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5개월 아기가 남겨 준 '12일의 시간'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토요일 오전 외래진료가 마무리 되기 30분전, 갑자기 진료실의 적막을 깨치고 전화벨이 울렸다. 불안감에 휩싸이며, 전화를 받았다. "5개월 된 남자아이가 숨도 쉬지 않고 심장이 전혀 뛰지 않는 상태로 119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했고, 지금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는 전공의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는 급하게 응급실로 뛰어 내려갔다.

아이 입에는 기관지 삽관 튜브가 꽂혀 산소를 힘껏 짜주고 있었으며, 30분동안 심폐소생술로 아이의 가슴은 퍼렇게 멍들어 가고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에는 아무런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처치실 밖은 아이의 엄마, 아빠, 할머니의 통곡 소리로 응급실 전체가 가득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 한시간의 심폐소생술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발 호흡은 없고 눈동자는 빛에 반응 없이 커져 있었으며, 자극을 주어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머리가 저산소증으로 손상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예후가 나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중환자실로 옮겨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 날 저녁에 아이는 경련을 했다. 뇌 손상이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것과 같았다. 이튿날부터는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에게 2차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보다 하루 두 번 있는 보호자와의 면담이 큰 스트레스였다. 아이는 여러 아픈 부분이 많았지만,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하얀 피부에 통통한 얼굴, 다른 기계장치만 없다면 아이는 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제든 눈을 크게 뜨고, 금방이라도 씽긋 웃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여러 수치가 보여주는 아이의 절망적인 현실. 그런 현실은 애써 외면하고, 희망만을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이런 기대치를 낮춰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주기도, 그렇다고 절망을 주기도 힘든 입장에 놓인 것이다. 아이 부모는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던 것 같다. 면회시간이면, 어김없이 함께 와서 기도와 찬송을 불러주었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질 때면 더 힘껏 기도와 찬송을 불렀다.

우리의 노력과 엄마 아빠의 기도와 찬송 덕분인지 아이는 12일동안 세상에 더 머무르다 하늘나라로 갔다. 중환자실에 아침, 저녁으로 울리던 찬송과 기도 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눈물을 흠뻑 흘리시던, 아이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내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더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는지? 보호자에게 좀 더 희망적으로 얘기를 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등등.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12일간 세상에 더 머물면서, 이 아이는 많은 것을 주고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에게는 그날 바로 하늘나라에 가지 않고 12일 더 살면서, 엄마 아빠가 마음 준비할 시간을 주었다. 사건 당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면, 보호자들은 죄책감 속에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엄마 아빠에게 시간을 준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기도해주고, 노래 불러 줄 시간을 말이다. 늘상 죽음을 대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특히 아이의 경우에는 마음이 아프다.

유명한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은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인간의 인생은 신의 손으로 그려진 동화다." 이 아이가 예쁘게 지내다가 아프고, 12일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 살았던 시간. '그 삶은 어떤 동화일까?' '그 부모는 어떤 동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했던 나는 어떤 동화를 그리고 있는 걸까?' 이 날들이 지나면 또 평범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묻혀 살겠지만, 내가 쓰고 그린 동화가 의미 있었으면….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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