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 속 봇짐장수 아들의 수난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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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장정옥 지음

1800년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정순왕후는 수렴청정하며 숙청의 피바람을 몰고 온다. 왕후는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신서파(信西派)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신유박해다. 이 박해는 궁궐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조선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소설 '비단길'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소년 '수리'와 선암 정약종이 나누는 우정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속량된 노비의 후손으로 누에를 치는 소년 '수리'는 봇짐장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 수리에게는 비단길을 따라 걸으며 장사를 하는 아버지가 큰 자랑이다.

어느 날 수리네 집 옆으로 조선 땅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 사람인 '선암 정약종'이 이사 온다. 선암은 수리에게 반상의 구별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며, 어린 자기 자식들을 부를 때는 아가씨나 도련님이라는 존칭을 빼고 이름을 부르라고 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양반들과 전혀 다른 선암 정약종에게 수리는 점점 끌리고, 열다섯 살 수리와 선암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이자 스승과 제자가 된다.

어느 날 비단길로 장사를 나갔던 아버지가 '천주쟁이'로 잡혀가 생사불명이 되고, 먼 대궐에서는 주인이 바뀌었고, 조선 땅 전역에 피바람이 분다. 더 나쁜 것은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밀고자라는 소문이었다. 마음속의 큰 자부심이었던 아버지가 수치스러운 '밀고자'라는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밀고자의 자식이라는 모멸과 따돌림, 가난 속에서 수리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키워간다.

세상의 홀대와 멸시에 수리는 아예 자신을 천민이라고 여기고 속 편하게 살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수리에게 선암은 글을 가르치고, 세상을 가르치고, 인간과 사랑을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수리는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어른다움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체념할 것이 아니라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게 된다. 나아가 소년 수리는 '어른'이 되고 비정한 시대에 빼앗겨 버린 아버지, 가족에게 모멸과 가난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는) 천주교 교리를 갖고 있었지만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천주교 신자도 아닙니다. 그 책이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관아에서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사람 말을 믿어 주지 않고 매만 때립니까?" -143쪽-

정직한 대답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 누구를 밀고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아버지에게도 작은 죄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 죄를 지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권력을 위해 종교를 이용한 사람, 고문으로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수리는 선량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염원하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죽은 아버지의 옷을 태우며 수리는 혼잣말을 한다.

'아버지, 더러운 옷 벗어버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릴게.' -163쪽-

수리는 부활의 신비에 사로잡혀 밤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기대에 설레었다.

소설 '비단길'은 수리라는 소년의 성장사이자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난사다. 소년 수리가 정약종을 만나 참다운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가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발전하는 모습을 은유한다. 지은이 장정옥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8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스무 살의 축제'로 당선됐다. 336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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