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풍상 잘도 견뎌 냈구나…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

암수 마아봉 향하는 오래된 길 따라, 산책하듯 걷다보면 돌탑 천지 도착
이갑룡 처사 생애 바쳐 120기 쌓아…사찰 전체 둘러싸며 신비로움 물씬
동절기엔 암마이봉 등산 통제, 분수령까지만…마이산 명물, 탑사에서 보는 80여기 탑에 탄성
북부에 세워진 세계 유일 가위박물관도 볼 만해

마이산의 명물인 탑사. 돌탑 80여 기가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감을 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의 명물인 탑사. 돌탑 80여 기가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감을 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명승은 계절을 핑계대지 않는다.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말은 관용어구가 아니었다. 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는 말도 실재적 표현이었다.

대구에서 1시간 30분쯤 갔을까. '진안 톨게이트 2km' 이정표는 보는 둥 마는 둥. 이정표 뒤로 보인 두 봉우리에 속도를 줄인다. 마이산(馬耳山)이다. 눈이 커졌고 마음이 바빠졌다. 날씨의 조력도 없는 겨울 여행길에 불쑥 솟는 설렘이다.

가까이 갈수록 입이 벌어지고 고개가 뒤로 젖힌다. 마이산 가는 길의 계절은 애초부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큰손이 창공을 배경으로 산을 오려붙여둔 듯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희한하다.

 

마이산 북쪽 마이산생태수변공원(단양저수지)에 비친 마이산의 모습. 바람 없는 날 저수지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 북쪽 마이산생태수변공원(단양저수지)에 비친 마이산의 모습. 바람 없는 날 저수지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산책하듯 탐방로

마이산에 오르는 경로는 고약하지 않다.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다. 크게 둘이다. 남북 양자택일이다. 대개는 남쪽을 택한다. 오래된 길이다. 북쪽은 신작로다.

겨울에는 일조량에서 남쪽이 낫다. 식당가도 남쪽에 몰려 있다. 무엇보다 유명 사찰 탑사와 은수사가 남쪽에 있다. 마이봉 등정이 통제되는 동절기는 열에 아홉이 남쪽에서 오른다. 탑사까지 보고 내려가기 때문이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는 대표 메뉴를 골라야 실패 확률이 낮다. 통상의 과정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래된 길을 택한다. 남쪽에 주차를 한다. 마이봉으로 향하는 길은 등산로가 많아 복잡한 명산들과 다르다. 탐방로는 오직 한 길이다. 넓은 포장로다. 탑사까지 그렇게 걸어간다. 산책이다.

마이산 북쪽 마이산생태수변공원(단양저수지)에 비친 마이산의 모습. 바람 없는 날 저수지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 북쪽 마이산생태수변공원(단양저수지)에 비친 마이산의 모습. 바람 없는 날 저수지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얼마 가지 않았는데 벌써 다 왔나 싶다. 주차장에서 1.9km다. 탑사에서 마이봉 정상이 코앞이다. 해발 686m 산인데 순식간이다. 시작점인 주차장이 해발 400m에 가까워서다.

진안은 고원이다. 진안에서는 진안고원을 북한의 개마고원과 쌍벽을 이룬다고 알린다. '진안고원길'이라며 고원 바람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길도 홍보한다. 한국지리 시간을 복기한다. 개마고원만 떠오른다. 진안이 평균 해발고도 400m의 고원지대인 건 맞으나 개마고원은 평균 해발고도가 1,200m다.

해발고도 1,000m 이상이면 기압이 다르다.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해발고도 1,200m)에서 어웨이 경기를 가진 유력 축구팀들이 헉헉대는 이유다.

마이봉은 해발 686m의 암마이봉, 680m의 숫마이봉 두 봉우리가 한 쌍이다. 암수 구분의 과학적 원리는 불명확하나 겉보기에 암마이봉은 여성적이고, 숫마이봉은 남성적이다. 세밀한 묘사가 농밀한 묘사로 이어질 것이 명확하기에 이쯤에서 멈춘다.

