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그대, 지금 모습이 가장 좋습니다…지리산 흘러내린 산청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남사예담촌과 지리산 대원사 계곡
사찰인가, 카페인가, 정원인가. 수선사에서 맞는 초가을

남사예담촌의 대표 고가, 이씨 고가로 들어서는 길에 X자 회화나무가 서 있다. 관광에 나선 엄마와 딸이 그 아래를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남사예담촌의 대표 고가, 이씨 고가로 들어서는 길에 X자 회화나무가 서 있다. 관광에 나선 엄마와 딸이 그 아래를 사이좋게 걸어가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넌 그냥 그대로가 제일 좋아."

'항노화 웰니스 여행 1번지'라는 대표 문구를 뽑아든 그곳을 찾았을 때 '맑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이름 자체가 정체성인 곳이었다. '맑은 산과 물'이라 이해하든, '산이 맑다'고 풀이하든 '산청(山淸)'의 이름 풀이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한민국 힐링 1번지'를 자칭하며 굳이 어려운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아도 됐다.

여유롭게 살면서 늙는 걸 걱정 않는다는 말에는 '고쳐주는 땅'이란 자부심이 있다. 지금도 지리산에서 캔 약초와 산나물은 약선 밥상에 올라온다.

지리산과 황매산 사이 산청 땅에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공기는 맑았다. 몸의 오장육부가 응답할 차례였다.

 

경남의 하회마을이라는 남사예담촌의 대표 고가 중 하나인 이씨 고가에서 가족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경남의 하회마을이라는 남사예담촌의 대표 고가 중 하나인 이씨 고가에서 가족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남사예담촌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라고 한다. 한옥 40여 채가 조화를 이룬다. 성주 이씨, 진양 하씨 등 여러 다른 성씨들이 한마을을 이뤘다. 오래된 집들이 관광객을 맞는다. 이씨 고가, 최씨 고가, 사양정사 등을 지난다. 단일 성씨의 마을이 아니다보니 자연스레 담이 높다. 이곳의 자랑인 5.7㎞ 길이의 토담길이 생긴 배경이다. 최고 높이 250㎝다.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토담길 일부(3.2km)는 2007년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관광객들의 발길은 주로 이씨 고가 입구로 향한다. 남사예담촌의 상징이 된 X자 회화나무 한 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야함은 물론 그 아래를 사이좋게 걸어가야 하는 미션이 있어서다. 300년이 넘은 회화나무 한 쌍은 줄기가 구부러져 있다. 허리가 구부정한 것이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모양새다. 사람으로 치면 어르신들의 애정 표현인 셈인데 짝꿍 없는 이들의 눈에 땀이 찰 자세다. 스토리텔링의 단골 소재인 효자, 부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부부나무'라는 별칭이 붙었다. 실제 부부가 나무 아래를 지나면 백년해로한다는 말도 들린다. 다른 지역, 다른 나무 아래에서도 들어봤음직한 해피엔딩 속설이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같아도 미풍양속과 덕업상권의 가르침에 수긍한다.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남사예담촌 토담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최씨 고가로 들어가는 돌담길을 따라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남사예담촌 토담길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최씨 고가로 들어가는 돌담길을 따라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씨 고가에 들어간다. 문이 활짝 열려 출입이 자유롭다. 집주인은 없다. 개미들만 분주하게 오간다. 무인 판매대가 보인다. 관광객에 대한 신뢰다. '여기는 가정집입니다. 예의 바르게 구경만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도 있다. 친절해서 미안하다. 또 측은하다. 내 집에서 내가 부탁해야하는 신세다. 전국 전통마을들이 감수해야 하는 숙명일까.

마을에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이들이 심은 매화나무, 감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뎌냈다. 하씨 고가의 600년이 넘은 매화나무 원정매와 사양정사 맞은 편 감나무가 영물이다. 특히 감나무는 고려 말 하연이라는 사람이 어머니께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은 것이라 한다. 감나무 중에선 국내 최고 수령이라고 한다. 밑동이 반쯤 파였지만 감이 매달려 있다. 두어개 매달려 체면치레하는 줄 알았더니 주렁주렁 달려 가을을 기다린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구호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마을 여러 군데에 적혀있다. 칭호 수여자가 누굴까 궁금해 뒤졌더니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단법인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이라는 곳이다. 여유를 즐기며 걷는 데 좋은 마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문화재급 풍경을 자랑하는 대원사계곡의 모습. 유평마을에서 대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물이 힘차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문화재급 풍경을 자랑하는 대원사계곡의 모습. 유평마을에서 대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물이 힘차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지리산의 청량감, 대원사계곡

대원사는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그보다 더 이름을 날린 건 계곡이다. 대원사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2.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이다. 지난해 말에는 대원사에서 유평마을까지 이어지는 생태탐방로가 개방됐다. 유평마을까지 왕복하면 7km 정도다. 길이 문화재급이다. 판에 박힌 수식어가 아니라 실제로 대원사계곡은 경상남도지방문화재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그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곳에 발을 담근 뒤 정수리를 때리는 명징함에 문득 인생을 돌아봤다'고 했다. 그래서 '남한 제일의 탁족처'란 이름이 붙었다. 그의 말이 아니라도, 굳이 발을 씻지 않아도 족하다. 폐부에 강하게 흡착되는 피톤치드와 고막을 퉁기며 나가는 물소리에 문득 걸음을 멈춘다.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가 한낱 먼지로 변했다가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찰나의 시간이다.

