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100山 100說] <7>가야수도지맥(국사봉~수도산~단지봉~목통령~성만재)

어사 박문수 목통령 넘다 탈진…아낙은 급히 젖을 짜 먹여 살렸다

용두암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수도지맥. 용두암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수도지맥.

가야수도지맥은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갈라져 경북 김천시와 경남 거창군을 가르는 산줄기다.

가야수도지맥에는 김천의 최고봉인 단지봉(1,327m) 등 10개의 봉우리가 김천의 100명산에 포함돼 있다. 이들 산봉우리는 대부분 1천m를 넘는 험산들이다. 또 백두대간보다 찾는 이가 적어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잘 보전하고 있다.

수도산 오르는 길에 만난 소나무. 수도산 오르는 길에 만난 소나무.

◆가야수도지맥 얽힌 이야기들

▷승천년 속천년 쌍계사 절터

김천시 증산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은 옛 쌍계사 절터다. 면사무소 뒤에 있는 대웅전 주춧돌과 배례석 등을 고려하면 당시 쌍계사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쌍계사 터는 예부터 호랑이와 용의 사이에 놓인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를 창건한 도선국사는 절터와 관련해 '승천년(僧千年) 속천년(俗千年)'이라고 예언했다. 즉, 이 터에 스님이 천년을 살고 그 이후에는 일반 속인들이 천년을 살아갈 것이란 예언이다.

청암사와 수도암의 본사였던 쌍계사는 창건된 지 1천100년 후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14일 임시 면사무소로 사용되던 절이었지만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이 불을 질러 완전히 소실됐다.

현재는 면사무소와 주민들이 절터를 사용하며 청암사에 매년 사용료를 내고 있다.

▷신통방통한 수도암 나한전의 나한들

수도암의 나한전(羅漢殿)에 자리한 나한상과 관련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해온다.

옛날 수도암 대적광전(大寂光殿) 옆에 있는 느티나무가 기울어져 법당의 기와를 상하게 해 비가 스며들자 스님들이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적광전을 지키던 노승이 밖에서 영차영차 하는 소리와 쿵 하는 소리를 듣고 밖을 내다보니 기울던 느티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었다.

이후 나한전의 나한상 어깨와 손에는 느티나무 잎과 껍질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이 느티나무 뿌리는 1969년 선원을 지을 때까지 남아있었다고 전한다.

또 어느 날 한 불자가 공양미를 메고 수도산을 넘고 있는데 한 동자승이 달려와 '저는 수도암의 스님이 공양미를 받아오라 보내서 왔습니다'라며 쌀가마니를 받아서 어깨에 메고 쏜살같이 산을 넘어갔다. 불자가 뒤따라 절에 도착하니 쌀가마니만 덩그러니 마루에 놓여있었다.

방금 보았던 동자승이 궁금해 스님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나한전으로 가보라 했다. 나한전의 나한상 어깨에는 지푸라기가 묻어 있었다고 전한다.

▷수도암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수도암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시고 있다. 이 불상은 경남 거창의 불당골에서 제작한 후 워낙 크기가 커 완성하고도 수도암으로 옮길 방안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행색이 초라한 한 노승이 불쑥 나타나 불상을 등에 지고 수도암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수도암 입구에서 그만 칡덩굴에 발이 걸려 넘어진 노승은 크게 화를 내며 수도산 산신령을 불러 '부처님을 모시는데 칡이 방해를 해야 하겠느냐. 당장 절 주위 모든 칡을 없애라'고 호통을 쳤다. 이후 수도암 주변에는 칡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정시한(丁時翰)은 산중일기에서 '절 들어가는 입구에 석불이 앉았는데… 이보다 큰 석불을 보지 못했고….'라고 적고 있다.

▷황점마을과 어사 박문수의 인연

목통령 아래 황점마을은 예로부터 유황이 많이 나, 이를 캐 나라에 바치는 일을 주업으로 했다.

김천을 둘러본 어사 박문수가 거창군 가북면 개금마을로 향하던 중 목통령을 넘다가 워낙 험준한 고개여서 탈진해 쓰러졌다.

산나물을 뜯기 위해 목통령에 올랐다가 박문수를 발견한 한 아낙이 급한 나머지 자신의 젓을 짜 먹여 살렸다. 목숨을 건진 박문수는 아낙에게 소원을 빌었고 아낙은 황점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유황을 캐고 나라에 바치는 일이 너무 고단하니 이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임무를 마친 박문수는 영조 임금에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영조 임금은 "아낙의 정성이 나라의 동량을 살렸다"며 소원을 들어줬고 그 이후 황점마을은 더이상 유황을 상납하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단지봉 오르는 길. 허리 높이까지 자란 풀로 인해 등산로를 찾기 힘들다. 단지봉 오르는 길. 허리 높이까지 자란 풀로 인해 등산로를 찾기 힘들다.