 

마이산의 명물인 탑사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돌탑 80여 기가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감을 주는 탑사는 이갑룡 처사가 생애를 바쳐 쌓은 것이라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의 명물인 탑사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돌탑 80여 기가 사찰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신비감을 주는 탑사는 이갑룡 처사가 생애를 바쳐 쌓은 것이라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돌탑 천지, 탑사

탑사라니, 탑이 유명한 사찰의 별칭인가보다 했는데 진짜 이름이 탑사다. '탑사인데 절 이름이 뭔지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개그가 아니었다. 돌탑 천지다. 돌탑으로 가득한 사찰의 신비감은 경남 하동의 배달성전 삼성궁에 비견된다. 삼성궁도 한풀선사가 수련하며 돌을 쌓았다는 곳이다.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돌로 탑을 쌓는 경우는 더러 있다. 마산 9경 중 하나인 팔룡산 돌탑 1천기도 그렇다.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쌓았다고 한다. 강릉 노추산 모정탑길의 돌탑도 크기는 작지만 빼놓기 아쉽다. 돌로 쌓은 수련이고 정성이다. 적어도 20년 이상 걸린 역작들이다.

탑사에는 불상보다 이갑룡(李甲龍) 처사의 상이 훨씬 크게 조형돼 있다. 사적비도 크다. 1978년 유적비 건립추진위원회도 구성돼 있었다. 지역 유지 전원이 나섰는데 40세가 되기 전 전남도지사를 역임했던 고건 전 총리의 이름도 보인다.

1860년생인 이갑룡 처사가 탑을 쌓는 데 30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120기를 쌓았는데 현재는 80기 남짓 남았다고 한다. 1957년 백수를 눈앞에 두고 98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기준으로는 여간 장수한 게 아니다. 공기가 좋은 마이산에서 탑을 쌓으며 끊임없이 움직였고, 생식까지 했다니 생로병사의 비밀을 굳이 분석할 것도 없다.

마이산 탑사 골짜기를 메운 돌탑 사이를 오가며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한 관람객이 약사탑에 작은 돌 하나를 올리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 탑사 골짜기를 메운 돌탑 사이를 오가며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한 관람객이 약사탑에 작은 돌 하나를 올리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크기와 높이가 다른 돌탑이 탑사 골짜기에 빼곡하다. 사찰임에도 대웅전이 어디 있나 잠시 헤맨다. 심지어 대웅전 뒤에도 13m 높이의 천지탑이 서 있다. 돌탑이 많다보니 아류작도 탑사 아래 여러 개 있다.

탑사에서는 '탑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마십시오. 돌! 올리지 말아주세요. 탑 사이로 들어가 탑이 무너집니다. 간곡히 엎드려 부탁드립니다.'라고 표지판을 세워뒀는데 반항 심리인지, 소원 성취 편승 심리인지, 탑의 기운을 거들겠다는 품앗이의 의지인지, 기어코 자신의 돌을 하나 더 얹는 이들이 보인다. 작은 돌 하나씩 얹는 노력이 측은하다.

장마철에는 특이한 장면이 연출된다고 한다. 쏟아지는 비가 암마이봉에서 고였다 흘러내리면서 폭포처럼 탑사 쪽으로 쏟아진다. 국가지정 명승이기도 한 마이산은 장마철 비경마저 문화재급이다.

 

탑사를 거쳐 마이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마이산 은수사. 태조 이성계의 왕조 창업 이야기가 있는 사찰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탑사를 거쳐 마이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지나야 하는 마이산 은수사. 태조 이성계의 왕조 창업 이야기가 있는 사찰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동절기엔 분수령까지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암마이봉으로만 허락된다. 그나마 동절기(11월 중~3월 중)에는 통제된다. 분수령까지만 오르고 내려가야 한다. 분수령은 이름에서 추측하듯 물이 나뉘는 고개다. 암·수마이봉 사이에 있어 두 봉우리를 나누는 공간이다.

동절기가 아니라도 암마이봉은 인증샷을 찍을 게 아니라면 크게 권하지 않는다. "볼 끼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다녀온 자의 여유이자 허세다. 막상 분수령까지 오르면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언제 여기 또 오겠나'는 심정으로 암마이봉까지 1.2km를 오른다.

암마이봉 가는 길이 열리면, 가장 짧은 코스는 북쪽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분수령까지 오르는 건 남북이 같으나 북쪽이 1km 정도를 덜 걷는다. 다만 남쪽에서 오르는 계단(324개)보다 북쪽에서 오르는 계단(508개)이 더 많다는 건 함정이다.

분수령은 저택 마당 정도 크기(300㎡)의 평지다. 여기서 북쪽으로 흐른 물은 금강으로 400km를 가 서해 군산앞바다에,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시작돼 225km를 달려 남해 광양앞바다에 이른다. 한겨울로 질주하고 있는 12월 중순의 분수령에는 물이 없다.