문화재급 풍경을 자랑하는 대원사계곡의 모습. 유평마을에서 대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물이 힘차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문화재급 풍경을 자랑하는 대원사계곡의 모습. 유평마을에서 대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물이 힘차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곳의 여름은 끝났다. 피부에 닿는 바람이 초가을을 전한다. 경사도는 완만하다. 노약자도 도전해봄직하다. 자동차도로가 지리산 안으로 이어져있지만 계곡과 숲으로 일부러 걷는다. 온천에 들어와 몸을 담그는 게 정상 수순이듯 이곳에선 걷는 게 정석이다. 맨발로도 걷는다. 대원사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2.2km가 금방이다.

물이 맑은 건 당연하고 바위 사이로 흘러나가는 물과 기암의 어우러짐이 그림이다.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을 만큼 절경인 용소를 비롯해 천연 냉장고 역할을 했던 돌개구멍 등은 자연이 빚은 작품이다.

이내 이른 대원사에 '방장산대원사'라는 현판이 붙었다. 방장산은 지리산의 옛 이름이다. 대원사 맞은편에 놓인 다리로 계곡을 건넌다. 58m 길이로 전국 국립공원 탐방로 다리 중 가장 큰 규모라는 다리다.

'계곡 내 출입허용지역'에는 살아있는 자들이 명당자리를 깔고 앉아, 누워 쉰다. 계곡에서 쉬다 여유가 생겼는지 소원을 비는 돌탑도 도시계획지구처럼 구획별로 쌓여 있다. 묘기에 가깝다. 그 정성이면 뭔들 못할까.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대원사 대웅전으로 관광객들이 오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유명한 대원사 대웅전으로 관광객들이 오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대원사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면 유평마을 등 5개 마을이 더 있다. 사전적 정의 그대로 산골마을이다. 산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빨치산을 토벌할 때 생고생을 해야 했다. 전국 여타 지자체와 달리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이 있는 이유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인접 함양과 함께 공비토벌 작전에 양민들이 적잖게 희생됐다.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대원사 주위에는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과 관련한 지명이 남아있다.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는 소막골, 그가 넘었다고 하는 왕산과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도장굴 등이 전설로 전해 내려온다. 그의 무덤도 가까운 곳에 있다. 대원사에서 자동차로 30분 남짓 거리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구형왕릉.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적석총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구형왕릉.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적석총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구형왕릉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전)구형왕릉이다. (전)은 선대나 앞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전할 전, '傳'이다. 풀이하면 '구형왕릉이라 전해오는 곳'이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仇衡王), 신라 측에서 보면 왕위를 넘긴 양왕(讓王)의 무덤이다.

왕릉 앞 좌우로 후대에 놓은 것으로 보이는 문인석, 무인석, 사자상 등 석물들이 지키고 섰고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는 비문이 박혀있다.

거대한 돌무덤이다.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이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다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들어가지 말라고 돼 있다. 돌무덤 사이로 팔뚝만 한 쥐가 호위병처럼 왔다 갔다 한다. 무덤이라기보다 제단석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석탑이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전체 높이는 7m 남짓. 7단으로 축조돼 있다. 구형왕은 서기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겼다. 전란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이 컸던 탓이다. 이후 왕릉 주변 터를 잡고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돌무덤이 된 것은 그의 유언이었다고 전한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무덤을 흙이 아닌 돌로 쓰라는 것이었다.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다. 김유신은 젊은 시절 이곳에서 7년간 무덤을 지키며 수련했다고 한다.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신 '덕양전'이 왕릉 아래 1km쯤에 있다.

수선사의 비경 중 하나로 꼽히는 연못 나무데크 길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수선사의 비경 중 하나로 꼽히는 연못 나무데크 길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수선사

중압감이 없고 아늑한 친근감이다. 사찰이 맞나 싶다. 정원이면서 카페다.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철 지난 수국이 고개 숙이고 있다. 신심 깊은 누군가가 불경이라 한다면 사찰이 아닌 곳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찰의 형식과는 사뭇 달라서다. 일주문이 없다. 사천왕상도 없다. 극락보전, 삼성각이 전부다. 정원이 예쁜 카페에 대웅전이 있다고 봐야할 정도다.

한참을 지켜봐도 불공드리는 이는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속세의 근심 다 내려놓은 듯한 표정으로 돌아나온다. '나갈 때는 웃으면서'라는 표어가 쓰여 있는 것도 아니다. 포교의 정석이란 뭘까 새삼 생각한다. 수선사는 스스로 오게 하는 건 확실히 성공한 듯하다. 이미 '정원이 아름다운 사찰'로 입소문이 났다. 사찰에 들어온 사람 모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사진 찍는 데 정신을 집중한다.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배터리가 다 된 사람이거나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좋을 만큼이다.

연못으로 들어가 연꽃과 이름 모를 수생식물들과 대화하듯 나오면 극락보전으로 연결되는 잔디광장이 열린다. 잔디광장에서 아래에 있는 연못을 내려다 본다. 연못에 비친 하늘이 높다. 처서 지나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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