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여행]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평사리에 만난 서희와 길상

경남 하동군 평사리 한산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악양들녘.들녘 중간에 길상과 서희를 연상케하는 부부송이 보인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 한산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악양들녘.들녘 중간에 길상과 서희를 연상케하는 부부송이 보인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로 들어가는 오른편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논에는 활착이 끝난 벼들이 초록의 융단을 깐 듯 싱그럽다. 그 중앙으로 불쑥 솟아오른 작고 동그란 공터위로는 언제부턴가 소나무 두 그루가 길상과 서희를 연상케 하듯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부부송'이라 부른다.일행들과 함께 코로나19로 지친 몸을 잠시나마 내려 놓으며 길상과 서희를 만나러 평사리로 향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무대가 된 평사리

5부작 소설' 토지'는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여 25년후인 1994년 완결한 16권의 대하소설이다.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천을 묘사한 '토지'는 1897년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경장 직후부터 1945년 광복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아름다운 하동 평사리 벌판을 바라보는 최참판댁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만주가 무대이다. 격변하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최서희를 중심으로 평범한 백성의 정서와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세밀하고 재미있게 다룬 가족사적 소설로서 가히 한국문학의 걸작이요 대작이다.

하동군 평사리 초가집.평사리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마을이다. 하동군 평사리 초가집.평사리는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마을이다.

 

지난번 찾았을 때는 곧장 최참판댁으로 향했다면 이번에는 매표소를 지나서 오르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행한 일행들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욕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전날처럼 곧장 오르는 것이 좋았을 뻔했다. 애써 에두르는 길에 난데없는 풍악소리가 풀썩인다. 어디서 성능 좋은 확성기라도 틀었을까? 아니면 환청이라도 들은 걸까? 때 아닌 사물놀이의 흥겨운 장단이 두꺼비처럼 성근발걸음에 채찍질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바빠진 발걸음조차 궁금증을 쉬 잠재우기 어려워 고사리와 산나물 등으로 난전을 펼친 할머니께 묻자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저렇게 두들긴다오! "빨리 가보란다. 한달음에 마당으로 들어서자 '최참판댁 경사 났네!'란 제목으로 하동군 문화체육과가 주최하고 '극단 큰돌'의 주관하에 마당극이 펼쳐지고 있다.

1부, '평사리가 들썩들썩'을 시작으로 2부, 쫓겨나는 서희, 되찾은 땅, 독립군 길상, 광복의 순으로 소설 토지를 재구성하여 공연하는 중이다. 마당극 형식을 취하다보니 일부분은 불특정다수로 지목한 관객들이 동원되었다. 그 관객동원에 일행이 섞이다보니 더 자리를 뜨지 못한다. 자연히 최참판댁의 이모저모의 구경은 공연이 끝난 이후로 미루어진다. 차후에도 9월에서부터 10월까지 공연이 계속된다고 한다. 공연의 일정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이며 관람료는 없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 한산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악양들녘.들녘 중간에 길상과 서희를 연상케하는 부부송이 보인다. 경남 하동군 평사리 한산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악양들녘.들녘 중간에 길상과 서희를 연상케하는 부부송이 보인다.

◆소설 '토지'를 마당극으로

소설 토지의 시작점은 출생의 비밀과의 동행이다. 최치수의 모친 윤씨 부인과 김개주 사이에서 김환(구천)이 태어나고 김환과 별당아씨(최치수의 부인)사이에서 소설속의 주인공인 최서희(이하 서희)가 태어난다. 따지고 보면 최치수와 서희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부녀지간이다. 씨받이가 아니라 일종의 씨내리(혈통을 이어 가는 자손이 아이를 낳지 못할 때에 다른 남자를 들여 아이를 배게 하던 일)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진 것이다.

사실을 알고 있는 최치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가운데 강포수로부터 총을 사들여 산으로 사냥을 떠난다. 그 사냥은 본시 산짐승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사냥, 부인과 사통한 김환을 잡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사냥은 실패하고 별당아씨는 시어머니인 윤씨의 배려로 김환을 따라 종적을 감춘다.

그 가운데 또 다른 음모가 싹튼다. 최치수의 재산을 노리는 몰락한 양반가문으로 김평산이 그 주동자다. 소설 토지의 거의 모든 원한의 씨앗은 이때에 태동한다고 볼 수 있다. 김평산은 최치수에게 자손이 귀하고 특히 아들이 없다는 점에서 제법 그럴싸한 미모를 지닌 귀녀(최참댁 여종)를 끌어들인다. 당찬 야심을 품은 귀녀 또한 그 제의가 싫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출생의 비밀

둘의 계획은 빈틈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오매불망 기다려도 귀녀에게선 태기가 없었다. 이에 김평산은 씨받이로 칠성을 끌어들인다. 칠성의 입장에서 수레바퀴 앞의 사마귀인줄 모르고 언감생심 귀녀를 품는다는 생각에 이르자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귀녀는 김평산이 끌어들인 칠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강포수와 정을 통한 후 아이를 갖는다.