태조 이성계의 왕조 창업 이야기가 있는 사찰인 은수사 뒤편으로 숫마이봉이 솟아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태조 이성계의 왕조 창업 이야기가 있는 사찰인 은수사 뒤편으로 숫마이봉이 솟아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분수령은 '천왕문'으로도 부른다. 왕조가 시작될 때, 하물며 정권이 시작될 때도 당위성과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이야기는 차고도 넘친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는 운명론은 말하나 마나다.

이곳도 그런 이야기의 배경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 남원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박살내고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 이씨의 안방, 전주에 가기 전 마이산에 들렀다고 한다, 마이산에서 전주까지는 20km가 채 안 되는 거리다, 그가 마이산에서 왕조 창업 실현을 기원하며 돌탑을 쌓았는데 그날 밤 꿈속에서 금척(금으로 된 자, 길이를 재는 도구 '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ruler'에는 '지배자'라는 의미가 있다)을 받은 뒤 분수령에 올랐다 해서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의 천왕문이라는 얘기다.

진안읍내 문예체육회관 옆 월랑공원에서 본 마이산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진안읍내 문예체육회관 옆 월랑공원에서 본 마이산의 모습.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변화무쌍, 별칭도 많아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인데다 웬만한 명산에 이름을 올린 덕분에 등산마니아들이 한 번씩은 탄다는 산이다. 특히 도드라지는 두 봉우리는 청송 주왕산 대전사 뒤 기암바위와 비슷한 느낌이다.

차이가 있다면 가까이에서 봤을 때다. 모두 멀리서 봤을 때는 신비감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마이봉을 가까이서 보면 시멘트와 자갈을 섞어 놓은 콘크리트 산처럼 보인다. '역암(礫巖)'이라는 설명이 등장하는데 자갈이 많은 암석이라는 뜻이다.

자연스레 마이산 표면에는 '타포니'라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데 역암 안의 돌과 모래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떨어져 나가 생긴 것이다.

마이산은 이름 바뀜이 잦았다. 왕조마다 바뀌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이 기록돼 있는데 신라 때 서다산(西多山), 고려 때 용출산(湧出山), 조선 초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렸다고 한다.

마이산 표면에 벌집처럼 군데군데 생성된 커다란 구멍, '타포니'. 역암 안의 돌과 모래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떨어져 나가 생긴 것이라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이산 표면에 벌집처럼 군데군데 생성된 커다란 구멍, '타포니'. 역암 안의 돌과 모래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떨어져 나가 생긴 것이라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명산의 필수조건이라는 계절 별칭도 있다. 봄이면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대 모습이라 돛대봉, 여름에는 암수 마이봉이 용뿔처럼 보인다 해서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이 든 색깔이 말귀와 같다 해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한다.

마이산의 진풍경은 대개 북쪽에서 본다. 명당이 있다. 크게 세 곳이다. 익산포항고속도로 마이산휴게소가 우선 꼽힌다. 맛보기에 가깝다. 가까이서 못 본다는 게 흠이다. 사진작가들의 총애를 받는 자리는 마이산생태수변공원(단양저수지)다. 바람 없는 날 저수지는 거울 역할을 해준다. 그림 뺨치는 인생작이 나온다.

맨눈으로 보기 가장 좋은 곳은 읍내 문예체육회관 옆 월랑공원이다. 여의치 않으면 읍내 로터리에서도 잘 보인다. 노을이 번져갈 때가 압권이다. 마치 마이산이 뛰어나올 듯 선명하다.

 

세계 유일의 가위를 소재로 한 박물관인 진안가위박물관 내부의 모습. 1천400점이 넘는 가위들이 전시돼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세계 유일의 가위를 소재로 한 박물관인 진안가위박물관 내부의 모습. 1천400점이 넘는 가위들이 전시돼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가위박물관

북쪽 주차장 쪽에도 시설물이 더러 있다. 홍삼스파, 테마파크, 미로공원, 역사박물관 등 여러 시설물 중 하나만 꼽으라면 '가위박물관'이다. 가위박물관이 진안에 들어선 건 용담댐 수몰예정지였던 용담면 수천리에서 고려시대 철제 가위 5점이 출토됐다는 데 착안한 것이었다.

가위를 주제로 한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라 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가위 1천400여 점이 전시돼있다. 중세 유럽에서 포도를 먹는 데 썼다는 포도가위, 러시아 제국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맏딸 올가의 가위함, 영국 로스차일드 가문 한나의 왕관가위 등이 전시돼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전시물이 알차다.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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