 나를 보고 울던 것처럼 울었다.

우리 두 사람은 오래도록 천천히 닭을 먹었다.

◆[단편소설-당성 소감]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 짙어질 것을 약속"

제가 쓴 글과 그 글이 불러온 이 결과를 일단 한 번 믿어보자고 다짐부터 했습니다. 섣불리 무언가를 다짐하는 건 위험할 수 있지만 지금만큼은 섣부르더라도 나를 믿어봐야겠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견뎌준 아빠 김정일, 엄마 박정순, 오빠 김호조에게 고맙다는 말 먼저 전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더, 잘, 저를 부탁드립니다. 난데없이 걸려온 당선 전화를 받다가 둘 데 없어 내민 왼손을 맞잡고 기뻐해 주신 윤대녕 선생님. 그때의 선생님은 어쩌자고 제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계셨나요. 그와 함께 김사인 선생님, 배삼식 선생님께도 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제가 걱정되시죠? 저도요.

그리고 좋은 자극이 되어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10학번, 너. 그래, 바로 너. 분에 넘치는 응원과 축하 건네준 후배님들, 선배님들. 잘 먹고 잘 노는 내 오랜 친구들. 2015년 여름, 증평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 빠짐없이 한 분 한 분 고맙습니다.

심사를 봐주신 오정희 선생님, 하성란 선생님께도 고개 숙여 인사드립니다. 제 원고가 두 분의 손에 가 닿았다는 게……여전히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 기회를 열어준 매일신문사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너에게 상처주고 나에게 상처받고 엄한 데서 고집 부리다가, 제 풀에 지쳐 "이제 안 해!" 선언하며 자리 털고 일어났는데, "그냥 너 해!" 하고 무릎 꺾여 앉혀진 기분입니다. 이왕 앉아버린 거, 제대로 깔고 앉아 무겁게 둘러보며 건강하게 쓰겠습니다.

이제 겨우 김호애, 이름 하나 썼을 뿐이지만 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지도 모른다는 건 떨리는 일입니다. 쑥스러운 고백의 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짙어지겠습니다.

◇약력

김호애

1991년 서울 출생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단편소설-심사평] 곳곳에 시적 문장과 해학…다음 작품이 기대

본심에 올라온 열 편의 소설 중 마지막까지 논의된 소설은 세 편이었다. 은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결혼하게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아기는 남의 손에 맡긴 채 남의 집 아기들을 돌보며 근근이 살아가는 스물일곱 여자의 반나절을 담고 있다. 자신이 맡아 기르는 아기들의 아빠와 보낸 그 시간은 "정말 좋을 때"라는 젊음을 확인하는 소풍과도 같으면서 좀처럼 메울 수 없는 사람(계층) 간의 간극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툭툭 던지는 듯한 인물들의 대화로 감정 변화를 이끌어내는 솜씨 등에서 오랜 습작 기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도입부의 잘못된 BCG 예방 접종 시기는 물론이고 아쉬운 결말까지 성급하게 끝냈다는, 어쩌면 초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이 소설의 단점은 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의 인물들도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자신의 시선 안에 들어온 현실을 핍진하게 밀고 간 점이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박카스 아줌마' '낙타 부대' 등 노인의 성문제와 성매매에 관한 익숙한 이야기를 어떻게 새롭게 푸느냐는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도 답습하고 말았다. 만복의 이름이 만복이 아니었더라면 소설은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 늙고 병든 복순을 감싸안는 것이 훈훈할지는 모르지만 문제 의식을 돋보이게 할 최선의 결말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신선했던 부분은 복순에게서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 만복의 모습이었다.

를 당선작으로 정해놓고도 오래 의논이 오갔다. 담대하다, 곳곳에서 시적인 문장이 발견된다는, 주로 장점에 관한 이야기였다. 는 김유정의 단편 의 첫 문장을 차용하면서 시작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해학적이고 서정적인 동백꽃의 주인공들이 어른거리는데, 이것은 주요한 장치이다. 시대를 알 수 없는 농촌, 치매에 걸린 노모와 옆집 수탉에게 당하기만 하는 암탉 같은 나, 끼니를 구해오는 아내가 있다. 어느 순간 이야기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엇나가기 시작한다. 의문스러운 죽음과 비극을 암시하는 결말, 그런데도 여전히 김유정의 이 잔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두 소설 사이의 큰 간극 때문에 얼떨떨하다. 새로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는 확신이 들었다. 재기발랄한 신인의 출발에 박수를 보낸다. 작가에게 최고의 찬사는 다음과 같은 말이 아닐까. 누구보다도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오정희, 하성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 10월 16일 0시 기준 )

  • 대구 47
  • 경북 52
  • 전국 1,618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