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형의 시시각각·時視角覺] ⑪ 멧비둘기의 마지막 비행, 충돌흔

지난 7일 경북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마을 앞 34번 국도 투명 유리방음벽에 벽화처럼 찍힌 멧비둘기 충돌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난 7일 경북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마을 앞 34번 국도 투명 유리방음벽에 벽화처럼 찍힌 멧비둘기 충돌흔.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경북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앞 34번 국도.

확장개통으로 들어선 높이 3m 유리 방음벽에

멧비둘기가 생의 마지막 흔적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날았는지

깃털 유분(油分)이 유리에 착 달라붙어

눈과 부리, 활짝 편 날개와 두 다리까지

마지막 비행이 생생한 벽화로 남았습니다.

충돌 순간이 어찌 이리도 평화로울까요.

보이지 않는, 피할 수 없는 투명 유리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바닥엔 털만 수북해

까마귀, 들쥐, 길고양가 뜯고 간 게 틀림없습니다.

행여 이 멧비둘기가 조류독감에라도…

길고양이도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요즘입니다.

그깟 새가 좀 죽는게 무슨 대수냐고요?

1958년 중국에서 제사해(除四害) 운동 때

참새가 벼 알곡을 축낸다고 해충으로 몰려

그해에만 2억 마리나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생태계가 무너지고 메뚜기가 창궐해

4천만 명 이상의 인민들이 굶어죽었습니다.

연간 800만 마리.

환경부가 추정하는 우리나라에서 한 해

건물과 도로 유리벽에 부딪혀 죽는 새의 숫자입니다.

숲속 장애물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독수리 스티커' 쯤은 단번에 가짜로 알아채지만

투명 유리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지난 7일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국도변에서 한국선팅필름협동조합 회원이 유리방음벽에 5cm×5cm 간격으로 점이 찍힌 조류 충돌방지 필름을 붙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지난 7일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국도변에서 한국선팅필름협동조합 회원이 유리방음벽에 5cm×5cm 간격으로 점이 찍힌 조류 충돌방지 필름을 붙이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연구 결과 세로 5cm, 가로 10cm 이하 공간은

피해서 난다는 '5×10규칙'을 발견했습니다.

환경부는 이 간격으로 점을 찍은

버드가드 필름(조류 충돌방지 필름) 부착을 주문하지만

유리벽은 속속 늘고, 관심은 역부족입니다.

새내기 새들이 둥지를 나오는 7월입니다.

충돌흔을 남기고 간 멧비둘기의 경고를

초보 비행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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