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여왕 칭호를 들었던 황금심(하)

가수 고복수와 결혼…1천여 곡 발표한 '가요계 여왕'

드디어 1936년 오케레코드사에서 '왜 못 오시나요'와 '지는 석양 어이 하리오'란 음반을 황금자(黃琴子)란 이름으로 처음 취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작사가 이부풍이 황금동(황금심의 본명)을 빅터레코드사로 안내하여 전수린 작곡의 '알뜰한 당신'(조명암 작사'전수린 작곡)과 '한양은 천리원정'(조명암 작사·이면상 작곡)을 취입하도록 했습니다.

이 음반을 낼 때 예명은 황금심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두 레코드사 사이에서 분쟁의 화근이 될 줄은 본인도 몰랐던 것이지요.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이화자의 창법을 압도하는 요소가 있다면서 레코드 회사에서는 반색을 했습니다. 예측했던 대로 이 음반은 공전의 대히트를 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가수를 빼앗긴 오케레코드사에서는 황금동을 이중계약으로 법원에 고소를 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이 나서서 황금심을 빅터사에 머물도록 하고, 분쟁을 힘들게 조정했습니다.

작사가 이부풍, 작곡가 전수린, 가수 황금심! 이 트리오는 이후 빅터레코드사를 대표하는 간판격 음악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데뷔 시절, 엄청난 소란으로 마음의 고통을 겪었던 황금심은 그 어느 다른 레코드회사에서 취입을 제의해도 전혀 듣지 않고, 오로지 빅터사에서만 활동했습니다.

황금심 노래에 가사를 담당했던 작사가는 이부풍을 위시하여 시인 장만영과 박노춘 등이었습니다. 시인 김안서 선생도 김포몽(金浦夢)이란 필명으로 황금심에게 가사를 주었지요. 박영호, 고마부, 화산월, 이경주, 김성집, 산호암, 강남인 등도 황금심 노래의 가사를 몇 곡씩 맡았던 인물들입니다. 황금심 노래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던 작곡가로는 단연코 전수린 선생입니다. 그 밖에 형석기, 이면상, 박시춘, 문호월, 조자룡(김용환), 김양촌, 진우성 등도 몇 곡씩 함께 활동했습니다.

자, 그러면 일제 식민지 후반기에 발표했던 황금심의 대표곡을 어디 한번 보실까요? 신민요 '울산 큰 애기'(고마부 작사·이면상 작곡, 빅터 49511), '마음의 항구' '알려주세요' '청치마 홍치마' 등입니다.

1939년 4월에 발표한 '외로운 가로등'(이부풍 작사'전수린 작곡, 빅터 KJ-1317)은 불후의 블루스곡으로 만들어진 명편입니다. 일제강점기 말 제국주의 압제에 지치고 시달린 식민지 백성들의 아픈 가슴을 따뜻하게 쓰다듬어준 아름다운 작품이지요.

이 무렵 김용환이 조직한 반도악극좌(半島樂劇座)의 주요멤버로 활동한 황금심은 노총각이었던 가수 고복수(高福壽)와 이동열차 안에서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10년,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부부는 악극단 활동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가 8·15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전쟁은 이들 부부에게도 시련의 세월이었습니다. 고복수는 인민군에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하였고, 부부는 국군 위문대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52년 황금심이 취입한 '삼다도 소식'(유호 작사'박시춘 작곡, 스타 KB-3002)으로 부부는 커다란 삶의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뽕 따러 가세'(나화랑 작곡) 등으로 계속 인기를 이어가지만 고복수는 손대는 사업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1958년 고복수는 가수생활을 접고 은퇴하게 되지만 힘겨운 생활고는 고복수를 월부서적 외판원으로 길거리를 헤매게 했습니다. 이 무렵 황금심은 생계를 위해 참으로 많은 분량의 노래를 취입하게 됩니다. 영화 주제가, 방송연속극 주제가는 모두 황금심이 도맡다시피 했습니다.

한국 가요사에서 '가요계의 여왕' '꾀꼬리 여왕'이란 칭호를 듣던 가수 황금심. 그녀는 1970년대까지 무려 1천여 곡을 발표하며 이 같은 영광된 별명을 얻었습니다. 말년에 파킨슨씨병을 앓으면서도 노래에 대한 애착은 언제나 변함없던 황금심은 2001년, 한 많고 설움도 많았던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이동순(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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