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경주 ‘삼릉 가는 길’ 함께 떠나요!"

경주시·TV매일신문 공동기획 2부작 ‘삼릉 가는 길’
23일 1부 공개…월정교·오릉·나정 등 유적 소개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TV매일신문이 공동으로 기획한 특별방송 '삼릉 가는 길' <제1부〉 '신라의 탄생과 흥(興)'이 23일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TV매일신문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김민정 아나운서와 정호재 마임이스트, 이승호 대구답사마당 원장이 출연한다.

〈1부〉는 월정교와 천관사지, 오릉, 월암종택, 나정 등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적 의미를 소개한다. 〈2부〉 '신라의 종말과 망(亡)'은 30일 TV매일신문을 통해 방영된다.

〈제1부〉는 삼국유사에 담긴 비화와 각종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1천400여 년 전 어느 정월 대보름. 김유신이 김춘추와 함께 공을 차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옷고름을 찢은 뒤, 여동생 문희에게 꿰매게 했다. 그 후 김춘추가 자주 왕래했다. 어느 날, 선덕여왕이 남산에 행차하던 중 김유신이 몰래 임신한 문희를 불 태워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김춘추에게 가서 구하도록 했다. 이후 두 사람은 혼례를 치렀다.

김유신의 막내 동생 문희가 언니 보희의 꿈을 사서 신라 제29대 왕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재위 654~661)의 왕비가 된 이야기다. '삼국유사'(태종 춘추공 조)에 실린 내용으로, 선덕왕의 남산 행차 길이 배경이다.

신라 왕의 남산 행차와 관련된 '삼국유사' 기록은 더 있다. 쥐와 까마귀의 도움으로 신라 21대 소지왕(재위 479~500)이 목숨을 구한 '사금갑'(射琴匣) 이야기가 그 중 하나다.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아라'라는 뜻의 사금갑은 '둘 죽이고 하나 살리기', '오곡밥 먹는 유래'라는 옛 이야기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 사금갑 설화의 배경이 된 곳은 남산 동쪽 자락 서출지(書出池)다.

남산 서편 자락 포석정에 얽힌 설화도 있다. '삼국유사'(처용랑과 망해사 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통일신라 말기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 때였다. 왕이 포석정에 행차하자 남산의 신이 나타나 춤을 췄다. 그런데 좌우의 신하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왕에게만 보였다. 왕은 친히 신의 춤을 추어 보여줬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이들 세 이야기의 배경이 된 남산(494m)은 신라에서 신성시되던 곳이었다. 통일 이전의 왕부터 천년 왕조의 끝자락 경애왕까지 수많은 신라 왕은 남산을 즐겨 찾았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왕궁이 있던 월성에서 신궁으로 추정되는 나정, 그곳을 좀 더 지나 만나게 되는 포석정까지는 행차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는 정치보다 제사에 더 큰 의미를 뒀던 때였고, 특히 남산 서편은 왕이 직접 행차했던 대표적인 제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주 교수의 설명이다.

이름 난 관광지에 가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남산엔 경주시가 2010년 쯤 조성한 '남산 둘레길'이 있다.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을 축으로, 동쪽의 '동남산 가는 길'과 서쪽의 '서남산 가는 길'이다.

이 중 '서남산 가는 길'은 '삼릉 가는 길'로도 불린다. 월정교 남단에서 시작해 도당산으로 난 산길을 따라 김호 장군 고택(월암종택)에 이른 뒤 나정,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삼층석탑, 포석정 등을 차례로 지나 삼릉·경애왕릉에 이르는 코스다. 왕궁이 있던 월성과 남산을 잇는 신라 왕의 주요 행차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다.

월정교 앞에서 도당산으로 오르지 않고 김유신과 천관녀에 얽힌 창건설화로 널리 알려진 천관사지와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남해·유리·파사왕 등 다섯 명의 분묘라고 전해지는 오릉을 거쳐 월암종택에 이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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