호사다마랄까? 그 일에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친다. 따지고 보면 일이 순조롭게 풀렸더라면 소설 토지는 지금처럼 큰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신이라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라라 여긴 귀녀가 최치수를 찾아 교태를 흘리며 사실을 말했다. 그런데 그 반응은 뜻밖이었다.

노여움이 지쳐 수염이 떨렸다. 여자의 위대함은 임신에 있다고들 하는 데 귀녀는 머리채가 잡히는 순간 마당 한가운데로 내 동댕이 쳐진다. 그동안 귀녀의 요구를 못이기 척 뜨문뜨문 잠자리를 하는 중에 비록 다정다감은 않았지만 지금처럼 화를 내는 최치수를 본적이 없었다. 그제야 귀녀는 레테의 강가에 선 듯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눈앞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최치수가 성 불구자였던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최치수의 죽음

귀녀도 귀녀지만 귀녀로 인해 곧장 날아들 횡액을 걱정하던 김평산은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음을 다잡은 김평산은 최치수를 살해해버린다. 최치수가 죽는다고 해서 없는 듯 덮어질 사건이 아니었다. 곧장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김평산과 칠성은 참수형에 처해진다. 귀녀는 임산부임을 감안하여 출산(강두매)후 형이 집행된다. 이후 그 파장은 컸다. 김평산의 처 함안댁이 집 앞 감나무에 목을 메달아 자결하고 큰아들 김거북(후일 김두수)은 이 모두가 서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겨 왜놈의 앞잡이가 되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찰거머리처럼 따라붙는다. 반면 둘째인 김한복은 평사리에 남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 독립군 길상의 탈출 등등에 많은 도움을 준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에는 소설을 재구성한 '최참판댁 경사 났네!' 마당극이 열리고 있다.

 

◆쫒겨나는 서희,되찭은 땅

이후 서희는 외가 쪽으로 친척인 조준구에게 재산을 몽땅 빼앗기자 평사리를 등져 용정으로 간다. 이 장면이 '쫓겨나는 서희'다. 서희가 비록 평사리에서 쫓겨났지만 핏줄을 떠나서 그녀는 역시 최참댁의 딸다웠다. 용정에서 콩장사로 큰 돈을 번 서희는 공노인의 도움을 받아서 빼앗겼던 평사리의 전 재산을 되찾는다. 이 과정에서 조준구는 광산발굴의 노다지란 꿈에 젖어 살다가 사필귀정, 재산을 서희에게 몽땅 털린 뒤 치매까지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1945년 마침내 광복이 찾아왔다. 서희가 사랑채에 곁달린 누마루에서 내려다보는 악양의 들판은 여전했다. 손아귀가 찢어져도 좋았다. 그렇게 가지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땅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았다. 남편인 길상을 비롯하여 두 아들, 봉순이, 양녀인 양현 등등 주위에 있어야할 가족은 물론 지인들까지 모두 떠나고 보니 회한은 서릿발 같고 허무는 봄눈 같다.

하지만 인간들의 삶은 늘 음모의 연속으로 그녀는 또 다른 모략을 알지 못했다. 일제강점기가 조금만 더 길었다면 악양뜰은 통째로 일제로 넘어갔을 거란 것을! 해방이 가까워 질 무렵 일제는 조선의 아녀자가 소유한 토지를 손에 넣는 따위는 여반장으로 여겼다. 그것은 식민지하의 힘없는 백성이 감당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아가 아무리 친일파라도 맹금류 앞의 한낱 쥐새끼에 불과할 뿐이었다.

 

◆'광복'.배우와 관객이 하나되다.

넓은 마당에서 때 아닌 "따~다다다 땅"하는 총소리가 요란하다. 마당극이 막바지에 이른 모양이다. 총소리가 잦아들자 베일에 가려졌던 무대가 훌러덩 옷을 벗었다. 총알자국이 일목요연하게 '광복'을 아로새기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왕 히로히토는 정오를 기해서 무조건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일제강점기 36년이란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광복'이란 단어만으로도 꿈과 희망이 깃든다. 배우와 관중이 한 덩어리로 뭉치는 순간이다. 그날의 기쁨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실제로 겪었던 사람들의 가슴속은 오죽이나 흥분 되었을까? 먼 하늘을 쳐다보는 할아버지, 손자손녀의 손에서 미리 나누어 주었던 '건곤감이'란 자리에 '대한독립'란 구호가 적힌 태극기가 일제히 나부끼고 안경을 들추는 눈시울에는 감격에 겨운 이슬방울이 눈언저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맑은 하늘에서 태양이 빛나고 바람이 불자 악앙들판을 가득 메운 벼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힌다. 한때를 풍미해서 살았던 사람들은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토지만은 여전히 남아 바람이 어루만지고 햇볕의 보살핌 속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듯 하루같이 곡식들을 길러내고 있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편집위원 lwons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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