◆가야수도지맥을 오르다

▷가파른 등산로 국사봉, 봉우산

국사봉 들머리는 대덕면에서 감주재를 향해 임도를 오르다 보면 들머리 표지를 만날 수 있다. 산행은 초입부터 키 큰 소나무들 사이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20여 분 오르면 진행 방향 오른쪽은 나무를 베어낸 흔적과 함께 확 트인 조망이 반긴다. 최근에 심은 소나무 사이로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국사봉 정상에 도달한다. 국사봉 정상은 대덕면 내감리와 외감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봉우산 산행은 김천~거창 간 국도 공사 현장을 따라가다 감천 발원지 방향에서 산행 들머리를 찾을 수 있다. 감천 발원지를 지나면 거창군에서 조성한 등산로를 만난다. 계단과 다소 완만한 산길은 정상을 앞두고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정상이 반긴다. 데크가 조성된 정상에 서면 김천과 거창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도산 정상. 수도산 정상.

▷조망 일품 수도산~서봉~시코봉

수도암에 대적광전 계단 우측으로 수도산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을 따라 들머리를 찾아 산을 오른다.

동행하는 이는 수도암이 해발 900m에 위치해 수도산(1,317m)까지 1시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다고 귀띔하다. 약 700m를 오르자 청암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길이 이어진다.

산길 곳곳에는 지리산에서 김천 수도산으로 이주해온 반달곰 때문인지 곰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수도 지맥 능선에 도달한다. 사방 조망을 보면서 바위와 암봉 사이로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곧 수도산이이 나온다.

수도산 정상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 바위에는 사람들이 쌓아 올린 돌탑이 눈길을 끈다. 정상에서는 신선봉과 시코봉, 양각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가야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수도산 서봉으로 불리는 신선봉은 수도산 정상에서 코앞에 있는 듯 가깝게 보인다. 가는 길도 어렵지 않다. 신선봉 정상은 공사가 한창이다.

신선봉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시코봉으로 향한다. 한참 내리막이 이어지다 다시 오르막, 숨이 가빠올 때쯤 시코봉 정상이다.

바로 눈 앞에 양각산이 있지만 원점 회귀키로 했다. 하산해서 수도암 대웅전인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가야산이 선명한 연꽃 모양으로 보여 감탄을 자아냈다.

국립치유의 숲 자작나무 군락지. 국립치유의 숲 자작나무 군락지.

▷단지봉~좌대곡령~용두암봉~목통령~성만재

김천시 최고봉인 단지봉 산행은 국립치유의 숲 입구에서 시작했다. 숲을 지나 굽이굽이 임도로 이어진 '모티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단지봉 정상 들머리 목재 계단을 만난다. 시작 위치가 높다 보니 단지봉 정상까지는 힘들다는 느낌 없이 쉽게 오를 수 있다. 단지봉 정상은 평지로 이뤄져 있다.

단지봉에서 좌대곡령을 넘어 용두암봉까지는 대체로 어렵지 않은 길이 이어지지만, 가슴높이까지 자란 산죽으로 인해 이동이 쉽지는 않다.

좌대곡령을 넘어 용두암봉에 오르면 그동안의 땀을 씻는 탁 트인 조망이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거창군과 김천시, 멀리 가야산과 덕유산 등도 조망할 수 있다. 다시 목통령까지는 내리막길이 이어지지만, 가슴 높이까지 자란 산죽은 산객의 발길을 더디게 한다.

목통령에서 성만재까지는 다시 오르막길이다. 성만재를 둘러 다시 목통령으로 회귀해 황점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하산길은 등산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데다 능선이 아닌 계곡으로 이어진 길이다. 바위와 드러난 나무뿌리를 딛고 내려와야 한다.

목통령 하산길에서 만난 낙엽송 군락. 목통령 하산길에서 만난 낙엽송 군락.

◆가야수도지맥에 속한 산들

▷국사봉(875) ▷봉우산(거말산·902) ▷시코봉(1,237) ▷신선봉(서봉·1,313) ▷수도산(1,317) ▷단지봉(1,327) ▷좌대곡령(좌일곡령·1,257) ▷용두암봉(1,125) ▷목통령(975) ▷성만재(1,132)

 

◆ 등산리본 유감(有感)- 강주홍 산악인

등산을 하다보면 등산리본이 구세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바다의 등대와 같은 등산리본은 길을 잃었거나 애매한 갈림길에서 빛을 발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어느 산을 가도 등산리본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길 흔적이 확실한 곳이나 이미 등산리본이 걸려있는데도 분별없이 마구 걸리는 등산리본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부분의 등산리본 재질은 비닐 테이프나 나일론 천 등의 재질이라 독성이 있으며, 수십 년이 지나도 썩지도 않기 때문에 자연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가(혹은 내가) 이곳에 왔다갔다는 걸 표시하고자 남긴 등산리본은 본래의 목적을 한참 벗어난다.

최근에는 산악회뿐만 아니라 개인, 부부, 회사 등 다양한 등산리본들이 경쟁하 듯 등산로에 내걸리고 있다.

등산리본이 길 안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무분별한 부착은 나의 만족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참고문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산경표(신경준 지음, 박용수 해설), 김천의 산(김천문화원), 한글산경표(현진상), 김천의 마을과 전설(김천문화원)

〈도움주신분들〉 자문=송기동·강주홍, 사진=박광제·이종섭, 드론=윤삼원, 산행=김삼덕·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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